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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황등면 > 도촌마을

구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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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황등면 > 도촌마을
구술자 임기호(1932)남자
구술자 최영상(1948)남자
구술자 김옥정(1948)남자
구술자 도촌마을 주민 1()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구술일시 2013-02-25
비고 면담장소 : 황등 도촌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5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도촌마을 주민 1명은 성명과 생년을 밝히지 않았음
키워드  

문헌내용

도촌(島村․섬말) : 지형이 섬처럼 솟아 있으므로 생긴 이름. 특히 예전에는 주위의 지대가 낮아 실제 섬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섬말 : 예전에 마을이 섬이었다고 함.
- 성내마을 : 성 안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 삿갓재 : ‘화농마을’을 부르던 명칭, 삿갓의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명당지 : 마을주변에 있는 명당자리 ‘전준이씨’가 묘를 썼다고 함.
- 와룡 : ‘명당지’의 자리가 용이 누워있는 자리라고 함.
- 혼불 : 사람이 죽기전에 혼불이 나간다고 함.
- 성당면 부곡리 도깨비불 : ‘부곡리’에 ‘오세울’이라는 곳에서 장마가 오기 전에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함.
- 태봉사 불상 : ‘태봉사’의 불상이 눈물을 흘리면 큰 사건이 생긴다고 함.

3) 민속 :
- 황등 비빔밥 : 비빔밥이 유명하긴 했지만 잘 먹지는 않았다고 함.
- 삼겹살 : 80년대 쌀계를 하면서 ‘황등’에서 삽결살을 많이 먹었다고 함.
- 거리제 : 상여가 다리를 건너기 전에 거리제를 지냈다고 함.

4) 철도 :
- 함라 부자와 철도 : 원래 철도가 ‘용안’에서 ‘함라’로 나려고 했었다고 함. 그러나 ‘함라’ 부자의 반대로 ‘황등’으로 철도가 나게 되었다고 함.

구술채록

A1 : 임기호(82)-1932년
A2 : 최영상(66)-1948년
A3 : 김옥정(66)-1948년
A4 : 도촌마을 주민1

B1 : 이호형
B2 : 이동혁
B3 : 박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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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이름이 ‘도촌마을’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나요?

A1 : 응 ‘도촌’인디 섬도 자여 이게 섬 도자, 근게 옛날에는 저 아래까지 저- 거시기 바다 물 마냥 물 잽히고 그랬데. 그래 가꼬 여그가 섬 마을이라고 이렇게 지명이 했었는 가봐.

A2 : 이 지명에 대해서는 인자 돌아가신 양반들, 한 100살 먹은 양반들도 잘 몰라 그 양반들도 우리가 모시고 그랬었는디 그 양반들도 옛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얘기만 들었지 자세한 것은 몰르고. 나도 인자 그- 들은 바대로 하며는 이 회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동네 주변이 말자하면 강이었는 가봐. 저- 쪽 끝에 머리 가서는 배 같은 것을 매고 그랬다고 그러드라고. 그래서 여기가 섬이었다고 그려. 그리고 이 지형 형태가 섬 모양으로 생겼어요. 그리고 이조 시대 뭐 그 ‘유정승’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귀향을 왔다는 가벼. 유씨 정승이 귀향을 와 가꼬, 여그 경로당 위로 동산이 있었어. 근디 그 사람들 유씨들 선조들 묘가 쭈-욱 있었어요. 한 30∼40년 전에 묘를 팠어. 근데 마을이 있었다고 하면 묘를 못 썼지. 그 사람들이 최초로 정착 해 가꼬 선조들 묘를 쓰고, 그 사람들이 살다가 인자 다른 타승들이 와 가꼬 서는 이렇게 마을이 형성되었지.

B3 : 지금도 유씨 성을 가지신 분들이 아직도 살고 계신가요?

A2 : 하나도 안 계셔. 저 앞 동네에서 몇 분 살다가 다 돌아가셨어. 근디 그 양반들도 잘 모를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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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이 근처에 ‘도촌마을’과 관련된 지명이 또 있나요?

A2 : 섬 같이 생겨서 섬마을이라고 했는디. ‘섬말’, ‘섬말’ 인자 그렇게 불렀지.

A1 : 그전에는 ‘섬말’이라고 불렀는디.

A2 : 그러다가 명칭이 ‘도촌’으로 한문으로 바뀌었지. 그런 것만 알고 있지. 뭐 섬이 기었었는가 아니었섰는 가도 모르고. 근디 저 마을 주변에 논들을 파보면, 옛날 바다 였나 천지개벽 되었나 몰라도 토탄이 나와 지금도 나와. 그 나무 귀할 때 토탄들을 파가지고서 나무 땔감으로도 사용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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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옛날에 ‘명당지’라고 하는 곳이 저희 마을하고 한 동네 인데요? 거그가 인자- ‘전준이씨’들이 그 명당이라고 거기에 다가 묘를 많이 썼어.

B3 : 아- 그럼 지금은 뭐라고 부르나요?

A1 : 응 ‘명당지’라고 시방도 그래.

A2 : 우리 부락으로 되어있어 지금.

B3 : 그 ‘명당지’가 무슨 모양을 닮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셨나요?

A2 : 거시기 라고 하드만 ‘와룡’이라고 하드만 용이 누워 있디야.

A1 : 아 용이 누어 있어가지고 ‘와룡’이라 큰 인물이 안 난디야.

A2 : 일본사람들이 거기다가 묘 쓰면 큰-인물 나게 생겼다고 일본사람들이 막 폭파시켜서 맥을 끊었다는 말도 있고. 쇠말뚝을 박았다고도 그러고.

A1 : 지관을 보면 용이 누워있는 형이랴. 아 그리고 옛날에 오래된 망부석이 있었는디. 그게 땅속에 묻혔나 어쨋나도 모르고.

B1 : 어떤 것을 망부석이라고 하셨나요?

A1 : 옛날 이씨들이 세워 놓은 것 인데. 거기가 원채 오래 되니까. 제대로 챙기지도 않고 한 수 백년 된 산소여. 그리고 그 명당이라는 데도 언제부터 내려오는 가도 모르고, 인자 말만 듣고 알지.

A2 : 뭐 기록이 되어있는 것도 없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시방 돌아가신 양반 한 100살 먹은 양반들도 어른들한테 들었다고만 하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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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근처에 또 특이한 지명 들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A4 : 아- 그전에 이조 시대 ‘유정승’이 유배 왔다는 얘기 했어? 그 묘가 여기 있었는데 그 묘를 다 팠어.

A2 : 그 묘도 오래 되었는데, 수 백 년 되었다고 봐야지 마을이 있기 전에 그 사람들이 정착해서 쓴 것 인디. 내가 그 묘를 팔 적에 보며는 참- 그 유골이 좋드라고 수 백 년 됬든디 손구락 발구락 뼈까지 전부 노란 혀. 명당이드라고 참.

B3 : 아 백골이 노랗게 된 것이 좋은 ‘명당지’ 인가요?

A2 : 잔뼈부터 전-부다 있드라고 묘가 한 두 장도 아니고 수 십장 있었는디. 내가 그 묘를 처음부터 파는 걸 다 봤거든.

B1 : 다른 마을 지명에 대해서는 들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A1 : 음- ‘삼바래기’는 저- ‘화농마을’ 쪽-에 있어. 근디 ‘삼바래기’ 동네 이름만 알지 그 유래는 듣덜 못했어.

A2 : ‘성내’라는 마을을 한 번가보세요. ‘성내’라는 디가 지금도 흔적이 조금 있을 것이여. 그 옛날에 거기 마을에 성을 쌓았드라고.

A1 : ‘성안’이라고.

A2 : 그러지 안 내자 인게. 근디 옛날에 거기에 옛날 사람이 성을 쌓은 것이 확실 혀. 사람 자력으로 성을 쌓아가지고 ‘성안’을 맨들었다고.

A1 : 그리고 아까 그 저기 ‘화농마을’ 거기 ‘삿갓재’ 거기 하고.

A2 : ‘삿갓재’는 그 형국이 삿갓 쓴 것 같이 생겨서 ‘삿갓재’라고 별것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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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황등’에서는 무엇이 유명한가요?

A2 : 독이나 유명하지 뭐.

A3 : 그렇지 전국에서 유명했지. ‘황등’ 화강석은 전국에서 젤로 알아주는 데여.

A2 : 그전에는 ‘황등산’에서 독을 떠서 조각하고 그랬는데. 옛날 여그서 ‘황등’에서 주로 ‘방독’ 뭐 그런 걸 많이 이용했지. 근데 서서히 발전하면서 독 뜨는 기술도 발달하고 해서 큰 독도 뜨고 그랬지.

B1 : 해방 전에도 돌 뜨는 사람이 많았습니까?

A1 : 예예- 구들용으로도 뜨고 처음에는 주로 구들용으로 가정에서 필요한 것, 학독도 파고 뭐 처음에는 그런 용으로 쓰다가. 세상이 발전하면서 인자 큰독을 건축용으로 변화된 거지. 벽돌 이런 거.

A4 : 에- 돌로 생계를 많이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돌 작업을 많이 갔거든요. 많이 배우고 생계도 돌로써 많이 연명했다고 볼 수 있어요.

B3 : 아- 그런 기술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이 사셨습니까?

A4 : 예-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이 먹고 안하지.

B1 : 누가 부자 되었다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A1 : 시벙 저- ‘황등’에서 ‘박지건’이라는 사람이 그 석산을 자기 소유로 맨들었다고 혀. 일정 말기에 ‘박지건’이라는 사람이 거기서 자기 소유로 ‘황등산’ 석산을 자기소유로 맨들어 가지고 그 사람의 아들들이 돌을 생산하기 시작 했어. 그래서 그 사람이 ‘황등’에서 부자로 살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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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 ‘황등산’에 대한 전설이나 풍수가들에 대한 민담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1 : 그런 것은 못 듣고.

A2 : 그 옛날에 그 여기 ‘익산’이라고 한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떻게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산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자녀 여기가. ‘황등산’이라든가 ‘함열’이라든가 이 석산에서 많-이 얻어지는 게 많다고, ‘익산’이라고 하는 이름이 잘 붙여졌어 옛날에.

B3 : 옛날에 이 마을 어르신들한테서 들으신 이야기이신가요?

A2 : 그 좀 어른들한테 그런 소리를 들었어.

B1 : 옛날에 ‘황등’ 시장이 많이 컸었나요?

A1 : 컸어, 시골 장으로써는 컸지.

A2 : 우시장도 섰으니까.

A1 :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다- 팔았어. 지금은 ‘익산’ 시내로 시내버스가 다- 시골마다 다니고 ‘북부장’ 같은 곳이 커서 그러는디. ‘황등장’으로 다 다녔지.

B3 : 인근에서는 ‘황등장’말고 또 큰 장이 있었나요?

A1 : 여기 ‘함열’이 있지.

A3 : ‘함열’도 우시장이랑 다 있었지.

A1 : 이 근방에서는 ‘황등장’, ‘함열장’이 제일 컸어.

B1 : 시장에 장보러 가면 맛있는 것도 잡수시고 하시는데 ‘황등장’에서 유명한 음식이 있나요?

A1 : 지금도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비빔밥 같은 건 잘했지.

A2 : 돼지 국밥도 옛날에 많이 팔았지.

B3 : 우시장이 섰다고 하셨는데 소 국밥은요?

A1 : 그건 비싸서 사먹지도 못하고. 돼지 국밥이나 먹었지.

A2 : 그리고 비빔밥을 지금처럼 가게에서 하는 게 아니라 5일장 마다 팔았지.

A3 : 근데 비빔밥도 여간해서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먹지도 못하고.

A2 : 양도 적고 비싸기만 한 게.

B1 : 그럼 누가 주로 비빔밥을 많이 사먹었나요?

A2 : 많이 먹은 사람도 없고 더러 한 번씩 그냥 누가 사주거나 어찌거나 하면 먹고, 내가 사 먹더는 못하고. 근디 그게 그렇게 맛이 있더라고 배고플 때인 게.

A3 : 그리고 80년대 들어서 삼겹살이 ‘황등’에 판쳤어. 그래 가꼬 그때 그 돼지고기가 인기가 끌었어.

B3 : 왜 갑자기 삼겹살이 판을 쳤나요?

A2 : 그때는 쌀계들을 많이 해서.

A1 : 그때만 해도 쌀계를 많이 했었지.

A4 : 왜 쌀계를 많이 했는 고니, 농촌에서는 다 이렇게 빈약 하자나요. 그래 가지고 그게 대게 1∼7까지 많이 하거든요? 그러면 번호 되면 그놈을 타 그래 가꼬 목돈 메어가지고 인자 논사고 밭 사고 애들도 가르치고 그런단 말이여. 근데 쌀계를 할 때 자기가 탈 때 꼭 삼겹살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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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예전에 장터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도깨비 이야기나 귀신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1 :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다 잊어버렸네.

A2 : 옛날에는 그런 얘기 많이 하긴 했지. 뭐 밤에 막 불 같은 것 지나가면 뭐 도깨비불이라고 해싸코 그렇지. 그거 사실인가 아닌가도 잘 모르 것 드라고.

A3 :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람이 죽기 전 며칠 전에 혼불이 나간다고 그런 것은 많이 봤다고 하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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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 혼불이 어떻게 생겼나요?

A3 : 그게 뭐 말은 꼬리가 달리고 지나간다고 하드라고. 하여튼 그 마을에 사람이 죽기 전에 며칠 전에 틀림없이 혼불이 나간다고 그러드라고.

A1 : 뭐 환-하게 나간다고 하드만 뭐 봤어야 할 말이지.

A3 : 그런 유래를 많이 들을 라면 좀 산을 끼고 있는 부락을 다녀야지 ‘웅포’같은데 ‘성당’같은데 내가 고향이 ‘성당’인데 어려서 들은 이야기는 밤에 교통편이 없었자녀? 옛날에는? 그러면 어디 가따 오며는 여우 돌려가지고 밤---새 도록 어디를 쳇바쿠 마냥 돈다고 그런 소리도 들리고. 그런 소리도 있고 아까 말씀하신 그 도깨비 그 불이 막 날이 궂일라고 하면 막 그 ‘성당면 부곡리’라는 디가 있어요. 거기서 보면 들 가운데가 보여요. ‘오세울’이라는 데가 그러면 막 거기가 장마질라면 막 비가 올라고 하면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한다고 어른들이 그런다고 그랬었어. 지금은 그 근방이 다 개발 되서 집짓고 하지만.

B1 : 그 마을 이름이 무엇인가요?

A3 : ‘성당면 두동리 내남마을’이라고 있어.

B3 : 마을에 샘이 있었나요?

A1 : 샘 같은 것은 있었죠. ‘큰샘’이라고만 했지.

B3 : 마을에 샘이 하나만 있었나요?

A1 : 아니 ‘욕골샘’이라고 있어, ‘욕골샘’이라고.

A2 : 아 인자 요-고을이라고 했겠지. 요-고을이라고 하다가 ‘욕골’이라고 했겠지.

A1 : 다른 뭐 특별한 전설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욕골’이라고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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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주변에 방죽이 있나요?

A2 : 방죽 있지, 지금도 두 간데나 있어.

A3 : 인자 일정 때부터 맨들어 졌는데. 그 일본 놈들이 와서 여- 농경지 그 보 거시기를 막아 가지고 맨들었지.

B3 : 그 방죽이름을 뭐라고 불렀나요?

A3 : ‘가랑죽’이라고 그렇게 불렀고, 저기는 ‘떡목골’이라고 불렀지.

A2 : ‘떡목골’은 없어졌지.

A1 : 이것도 자세한 유래는 몰라. 근디 저수지는 다- 일정 때 생긴 것일 거여.

A4 : 아- 그리고 ‘연방죽’에 그 뭐라고 하지 ‘수채’? 그것도 다 없어졌자녀.

A1 : ‘도학순’이라고 ‘수채’라는 것을 많이 나왔는데 그게 일본사람들한테 아주 비싸게 팔렸지. 근데 그게 자연스럽게 없어져 버리드라고.

B3 : ‘수채’가 무엇인가요?

A3 : 연에서 나오는 건데, 그것을 뜯어서 팔았다고 그게 비-쌌다고.

A2 : 오염이 돼서 다 죽어버렸다고 그러드라고.

A4 : 그걸 약해서 먹은 게 아-무 맛도, 못 먹어 못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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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예전에 기찻길이 놓일 때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세요?

A1 : 그 소리를 들어보면 철도 신설할 때 처음에는 저 ‘함라’ 부자들이 많아 있어서 그 쪽으로 철도를 내자. ‘용안’서 ‘함라’쪽으로 맨들어서 갈라고 했는데 ‘함라’부자들이 기차가 시끄럽다고 못 오게 했데 못 오게 해가지고 그것이 ‘황등’으로 이렇게 났디야.

A2 : 정말 설계가 그렇게 났던 모양이에요. ‘함라’에 세 부자들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익산시’ 갑부나 되었을 것이여. 그 사람들이 반대를 해가지고 철로가 저리 났다고 하는데, 동네 들어 오다보면 제실이 있었어. 금년에 헐었는디 그 부자라는 사람 아버지 묘가 지금도 있어. 그 사람들이 망하게 된 것은 말하자면 말쟁이들 말이겠지만. 그 묘 뒤로 무슨 뭐 뱀 같은 구렁이 같은 것이 왔다 갔다 하면 망할 것이다. 그 뒤로 철로가 났다고 하드만. 그래 가지고 망했다고 그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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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주변에 절도 많이 있나요?

A2 : 절도 ‘함라 숭림사’ 있고 없지.

A3 : 요기 ‘삼기 태봉사’ 있지.

B1 : 마을 주민 분들은 주로 어디로 많이 가시나요?

A1 : ‘삼기’로 많이 가지 ‘태봉사’로.

A2 : ‘숭림사’가 제일 전통이 오래됬지. 근데 여기서 가는 사람은 없어.

A3 : 근데 요새 그 절이 텔레비전에 나오드라고 지금. ‘태봉사’절에 그 부처 돌이 눈물을 흘린 디야. 석불에서 물이 흘른디야. 근디 눈물이 흘리면 큰 사람이 죽는데. 그게 나오드라고 텔레비전에서.

A1 : 그 석불을 그대로 놓고서는 그 대웅전을 지었다고 하드만. 만들고 넣은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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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제사를 따로 지내거나 그런 적이 있었나요?

A2 : 그 거리제 지낸다고 옛날에는 사람 돌아가시면 상여로 했자나요? 상여가 나가다 다리에서 거리제 지내고 건너가고 그랬지. 그냥은 안 건너갔지. 그렇게 해야 좋다고 하는데 그게 술 먹을 라고 하는 거여 허허허.

B1 : 오늘 정말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구술사진






김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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