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안수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안수마을
구술자 최학진(1933)남자
구술자 김규삼(1957)남자
구술자 김창배(1951)남자
구술자 알수없음()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민담 및 전설
민속
구술일시 2012-08-26
비고 면담장소 : 춘포 안수마을 모종
면담시간 : 8월 26일 오전 11시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 등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안수’는 1972년 안천과 수양을 합친 분리명이다. ‘안천’은 전에는 ‘安川’으로 썼고 그 유래에 대하여 옥룡천(익산천)의 안쪽이므로 생긴 명칭이라고 했고, 또 마을 뒤 귀명산에 평사낙안혈(平砂落雁穴)이 있다는 풍수설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수양’은 수양버들이 많아서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 마을 유래담 : 옛 지명은 안내. 그 뒤 안천(雁川)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산의 형태가 기러기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안천(雁川)이라고 불렸다. 춘포면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에는 두촌면에 속해 있는 마을이었다. 지금의 지명은 안천마을과 수양마을(새암마을)이 합쳐져 ‘안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설로는 기러기 아홉 마리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안수마을이라고 불렸다는 설이 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옥룡교 : 춘포제방을 쌓기 전에 마을 앞에 옥룡교가 있었다. 춘포 제방을 쌓은 이후로 마을의 물이 많이 부족해 천수답 농경지 마을이 되었다.

3) 전설 및 민담 :
-천서초등학교 : 천서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논이었다. 한 성인이 도포를 입고 그 앞을 지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앞으로 여기가 명당이다’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 구명산 : 아홉 개의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구명산이라고 불렸다. 다른 설로는 옥바둑판이 묻혀 있는데, 아직 발견을 못해서 구명산이라는 설도 있다.
-미륵산과 용화산 전설 : 용화산이 미륵산을 밀어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화산이 형이고, 미륵산이 동생이라고 한다.
-용화산 전설 : 어느 머슴이 소의 먹이를 위해 용화산에서 풀을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이 보니, 풀이 아니라 인삼이었다. 주인이 머슴과 함께 풀을 벤 곳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 ‘용화산에는 인삼밭이 서마지기가 있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4) 민속 :
- 삼례장과 익산역 : 안수 마을 주민들은 솜리역(지금의 익산역)과 삼례장을 주료 이용하였다. 금마 생활권 밖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술채록

A1 최학진(80세)-1933년생
A2 김규삼(56세)-1975년생
A3 XXXXXXXXXXXXXXXX
A4 김창배(50세)-1951년생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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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 조사원입니다. 마을 조사를 위해 이렇게 어르신들을 찾아 뵈었습니다.
A1 : 취재나 생각이나 참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하더라도 지금 나이가 시방 팔십몇이지만 이런 것들을 알라면 우리보다도 세상을 뜨신 먼저 어른들이 상세한 내용들을 아시고 이야기도 많이 들을수 있는텐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알아서 조사를 나오신 분들에게 흡족하게 대답을 해드릴랑가 모르겄어요.
B1 : 마을의 유래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1 : 우리 동네같은 경우는 내가 62살인데 역사는 얼마나 됐는가는 모르겠어요. 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들어보면 우리 마을이 원래는 안내여 안내. 근데 얼마간 지나고 보니깐 안천이라 하더라구. 말은 뭐, 기러기안자에 내천자를 쓴다고 하더라고. 뒤에 산의 형세가 그런 형태라 그래서 마을 이름이 그렇게 됐다고 들었어. 원래는 춘포가 아니고 부천면이여. 우리 족보상 우리 할아버지때는 부천면이라고 되어 있드라고 나는 일정 때 춘포라 한 것으로 알고 있어. 내 욕심같으면 뿌리찾기를 해가지고 부천을 써봤으면 하는 맘도 있는디 내 욕심이지.
B2 : 안내라는 것은?
A1 : 원래 알기로는 옥룡교라고 있잖여 여기. 거기를 금마에서도 옥룡천이라고 불러. 금마에서 미륵탑위로 왕궁탑 올라가면 금마소재지 지나서 큰 저수지 있잖여. 그 미륵산 밑에 물이 다 이리로 내려와서 만경강으로 합류가 되는데, 그 물이 원래는 이 제방이 없었기 때문에 이 동네 앞으로 해서 저 동네 앞으로 빠졌답니다. 다만 물이 빠지다보니까 농토를 많이 써먹을라고 제방을 아마 일정 때 쌓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 뒤로는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저 어렸을 때 제방을 저 창평쪽에 새로 쌓고 이 제방은 일정 때 쌓을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는 여기 다리가 있어요 옥룡교라고. 거기서 이 동네 앞으로 내가 흘렀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안내라고 했데요 원래는. 기러기안자에 내가 흐른다고 해서 근데 중간에 천이 흐른다고 안천이라고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우리 뒷 동네에 새암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수양동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 동네하고 합쳐져가지고 안자하고 수자하고 해가지고 안수 안수마을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B2 : 수양마을은 수양버들이 있어서 수양마을인가요?
A1 : 옛날엔 있었어요. 많이는 없었어도 어려서 보면은 한두그루가 크게 있었고, 학교뒤에 보면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는디 많이 세워놨었어 수랑이라 그러지 수랑 이런 것이 더러 있었는디 지금은 지하수 많이 뽑아서 써서 그런가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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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마을에 큰 나무는 없었나요?
A1 : 정자에 큰 아카시아나무가 있었는데 우리 초등학교 때 마을 발전상 없애버리고 지금은 이렇게 현대식으로 지었고, 우리 동네에 또 뭐가 있냐하면 구명산 이라고 아홉 개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구명산이 있는디 사람들은 쉽게 규명산이라고 부르지. 근데 거기가 저쪽 산 뒤쪽에 참샘물이라고 참샘 약수터가 있어요. 나도 대대로 살았지만 그 물이 언제부터 나왔능가는 볼라도 어렸을 때 보면은 거기를 밭이 하나 있어가지고 농사를 짓는디, 약국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힘들 때였는데 그 물이 군산까지 전주까지 소문이 났었어요. 양은 많지는 않아도 바가지로 받으면 금방 한 바가지는 받어. 종기나고 땀띠나고 참 이런 피부병 같은 경우는 다 나았었어. 이때쯤이면 칠월칠석이 끝나잖어 근디 초복 중복 말복 칠석 이렇게 좋은 날은 명절로 쳤어 그 좋은 날은 이 근방사람은 물론이고 외지사람들까지 와가지고 그 줄을 서가지고 한 바가지씩 찌끄리는거여. 그렇게 유명한 약수터가 물이 옛날보다는 많이 떨어졌어요. 나오긴 나오는데 옛날보다는 줄은 것 같애. 한 번씩 물 맛을 보는 사람들은 물통을 가지고 와서 떠가는모습도 내가 봐요. 그렇게 유명한 약수터가 지금은 병원과 약국이 많아져가지고 저리되버렸어.
B2 : 그 샘을 이름이 찬샘이요?
A1 : 참샘. 무슨 참자를 쓸랑가는 몰라고 그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났고, 그 옆에 밭이 있으면은 옷을 벗어나가지고 고추나 이런거를 심어놓으면 전부가져다가 걸쳐놓은거여 그럼 다 작살나버려. 그니깐 나는 좋은 날만되면 가서 지키는거여 인자. 우리 아버지는 어른이라 근데 특히 아주머니들이 이웃해가지고 많이 오거든 남자들보다. 그니깐 우리 아버지가 가서 뭘하겄어 그니깐 나만가가지고 치라고 하는거지. 그럴때가 있었어 버글버글했어 사람이 굉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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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규명산이 어딨나요?
A1 : 이 뒤가 규명산이여 여기가 학교뒤로해서. 야차운데 산세가 인자 어른들 말씀들어보면은 명당자리. 쉽게 말해 돌아가시면 명당 찾는다고 안혀 그런 명당자리가 9개가 있다해서 구명산. 이 근방에서는 춘포같은 경우는 산이 두 군데에 불과하지만은 그런 전설이 옛날부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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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아까전에 춘포이야기를 하셨는데 부천이었다고요?
A1 : 두촌면 두촌.
B1 : 그럼 춘포라는 이름은 언제부터였을까요?
A1 : 제가 볼 때에는 우리 족보를 보니깐 일정시대 때 바뀌었는데 포구를 만든 뒤에다 일본 사람들이 만경강을 타고 들어와가지고 아마 곡물을 가져가기 위해서 포구이름을 그렇게 붙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마 그렇게 된 것 같더라구 포자가 붙은데는 전부 포구여.
B2 : 그럼 두촌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요?
A1 : 두촌이란거는..모르지..한문을 쓸지를 몰랐으니깐. 아마 곡식이 많기 때문에 콩이나 곡식이 많기 때문에 콩두자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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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곡식말씀을 해주셔서 그러는데요 여기 논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네요
A1 : 그때는 내가 상당이 커. 그 물이 다리 아래서 우리 동네 길쪽으로해서 나갔어 저쪽 하정마을로 돌아가. 경지정리가 나와서 그러는데 어려서보면 도랑이 있고 형성이 되있었고 물이 내려갔고 관리를 했으니깐 모래가 있잖아 그게 논바닥 밑에 한재씩이나 들어가 있어. 그런거 보면은 사실이지. 저 농사를 짓기위해서 제방을 쌓다는 이야기여.
A2 : 그 전엔 다 바다였잖아
A1 : 그러지. 옛날에는 왕궁면 일부 고을까지 바닷물이 들어갔다는 말이 있어.
B1 : 옛날에는 어땠는지 그림으로 그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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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오히려 물이 이쪽으로 빠졌을 때가 농사짓기 더 좋았을 것 같아요
A1 : 잘 살았다는 것이여 농사짓기가 물이 귀했을 때라 우리 동네가 굉장히 부촌이었다 하더라고 물이 흔하고 산이 있고.
B1 : 근데 저 쪽에 물을 막으면서..
A1 : 막으면서 우리 동네가 산림이 망하고 일자리도 없어졌지.
B1 : 물 막으면 이쪽에 있는 논이 천수답이 되진 않나요?
A1 : 천수답은 아니지. 경지정리해서 물이 여까지 올라오니깐.
B1 : 원래 물이 있어가지고 농사짓기 편하시다가 이쪽물이 끊기면은.
A1 : 그 안에는 상당히 고전을 했지 인자. 왜냐면 경지정리를 나중에 해놔서. 냇가물을 품어서 해야하고 굉장히 힘들었지.
A3 : 여그 둑을 왜놈들이 막았거든. 여기를 막고나서는 천수답이 됐지. 한동안은 힘들었지 오랫동안은 그랬다가 이 근래에 와가지고 지도부가 생기고 농촌공사가 생기고 해가지고 다시 했잖아. 이렇게 한거본께 금강물이 오고 어디 물이 오고 그 뒤로 물을 쓰고 지금은 뭐 아무렇지도 않지.
A1 : 지금은 천수답은 없고 어쨌든간에 경지시설이 잘되어가지고...그때만 하더라도 엄청 힘들었었지.
B1 : 그럼 천수답 됐었을 때 그 때는 수세는 걷어갔나요?
A1 : 수세를 안 걷었지. 옛날엔 그런 것이 없었응께.
A3 : 그 때가 50여년전이니깐 수세라는 것이 없었지.
A1 : 저 제방을 싼 뒤로는 완전히 마을앞에가 천수답이 됐지. 수십년동안 살다가 최근에 인자 경지정리가 되고 하니까 지금은 익산 저 쪽 밑에 용담댐 물이 여까지 온거여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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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이것이 이렇게 될 때에 어른들이 뭐라고 불렀는고니 중부뜰이라고 불렀어.
A2 : 우리가 생각할 때는 중간에 도랑이 있다고 해가지고 중부라고 부른 것 같여.
A3 : 옛날에 못이 하나 있는디 그 것보고 무신각부라고 했어 왜정 때 이름이지 무신각부라고. 거기 둠벙이 하나 있어가지고 그 물이 둘이서 두레박이라고 물을 깃는거 있짢여. 그걸로 물을 품어서 못자리를 하고 물못자리에다가. 한동안은 그렇게 살았지. 경지정리하면서 나아졌지.
B1 : 천수답은 언제 해결이 되셨어요?
A4 : 81년도에 경지정리했지. 내가 제대할 때 바로 경지정리했지.
B1 : 그 전까진 한...40년을..
A3 : 그렇지. 겁나게 욕봤지.
B1 : 경지정리에는 수세를 받았고요?
A3 : 한 때는 수세를 받았다가 폐지됐지. 그 때가 한 몇 년동안 솔찬히 받았어 쌀 반가마니 나락 한가마니를 받다가 지금은 없어졌지. 폐지가 됐어. 처음에는 겁나게 비싸게 받았지.
B1 : 천수답 되었을 때 마을 어르신들께서 굉장히 고생을 하셨을 것 같은데 마을 주민들께서 반대를 했었다거나.
A3 : 그럴 수가 없지. 그 때는 왜정 때라 일본놈들이 주관했기 때문에 그 때는 전부다 지게로다 짊어다가 인력으로 다 쌓은거여.
A4 :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A3 : 그런 반대를 할 수가 있가니. 일본 놈들이 갓관 이렇게 차가지고 막. 그리고 그때는 없이 살았잖아여 거가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그 때는 자식들도 많이 낳았네 자식들하고 먹고살라니깐. 거가면 감독이 표 하나씩 줬어. 표 하나에 얼마씩인가 보리도 팔고 조 같은거 수수..쌀 같은 건 먹도 못하고.
A2 : 암튼간에 똘이 냇가가 이 앞으로 갔을 때에는 다른 마을 길 가운데 있는 마을 같은 것은 생기지도 않았을것이고, 우리 마을 같은 경우는 물이 많으니까 농사가 항상 풍년이고 잘 사는 사람이 많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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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저그 저. 무신각부도 있고 조금 나가서 게다리포가 있고 중고플도 있고
B1 : 어디쯤에 있었나요? 게다리포요?
A3 : 대가리포. 그 형태가 대가리처럼 생겼어. 들어가는디는 좁고 여가서는 넓고 나가는데는 좁고 그 형상이 그렇게 생겼었어.
A1 : 옛날엔 우리나라가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미비했을 때에 한문이 성했잖아요. 하루는 서당이 있어가지고 동네마다 촌장이 있었어. 그런 때 들어보면은 전답이니 그런 말이 있잖아요. 그런 때에 규명산 같은건 왜 규명산이냐 하면 옥바둑판이 묻혀있다고 전해져. 근데 아직 때가 안되서 아직 발견을 못한다 이거여. 그래서 규명산이다는 말이 있거든. 또 학교 생긴 것을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은. 여기 버스 돌아가는 고비 그 앞이 학교 주차장이거든요. 학교주차장이 옛날에 논이었어 논. 거그를 뭐라고 했냐믄 주문국회라고 그랬어. 한 성인이 거기를 지나가다가 이 앞을 바라보고 그때는 학교가 생기기전인데, 거기서 도포를 입고 지나가다가 학교 쪽을 바라보면서 춤을 너울너울 덩실덩실 추었다는거야. 그래서 ‘왜 춤을 추냐’했더니, ‘앞으로 여기가 명당자리’다 했다는거야. 그러더니 학교가 들어섰다는거여.
A3 : 누구는 학교땜에 부자가 없다는 말도 허던디.
A1 : 아까 얘기했던 수양동 있잖아요. 예전에는 수양골이라도 했는데 글자만 틀린 뿐이지 의미는 같은 의미여. 왜냐하면, 수양골이라면 골자기잖아. 골이 진곳은물이 많이 고이잖아. 수양골은 옛날에 어른들이 물동을 이고 다니잖어? 그니깐 물이 많다는 의미지. 그니까 우리 동네도 안내나 안천이나 글씨만 틀리지 의미는 똑같다 이 뜻이지. 안내라고 하는 소리는 중구뜰이 물이 흐를 때 불르던 소리고, 안천이라는 소리는 둑을 막고 난 다음에 그랬었지. 그전에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안자는 기러기안자로 기러기 아홉 마리가 나는 형상이다 그래서 기러기안자 내천자 그래서 안천이다...그 전 어른들도 학교가 없는 시절이고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었응께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이고 전설이지. 지금이나 되니까 문학이니 과학이지 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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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뒷 산을 아까전에 기러기라고 하셨나요?
A2 : 산세가 그렇다는 것이지.
A1 : 과거에 어른들 책보면 여그는 뭔 형이고 뭐가 어찌고 어찐다 하는 그런 전설로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지.
B2 : 구명산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있을까요?
A2 : 다른 건 못들어봤고, 우리 초등학교 시설에 보면 산세가 좋고 남향인 산이라 그런가 몰라도 명당이 많다고 했는데, 문화재 도굴하는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이 쑤시는 창 있잖어 그 창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는거야. 뭐 걸리면은 땅 속으로 파고 들가서 끄내가는거지. 많이 캐갔어 여기서.
B2 : 좋은 묘가 있었다는거죠?
A2 : 그렇지. 큰 묘는 아니더라고 옛날엔 아마 선조들이 돌아가시면 쓰던 집기류를 넣어줬나보더라고. 그 때보면은 많이 나오더라고. 수천년이 됫능가 수백년이 됐는가는 몰라도 한 번 팠던 자리른 잘 들어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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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춘포를 다니면서 산을 못 봤는데 유일하게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더라구요. 예전엔 산짐승도 있었을 것 같아요.
A2 : 전에는 야산이었어요. 나무가 크기도 전에 다 베다가 난로를 때버렸기 때문에 잔디도 그때는 형성이 안되어있었어요. 일반 개구리하고 뱀이 산에 가면 흔했어요 근데 지금은 생태계가 바뀌드만 그런 것은 없어지고 우리 모르는 새나 짐승이 많이 생겨 지금은. 노루같이 생긴 고라니 우리는 흔히 노루라고 하는디, 지금은 산에 올라가면 산이 아니고 시끌시끌해 그냥 골프장 같은거. 저녁에 가다보면 노루가 가만히 서 있어. 모르는 새가 와가지고 구멍을 뚫어서 새끼를 까는가봐 그런 현상도 일어나고 큰 짐승이 와.
A4 : 저그 돼지치는 집 있짢어. 그 전에 상철네 밭 안있었어? 그 옆에 보면 여수굴이 있었지? 그 여수가 나와가지고 구명산에 오고 한다고 여수굴 여수굴 했잖어.
A2 : 우리 어렸을 때 보면은 개구리 뱀들은 없어지고, 자꾸 굉장히 큰 짐승이 생겨.
B1 : 여우 이야기 더 들을 수 있나요? 재밌는 이야기도 좋은데요. 여우가 남자를 홀린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에 그런 이야기는 없나요?
A2 : 그건 모르겠는데. 우리 큰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 앞에 평당마을이 있는데 거그가 산이었었어. 평산. 산이 있었는디 옛날에는 여수들린다고 하고 여수꼬리 아홉 개라는 말도 있고 하잖아요. 우리 큰 할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는데 술을 드시고 걸어서 오는데 집에서는 기다려도 안오는거야. 아침에 집으로 들어와서 보니까 옷이 다 빠지고 흙둘주가 되가지고 찢겨서 피가나고 그러더래. 왜 그러냐고 물어도 나도 모르겄다 그러더래. 그런 말을 내가 들었었거든. 여수 있다고 여수 들린다고.
B1 : 우리 마을에 도깨비는 없었나요?
A3 : 지금은 총소리가 나서 그런가 지금은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밤에 보면은 불이 일렬로 쫙 있다가 일로 갔다가 절로 갔다가 그런 걸 봤던 기억이 나. 도깨비가 그랬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나 다 없어졌어. 우리 국민학교 때 그랬어.
A2 : 들어보면 도깨비 홀린다고. 꽁꽁 묶어서 잡아놓고 담에 보면은 빗자루나 부지깽이었다고 그런 말이 있거든.
A4 : 어려서 보면은 생선 오징어 같은거 손질해서 묶어서 걸어두고 나두면 퍼려 시퍼려. 상해서 그런가 그런거 많이 봤었는디 지금은 없능가봐. 나는 어릴 때 신기했었어요 신기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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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미륵산 옆에 보면 용화산이 있잖아요. 미륵산이 높고 용화산이 낮잖아요. 용화산이 미륵산을 밀어서 산을 만들었다 이거여. 긍게 그게 동생이다 이거여. 용화산이 형이다 이거지. 동생이 형보다 크다는거지 난 그 말을 들었거든. 용화산이 밀어붙였다고.
A4 : 그래서 미륵이라고.
A2 : 그 전에 말을 들어보면은 있는 사람들이나 없는 사람들이나 모심어 살았잖아요. 소로 많이 했는데 머슴이 낮에 일을 하고 저녁에 소 꼴을 주러 가야하는데, 용화산가서 낫을 가져다가 풀을 한짐을 쳐왔는디, 주인이 보니까 그것이 전부다 인삼을 쳐온거더랴. 너 이 풀 어서 캐왔냐 그랬더니 산기슭가서 쳐왔다고 하니까 같이 가보자해서 가봤다는거여. 근데 그 머슴이 그 풀자리를 못 찾겠드라는거여. 밤새 자리가 똑같아져가지고. 그니깐 용화산에 인삼밭이 서마지기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지금은 인삼인삼 부르는디 예전에는 아이동자를 써서 동삼동삼 그랬거든. 근데 그 동삼이 변한다는거야 운데가 맞는 사람한테는 보이고 안 맞으면 안보인다는 그런 말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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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화산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알고 계신게 있으신가요?
A2 : 더 뭐가 있가니...어려서 11살이나 돼서 들은 이야기기 뭐. 우리 동네는 뭐 평범한 동네고 특징있게 뭐...큰 특징은 없는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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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들은 춘포역을 많이 다니셨나요?
A2 : 춘포역은 안쓰고 솜리역을 많이 썼지. 시방은 익산역.
B1 : 삼례역도 가까이 있는데 삼례역도 많이 다니셨나요?
A2 : 삼례역은 장 날이나 가고 안 다니고 주로 솜리역을 다녔지.
B1 : 예전에도 솜리역 컸나요? 금마가 컸다는 말이 있던데요.
A2 : 솜리가 더 크지.
A4 : 아무래도 인구가 많잖어.
B1 : 일정시대 때도 솜리가 컸나요?
A2 : 솜리가 더 컸지.
B2 : 버스가 차가 많이 없었을 때는 솜리까지 어떻게 다니셨어요?
A2 : 걸어다녔지. 양정고개라고 있어 바로 여기. 거기로 순 걸어다녔지.
B2 : 그럼 춘포역에서 이리로 가는거 보다 바로 건너가는데 더 빨라서 솜리로 가신건가요?
A2 : 빠르던 안해. 그 때는 생활권이 다 솜리야 전부다.
A4 : 삼례장도 일부는 갔겄지만 익산장이 크니까.
B1 : 춘포역은 장이 없었나요?
A4 : 춘포역은. 여그 사람은 잘 안갔어.
B1 : 그럼 일본인들이 작은 마을에 역을 세웠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A4 : 곡물이 많잖어~
B1 : 어르신 말씀을 종합해보면, 대장역은 조그만 간이역인데 곡식을 빼앗아가려고 만든 역이네요?
A2 : 이런 말도 있더만. 대장우체국 대장우체국 그러잖여. 대장이라는 소리는 일본놈들이 그 지역을 저들끼리 사용하려고 만들었다 이거여. 춘포우체국이라 고쳤지 인자. 일본놈들이랑 연락하려고 만들었다는거지. 한 동네로 있어.
B1 : 그럼 대장우체국이고 대장역이고 일본사람들이 편하려고 만든거네요.
A4 : 그렇지. 거그 가면은 대장촌이라 그러면은 춘포면소재지인데 지금도 징치포구라고 있잖어. 아직도.
A2 : 지금도 있어 포구쪽으로 가다보면 언덕밑에 있어.
A4 : 대장역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있을 때 편하게 사용하려고 만든거고 현실에 와서는 맞지를 않으니까 익산이 더 커버린거야
A2 : 이름도 바꿨잖어. 춘포우체국 춘포역 이렇게.
A4 : 그런데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거야. 그거 지어놨잖아 역사관같이 만든다고.
A2 : 우리 예전에 국민학교도 초등학교도 다 바뀌었잖어 다 그런셈인거지.

구술사진

안수마을


안수마을 왼쪽 김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