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구담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구담마을
구술자 엄정섭(1931)남자
구술자 송길문(1949)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철도이야기
구술일시 2012-08-23
비고 면담장소 : 춘포면 춘포리 구담마을 송길문 이장님 댁
면담시간 : 2012년 8월 23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구담(九潭, 구담리) : 지형이 거북과 같다해서 전에는 ‘龜潭’이라 했는데 ‘九’자로 바꿔졌다. ‘구담’의 ‘담’은 ‘뜸’의 변한 말이니 ‘거북뜸’이라는 말.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대장촌 : 대장이라는 이름은 일본사람이 만들었다. 현재는 춘포로 이름이 바뀌었다. 옛 이름은 바닷물이 돌아간다는 뜻에서 회포이다.
- 쌍강포 : 장사꾼들이 드나들던 포구이다
- 용당수 : 용이 올라갔다는 못이다.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용당수라 한다.
- 도깨비 방죽 : 회화에 있는 방죽이다. 도깨비가 나온대서 도깨비 방죽이라 불렀다.
- 일본인 농장 : 새천, 금촌, 전판 이렇게 세 개 농장이 있었다. 각각 호소까와, 이마무라, 다사까 세 사람 소유의 농장이다. 이 중에서 제일 큰 농장이 새천 농장이다. 전판 농장은 황족의 친척이 운영했다고 전해진다.
- 회화 : 제방을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이리 돌아서 갔다고 해서 회화이다.

2) 전설 및 민담 :
- 철도 이야기 : 공출한 쌀을 군산으로 옮길 때 철도를 이용했다. 때문에 대장역 창고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주로 학생들이 많이 타고 다녔다. 등교시간엔 자리가 없어 화물칸에까지 탔다. 왜정시대 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루고시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토문이다.
- 대장촌 텃새 : 기차를 타기 위해 타동네에서 오는 학생들을 대장촌 학생들이 많이 괴롭혔다.

구술채록

A1 엄정섭. 1931년.
A2 송길문. 1949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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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왜놈들이 언제 어디서 있었냐, 춘포에 가믄 이 호소까와, 저 새천이지, 우리나라 말로 허먼, 새천 농장이 있었어. 금촌 농장이 있고 새천 농장이 있고 전판, 다사까, 전판 농장이 있고 그맀어. 금촌, 이마무라, 일본 말로는. 그러고 다사까라고 전판, 전판이라고 있어, 다사까, 그것은 학교 옆에 저기 있는데 그 사람이 일본 천황의 황족이여. 그런디 젤 부자가 새천 농장인디, 이 근방이 전부 새천이가 땅을 도조 받아가 버렸어. 그놈들이 침략만 해가지고 지(자기) 걸로 다 만들었어. 그리가지고 우리는 반절씩은 다 일본놈들한티 뺏겼지, 왜정시대에. 그러고 새천 농장 아들이 저 호소까와, 일본 총리를 했어. 호소까와 총리가 있었어. 새천 농장 아들이거든. 그 사람이 초등학교 때까지 여그서 태어났어. 난 안 봤는디 여그를 왔어. 한국에 일본 총리가 와가지고 내가 태어난 디라 혀가지고 춘포를 왔어. 와가지고 지금 한 이십년 됐는가? 호소까와가 일본 총리헐 적에, 그게 새천 농장 아들이여. 그리가지고 그때 늙은이들 몇, 친구들을 신촌 사람 만났어. 지금 그분들 다 돌아가셨는디, 총리가 와서 몇 사람을 만났어. 어렸을 적이 꾀복쟁이 친군게. 새천 농장이 지금 공판장 거그, 영단, 바로 거그가 새천 농장이고.

A2 : 공판장이라고 그려, 그전에는 우리가 영단이라고 불렀어. 그 옆에가 일본집이 있었어.

B1 : 그 농장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시겠습니까?

A1 : 새천 농장은 제일 커. 그리서 내, 지금은 대장촌이라는 것은, 이름은 없어졌잖여. 춘포리로 돼있어. 왜그냐면 대장이라는 것이 일본놈들이 만들었어. 큰 대 자, 마당 장 자. 그냥 농장이 그창허니 이리 근동 것이여, 전주, 김제까지도 그 새천이 싹 가지고 있었어. 그른 게 큰 대 자, 마당 장 자, 그냥 그창혔어. 거기는 머슴이 한 삼십 명 되았어. 일급 머슴은 호말 타고 댕겨. 그러먼 여그서 면장보담도 권리가 좋았어. 그 사람 가먼은 농사 짓는 사람들은 그 사람한티 쩔쩔 매야 혀. 세금 좀 감헐라고.

B1 : 금촌 농장은 어디 있었습니까?

A1 : 지금은 저그 중촌 저 그전 전병구 씨 살던 집서, 그게 겨. 지금 중촌에 있는 게 그게 저 금촌, 이마무라, 이마무라 농장이 거그가 있었어.

B1 : 전판은 지금 어디 근처입니까?

A1 : 전판은 학교 옆엔디 그거는 뭐 큰 농장은 없었어. 지금 집도 없어졌어. 춘포초등학교 옆에. 그거 집이 그창히 컸어. 우리 학교 다닐 적에는 구렁이가 막 그냥 10매타 되는 놈이 살았다고도 혔어. 그 저 전판네 집이는 그게 황족이여, 일본놈 천황의 그 집안들이여. 그른 게 거그는 권력은 많이 가지고 있었지.

B1 : 그 구렁이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A1 : 그 저 똘이 있는디 나무가 그냥, 몇 백 년 된 나무가 강가시로 있응게 거기는 무숩다고 그랬어, 무숩다고, 똘 옆이가. 긍게 그런 구렁이가, 큰 구렁이가 산다고 그랬는디 몰르지. 이야기로만 들었어. 근디 일본사람 집이라 누가 들어가도 않고. 그 집 밑이가, 일본사람 집 뒤에 가서 그 나무가, 그 숲 그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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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공출된 쌀은 전부 어디서 가져갔습니까?

A1 : 그건 군산으로 옮겼지. 대장촌 정거장이, 춘포역이, 그전에 대장역이라고 혔지. 거그서 군산이로 실고 가. 그른 게 막 대장역이 그 창고가 그창히 커. 시방은 다 그 필요도 없어진 게 손님도 읎고 헌 게 인자 정거장 없어져 버렸어. 그래서 저 이리서 군산선을 그리서 만들고, 전군도로가, 군산서 전주가는 도로가 일등 도로여. 고속도로 나오기 전에 왜정시대 만들어진 거여, 전주서 군산까지 댕기는 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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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부터 춘포역이 폐쇄되었다.)

A1 : 아, 저 요기 사람들도, 전주대 전북일보 사장, 우석대학 이사장, 그 사람이 서경석이도 대장역으로 댕김서 전주 학교를 다녔어. 지금 전고지, 옛날 북중학교를 여그서 걸어서 다녔어. 버스가 없으니까, 옛날은. 내가 대장역에 근무헐 적에는 그창했어, 손님이. 17살에 철도시험을 봤어. 내가 북중학교 다니다가 어려웠어. 거기 다니다가 해방되아가지고 우리집이 살림 못헌 게 나는 그냥 2학년 다니다가 45년도 4월달에, 그전에는 4월 달에 중핵교 입학을 했어. 4월 달에 입학혀가지고 8월 15일 날 해방됐잖여. 긍게 미군이 9월 달쯤 들어오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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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항복하게 된 역사.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B1 : 해방되고 대장역 풍경이 어땠습니까?

A2 : 내가 알기로는 역전을 삼십리, 쇠평리 저짝서도 기차를 타러 댕겼어, 우리 동네 앞으로. 긍게 우리 동네 앞에도 그전에 보먼 학생들이 빡빡히 거기 지나갔어, 열차를 탈라고. 말허자먼은 열차를 탈 디가 없어, 차가 없으니까.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박작박작 했지. 또 인자 뭐 차도 없으니까 기차만 이용했잖아, 옛날에는 다. 그러니까 책가방 매고 말허자먼 쉽게 얘기해서 그 옛날에는 뭐 이렇게 저 곡간 차가 많잖여, 또. 거그 다 타고 그 야단들이었어. 말허자먼 저 곡석, 화물 같은 거 뭐 짐 싣는디도 인자, 그 안에 다 못 타니까 막 고것도 타고, 익산에 인자 학교 다니고 전주가고 인자.

A1 : 많았어, 학생들이.

A2 ; 지금은 그런 패싸움이 없응게 그렇지만은 옛날에는 동 하나 지내를 갈라먼, 좀 안 좋으먼은 막 주먹으로 때리고, 긍게 이 동네 지내갈라믄 양 죽기사 벌벌벌 떨고.

A1 : 말허자먼 그케 저 텃새를 했지.

A2 : 텃새가 젤 심헌 건 대장촌이지, 춘포 소재지, 말허자먼. 거그가 저 기차 타는 데 아녀.

(왜정시대 역에서 일하던 일꾼들을 마루고시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말로는 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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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지금도 저 마을이, 일곱 개 마을이여, 우리 춘포리가. 역전, 중촌, 회화, 신촌, 여그 구담, 저그 저 신평, 춘포리에 마을이 일곱 개여.

B2 : 회화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만경강 물이, 조수가 지금도 여그 저 뭣허먼은 들어와.

A2 : 그리서 가다보먼은 다리 막 건너지. 막 건너서 천돈 좌측으로 보먼은 옛날에 소금배 묶은 것이 있어. 소금배 묶은 그 회삿물 둑에 크게 있어갔고는 쇠가 이렇게 박어 있어. 여그서 막 다리 지냄서 좌측으로 여그서 가는 얘기여.

(만경강을 기준으로 각 마을의 위치를 약도로 그려주심.)

A1 : (약도를 보며) 그러면 지금 저 공끄리(말뚝) 있다는 것이 여그가 있어, 이 다리 막 건너먼 여그 가서 공끄리가 있어. 그건 왜 그랬냐면은 요기 저 바닷물이 조수가 들어오면 이것이 회화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여. 왜 회화라 혔냐는 이 돌 회 자, 회화여. 바닷물이 돌아서 가. 그 담에 왜 춘포냐면은 옛날 이 제방을 만들기 전에 경계가 이렇게 생겼었어. 그것을 인공적으로 만들은 것이 이 만경강 제방이여. 이것이 제방이 완공되기를 1914년도에 했어. 그러니까 요것(말뚝)은 이 다리가 놓기 전에는 송판때기로 다리를 놨어. 송판때기로 이케 놓으면은 침수가 되믄은, 옛날에는 제방을 왜 만들었냐먼은 침수가 되먼은 이 들판이 전부가 물바다가 된 게로 왜놈들이 측량을 해가지고 이것을 만든 거여. 그래가지고 이 다리가 송판으로, 판자때긴 게 침수되먼 나가잖여. 요그(말뚝) 다가 다리를 묶어놔버려.

(제방공사 후에 몇 개의 마을이 김제로 배속되었다. 제방공사 전에는 강의 안쪽에 있던 마을이 제방공사 후에 강 건너편으로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

(계속 약도 그리시는 중.)

A1 : 회화라는 건 원래 춘포리를 회포리라고 했어, 회포리. 일본놈들이 대장리라고 맨들고 옛날 말로는 회포리여. 왜냐먼 바닷물이 횡 돌아간다 해서, 포구가 돌아간다 해서 회포리. 그런 게 이 회화도 돌아가는 돌 회 자.

B1 : 장사하는 포구는 어디 있었습니까?

A1 : 만경강 없을 적에 고깃배덜, 뭐 갓배들이 와가지고 우리 동네 옆에, 여그 가서 시방 쌍강리라고 일곱 가구가 있어. 여그 보고 쌍강포라고 그랬어. 동네 이름이 쌍강리라고. 배가 여그도 가고 많이 우그까지 갔어. 옛날은 요것이 굉장했었어. 또 회화 요런 디 가서 젓배들도 오고 인자 장사치들도 댕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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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산에 효자비가 있다. 나중에 제각을 세워 복원할 계획.)

B1 : 여기를 왜 구담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1 : 그건 그 모양이 거북, 거북 구 자, 구담이여. 우리 동네로 들어오자면 저그서 이렇게 보먼은 이렇게 거북 같이 생겼어. 거북이 등처럼. 거북 구 자, 거북이 형탠디 그걸 인자 거북 구 자 쓰기가 귀찮은 게 인자 아홉 구 자여. 옛날은 거북 구 자여.

B1 : 근처에 특이한 지명은 없습니까?

A1 : 용당수는 용이 올라갔다고 그맀어. 여그 저 똘이 하나 있어, 쪼그만 못. 인자 그전부터 용당수라고 헌 게 옛날에 뭐 용이 올라갔다고 혀서 용당수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그건 뭐 하나의 전설이여.

B1 : 도깨비 방죽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1 : 응. 도깨비 방죽은 저 회화에 있어. 우리 학교 다닐 때 보먼은 도깨비 나온다고 혀서 도깨비 방죽이 거그가 있어.

구술사진

구담마을 엄정석


구담마을 엄정석, 송길문


제방 놓기 전의 만경강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