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대안문화 연구소 : 익산시 구술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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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읍 해제

1. 함열읍 개괄
조선의 8대 명당이라는 남당산, 두 장수가 서로 돌을 던지며 싸움을 했다는 독산과 흑산, 간지평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함열천 그리고 함열역과 옛 익산군청 건물(현 원광보건대학 제2캠퍼스)을 품고 있는 함열은 고대와 근대를 관통하는 고장이다.

<사진 : 함열 돌산>
lead : 석산 개발 전 함열의 돌산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광장이었다.

함열의 이러한 특징은 전설민담, 민속, 마을유래담 등 구술채록 전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익산시사』‘민속’편에 따르면 독산과 흑산에는 각각 힘이 좋은 장수가 살았다. 두 장수는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그 중 흑산장수가 착하고 용맹스러웠다. 이를 흐뭇하게 생각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니, 이 선녀를 차지하기 위해 두 장수가 서로에게 흙과 돌을 던졌다는 민담이다. 그런데 구술채록에 따르면 불과 수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가위 이튿날 함열의 청춘 남녀들이 독산에서 공개구혼을 하였다고 전해진다.(방교마을) 뿐만 아니다. 함열에는 두레쌈이라는 민속이 있는데, 이는 익산 전역에서 찾을 수 있는 기세배(旗歲拜)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기세배(旗歲拜)가 서로의 마을 기(旗)에 서로 세배(歲拜)를 하며 마을간의 화합과 유대를 강화하였다면, 두레쌈은 두 마을이 서로 마주보고 어느 마을이 논일을 빨리 끝내는지 내기하는 민속이다. 두렛쌈은 마을간의 유대와 화합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에 많은 작업량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농경사회의 민속인 것이다.

<사진 : 함열역 전경>
lead : 함열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함열역.

함열의 근대 모습도 구술채록 조사에서 많이 포착되었다. 대표적으로 철도와 익산군청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함열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함열역, 익산군청 함께 하였다는 구술채록이다. 함열역이 쇠퇴하고 익산군청이 이전함에 따라 함열 지역의 발전이 멈췄다는 증언이다. 이러한 내용의 구술채록은 역전동마을, 정자마을, 상시(상)마을 등에서 조사할 수 있었다.
함열의 전설민담은 독산과 흑산에 관한 민담, ‘풍수-혈명(穴名), 집큼이’와 같이 발복(發福)과 관련된 민담 그리고 ‘도깨비, 여우, 혼불’ 등의 요물(妖物)과 관련된 민담이 구술채록되었다.
함열의 민속은 ‘두렛쌈, 술멕이, 씨름, 대보름, 달짚태우기’ 등과 같이 전통 농경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속과 ‘물 맞기, 맷굿, 무제ㆍ산제’와 같은 발복(發福)민속을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마을 지명 유래담은 매교마을, 소지마을, 역전동마을, 와야마을 등에서는 새로운 마을 지명 유래담을 밝혀낼 수 있었다.
함열은 익산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전설민담과 민속 등을 채록 할 수 있었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함열이 고대와 근대를 관통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2. 채록 요지
1) 마을 지명 유래담
이번 구술사 조사에서 새로운 마을 유래담을 밝혀낸 마을은 소지마을, 매교마을, 역전동마을, 와야마을이다. 소지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소지마을은 용지-대지-소지마을이 합쳐져 소지마을이라고 불렸다 한다. 그런데 용지마을은 용의 혈(穴)을 닮았다 하고, 소지마을은 소의 혈(穴)을 닮았다 한다. 이와 같은 마을 혈(穴)에 대한 구술채록은 채록 내내 이어졌다. 특히 철도를 개설하며 용의 목에 해당하는 혈(穴)을 끊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혈(穴)에서 용의 피와 같은 황토물이 흘러 나왔다는 구술채록을 하였다. 이와 같이 소지마을에서 용이나 뱀, 두꺼비와 같은 혈(穴)과 관련한 이야기를 조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지-대지-소지마을의 가운데에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나무로 각 마을의 경계를 삼았다고 구술채록 하였다. 와야마을은 기와(蓋瓦)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와야마을의 유래담은 기와(蓋瓦)를 굽던 마을이라서 와야마을이라는 설과 마을의 생김새가 기와(蓋瓦)와 닮았다 하여 와야 마을이라는 설이다.
함열의 마을 지명 유래담은 크게 지형ㆍ지물과 전설ㆍ풍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지형ㆍ지물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마을 지명 유래담은 방교마을, 동지마을, 부촌마을, 석치마을, 와야마을, 장등마을이 있다. 이 마을들은 돌, 물, 산과 같은 지형ㆍ지물과 마을 지명 유래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방교마을의 옛 지명은 방아다리였다. 물레방아에 쓰이는 돌이 있었다고 해서 방아다리라고 한다. 부촌마을의 옛지명은 정동(井洞)이다. 정동(井洞)이라는 마을 지명유래는 물이 마르지 않아 흉년이 없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석치마을은 돌고개라고 불렸는데, 마을 입구에 높은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돌고개→석치(石峙)로 변형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와야마을은 마을 지명유래가 기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장등마을은 길게 산등성이가 진 곳이라는 마을 지명유래를 갖고 있다.
전설과 풍수를 마을 지명유래로 갖고 있는 마을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소지마을과 두라마을이다. 두라마을이다. 두라마을은 샘골이라는 옛 이름을 갖고 있다. 샘골을 한자로 용운(龍雲)이라고 하는데, 용이 승천한 못이 있다고 하여 용운(龍雲)이라고 불렸다 한다. 소지는 마을 유래담이 풍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소지마을은 원래 세 개의 마을, 용왕-대지-소지마을이 ‘소지마을’로 통합된 경우이다. 그런데 용왕의 경우 용의 혈(穴), 소지는 소의 혈(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 혈(穴)의 중심에는 은행나무가 있어서, 세 마을의 경계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추가 : 소지마을 은행나무
소지마을의 은행나무. 용의 혈(穴)과 소의 혈(穴)의 경계점에 세워진 은행나무는 용왕마을, 대지마을, 소지마을의 경계점이기도 했다.

함열의 마을 유래담 중 눈에 띄는 시장과 관련된 마을지명이다. 금성마을, 상시(상)마을, 역전동마을이 이에 해당된다. 금성마을은 걸망장터라고 불렸는데, 보따리상들이 많이 모여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구술채록 하였으며, 상시(상)마을과 역전동마을은 근대 이후 함열역이 생기며 시장과 마을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 민담
함열의 민담은 정리하자면 독산-흑산민담, 발복(發福)과 관련된 민담 그리고 요물(妖物)과 관련된 민담으로 나눌 수 있다.
『익산시사』민속편에 따르면 독산-흑산 민담은 다음과 같은 서사구조를 띄고 있다. 함열에는 독산과 흑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각 산에는 장수가 살고 있었다. 두 장수는 서로 사이가 좋아 늘 가깝게 지냈다. 그 중 흑산장군은 마음이 착하고 용맹스러워 이를 하늘에서 기특히 여겨 선녀를 내려주었는데, 선녀가 길을 잃고 독산장수에게 찾아갔다. 독산장군은 스스로 선녀에게 흑산장수라 칭하며 선녀를 취했다가 이를 나중에 알게 된 흑산장군이 독산장군에게 대들며 두 장수가 서로에게 흑과 돌을 던지며 싸웠다. 이 싸움으로 인해 독산이 흑산이 되고, 흑산이 독산이 되었다는 서사구조이다. 이 독산-흑산 민담은 함열 전 지역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민담과 관련한 민속이다. 독산-흑산 민담은 민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민담이라 하면 늘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있으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서사구조를 띄고 있다. 그런데 이 민담은 선과 악이라는 대립이 아니라 구혼(求婚)과 관련된 서사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서사구조는 함열 주민들의 민속으로 나타난다. 바로 불과 수 십년 전까지 행해졌던 독산에서의 공개 구혼(求婚)이 그것이다. 독산의 석산개발 전까지 했다는 이 공개 구혼(求婚)민속은 한가위 이튿날 함열의 청춘남녀가 독산에 모여 서로의 짝을 찾았다는 함열의 큰 잔치였다. 함열 방교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독산의 연애바위로 함열 뿐만 아니라 주변 금마, 삼기, 함라의 청춘남녀가 모두 모여 공개 구혼(求婚)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는 독산-흑산 민담이 불과 수 십년 전까지 실제 민속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발복(發福)과 관련된 민담은 대표적으로 풍수-명당 등과 같은 민담이다. 대표적으로 남당산 명당 민담이다. 남당산은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데, 정동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청송 심씨의 산이라고 한다. 그 후 강릉 김씨에게 산이 넘어간 뒤 청송 심씨가 다시 산을 찾을 때 묘를 관리하던 사람이 강릉 김씨의 묘를 밝히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남당산에 있는 두 개의 묘 중 어느 쪽이 심씨의 묘이고 어느 쪽이 김씨의 묘인지 알 수 없다고 구술채록 하였다. 이러한 남당산 관련 민담은 과동마을, 동신마을, 두라마을, 장등마을, 정동마을, 정자마을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명당에 관한 민담으로 소지마을에서 채록한 뱀과 개구리 혈(穴) 민담을 들 수 있다. 소지마을에는 뱀의 혈(穴)과 개구리 혈(穴)을 닮은 지형이 있는데,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형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뱀의 머리 혈(穴) 바위에 묘를 쓴 사람들의 자손은 모두 잘 되었다는 민담이다. 그 밖에 용이 올라갔다는 민담(방교마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심어졌다는 나무민담(장등마을)등을 각 마을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이런 풍수의 기본 사상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사상이다. 더 간단히 이야기하면 발복(發福)사상이라고 압축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발복 사상은 집큼이 민담에서도 나타난다. 집큼이란 집을 지키는 구렁이를 뜻하는데, 이 구렁이가 사람 눈에 띌 경우 그 집에 흉사(凶事)가 생긴다는 민담이다. 특히 집큼이를 죽이거나 내쫒을 경우 그 집(혹은 그 사람)은 구렁이로부터 해코지를 당하며, 집큼이를 발견할 경우 잘 달래주거나 흰 쌀죽 등을 대접해 집큼이를 달래준다는 민담이다. 이러한 민담 역시 길흉(吉凶) 감응(感應)의 사상이며, 결국 발복(發福)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렁이 민담은 동신마을, 상마마을, 와야마을, 하조마을 등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추가 : 남당산 사진
조선의 8대 명당 중 하나라는 남당산.


마지막으로 함열에서 채록된 민담으로는 ‘여우, 도깨비, 귀신’과 같이 요물(妖物)에 대한 민담이다. 대게 여우는 밤 늦게 길을 걷는 남자를 홀리며, 도깨비 역시 늦은 밤에 나타나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요물(妖物)에 관한 민담은 과동마을, 방교마을, 동신마을, 매교마을, 와야마을, 금성마을, 두라마을 등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그 밖에 태목산에 대한 민담과 마을 금기에 대한 민담 등을 함열에서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3) 근대 함열의 모습 - 철도와 옛 익산군청 소재지(所在地)
함열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함열역의 흥망(興亡), 익산군청 소재지(所在地) 시절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사진 : 원광보건대 제2캠퍼스>
lead : 함열은 한때 익산 군청 소재지로서 익산 발전을 주도하던 지역이었다.

함열역 바로 앞 역전동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함열역에 정차하는 기차가 많았던 시절에는 주변 웅포, 성당, 망성의 주민들이 모두 함열역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열의 시장은 주변의 어떤 시장보다 더 활기찼다고 구술채록 하였다. 특히 익산군청 소재지 시절 함열은 함열역의 부흥과 더불어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시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1940년대 함열에는 병원이 세 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그 당시 함열이 얼마나 번창했는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이러한 철도와 옛 익산군청 소재지(所在地)에 관한 구술채록은 정자마을, 상시(상)마을에서 구술 채록 할 수 있었다.
철도 개설에 대한 구술채록도 눈에 띈다. 구술채록에 따르면 함열은 함라보다 작은 동네였다. 특히 함라엔 향교가 있어, 전통마을로서 위상을 높여준다. 그러나 막상 기차는 함라가 아닌 함열을 관통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과동마을, 금성마을, 동지마을, 두라마을, 부촌마을, 상시(상)마을, 석치마을, 용왕마을, 하시마을 등에서 관련 이야기를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이들 마을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함라는 부자와 양반들이 많이 살았는데, 기차가 함라를 관통하면 마을이 시끄럽고 부정을 탄다고 해서 함열로 기차 노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열로 기차 노선이 바뀌며, 함라보다 함열이 더 잘사는 동네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4) 민속
구술채록을 통해 살펴본 함열의 민속은 전통 농경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속과 발복(發福)민속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전통 농경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속은 ‘두렛쌈, 술멕이, 씨름, 대보름. 달짚태우기’ 등이다.
우선 두렛쌈은 익산 전역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기세배(旗歲拜)와 다른 형태이다. 금마를 중심으로 왕궁, 여산, 왕궁, 춘포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기세배(旗歲拜)는 백중(음력 7월 15일) 혹은 칠석(음력 7월 7일)에 각 마을을 대표하는 깃대끼리 서로 세배를 하며 마을간의 유대와 화합을 강조하는 민속이다. 함열의 두렛쌈은 넓은 논의 양 끝에 두 마을의 주민들이 서로 마주보고 논일을 한다. 그리고 그 논일을 어느 마을이 빨리 끝내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민속놀이다. 이러한 두렛쌈은 기세배(旗歲拜)와 마찬가지로 마을간의 유대와 화합을 강조 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에 많은 작업량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함열의 독특한 민속이라고 할 수 있다. 술멕이 역시 백중(음력 7월 15일)이나 칠석(음력 7월 7일)에 우물청소와 같은 마을청소를 하고, 마을 잔치를 행하였다. 이러한 두렛쌈과 술멕이에 대한 구술채록은 정자마을과 용왕마을 등에서 채록 할 수 있었다. 그 밖에 금성마을과 두라마을 등에서 기우제와 같이 농경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속을 채록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두라마을에서는 강이 마르면 다리 밑에 시장이 서는 것으로 대처했다고 한다. 두라마을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기우제였던 샘이다.
발복(發福)민속도 함열 곳곳에서 나타난다. 우선 멀뫼마을 같은 경우 할미바위라는 곳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구술채록 할 수 있었다. 과동마을에서는 독산의 장수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임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정자마을에서는 아들이 없는 집의 남자가 우물청소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민담이 전해지고 있다.

3. 시사점
함열은 고대와 근대를 관통하는 고장이다. 가까이 근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함열역은 함열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함께 했으며, 곳곳에 남아 있는 농경문화와 다송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은 함열이 고대와 근대를 아우르는 고장임을 증명한다. 또한 함열의 독산-흑산민담은 단순히 민담의 차원을 뛰어넘어, 불과 수 십년전까지 공개 구혼(求婚)의 전통을 이어주었다. 또한 익산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두렛쌈이라는 민속은 함열이 절정의 농경문화를 꽃피운 고장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준다.
발복(發福)과 관련된 민담과 민속은 함열 전 지역에서 구술채록이 가능했다. 특히 각종 혈명(穴名)이 마을마다 한 개 이상씩 존재했으며, 집큼이 민담 등과 아들을 낳기 위해 우물청소를 했다는 민속은 함열의 발복(發福)민담, 발복(發福)민속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민담과 민속 그리고 함열역과 옛 익산군청 소재지였던 함열은 고대와 근대를 관통하는 지역이라는 것이 이번 구술사를 통해 채록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