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1720년 경에 생긴 마을. 평야나 평야와 연결된 경사지(傾斜地) 또는 황무지를 ‘번들’, ‘번드리’라고 했는데 ‘번드리’도 그러한 지대이기에 생긴 명칭. “번드리→반드리→반도리→반도(返道).” 또 길이 사방으로 둘러 있으니 그런 뜻의 말에서 반도(返道)라는 한자 이름이 생기고 그에 접미사 ‘이’가 붙어 이루어진 이름인지? 인수국민학교가 있음. 농가 41호, 상업 1호, 기타 2호, 총 44호. (미륵산의 정기)
『미륵산의 정기』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
- 번드리 : 반도마을의 옛 지명이다. 황무지에 가까웠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부터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마을의 땅이 모래가 없는 진흙에 가까웠다. 수확량은 적으나, 예전부터 밥맛이 좋아 “번드리 마을의 쌀밥을 삼년만 먹고 죽은 귀신도 무게가 더 나간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진흙이 많아 벽돌공장, 기와공장, 옹기공장이 마을 주변에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2) 민속 :
- 천수답 : 경지정리 전까지는 천수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논농사가 아닌 밭농사를 많이 지었다.
- 술멕이 : 음력 7월 15일 백중날 기새배와 술멕이를 하였다.
- 우물 : 수도가 있지만, 아직도 우물을 이용한다.
- 만경강 : 밀물이 들어왔다 빠지는 5월 초파일엔 모래가 소금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마을 주민들 모두 만경강가에 모래찜을 하러 갔었다. 또한 밀물이 올라오는 날이면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 화평마을 : 주변 화평마을이 옛 춘포면사무소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춘포역을 따라 면사무소가 이전하였다고 한다. 춘포역이 현재 춘포역 위치에 있는 이유는 철도 개설의 용이함과 동시에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 삼례장 : 지리적으로 가까운 삼례장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 김재만(67세) - 1946년생
A2 : 배기주
A3 : 김길태
A4 : 김주업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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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들 반갑습니다. 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에서 마을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A1 : 저번에도 조사한다고 왔었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야한단 말이지.
B2 : 그럼 저희가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A1 : 말씀하셔요.
B2 : 옛날부터 여기를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 있나요?
A1 : 번드리. 이 근방을 그냥 합쳐서 편하게 번드리라고 불렀지.
B2 : 왜 번드리라고 했을까요?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은데요.
A1 : 그 전에 어른들 말 들어보면. 아씨가 없어도 살지만 장화없이는 못 산다 그랬어. 땅이 어찌나 질척한지 늘어붙어서 장화없이는 살 들 못했어.
A2 : 땅이 진흙땅이라 미끄러서 못 다녔어. 푹푹 빠지니까 장화없이는 못 산다고 한거여.
B1 : 여기는 땅이 왜 이렇게 질었나요? 만경강 물이 범람해서 그랬나요?
A1 : 그런 것은 없는디 땅 성질이 그래가꼬 모래도 없고. 그니깐 그 전 어른들이 각시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 산다고 한거여.
B2 : 그런 땅이 논농사짓기엔 좋은 건가요?
A2 : 논 농사에는 적합한데 많은 수확량은 짐작을 못하지만 밥맛은 최고다 그래.
A3 : 지금은 기술이 발전되가지고 진흙만 가지고 농사짓기에는 힘들지.
A2 : 그 대신 지금도 딴데에 비해서 곡출은 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밥맛은 최고지.
A3 : 밥 맛도 좋고 무게도 더 나간다해야지
B1 : 진흙에서 자라면 벼가 좀 두껍게 크게 영그나요?
A2 : 그건 몰라. 그 전 어른들이 여기에서 쌀밥을 삼년만 먹고 죽은 귀신도 무게가 더 나간다고 그랬어.
A3 : 그만큼 쌀이 좋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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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번드리 번드리 하다가 한자로 반도 했나보네요?
A2 : 옛날부터 반도였지.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다보니까 번드리 번드리 했지.
B2 : 저쪽 강따라 내려가면 둑이 있던데 여기에는 일본인이 쌓은 제방하고는 관계 없나요?
A3 : 이 제방? 일본놈들이 쌓았지.
B1 : 다시 흙 이야기로 돌아가면, 진흙이 이렇게 많으면 기와나 이렇게 많았을 것 같은데요.
A2 : 그니까 이 근방에서는 벽돌공장에서 흙을 사가는데는 최고로 알았어.
A3 : 기와공장이 여기 있었어. 옹기공장이 있었지. 근처에 있었는데 없어졌지.
A2 : 자꼬 물어봐 문답식으로 하면 되겠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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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물은 샘을 파서 드셨나요? 이 동네에 샘이 있었나요?
A2 : 그 전에는 샘을 팠지. 공동우물이 있었지.
B1 : 샘이 몇 개나 있었나요?
A3 : 세 개 정도는 있었지.
A2 : 세 개가 뭐여. 박탕기네 집 하나있고 여그가 하나 있고 여기도 있었어 이건이 집하고 ..명관이집도 있었고 많이 있었어.
B1 : 그럼 우리 마을은 물이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으시겠네요. 어떤 마을은 샘을 파도 물이 안나와서 고생을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A2 : 파기만 하면 나와. 지금도 전부 우물을 파서 먹어.
B1 : 아직도 우물을 이용하시나요?
A3 : 상수도가 들어왔는데도 안 먹어. 지하수가 먹을 만 하니깐.
A1 : 예전에 공동으로 쓸 적에는 우물을 하나 파가지고 5호나 6호는 먹고 냉장고가 없으니깐 김치에다 끈 달아서 넣어놓고 꺼내먹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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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러면은 우리 마을에서도 칠석날 우물 파내고 술멕이도 하시고 그러셨나요?
A2 : 그랬지. 백중날 많이 했어. 음력 7월15일날.
B1 : 그러면 술멕이 하시면 옆 마을 초대하고 그러진 않으셨나요?
A1 : 여기도 삼 개 마을을 합쳐가지고 농악도 치고 그랬었어.
B1 : 저 쪽에 올라갔더니 저 쪽에 기새배를.
A1 : 여기도 기세배가 있었지. 흔치는 않았어도.
A4 : 기새배라니?
A1 : 큰 기. 수꿩꼬랑지가 저 꼭대기에 이렇게 하고. 아무라도 못들어 장정도 힘들었지. 예전에 그거 하나 만들라면 돈도 많이 들었어.
B2 : 어린 시절에 한 번씩 해보셨어요?
A2 : 우리는 안했고.
A1 : 우리는 했는디? 동네서..배때기에다가 딱 대고 힘줘가지고.
A3 : 거시기를 엮잖여. 이렇게 동그라니 엮어서 허리춤에다 딱 대가지고 그거 갖고.
A1 : 끈을 달아가지고 삼각형으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랬었어. 그것도 없어진지 한 30년 될거여.
B2 : 그 위에 꿩모양이 있었던 거에요?
A1 : 장끼라고 꿩털뿌리. 그 놈을 이렇게 뾰족하니 대나무 끝어리에다가. 젤 위에 나무 위에다 꽂아서 한 마리 가지고는 안 되고 수집해서 만들어서 한거여. 보기 좋으라고.
B2 : 그걸 마을 단위끼리 모여서 하고 했어요? 아님 우리 마을에서만 한 거에요?
A2 : 어른이 있다 해가지고 그 마을 생기는 연수 따라 한건지 어쩐지. 나이 많이 먹은 형님마을이 있고 3개마을이 다녀가고 거기다가 절을 하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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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야기를 들어보니깐 농사짓기 땅도 괜찮았고 물 걱정도 없었는데, 마을에서 살기에 이게 없어서 힘들었다 이런거 있나요?
A2 : 경지정리 안했을 때는 여기가 어려웠지.
A1 : 수로시설이 안되어가지고 저 시방 학연이라고 그 집은 비가 안와가지고 논을 묵히고.
B1 : 그럼 여기 천수답이 있었나요?
A2 : 이 쪽은 전부다 밭이었었어.
A1 : 물이 없어가지고 일정 때 논두렁을 다 까가지고 밭으로 지어먹었지.
B1 : 일정 때는 여기가 밭이었나요?
A1 : 논인디 천수답이라 물이 없으니까 가물어도 내버려두기가 그러니깐 밭으로 지으라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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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일정시대때는 어떠셨나요?
A1 : 여기도 대장촌이라고 춘포. 일본놈들은 거기서 많이 살았고. 여기는 별로 없었고 소작농이 많았지.
B1 : 춘포 기차역 대장역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시는게 있으신가요?
A1 : 없어진지 얼마 안됐어. 시방 익산이지 이리나 전주로 다녔기 때문에 전부다 거까지 걸어 나와가지고. 삼례가 가까우니깐 삼례도 가고 그랬지.
B1 : 일정시대 때 어땠다는 말을 못 들으셨나요?
A1 : 그 때는 손님들이야 많았지.
A3 : 손님들도 손님이지만, 이 근방에서 일본 사람들이 걷어 들인 것을 거기에서 실고 다 나갔다고 그랬어.
B1 : 여기 춘포가 굉장히 일본인들이 수탈을 많이 했던 마을인가요.
A1 : 그렇지. 거기가 지주가 많았으니.
A3 : 쌀농사를 많이 하니까.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거기에서 열차에다가 집하를 해가지고 거기서 열차로 실어갔다는 말이 그런 말이 있어요.
B1 : 일본 사람도 굉장히 많이 살았어요?
A2 : 춘포소재지 근방에서 많이 살았지 지역에는 많이 안 살았지
A3 : 관리인으로 살았겠지. 많이는 안 살았어.
B2 : 금천 새천... 이런 말 쓰던데 들어보셨나요?
A1 : 금천이가 있었고 새천이가 있었고..
B2 : 일본사람이요?
A1 : 일본사람이 그니깐 지주.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일본사람들이 다 선생질 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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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방죽이 강가에 쭉 생겼잖아요. 방죽에 얽힌 이야기를 혹시 아시나요??
A2 : 춘포가 있지.
B2 : 거긴 진짜 도깨비가 나와서 도깨비 방죽이라고 한건가요?
A2 : 모르지. 그 신호 있잖여. 신호 대장촌. 거기가 도깨비방죽이 있었지 근데 다 없어졌어 인자.
B2 : 도깨비 방죽이란게 따로 있었어요?
A1 : 있었지. 철길 밑에 시방은 다 밀었지?
A2 : 얼마 전에 밀었지.
A3 : 농사짓기 힘드니까 땅을 파서 물을 가둬놓고 저수지를 쓴 거야. 저수지로. 인공으로 만들어서 물이 부족하니까.
B2 : 그 전에는 방죽이 많이 있었어요?
A2 : 많이 있었지.
B2 : 방죽에 무서운 이야기나 신기한 이야기 있나요?
A2 : 요즘 사람들은 몰라. 그 근방 사람들 노인 90세 된 사람들 머리가 다 망가져서 실제로 몰라. 알라고도 안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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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만경강이 여기서 멀리 있나요?
A3 : 여기선 얼마 안돼. 한 2키로?
B1 : 그럼 혹시 만경강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A2 : 그런 것은 없고 모래찜 같은 것은 있지. 5월초파일에 했던가. 5월달이던가. 여기 사람들이 전부 다 가서 그때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였어.
A3 : 그 전에는 모래가 많이 있어가지고.
B2 : 모래찜이 모래로 뭘 하는 건가요?
A3 : 밀물이 들어왔다 빠지고 들어왔다 빠지고 하니까 모래가 짜. 짠 모래가 신경통에 좋다고.
A2 : 바닷물이 호수가 거기까지 와. 물이 들락날락했었어. 그전에는 지금도 그럴테지만 모래가 묻히니깐 짠 물이 있었지. 그 전에는 5월달인가 4월 초파일에 꽉 찼었어.
A3 : 조수가 짠 물이 여기까지 올라와가지고 가을에 메기도 많이 잡고 했었지.
A2 : 사흘만에 한 번씩 들어왔었어. 밀물썰물이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오잖아 물이. 그럴 때 고기가 따라 올라왔었지.
A2 : 조수가 한 번씩 올라왔다 그럼 바글바글 했었지.
B2 : 둑이 생겨도 바닷물이 올라오나요?
A1 : 응 와. 지금은 여기까지는 안오지만. 왜 그러냐면 춘포면소재지 앞에다 막아버렸어 금강하구둑 같이 그렇게. 그렇기 때문에 물이 못 올라오지 못하지.
A2 : 배가 거기까지 들어왔다 하잖아. 익산시까지 들어갔어.
B1 : 익산시까지요?
A2 : 익산시 역전 옆에 모현동 배산이라고 있잖여. 거가 고리가 생겨가지고 배가 거기까지 들어왔다 메고 그랬댜. 우리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긴데.
B2 : 그럼 우리마을 근처에 포구는 없었나요?
A2 : 여기에는 없어. 거기밖에 없었어 배산.
B2 : 지금 생각해보기에 물이 차올라서 모래찜도 하고 고기도 잡았으면 또 다른 신기한 일도 있었겠어요? 지금은 신기하지만 그때는 당연하게 했던 일들이요.
A2 : 그 때는 뭐 어땠는지도 모르고 내려오니깐 하는거지. 다리 놓는 공사를 할 적에 흙을 퍼다가 부어서 쌓거든.
A3 : 좌우간 햇다리 그것도 일정 때 놨다고 하더만. 한 80년 좀 더 된다그려. 나 어릴 적 나 낳을 때부터 있었어.
A2 : 내가 제방 쌓다가 기어가는데 도로코가 지나가서 다리가 다쳤거든. 그런거 보면 80년은 안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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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를 번드리라고 하잖아요. 옆 마을은 뭐라고 했나요?
A2 : 궁월이라 했어.
B2 : 궁이 있었나요?
A2 : 아니 활궁자하고 달월자여. 달 같이 생겼다고 궁월이라 했다더만.
A3 : 궁월마을은 내가 저 동네서 나고 컸는데, 왜 궁월이냐면 그 때 집을 짓는데 집이 활 같이 휘어졌어. 반달처럼 지어졌었어.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지어진거지.
A4 : 마을이 그렇게 생겼다고 그리 지었다는디? 집을 어떻게 그렇게 지을 수가 있어?
A3 : 그럴 수 있지. 집을 앞 뒤로는 안 짓거든. 집을 하나 지으면, 그럼 다른 집을 그 집 옆으로 지어. 지금도 그래.
B2 : 이유가 있나요?
A3 : 앞 뒤로 지으면 서로 경쟁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똑같이 나가자해서 옆으로 지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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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또 주변에 화평마을이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춘포의 중심이 면사무소가 아니고 화평이라고 하더라구요
A2 : 면사무소는 여기있었냐면 여서 궁월마을이라고 지금의 그 터가 회관된 바로 그 옆에가 원래는 춘포면사무소 자리여.
A3 : 근디 왜 그것을 뺐겼는가 몰라.
A2 : 일본놈들이 와서 그랬지. 철도 때문에 그랬지.
B1 : 그럼 철도를 왜 이 쪽으로 안내고 저 쪽으로 냈나요?
A2 : 왜냐면 철도가 이 쪽으로 놓이면 곡선이 되니까 직선으로 놓으려고 그랬지. 그래서 면사무소 뺐기고 춘포역 때문에 일본놈들이 거기서 거주를 했기 때문에 거기가 발전이 된거지.
A3 : 이 근방 어른들이 땅이 울린다고 반대를 했다고 하더만.
A2 : 그 때 반대나 할 수 있었가니.
B1 : 아 어르신들이 땅이 울리고 철도가 보기 싫다고 반대를 하신거군요?
A3 : 그런 말도 있었지. 짐승도 못 키우고. 왜냐면 짐승이 산란을 못해 땅이 울리니까.
A4 : 사람은 많이 낳는데. 우리 학교 다닐 때 철도 옆에 애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농담이 아니고 쇠를 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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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어려서 기차옆에서 놀고 그러셨나요?
A4 : 기차역에서는 안 놀고. 우리가 학교를 춘포초등학교를 다녔는데 5~6키로 되거든. 거기까지 걸어서 다녔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다녔어. 학교 갈라면 철도를 넘어야하는데 기차가 오면 반가워가지고 손을 까불려주면 동네사람들이 바깥에 나와서 그렇게 재밌었어. 차가 오면 막 뛰어가.
A3 : 걸어가다가 차가 오면 막 뛰어가. 열심히 쫒아가고 그랬지. 지금이야 가면 가는가보다 오면 오는가보다 하지 그 전에는 쫒아들 다녔어.
B2 : 재밌으셨겠어요
A4 : 재미보다 학교가기가 고역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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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기 분들은 시장을 어디로 다니셨나요?
A3 : 삼례로 갔지. 3일 날 8일날. 여기 춘포는 발전이 안되더라고.
B1 : 왜 그랬을까요? 일본인들이 많으면 발전이 되지 않나요?
A2 : 그 전에는 그랬는디 지금은 시내버스가 돌아다니니까 외지로 다 빠져가지고. 시내버스 때문에 배려버렸어.
B2 : 강도 있었고 기차역도 있었고 일본인들이 농사도 지었으면 삼례나 익산보다도 더 나았을텐데.
A2 : 기차는 안 왔지. 철도따라서 철길만 생겼지. 교통이 좋으니까 다 그리갔지
B1 : 예전에도 이리역도 솜리가 조그만했다고 하더라구요. 금마가 컸지 이리가 크진 않았다고 하던데요.
A3 : 크기는 이리가 컸지.
A2 : 금마가 향교도 있고 군인이 있어서 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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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러면 일본인이나 일정시대 이야기 알고 계신거 있으신가요?
A2 : 일정시대 때 농사지으면 다 뺏어갔잖여. 뺏어가려고 오는 날이 있어. 나락을 모래밭에다 묻어나버려. 그것을 간 다음에 그것을 빼다가 도구통에 찧어서 먹었어.
A3 : 사헌이라고 있어가지고 중개인이여.
B2 : 기억나는 일본인 이름이 있으세요?
A2 : 근창이가 있었고 세창이가 있었고. 그 사람들한테는 임대지. 사헌이라는 그 중개인이 있어가지고 농사를 지으면 돈주라고 와. 우리는 비싼디 그 사람들은 뺐어갈라고 더 달라고. 우리는 안 뺏길라고 나락을 감추기도 하고 오죽하면 마을 우물속에 감추기도 하고 그랬어. 일본인들은 더 뺐어갈라고 하고 안 준다고 삼일인가 있고 그랬었어.
B1 : 일본인들이 도지를 대충 얼마나 걷어갔나요? 8할9할 걷어갔나요?
A2 : 얼마나 될랑가는 모르겠지만.
A3 : 가져가면 70%가져갔나봐 봐서 이 정도 가져가면 내년까지 안 죽고 살겄다 판단해가지고 가져간거여. 싹 가져가면 죽으라고.
B1 : 그러면 일본인들이 큰 농장을 두 개를 지었다고 하셨는데 돈 주고 산 건가요?
A2 : 돈 주고 샀는데 제 돈이 아니지. 먹고 살기 힘드니까 어느 정도 주고 가져가야하는데 탈취하다시피 가져가니까. 여기서도 논 한마지기에 쌀 한가마니 두 가마니 밖에 안 줬어. 돈을 주고선 지어먹기는 니네가 지어먹어라. 우리는 속 보여도 살기가 곤란하니까 다 팔았지.
B1 : 처음에는 일본인이 논을 살 때, 돈도 주고 니네들이 지어먹어라해서 도지도 조금만 받다가.
A2 : 그렇지 그러다가 갈수록 올려가지고 많이 받은거지.
B1 : 그렇게 하면 땅주인은 소작농이 되었겠네요.
A2 : 소작농이 됐지. 그래도 안 팔은 사람들이 있어. 안 팔은 사람들은 자기터라고 했지 자기터.
A3 : 자기 논이라는 거지. 일본인들한테 얻어 짓는 것은 소작농.
B1 : 그리고 뺏기는 것은 도지라고 하고요?
A3 : 긍게 일본놈들이 간 뒤에도 소작하고 자기터하고 가격이 틀렸잖어.
B1 : 해방 이후 일본인 농장의 땅은 어떻게 되었나요? 급하게 팔고 갔나요?
A2 : 팔도 못하고 정부에서 인수해가지고.
A4 : 지금도 일본땅이라는 소리가 그런 자리가 많이 있지. 국유지라고. 것도 우리가 나라에 돈을 주고 사야해.
A2 : 현재 일정 때부터 짓던 사람 소작농에게 일년에 얼마씩 내라 해가지고 저렴하게 싸게 지을 수 있게 해줬지. 상환량을 다 완료를 하면은 분배를 해줬어.
B1 : 정부에서 땅을 거두어 판 건가요?
A2 : 경작권은 원래 짓던 사람에게 주고, 영구상환을 등급을 해가지고 예를 들어 15년간을 했다 그럼 그 기간동안 얼마간 돈을 내게하고 그 기간을 다 채우면 자기땅으로 해줬어. 상환량이 있었어. 일정 때는 도조고 해방되서는 상환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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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일정시대에 철도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A2 : 인력으로 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봐야지.
B2 : 철도공사하다가 큰 사고나 신기한 일이 있다고 들으신 이야기 있으세요?
A2 : 그런 건 없었고
A3 : 뭐 사고난 것은 그 폭발사고나 알까. 그 외는
B1 : 그 때 사고 났을 때 그 펑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나요?
A4 : 그렇죠. 여까지는 들렸어.
A3 : 검은 연기가 여까지 뻗치고 그랬지.
A4 : 한 30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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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어르신 어머님께 들은 재미난 이야기 들은 거 있으세요?
A2 :허허..그런거는..
B1 : 우리마을에는 큰 나무가 없나요?
A3 : 그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가 오산 한 번 나왔어.
B1 : 그 이야기 좀 부탁드립니다.
A3 : 아유.. 난 잘 몰라요.
A4 : 심방다리?
A3 : 어 심방다리인가 뭔가..
A4 : 그건 모르겠고 심방다리는 비가 많이 와가지고 못 건너가고 거기서 신방차려서 잤다해서 신방다리라고. 그 전에는 돌다리식으로 건너는데 비가 많이 오니까. 그런데 난 잘 몰라요.
B1 : 알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오산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소중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반도마을 배기주,김길태,김주업,임용진
반도마을 좌측 엄정석, 우측 송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