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왕궁면 > 연정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왕궁면 > 연정마을
구술자 이종식(1942)남자
구술자 박상철(1933)남자
구술자 이규인(1950)남자
구술자 이명희(1934)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구술일시 2012-08-20
비고 면담장소 : 왕궁 연정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20일 10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연정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연정에는 전에 연봉정(蓮峰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엄나무골’은 엄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
『익산 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옛날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갈 때 이용하던 길 옆 마을이다. 가객들이 쉬어가는 정자가 있어 연정(蓮峰亭)이라고 불림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기따배기: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투구봉: 장수의 모자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배장골: 배를 메었던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서벼티: 연정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다.
- 동벼티: 연정마을 동쪽에 있는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다,
- 가운데샘: 마을 한가운데 있는 샘이다.
- 벼락바위: 벼락을 맞아서 갈라진 바위이다.
- 도가뜸: 장수가 칼을 놓고 쉬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사솥골: 솥을 걸어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도깨비 불: 상여막 근처에서 도깨비 불과 마주했다고 전해진다.
- 이몽룡 : 연정마을 옆 길로 이몽룡이 지나갔다고 한다.
- 도가뜸: 옛날에 백정이 살았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이종식 (71) 1942년
A2: 박상철 (80) 1933년
A3: 이규인 (63) 1950년
A4: 이명희 (79) 1934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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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구술내용이 아닌 구술채록)

A1: 인자 조금 전에 말씀을 하신 어르신도 사실 상은 어린 시절은 여기서 성장을 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옛날 그 이 마을 역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잘 모르시는 거여 내가 답변을 할께요.

B1: 아 네 그럼 ‘연정’마을이 왜 ‘연정’마을인가요?

A1: 인자 여그 한 20년 전에 내가 이장을 할 당시에 그때 면사무소에서 막 이런 거를 지명에 대한 유래라든가 이런 등등을 조사한 바가 있어요 내가 그래서 그때 어른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이렇게 해서 참 적어서 올린 그런 바가 있었는데 이 ‘연정’이라는 마을 그 지명에 대한 유래는 한자로 보면 연 연자 정자 정자에요 ‘연정’이 그러며는 이 길이 옛날에는 지금은 참 막 도로가 확장되고 그래서 이렇게 됬습니다만 옛날에는 저 아래 같은 곳은 인제 한양으로 가객들이 과거를 보러 갈 당시에 이 길로 통과 했다고 그래요 이 앞에 길로 여기 ‘통샴’이라고 해서 이 ‘봉동’에... 에- 지금 공업 단지가 되었지 지금 그 ‘통샴’이라고 골로 해가지고 이 앞으로 해서 여 ‘신막’이라고 ‘새실막’이라고 하는 이 길로 가객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당시 이 길을 통과 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러는데 그 당시에 이 앞에 이 마을 동네 앞에 유일하게 연못이 진짜 하나 있었는데 연꽃이 진짜 그 아주 잘 화려하게 피어 있었고 조그만한 정자가 있었다고 해요 내가 옛날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디 그래서 그 가객들이 오고 가면서 그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곤 그래서 그 연 연자에 정자 정자라서 ‘연정’이라고 마을 이름이 이렇게 붙어졌노라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B1: 언제 들으셨습니까?

A1: 내가 한 20년 내가 이장할 당시니까 한 20년 지났어 아직 25년 전에 내가 어르신들한테 들은 거에요 그때 나도 사실은 모르지 그래서 아마 그 지명유래는 이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기타 외에도 어찌 보면 참 이것은 어떤 그 특별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기따배기’라고 저 앞에 산을 하는데 옛날에 어른들을 그것이 무슨 기를 꽂았다고 기를 꽂아서 ‘기따배기’라고 그했다고 그러고 여그 ‘두리봉’이라는 산이 있어요 저 쪽에 바로 옆에 근디 그걸 ‘투구봉’이라고 또 했다고 그러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배장골’이라고 하는 디가 있는데 여그 저 고속도로 바로 박스 넘어에 거그에 다가는 무슨 배를 메었던 자리다 막 이런 어렴풋한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상 어떤 특별한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어른들한테 어렴풋이 들어온 이야기인디.

B1: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A1: 나 이종식.

B1: 연세는 어떻게 되시죠?

A1: 71살이요.

B1: 혹시 그림을 그려주실 수 있나요?

A1: 아니 지금 그림으로 그려 드릴게요.

B1: 주변에 특이한 지명들도 있나요?

A1: 이 저 저기 바로 서쪽으로 저 옆에 마을이 ‘서벼티’ 벼티라는 이야기가 난 어디서 나왔지 모르것어 그리고 저기 저 안골 마을이 ‘벼티’그리고 이 쪽도 좀 떨어진 마을이 ‘동벼티’ 벼티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유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디 하여튼 벼티라는 이야기가 붙었습니다 지금 그래 가꼬 현재는 행정상으로는 ‘서벌’ ‘양곡’ ‘동벌’ 이렇습니다만 옛날 말로는 ‘서벼티’ ‘벼티’ ‘동벼티’ 이렇게 되어있었어요 ‘벼티’와 ‘동벼티’가 합쳐져서 양곡과 동벌이 합쳐져서 인자 ‘양동’이라고 행정명으로는 그렇게 되어있어요 지금 현재는요.

B1: 옛날에 어느 마을이 가장 컸었나요?

A1: 우리 마을이 가장 큰 마을이었어요 한 70∼80호 가량 큰 마을이었습니다 지금 상당히 많이 줄었습니다만 서도 사실 점진적으로 지금 어떻게 보면 호수가 늘어나는 추세에요 지금 이 마을은 외부인 들이 와서 집을 많이 짓고 있어요 뭔가 한 적하니 살만 하자녀 인자 조용하게.

B3: 혹시 옛날에 다른 오래 된 목욕탕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A1: 아니야 그런 건 없었고 다만 대략한 25년 전 이야기인가벼 그 당시 우리 이 마을에 조 밑에 여기 와서 온천수를 그 사람이 상당히 많이 수질 검사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이리공고선생이었던 가 내가 잘 모르겠는데 ‘최선생’이라고 그 사람이 그 뭔가 지리적 그런 연구를 하러 와 가꼬는 온천수가 나온다고 그래가지고 시도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아마 75미터 까지 들어갔었지 지금 사실상 그 주변 사람들이 그 물을 먹고 있습니다마도 파이프를 박아 놓고 있어요 지금 그래서 우리가 물을 먹고 있습니다 식수로 근데 온천수 개발을 허다가 사실상 실패를 한 거지 중도 하차를 했으니까 온천수가 나온다고 그래가지고 그랬던 바가 있었어요.

B3: 온천수 파기 전에는 마을에서 물을 어떻게 조달해서 먹었나요?

A1: 아 각자 집에 수작업으로 판 샘 있자나요? 작두샘이라든가 등등 요런 걸로 이렇게 물을 먹었어요 그리고 공동 우물이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바로 그 옆에 공동 우물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로 인자 그놈 물을 먹었었고.

B2: 마을 공동 우물에 따로 이름은 없었나요?

A1: ‘가운데샘’ 인자 마을 가운데 있으니까 ‘가운데샘’이라고 했지.

B2: ‘가운데샘’에서 제사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특별하게 제사 지내는 바는 없는데 에.. 조금 전에 이 어르신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술멕이 때 있자나요? 그때 가서 한번 고사를 지내고 했지요 풍물을 치고 가서 이렇게 참 참말로 고맙다고 야 절도하고 고사 지내고 이런 바가 있죠.

B1: 어르신 시장은 주로 어디로 갔었나요?

A1: 여산이요 여기는 지금 물론 지형은 왕궁으로도 되어있지만 여산을 주로 ‘여산시장’을 주로 봤지요.

B1: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요?

A1: 걸어서 한 시간 가지고 못 가죠 한 4키로 넘어요 5키로 정도 되지 않을 까 싶어.

B1: 그러면 거기까지 가는 길에 무슨 고개도 있고 그러지 않나요?

A1: 아 예 ‘숯고개’라고 있지요 여기 바로 ‘숯고개’.

B1: 왜 ‘숯고개’라고 했을까요?

A1: 그건 잘 모르겠소 근데 그 ‘숯고개’라는 디가 참- 희안한 것이 무엇인고니 여기가 아-주 고지대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해서 그 ‘숯고개’라는 데를 기준으로 해서 이 쪽으로 남쪽으로는 물이 남쪽으로 흐르고 저 쪽으로는 북쪽으로 흐릅니다 물이 그러면 얼마나 고지였나 이 ‘숯고개’라는 디가 ‘숯고개’라는 데를 기준으로 해서 물이 그렇게 흐르고 있어요 여산면과 왕궁면의 경계인데 그 ‘숯고개’라는 데를 기준으로 해서 저 북쪽으로 물이 흘러 그러고 이 쪽으로는 또 남쪽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그게 참 상당히 고지대 이다 하는 것을 느끼죠.

B1: 그렇게 고지대이었으면 상당히 험했을 것 같은데요.

A1: 옛날에 험했지요 최근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바도 거그 참 젊은 여자나 아가씨들은 정말로 오고 가기가 힘들었던 자리여 근디 내가 그걸 한 번 이장을 할 당시에 저기서 뭐 어떤 무언일이 일어나가지고는 형사들이 와서 말이여 거그 와서 현장 검증을 하는데 내가 거기를 갔었거든 근데 상당히 여러명이 어떻게 보면 불행하게도 이 지방 사람들이 아닌가 여인들이 아닌가 싶은데 그 어떤 성적인 그런 거를 당한 바가 있드라고 근데 지금은 아주 많이 길도 확장되고 나무도 양쪽에 다 베고 그랬는디 옛날에는요 길이 아주 협소하고 그랬는디 막 울창하게 그 오리목이라고 하는 나무가 마-악 울창해 가꼬 정말 무서웠었어요.

B3: 그렇게 음침하고 그러면 귀신이나 도깨비도 나오고 그랬을 텐데요.

A2: 그 전에 목탁이 있었거든 나무다리? 거기서 저 쪽으로 오며는 개똥 불이 같은 것이 와따 가따 한 게 그것 보고 그러고 이 앞에 다리가 있어 그 다리가 ‘도가뜸’다리 왜정 때 거시기 해서 만든 건디 그 전에는 다리를 나무로 놓았어 나무로 놓은 게 몇 년 안 되면 부서지고 부서지고.

A1: 사실 도깨비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며는 미친놈 같은 소리로 들릴 거에요? 근디 현실적으로 나도 봤다니까.

A2: 그래 있었어! 봤어! 와따 가따 와따 가따 하고 그랬어.

A1: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과외 공부라고 해가지고 그 진학을 하기 위해서 그거를 하다 보며는 한 12시 막 이렇게 보내줘요 학교에서 근디 혼자가 아니여 여럿이 이렇게 오는디 정-말 그걸 봤어 나도 지금도 참 선명하게 기억 한단 말이여 근디 지금 어디 가서 내가 도깨비 봤다고 그러면 젊은 아이들 우리 자식들도 한 40대 입니다만 서도 우리 아빠 미치고 헛소리 한다고 할 거에요 근데 진짜로 봤다 이 말이야 근데 지금 없자나요 내가 진짜로 봤어 그냥 틀림없이.

B1: 그러면 도깨비가 해를 주고 그러나요?

A1: 아니아 아니야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 하나가 아니고 몇이 서 너 명이 이렇게 같이 열두시 한시 이사이에 이렇게 걸어서 오는데 아 그 상여집이 있었어요 상여막 그래가지고 방금 저분이 말씀하신 ‘도가뜸’이라는 그 옆에 상여막이 있었어요 근데 사실상 뭔가 선입견이 상여막이라고 하면 뭐 기분도 별스럽게 안 좋고 그렇지 않아요? 근디 밤에 오는데 그 상여막에서 이 막 벌-건한 불덩이가 나온 거여 무슨 형체를 구분할 수 없는 불덩이가 나와 아 그래가지고는 아이게 도로로 우리가 올라고 하는 도로로 나와 가지고 오는 거여 그러니까 무서워 돌멩이를 양손에 거머쥐는 거여 서 너 명이 오면서 그래서 돌멩이를 거머쥐고 오는데 누가 뭔가는 참 궁시렁궁시렁하는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구시렁구시렁 하면서 그냥 쓰윽 스치는데 특별하게 어떻게 보면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할까? 뭐랄까 특별하게 어떤 형체도 모르고 스쳤어요 그냥 같이요 저는 내려가고 우리는 올라오고 그래가지고 돌멩이를 집고 있는 데도 서로 헤치지 않으려고 그냥 바로 스쳤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금 올라가 가지고 요것이 어디로 가는 가하고 봤더마는 저 저수지 주변 요기 저 바로 밑에 저수지 있지 않습니까? 아 저수지 가로 쫘-악 가드마는 그때가 우리 시대 때는 물이 상당히 많이 빠졌었어요 그래 가꼬 저 저수지 가로 가드마는 불이 쫘-악 여러 개가 막 되고 하- 참 그런 것을 똑똑하게 봤는데 내가 이 이야기를 우리 집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면 미친놈이여 근거 없는 미친놈인디 근데 똑똑히 봤다 이겁니다.

B1: 혹시 마을 주변에 특별한 돌이나 나무 같은 것도 있나요?

A3: 바위는 하나 있지 저- 산 ‘벼락바우’라고 했는디 그 산 이름이 ‘벼락제’라고 그려 근디 거기를 가면 거시기에서 바우가 서 있는디 가운데가 쫙 뽀개 졌어 우리는 벼락 맞아서 말을 그렇게 하는디 그게 완전히 쪼개 졌어 그전 어른들이 그러드라고 지금도 현재 있어.

B1: 예전에 당골내 있었나요?

A3: 당골내는 있었지 저 아래 가서 서낭당이라고 고속도로 지나서.

A4: 옛날 이몽룡이가 지나간 자리여 그게.

B1: 아 어디가요?

A4: 여그 지금 이야기하는 그 ‘서낭당’이라는 디가 이몽룡이가 요 수리조합 뒤로 해서 그 고개를 넘어가서 ‘안골’로 해서 여산으로 해서 ‘새술막’이라 데로 나갔어요 그런데 그 못가서 여그 ‘벼티’라는 그 재빼기 옆에 가서 ‘서낭당’이 이렇게 있어요 나무가 조그마한 나무가 있는디 거기서 정월 보름날이나 정월 초사흘 날이나 이렇게 가서 떡을 놓고 돈도 몇 원씩 놓고 절도 하고 그런 것은 있었어요 금줄도 쳐 놓고.

B1: 그러면 ‘서낭당’ 바위 앞으로 이몽룡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나요?

A4: 아 이건 여기는 역사적으로 저 삼례 ‘광대구렁이’라는 데로 해가지고 삼례에서 조금 올라오면 지금 익산 농장 있는 옆으로 해서 ‘광대구렁이’라는 데가 있어요 그게 골짜기 말이요 쭈-욱하게 있는디 거그서 사람도 많이 헤치고 그런 자리여 그 길이 ‘통샴’으로 올라와가지고 여 ‘하오게’라는 디가 있어 ‘하오게’ 왕궁면 ‘하오게’라는 디가 있어 ‘하오게’라는 디를 지나서 여그 저 ‘도장골’로 해서 요럿 게 넘어와서 요 바로 고속도로 난 바로 옆으로 해서 여 ‘양동’이라는 새가 있어요? 지금 저 고속도로 88 그 지점 있는 그 골목으로 넘어 갔어 그래가지고 내가 옛날에 들은 이야기인디 그렇게 넘어가서 ‘독담을’이라는 데가 있어요 ‘학동’을 지나 가지고 여산면 ‘독담을’ 그래서 그리 지나간 뒤로는 모르죠.

B1: 그 서낭당이 왜 없어졌나요?

A4: 그 고속도로 내면서 없어 진거여 74년도에 고속도르를 냈어 내면서 그전에도 약간은 있었는데 많이는 왕성하던 않았지만 약간은 있었는디 그 고속도로 내면서 그 확장이 되는 통으로 싹 없어 졌어.

(길 위치에 대한 이야기)

B1: 다른 이야기 아시는 것 있으신지요? 이 마을에 대해서..

A4: ‘연정’이라는 것이 왜 ‘연정’인지 몰라요? 한문으로 써가지고 정자 정자 원래는 ‘연봉정’이여 ‘연봉정’인데 연 꽃자 봉자는 봉우리 봉자 그리고 정자 나무가 있어서 정자나무 정자고 ‘엄내실’이라는 데가 정자나무가 옛날에 있었다고 그러드라고요 ‘엄나무실’ 그래서 거기 가서 정자나무가 큰놈이 있어서 옛날에 정자나무 정자를 썼다고 그러드라고.

A1: 그 ‘기따배기’라는 디는 여그 인자 저그가 ‘기따배기’라는 디가 있는디 여그가 74년도 경지 정리를 했는디 지금 모래가 나와요 옛날 바다에서 나오는 모래가 지금 정미소 있는 디 그 밑에를 경지 정리 한다고 팠는디 그 안에 가서 썩어서 아주 수 백년 된 그 토탄이 나왔었고 모래가 많이 나왔었어 많이 나왔었어 그래서 그 아래에다가 기를 메었다는 여그가 뭐 방죽이 있었디야 옛날에 똘이 말하자면 저수지가 있었는 가벼 ‘기따배기’라고 해서 기를 꽂고 그런 이야기는 들었어요.

B1: ‘투구봉’이야기는 아시는 지요?

A4: ‘투구봉’도 그 ‘투구봉’ 이야기는 여그가 있는디 그거는 자세히 몰라요.

A3: ‘두리봉’이지 지금은 ‘두리봉’이라고 해.

A2: 여그 저 뭐여 어 ‘투구봉’이라고 들 그게 장수 모자랴 모자 형상이래 ‘기따배기’ 기를 꽂아 놓고 그래서 지형이 그렇게 생겼다는 거여 칼 ‘도가뜸’ 칼 칼을 놓고 그래서 장수가 전쟁을 해야 그것이 다 놓고 쉬는 형상이다.

B1: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2: 아 그런 형상이래요 모자를 벗어놓고 칼을 놓고 기따배기 기를 꽂아 놓았데 그래서 그런 형상이래.

A1: 근데 ‘도가뜸’이 그 참 희한한데요 방금 말씀하신데로 칼 도자에요 칼 도자 집 가자 그러며는 그게 어떤 희한한 일인가 느끼는 것은 그 참 옛날 일이만 서도 지금은 뭐 돼지 잡고 소 잡고 하는 거 무슨 귀천이 어디 있습니까 근디 옛날에는 상사람 아닙니까? 칼잡이? 전-부 그 사람들 집성촌이었어 거그가 칼잡이 집성촌 거그가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생각으로 다섯 여섯 호 거그가 ‘도가뜸’ 그렇게 있었죠? 근디 칼잡이 들이 백정이라고 하죠? 그 사람들이 집단 해서 살고 있었다 참 그래서 희한하다 ‘도가뜸’이라는 디가 칼 도자에요 틀림없이 칼잡이가 사는디 어떻게 보며는 그 사람들이 살다보니까 지명을 그렇게 했는가? 지명이 그렇다 본 게 그 사람들이 살았는가 그거를 잘 모르것어 누가 먼저 인가.

A2: 여기서 보면 칼 같혀.

A1: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득세를 했어 그게 돈을 많이 벌어서 그랬는디요 참 ‘도가뜸’이라는 디가 또 희한하게.

(개인사 이야기)

B1: ‘도가뜸’아이들하고 이 마을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고 그랬나요?

A1: 잘 안 놀았지 왜냐하면 그 천시하는 사람들이이었기 때문에 그랬었지요.

B1: 지금은 ‘도가뜸’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A1: 아니 한 사람이 사는데 지금도 희한한 것이 뭐를 느끼냐며는 꼭 거그 짐승이라도 뭐 잡는 사람이 살어 지금도 하다못해 오리새끼 한 마리라도 잡는 사람이 산다고.

B1: 마지막으로 성함하고 연세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A2: 나요? 박상철 나이는 80.

(구술 중단 이후 다시 이야기 채록)

A2: ‘도통골’이라고 했네 그 전에는 ‘도통골’이라고 했어 도통한다고 도통한다고 그랬지.

B1: 아 원불교 수련원 있는 곳이요?

A2: 예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 골자기 였지 근데 그 사람들이 들어와서 개발을 다 한 것이지 그러니까 ‘도통골’ 도통했다고 그랬다고 하드라고요 근디 물이 좋아 거기가 물이 산 밑에서 나오는디 그 땀디 난 사람들이 여름에 가서 한 시간만 있다가 나오면 싹 들어 가버려 물이 줄 질 않고 맨나 고대로만 나와 시방 그 사람들 그 물을 먹고 이 밑에 도로까지 내려와서 시내 사람들이 받아가고.

B1: ‘도통골’이면 혹시 도 닦는 사람이 있었나요?

A2: 근게 그걸 모르지 근데 거기 보며는 기왓장도 있고 그래 이렇게 집 터 자리가 있고 거기 가면 기왓장이 나와.

A4: 그 물이 좋은 것이 산골짜기에서 졸졸졸 내려오는 물이여 근디 그 물이 한 40미리는 나와요 거기가 그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은 지금 두 간데로 내려오는디 거그 샴이 원불교 교당 그 사무실 앞에 있는 그 샴 있는디 거그서 한 20미리 물이 항상 흘러 내려오고 고 나머지 물은 돌 옆에서 생수 떠가라고 똘로해서 20미리 관을 묻어서 그리 내려와요 또 그 물은 뭐 지금 내가 80 거희 다 되가는 사람인디 지금 까지 말라본 역사가 없어요 그 물이 그리고 아까 저분 이야기 한디 거그가 ‘도통골’이라는 디가 바로 지금 원불교 그 뭐야 납골당 바로 옆에가 있었어요 그 집이 기왓장도 나오고 지금 훈련원이라는 데가 있어요 이 쪽 옆에 거그가 ‘사솥골’이여 ‘사솥골’ 거 솥을 걸어서 ‘사솥골’인데 그래서 훈련원 거그서 열심히 밥을 먹고 지내는 자리가 있어 솥을 큰 놈을 달아 놓았어 그 지어놓았어 말하자면 ‘사솥골’이 있었는디 집도 우리가 봤을 때는 집이 없었어요 근디 그걸 지명이 ‘사솥골’로 되 가꼬 솥을 건다고 해서 ‘사솥골’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근데 지금 그 이야기를 내가 들었어요 옛날에 ‘사솥골’인디 솥을 걸기 위해서 ‘사솥골’인디 지금은 인자 훈련원 그 훈련 온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 솥을 걸어 쇠로 솥을 걸었단 이 말이여 거그 저 원장 아니고 원장 다음에 분이라고 그분이 이야기를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드라고요 내가 거글 한 번 갔었거든요.

B1: 어르신 예전부터 그렇게 불렀었나요?

A2: 저 분이 그 옆에 살았으니 더 잘 알지.

A4: ‘사솥골’은 아주 옛날부터 나온 이름이여 ‘도통골’도 옛날부터 나온 이름이고.

B3: 마지막으로 성함하고 연세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A4: 이명희 34년생.

B1: 좋은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구술사진

연정마을 경로당


연정마을 이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