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황등면 > 화농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황등면 > 화농마을
구술자 심금예(1931)여자
구술자 정점용(1932)남자
구술자 이기철(1932)남자
구술자 황재만(1927)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25
비고 면담장소 : 황등 화농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5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화농(禾農․수롱고지․수렁골) : ‘화(禾)’는 본시 ‘벼 화(禾)’자로 쓰인 것이 아니라 우리 이두에서 말의 나이를 말할 때 일수(一禾), 이수(二禾)와 같이 쓰이는 ‘말나이수’자로 ‘수농’을 기록한 것인데 후대에 ‘禾’를 ‘화’로 읽어 ‘화농’이 되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화농마을 : 옛 지명은 ‘수렁고지.’ 마을 주변 논들이 전부 수렁이어서 붙여진 이름.
- 삿갓제 : 마을 입구 쪽을 ‘삿갓제’라 부름. 지형이 삿갓을 쓴 것처럼 보여 ‘삿갓제’라 불렀다고 함.
- 부마마을 : ‘부마’라는 지명은 ‘붓골’과 ‘마전’에서 한 자씩 따온 것.
- 붓골 : 부자 부 자에 골 곡 자를 써서 ‘붓골’이라고 함. 현재 부자로 사는 마을.
- 마전 : 옛 지명은 ‘삼박골.’ 삼농사를 많이 지었던 곳으로 삼 마 자, 밭 전 자를 써서 ‘마전’이라고 함.
- 삼바래기 : 세 갈래 길이 있어서 ‘삼’ 자를 씀. ‘바래’는 다리의 발을 뜻함.

2) 전설 및 민담 :
- 수렁고지에 얽힌 말들 : 주변 논들이 전부 수렁이었기 때문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었음. 또 농사가 잘 안 됐기 때문에 마을을 부를 때 ‘녹두밭 윗머리’라고 불렀음.
- 삼바래기 이야기 : ‘삼바래기’의 언덕 때문에 과부들이 많다는 민담.
- 조리혈 : 화농마을의 부분명 중에 ‘서뜸’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가리켜 ‘조리혈’이라고 함. 조리로 쌀을 일면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쏟으면 이사를 간다고 함.
- 부자 이야기 : 빈번히 찾아오는 식객들로 골머리를 앓던 부자가 망했다는 민담.
- 도깨비 이야기 : 빗자루에 여자 피가 묻으면 그것이 도깨비로 둔갑을 한다고 함. 또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길을 가다 논에 잔뜩 모여 있던 도깨비들을 발견했는데, 서둘러 도망치려하자 도깨비들이 이를 눈치 채고 불덩이를 던져댔다고 함.

3) 민속 :
- 요왕제 : 음력으로 섣달그믐이 되면 마을 우물에 치성을 드림.
- 성황제 : ‘성황당’에 드리는 제사로 보통 정월 초사흗날에 지냄.
- 가내수공업 : ‘수렁고지’라 불릴 정도로 농사짓기가 힘든 땅이었기 때문에 수공업이 발달. ‘삼베’나 ‘미투리’, ‘가마니’ 등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함.


구술채록

A1 : 심금예(81)-1931년
A2 : 정점용(80)-1932년
A3 : 이기철(80)-1932년
A4 : 황재만(85)-1927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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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남녀 방이 따로 있어 먼저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녹취를 시작함.)

B : 여기를 왜 화농마을이라고 불렀습니까?

A1 : 이게 수렁고지라고도 혀. 수렁고지라고도 허고 화농이라고도 허고.

A2 : 옛날에는 수렁고지라고 혀서 나이 잡순 양반들은 그렇게 말을 허야 알아들어.

B : 수렁고지는 왜 수렁고지입니까?

A2 : 수렁고지가 왜 수렁고지냐먼 저 쇠골에서 여그 드룰라먼(들어오려면) 막 수렁 같으디야. 그래서 마누래 없이는 살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살었다고 허드라고.

B : 수렁고지에서 농사는 잘 됩니까?

A1 : 엣날에는 함물지잖여, 물이 읎어서나 이게 녹두밭 윗머리라고 헙디다.

A2 : 그전이는 여그 중반이다 물 안 잡으먼 농사 못 지어 먹었잖여. 논이 중반이라고 혔는디 거그다 물 안 잡어노먼(놓으면) 농사를 못 지었어.

B : 땅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까?

A2 : 물이 귀헌 게. 우물도 귀혔지. 옛날에는 귀혔어, 물도. 옛날에는 배깥시암 하나 갖고 먹었잖여.

B : 방죽은 없었습니까?

A2 : 부마는 있어. 시방도 있어.

B : 녹두밭 윗머리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A1 : 여그가 그전에 물이 귀혔다 이 말이여. 긍게 나 시집올 때만해도 거그가 녹두밭 윗머리라고 그러드라고. 비가 안 오먼 나락을 못 먹었다 이 말이여. 물 짚은(깊은) 디만 먹고. 긍게 녹두밭 윗머리라고 그랬다고 글더라고. 돈이 없다 이 소리여. 쉽게 말해서 돈이 없다.

B : 농사짓기 힘든 땅을 그렇게(녹두밭 윗머리) 부른 거네요.

A2 : 응. 젤로 움머리 거기는 중반, 중반 밑이는 또 하반이고 그맀어, 그전이. 왜그냐면 이렇게 똘을 막고 물문 달어놓고 물을 여그다 가둬놓는게는 중반, 밑이는 물이 읎고 그맀었어, 여그가. 그리서 하반, 중반 그렇게 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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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삼바래기는 왜 삼바래기입니까?

A2 : 거그가 그전이 겁나게 높았어. 여그는 쑥 들으가고. 근디 새마을 험서 저렇게 깎었어. 그리갔고 거그서 뭐 그전이 전설이 뭐 거그가 그것이 있어갔고 뭐 과부가 많네, 그전이 그래갔고 거그 싹 깎었어. 말허자먼 과부가 많이 생긴다고, 혼자된 사람이 많이 생긴다고 그 질(길)을 깎었다고.

B : 그 삼바래기 때문에 과부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는 누가 했습니까?

A1 : 아는 양반(지관)이 그 얘기를 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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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삿갓제는 왜 삿갓제입니까?

A1 : 여기 점빵 앞이가 삿갓제여.

A2 : 근디 거그가 삿갓 쓴 거 같으다고 삿갓제라고 했다고 헌 것 같여, 그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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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마을 지형이 무슨 사물을 닮았다,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2 : 이 수렁고지 마을이 말허자먼 이렇게 조리형이리야. 조리형이라 저그가 푸는 디가 거그가 잘 산디야. 저짝 서뜸이 말허자먼 조랭이 이렇게 쌀을 일으먼 이렇게 혀갔고 뜨는 디라 거그가 잘 산디야. 긍게 으른들이 그렇게 말허대.

B : 그 조리혈 자리를 지금 뭐라고 부릅니까?

A1 : 수렁고지는 수렁고진디 서뜸이라고 그러지.

A2 : 저 창평도 말허자먼 우리 부락으로 딸렸거든? 저 집 몇 가구 있는 디. 근디 거그는 조랭이로 쌀을 일어가지고 탁 쏟으먼 사람이 나가 쓰고, 안 쏟으먼 안 나가 쓰디야.

A1 : 동네가 쪼그만한 동네가 있는디 이렇게 쌀을 씻어서 일으먼은 쌀이 하나 되잖여. 그럴 적이는 동네 사람이 이렇게 모여서 이사를 온 디야. 그러고 조리 하나 되아서 이렇게 쏟으먼 동네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가고 쪼꼼 몇 사람만 산다 그러드라고.

A2 : 거그가 창평인디 부마마을로 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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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기억나는 민담, 전설 있으십니까?

A1 : 누네 집이 그랬다고 허드만, 부잔디 손님이 왔싼 게 살 수가 없드라네. 하도 그전이는 이렇게 잘 살고 허먼 지나가는 사람도 밥 얻어먹으러 오고 자러두 가고 그맀어. 사랑방이라고 있었거든. 그런디 하도 그렇게 왔싼 게 그 주인아줌마가 중이 온 게 쌀을 많이 퍼다 주고서 어떻게 우리 집이 손님이 좀 들(덜) 오겄냐고 그러는디 긍게 그먼 아주 좋은 수가 있다고. 그런 게 어떻게 좋은 수가 있냐고, 손님이 안 오게 끄름 헐라먼 어떻게 좋은 수가 있냥게 즈 집 옆이를 잔등이를 끊으라고 그러드래. 중이. 이 잔등이를 삽으로 파라고. 배꼽 요만치만 닿게 파라고. 즈 집 옆이 여기 줄기를. 긍게 거그를 이렇게 판 게로 막 피가 주르르니 나오드래요, 거그서. 글더니 양 당장 망해갔고 손님이 하나도 안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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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우물에 치성 드리는 민속은 없었습니까?

A1 : 음력 섣달 그믐날있잖아? 그럴 때는 바가지다가 쌀 조매 담고 또 외악다래끼를 꼬아갔고 그 바가지를 이렇게 삼발래기 쯤매야(묶는다). 쯤매갔고 시암 저그다 넣대요. 우리 친정은 꼭 그러드라고. 우리 친정아버지가 요왕에서 생겼다고. 그리고 동네사람 싹 갖다 뺑 시암 가상에다 이렇게 놓드라고.

A2 : 그전에는 요왕제도 지내고 그랬어.

A1 : 시암이 가서 비는 건 요왕제. 성황당 있지, 성황당. 거그는 또 전부 성황제를 지내야. 대개 정월 초사흘날 많이 지내대.

A2 : 저 방죽으 있는 데 가서도 요왕제 지내고 그러대. 떡히다(해다) 놓고 짚 이렇게 놓고. 그게(짚) 열십자리야. 이게 지푸락 아녀? 그럼 이렇게(열십자로) 놓고 여그다 채려놓는 거여. 우리 자손들 잘 되게 해달라고.

A1 : 요왕제나 성황제나 똑같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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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도깨비 이야기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2 : 그전이 인자 엄마들이 깔고 앉을 것이 없잖아. 엄마들이 그 치루는 것이 있잖여. 인자 그 빗지락을 깔고 앉었으먼은, 엄마들이 깔고 앉어서 불을 때거든. 그러먼 거그가 그 엄마들 치루는 것이 오먼은 인자 (피가) 묻는대. 묻으먼은 그놈이 인자 내쏘먼은(버리면) 그것이 도깨비가 되야갔고 널러 댕기고 그런다고 그랬어. 옛날에 할머니들이 그렇게 얘기를 했어.

A1 : 어떤 할아버지가 그 도깨비불을 잡었디야. 잡어갔고 저 나무에다 꼭꼭 쨈며(묶어) 놨디야. 그랬더니 그 이튿날 가본 게 빗지락이랴.

B : 도깨비한테 돌렸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A1 : 저녁을 자기네 누님네 집서 얻어먹고 오는디 여그 동련이라고 허는 디가 있거든. 근디 혼자 캄캄허니 오는디 막 뺑 논 옆이가 앉었더라네. 그리서 막 캄캄허고 무섭기는 헌디 아이고 막 늦게 누가 나락을 뭐더냐 어찌냐고 온 게 도깨비들이 뺑 둘러 앉었더라네. 앉어서 두런두런 허드래요. 긍게 얼매나 무섭겄어. 그리서 막 도망 온 게 막 일어나드니 막 이렇게 던지드래요, 불을. 던진 게 막 백 개도 됐다 이백 개도 됐다 막 던지드라네. 여그가 있어, 들이 여그가. 구석뜰, 저 동련뜰. 논 이름이 구석뜰이여. 동련 옆으 여그 우리 많이 농사짓는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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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어르신 방으로 자리를 옮겨 녹취를 시작.)

B : 여기를 왜 화농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3 : 그른 게 화농마을이라는 얘기는 그게 시방 새로운 이름이거든. 아마 여그서 인자 행정기관에서 말허자먼 그 일제시대 인자 그 사람들이 통치헐 적으 그때 나온 이름일 거여. 그래서 화농이라는 얘기는 새로운 얘기고, 인자 수렁고지가…, 그래서 여그가 인자 수랑이 많았어. 물이 많이 치던 곳이여. 그리서 수렁고지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전해 내려오는 얘기가 있어요.

B : 수렁고지 말고 또 옛날에는 여기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A3 : 여그는 부마, 마전. 부마, 마전이라고 했지.

B : 마전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A3 : 삼이 많이 난다고 마전이여.

B : 그럼 옛날에는 여기서 삼베도 짰습니까?

A3 : 그전에는 있었지.

B : 시장은 어디로 많이 다니셨습니까?

A3 : 시장은 그 말허자먼 황등이지, 황등.

B : 삼베 짜서 시장에 내다팔기도 하셨습니까?

A3 : 그렇죠. 여그가 저 말허자먼 그 짚신, 신을 많이 삼던 고장이여, 원래. 아니, 저 미투리.

B : 미투리가 뭔가요?

A3 : 미투리라고 신는 신이 있어. 말허자먼 짚신 비슷헌 거여. 짚신이나 한가진디 말허자먼 고급, 아주 고급 신이여.

A4 : 재료를 내가 알려줄게, 미투리 삼는. 첫째가 젤로 귀중헌 것이 훌치라고 있어, 훌치. 훌치가 뭐신고니 칡쿠리(칡넝쿨) 알지, 자네들? 먹는 칡쿠리. 껍질을 벗겨. 그러먼 포얀헌 것이 나와요. 그럼 마디마디로 한 자, 삼십 센티 이상 사십 센티까지는 나와. 칡쿠리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이는 인자 저 싸리를 갖다 벗겨. 그러면은 피사리(비사리)라고, 그것 보고 피사리라고 그래. 싸릿대 껍질이여. 그른 게 엮는 거 재료요. 삼, 마. 삼 마 자 마야. 먹는 마가 아니고. 그 다음이는 인자 왕골 있지? 돗자리 짜는 왕골. 그게 다 원료야. 그러고 또 백지, 소태. 소태라는 것은 뒤 이렇게 감는 거. 이쁘게 이렇게 감지. 짚신이고 뭐고 여그를 감어.

B : 제가 잘 들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미투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가 훌치, 비사리, 삼, 왕골, 백지, 소태라는 말씀이시죠?

A4 : 그렇지. 그리고 그 다음이로 수고스러운 것이 무소꼬지(?)라고 그런단 말여. 예쁘게 포얀허라고 쌀 뜬 물에 담갔다 말리지. 골도 있으야 허고. 이거 얘기허자먼 인자 한도 끝도 없어. 그렇게 해갔고 주걱도 있어야 혀. 빤질빤질허게 문질러야 헌 게.

B : 그렇게 만든 미투리를 황등장에 갖다 많이 파셨다―.

A3 : 그렇지. 그른 게 여그 말고서도 충청도까지 그 신을 가지고 갔어. 팔러. 말허자먼 그 배로. 그때는 금강인 게 길이 없응게, 도로가 안 났응게 배로 건너가서 각개장이라는 디 가서 그 신을 팔었어.

B : 그럼 이 마을은 주업이 농사가 아니라 수공업이었습니까?

A3 : 그렇지. 그러고 가마니. 지푸락으로 짜는 가마니틀이 있어. 가마니를 주로 짰지. 가마니를 많이 짜던 동네야. 그리서 여그가 (수공업이) 주업이여. 그러고 특히나 여그가 말허자먼 물이 많이 찌던 고장이여. 함물이 많이 졌어. 함물이 많이 져서 더 먹고 살기가 힘들은 게 그런 일을 더 많이 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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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옛날에 이 마을을 부르던 지명과 그 유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A3 : 이쪽 남쪽 동네, 지금 현재 붓골은 부자로 살어서 붓골이여. 부자 부 자, 골 곡 자, 붓골. 그러고 저쪽을, 옛날 조선시대만 해도 저쪽을 삼박골이라는 디는 삼농사를 많이 지어서 삼밭이여. 삼 마 자, 밭 전 자, 마전. 그리서 외정시대에 합병 이후로 합쳐서 말이여 부마라고 그맀어, 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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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삼바래기는 왜 삼바래기입니까?

A3 : 삼바래기는 세 갈래 길이 있어, 거그가.

B : 길이 세 갈래라서 거기를 삼바래기라고 부른 겁니까?

A3 : 그렇지. 그리서 삼바래기라고.

B : 세 갈래라서 삼인 것은 알겠는데, 바래는 어째서 바래일까요?

A3 : 그전에 아버지 말씀 들어보먼은 발이래, 발. 세 발이 있디야. 여그 앞말이라고 허드끼 거그는 발이 셋이라 삼바래기라고 했디야.

구술사진




우측 이기철


좌측부터 심금예


좌측에서 2번째 정점용


황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