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왕궁면 > 오포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왕궁면 > 오포마을
구술자 소길영(1966)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구술일시 2012-08-18
비고 면담장소 : 왕궁면 동촌리 오포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18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오포(五浦)․오산(鰲山→五山, 자라메-자르메)․포전(浦田, 갯밭) : ‘오포’는 1972년 오산과 포전을 합쳐 분리명으로 지은 것.‘오산’은 산 모양이 자라와 같아서 생긴 이름. 그 자라가 밑으로 물을 찾아간다는 ‘자라샘’도 있다.‘갯밭’에는 내가 흐르고 있으니 ‘갯밭→浦田’
동면(東面, 면)․상동(上東)․하동(下東)․도화정(桃花亭)․장숫골 : ‘도화정’은 복숭아나무가 정자를 이루고 있어 생긴 이름.‘장숫골’에는 장사(壯士)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새로채록된 내용 :
- 포전 : 갯벌밭이라고 불렀다.. 과거 백제시대 땐 포전이 갯벌이었다고 한다. 왕궁 궁터 앞으로 강이 흘렀는데, 그 강이 포전까지 닿았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도리산 : 오산과 포전 사이에 있는 산이다. 자라혈 자리라고 한다.
- 도평 : 옛 이름은 섬돌(섬드리)이다. 배가 섬을 돌아간다 하여 섬드리라 한다.
- 관동 : 벼슬아치들이 많이 살아 관동이라 한다.
- 그시논 :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거머리를 그시라 불러 거머리가 많이 나오는 논을 그시논이라 부르지 않았나 추측한다.
- 마당바위 : 왕궁면 장중에 있다는 바위이다. 마당처럼 커다란 모양을 하고 있어 마당바위라 불렀다. 바위의 혈이 미륵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며 그 혈을 가리켜 지네혈이라고 전해진다.


3) 전설 및 민담 :
- 도깨비 이야기 : 도깨비불이 사람을 쫓아다녀 밤새도록 도망쳐 다닌다고 한다. 아침에 냇가나 집 앞마당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다.
- 혼불 이야기 : 마을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그 집에서 혼불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르던 도중 할머니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한다. 이후 6개월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

구술채록

A 소길영. 1966년.

B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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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여기 마을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A : 행정구역상으로는 오포마을이죠. 오포인데 자연부락이 두 개 마을이 합쳐져 가지고 오포마을이라는 게 이루어졌거든요. 90년대에 중반쯤 정도에 오포라는 이름으로 명료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이쪽 마을이 포전, 저쪽 앞쪽 마을이 오산, 그래서 둘이 합쳐서 오포마을이 됐거든요. 오산마을은 예전에 자연적 부락이름은 자르멘데 자라메에서 쪼끔 그쪽으로 어원이 변천이 돼가지고 자르메라고 됐는데, 자라메라는 얘기는 이제 그 앞에 있는 오산과 포전 사이에 산이 있는데, 도리산이라고 산이 있는데 그 자르메에 있는 산이 자라의 형태를 갖춘 산이라고 해가지고 메라는 게 산이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래가지고 자라형태를 갖춘 산이다 해가지고 자르메라고 명명돼있고 포전은 한자로 쓰면은 개 포하고 밭 전 자. 여기를 개밭이라고 해요. 쉽게 말해서 개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갯벌, 갯벌밭이라는 얘기야. 갯벌밭이라는 얘기는 예전에 백제시대 때 보면은 백제 무왕이 천도를 해가지고 이쪽 왕궁탑 쪽에 궁궐을 짓고 천도를 해서 왕궁탑이 있는데 거기서 살다가 궁터 오면 옆 동네 궁평 아닙니까? 궁평에 보면은 제석사지라는 절터가 있는데 그 제석사는 이제 궁궐 안에서 그 중전마마 정도나 왕의 부인이 나라의 백성들을 갔다가 태평성대하기 위해서 제사를 모시고 그럴 수 있는 곳이거든요. 제석사지가 그런 형태 틀이 있었는데 그래가지고 예전에 궁궐을 짓다보면 앞에 강이 있고 어떠한 궁궐을 수호할 수 있는 형태를 유지해야만이 궁궐 입지 조건이 되니까 왜적들이 쉽게 넘어올 수 없고 그래가지고 거기에다 지으면서 이쪽 포전 앞으로까지 전부 강이 됐다고, 이제 뭐 삼국시대 넘어서 백제시대까지 강이라고 봐야 되죠. 강이었고 여기는 그래서 개밭이죠. 갯밭 그래가지고 포전이 되는 것이고 자 인제 포전 밑에 가면은 궁평. 거기는 이제 한자풍이말로 궁평이 평 자가 뜰 평 자잖아. 그래가지고 지금도 마을 분들도 궁뜰 궁뜰 하거든요. 궁이 있는 뜰이라는 말이에요. 또 궁뜰 앞에 이름은 도평이나 관동이라고 하던데 거기 도평은 또 옛날 지금도 고어로 쓰는데 섬돌, 어른들이 그냥 섬드리 섬드리 하는데 말 그대로 섬돌이거든요. 섬돌이라는 얘기는 쉽게 얘기해서 섬을 돌아간다는, 배가 섬을 돌아간다, 물이 섬을 돌아간다 해가지고 섬을 돌아서 나간다 해가지고 섬돌이 됐지. 그래가지고 아무튼 포전이라는 게 그런 형태의 개밭이 형태를 이루고.

B : 관동을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A : 관동은 예전부터 관동라고 했는데 거기는 암만해도 백제시대나 그 이전시대부터 거기에 벼슬아치들이 많이 살고 그런 형태로서 관동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또 거기에 있는 지형 형태가 각이 져서 그런 형태로다가…. 근데 아마 벼슬하는 사람이 많이 났다고 해서 그래서 관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알고 있어요.

B : 문관 할 때 그 관 자입니까?

A : 예, 벼슬 관 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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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그러면 도리산 모양이 자라모양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다면 왜 자라산이라고 안하고 도리산이라고 했을까요?

A : 그건 잘 모르겠고, 능선 자체가 자라모양 형태로 해가지고 거기에 앉아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그 산 밑에 뒤에 이렇게 남쪽 위에 있으면서 동네가 있으면서 어떻게 보면 북쪽에 산이 딱 뒤에서 받치고 있으니까 좋다고 봐야지.

B : 도리산이 명당이라는 말은 못 들어보셨습니까?

A : 도리산이 명당의 줄기로서는 뽑히지는 않은 거 같애요. 명당의 형태를 이루려면 그 배산임수나 아니면은 좌청룡 우백호 같은 그런 주산의 형태가 뚜렷해야 하거든요? 근데 도리산은 다른 산이랑 연결될 수 있는 그러한 그 힘이 없어. 긍게 어떻게 보면은 여기 익산으로 말하면은 저쪽 미륵산이나 저 용화산 저 위에, 어떠한 그런 큰 산의 기운을 가지고 아니면 그렇게 큰 산은 아니더라도 그 산줄기에서 산맥이 이어져가지고 혈이 쭈욱 내려와서 이렇게 형태를 이뤘으면은 명당자리에 올랐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 도리산은 공교롭게도 예전에는 이어졌을랑가 모르겠는데 지금에 와서는 산 주변으로 뚜렷하게 이어져 내려온 데는 아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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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특별하게 부르는 지명이 또 있습니까?

A : 여기에서 보면은 그능골 있구요. 수렁골은 어느 마을이고 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구요. 수랑골은 원래 수렁인데 그 뭐랄까 렁의 발음을 랑으로 발음돼서 수랑이라고 표현을 하죠. 수랑골 그러고 그능골 그 다음에 뭐 그 이외에는 없어요.

B : 그능골이라는 것은 처음 들어 보는데 의미가 있습니까?

A : 그능골은 아마 발음하기 편하게 그늘이 쉽게 말해서 그늘골이라고 했는지 아니면 어떤 그런…, 그쪽에 보면은 예전에 능의 형태가, 그쪽 부근에 왕릉처럼 능이 있었어요. 장군묘 같은데 능이 있어서 그쪽을 그능골이라고 했는지 옛날 어르신들도 정확하게 그것을 왜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실 거예요. 내가 봐도 그런 두 가지 형태나 그렇지 않으면 예전에는 그시논이라고 많이 표현을 하거든요. 그시논이라고 하는데 저도 그시논의 의미는 정확허게는 모르겠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시논 같은 경우는 그시라는 표현이 예전에는 거머리 같은 것을 그시, 그 다음에 저 물벌레 같은 거, 그런 형태가 이렇게 많이 있어서 그시논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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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이 마을에선 치성드릴 때 어디로 가셨습니까?

A : 이쪽 마을에는 없었고 왕궁면 용화리 쪽으로 신탄마을이나 시대마을 그 다음에 화곡이나 그쪽으로 가면은 그쪽은 나름대로 뒷산의 기운이 강하고 허니까 그런 데는 아마 마을 뒷산에 가서 바위에 불공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지리적 요건이 됐었죠. 그리고 여기 왕궁도 보면은 거그가 장중인데 장중도 마을 형태 이름이 장암과 중리가 이렇게 자연부락이 합쳐져서 장중인데 거기에 보면 인자 마당바위가 크게 자리 잡고 있죠.

B : 마당바위는 왜 마당바위라고 합니까?

A : 말 그대로 마당바위는 바위 자체가 마당처럼 굉장히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B : 바위가 영험했나요?

A : 네, 마당바위라고 해가지고 일부분만 마당처럼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옛날사람들은 바위의 그 혈이 저쪽 미륵사랑 연결이 돼있다, 그래가지고 그쪽 장중으로 해가지고 이쪽 도리산으로 해서 그 바위의 혈이 미륵사랑 연결이 되어 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래가지고 그 혈이 지네혈이라고 해가지고 지네혈에 그 끝이 장중마을 마당바위라고 봐야죠. 장중마을 주민들은 아마 예전에 세시풍습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세시풍습 때 제를 지내기도 했을 것이고 거기에 가면 또 은행나무도 티브이에 자주 나왔는데 은행나무 속에 이렇게 대나무가 자란다고 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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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그렇다면 민담이나 도깨비, 여우이야기에 대해서 들으 신게 있으시나요?

A : 우리가 얘기하는 도깨비 이야기인데 불로 표현되는 도깨비가 있었던가 봐요. 예전에 불빛이 막 이렇게 불이 있어가지고 그 불빛이 자기를 계속 따라오다 보니까 밤새도록 그 불빛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보니까 냇가 하천에 누워있다더라,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B :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A :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 열 살이나 먹었을 적에 마을 어르신들이 노정에 앉으셔서 며칠 전에 그런 꿈을 봤어, 아니면 누구는 도깨비에 홀려가지고 밤새 도망 다니다가 일어나 본 게 자기 집 앞마당에 자빠져 있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니까.

B : 도깨비불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습니까?

A : 그거와 연관돼서 저희 마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데 그 할머니께서 연세가 정확히는 모르는데 한 팔십 초반정도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인제 평상시 좀 편찮으시다가 기력이 쇠진하고 돌아가셨는데, 사람이 혼불이라는 게 말 그대로 인제 숨을 거둠으로서 그 사람의 육체에 가지고 있는 어떠한 혼의 기운이 승천한다는 의미로서 혼불이 보인다고 허는 거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면은 그 집안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이웃이라던가 아니면은 그 근처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은 거기에서 뭔가 파랗고 붉고 밝고 그렇다고 표현해야 되는가요? 그런 불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돌아가시면 사람들이 재빨리 마을 어귀라던가 아니면 대문 밖이라던가 잿밥을 후딱 갖다가 놓고.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 보면은 지푸라기 같은 거 깔고 밥하고 반찬 쫌 놓던가 어쩐가 해서 마을 어귀에 놓고 말 그대로 사잣밥이죠. 저승사자 먹고 가라고, 먹고 잘 모시고 가라고 대접을 하는 거지. 그리서 그 사잣밥이라는 걸 놓고 그 다음에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짚신을 삼고.

B : 짚신을 삼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A : 만든다는 뜻이지. 짚신 삼고 거기에 또 상주들이 조문하는 사람들 맞으려면 옛날에는 가정집에 했지 않습니까? 상주가 조문객을 맞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인제 또 민간인들은 3일상을 대부분은 하는데 아시겠지만 돌아가셨어도 가끔 깨어나신 분이 있어요. 옛날에는 그런 분이 많았던 거야. 옛날에는 숨 안 쉬면 다 돌아가신 걸로 알았잖아요. 근데 기가 통해서 살아나신 분이 있어요. 그 할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해가지고 밖에 나가 있는 아들들 딸들이 싹 왔는데 그 다음날 또 깨어 나셨어. 혼불이 나왔는데 다시 살아오신 거야. 그래가지고선 할머니가 일어나셔가지고 아들 며느리들이 다 상복입고 있으니까 니들 왜 그러냐―. 그러니까 동네사람들도 뭔 일 없었다는 듯이 다 가시고, 웃다가 6개월 더 사시다가 돌아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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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마을에 하면 안 될 금기 같은 게 있었나요?

A : 왕궁 같은 경우에 익산농장 쪽에 가깝지 않습니까? 법적으로 명칭은 한새민농장 아닙니까? 다 아시겠지만 한새민들은 나병을 가진 사람들로 60~70년대에 한새민들 질병이 심했죠. 그쪽 지방을 가기를 경계하고 어렸을 적 나가보면은 신체에서 진물 흘리던 사람이 있었고. 그 시대에 어르신들은 그런 부분을 경계를 많이 한 것 같아. 어린 애기들의 피를 먹으면 자신의 병이 낫는다던가 그런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린애들 있으면 문둥이들이 잡아다 먹는 다는 이야기들이 있고.

구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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