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삼기면 > 원촌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삼기면 > 원촌마을
구술자 최병율(1940)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구술일시 2013-03-10
비고 면담장소 : 삼기 원촌마을 최병율씨 개인식당
면담시간 : 2013년 3월 10일 16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원촌(院村, 원이마) : 공판장이 있는 자리가 옛날의 원(院)집인 사교원(蛇橋院)의 터다. ‘원이마(院里馬)’는 ‘원리’에 다시 ‘마을’이 덧붙은 ‘원리말’을 한문자로 표기한 것.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원촌마을 : 옛날에 원이 잠깐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삼기면 : 마을 뒷산에 금맥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상갈마을 : 옛 명칭은 ‘웃치릇’이었다고 함.
- 하갈마을 : 옛 명칭은 ‘아랫치릇’이었다고 함.
- 배산과 허리다리 : ‘배산’까지 물이 찼다고 함. 그러다 ‘허리다리’를 막음으로써 육지가 되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명당자리 이야기 : ‘순천박씨’와 ‘강회최씨’의 명당자리 이야기.
- 구렁이혈 : ‘강회최씨’의 선산
- 제비혈 : ‘순천박씨’의 선산
- 황등산과 삼기면 서두리 : ‘황등산’과 ‘삼기면 서두리’의 전설.

구술채록

A1 : 최병율(74)-1940년

B1 : 이호형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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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에- 이 ‘삼기면’의 역사 내력이 어떻게 되었냐면, 구한말 전에 ‘삼기면’이 아니었고 그 리-면으로 되어있었다고 그러데요. 왜냐면 ‘황등’에 ‘율촌면’이 ‘서두리’까지 원래가 ‘삼기’라는 면에 내력이 뭐 자-세한건 기록에 없어요. ‘삼기면’에 내력이 옛날 구한말 전에, ‘율촌면’, ‘오룡면’ 그저 또 ‘용현면’ 긍게 리가 면으로 되어있었더라고. 그래서 ‘삼기리’가 이제 ‘삼기면’으로 이렇게 되어있는데 그게 자세하지는 않아요. 어째서 ‘삼기면’이 됬냐? 옛-날부터 있던 면이 아니었고, 에- 그렇게 되어있고. 또 두 번째는 뭐냐면 면에서 제-일 부락이 큰 부락이 ‘원서두’라고 해요. ‘서두리’가 5개 마을이 있는데, ‘원서두’는 그전에는 한 80호∼100호 이렇게 있었어요. 지금 거기를 ‘허리다리’라고 하죠? 거기 ‘허리다리’를 일본사람들이, 거기 까지 물이 들어왔었어요. 그걸 막으면서 인제 거그가 지금 저- 거시기가 되었지, 논이 되었지 그것이 한- 120년 전 일 일꺼에요. 옛날에는 ‘치릇’이라고 했는데, 옛날에 ‘아랫치릇’, ‘웃치릇’이었는데 지금은 ‘상갈’, ‘하갈’ 이렇게 되어 있어요. 거기는 ‘상주박씨’들이 집성촌이고 ‘원서두’는 ‘강화최씨’ 집성촌이고 한 80집이 집안이에요. 그리고 거기가 원래 ‘용안’ 고을 원을 지냈던 양반이 한 17대를 살았어요. 그리고 이 ‘순천박씨’, ‘검지마을’에 ‘순천박씨’는 말로는 ‘박팽년’에 후손이라고 그렇게 내려오고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는 못해요. 그러고 ‘원간촌’ 거기는 또 ‘청송심씨’ 이렇게 집성촌으로 되어 있드라고 그러니까 옛날에는 여그가 유배지였던 것 같아요. 이 ‘삼기면’으로 해서 이 근방에가 에- 옛날에 유배지가 아니었나? 난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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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원촌’마을 이름이 왜 ‘원촌’이 되었나요?

A1 : 그 내력은 잘 몰라요. 뭐 얘기는 뭐 원이 지나가다가 머물었다. 한 번 쉬어간 자리다. 이렇게 얘기해서 ‘원촌’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정확한 뭐가 없어요.

B1 : 마을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는 장소가 있나요?

A1 : 에- 거기는 없고 ‘원서두’에는 있지. 뭐 참나무가 많다고 해서 ‘참나무베기’ 그리고 뭐 거기 동네 이름이 쫌 분리가 되어있어요. 근디 그것은 거기 가서 물어보시고. 에- 또 거기 ‘최우락’씨라고 만석꾼이 있었어요. 근데 그분 자손분이 ‘삼기 보통학교’ 설립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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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 ‘삼기면’에서 장이 열리고 그랬나요?

A1 : 없어요. 여기는 장이 없어요. 우리는 주로 ‘솜리장’을 많이 갔지. ‘솜리’가 솜이 많아서 ‘솜리’가 아니고 속에 들어있는 장이다 이 말이야. ‘이리’ 역사가 한 200년도 안 돼요. 거기가 포구였고 이 ‘허리다리’를 막으면서 농경이 이렇게 되어 있고 하기 때문에 거기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B1 : ‘허리다리’는 왜 이름이 ‘허리다리’라고 붙여졌나요?

A1 : 글쎄요. 그 내력은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는데 거그까지 물이 들락날락 했다는 것만 알아요. ‘배산’이라는 것이 바로 거기도 다 앞에가 물 바다였어요. 거져 ‘모현동’ 거그. 거그가 다 물 바다였어. 여그까지 물이 다 들어 왔은 게 ‘허리다리’를 막음으로써 여그가 육지가 되고 그랬지 그전까지는 다 물이였어.

B1 : 그러면 아주 옛날에는 장보러 다닐 때 배를 타고 다니셨겠네요?

A1 : 사실은 ‘허리다리’가 막히기 전에는 어떻게 나갔는지는 잘 몰라요. 근데 ‘여산’쪽으로 많이 다녔어. 왜냐면 거기는 육지니까. 여기는 원래 ‘삼기’라는 기 자는 뭐 치 기자라던가? 터 기라고도 하는데. 말하자면 친다 이거여 옛날에 뭐 까불르자나요. 근데 그것이 왜 그랬냐면 그렇게 먹을 것이 없다. 여그가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가 유배지였을 것이다.

B1 : ‘여산장’가실 때 거쳐는 장소 중에 특이한 지명이 있는 곳이 있나요?

A1 : 근데 ‘여산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니까 잘 안가고 우리 선조들이 다녔고, 우리가 살 때는 이저 거시기를 다녔어요. ‘황등장’을 다녔어요. ‘황등장’을 다녔는데 ‘삼기’하고 ‘황등’하고 지금 현재 경계 되어 있는 게 똘로 되어 있는데. 그 위에가 ‘두름박재’라고 해요. 근데 거기는 ‘황등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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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명당자리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신 것이 있나요?

A1 : 아 거기에 대해서는 여기 ‘지청메’라는 산이 있어. 오룡리 260번지인데, 그 산이 원래는 ‘순천박씨’들 ‘검지’에 사는 ‘순천박씨’들 산이야. 근데 ‘강화최씨’로 시집을 왔어 ‘순천박씨가’ 인제 그때 시집을 와가지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거그다가 저 묘를 쓸라고 땅을 미리 파놓고 이렇게 덮어 놓고 체하를 쳐 놓을 것 아니야? 그러니까 딸이 호로병에다 물을 담어 다 그 묘 자리에다 물을 뿌렸디야. 그러고서는 묘를 쓸라고 하니까 “왜 물 나는 땅에 묘를 쓸라고 하냐?” 그래서 묘를 못 쓰게 했어. 그래 가꼬 묘를 딴 데다 썼디야. 쓰고 서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거기 묘 자리를 줘라 물이 나는 묘 자리를 줘라.” 했디야. 그래 가지고 그 산이 반절은 ‘순천박씨’ 것이고 반절은 ‘강화최씨’꺼야. 그게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이야기야. 근데 그 땅 혈이 ‘구랭이혈’이여 ‘구랭이혈’, 땅이 막 산이 길-어 이렇게, 그렇게 길은데 ‘순천박씨’ 산을 길긴 길어도 그 앞에가 동그랗게 나왔단 말이야? 그게 ‘제비혈’이라고 그래 거기는 근게 구렁이가 제비를 싸고 있으니까 이 제비가 새끼를 낳겠어? 못 낳지. 그래서 ‘순천박씨’들은 손이 좀 귀한 편이야. 그리고 ‘강화최씨’는 손이 많어.

B1 : 그때 묘를 그렇게 써가지고요?

A1 : 어어. 그래서 지금도 16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살았는데. 항상 친하게 진해 근데 어른들이 재미있으라고 그냥 한 얘기지 그거 뭐 그- 그러니까 ‘순천박씨’들이 “아이 ‘강화최씨’들이 우리 산 뺏어갔다”고 하는데. 뭘 뺏어가긴 뭘 뺏어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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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아- 그렇군요.

A1 : 그리고 여그 저 ‘용현리’ 거그가 방죽이 있었어. 방죽이 두 개가 있었는데. 경지 정리를 하고 막으니까. 옛날 중이 지나가더라 이거여. 스님이 지나가면서, 말하자면 옛날에 그 뭐 공양하러 댕긴다고 하지? 그걸 하러 가는데 그걸 메꾸니까. 아이고 이 동네가, 그 동네 보고 ‘아랫방죽’, ‘방죽안’이라고 했어 ‘방죽안’ 동네 이름이 ‘방죽안’이라고 했어.

B1 : 지금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A1 : 지금은 뭐 ‘대제’, ‘소제’ 그냥 이렇게 불르지. 근데 옛날에는 전부 통틀어서 ‘방죽안’이라고 불렀어. 근데 그것을 매립을 하니까 “아이고 젊은 사람들 많이 하것다.” 근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거시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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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혈 자리에 관련된 이야기 중에 또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A1 : 그 제일 하는 얘기가 ‘황등산’이 원래 고구마라는 말이 있어. 바다 위에 고구마가 떠 있단 말이야? ‘황등’ 돌산이 옛날에 ‘삼기면’에서 보면 돌산이야. 그러니까 ‘서두리’가 이 동네가 쥐 혈이래. 근게 이 바다에 물이 있기 때문이 쥐가 가서 고구마를 못 먹는 다 이거여. 근데 ‘황등산’이 돌이 없어지니까 ‘서두리’ 쥐가 굶어죽는다. 그래서 ‘서두리’가 120호 되었던 것이, 근데 지금도 ‘삼기면’에서 호수가 제일 많아 65호 인가? 아무튼 쥐가 굶어 죽어서 호수가 많이 줄었어.

B1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구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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