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용남(龍南, 용내미) : 용남은 동룡리의 서남간에 있으니 그래서 붙은 이름. 남쪽 못에서 용이 올랐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용남 : 용이 승천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밀려졌다. 그래서 용남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성묘산 : 성이 있었던 곳이다.
- 투구봉 혹은 두리봉 : 전쟁이 관련이 있던 곳이다.
- 말매산 : 말을 매놨던 곳으로 이 역시 전쟁과 관련이 있었던 곳이다.
3) 전설 및 민담 :
- 이몽룡과 소릿길 : 예전엔 한양을 가려면 마을 마을 앞길을 지나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를 끌고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소릿길이라고 불렀고, 이몽룡도 이 길을 지나갔다.
- 우물과 아들 낳기 : 우물 청소 시에 마지막 우물을 푸는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4) 민속 :
- 술먹이 : 칠석날 했다.
- 기세배 : 기세배도 했다고 한다.
- 신랑다루기 : 새신랑이 마을에 오면 신부가 먹던 샘에 절을 시키기도 하고 하면서 길들였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 김원배(1939)
A2 : 김진환(1960)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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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마을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용남 마을의 전설이나 이야기를 알고 계신게 있습니까?
A1 : 뭐 좋은 일들 허고 계시고. 저희 마을을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내가 이 지역에 이 마을에서 나서 저기 칠십 평생을 살고 있는데, 이 마을에서 선대들이 그, 내 후손들한테 이 마을의 유래와 지역의 형성 또는 역사성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자료라든지 후세들한테 알릴 수 있는 그런 체계가 없었어요. 그거는 지금 원대에서 우리 지역 뿐만 아니라 익산 지역 전체를 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역사성에 대한 것을 이렇게 일을 허고 계시는데 전에는 뭐 우리가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전혀 이런 자기네 지역이나 어떤 역사성 그런 것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어요. 우리 왕궁같은 데는 다 알다시피 백제가 오고 마한의 문화가 이렇게 해서 곁들여 있고 많은 지금 유적지도 있고 그런데 지금 이 지역에 이름을 좀 보면은 분명히 여기가 옛날에 어떠한 전쟁-터가 아니었던가. 그거는 여기서 한 이키로 쯤 가면은 성묘산이라는 산이 있어요.
B3 : 석묘산입니까?
A1 : 성. 성묘산. 흙토짜에다 이룰 성. 성. 지금 그 성이 이렇게 남아 있고 성이 되 있는데 그 성이 어느 시대에 왜 그것이 맨들어져있는 자료가 없어. 응? 그런 큰 성이 있는데. 산에가. 작지도 않고 산도 많이 둘러가면서 성이 있는데. 또 그 성 옆에는 투구봉이라고도 허고 두리봉이라고도 허는데 그런 봉우리가 그 앞에 하나.
B2 : 투구봉이라고, 혹은 또?
A1 : 두리봉. 우리 마을 바로 앞에 저 있는 산이 말메산이라고 이렇게 이름이 전해내려오고 있거든요. 좀 그런거 보면은 전쟁과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허다. 옛날에는 그 성을 그, 전쟁을 허기 위해서 전부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쌓여져 있는데 지역적으로 그런 것이 있는 걸로 봐서는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전쟁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B2 : 말메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A1 : 말을 메놨다. 말을 메는 자리다. 말. 말을 메놨다 해서 말매산.
B2 : 투구봉은 투구를 닮아서 투구봉입니까? 아니면 투구가 발견되서 투구봉입니까?
A1 : 어쨌든 지금 그렇게 되어있는 걸로 봐서 전쟁과 연관이 됐지. 연관이 됐지 않으면 안나는 나의 생각이.
B2 : 어르신 생각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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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리고 우리 동네가 원래 용냄. 원래가 용내미를 줄여서 용남이라 하는데 용내미. 용내미. 주변에서 다 부를때는 용내미 용내미 했는데 그것이 줄여가지고 용남마을로 지금 이렇게 허고 있는데.
B2 : 그럼 우리 마을에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까?
A1 : 저기 저수지가 이렇게 막힌지가 한 년돌 봐서 육십년 가까이 되는데 그때가 왜정 때. 왜정 때 저수지를 막아놨는데 그 전에는 에 요 앞에 큰 하천이 흐르고 저 안에 가서 웅동이가 있었던 걸로 알어. 웅덩이. 지금으로 말하면 수리조같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제대로 뜻을 못 이루고 내려졌다. 그서 용이 내밀었다. 그래가꼬 나온다고 내밀었다고 허거든요. 그래서 이름이 용내미다. 이렇게 지금 마을 이름과 유래는 그렇게 해서 내려온 거 같아요.
B3 : 그러면 저쪽 동네 금광도 알고 계십니까?
A1 : 거기는 금광이라고 하기 이전에 능지울이. 능지울이라고 했는데. 능지울이라는 얘기는 그, 뭐 지금 그 마을 사람한테 들어본 얘기는 아닌데 어떠한 산 능과 관련되있지 않냐. 성묘산과 그 능지울이라고 하는 동네 뒷산과 연결이 되있어. 연결이. 그러면 산 릉을 따라서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B3 : 용남에도 산이 있었습니까?
A1 : 있지 산이 있지 지금. 여기는 지금 저 뒤에 있는 마을에 시대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시대 뒤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시대산이라고 불러. 또 저 시대산 건너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이 용화산이라고 해. 용화산.
B2 : 금마와 왕궁 북부는 용과 관련된 얘기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 마을의 기세나 혈이 다른 마을보다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을의 혈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A1 : 인자 그러니까 여그 저 저 제방을 싸서 저수지를 맨들게 된 것도 지형적으로 주위에 산세가 좋고. 또 여기에 그 저수지를 축조를 허게 되면은 인자 생활용수 농업용수를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다가 저수지조를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저수지를 만들면서부터 이 근처에서 그 옛날에는 그, 토지주들이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일 재산이 많기 때문에 양반이고 또 그 사람들만이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기 돼있어. 그래서 옛날에 각 씨족들의 종중. 종중이라고 허는 재산같은걸 보면 그때는 눈에 뵈는대로 저그서 이만큼이 내땅이다 하면은 그사람들 땅이었어. 지금과 같은 소유가 이렇게 분명히 자기의 소유가 되어 있는게 아니고 우리가 옛날에는 토지의 개념이 없을 때. 또는 어떤 재산의 형성과정. 저 산을 내가 많이 가질라고 해야되겠다 이전에 그 때는 눈에 뵈는대로 저만큼은 내것이다 했으면 자기 것이 되버리는거여. 참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했는데. 이 얘기는 맞아요. 이 얘기는 맞아. 그런데 여기도 보면은 이 주변에 진천 송씨의 씨족이 여기 와서 정착을 하면서 이 주변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 내 얘기대로 이만큼은 내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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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이곳은 진천 송씨의 집성촌입니까?
A1 : 아니 이 마을에 진천 송씨의 가장 재산이 많고 씨족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살았어요. 그래서 우리 동네는 다른데에 비교해서 지금의 없던 아주 큰 기와집에다가 진천송씨의 재산이 많은 씨족들이 전체 우리 마을 주민을 다 장악하고 있었어. 그러면 이 마을만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 근처를 전부다 장악허고 있었어. 근데 그 사람들이 여기 토지개혁이 되고 또 여가 저수지가 축조되고 허면서 용의 혈을 끊었다. 저수지를 여그다가 막으면서 용의 혈을 끊었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전부다 망했어. 실제적으로. 뭐 그- 이자리만 해도 여그 이 땅 자리만 해도 여기가 큰 기와집 하나 있었고. 그 옆에 큰 거구가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얘기대로 용의 혈이 인제 뭐 지금도 풍수지리설로 봐가지고 이렇게 혈을 말하자면 혈이라고 하면 어떤 능을, 능선을 얘기를 하는데 그 혈을 끊어서 그 사람들이 망했고 점차 씨족의 모든것이 소퇴되어져 갔다. 이것도 연관이 있는 거 틀림 없어. 그러믄 인자 용은 뭐 주로 우리가 나 뿐만이 아니라 용을 실지 본사람이 없어. 안그래요? 그래서 난 그렇게 생각해요. 용을 봤다는 사람도 없어. 그리고 어떠한 상징적인 그런 거지 실제 용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데 어쨌든 저 안에가서 용이 살고 용이 하늘로 올라갈려고 생각. 대부분 용은 뭐 그냥 이렇게 용이 죽었다고 허는게 아니라 용은 승천했다고. 우리지역 뿐 아니라 어딜 가든지 용이라는 것은 승천을 했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그래서 여기서 용이 승천허기 위해서 이렇게 내밀, 고개를 내밀고 여러번 시도를 허다가 못했다. 그런 것은 이 주변이 산세가 수려허고 또 그렇게 해서 맑은 좋은 물이 흐르고 그러기 때문에 거가 소재주가 또 있었는데 그래서 거기서 용이 살았지 않것느냐.
B2 : 산세가 좋고 많은 전설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뭐가 또 있습니까?
A1 : 그걸로 인해서 어떠한 전통적인 그런 옛날 행사를 보자고 보자면 특별히 우리 마을- 마을에서는 농경문화. 농경문화. 농경문화가 딴데도 그랬겠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딴데 비해서 협동심이 강허고 또 농사를 지을 때도 농요. 인자 농요를 부르고 또 지금 많이 얘기하고 있는 두레. 두레. 내가 어렸을 때 보면은 그 지금과 같은 인자 협동적인 그런 농사 방법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날짜를 잡어서 한집부터 이렇게 쭉 날짜대로 그렇게 뭘 논을 갈고 모를 심고 수확을 허는 과정이 타 마을에 비교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농경문화가 아주 발달된 마을이었습니다. 그거는 일을 허면서도 계속 농악을 이렇게 울리가믄서 일을 허고 부녀자들은 그 새참이나 먹을 것을 다 만들어서 먼데까지 이고 가면서 해주고 그런 것을 내가 봤을 때 인자 특별히 뭐 저 어떤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문화적인 행사는 없는데 이 마을만이 이 뒷 산에 가서 해마다 산제를 지내. 산제. 산 이, 저 신령한테 우리 마을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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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시대산에서 산제를 지냅니까?
A1 : 아니 마을 뒷산에서 지내. 정원달. 음력 정초에. 정원 삼일 초 삼일날.
B2 : 시대산 얘기를 꺼내서 그러는데 시대산에 있는 절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A1 : 그것은 그쪽 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알것이고 그 절이 시대절, 뭔 절이라고 했더라? 시대 간 그 이름이 있는데-. 용화산이 있고.
B2 : 이 앞에도 동통사라는 절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들어보셨습니까?
A2 : 아, 북심사라고 거그는 들어온지 얼마 안됐고 개인 땅에다가 들어왔어.
A1 : 그게 어떤 전설이 있거나 또는 어떤 유래가 있어서 지어진 절이 아니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거기다가 터전을 잡고 거기다 죽었어. 그 사람이.
B1 : 그럼 시대산에 있는 절은 어떤 절입니까?
A1 : 영천사 영천사. 영천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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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몽룡이 이 길을 따라 갔다는 데 사실입니까?
A1 : 그것도 하나의 지금 뭐 내 생각은 그래요 인자 그런 얘기들을 많이 허고 있는데 그런 얘기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실질적인 춘향전이라고 허는 것이 하나의 소설인데 실질적인 춘향이가 있었고 실질적인 몽룡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뭐 전라북도의 큰 문화행사도 허고 있지만 나는 알드래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데 저 그 남쪽 지역 사람들이 옛날에는 소를 어떻게 수도권까지 가지고 갔는고니 소를 한사람이 세마리고 네마리고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이걸 우시장 소시장에다가 팔기도 했지만 나 어렸을 때 보면은 한 다섯 여섯사람이 자기가 기른 소를 똑같이 소를 끌코 한사람이 서마리씩 끌코 행렬을 이뤄. 한사람이 세마리 네마리를 소를 끌으면은 이렇게 길잖아. 그래 맨 앞에 세우는 소는 좀 영리허고 나이가 많이 먹은 소를 앞에다 세우고 나머지 소를 이렇게 끌코 가는데 저 오는 그 사람들 다니는 길이 있어. 그 길을 보면은 꼭 그 길로 오는거여. 그 길로. 그러니까 저 남원에서부터 어-- 임실 오수 임실로 해서 전주로 해서 오는 길이 그 길이 거가 길이 지금도 소릿길이라고 해 소릿길. 소릿길이라는 게 좀 외딴 길인데 그런 길을 이용해서 이용을 봤다. 그거는 내가 어려서 그때가 한 중학교 졸업했을 때 그 사람들 소 떼를 따라서 조치원 지내서 전일(?)이라는데가 있어. 거기까지 한번 따라간 적이 있어. 우리 친구하구 같이. 그다음에 인자 소를 너무 많이 끌고 와가지고 늬들이 소를 한마디만 끌코가면 거까지 삯을 준다 해서 친구 둘이 따라가서 그 사람들한테 이틀간 소 끌코간 돈을 받아가지고 서울가서 쓰고 내려왔어. 그걸 봤을 때 꼭 그 사람들 우리 동네에서 하루 저녁 밥을 먹고 새벽에 출발하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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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한양가려면 이 길을 따라가든 앞의 국도를 가든 해야되는데 왜 철도는 왕궁으로 나지 않았습니까?
A1 : 그렇지. 자. 이 얘기는 익산역 황등 다음에 함열이 있어. 함열. 함열에서 저쪽으로 서북 구단쪽으로 떨어진 데가 함라라는 데가 있어. 함라면에 지금도 거기가 지금은 어쨌든 대 부호가 하나 살았어. 큰 부자가. 지금도 가 집이 집이 현재도 있어. 그 사람들이 그 쪽으로 기차길 나게 돼 있는데 이거 우리 옆에로 기차가 오면 소리를 질르고 지내댕기면은 우리가 망한다. 그래가지고 우리 못오게 해가지고 함열쪽으로 밀어내서 거그가 어, 철로가 서 있다.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 다 알아. 그 내용을. 그렇게 했듯이 인자 옛날에도 지금은 뭐 어떤 지역 사업 같은 것 때문에 지역주민이 반대 농성을 허고 투쟁을 허고 그러는데 그 때도 그런 그런게 있었다. 그러나 여기가 철도가 지내가기는 거리상으로 좀 인자 그러니까 지금도 인자 그 때는 익산까지는 여기서 호남선 전라선 나눠져있는데 그런 그 철도가설은 인자 지형적으로 그때 어뜨케 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는 문제다 하는 그런 것이 낫것지. 그러나 이 소릿길을 얘기하자면 철도고 그런 것보다는 이 새 사이로 쉽게 갈 수 있는 그분들은 그걸 이용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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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시대산에 관련된 미신은 없습니까?
A1 : 그런 것은 잘 모르고 여기서 나는 생수가 익산 지역에서 가장 좋은 물이 지금 우리 마을에. 지금 시에서 여러번 조사를 했는데 우리 마을에서 나는 물이 여러가지 분석 결과 가장 우수하다. 그런 것은 시대산과 같은 좋은 산이 있어서 그 산으로 새는 영향으로 좋은 물이 나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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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러면 우리 마을엔 샘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A1 : 여기 이 마을에 큰 샘이 두개가 있어.
B3 : 그럼 샘에 대한 특이한 이야기는 뭐 없습니까?
A2 : 내가 듣기로는 옛날에는 장가를 가믄 어렸을 때 생각하믄 장가를 가면 샘에다가, 우물에다가 절을 시키고 신랑을 다루게.
A1 : 다른 동네 사람이 우리 동네로 장가를 갔을 때, 장가를 왔을 때, 인자 신랑을 다룬다고 다룬다고 해. 다룬다고. 지금 말하면 텃새. 니가 우리 동네에서 곱게곱게 길러진 색시를 데려가니 이 마을에 고마움으로 니 색시가 먹고 자란 우물에 가서 절을 해라. 데리고 가서 절을 시키고 데리고 와서 인자 다루는거여. 너는 왜 우리 동네로 장가로 오기를 결심을 했냐. 그럼 앞으로는 니가 맞이해야 할 선택은 신부를 어떻게 하면서 생활할 것이냐. 그런 것을 지금 뭐 법정에서 허듯기 인자 그런거 허는 사람은 나이도 지긋허고 학식도 있고 그런 분을 선택을 해서 인자 그분이 앉아서 신랑을 잡아올 때 그냥 잡아오는 게 아니라 동네 청년들이, 건장한 청년들 해가지고 가서 신랑을 나오라면 신랑이 안나오거든. 그럼 거기서 인자 실갱이가 막 되야. 막 안나올라고 강제로 끌코 나올라고 그러니까. 그러면 저 저 혼사댁에서는 왜이렇게 함부로 허냐고 말리고 그러고 시비도 걸리고 허는데 그게 어느집이건 그게 관습처럼 그렇게 혀오니까 그러것지 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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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용남마을이 굉장히 컸겠습니다. 얼마나 컸습니까?
A1 : 그러지 큰 마을. 옛날에 한 육십사호정도가 됐지.
B2 : 그럼 술맥이를 하셨거나 칠월칠석날에 우물을 퍼내고 청소하고 옆마을과 기세배도 했겠습니다.
A1 : 그렇지. 아 기세배를 해도 우리 마을이 가장 윗마을이여. 말하자믄 딴 마을들은 우리 마을의 에, 그 그 말허자면은 마을의 세, 세력이 딴 마을보다도 항상 우위에 있었다. 그 얘기는 이 마을이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던 그 부자들이 있기 따문에 그 사람들의 땅을 소작이라고 혀 소작. 지금으로 말하면 임대인. 임대해서 인자 어, 일년에 이백평이면 한마지기 두마지기면 이백평에 쌀을 세가마니면 세가마니. 인자 그런 부분을 주고 또 다음 해에 농사를 짓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소작농이다. 소작농. 소작농이 이 근처 사람들이 전부다 부자가 사는 사람 밑에서 소작을 허다 보니까 자연히 이 마을에 와서 나 농사좀 짓게 해주세요. 나 이것가지곤 식구가 많으니까 논을 좀 더주쇼. 혹은 이렇게 허다보니까 이 마을의 세가 더 컸다. 그렇기 따문에 지금과 같이 전설이 내려오는 술맥이 같은 것도 관목(?) 삼 사일 정도 여러날 또 있는 사람들이 인자 거, 뭐야 먹을 거.돼지나 소같은 거 내고 쌀 같은거 내가지고 마을 분들이 그 술맥이날 모여서 허는데 술맥이 허기 전에 이 두 우물을 깨끗히 치워. 또 우리마을의 하나 자랑거리가 종. 쇠로 만든 종. 종이 아주 그 소리가 맑고 거 큰 종이 지금 매달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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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게 언제적 종입니까?
A1 : 아마 한 듣기로는 백여년 가까이 됐다. 그 종 어느 때 치냐, 마을 사람들이 모이라고 지금은 인제 각 마을마다 앰프가 있어서 앰프 방송으로 마을의 현안 어떠한 의논을 사야 하니까 어디로 뫼쇼. 지금과 같은 이런 뭐 회당이 있는 게 아니고 나무 밑이면 나무 밑, 어느 장소 모이는 장소로 모이기 위해서는 이 종을 가서 치는거야. 이 종소릴 들으면은 아, 이거는 어디로 모이라고 하는 종인가보다 또 허고. 옛날이는 이 짚으로 볏짚. 볏짚으로 농사를 짓고 그걸로 영(?)을 엮어서 지붕을 내다가 보니까 불이 자주 났어. 불이. 근데 타 동네는 불이 나면은 거의다 태워. 이 물이 없어가지고. 근데 우리 동네는 샘이 이 큰 샘이 있어가지고 불이 났다 하면은 큰 사람들이 모두 나와가지고 물을 갖다가 길어가지고 소화를 시킨건데 그때는 제일 먼저 불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막 불종을 때면 불종은 급허다는 얘기여. 막 떄리면. 아 불이 났구나 해가지고 자던 사람도 모두 일어나가지고. 그 종소리가 아주 맑고 좋은거여. 우리가 그 KBS 여섯시 내고향에 소개 할 때 그 종으로 인한 모든 프로그램이 제작되가지고 여섯시 내고향에 소개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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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초가집이 있으면 구렁이가 있을 것 같은데 집큼이 얘기는 못들어보셨습니까?
A1 : 그게 왜 그러냐면은 옛날에는 구렁이가 많았어. 구렁이가. 왜 그러냐면은 참새, 쥐 이 두 가지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을 막 휘젓고 댕기는거여.
B3 : 우물에 대한 또 다른 얘기는 뭐 없습니까?
A1 : 또 한가지로는 옛날에는 낮에는 일을 허고 밤에는 땀이나면 씻치야 되잖아. 그러면 우리 동네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전부다 우물로 와. 저녁에 와가지고 인제 그짜, 우물짝에서 씻는거여. 남자들은 못오잖아. 여자들이 있으면은. 남자들은 낮에. 남자들은 낮에 와서 등먹이라고 해서 부어서 씻고. 생활 용수를 전부다 여기서 길어다가 지게다 독을 묻어 놓고 이렇게 해서 사용하는데 그 물이 원채 놓고 수량이 많으니까. 양쪽 샘에서 이렇게 허면은 쪼꼼 일찍헌 사람도 오고 가면 딴 사람도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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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장님께서 알고 계시는 우물 얘기는 무엇입니까?
A2 : 내가 듣기로는 뭐 그전에 우물 안에서 맨 마지막에 밑 퍼내는 사람 인제 쉽게 말해서 아들 난다고. 나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한 번 있어. 그 얘기는 들었어.
A1 : 그게 왜 그러냐면은 딴 데와 다르게 우리 마을은 규모가 커. 규모가 큰데 원채 수량이 많아가지고 지금과 같이 어, 뭐야 그 저 모다장치가 되서 뿜어내면은 금방 뿜어내는데 그걸 두레박이라고 해가지고 두레박이 두 사람이 서가지고, 그 두레박으로 허는 것은 아무나 못해. 이건 숙련 숙달이 돼야대. 둘이 똑 같이 손이 이 이, 손이 딱 둘을 잡고 하는 손이 맞아가지고 물을 딱 퍼가지고 허기 때문에 그마마 또 숙련되고 재주가 있어야지고. 대간찮아. 둘이만 헐라면 대간찮아. 교대를 해야대. 그래가지고 저 밑이쯤 가면은 줄이 저 밑이까지 닿지를 않아. 높으니까. 그때는 사람이 밑을 한사람이나 두 사람이 들어가야뎌. 들어가서 밑에서 물을 퍼주면 위에서 받아지고 냉기고 하는데 거기는 잘 안들어갈라 그래. 왜. 고되니까. 또 한가지는 물이 원채 좋으니까 발이 담구면 발이 이렇게 시릴정도로. 여름에는 그렇게 시원한 물이 나온거여. 그럼 그 물을 밑에 한번 사람들이 쓰다 보니까 여러가지 음식 찌꺼기 같은 것도 들어가고 그런걸 전부다 이렇게 해서 우에다 올리고 하고 그러는데 그 일이 고되고 그러기 따문에 거기를 들어가 들어가서 허는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 그런 전설이 있어서 아들을 낳을 사람들이 있으면, 자네가 딸만 낳고 아들이 없으니까 들어가서 일을 허소 그렇게 해가지고 들어가게 해서 일을 허고 그러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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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이 뒷산엔 여우가 많이 있었습니까?
A1 : 무지무지허게 많았어. 지금 얘기를 허면은 정말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여우는 사람이 무덤을 사람이 죽어서 이렇게 묻게 되면은 저 위에서부터 굴을 파가지고 밑에까지 들어가서 이 신체 내장만 먹어. 딴거는 안 먹어. 내장만. 그러니까 옛날에 그, 좀 돈이 있고 좀 어떤 분들 명문의 가정분들은 돌로, 여우가 이렇게 침입을 못허게 맨들었는데 옛날에는 지금에와 같이 홍역. 홍역이 한번 들왔다 하면은 마을의 어린 아이들이 삼분의 이는 죽어. 그 때는 그렇게. 어린애들이 많았는데 어쨌든 홍역이 한번 왔다 하면은 그게 전염성이 되가지고 뭐 아이들 있는 집서부터 홍역을, 홍역을 치뤘다 홍역을 치뤘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마만큼 홍역이 무서웠던. 그 애들 죽게 되면은 그 산에 가까운 산에 골짜기 같은 곳에 얕게 묻게 되는데 이 여우들이 어느 한 무덤 그냥 놔두는 데가 없어. 전부다 무덤, 죽은 애덜 꺼내가지고 내장만 긁어먹어. 난 그것을 실지로 많이 봤어. 그리고 겨울 되면은 여우가 짓는 소리. 아주 만, 이 뒷 산에서 짓는 소리가 그렇게 여우가 많았어. 딴데에서도 그렇게 있었는가 몰라도 유독히 우리 지역에서 여우가 많았어. 그러니까 아이들어 죽었을 때 지금과 같이 지금 뭐 아이들이 많이 죽지도 않지만 어떤 뭐 매장 문화가 발달해서 그랬는데, 그땐 옹기로 여자들이 물을 지고 다니는 옹기로 그 옹기다가 안에다가 아이를 묻, 죽은 아이를 늫고 두개 합쳐가지고. 여우 땜에 그랬어. 여우 땜에.
B1 : 여우에 얽힌 옛날 얘기는 없습니까?
A1 : 뭐 여우한테 술먹은 사람들이나 뭐 또 밤에 길 걷다가 여우한테 홀려서 헛길을 가고 또 뭐 여우한테 어떻게 당하고 그랬다 하는데 인자 그건 술취한 사람들 얘기지. 우리 동네에서 그 저, 술을 먹고 장에를 갔다 오다가 옛날에 여기서 뭐 금마나 여산쪽에 장을 가는데 장을 갈라면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와야는데 거그가서 술한잔 먹고 오다가 보면은 인자 밤에 늦게 오게 된단 말여. 오다가 잠이 들어가지고 누가 좀 깨서 일어났는데 지대로 길을 찾아온다고 왔는데 어믄 길로 간거야. 딴 길로. 이 아까 얘기한 소릿길로. 근자 왜그랬냐 그러니까 여우한테 홀려서. 여우한테 홀려서 거그를 가게 되었다. 어? 그래서 밤새도록 길을 못찾고 여그저그 헤매다가 날이 새서야 집을 찾아왔다. 그런 얘기도 있었어. 그정도로 여우가 많았다는 얘기지.
B3 : 그런 얘기가 많이 들렸습니까?
A1 : 여우한테 홀렸다는 얘기가 자주 있어. 그 얘기는 여우가 그렇게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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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도깨비 얘기는 없었습니까?
A1 : 도깨비 불을 봤다 안봤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모여서 얘기헐 적에 들어보면 도깨비 불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무신 도깨비 불이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말다툼도 허고 그랬는데 도깨비 불이 이렇게 하나가 있다가 느닷없이 몇 개로 변해가지고 떠돌아다니고 그 일종 불이 내서 달라들고 그랬다고 하는 얘기도 있는데. 실지로 도깨비라는게 어떤 형체, 불을 발산하는 그런게 있었것어. 옛날에도 있었음 지금도 있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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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이장님께서는 다른 얘기를 알고 계십니까?
A2 : 우린 들은 건 지금 없어졌지만 여그 박물관 앞에 옛날에 학 학교 산 밑에 처녀귀신이 온다고 해서 흰온입고 대닌단 얘기만 들었지 다른 얘기는 못들었어요. 그거가 원래 학교 밑에 산이 있었는데 묘가 좀 있었어. 그 앞에 길이 있었고 그 지나가보면 밤에 흰옷입고 돌아다닌다는 어쩐다는 옛말이 많이 들렸었지. 그런얘기만 들었지 뭐 따른 얘기는.
A1 : 여우가 닭을 많이 잡아 갔어. 막. 옛날에는 닭장이 지금 이 대나무로 얽허가지고 가운데 구멍을 내가지고 이 안에 닭이 올라갈 수 있도록 대나무 같은 것들로 넣고 인자 갈려면 닫어놔야뎌. 여우가 못 가져가게. 그런데 인자 알을 품고 있고 그런 닭덜은 거글 들어가질 않고 알을 품기 위해서 품어 있는 닭을 여우들 냄새를 맡고 닭을 잡아가는거여. 그러면 닭이 막 소리를 질르면은 주인이 막 알어듣고 막 쫓아가가지고 닭을 뺏기도 하지만 뺏 빼서는 닭 거기다 죽는거여. 막 물고가다 놓쳐서. 그렇게 여우가.
B3 : 시대마을에서 이장님이 했던 비슷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마 그런것일까요?
A1 : 거그 저 가좌동에서 시대를 갈라면은 소릿길 산길을 가야돼. 거그 가다 보면 주변에 묘지도 많고 뭐 그런 얘기 귀신들 얘기 많어.
구술사진
용남마을
용남마을 김원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