마을명 : 여산면 > 학동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학동마을
구술자 윤두병(1961)남자
구술자 김태수(1938)남자
구술자 신재옥(1936)남자
구술자 김완길(1930)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08
비고 면담장소 : 여산 학동마을 마을 정자
면담시간 : 2012년 9월 8일 15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학동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1972년 내동과 합쳐 한 분리가 되었다. ‘학동’은 뒷산에 학(황새)이 많이 서식하여 생긴 이름.‘내동’은 학동의 안쪽 마을이므로 일컫던 이름이다. 약방말에는 1940년대까지도 한약방이 있었다.

『익산 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학이 많이 살아서 학동마을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갈매봉: 익산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 문드름제: 여산 시장이 열리면 비봉에서 여산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부르는 명칭이다.
- 장터고개: 장터가 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뒤지봉: 쌀둑이라고 불리는 두개의 산을 뜻한다.
- 깔봉: 소가 누어서 깔(풀)을 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사기장골: 그릇 구운 터라고 한다.
- 안골: 그릇 구운 터라고 한다.
- 배다리: 예전에 배가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약방마을: 옛날에 유명한 약방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필봉: 마을에 우수한 인적자원이 많이 배출 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새술막: 암행어사 이몽룡이 출두할 때 거기 술집이 3개 있었는데 거기서 술을 한잔 마시고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벼락박골창: 윤두병씨 외할머니가 시집 오실 당시 이 고개를 넘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가마꾼들이 큰절을 해서 무사히 지나 갈 수 있었다고 한다.
- 쌍봉: 쌍봉을 바라 보고있는 집은 항상 쌍둥이가 태어난다고 한다.
- 마을 흉조: 문드름제에서 여우가 울면 초상이 난다고 한다.
- 도깨비불: 비가 오기전에 도깨비 불이 나타난다고 한다.
- 인재가 많은 마을: "도적이 나와도 대적이나온다"라는 마을에 속담이 있다.
- 논산 연무대 지네 장군 묘: 도굴꾼들이 도굴을 할려고하면 벼락이 떨어져서 아무도 그곳을 파지 못했다.

4) 민속
- 산제당: 옛날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기도 하는 산제당이 있었다.
- 기우제: 산제당에 사는 무당이 가끔 기우제도 지냈다.
- 투전놀이: 다른마을과 함께 투전놀이를 많이 했다.

구술채록

A1: 윤두병 (52) 1961년
A2: 김태수 (75) 1938년
A3: 신재옥 (77) 1936년
A4: 김완길 (83) 1930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 ● ●

B3: ‘학동’마을은 왜 ‘학동’마을 이라고 했나요?

A2: 여기 ‘학동’은 옛날에 학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학동이라 했지.

B3: 학이 살기 좋은 환경이 있었나요?

A2: 여그 인자 저수지가 있지.

B3: 그럼 저수지는 언제 생긴 것인가요?

A2: 이 저수지하고 저 학하고는 안 맞는 거 같어 몇 백 년 된 것이 아니여.

A3: 저수지는 왜정 때 만든 것이여 일본 시대 때 막은 거라.

A2: 학이 먹이를 뭐 먹고 살았는지는 모르고 학이 옛날에 서식을 했다 해서 ‘학동’이라고 전설이 내려오지.


● ● ●

A1: 제가 대략적으로 이 지형을 설명 해드릴께요 이게(마을 모종 앞 산) ‘노령산맥’ 줄기에요 이게 ‘천호산’으로 연결되거든 그리고 저게 ‘갈매봉’ 여기 지금 보이는 게 인제 우리 마을에서는 ‘필봉’이라고도 그러고.

B1: 필봉? 그 문필봉에 필봉인가요?

A1: 그렇치 그렇치 그래서 우리 마을에 인재들이라든가 그 우수한 자원들이 인적자원들이 지금까지 쭈-욱 뭐 그렇다고 해서 크-게 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그런 인물은 없고 그래도 아쉬운 대로 그런 인물들이 지금까지 쭈-욱 끊기지를 않죠. 그리고 저게.

B1: 지도에는 ‘갈매봉’이라고 나와있고요?

A1: 그렇치 그렇치 그리고 이게 익산 시에서 제일 해발이 높아 이게 저 ‘미륵산’ 보다도 높습니다 옛날에 송신소가 제가 어른들한테 여 행정이나 공무원들한테 듣기로는 여기로 올라고 그랬 데 저 송신소가 KBS 송신소가 지금 ‘모악산’으로 갔자나요? 근데 저 ‘미륵산’으로 갔지.

A2: 저게 ‘갈매봉’이 우리 옛날이야기로는 ‘필봉’이라고 해서 이 동네에서는 인재가 안 떨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공무원이 7∼8씩 이런 작은 동네에서 7∼8명씩 어려운 일 아니에요? 근데 공무원이 7∼8명씩 계속 나왔어 지금 현재도 나오고 있고.

● ● ●

B1: 그러면 옛날에 누구 과거에 합격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셨는지요.

A2: 과거 까지는 모르고 최근에 인재가 안 떨어져요 학교에서도 수재여 등수 안에 들 정도로 학생들이.

B1: 또 다른 마을에 대한 이야기 아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A1: 이장님 저기 ‘문드름제’ ‘벼락박골창’에 유래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여기가 저기로 가면 저 ‘필봉’이라는 뒤에가 ‘천호성지’에요 카톨릭 순교자들 많이 묻혀 있는 유명하자나 옛날에 로마 교황 바우로2세도 여기로 왔다 갔으니까 그러면 거기 올라가는 지금은 수풀 때문에 안 보이는 데 거기 제가
‘문드름제’고 그 계곡이 우리 마을로 이렇게 흘르는 ‘벼락박골창’ 맞죠? ‘벼락박골창’ 근데 난 이 유래를 모르겠더라고.

B1: 왜 ‘문드름제’라고 불렀을까요?

A2: 여기서 ‘비봉’이 있어 이 고개를 ‘여산장’을 봤어요 지금도 그 사람들 ‘여산장’에서 썩은 새우젓 이야기를 가끔 혀 여기 오면 생선이 싸다고 했어 이 넘어에서 양 옛날 보면 허연한 옷을 입고 댕기면서 여그서 저-그까지 걸어 댕길 때 인 게 몇 년 되써 하얀 옷 입고 다닌 지.

A3: 왜 생선이 싸냐 하며는 ‘강경’ ‘강경’서 ‘강경포구’가 있었다고 거기 배가 나룻배가 ‘강경’까지 들어왔어 근디 지금 하구뚝 막고서는 나룻배가 못 들어오는 거여 그전에 옛날에는 거그 가면 나룻배가 들어와 가지고 배에 다가 손가지도 실코 장작도 실코 어디서 숯도 실코 이런 걸 실어서 나룻배로 실코 가고 ‘강경’사람들이 나무 아니면 밥을 못 해먹어 그리 가지고 ‘강경’에 가면 나룻배 자리가 있는 데 ‘강경’에 그만큼 돈이 많았는 디여 개가 돈을 물고 댕긴 다 했어 왜 돈을 물고 댕겼냐면 생선을 포구에 배가 많이 들어와서 들어와 가지고 돈이 많다 해서 그래가지고 개가 돈도 물고 댕긴다 해써 그래가지고 ‘강경’이 ‘여산’하고 가까워 그니까 젖 장고 뭐고 생선이고 뭐고 ‘여산’서 ‘강경’서 여그다 실어다 놓으면 이 ‘문드름제’ 제 넘어가면 ‘비봉’양반들이거든? 그분들이 여기 소릿길이 있어 소로길 아 그래가지고 거기를 넘어가 그러면 하-얀 하게 연줄 달어 연줄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적에 장난도 했어.

B1: 그러면 ‘문드름제’는 왜 그렇게 불렀나요?

A3: 그걸 우리도 몰라요.



● ● ●

B1: 어르신 ‘당샘’에 사신다고 하시던데요 왜 거기는 ‘당샘’이라고 불렀나요?

A3: 그것도 몰라요 근데 ‘새술막’ ‘당샘’이 있는 데 ‘새술막’은 왜 그런 고니 그 전설에 뭐라는 고니 그 암행어사 출두할 때 거기 술집이 세 집이 있었다 해가지고 술을 한 잔마시고 갔다고 해가지고 ‘새술막’이여 암행어사 ‘이몽룡’이가 ‘신마을’에서 ‘통샘’으로 해서 그리 빠졌드만.

A1: 이게 국도 1호 거든 이게.

B1: 그러면 ‘벼락박골창’은 왜 그렇게 불리었나요.

A3: 거기가 어딘지 모르겄어.

A1: 아 여그 저기요 여기 논 위에 쭈-욱 계곡 거기를 ‘벼락박골창’이라고 하자나요.

A3: 허허 난 그렇게 안 들었는 디.

B1: 뭐라고 들으셨나요?

A3: 아이 기억이 안 나.

● ● ●

B1: 그러면 ‘벼락박골창’은...

A2: 지금까지 그냥 내려온 이야기요 여기가 논도 있고 그 물이 끝나는 데가 있거든 이게 물이 떨어져서 끝나.

B1: 물이 벼락처럼 끝나서 그렇게 불렸나 봐요.

A2: 그래서 그랬는가 하여튼 이 바로 고개 저 다리가 ‘장터고개’라고 그래 그게 옛날에 장이 섰다고 그래.

A3: 잠깐 우리 생각으로는 거그서 잠깐 뭔가 물건 놓고 팔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장터고개’라고 하는 것 같어.

A1: 그리고 옛날에 여기에서 ‘비봉’에서 우리 마을로 넘어오는 그 길을 ‘벼락박골창’ 그 소로 제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한테 우리 외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 인데 할머니가 ‘비봉’에서 시집 오셨자나요.

A3: 그렇지.

A1: 그러면서 가마 타고 이렇게 시집을 오는 데 호랑이가 배를 쭈-욱 깔고 길을 탁 막고 있더라 이거야 그래서 감히 호랑이가 길을 막고 있으니까 무서워 가꼬 거기서 가마들은 사람들이 큰-절을 하니까 산신령님 오셨냐고 큰-절을 하니까 비껴줘서 일로 왔데.

B1: 외할머니한테 직접 들으신 이야기 입니까?

A1: 그렇쵸 어렸을 때 여기 엄청 옛날에 막 이런 빽빽한 울창한 숲이었거든.

A3: 아 여그가 호랑이가 구경을 못해 봤지만 엄청난 산이었어.

(개인사 이야기)

● ● ●

A2: 저- 산이 두 개가 있는데 ‘뒤지봉’이라고 그려 쌀뚝이라 이 말이지 근디 우리 사람들인 ‘뒤지봉’이라고 하는 디 소가 저 넘어 원수리 저수지 있지요? 그 옆에가 소가 저 ‘깔봉’이라고 해요 저 넘어 원수리 저수지 바로 옆에 산이 소여 그 소가 이 ‘깔봉’을 바라보고 누워 있디야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는 ‘뒤지봉’이라고 하거든? 뒤지는 쌀뚝이다 이런 뜻이여.

A3: 여그가 여그가 ‘쌍봉’이여 요 앞에 철탑 있는 디가.

A1: 그런 것도 있고 또 제가 듣기로는 ‘쌍봉’ 보면 똑같자나요 그래가지고 우리 마을에 쌍둥이가 12남매를 둔 집도 있어요 한 가정이 두 쌍둥이 두 쌍둥이죠? 네 쌍둥이 가정도 있고 둘 둘 쌍둥이 가정도 있고.

A2: 어 두 쌍둥이 있어.

A3: 맞어 쌍둥이 그 ‘쌍봉’을 바라보고 흐흐 잠을 자가 지고 독침을 해가지고 낳다 해가지고 하하하하 근디 우리가 쌍둥이네 집 가서 봐도 그 문이 그 쪽으로 되어있어 빤히 보여 지금도 쌍둥이 집이 있지만 옛날 집에 초가집에 개화집이여.

A1: 그 집이 12남매 인데 쌍둥이 형제가 두 번 이여.
A3: 난 13남매로 알고 있는 디 열둘이여?

A1: 한 다스 연필 한 다스 하하하하.

A2: 아들만 둘 두 쌍둥이가 있어.

A1: 그리고 또 한 가정은 한 번에 네 쌍둥이가 있는 가정도 있어.

B1: 아까 ‘뒤지봉’ 말씀해주셨는데요 혹시 명당자리라고 들어보셨는지요?

A2: 명당자리가 인자 마을로 봐서는 쌀뚝이다 쌀 뒤지나 쌀이나 같으니 그 이야기 인데 저 소는 ‘깔봉’이다 저 풀을 바라보고 드러누웠다.

A1: 깔이라는 것은 풀.

● ● ●

B1: 마을에 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2: 이 아래가면 ‘서당골’이라고 있어 그래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려 여기 골짜기 ‘서당골’ ‘자음골’ ‘끝치담골’ ‘암골’ ‘가는골’ ‘뱃골’ ‘참나무골’ ‘큰골’ ‘작은골’

B1: 이런 마을 지명에 유래에 대해서 아시는 것 있으신지요

A2: 그런 건 몰라.

A3: 마을로 전설로 내려오는 것이지 뭐.

B1: 마을에서 나쁜 징조를 암시하는 것이 있었나요?

A3: 그전에 하는 소리가 저- ‘문드름제’ 그 거그서 여우가 울면 초상난다고 그런 소리는 들어봤어.

● ● ●

B1: 이 마을에 관련된 옛날이야기 아시는 것이 있으시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A4: 아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무식해서요.

A1: 여그 산 밑에 ‘산제당’이 라는 곳이 있어요 옛날 그 토속 신앙 모시고 그 어른들 있자나요? 정화수 떠 놓고 내 자식 잘되라고 빌어주고 마을 사람들이 옛날에는 뭐 이런 기독교라든 가 교회 같은 게 사실 나간지가 얼마 안 되었자나요 뭔 일 있으면 다 거기 가서 빌로 떡 찌어 놓고 물 떠 놓고 빌고 그런 ‘산제당’이에요.

B1: 지금도 있나요?

A1: 지금도 있어요.

A3: 지금도 있어요.

B1: 치성을 지냅니까?

A1: 그렇죠.

A3: 이 마을 사람들만 가는 게 아니에요 외지에서 사람도 와요 근디 그분들이 옛날에 ‘산지당’ 하는 분들이 집을 지어 놓고 뭘 모셔 놓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뭐 빌어주고 뭐 이제 점도 쳐주고 그러는 거여 예를 들어서.

B1: 그러면 ‘산지당’에 당골네가 살았다는 말씀이신가요?

A3: 당골네가 살은 것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신끼가 있어 그런 무당이 살았지.

A1: 무당이지 무당.

B1: 그 무당이 무제도 지내고 그랬습니까?

A3: 거기서 그런 것도 했지요 아마 기우제라고 말해서 거그 기우제 지낸다고 하면 우리 어렸을 적에 한창 굉장했었어.

B1: 어떻게 굉장했었나요?

A3: 모르지 우리는 어린 게 들은 것 전설로만 들었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

A4: 기우제는 거그서는 안 하고 동네서 했어요 동네에서 주산에 올라가가지고 한 대표자가 이렇게 불을 놓고 “비 좀 오게 하옵소서” 그렇게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기도 기도도 기도가 무엇인지 몰랐지 옛날에는 그냥 고개만 까딱 하고.

B1: 무엇을 잡아다가 바치고 그러진 않았습니까?

A4: 예-

B3: 주로 절은 어디로 마니 가셨나요?

A1: 그니까 옛날 어떻게 보면 절 대용으로 여 마을 분들은 ‘산제당’을 마니 갔죠 교통도 안 좋고 막 험하자나요 옛날 길들은.

● ● ●

B1: 귀신이야기 들어보신 것 있으신지요?

A4: 옛날에 그 있었어 여기가 번쩍하면 저그가 번쩍하고 그랬는데 그것은 나 열 다섯 살 먹을 때 인 게 잘 몰라요.

B1: 도깨비가 어떻게 했다고요?

A3: 불이 번쩍번쩍 했다고.

A4: 비가 오고 나면 도깨비가 비 올라고 하면요 깜짝 깜짝 해요 여기 쭈-욱 가 또 저그 가서 깜짝 거리고 그러면 비가 오는 구나 생각 했어요 내가 국민학교 한 5학년 때.

● ● ●

A1: 여그 그때 자살한 분이 있는 데 제가 어렸을 때 듣기로는 여기 보고 ‘뒤뜰’이라고 그래 ‘뒤뜰’(마을 모종 뒤편) 근데 이 쪽에 와 보니까 하얀 소복을 입은 사람이 자기를 대리러 왔다고 그러드랴 근데 그 후로 저 위에 거 자살한 자리가 있거든.

B1: 그게 언제 적 일인 가요?

A1: 한 40년 40년도 더 된 거 같네 뭐 코흘리게 어렸을 때니까.

A3: 40년 넘었지.

● ● ●

B1: 옛날에는 몇 가구가 살았었나요?

A2: 옛날에는 많았지요 인구가 80호 이상 되었는데 인구도 한 400명 되었는 디.

A3: 가구 수가 많이 줄었지.

A1: 애들 학교 갈 때 옛날에 왜 ‘애향단장’이라고 해가지고 줄반장 쭈-욱 섰자나요 저기서 여기까지 서면 보이도 안 혀.

B1: 이 주변에 큰 마을이 어떤 마을인가요?

A2: ‘신막’이 크고 우리 동네가 ‘학동’이 크고.

A3: ‘신막’!

B1: 옛날에 다른 마을하고 투전 놀이도 하고 그랬나요?

A1: 정월 대보름날 엄-청 했죠.

A3: 쥐불 쌈 쥐불 쌈 했어 옛날에 이 이게 ‘원수리’로 들어가 가지고 ‘신막’하고 합동하고 쥐불 쌈 하는 데는 굉장했어요 말도 못해요.

A1: 활만 들어가지고 쏘고 불 깡통 같은 것 관솔 같은 것 소나무 소나무 그 있자나요 잘 타는 거 그것만 빼가지고 불 깡통에다 넣고 막- 던져 버리거 적진에다 하하하.

B1: 그때 규모가 얼마나 되었나요?

A3: 아- 상당했어요 하여튼 굉장했어.

● ● ●

B1: ‘사기장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A3: ‘사기장골’이 어디지?

A2: 저기 저 학교(남초등학교) 옆에 문화재로 지정해 가꼬 파고 그러드라고.

A3: 그것 뿐아니라 우리가 생각해도 여 ‘안골’가면 거그 가면 그릇 구운 터가 있어 백기 그릇이라고 거그 가면 그 조각이 겁나 땅을 파면 백기 쪼가리가 겁나.

A2: 옛날에 여그가 큰 마을이었나 벼 기왓장이 지금도 파보면 나와 이 동네가 원래 저 밑에 산 앞에 마을이 있었어 그게 물이 귀하니까 이 동네가 물 따라서 생겼다고 그려.

B1: 그 이야기는 언제 들으셨나요?

A2: 그냥 그전에 옛날에 이 동네가 저- 밑에서부터 그래서 저그 가면 기왓장도 나오고 그래.

B1: 지금 물이 어디에 있나요?

A2: 우리 집 앞에 그 냇갈이 ‘산제당’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에요.

A1: 이 물이 요 밑으로 ‘외동촌’이라고 그러는데 거기를 지나서 ‘금강’으로 흘러요.

A3: ‘원수리’ 일대 물이 전부 ‘금강’으로 빠져나가 말하자면 내가 옛날에 그 배 들와 가지고 항구 그 항구 창고라고....

A2: 여그 ‘배다리’가 있어요 ‘배다리’가 ‘여산’에 옜날에 ‘강경’서 거그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그래요.

● ● ●

A1: 그리고 제가 이것도 참고가 될 런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아까 어르신들 말씀 하셨자나 이 소(牛)전이 있는 장은 엄청 큰 장이라고 ‘여산’에는 소전이 항시 5일장 마다 소전이 별도로 자리가 있었으니까 그러다보니까 저 ‘비봉’ ‘고산’ 분들이 하여튼 시장 치고 큰 시장이었죠 옛날에는 재래시장 치고는 그때는 이 고속도로 밑에 이게 70년대 중반에 이 ‘해방고속도로’가 뚫렸을 거요 그때 내가 저 밑에 동네 살았었는데 이 양반들이 장에 왔다 가면 거기에서 꼭 쉰다고 거리가 멀으니까 한숨씩 낮잠을 주무셔 그러면 아까 요 아저씨 말씀 하셨자나 양잿물을 그 옛날 비료 푸대 누르탱탱 한 거 있어 거기따가 지푸라기를 이렇게 묶어가지고 그놈을 여따 놓고 주무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했냐면 잘 때 곤-하고 인자 단잠을 취하는 거지 그놈을 살짝 빼 가꼬 내가 챙기고 칭구들 끼리 챙기고 거따가 돌멩이를 하나 싸 그놈하고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어서 양잿물이 여름이니까 녹아 가꼬 햇빛이 쬐니까 물이 다 뱄자나 그러면 이런 데 옛날에는 공중변소 ‘한디측간’이라고 그러자나 측간 길거리에 이렇게 하나씩 있자나요 그 인분에다 가따 오줌 똥 같이 섞인 것을 삭 묻히면 그러면 겉보기는 양잿물이자나 그러면 이 양반들이 주무시고 일어나서 뭐 그 잠결에 비몽사몽간에 당신 건 줄 알고 하하하하 그놈 가꼬 가서 얼마나 허탕할 것이여 그런 이야기도 었었어.

B1: 옛날에 소(牛)장이 서면 소 관련된 음식도 많을 텐데요.

A2: 아 지금 순대국이 ‘여산’에서 잘해요 지금도 해요 지금도 이 주변에 ‘여산’ 장날이면 순대국 먹으로가.

B1: 순대국 집이 많았었나요?

A2: 지금도 서 너 집 되 ‘여산’에 그 저 언제 TV에 짜장 나왔자나 그 친구도 잘하는 줄 알고 하하하.

A1: 옛날에 화교들이 1세들이 와가지고 하여튼 엄청 유명한 지금 뭐 60∼70 된 어르신도 여기에서 오면 옛 그 추억 때문에 거기를 간다고 근데 그 사람들이 다 그때 당시 운영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떴고 다른 사람 외부사람이 와서 하는데 하여튼 유명한 짜장면 집이였어요.

A2: 지금은 인자 시장 짜장엔 뭐 눌러 짜는 거 그걸 먹으로 온다니까 ‘장짜장’

B1: 그런데 옛날에는 소 관련된 음식을 먹었다는 말씀이시죠.

A3: 소 소 피 짜서 맨드는 게 맛있었지.

● ● ●

B1: 마을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담이 있나요?

A3: 마을에서는 여 밑에 한약방 하는 양반 요 밑에 살았지 한의사.

A2: 요 아랫동네가 ‘약방마을’이라고 그리고 여그가 명의 였던 모양이여.

A3: 아 유명 했어요 다른 곳에서 와서 지었어요.

B1: 아 기억나세요?

A3: 아 그럼요 약 지으로 왔죠 알죠.

B1: 그 약방이 옛날부터 약방을 대대로 해온 곳입니까?

A3: 그건 모르지.

A2: 지금은 다 없어 졌어요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 동네가 ‘약방마을’인가도 몰라요.

A4: 그래서 ‘약방마을’ 인가 벼.

A2: 그런 가 벼.

B1: 어디에 또 따로 마을이 있습니까?

A2: 아니 요 아랫동네 ‘학동’마을 아랫동네.

A1: 그니까 여기는 ‘학동’ 거기는 ‘메동’인데 전체가 인제 ‘학동’이에요 근데 ‘메동’을 일컬어 ‘약방마을’이라고 했고.

A4: 그런데 내가 들은 것 중에 빠진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여 여기가 인재가 나왔다는 이야기.

● ● ●

B1: 왜 인재가 나왔나요?

A4: 예 그것은요 여기는 “도적이 나와도 대적이 나온다” 그런 터입니다 옛날부터 그게 무신고니 여기서 지금 집집마다요 고시생 없는 집이 없어요 그러니까 중앙청에도 근무하고요 다 하고 있습니다.

● ● ●

A3: 아 여그 ‘연무대’만 해도 ‘논산 훈련소’ 그거 할 적에 ‘지네혈’이라고 해가지고 ‘지네 장군 묘'도 거기 있어요 이 열차가 ’논산 훈련소‘ 앞에 밖에 못 들어 갔어 왜 ’지네혈‘이라고 해서 더 들어가면 안 된다 해가지고 서는.

B1: 그게 ‘논산’ 앞에 있나요?

A3: 그게 ‘연무대 훈련소’ 앞 그 훈련소도 그 열차 길이 더 못 들어갔어요 막 훈련병 실코 들어갈라고 했는데 ‘지네혈’이라서 잘르면 안 된다 여그 문제가 생긴다 해가지고 거그 그렇게 말하더라고 들어서 안 거여 그것도 근디 그 도굴꾼들이 말이여 나도 직접 봤어 그 안에가 뭐 있는 가 구녕을 뚫다 못 뚫고 뚫다 못 뚫고 했는디 막 뚫라고 하면 벼락을 쳤다는 디 나뭇가지가 뿌러져 버렸어 그 ‘지네 장군 묘’를 뜯어 갈라고 그 흔적이 있어 나 거그 살았응 게 알으니까 벼락을 친거여 그 막 ‘지네 장군 묘’를 굴을 뜬 게.

● ● ●

A1: 그리고 저 ‘여수골 장달’ 그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A2: 몰라.

A3: 여수가 뭐 했응게 ‘여수골’ 이라고 했나 벼.

A4: 물이 나오는 것이 ‘여수’냐 물이 많아서 ‘여수’냐.

A1: 물 수자 남을 여자 써서 그 ‘여수’인지 그러시는 것 같은데.

A4: 근데 ‘여수’가 좋은 것도 있어 응? 물이 말이여 흥건하다 물이 많다.

A3: 그럴 수도 있나 모르것네 형님 말씀 들어본 게 저 온천 판다고 여기 왔을 적에 저 밑에서 파다 말고 여기 ‘참나무골’ 거그 와서 이 온천개발 하는 디 들어 갔자나 땅이 들어 갔는 디 물이 너무 솟구쳐 나온 게 긍게 그놈들이 멍청한 놈이여 생수를 팔아 먹어야하는데 온통 온천만 팔려고 지랄 한 거야 막 물이 나온 게 이놈들이 어떻게 할 줄 모른 게 막 시멘트를 막 가따 집어넣은 거여 그 형님 말 들어보니까 그러네.

● ● ●

B1: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을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1: 윤두병 52살.

A2: 김태수 38년생.

A3: 신재옥 36년생.

A4: 김완길 83세.

구술사진

학동마을 김태수,신재옥,김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