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원두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원두마을
구술자 서병선(1915)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구술일시 2012-09-22
비고 면담장소 : 여산면 두여리 원두마을 서병선 어르신 댁
면담시간 : 2012년 9월 22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원두(元斗, 두내미, 갱이)․물방아거리 : ‘원두’는 ‘원 두여’의 뜻. ‘두여’의 본 이름은 ‘두내미’인데 그것을 한문자로 ‘斗余(余=남)’로 표기한 것.‘갱이’는 여산천이 동리 머리로 흐름으로 ‘강’에 접미사 ‘이’를 붙인 것. ‘물방아거리’에는 물방아가 있었다.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굴바위 : 굴을 따던 바위라 해서 굴바위이다. 예전에는 굴바위가 바다였다고 함.
- 들말 : 수은마을의 옛 이름이다. 예전에는 들 한가운데 있어 들말이라 불렀다.
- 갑옷터 : 옛날에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져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한다. 갑옷을 묻어 갑옷터인지는 알 수 없다.


2) 전설 및 민담 :
- 수은마을 이사한 이야기 : 들말 앞으로 하천이 있었다. 상류에서 토사가 내려와 냇갈 바닥에 쌓이므로 수심이 낮아져 하천이 자주 범람했다. 그런 까닭에 들에 있던 마을을 지금의 위치로 이주하였다.

구술채록

서병선. 1915년.

B 이동혁.

● ● ●

B : 이 마을을 뭐라고 부릅니까?

A : 원두.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 원두.

B : 왜 여기를 원두라고 부릅니까?

A : 그전이는 여그가 배가 왔다갔다 했어. 그렇게 강이라고 해서 원래는 강리. 강에 이렇게 배가 왔다갔다 허는디 인자 수백 년 토사가 미어서 들판이 되얐어. 그래서 여기가 부락이 돼서 강리라고 이름을 지었었어. 그른디 인자 시방은 원두라고 시청에서 지었지.

B : 그럼 원래는 여기가 강리였습니까?

A : 응. 갱이. 그리서 그전이는 사실은 배가, 저 여산이 배다리여. 요 밑이 모퉁이 가먼 굴바우라고 바우가 이렇게 큰 놈이 있는디 구녁(구멍)이 뚫어졌어. 그것은 굴 따서 굴바우여. 긍게 배가 저 산 밑이까지 왔다갔다 헌 거여 이게. 몇 백 년 전에, 몇 천 년 전에. 그리서 토사가 미어서 이 들판이 됐어. 여기 깊이 파먼은 이런 나무 썩은 것 나와. 긍게 오래된 거여.

● ● ●

B : 수은마을에 물난리가 나서 이사 갔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물난리 나서 이사 간 동네는 저그 수은동이지. 그전이는 들말이라고 그러대. 냇갈이 들말 앞이로 있었어. 있어서 냇독을 쌓는디 냇독 가상에가 모다 집이 있었어. 아래부텀 그 두 동네 있었어. 그놈(냇갈)이 인자 산에서 흙이 내려온 게 인자 미어졌어 냇갈이. 미어진 게 냇속으로 넘네. 긍게 부락이 부지 못헌 게 김수은 면장님이 옮겼어. 김수은 면장님이 시방 같으면 친일파지. 해방된 때 잡혀가서 저 함열 가서 죽었어.

B : 김수은 면장님이 해방되고 나서 바로 죽었습니까?

A : 그렇지.

B : 친일해서 죽은 겁니까?

A : 아녀, 몰라. 그건 몰르지. 그 이유는 몰라.

● ● ●

B : 갑옷터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갑옷터가 요 너머.

B : 왜 갑옷터라고 부릅니까?

A : 갑옷터가 이유가 있지. 어느 땐가 쌈이 나서 아마 쌈을 했던게벼. 양물지간이 선혈이 성천이여. 은진마산, 여산마산, 마산 사인 게 쌈이 나먼 인자 사람 피가 많이 나서 냇갈이 된다고 혀 그전이는. 아마 거기다 갑옷을 묻었나 어쨌나 그 내력은 모르고.

구술사진

원두마을 서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