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중촌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중촌마을
구술자 김석봉(1932)남자
구술자 함경희(1942)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이야기
구술일시 2012-08-23
비고 면담장소 :
면담시간 : 2012년 8월 23일 시 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중촌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대장촌(춘포리)의 중심지에 위치했다 하여 일정 때 이루어진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 춘포면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봉개산: 지금의 춘포산에 옛 명칭이다.
- 대장촌: 넓은 마당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현재의 춘포리이다.

3) 전설 및 민담
- 도깨비 방죽: 물고기를 잡아서 그릇에 넣어 두면 그 물고기들이 다 사라진다고 한다.
- 도깨비 불: 비가 오기전에 철도나 춘포산에 자주 나온다고 한다. 여자 생리혈이 빗자루에 묻으면 그것이 도깨비 불이 된다고 전해진다.
- 구렁이: 집에서 나온 구렁이을 죽여서 집안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여우: 혼자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여자를 태워주면 그 여자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4) 민속
- 우물: 1년에 한번씩 우물 청소를 했다.
- 당산길: 주변에 산이 없어서 당산대신 당산길이 있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원래는 기찻길이 함라에 놓여야 하는데 부자들의 반대로 함열에 놓아졌다고 전해진다.
- 딸촌: 대장촌 역에 여자들이 많이 이용해서 붙은 별명이다.
- 보신탕: 춘포역 주변에 보신탕 음식점이 많았다고 한다.
4. 구술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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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김석봉 (81) 1932년
A2: 함경희 (71) 1942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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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중촌’마을이 왜 ‘중촌’마을이 되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여기가 인자 우리 교회가 설립 된지 111년 되었거든요? 대장교회가?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100년사 책을 만들었거든요 여기에 보시며는 참고 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거에요 여기에 역사를 수집을 하면서 이 지역에 따른.. 원래 이 지역이 왜정시대 이전에는 말하자면 침수 지역이었거든요? '만경강' 하천 유역으로 지금 '만경강'이 제방 뚝을 쌓아가지고 수리시설을 좀 했지요 그 이전에 저기 ‘대하리’저수지 고 마을 댐을 쌓아가지고 내려오면서 뚝을 수축해가지고 인자 그랬는 디, 말을 잘 못 하며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 되었죠 친일적인 이야기 근데 인제 실질적으로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 어르신들 우리 선배들은 거기에 대한 기술이 그쪽에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은 그 사람들이 와서 제방 축조를 하고 수리 시설하고 인제 여기에 간척을 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많은 땅을 정리하고 저그 인제 일본 대표적으로 ‘금촌’하고 ‘새천’ 그 두 일본사람인 디 많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많은 땅을 가지고 여기에 보며는 공판장 거기에 ‘금촌’농장이라고 해가지고 많은 양곡을 수집해가지고 이 사람들이 인제 기차에다 실어 가지고 군산으로 가서 군산에서 인제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그런 지역이었죠.

B2: 마을회관 앞에 일본 고가(古家( 하나 있던데 그게 그 일본인들 집이었나요?

A1: 그렇죠 그 사람들이 살던 집이고 여기가 고가(古家)가 몇 채 있었는 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그 집 하나 한 채 남아 있어가지고 시에서 그 집을 보수해가지고 인제 유지 관리를 하고 또 우리 보며는 전북대학교라든가 다른 대학교 또 학생들이 가끔 와서 탐방하고 일본사람들도 가끔 와요 인제 ‘대장역’이라고 해서 ‘춘포역’이 있는데 요게 아마 이 지역에서 제일로 오래되고 현재 그 건물 자체가 현재 그대로 유지 되어있는 그런 상태.

B2: 그러면 ‘중촌’마을이 왜 ‘중촌’마을이 되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중촌’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인제 가서 보시며는 그 책자가 있겠지마는 원래 여기가 마을의 형성이 드문드문 쭉하니 있었거든요? 있었는데 제방 축조를 하면서 인제 이 아래 가면 ‘신촌’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제가 그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그 신촌이라는 마을은 제방 뚝을 쌓으면서 새로 생긴 동네가 ‘신촌’ 여그는 인제 이 ‘춘포면’ 소재지에 있는 데 가운데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중촌’ 말하자면 여그 위에 앞에는 역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역전’ 인제 그렇게 이름이 되어있고 저 위에 가면 ‘회화’라고 했는데 그 앞에 가면 여기 지금 '만경강' 뚝 안에 그 인제 하천이 있어요 비가 오면 물을 품어내는데 옛날에는 그 뚝 쌓기 전에 그리 배가 들어왔죠 그래서 그 배가 쭉해서 전주까지 군산 앞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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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주변에 산이 있나요?

A1: 이 근방에는 산이 없고 여기서 산이라고 하는 것은 저그 저 해발 한 400∼500미터나 될랑가요? 저기 ‘춘포산’이라고 하나 있어요 ‘춘포산’이라고도 그러고 옛날 이름은 ‘봉개산’이라고 하는 데 ‘봉개’라고 하는 것은 발음상 ‘봉개’고 ‘춘포산’이름이 봄 춘자 개포 자에요 그래서 인제 ‘봉개산’이라고 이야기하죠 그 산이 이 지역에 유일한 산이죠 거기 인제 사람이 옛날부터 돌아가시면 어디 장례 모실 때가 없으니까 공동묘지가 거기 있죠.

A2: 저 일본에서 지은 일본사람들이 지은 집이 여그가 있고..

A1: 근게 여기가 일본 백작이 여기 와서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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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일본사람들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이 살았었나요?

A1: 우리나라 사람들 살았죠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지주고 한국 사람들은 거기서 소작인으로 그리고 한국 사람들 중에서 조금 그런 사람들은 중간에서 인제 관리 해주는 사람들 그렇게 하고 어.. 한국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생산된 것은 공출이라는 이름이로 다 뺏겼죠.

B1: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여기 유래를 보며는 원래 이름을 보면 ‘대장촌’이라고 했거든 이 일대를? ‘춘포면 대장촌리’ 이렇게 되었는데 원래 이 ‘대장촌’이라고 하며는 인제 일본식 이름이거든요 넓은 마당 마을이라고 해서 ‘대장촌리’하면 우리 행정구역상 ‘회화’ ‘중촌’ ‘신촌’ ‘역전’ ‘구담’ ‘신평’ ‘화신’해서 일 곱개 부락인가? 합쳐가지고 ‘대장촌’으로 되었는데 지난번에 우리 행정구역 개편하면서 일본식 이름은 없앤다 해서 ‘춘포리’로 바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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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 샘도 있었나요?

A1: 마을에 샘이 어디가 있었는 고니 여기 보면 ‘새천’농장 안에 공동우물이 있었어요 이 지역 주민들이 새벽에 그 물 지게로 지어다가 먹는 그 물인데 그 물이 이 지역 주민들이 다 먹을 정도로 많이 나왔어요 그리고 이 일대가 간척지로써 물을 지하수를 파며는 지하수에서 철분이 많이 나와요 그 중간에 인제 지하수를 많이 개발을 했거든요? 해가지고 보니까 철분이 많은 게 그것을 걸러 먹기 위해서 말하자면 숯 넣고 모래 넣고 막 이렇게 해서 걸러가지고 아래 물 받아서 그 물 인제 먹고.

B2: 옛날에 우물도 푸고 그랬었나요?

A1: 우물은 인제 1년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하죠 대청소를 하고 여기가 인제 말하자면 이 지역에 평야지대에 뭔 당산이 필요가 있어요 통상적으로 당산 제도가 있자나요 그 지역에 조금 높고 그 무언가 그 지역에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해서 당산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 인제 일본 사람들이 좀 살고 세력가들이 좀 살고 하다 보니까 이 요길 ‘당산길’이라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저 아래에서 저 ‘춘포산’으로 갈라면 요길로 가면 빠른데 요길로 못가고 옆에로 돌아서 가고 그랬죠 그리고 여기가 ‘중촌’이라고 하는 것은 ‘중촌’이라는 하는 곳에 면이 소속되어있고 농협 우체국 것이 행정적인 그러한 중심체가 이 마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름도 ‘중촌’이라고 하지 않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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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춘포에서 유명한 절이 있나요?

A1: 여기서 절은 한 3키로 정도 떨어진 뭐 유명한 절은 아니에요 조그마한 절인데 ‘오산사’라고 해서 역사는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고 원래 그 절은 큰 산에 깊은 산에 인제 들어가 가지고 있는 건데 평야지대라 평야지대 조그만한 저그 뒤에 가서 언덕 같이 있고 뭐 그런 하여튼 오래된 절은 아니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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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이야기나 전설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2: 도깨비랑 많이 있어요.

A1: 도꺠비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저기 저 춘포 초등학교 있죠? 춘포 초등학교에서 철로하고 그 중간에 옛날에 그 ‘도깨비 방죽’이라고 하는 그러한 방죽이 있었거든요? 그 소속된 마을이 ‘신호’마을이에요 ‘용현리 신호’ 근디 거기 아마 최주일씨라고 하는 분은 찾아서 물어보시면 조금 아실거에요 거기가서 물어보면 아마 방죽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실 텐데 아마 도깨비라고 하는 것은 그때 당시에 우리 조상들이 하도 생활이 곤란하다 보니까 먹고 사는 것이 복잡하고 영양적으로라든가 모든 면으로 영적인 면이라든가 약해가지고 그러한 현실이 아니였나 근데 실질적으로 또 거기에 휩쓸려가지고 고생을 하신 분들도 계시거든.

B2: 그러면 혹시 들으신 이야기는 있으신지요?

A1: 인제 그 그런 계통한테 홀려가지고 밤새도록 헤매고 돌아 댕기다 보니까 인제 그 자리이었다든가 그러한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마는 최근에 와서 그런 이야기는 없어져 버렸죠.

A2: 왜요 우리 아버님이 저기 93세에 작고를 하셨는데 고기가 그때는 물고기가 많으니까 물고기를 많이 잡았데요 이런 뚝에서 근디 거기서 고기를 막 잡으면 큰 고기가 많이 잡히니까 잡아서 막 논에다 가따가.. 그릇이 없니까 잡아서 인제 이렇게 놓고 놓고 해서 엄청 잡아 놨는데요 잡아서 그렇게 놨으면 있어야 하자나요 없드레요 하나도 없드레요 물고기 잡은 게.

B1: 왜요?

A2: 도깨비들이 다 가져가서요 그래가지고 여기 도깨비가 많았데요.

B1: 언제 이야기 인가요?

A2: 아버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100년? 120년은 되었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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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귀신이야기 들으신 것도 있으신지요?

A2: 많죠 여기 많았었지요 이 여그 여기가 그전에는 인가가 많이 없었어요 제가 시집 온지 60년 되었는데 저는 예수 믿는 집에서 살다가 예수 안 믿는 집으로 왔어요 왔는데 앞에 이렇게 간다는 데요? 귀신이 사람이 여기 뚝 앞에 뚝 여 저 떡집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인제 가다가 한참 보며는 없어진 데요.

B1: 어떻게 생긴 귀신인데요?

A2: 그 여자도 뵈고 남자도 뵈고 그렇게 많이 뚝에 엄청 많고 비 올 날이면 막 도깨비 불 들이 막 철로 길이 있어요 철로 길 또 ‘봉개산’ 거기에 막 불이 막 열 개도 되고 그게 한 30개 되었다가 마-악 그래서 그거를 어떤 사람이 도깨비가 나타나 가꼬 도깨비하고 싸움을 했데요 그 장승같은 사람하고 싸웠는데 자기가 죽-는 힘을 다해서 막 혁대랑 다 풀러서 나무에다 묶어 놓았데요 그러고 아침에 술 깨고 가보니까 도깨비가 아니고 빗자루더레요 근게 그전에 빗자루를 여자들이 잘 깔고 앉았었거든요 그러면 깔고 앉으면 여자가 좀 몸이 올 때가 있자나요? 그게 빗자리에 묻으면 그게 도깨비불이 된다고 하더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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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무당이 있었나요?

A2: 미신이 엄청 심했어요 점쟁이들이 여기는 전에는 무속들이 많았어요 벌어먹고 살라고 그래서 우리 큰 집에서 우리 장모님 네가 부자인디 저 시집 오니까 점쟁이 넷을 먹여 살리드라고 4일 마다 와요 돌려가면서 그래가지고 막 점쟁이들이 상여랑 갖다놓고 뭐해요 어른들이 많이 좋아하셨죠.

B1: 굿하는 것 직접 보셨는지요?

A2: 굿도 많이 하고 여기 뭐야 우리 큰 집에도 1년에 두 번 세 번 했어요 굿을 왜 많이 하냐면 우리 저 장모님 동생이 전주서 사는 데 타고날 때 조금 운명을 잘못타고 나왔데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시루가 있자나요 그러며는 빨강색 노랑색 색색으로 떡을 해서 거기다 칼을 놓아 칼을 꽂아 놓아요 열두 개를 꽂아 놓고는 인제 거기다가 하루 종일 비는 거에요 그렇게 미신이.... 지금은 살기 좋아요 그래도 다- 운명을 타고 나는지 다 당하고 살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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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러면 무당 말고 다른 미신이 있었나요?

A2: 미신은 인제 교회에 있었고 또 절 다니는 분 있었고 또 천주교인 있고 인자 교인이 젤루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잘 보이던 귀신도 안 보인데요 여기 못하나 못 박았어요 저 못을 박으면 그 식구 중에서 이 눈이 금-방 아팠어요.

B1: 어디요? 이 벽에 다가요?

A2: 예에 못을 박기만 하면 눈이.

A1: 옛날에 못 박을라며는 날을 잡아가지고 손 없는 날 인자 그날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못도 박고 그게 그마만큼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 영적으로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거기에 다 휘말려 들어갔어 근게 예를 들어서 못을 박았다 거기에 근데 못을 박아가지고 때로는 사람이 살다보며는 아프기도하고 또 인제 어디 다치기도 하자나요 근데 모든 것을 하나에 샤머니즘에서 거기에 연계를 시켜버리는 거에요 연계를 시켜가지고 본인 스스로가 그 안에 귀속이 되어버리는 거여 그러다 보니까 일종에 그 자기가 인자 섬기는 그 하나의 신이 절대 권자 되어가지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죠 스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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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머님 혹시 구렁이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요?

A2: 왜요 우리 친정에서는 보기도 했어요 우리 친정이 ‘군산’인데요 친정아버지가 이렇게 돈을 잘 벌으셔가지고 하셨는데 인제 우리 고등학교 때 아팠아요 많이 아프셔가지고 집이 인제 아부지를 살리다 보니까 많이 기울어 졌어 살림이 그러며는 어느 날인가 이렇게 비 올라고 하는 데요 뭔 이렇게 큰 뱀이 담에 막 몇-마리가 있는 거에요 담에! 촤-아악 걸쳐서 있어요 그런 게 인제 엄마가 저기 머리카락을 태우면 쟤들이 저게 말하자면 집을 지키는 업이다 그래가지고 쟤네들을 달래서 들어가게 해야해야한다 집으로 집 속으로 쫒아나가면 망한다 인제 그래가지고 어머니가 여기저기 머리를 잘라가지고 태워서 인제 한 며칠 냄새를 풍기면 구렁이가 없어져요.

B1: 구렁이가 들어와서 집이 나중에 잘 되었나요?

A2: 그래가지고 몇 번 하더니 우리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가지고 인제 뱀이 들어오고 구렁이가 들어오면 잡아라! 저기 성경 상 마귀다 그러니까 잡아서 죽여라 하니까 인자 잡아서 그거를 태우고 태우고 나면요 그 자리에 또 한 마리가 또 있어요 죽었는데 그 자리에 근게 영물이죠 그게 그래가지고 엄청 안 좋았어요 집이 그리고 동네에서도 아-주 면장도 하고 정미소도 하고 하는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 집에 천장에서 구렁이가 막 떨어졌어요 놀랬죠 식구들이 다 그래서 죽였지요 구렁이를 그래가지고는 그렇게 오빠도 돌아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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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러면 여우가 사람 홀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요?

A2: 그런 말은 못 들었어도 이 이렇게 차를 타고 막 산 속에 혼자 가면 여자가 막 예-쁜 여자가 손을 든데요 서있데요 그래서 교회 목사님들이 너무 안쓰러우니까 태운 데요 태워서 이렇게 보면 거울에 보면 귀신이고 뒤를 치다보면 사람이고 그래가지고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도 한 없이 타고 가는 거에요 그래서 내리려고 보며는 없다는 데요? 그런 소리 엄청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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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기찻길은 어떻게 생겼나요?

A1: 여기는 별 이야기 없고 원래 전라선이 ‘강경’에서 ‘함라’로 빠져가지고 서해안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함라’에 가서 조씨하고 김씨인가 그 부자들이 있어가지고 어찌 우리 동네 앞으로 그때만 해도 기차라고 안하고 철마라고 그랬죠 철마가 가느냐 안 된다 반대를 해가지고 ‘함라면 함열리’ 그랬는데 그 설로가 그 양반들이 반대해서 이 짝에 인제 현재 ‘함열’로 그래가지고 지금 ‘익산역’ 그때만 해도 ‘이리’ 그리로 해서 기차역이 틀어졌죠 틀어지다 보니까 지금 현재 시점에서 보며는 ‘함라’하고 ‘함열’하고는 굉장히 생활수준이 틀려 졌지요 그런 상황이 생기고 여기도 뭐 좀 저희들 보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며는...(현재 이야기)

B2: 예전에 ‘춘포역’ 풍경은 어떠했었나요?

A1: ‘춘포역’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고 거기에 인제 저 6.25 후에 우리의 생활수준이 어려우니까 남자 위주의 경향에서 저 사회생활에서 여자가 인자 참여를 했자나요 그래가지고 이리에 가서 쌍방울 그러한 공장들이 생기다 보니까 여기에 이 지역에 있던 여자분 들이 인제 시내로 많이 기차타고 다녔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옛날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들이 많이 나갔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지역이 강 건너 그 지대에 있던 분들도 전부 여기 와서 차를 탔어요 그러다 보니까 외부 사람들이 여기를 뭐라고 그러냐며는 ‘딸촌’이라고 그랬죠 왜 ‘딸촌’이라고 그랬는 고니 여자들이 시간 되면 그냥 아침에 출근 하려고 차를 타고 또 저녁에 끝나면 많이 내리고 그니까 이 일대 사람들이 인제 기차역을 이용해서 하다보니까 그러한 별명 아닌 별명이 생겼죠.

B2: 6.25 이후 에요?

A1: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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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음식은 다른 지역과 다른 것이 있었나요?

A1: 뭐 특별한 것은 없고 농촌이라 보양식이나 좀 하고 그랬죠.

B2: 여기서 개를 많이 키웠나요?

A1: 개를 여기서 많이 키웠다기 보다는 인자 집에서 한 두 마리씩은 키웠죠 집에서 키우고 인제 그 사람들이 외지에서 살다가 하는데 아마 요리 비법이 있었든 가봐요.

(일정시대 수탈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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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수탈이 그렇게 심했으면 테러를 하던 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A1: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후작이 와서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여기를 편제 할 때는 ‘조선국 대장촌’ 하면 여기까지 배달되었단 말이에요 인제 그때 일본 총리의 큰 아버지가? 하는 분이 후작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유명했죠 어느 면으로 봐서는 그때 당시에 이 지역이 그래서 경제적으로 조금 괜찮았다고 봐야 것죠.

A2: 그때 여기 땅이 참 좋았데요.

A1: 근데 지금은 아니지.

B1: 그럼 기찻길이 생긴 게 좋은 것은 아니네요?

A1: 기찻길이.. 그렇죠 하나의 수탈의 방법이니까 여그가 우리가 어 1908년인가요? 을사조약이? 아마 그 무렵에 하고 다음에 이 사람들이 싹 했거든요? 여기 들어와서 다 실질적으로 일본이 와서 지배하고 뭐하고 한 역사는 참으로 길죠.

B1: 다 공출해 갈려고 한 것 같네요.

A1: 그러죠 그래가지고 여기 ‘이리’에서 ‘군산’까지 ‘군산’ 바다로 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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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아까 ‘도깨비 방죽’이야기 해주셨는데요 거기가 왜 ‘도깨비 방죽’인가요?

A1: 인자 거기에 가면 그러한 도깨비한테 돌렸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근게 사람들이 저녁에 예를 들어가지고 행상을 봐서는 정상적이 아니죠 인제 말하자면 밤새도록 뺑뺑 돌았는데 그 자리 있었다던 지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누구랑 밤새도록 씨름하고 그 사람 묶어 놓고 그 이튿날 가서 보니까 근데 그게 사람이 아니고 뭐 특이한 물체 라든 가 그리고 거기가 인제 옛날 말로 인제 인 같은 거 그런 것들이 조금 뭉쳐 있으면 조금 푸르스름하게 불이 비추자나요 반딧불 같이? 인제 고런 것들이 보이고 보이니까 그때 사람들은 하나에 공포에 대상이 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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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리고 아까 ‘회화’마을 해주셨자나요 거기도 포구이었나요?

A1: 그러죠 거기에 어 배가 인제 뚝을 쌓기 전에 '만경강' 제방을 쌓게 전에 배가 들어와서 소금을 푸고 그 담 가을에 여기서 농사짓는 인제 벼를 실어가고 인제 그런 무역 간단한 무역을 하는 포구이었죠.

B1: '만경강' 따라서 어떤 식으로 마을이 되어있나요?

A1: 이게 '만경강' 원래 저 ‘군산’에서 쭉 현재 선로 타고 오면서 기존 수로를 이용해서 인제 축조를 했으니까 그래서 여기는 이 앞에 우리 이야기를 여기 지명을 ‘구강’이라고 하는 데 제방을 쌓으면서 인제 잘라졌지.

B1: 왜 ‘구강’이라고 하나요?

A1: ‘구강’이라고 하는 것은 중간에 생겼는데 원래 저 '만경강'이 있었자나요? '만경강'이 있었는데 그 '만경강'의 하나의 샛길이죠 지류 지류에서 인제 회화로 들어오는 길을 '만경강' 제방을 쌓으면서 잘라졌으니까 근디 옛날에는 강이었다 이거여 현재는 강이 아니고 저기는 방죽같이 되어있지만 인제 그런 이야기여.

B1: 옛날에 포구 풍경에 대해서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1: 긍게 저희들이 들은 것은 여기는 순 농사 지역이라 특별한 것은 없고 인제 소금 배 같은 거? 인제 젓갈 같은 거 싣는 배들 들어와서 말하자면 봄에 실코 와서 인제 이렇게 퍼주고 가을에 와서 가져가고 말하자면 물물교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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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함과 연세를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1: 김석봉이고요 지금 81살이에요.

A2: 함경희 71세요.

B2: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채록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 춘포면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봉개산: 지금의 춘포산에 옛 명칭이다.
- 대장촌: 넓은 마당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현재의 춘포리이다.

3) 전설 및 민담
- 도깨비 방죽: 물고기를 잡아서 그릇에 넣어 두면 그 물고기들이 다 사라진다고 한다.
- 도깨비 불: 비가 오기전에 철도나 춘포산에 자주 나온다고 한다. 여자 생리혈이 빗자루에 묻으면 그것이 도깨비 불이 된다고 전해진다.
- 구렁이: 집에서 나온 구렁이을 죽여서 집안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여우: 혼자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여자를 태워주면 그 여자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4) 민속
- 우물: 1년에 한번씩 우물 청소를 했다.
- 당산길: 주변에 산이 없어서 당산대신 당산길이 있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원래는 기찻길이 함라에 놓여야 하는데 부자들의 반대로 함열에 놓아졌다고 전해진다.
- 딸촌: 대장촌 역에 여자들이 많이 이용해서 붙은 별명이다.
- 보신탕: 춘포역 주변에 보신탕 음식점이 많았다고 한다.
4. 구술 채록
● ● ●

A1: 김석봉 (81) 1932년
A2: 함경희 (71) 1942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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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중촌’마을이 왜 ‘중촌’마을이 되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여기가 인자 우리 교회가 설립 된지 111년 되었거든요? 대장교회가?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100년사 책을 만들었거든요 여기에 보시며는 참고 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거에요 여기에 역사를 수집을 하면서 이 지역에 따른.. 원래 이 지역이 왜정시대 이전에는 말하자면 침수 지역이었거든요? '만경강' 하천 유역으로 지금 '만경강'이 제방 뚝을 쌓아가지고 수리시설을 좀 했지요 그 이전에 저기 ‘대하리’저수지 고 마을 댐을 쌓아가지고 내려오면서 뚝을 수축해가지고 인자 그랬는 디, 말을 잘 못 하며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 되었죠 친일적인 이야기 근데 인제 실질적으로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 어르신들 우리 선배들은 거기에 대한 기술이 그쪽에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은 그 사람들이 와서 제방 축조를 하고 수리 시설하고 인제 여기에 간척을 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많은 땅을 정리하고 저그 인제 일본 대표적으로 ‘금촌’하고 ‘새천’ 그 두 일본사람인 디 많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많은 땅을 가지고 여기에 보며는 공판장 거기에 ‘금촌’농장이라고 해가지고 많은 양곡을 수집해가지고 이 사람들이 인제 기차에다 실어 가지고 군산으로 가서 군산에서 인제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그런 지역이었죠.

B2: 마을회관 앞에 일본 고가(古家( 하나 있던데 그게 그 일본인들 집이었나요?

A1: 그렇죠 그 사람들이 살던 집이고 여기가 고가(古家)가 몇 채 있었는 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그 집 하나 한 채 남아 있어가지고 시에서 그 집을 보수해가지고 인제 유지 관리를 하고 또 우리 보며는 전북대학교라든가 다른 대학교 또 학생들이 가끔 와서 탐방하고 일본사람들도 가끔 와요 인제 ‘대장역’이라고 해서 ‘춘포역’이 있는데 요게 아마 이 지역에서 제일로 오래되고 현재 그 건물 자체가 현재 그대로 유지 되어있는 그런 상태.

B2: 그러면 ‘중촌’마을이 왜 ‘중촌’마을이 되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중촌’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인제 가서 보시며는 그 책자가 있겠지마는 원래 여기가 마을의 형성이 드문드문 쭉하니 있었거든요? 있었는데 제방 축조를 하면서 인제 이 아래 가면 ‘신촌’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제가 그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그 신촌이라는 마을은 제방 뚝을 쌓으면서 새로 생긴 동네가 ‘신촌’ 여그는 인제 이 ‘춘포면’ 소재지에 있는 데 가운데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중촌’ 말하자면 여그 위에 앞에는 역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역전’ 인제 그렇게 이름이 되어있고 저 위에 가면 ‘회화’라고 했는데 그 앞에 가면 여기 지금 '만경강' 뚝 안에 그 인제 하천이 있어요 비가 오면 물을 품어내는데 옛날에는 그 뚝 쌓기 전에 그리 배가 들어왔죠 그래서 그 배가 쭉해서 전주까지 군산 앞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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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주변에 산이 있나요?

A1: 이 근방에는 산이 없고 여기서 산이라고 하는 것은 저그 저 해발 한 400∼500미터나 될랑가요? 저기 ‘춘포산’이라고 하나 있어요 ‘춘포산’이라고도 그러고 옛날 이름은 ‘봉개산’이라고 하는 데 ‘봉개’라고 하는 것은 발음상 ‘봉개’고 ‘춘포산’이름이 봄 춘자 개포 자에요 그래서 인제 ‘봉개산’이라고 이야기하죠 그 산이 이 지역에 유일한 산이죠 거기 인제 사람이 옛날부터 돌아가시면 어디 장례 모실 때가 없으니까 공동묘지가 거기 있죠.

A2: 저 일본에서 지은 일본사람들이 지은 집이 여그가 있고..

A1: 근게 여기가 일본 백작이 여기 와서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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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일본사람들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이 살았었나요?

A1: 우리나라 사람들 살았죠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지주고 한국 사람들은 거기서 소작인으로 그리고 한국 사람들 중에서 조금 그런 사람들은 중간에서 인제 관리 해주는 사람들 그렇게 하고 어.. 한국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생산된 것은 공출이라는 이름이로 다 뺏겼죠.

B1: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여기 유래를 보며는 원래 이름을 보면 ‘대장촌’이라고 했거든 이 일대를? ‘춘포면 대장촌리’ 이렇게 되었는데 원래 이 ‘대장촌’이라고 하며는 인제 일본식 이름이거든요 넓은 마당 마을이라고 해서 ‘대장촌리’하면 우리 행정구역상 ‘회화’ ‘중촌’ ‘신촌’ ‘역전’ ‘구담’ ‘신평’ ‘화신’해서 일 곱개 부락인가? 합쳐가지고 ‘대장촌’으로 되었는데 지난번에 우리 행정구역 개편하면서 일본식 이름은 없앤다 해서 ‘춘포리’로 바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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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 샘도 있었나요?

A1: 마을에 샘이 어디가 있었는 고니 여기 보면 ‘새천’농장 안에 공동우물이 있었어요 이 지역 주민들이 새벽에 그 물 지게로 지어다가 먹는 그 물인데 그 물이 이 지역 주민들이 다 먹을 정도로 많이 나왔어요 그리고 이 일대가 간척지로써 물을 지하수를 파며는 지하수에서 철분이 많이 나와요 그 중간에 인제 지하수를 많이 개발을 했거든요? 해가지고 보니까 철분이 많은 게 그것을 걸러 먹기 위해서 말하자면 숯 넣고 모래 넣고 막 이렇게 해서 걸러가지고 아래 물 받아서 그 물 인제 먹고.

B2: 옛날에 우물도 푸고 그랬었나요?

A1: 우물은 인제 1년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하죠 대청소를 하고 여기가 인제 말하자면 이 지역에 평야지대에 뭔 당산이 필요가 있어요 통상적으로 당산 제도가 있자나요 그 지역에 조금 높고 그 무언가 그 지역에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해서 당산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 인제 일본 사람들이 좀 살고 세력가들이 좀 살고 하다 보니까 이 요길 ‘당산길’이라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저 아래에서 저 ‘춘포산’으로 갈라면 요길로 가면 빠른데 요길로 못가고 옆에로 돌아서 가고 그랬죠 그리고 여기가 ‘중촌’이라고 하는 것은 ‘중촌’이라는 하는 곳에 면이 소속되어있고 농협 우체국 것이 행정적인 그러한 중심체가 이 마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름도 ‘중촌’이라고 하지 않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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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춘포에서 유명한 절이 있나요?

A1: 여기서 절은 한 3키로 정도 떨어진 뭐 유명한 절은 아니에요 조그마한 절인데 ‘오산사’라고 해서 역사는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고 원래 그 절은 큰 산에 깊은 산에 인제 들어가 가지고 있는 건데 평야지대라 평야지대 조그만한 저그 뒤에 가서 언덕 같이 있고 뭐 그런 하여튼 오래된 절은 아니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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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이야기나 전설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2: 도깨비랑 많이 있어요.

A1: 도꺠비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저기 저 춘포 초등학교 있죠? 춘포 초등학교에서 철로하고 그 중간에 옛날에 그 ‘도깨비 방죽’이라고 하는 그러한 방죽이 있었거든요? 그 소속된 마을이 ‘신호’마을이에요 ‘용현리 신호’ 근디 거기 아마 최주일씨라고 하는 분은 찾아서 물어보시면 조금 아실거에요 거기가서 물어보면 아마 방죽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실 텐데 아마 도깨비라고 하는 것은 그때 당시에 우리 조상들이 하도 생활이 곤란하다 보니까 먹고 사는 것이 복잡하고 영양적으로라든가 모든 면으로 영적인 면이라든가 약해가지고 그러한 현실이 아니였나 근데 실질적으로 또 거기에 휩쓸려가지고 고생을 하신 분들도 계시거든.

B2: 그러면 혹시 들으신 이야기는 있으신지요?

A1: 인제 그 그런 계통한테 홀려가지고 밤새도록 헤매고 돌아 댕기다 보니까 인제 그 자리이었다든가 그러한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마는 최근에 와서 그런 이야기는 없어져 버렸죠.

A2: 왜요 우리 아버님이 저기 93세에 작고를 하셨는데 고기가 그때는 물고기가 많으니까 물고기를 많이 잡았데요 이런 뚝에서 근디 거기서 고기를 막 잡으면 큰 고기가 많이 잡히니까 잡아서 막 논에다 가따가.. 그릇이 없니까 잡아서 인제 이렇게 놓고 놓고 해서 엄청 잡아 놨는데요 잡아서 그렇게 놨으면 있어야 하자나요 없드레요 하나도 없드레요 물고기 잡은 게.

B1: 왜요?

A2: 도깨비들이 다 가져가서요 그래가지고 여기 도깨비가 많았데요.

B1: 언제 이야기 인가요?

A2: 아버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100년? 120년은 되었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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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귀신이야기 들으신 것도 있으신지요?

A2: 많죠 여기 많았었지요 이 여그 여기가 그전에는 인가가 많이 없었어요 제가 시집 온지 60년 되었는데 저는 예수 믿는 집에서 살다가 예수 안 믿는 집으로 왔어요 왔는데 앞에 이렇게 간다는 데요? 귀신이 사람이 여기 뚝 앞에 뚝 여 저 떡집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인제 가다가 한참 보며는 없어진 데요.

B1: 어떻게 생긴 귀신인데요?

A2: 그 여자도 뵈고 남자도 뵈고 그렇게 많이 뚝에 엄청 많고 비 올 날이면 막 도깨비 불 들이 막 철로 길이 있어요 철로 길 또 ‘봉개산’ 거기에 막 불이 막 열 개도 되고 그게 한 30개 되었다가 마-악 그래서 그거를 어떤 사람이 도깨비가 나타나 가꼬 도깨비하고 싸움을 했데요 그 장승같은 사람하고 싸웠는데 자기가 죽-는 힘을 다해서 막 혁대랑 다 풀러서 나무에다 묶어 놓았데요 그러고 아침에 술 깨고 가보니까 도깨비가 아니고 빗자루더레요 근게 그전에 빗자루를 여자들이 잘 깔고 앉았었거든요 그러면 깔고 앉으면 여자가 좀 몸이 올 때가 있자나요? 그게 빗자리에 묻으면 그게 도깨비불이 된다고 하더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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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무당이 있었나요?

A2: 미신이 엄청 심했어요 점쟁이들이 여기는 전에는 무속들이 많았어요 벌어먹고 살라고 그래서 우리 큰 집에서 우리 장모님 네가 부자인디 저 시집 오니까 점쟁이 넷을 먹여 살리드라고 4일 마다 와요 돌려가면서 그래가지고 막 점쟁이들이 상여랑 갖다놓고 뭐해요 어른들이 많이 좋아하셨죠.

B1: 굿하는 것 직접 보셨는지요?

A2: 굿도 많이 하고 여기 뭐야 우리 큰 집에도 1년에 두 번 세 번 했어요 굿을 왜 많이 하냐면 우리 저 장모님 동생이 전주서 사는 데 타고날 때 조금 운명을 잘못타고 나왔데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시루가 있자나요 그러며는 빨강색 노랑색 색색으로 떡을 해서 거기다 칼을 놓아 칼을 꽂아 놓아요 열두 개를 꽂아 놓고는 인제 거기다가 하루 종일 비는 거에요 그렇게 미신이.... 지금은 살기 좋아요 그래도 다- 운명을 타고 나는지 다 당하고 살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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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러면 무당 말고 다른 미신이 있었나요?

A2: 미신은 인제 교회에 있었고 또 절 다니는 분 있었고 또 천주교인 있고 인자 교인이 젤루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잘 보이던 귀신도 안 보인데요 여기 못하나 못 박았어요 저 못을 박으면 그 식구 중에서 이 눈이 금-방 아팠어요.

B1: 어디요? 이 벽에 다가요?

A2: 예에 못을 박기만 하면 눈이.

A1: 옛날에 못 박을라며는 날을 잡아가지고 손 없는 날 인자 그날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못도 박고 그게 그마만큼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 영적으로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거기에 다 휘말려 들어갔어 근게 예를 들어서 못을 박았다 거기에 근데 못을 박아가지고 때로는 사람이 살다보며는 아프기도하고 또 인제 어디 다치기도 하자나요 근데 모든 것을 하나에 샤머니즘에서 거기에 연계를 시켜버리는 거에요 연계를 시켜가지고 본인 스스로가 그 안에 귀속이 되어버리는 거여 그러다 보니까 일종에 그 자기가 인자 섬기는 그 하나의 신이 절대 권자 되어가지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죠 스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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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머님 혹시 구렁이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요?

A2: 왜요 우리 친정에서는 보기도 했어요 우리 친정이 ‘군산’인데요 친정아버지가 이렇게 돈을 잘 벌으셔가지고 하셨는데 인제 우리 고등학교 때 아팠아요 많이 아프셔가지고 집이 인제 아부지를 살리다 보니까 많이 기울어 졌어 살림이 그러며는 어느 날인가 이렇게 비 올라고 하는 데요 뭔 이렇게 큰 뱀이 담에 막 몇-마리가 있는 거에요 담에! 촤-아악 걸쳐서 있어요 그런 게 인제 엄마가 저기 머리카락을 태우면 쟤들이 저게 말하자면 집을 지키는 업이다 그래가지고 쟤네들을 달래서 들어가게 해야해야한다 집으로 집 속으로 쫒아나가면 망한다 인제 그래가지고 어머니가 여기저기 머리를 잘라가지고 태워서 인제 한 며칠 냄새를 풍기면 구렁이가 없어져요.

B1: 구렁이가 들어와서 집이 나중에 잘 되었나요?

A2: 그래가지고 몇 번 하더니 우리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가지고 인제 뱀이 들어오고 구렁이가 들어오면 잡아라! 저기 성경 상 마귀다 그러니까 잡아서 죽여라 하니까 인자 잡아서 그거를 태우고 태우고 나면요 그 자리에 또 한 마리가 또 있어요 죽었는데 그 자리에 근게 영물이죠 그게 그래가지고 엄청 안 좋았어요 집이 그리고 동네에서도 아-주 면장도 하고 정미소도 하고 하는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 집에 천장에서 구렁이가 막 떨어졌어요 놀랬죠 식구들이 다 그래서 죽였지요 구렁이를 그래가지고는 그렇게 오빠도 돌아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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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러면 여우가 사람 홀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요?

A2: 그런 말은 못 들었어도 이 이렇게 차를 타고 막 산 속에 혼자 가면 여자가 막 예-쁜 여자가 손을 든데요 서있데요 그래서 교회 목사님들이 너무 안쓰러우니까 태운 데요 태워서 이렇게 보면 거울에 보면 귀신이고 뒤를 치다보면 사람이고 그래가지고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도 한 없이 타고 가는 거에요 그래서 내리려고 보며는 없다는 데요? 그런 소리 엄청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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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기찻길은 어떻게 생겼나요?

A1: 여기는 별 이야기 없고 원래 전라선이 ‘강경’에서 ‘함라’로 빠져가지고 서해안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함라’에 가서 조씨하고 김씨인가 그 부자들이 있어가지고 어찌 우리 동네 앞으로 그때만 해도 기차라고 안하고 철마라고 그랬죠 철마가 가느냐 안 된다 반대를 해가지고 ‘함라면 함열리’ 그랬는데 그 설로가 그 양반들이 반대해서 이 짝에 인제 현재 ‘함열’로 그래가지고 지금 ‘익산역’ 그때만 해도 ‘이리’ 그리로 해서 기차역이 틀어졌죠 틀어지다 보니까 지금 현재 시점에서 보며는 ‘함라’하고 ‘함열’하고는 굉장히 생활수준이 틀려 졌지요 그런 상황이 생기고 여기도 뭐 좀 저희들 보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며는...(현재 이야기)

B2: 예전에 ‘춘포역’ 풍경은 어떠했었나요?

A1: ‘춘포역’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고 거기에 인제 저 6.25 후에 우리의 생활수준이 어려우니까 남자 위주의 경향에서 저 사회생활에서 여자가 인자 참여를 했자나요 그래가지고 이리에 가서 쌍방울 그러한 공장들이 생기다 보니까 여기에 이 지역에 있던 여자분 들이 인제 시내로 많이 기차타고 다녔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옛날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들이 많이 나갔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지역이 강 건너 그 지대에 있던 분들도 전부 여기 와서 차를 탔어요 그러다 보니까 외부 사람들이 여기를 뭐라고 그러냐며는 ‘딸촌’이라고 그랬죠 왜 ‘딸촌’이라고 그랬는 고니 여자들이 시간 되면 그냥 아침에 출근 하려고 차를 타고 또 저녁에 끝나면 많이 내리고 그니까 이 일대 사람들이 인제 기차역을 이용해서 하다보니까 그러한 별명 아닌 별명이 생겼죠.

B2: 6.25 이후 에요?

A1: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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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음식은 다른 지역과 다른 것이 있었나요?

A1: 뭐 특별한 것은 없고 농촌이라 보양식이나 좀 하고 그랬죠.

B2: 여기서 개를 많이 키웠나요?

A1: 개를 여기서 많이 키웠다기 보다는 인자 집에서 한 두 마리씩은 키웠죠 집에서 키우고 인제 그 사람들이 외지에서 살다가 하는데 아마 요리 비법이 있었든 가봐요.

(일정시대 수탈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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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수탈이 그렇게 심했으면 테러를 하던 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A1: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후작이 와서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여기를 편제 할 때는 ‘조선국 대장촌’ 하면 여기까지 배달되었단 말이에요 인제 그때 일본 총리의 큰 아버지가? 하는 분이 후작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유명했죠 어느 면으로 봐서는 그때 당시에 이 지역이 그래서 경제적으로 조금 괜찮았다고 봐야 것죠.

A2: 그때 여기 땅이 참 좋았데요.

A1: 근데 지금은 아니지.

B1: 그럼 기찻길이 생긴 게 좋은 것은 아니네요?

A1: 기찻길이.. 그렇죠 하나의 수탈의 방법이니까 여그가 우리가 어 1908년인가요? 을사조약이? 아마 그 무렵에 하고 다음에 이 사람들이 싹 했거든요? 여기 들어와서 다 실질적으로 일본이 와서 지배하고 뭐하고 한 역사는 참으로 길죠.

B1: 다 공출해 갈려고 한 것 같네요.

A1: 그러죠 그래가지고 여기 ‘이리’에서 ‘군산’까지 ‘군산’ 바다로 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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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아까 ‘도깨비 방죽’이야기 해주셨는데요 거기가 왜 ‘도깨비 방죽’인가요?

A1: 인자 거기에 가면 그러한 도깨비한테 돌렸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근게 사람들이 저녁에 예를 들어가지고 행상을 봐서는 정상적이 아니죠 인제 말하자면 밤새도록 뺑뺑 돌았는데 그 자리 있었다던 지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누구랑 밤새도록 씨름하고 그 사람 묶어 놓고 그 이튿날 가서 보니까 근데 그게 사람이 아니고 뭐 특이한 물체 라든 가 그리고 거기가 인제 옛날 말로 인제 인 같은 거 그런 것들이 조금 뭉쳐 있으면 조금 푸르스름하게 불이 비추자나요 반딧불 같이? 인제 고런 것들이 보이고 보이니까 그때 사람들은 하나에 공포에 대상이 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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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리고 아까 ‘회화’마을 해주셨자나요 거기도 포구이었나요?

A1: 그러죠 거기에 어 배가 인제 뚝을 쌓기 전에 '만경강' 제방을 쌓게 전에 배가 들어와서 소금을 푸고 그 담 가을에 여기서 농사짓는 인제 벼를 실어가고 인제 그런 무역 간단한 무역을 하는 포구이었죠.

B1: '만경강' 따라서 어떤 식으로 마을이 되어있나요?

A1: 이게 '만경강' 원래 저 ‘군산’에서 쭉 현재 선로 타고 오면서 기존 수로를 이용해서 인제 축조를 했으니까 그래서 여기는 이 앞에 우리 이야기를 여기 지명을 ‘구강’이라고 하는 데 제방을 쌓으면서 인제 잘라졌지.

B1: 왜 ‘구강’이라고 하나요?

A1: ‘구강’이라고 하는 것은 중간에 생겼는데 원래 저 '만경강'이 있었자나요? '만경강'이 있었는데 그 '만경강'의 하나의 샛길이죠 지류 지류에서 인제 회화로 들어오는 길을 '만경강' 제방을 쌓으면서 잘라졌으니까 근디 옛날에는 강이었다 이거여 현재는 강이 아니고 저기는 방죽같이 되어있지만 인제 그런 이야기여.

B1: 옛날에 포구 풍경에 대해서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1: 긍게 저희들이 들은 것은 여기는 순 농사 지역이라 특별한 것은 없고 인제 소금 배 같은 거? 인제 젓갈 같은 거 싣는 배들 들어와서 말하자면 봄에 실코 와서 인제 이렇게 퍼주고 가을에 와서 가져가고 말하자면 물물교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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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함과 연세를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1: 김석봉이고요 지금 81살이에요.

A2: 함경희 71세요.

B2: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중촌마을 김석봉


중촌마을 김석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