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금마면 > 누동마을1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금마면 > 누동마을1
구술자 오헌철(1937)남자
구술자 정병갑(1927)남자
구술자 소재칠(1940)남자
구술자 이용배(1936)남자
구술자 이용헌(1938)남자
구술자 이우권(1940)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유래
민담 전설
철도 이야기
민속
구술일시 2012-08-10
비고 면담장소 : 금마 누동마을 남자경로당
면담시간 : 2012년 8월 10일 14시
내용 : 지명유래 및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누동(樓洞)․한정리(寒井里) : 누동에는 전에 청심루(淸心樓)가 있었고, 누각 훈지당(塤篪堂)도 누동에 있었다.
‘한정’은 익산 구지(舊誌)에 “한정은 군 아사(衙舍)의 동편 백보(百步)에 있는데 그 샘물이 겨울에는 다숩고 여름에는 차며 수토(水土)로 생긴 병이 잘 낫는다” 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망실 : 과거 병사들이 망을 보던 자리라고 함. 망실이 있는 골을 진골이라 전해진다.
- 쑥고개 : 신라군과 백제군이 크게 싸운 장소라고 전해진다.
- 물레고 : 보초를 서던 자리. 2층 구조로 되어있으며 관청을 지키는 곳이라고 한다..
- 객사터 : 임금에게 절을 올리던 곳이다.
- 옥담집 : 옥이 있던 자리이다.
- 사정앞 : 활을 쏘던 자리이다. 사정 앞 거리를 사정거리라고 한다.
- 비성거리 : 비석거리라고도 한다. 여러 개의 비석이 서 있던 곳이라 한다.
- 지야골 : 기와를 만들던 장소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 기와집이 만호가 있었다고 한다.
- 용목골 : 용목골 옆에 용시암이라 부르던 샘이 있다.
- 서당골 : 서당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길을 따라 서당골, 황복골, 정자골, 유목징이, 분통골, 아가골로 이어진다.
- 각시샘 : 아가씨가 이 물을 마시면 승천을 한다고 한다. 또한 남자도 이 물을 마시면 과거에 합격한다고 하는 샘이다. 항복촌에 있는 샘으로 다르게는 승천시암(승천샘)이라고도 부른다.
- 도요지 : 갓점과 황복골 사이에 있으며 기와를 굽던 터라고 한다.
- 갓점 : 독징이라고도 불렀다.
- 금마 3대 샘 : 한시암, 뚜껑시암, 용시암을 가리켜 금마 3대 샘이라고 한다.
- 무제봉 : 무제를 지내던 봉우리다.

2) 전설 및 민담 :
- 철도 이야기 : 금마를 거쳐 전주로 지나가려던 기찻길이 양반들의 반대로 놓이지 못했다고 한다.
- 절벽에서 투신한 황각동 처녀 : 집안의 반대로 소양곡과 혼인을 올리지 못한 처녀가 소양곡이 과거에 급제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 금마 인석 : 지관이 말하길, 여기에 인석을 세워야 금마에 부자도 나고 자손만대가 복을 받을 수 있다 하여 지금의 인석을 세웠다고 한다.

3) 민속 :
- 기세배 : 정월보름날 열두 마을이 각 마을의 기를 들고 풍장을 치며 어우러져 놀던 민속놀이다.
- 산신제 : 묘를 쓰기 전에 산에다 제사를 드렸다.

구술채록

A1 : 오헌철. 1937년.
A2 : 정병갑. 1927년.
A3 : 소재칠. 1940년.
A4 : 이용배. 1936년.
A5 : 이용헌. 1938년.
A6 : 이우권. 1940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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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내가 어저끼 들은 소린데 미륵산 그 기준성 미륵산에 대한 기준성이 있었는디 나는 기준성만 성만 그렇게 싸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에― 거기에서 망실이라고 혀가지고 그 성을 지키는 그런 그 일종의 말하자먼 그런 그 감시허는 그 집이 있었디야. 감시허는 집. 그게 망실이랴. 말하자면 미륵산 기준성을 지키는 망실. 망실이 우리 금마면은 신용리 독점이라는 디 가서 독점이라는 묘지(?)가 있어 거기. 독점이라는 디가. 거기에 그 우에가 망실이 있는디 지금도 거기에 가서 보면 그 터가 있디야. 터가 있는디 거기가 그 골 이름이 진골이라고 혀가지고 망실 있는 그 골짜기가 진골이랴, 진골. 우리는 못 봤는디 나한티 얘기해준 사람은 그런 것이 거기 있다는 걸 알더라고.

B : 그 분은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으셨대요?

A1 : 그분은 그 밑이서 사는 분이여. 살던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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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내가 널리 박식혀서 널리 알든 못허지만은 우리 금마 여그 거시기가 있어요. 저 용화리 거그가 무신 거시기지, 여산 가는 쑥고개에서 신라 때 신라 군인이 13만명이 여그를 쳐들어왔어. 우리 익산을. 그러니 익산은 대비헐 군인이 하나도 읎고 단 누기냐면 왕건, 신라 때 충신이고 아주 공신인디 그 왕건이 여그를 지키다가 신라군들헌티 쫓겨서 저리 전라남도로 갔으요. 날아가서 여그는 완전히 신라군들이 저그 쑥고개에서 점령을 허고 그때 백제왕 말하자믄 거시기는 저 제일 나중으 왕이, 의자왕이 여그를 같이 싸우다가 힘을 당허질 못헌게 저그 달봉 저그 지리산 달봉 알죠? 달봉으로 피난 갔어. 그래서 그 달봉으 큰 아덜언 전쟁허다가 전사를 허고 달봉은 누가 보호헐 사람이 없어 식구들 몇 허고 달봉이라고 지금도 거그가 성이 있쇼. 거그 인제 임금이 사는 자초(?)가 거그 있고 그래서 익산이 그때 신라 때 그만치 여그서 최후까지 싸운 디가 바로 여그 쑥고개요.

A2 : 아시다시피 저―그 경상도 화랑, 화랑이 여그 쳐들어왔다 그 말이요. 화랑이 쳐들어오는디 쏜살같이 이놈이 들온게 그때 여그 계백장군이 그놈을 막어내고 계백장군이 그 화살 같이 온 화랑을 기냥 쫓아냈어. 아 그랬응게 이놈이 가다가 도로 돌아서 왔네? 아이고 내싸놔야 안 되겄다고 혀서나 그때 죽여번졌어. 죽이고 어떻게 죽였냐먼 기냥 목을 매서 말꼬리 끄터리다가 매서 신라로 보낸게 말은 막 즈 고향으로 도망간게 김유신 장군이 그것을 본게 열불이 나가지고 백제를 멸망시키자. 그래가지고 오만 군을 양성혀가지고 여그를 쳐들어왔쇼. 그때 신라 때 근디 여그는 계백장군이 사만 군대를 양성허고 집이를 떠날 때에 자그네 집이를 잠깐 들린다고 허고 자그 부인을 만나서 나는 이 몸이 다시 살아오지 말지어다. 전부 그놈들허고 끝까지 싸우고 오겄다. 그러는디 아들이 읎고 딸만 둘이요. 그 딸 둘, 부인보고 그 얘기를 혔다는디 저― 신라 가다가 막 밀치락 달치락허고 싸우다가 이짝으는 힘이 약허고 신라에서는 저 중국서 군인을 징용(?) 받아가지고 오만 군을 지원받아서 (×××) 쫓아온 게 여그서 당헐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계백장군도 그냥 섭섭허게 이 세상을 백제를 위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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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 얘기 보담도요 지금 말허자먼 열차가 애당초에는 지금 이 삼북리로 혀서 이렇게 우리 금마랑 경유해서 내려가기로 돼있었다 아녀. 어떻게 해서 그 열차가 저짝으로 돌렸는가 그런 것은 몰라요?

A2 : 그것은 잘 모르겄어.

A1 : 기차가 논산을 거쳐서 강경을 거쳐가지고 말하자믄 금마를 거쳐서 이렇게 전주로 갈라고 헌 그 호남선을 결과적으로 금마에서 높은 양반들이 그전에는 말하자면 여 군 소재지니까 여그가. 여그 여기는 도저히 안 된다 그래갔고 저 뒤에서 돌린 것이여. 용안서.

B : 왜 안 된다고 반대를 했대요?

A1 : 양반주거지역이고 시끄럽고 그런디 여그다가 그게 가서는 안 된다는 걸로 혀갔고. 용안서 저짝으로 지금 돌렸단 말이여. 그런게 금마에서 지금 불과 떨어진 디가 함열허고 금마허고 바로 코앞아녀. 근디 거기서 살짝 돌린 거여, 이짝으로 넘어올 놈을. 그리서 결과적으로 여기가 지금 발전이 안 되고 그때 말하자먼 이리는 갈대밭이었었디야, 갈대밭. 그 당시에 철로가 들어서가지고 거시기 헐 적이 갈대밭이었었디야. 거기까지 이리 그 앞에까지 군산 저 말하자먼 저 물이 들와가지고 바닷물이 들와가지고 거기가 갈대밭이었었디야.

B : 어디까지 물이 들어왔대요?

A1 : 목전포 그 앞에까지.

A3 : 내가 아는 전재로는 다름이 아니라 정부에서 저그 인자 논산으로 혀서 여산으로 혀서 이렇게 쑥고개를 거쳐서 인자 익산, 익산역 있잖여 지금 옛날에 이리. 이리를 거쳐서 군산으로 들어가고 전주로도 가고 그렇게 빤뜻이 낼라고 정부(가) 혔는데 여기 금마사람덜이 아주 오래 전써부터 좀 유명했어. 유명허고 양반만 산다고 혀갔고 여그서 적극적으로 반대를 혔어. 안 된다―. 그래갔고 기차가 그래서 저―짝 서부로 돌은 걸로 난 알고 있는디 인자 모르겄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는가는 몰랐는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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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소양곡에 대한 이야기 (절벽에서 투신한 황각동 처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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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근처 지명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관청이 있던 자리를 뭐라고 불렀다― 뭐 인제 그런 이야기들 혹시 아시는 거 있으시면은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A4 : 금마국민핵교 앞으 가서 물레고가 있었어.

B : 물레고요?

A4 : 거그서는 인자 무슨 일이 생기먼은 거그서 나발을 불어. 나발을 부르면은 그 인자 그 하인들이 나와서 거기 지켜. 물레고가 저 금마국민핵교 앞으 가서 있었는디 그것이 주태선 씨가 뜯어 갔어. 물레고를. 우리 어렸을 때도 있었어, 물레고가. 이층으로 돼 있어가지고 거그서 지키는 디여.

B : 여기서 나팔을 불었다고요?

A4 : 나팔도 불고 거그서 그것이 있지 인자 북을 치던지 허면은, 뭐시 오먼은 북을 쳐. 그러고 저그 가서 금마면사무소 자리에 가서나 거시기가 있어요. 저그 저 임금한티 절 올리는 거 거그 가서 했었디야. 국민핵교 가서나. 국민핵교 땅으 가서 그 면사무소 자리를 기어(?). 객사터지, 객사터.

B : 그러면은 그 방금 말씀하셨던 물레고는 뭐하는 장소였나요?

A4 : 물레고는 쉽게 얘기허자면 관청을 지키는 디여.

B : 관청을 지키는 데요?

A4 : 응. 핵교 자리가, 그전 핵교 자리 앞으라고 그랬었어.

B : 학교 자리 앞에―. 그럼 객사터가 뭐하는 장소였는지 혹시….

A4 : 북쪽으다 대고 절혀. 그전이 거시기들이, 저 여그 골 원이.

A1 : 물러라고 허는 디가, 물러라는 것은 뭐신고니 물러라는 디가 우리가 본 것은 애래층이 있고 우층이 있고 그랬어. 아래층 우층이 있었는데 우층에서 말하자먼 그 앞에가 지금으로 말하자먼 군수나 도지사님의 관사가 있었어, 그 앞에, 집이. 집이 있는디 그 집을 지키는 그런 그 일종의 무슨 거시기 같은 걸로다 그렇게 생각을 해, 지금 우리가, 내가 어려서 본 견해로는. 말하자먼 그 집을, 그 옥담집 옆에 가서 집이 있었잖여, 기와집. 옥담집 들어가는 옆에. 기운 씨가 거시기 저 자기네, 지금 저 배명제 아들이 진 그 옆에 가서 그전에 기와집이 있었잖요.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게 말허자먼 내가 알기로는 익산의 군수님의 사택으로 그렇게 알어, 아는데 그 뒤에 가서 말허자먼 이층으로 그렇게 물러가 있었어. 물러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 집을 감시허는 그런 그 일종의 그 그런 집으로 그렇게 생각을 허고. 그 익산 그 당시에 군청이라는 그 장소는 어디가 있는고니 지금 현재 면사무소 자리, 금마 면사무소 자리 거기가 그전 말허자먼 우리 익준가 뭐 그때 그 군청 자리가 거게 기랴. 지금 말허자먼 옛 고을을 거시기를 허게 되면 시장 전체적으로 시장 허고 그 면사무소 있는 디 거기 허고를 발굴을 해야한디야. 그래서 그 옆에 말허자먼 그 물러 앞에 가서 높은 양반의 집이 있었는데 그 옆에 가서 옥담집이라는, 말허자먼 옥, 옥담집이 있었거든? 긍게 그게 옥담집이라는 건 말그대로 그 옥이라는 그런 거시긴데, 거그가 또 옥담집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왜 위치적으로도 이렇게 보먼은 안 맞는 것도 같으고. 하여튼 간에 그런 거시기가 돼있고. 거기서 말허자먼 옥담집에서 쪼금 더 내려가믄 사정앞이라는 디가 있어. 사정. 사정이라는 디는 말허자먼 활을 쏘는 그런 장소라 그 말이여. 사정앞이 있고 사정거리가 있고. 사정거리에서 활을 쏘는 디는 사정앞이가 활을 쏜다 그런 거시기랴. 또 고 옆에 가서는 비성거리라는 디, 비석거리라는 디가 있었어. 근디 우리가 어렸을 적이 거그가 비석이 하여튼 간에 수십 개가 서 있었어. 그 비석이 무슨 비석인고니 여기에 말허자먼 그런 그 높은 양반들이 왔다가시면 그 양반들 공적으로 해서 비석을 세웠던 그 비석이랴. 근디 그것이 말허자먼 함물져가지고선 싹 떠내려가고 그 지금은 천주교, 우리 금마 천주교가 거그가 들어서 있어요.

A1 : 저짝 서고도리 쪽으로는 지야골이라는 디가 있어갔고 이건 기와를 맨드는 디. 그 밑이 가서 용목골이라는 디가 있었어. 용목골이라는 디는 그 옆에가 용시암이 있어. 용시암이 있는데 용시암 옆 그 옆에가 용목골이여.

B : 그 용시암은 왜 용시암이라고….

A1 : 서동이가 거기 와서 뭐….

A2 : 인제 물이 잘 나고 샘이 좋은게 용샘이라고.

A1 : 용목골이 있고 용시암이 있고 긍게 그 서동이가 공부를 헌 딘가 어찐가는 몰르지만 이 산지당이라는 디가 또 거그가 있어.

B : 산지당이요?

A1 : 산지당은 말허자먼 거기서 무슨 거시기를 혔는가― 뭘 절턴가 어찐가는 잘 몰르겄어. 하여튼간 산지당이여. 그 밑에 와서 인자 방죽거리가 있고. 연꽃이 지금 꽉 차 있는 그 방죽거리. 그 방죽거리 우에 가서 용시암이 있어.

A1 : 그 연방죽이 우리가 거그를 연방죽을 얘기헐 적에는 거그를 갈라믄 건밧동으로 가서, 건밧동이라고 그려, 그 밑이는 또. 건밧동은 지금 여그 이리, 우리가 금마에서, 금마사거리에서 이리를 막 가자면, 가자면 첫 번이 그 주유소 하나 그 있어. 주유소 바로 옆에 거기 보고 건밧동이라고 혀.

B : 거기를 왜 건밧동이라고 하나요?

A1 : 모르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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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경로당이 있는 여기는 무슨 마을인가요?

A1 : 여기는 저 거시기 한샘말. 여그는 한샘말이라는 디여.

A2 : 현재는 누동으로 돼있어.

A1 : 아 누동은 중간 이름이고 그전 이름은 한샘말이여 여그가. 저그 저 쪼금 여그 올라가면 여 유목징이. 여그 교회 있는 디께는.

B : 왜 거기를 유목징이라고 불렀나요?

A1 : 긍게 그 지금 말허자먼 여기 이짝 두레가 저짝 우에로 올라가먼 서당골이라는 디가 있어. 서당골이라는 디는 거기서는 말허자먼 그 학생들 가르쳤는가 어떻게 했는가는 몰라. 서당골인게 하여튼 간에 그전에 무슨 거시기가 있는가…. 그 다음에 가서 황복골이라는 디가 있어. 그 다음에 정자골이라는 디가 있어. 그 다음에 인자 여그 내려와서 여그 유목징이가 있고. 그 넘어가서는 분통골이 있고.

B : 왜 분통골이에요?

A1 : 모르겄어요. 하여튼 간에 옛날 이름은 다 그려. 그러고 인자 그 밑이 가서 분통골 밑이 가서 아가골이 있고.

B : 어디에 각시샘이 있었어요?

A4 : 황복촌 저 우그 가서나 시암이 하나 있는디 그거 시암이 각시시암이라고 허는디 그 시암물을 아가씨가 그 먹으먼 승천헌다고. 과거를 보러 가드래도 남자가 그 물을 먹으믄 과거를 보믄 합격헌다고 해서 그게 황복촌이여 황복촌인디 거그가 그 승천시암이라고도 허고 황복시암 저 거시기라고 썼드라고. 양 씨네 족보는 승천시암이라고 각시시암이 아니고.

B : 양 씨가 어디 양 씨죠?

A4 : 어디 양 씬가 나도 몰라. 거기 양 씨네들이 한 9대 살었어 황복촌이라는 디가 9대를 살었어. 근디 인자 소 씨가 한 2대 살고. 인자 우리 전준 이가가 와서 지금 7대씩 살어요.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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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 아까 얘기허던 그 미륵사지랄지 미륵산 그 절이랄지 이런 관계는 그 우리가 그 내용을 쭉허니 보면은 그 익산에 도요지라고 허는 디가 있어요. 도요지. 기와를 만드는 곳.

B : 도요지가 어디 있었나요?

A5 : 근데 인자 그것이 그 갓점허고 황복골 사이에 그 도요지라고 허는 디가 있어요. 그서 거그를 현지도 가서 보고 그랬는데 옛날에 인자 그런 돌들을 맨들어서 인자 기와 굽던 자리여. 그런디 인자 그 뒤로 이것이 관리가 안 되니까 훼손이 될 거 아니요. 그래서 그 익산 군청에 있을 때 그거를 다 미어버렸어. 그래서 지금 군인들이 사용허고 있는 군용지 그 안에 그것이 들어 있거든요. 그래서 그때도 상당히 많은 돈을 들여가지고….

A1 : 그건 독징이 아니요?

A5 : 응. 긍게 갓점. 근디 지금은 이렇게 다 언덕으로 묻어버렸거든? 지금 묻어있시요. 그때도 그 논란이 많이 있었어. 그거를 왜 묻냐. 놓아두면 훼손이 된다. 그래가지고 인자 논란이 많이 있어가지고….

A5 : 아까 그 저 지야골이라고 허는 디가 있잖아요. 지야골이라고 허는 디가 거그가 기와집이 만호가 있었다 그 얘기여. 그렁게 큰 인자 도시 하나를 이루고 살았다 그런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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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용목골이라는 데는 혹시… 왜 용샘이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A5 : 용샘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저….

A1 : 시암이 세 개가 있어 금마에가. 한시암. 뚜껑시암. 용시암. 세 시암이 있어. 세 시암이 있는디 그게 용시암은 그전에 말허자먼 서동이가 서동이 엄마가 서동이를 나서 거그서 피빨래를 허고 헌 그런 시암이랴.

A5 : 서동이가 하여튼 살면서 먹고 잔 시암이다 해서. 이것도 발굴을 헐라다가 시군 통합되는 바람에 그때 말아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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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여그는 금마지만 현재는. 그 옛날부틈 여그가 익산이여. 그 익산이루 있을 때에 우리 금마에서 마구간이 있어요. 마구간은 무신 마구간이냐면 그때 익산 이 씨 후손이 마구간을 혔어. 어서 혔냐먼 지금 저 다리 옆에서 혔는디 목포 여수 그 먼디서 서울로 벼슬을 허러갈 때 말을 타고 가는디 그것도 군데군데 쉬는 디가 있지 암데서나 쉬도 않여. 말 갔고 왔다고 혀서 밥이라도 맥이야지 긍게 만당 준비를 혀는 디가 여그 익산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익산서 인자 하룻저녁을 자는 사람 이틀을 자는 사람 자고서는 인제 또 떠나. 떠나먼 저 천안이나 인제 그리 갈 때는 여그서 지금 말로 허먼 싸인을 혀줘. 우리 익산서 이 사람들은 며칠간을 쉬었습니다. 그렇게 싸인을 갔고 가야 그짝어서도 그것을 보고 아 익산을 거쳤구나. 익산이 그렇게 좋고 인심 좋고 다 그런디다 그리서 그때 익산이라는 표시가 있어서 마구간조차 익산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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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명절날엔 뭘 하셨나요?

A1 : 명절날은 여기가 지금 말허자먼 에― 중간에 내가 그 책임을 이 분허고 책임을 맡어서 허다가 지금 인자 그만뒀는디 익산기세배라는 그 놀이가 있어. 그 무형문화제. 우리 이 양반하고 나하고 중앙을 몇 번 올라댕기고 그거 혀가지고 기세배 전주관도 했지. 무형문화제 25호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25호로 지정을 받아놨는디 그것은 그 당시 열두 동네가 뫼야가지고 말허자먼 그 모를 심고 난 뒤에 인제 깃심을 메드랴 깃심 매고 두레허고. 두레를 나가지고 깃심 매고 그럴 적이 그 열두 동네 풍장이 같이 뫼야서 막 그냥 두레 깃심 매고 그러고 혀가지고 하루 벌어가지고 말허자먼 칠월칠석날 술멕이 허고 정월보름날 열두 동네 풍장이 기냥 한티 뫼야가지고 말허자먼 어우러져서 놀고 그러는데 그것이 중추적인 역할을 상대라는 말허자먼 대장리라는 그 동네 풍장이 말허자먼 젤 맏형 풍장이여. 맏형 풍장허고 그 풍장을 그 동네를 와가지고 거기서 같이 놀이허고 그맀다는 그 전설은 그것은 내가 직접 관리를 혔던 것이라 잘 어느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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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그전으는 산신이라고 어디든지 뭉쳐가지고 허다못해 뫼 하나만 쓸라도 산신제를 지냈어요. 산신이랑은 그만치 위대를 받었어. 내가 언제도 한번 얘기했지만 우리 여그 호남 수공애기가 어디냐믄 변산이요. 변산이 있기 때문에 호남이 수공애기가 되고 호남서 살기 좋다는 곳이 되야 있어요. 근디 익산의 수공애기는 뭐시냐. 여그서 보믄 산 좋고 물 좋고 다 좋은디 족허니 흘러내렸어. 저― 대장촌허고. 그리서 인석을 그때 여그서 훌륭헌 분 지리학을 잘 아는 분이 기앙 놓아둬서는 안 되겄다 여그다가 인석을 세우자. 그러먼 우리 익산이 부자도 나고 자손도 만대 잘 살고 그런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리가지고 인석을 세워놔서 그 인석은 어느 해 때 어느 날짜라고는 잘 기록이 안 되어 있어요. 그리서 인석 두 개를 혀놓고 그전이는 인석이라먼 겁나게 중요허다 혔는디 지금은 뭐 길이 이리 나고 저리 나고 혀서 별수 없겠지만 인석이 그렇게 우리 금마에서 수공애기가 된 디가 저 인석이다 하는 것을 알으셔야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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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 : 익산에 대해서 저희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어려서 그 들은 얘긴데 미륵산에 기준성이 기자의 41대손 중국의 기자라고 그더라고. 41대손 기준이라는 사람이 쌓았다고 허드라고요. 그런데 인자 저는 말만 들었지 실지는 그 본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이어오는 그런 말인 거 같애요. 긍게 그 기준성 그 주변에는 망실이라고 있어요. 망실을 제가 알죠. 아는데 그 망실은 어른들 말씀에 의허면 성을 싸놓고 망을 보던 데래요. 지금도 그 위치를 알아요 저는. 그러고 인자 그 망실이 있는가 하면 진골이 있고 진골 우에 절터가 있어요. 옛날에 절터가 있어요. 절 이름은 내가 몰르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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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 : 긍게 내가 그전에 그 사자암 절 밑에 있잖아요? 그 동네 내가 원래 살았었는데 비가 안 오면 무제봉이라고 거기 가서 꼭 불을 놓고 허먼 비가 오고 헌다고 그 마을에서 풍물을 치고 올라가갔고 그런 흔적이 있어요. 무제봉이라고 그랬어요 무제봉. 긍게 우제봉인게벼 지금 생각하면.

A1 : 무제 무제봉 있잖여 독징이.

A6 : 아니 긍게 무제봉이 아니라 지금 생각허면 우제봉이여 그게. 비를 내리라는 우제봉이여.

구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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