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성당면 > 부곡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성당면 > 부곡마을
구술자 황호석(1944)남자
구술자 조남웅(1943)남자
구술자 김포환(1947)남자
구술자 박영호(1955)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27
비고 면담장소 : 성당 부곡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7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부곡(富谷)․부흥(富興)․안평(良田) : ‘부곡’은 이조 때 도평부곡(桃坪部谷, 桃田) 자리이므로 한문자만 바꾼 것이다. 신라나 고려 때의 부곡은 천민 집단이었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부곡이라는 이름의 한문자를 바꿔 썼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부곡마을 : 원님이 지나가다가 부자가 될 것 같은 모양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고침.
- 안평 : 원래는 안평이라는 곳이었는데 물이 좋지 않아 현재의 부곡으로 마을이 이전됨.
- 유기공장 : 본디 유기그릇을 만들던 마을.

2) 전설 및 민담 :
- 다목의 논 : 일본인 다목의 농장의 농수를 위해 부곡마을 앞을 경지정리 하였음.
- 닭 모랭이 : 닭의 목을 닮은 혈자리.
- 병암산 : 병목처럼 생긴 곳에 있는 산으로 병목처럼 물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함.
- 매봉산 : 매가 날아가는 산이기 때문에 비석을 세우지 않았음.
- 옥논 : 과거에 옥터가 있었던 곳에 있는 논.
- 선비의 정자 : 안평마을 이전에 정자가 하나 있어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함.
- 부곡교회 : 두동교회의 모태가 되는 교회로 100년이 넘었음.
- 당그레산 : 당그레를 닮은 산으로 부곡마을을 밀고 있는 형태라 부곡마을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함.
- 바위 : 교회 옆의 바위가 드러나면 여자들이 바람난다 하여 바위를 감췄었음.
- 뱀산과 두껍산 :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을 것처럼 생겼다고 함.
- 미루나무의 벌 : 정자를 지으려 미루나무를 배었다가, 미루나무를 밴 집의 아들이 죽음.

3) 민속 :
- 시장 : 난포장터로 가장 많이 갔음.
- 거리제 : 과거에 거리제를 지냈다고 함.
- 지신밟기 : 마을 축제의 하나로 농악과 함께 했다고 함.

구술채록

A1 : 황호석(70)-1944년
A2 : 조남웅(71)-1943년
A3 : 김포환(69)-1947년
A4 : 박영호(59)-1955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 ● ●

B2 : 부곡은 예전엔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우리가 어려서부터 듣기는 고을 원님이 이 마을을 지나갈 때 보고서는 저 마을이 아주 부자로 잘 살게 봤던 보였던 모양이지요. 그래가꼬서는 이 동네 이름이 뭐냐 항게 뭐라고 한 거 제가 그걸 잊어버렸어요. 그 원 동네라고 하니까 앞으로는 그 이름을 쓰지 말고 부곡이라 해라. 부자 부자 골 곡자 해라 해서. 부곡이라고 해라 해서는 그 때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허드라고요. 그리고 원래 우리 부락이 여기서부터 돼 있는 게 아니라 안평이라는 디가 있었어요. 근데 안평이 지금 집이 싹 없어지고 들 가운데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다 지금 한 70년 대 한 말경까지 해서 그것이 다 없어졌어. 동네가. 이주 허고 다 올라오고. 그리고 안평보다 여기가 늦게 동네가 됐다는 걸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듣고 있었죠.

B2 : 안평에서 부곡으로의 이주 원인은 무엇입니까?

A1 : 불편허니까 그렇지요 동네가. 저 비가 많이 오고 멋허고 허면은 물도 찌고. 생활하기가 긍게 지금은 공구리라도 깔고 댕기니까 그렇지. 그 전에는 거기가 뻘흙이고 토질 흙이기 때문에 밟고 댕기기도 곤란하고. 그리고 식수가 안좋아가지고. 옛날에 그 처음에 우리 어려서 보면은 그 강물을 떠다가 가라 앉혀가지고서 그 물을 식수로 먹었어요. 주민들이. 그렇게 먹었었는디 오염되서 그런 생각을 못헝게. 거기에 샘을 파보고서도 지하수가 오염되가지고 냄새나가지고 뻘이 따라 나오고. 거기엔 바다 옛날에 바다라서 뻘이 따라나오고 올라오고 해서 물이 흐려서. 냄새나서 못 먹던 자리고.

B3 : 안평은 지금 어디에 있었습니까?

A1 : 여기서 일키로나 가면은 저 뚝 밑에.

B2 : 마을에 뻘이 나왔다는 말은 예전에 강이었거나 바다라는 말일텐데 금강이 넓었습니까?

A1 : 금강이 넓은 것은 아니고요. 그렁게 이 앞에 지금 하천이 오시면서 보셨을 거 아니에요. 고것이 왜정시대 팠다는 거에요. 긍게 우리 어려서 팠는디 거기는 농사져먹던 그 경지정리는 안됐어도 답으로 농사를 져먹던디를 일본서 측량해가지고 동네에 논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요. 보상은 잘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몰라도.

B2 : 그럼 일본인들은 여기에 자기네들 땅이 있어 수로를 만들었던 것입니까?

A1 : 일본이 파논 것은 저짝이 함열 앞에. 여기에 다리 우에 있는 가서 물이 지니까 안지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걸로 알고 있지요. 이 처음 물이 낭산서 미륵산서부터 내려와요. 부곡 앞으로 지나가는 게. 그 미륵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것이 똘이 좁고 하니까 장마 때 홍수져가지고 그렇게 혀가지고서는 안나가지고 침수돼서 못 먹고. 그 전에 그 물이 열로 나갈 때도 똘이 별로 크도 안했다고 허드라고요. 똘이 작았었는데 그것을 확장해서. 그 해가 기미년인가? 그 해 비 안오고 숭년 들었을 적이 그 때 팠다고 하드라고요. 그래서 우리 부곡이 저 산 밑까지 지적도에는 우리 동네에요. 동넨디 그 똘이 여기 파믄서 경지면적도 많이 줄고 논농사도 많이 줄었다는 것이죠.

● ● ●

B2 : 우리 마을의 옛 지명에 대해서 기억 하고 계십니까?

A2 : 이전에? 이 전에 자라밭. 자라밭. 자라밭이였어. 그 땐 여가 동네가 형성이 안 됐고. 저 구석에 산 밑으로 해가지고 동네 마을 몇 개 있고 아주 큰 마을은 저 들녘에 가서 안평이라는 마을이 훨씬 크고. 여그는 빈촌이지 말하자믄. 가난한 사람들만 몇 가구 살았단 소리지. 거가 자라밭이고. 지명이 자라밭이여. 그리고 우리집 근방으로는 닭모랭이라고 닭모가지. 닭 모가지 형이라고 해서 닭모가지형. 동네가 없었어 그기도.

A1 : 인자 전해지는 얘기로는 저 친구가 얘기하는 거로는 저 앞에 앞 산이 평암산 남쪽에 있는 저 산이 거시기거든요. 매봉산. 매봉산이라고 허는디 이 짝 동네쪽이 아니라 저짝애로 강쪽으로 가시다 보믄은 그렇게 낭떨어지가 높든 안해도 있을 거에요. 거기다가 배 끌어다가 배 맸다는 그런 소리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몇 년 전인데 몇 십 년 전인데 매봉산하고 평안산하고 인제 붙어앵긴 밑이에서 우물이 있거든요. 우물이 있었는데 밭을 파보니까 배에 쓰던 판자가 나와가지고서 거가 캐온 사람도 있어요.

B3 : 매봉산 평안산 부곡천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 마을은?

A2 : 병암산. 병암. 병암이여.

A4 : 긍게 이 마을 들어오는 디가 병목이라 그랬어. 병목.

A1 : 거 마을 들어오는 다리 위 놓은 자리 있잖아요. 거기를 기준으로 병목이라고. 함열 뜰 저짝으로는 들이 넓고 넓은디 여기 와서는 좁아가지고 병모가지처럼 좁다고 해가지고 병목이라고 해가지고서는 꼭 거기를 통과를 허야 지나다니고 그랬거든요.

A2 : 병. 병이 왜 이렇게 생겼잖아요 이렇게. 이게 함열쪽이고 여쪽이 금강쪽이야. 그래서 여기서 부수야 물이 나간다는 거야 여리. 긍게 항상 요쪽으로 가게 돼 있어. 근데 인공적으로 일케 한다고 하는데 이게 원래 이렇게 흐르게 나와가지고 저쪽 미륵산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요리 이렇게 가게 돼 있어.

● ● ●

B3 : 재밌는 지형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명당자리는 마을에 있습니까?

A2 : 명당보다도 여가 크게 그런 건 없는데.

A3 : 마을 거시기 XX네가 절이 있었다믄서.

A1 : 절이 있었다는 게 아니고 그 저 옛날에 여기 가서 안평도 존재허기 전에. 그랬는지 안평 있으면서 헌게 아니라 존재허기 전이고만. 그 선비들이 와서 여기다가 정자를 져 놓고서 산말랭이 그 위에 거기서 시도 짓고 놀기도 허고 풍악을 즐겼다고 허는 얘기가 있는디 내막적으로는 것은 잘 몰라도 지금 가서 파 보면은 기왓장이 나와요 거기서. 기와가.

A4 : 시방 그런 것도 있는데 우리 지금 논이 옥논자리가 있거든요? 옥논? 옥논 있는디 거기가 경지정리 나가지고 도자로 밀었는데 옛날 그 부엌 아구지. 그런 것도 도자로 밀어버리니까 그런 게 다 나오는 거여. 그 부엌 아구지니 뭐니. 그 비 모가지 끊어진 것도 갖다 놨는디 없어저버렸어. 그게 옛날에 옥터 옥논이거든.

A1 : 옥사자리에 그 주추가 아니고 뭐여 그게.

A2 : 토매 토매. 토매라고 해.

B2 : 우리 마을에 옥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A1 : 고을이. 고을이 존재했다고 그래요. 무슨 고을인가. 마을이 존재해서 원님이 거기서 살고 거기에서 저 백성 다스리면서 옥에 가둘 수 있는 옥터가 거가 있었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A4 : 그게 옛날에 이름이 안야골이었데. 안야골. 그게 지도가 지금도 안야골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거이 있던디 그게.

B3 : 어느 시대 이야긴지 아십니까?

A4 : 아이 우리야 모르지. 모르는디 으른들 인자. 말 듣고 얘기하는 것이지.

A1 : 긍게 제가 생각할 적에는요 거기에 고을이 있었다고 허는 것은 언제 해가지고 지질적으로 가라앉았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안평고을이 거기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 인자 고을이 없어지고 안평이 생기고. 그런 상황이.

● ● ●

A2 : 그게 우리가 저 그 때는 인구가 적으니까 크게 뭐 사람 사는디도 없고 요 근방이 전부 묘지여 묘지. 그러고 저 아래 가서 아까 얘기하다 싶이 자라밭이라고 하는 디가 마을 밑에 있었대요. 그러고 금강. 금강이 그 때는 저 교통 수단이 전부다 배로 하니까 남원 원님이 이 인자 말 타고 지나가시다가 지나가시다가 군량미가 전부 가니까. 여서 가니까 항로로 가니까 일단은 성당포에서 수집을 해가지고 모아가지고 가는거야. 그런데 여기를 가시다 원님이 지나가시다가 이 마을을 보니까 좀 둥글둥글하니 부자가 될 만한 자리가 되니까 이름을 좀 부락 이름을 지어주는게 부자부자 골곡자를 넣어서. 전에 자라밭인데. 부자란 마을로 해서 부곡을 졌대. 그 분이. 그새부터 인자 좀 사람들 모아지고 어찌고 저찌고 하니까 동네 형성이 되고 잘 살았나봐. 그래서 그 전에 뭔 건물이 있었는가는 모르는데 이 마을이 유기공장이었어. 유기공장. 지금 저 스텡으로 만들어서 수저가 그 수저가 없어졌는디 놋 저 수저만들 던 공장이 있었어. 반상기라 그러나? 식기. 총. 그런 거 만들던 공장이었어. 공장.

A1 : 꽹가리하고 징도 만들고. 그런 걸 이 동네에서 많이 했어요.

B2 : 그럼 그 물건들을 어떻게 파셨습니까?

A2 : 아 그것은 우리 마을 주민들이 가지고 가셔서 성당포? 거기 가서 배를 타시고 저쪽 아마 충청도 서천 근방이나 갔는가 봐. 서천면까지 가가지고 그 근방서 가서 팔고. 또 시장에 나가서 팔고 그렇게 했는가봐. 긍게 여기가 말 하자믄 여기를 경유를 하지. 우리 마을을 어디 갈라믄 배를 탈라면 누구든지 갈라믄 경유를 허는 거여 부곡 마을을. 그래서 인제 지금은 익산시지만 그 때는 함열현 북이면이여. 함열현 북이면. 그게 한 200년 전 일이여.

B3 : 그럼 시장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A2 : 시장은 여기 난포장터에. 장터라고 난포장터.

A1 : 지금 재건하고 있잖아요.

A2 : 거가 왜 장이 되는고니 어선이 들어오니까. 그 때는 뭐 교통수단은 항로니까. 그래가지고 거기가 장이 있어. 우리 어려서만 하더라도 장이 있었어. 70년 전까지?

B3 : 시장이 함열이나 강경도 있을 텐데 왜 난포를 갔습니까?

A2 : 어쩔 수 없이. 가찬 것보다도 거기가 먹는 것만 사게 되니까. 의복 있어 뭣혀 먹는 것만 상게 그 쪽 가는 거여. 해물 살라고.

● ● ●

B2 : 부곡교회가 성당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라 들었습니다.

A2 : 그 유래를 내가 얘기 헐게. 에 우리 교회가 지금 1912년에 왔어. 그 분이 여 선교사가 먼저 오셔가지고 군산 구암역에 인자 도착을 혀가지고 함라를 오신거여 함라까지. 오셔서 함라에서 최상석씨라고 허시는 분인 이사 오면서 이사 오면서 복음을 갖고 온거야. 그래가지고 어 선교사 인자 헌금 했겠지. 그래서 초가집 오칸을 사가지고 저 근방이여. 저 가운데 근방인데 오칸. 사가지고 예배를 드렸더래야. 그렇게 허고 1912년 긍게 100년 넘었어요 지금. 그리고 1917년. 1917년에 두동교회가 여기서 갈립니다. 두동교회가. 그렇게 어렵게 혀다가 그 때 무렵이 지금으로 말하믄 중학교 수준이 되는 것이지 교회 운영허는 선교사 믿는 자가 많으니까. 그래서 인자 애들 공부도 가르치고 그러는디 말하자믄 간이학교여 간이학교. 그렇게 허시다가 교회가 쪼끔씩 발전하다 보니까 최xx씨가 저 만광대라고 있어. 만광대. 그것이 세 번째여. 거기서 집을 짓고 교회를 운영허다가 한 10년 후에 내려와가지고. 96번지 여기 집을 또. 50년도에. 그렇게 짓고 긍게 50년도에 10년이면 40년도에 만광대를 지었는개비여. 선교사가. 그래가지고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다가 다시 내려와가지고 96번지로 내려와가지고 거기서 예배당을 짓고 내내 거기서 드렸지. 그래가지고 거기가 교회가 장로님도 시키고.

● ● ●

B2 : 여기도 물이 많이 짭니까?

A4 : 여기도 물이 짜서 수돗물을 먹어요. 긍게 어른들 말이 안평이라는 동네가 지하수를 먹게 되면은 동네가 망한다고 하드라구요. 그래서 동네가 지금 싹 없어져버렸어.

A2 : 그게 저 75년도에 지하수 개발했어요. 작두샘이라고. 근디 그 때 파 보니까 그것이 상당히 많이도 들어갔는데 백모래가 나와. 백모래가. 그래가지고 물을 못 먹게 되고. 그래가지고 물을. 물이 안 좋으니까. 자꾸 여기서 동네가 열로 오고 경지정리 나고 해서 폐지 되야버렸지. 저기 저 병암산 아래 병청바우가 딱 있는데 거기가 뱃버리를 댔다는 덴디 거기서 옛날에 어른들 말을 들으면 미역도 땄다 그러는 디 여가 바다였단 얘기야. 바다. 긍게 저 하천강 판 것이 기미년 가뭄에 팠다는데 39년도인가. 38년 39년도에 팠는가비여. 근데 그 때 파는데 다 파다 가물었데. 근데 뻘흙이여 전부. 지금도 뻘흙이여. 그러니까 여가 바다였단 것이 확실해.

● ● ●

B2 : 금강변에 대한 기억은 있으십니까?

A4 : 아우 조개도 잡고.

A2 : 그건 알마 안되요. 우리 저 어려서만 해도.

A4 : 그 조개 재첩 그것도 다 잡아다 먹고.

A2 : 이 하천 강이 당초의 하천 강이 아녜요. 저 산 밑으로 해가지고 이 밑으로 산 해가지고 쪼그마한 강이 있었어. 그런데 일본. 일본 저 담옥이라는 사람이 여기 땅을 다 먹었는가봐. 그래서 담옥이가 저 아래 농사를 함열부터 여기까지 아까 그 병모가지를 이 안에 농사를 지을려다 보니까 침수가 들거든? 그래가꼬 이것을 강제로 뺏은거여. 우리나라 사람들 논을. 뺏어가지고 강을 판 거여. 긍게 이것이 39년. 그것 밲에 안돼. 긍게 이걸 딱 파고 나니까 조수가 되는 거 아냐. 금강물이 들어오는 거 아녀. 그래서 여기서 고기를 잡은거야. 고기를 잡고 뱅애도 잡고. 맑은 물에 살잖아 뱅에는. 뱅애도 잡고 이렇게 했어. 그러다 점점점점 이렇게 군산 하구둑 막고서 물이 들락날락 안하니까 물이 썩고 바닷물도 죽고.

● ● ●

B3 : 우리 마을에 미신은 많이 있었습니까?

A2 : 저 삼거리 같은디다 짚 깔고 밥 몇 그릇 엎어서 놓고 나물 놓고 정월 초 사흘 날이나 거기서 놓으면은 거기서 그렇게.

A4 : 거리제도 지내고. 거리제도 옛날에는 많이 지냈지. 지금은.

A2 : 교회가 있으므로써 그것이 점차적으로 그런 것이지.

● ● ●

B3 : 그럼 우리 마을에 전설은 있었습니까?

A2 : 그런 얘기는 있어요. 우리 마을에 저 앞산이 저 당그레산이 있었어. 당그레산. 당그레산이 밀어. 그런 전설이 있어요. 긍게 당그레가 이렇게 밀고 당기고 하잖아요. 당그레. 그게 당그런데 저 앞산에 당그레산이라고 형이 꼭 당그레여. 근데 그것이 우리 동네를 밀었어. 그래서 우리 동네에 부자가 될라 해도 그것 때문에 못된디야. 그러고 저 교회 옆에 보면은 바위가 있어요. 그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나오면 동네 여자들이 바람이 난디야. 바람이 나서 나간대. 긍게 동네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그 바위를 안보이게끔 흙을 늘 쌓는데. 긍게 벗겨지고 그러면 자꾸 쌓는거야.

B3 : 이름은 있었습니까?

A2 : 이름은 없고. 저그 저 저 여기서 보여요. 근데 일케 독이 없으니까 떠가고 캐가고 그랬어. 그래서 부서졌어.

A4 : 아이 그래도 바우는 있어요.

A2 : 근데 그런 걸 섬겼으면 지금까지 있는디 섬기들 안 혀. 그러니까 없어지지.

● ● ●

A1 : 지금 우리 동네가 호수가요 그 전에는 백 한 20호 넘고 그랬는디 지금 현재는 53호. 교회까지 합쳐서 53호밖에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마을이 장수마을이라고 혈까. 장수마을이라고 혈까 75세 이상 되는 노인만 숫자가 37명이에요 현재. 젤 많이 잡순 양반이 100세 할머니 계시고. 그리고 남자가 여자보다 적어서 여자가 25명이고 남자가 12명해서 37명이여요. 75세 이상이. 그리고 지금 40대에는 없어요. 동네에.

● ● ●

B2 : 동물의 모습을 닮은 다른 곳은 또 없습니까?

A1 : 어떻게 보셨는가 몰라도 그 내력은 몰르는디 그 매봉산을 기준으로 해가지고 남쪽으로는 우렁골이라고 하지? 우렁골. 멋 땜에 혔는가는 모르것어요. 이 짝 뒤쪽으로는 가장골? 가장골이라고 혀고 그랬는데 그 의미는 뭣 때문에 글케 했는가 모르것어요. 지금도 누구든지 우렁골이면 어디고 가장골이면 어디라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A2 : 오사동이라고 해서 거 가장골이라는 데가 오는 다섯 오자 모래 사자를 쓰거든? 나도 시방 오사동이 어떻게 해서 오사동인가 모르것어. 가장골이 아니라 오사동이여.

● ● ●

B3 : 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있습니까?

A2 : 여기가요 저 아까 매봉산 얘기했는데 그 매봉산 뒤가 당사라는 데가. 당사. 당사가 뱀을 애기하거든 당사. 당사 앞에 또 뱀 산이라고 있어. 긍게 뱀이 두꺼비허고 쪼끔 연관성이 있는가? 또 두껍산이 거가 있단 말 두껍산. 그래가지고 여기는 그렇게 해서 쭉 내려가면 용꼬리여 용꼬리. 용 머리는 저가 있지. 이 산이 용 머리래요 용 머리. 하천 넘어. 용안이.

B2 : 그러면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으려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까?

A2 : 에.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하지. 당사가 입을 벌리면 쫓고 있대 뱀이. 그래가지고 두꺼비가 버틴다고 나도 들은 얘기여.

A1 : 그 매봉산이다가 매봉이 들은 산이다가는 비석을 세우면은 안된다고 그러드라고. 비석을 못 세운디야. 매가 널러야는디 눌러놓으면 안된다고 비석을 못 세운다고 그러드라고.

● ● ●

B2 : 혹시 나무나 오래된 것을 함부러 하여 벌을 받았단 얘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2 : 긍게 옛날에 우리 앞전 어른들한테 들었어야 하는디 우리 때만 해도 벌써 100년이 넘게 종교가 들어와가지고 미신을 몰라 잘. 그래서 뭐 예를 들어서 당산나무 끊으면 동토가 걸려가지고 그런 이야기도 있긴 있는디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

A1 : 저 거시기는 교회 안나가시는 분들이 나무를 집 안에 있는 나무를 끊을 적이 자기들이 못 끊고 목수가 와서 끊어주면 된다 해가꼬 끊어달라고 해가꼬 섣달 그믐날이면 많이 끊었어요. 저도 몇 집 돌아다니면서 끊어 줬는데 그렇게 미신 지키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A3 : 저기 여기여기 여기 XX네 양반네 그것 끊고.

A2 : 그거 내가 얘기 할라 했는디 동토도 아냐.

B3 : 한번 들려주시죠.

A2 : 바로 옆인데 그게 얘깃거리가 되나. 여기다가 모종을 진다고 마을에서 건립을 해가지고 돈을 맨들었어 쪼매. 맨들자 재료가 있어야 집을 질 거 아냐. 근디 이 보를 큰 놈을 하나로 일케 올려 놔야겠는데 미루 나무 여가 하나 있는 거야. 한 집에. 긍게 그 것을 동네서 인자 다들 나서서 했지 동네 일이니까. 그래서 비긴 볐어. 집 옆에가 있는디. 잘 끊였어. 끊어가지고 그 놈을 들어다가 마당 가상에다 놨는디 그게 동톤가 모르겄어. 그 집 아들이 거기서 어떻게 인자 애기잉게 나무 쭉 내놨으니까 밟고 올라댕겼을 거 아녀. 그러다가 똥해가지고 자빠져가 죽었어. 그게 동토여? 허허허. 그런 일은 있었어. 근디 그 띠 그 집이 신앙생활을 안했어. 그래가지고 좀 말이 많앴어. 근디 거기다가 여그다가 모종을 잘 져놨는디 누가 깨 부신거여. 그건 그대로 놔둬야 하는거여. 왜 그걸 때려 부셔. 그게 다 조각해서 조립해서 응? 꽉 쩔게 해서 해 놓은 것을 부셔.

● ● ●

B3 : 그럼 우리 마을엔 마을 축제는 하셨습니까?

A2 : 옛날에는요 저 농악을 많이들 했어요. 농악을 많이 했어. 저 섣달 그믐날이면 지신밟기라 해가지고 치고 돌아댕기면서 집집마다 돌아댕기면서 마당밟아주고 했어. 그런디 많이 사라졌어.

구술사진



가운데 조남웅



오른쪽부터) 조남웅 황호석 김포화


오른쪽부터) 황호석 김포환.


오른쪽에서 2번째 박영호


오른쪽에서 2번째 박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