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왕궁면 > 신탄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왕궁면 > 신탄마을
구술자 이재연(1928)남자
구술자 소기정(1961)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8-21
비고 면담장소 : 신탄마을
면담시간 : 2012년 8월 21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신탄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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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내용

신탄은 1972년에 신사(新寺)와 탄곡(炭谷)을 합쳐서 한 동네로 만들고 신사의 신자와 탄곡의 탄자를 한 자씩 따서 “신탄(新炭)”이라 불렀다. 신사(新寺)는 새로 지은 절이란 뜻인데 그 전부터 신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며 1930년 무렵에 새로 절이 지어졌다고 한다. 탄곡(炭谷)은 ‘수실’이라 한다. 수실이 본 이름이고 여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숯고개 라고 하여 한자로 탄곡(炭谷)과 탄현(炭峴)이라고 쓴다. 그러나 사실은 고려 태조 왕건 군대가 여산 쪽에서 이 재를 넘어 왔다. 그런 인연으로 하여 이곳을 수자리 고개라 불렀는데 잘못 전해져서 후세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숯 굽는 고개로만 알아 ‘숯고개’라 불렀다. 그래서 ‘수현(戍峴)’으로 적어야 할 것이 탄현(炭峴)이 되고, 군대를 주둔시켜 머물게 한 곳이기 때문에 수자리골인 ‘수실(戍室)’ 또는 수곡(戍谷)을 탄곡(炭谷)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 텃골, 수실, 제실 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사자골: 마을이 사자 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 노적바위: 나락을 베어 노적을 하나하나 쌓아 놓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텃골 샘: 마을 공동 샘이다.
- 거북바위: 거북이 모양의 바위이다.

3) 전설 및 민담
- 숯고개: 백제의 마지막 보류지라고 한다.

4) 민속
- 풍물: 각 가정 부엌을 돌아다니면서 풍물을 쳐주면 보답으로 쌀을 얻어갔다고 한다.
- 마을 금기: 마을의 우물이나 샘 주변에는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
- 무제: 용화산에서 괴골, 탄곡, 사자골 3개 부락이 모여서 무제를 지냈다고 한다. 주로 거북바위에서 많이 지냈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이재연 (85) 1928년
A2: 소기정 (52) 1961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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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신탄마을 주변 지명 유래가 무엇이 있나요?

A1: 여기가 ‘텃골’ 이 마을이 ‘텃골’부락 그리고 저기가 ‘수실’.

B1: 왜 ‘텃골’과 ‘수실’이라고 했을까요?

A1: 그런 건 우리가 잘 모르지 옛날...

A2: ‘제실’은 제각이 있어가지고 재각 모신다고 해서 ‘제실’이죠.

B1: ‘수실’이 아니고 ‘제실’입니까?

A1: 아 옛날 고 거시기는 ‘제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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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옛날 그 지명은 ‘탄곡’.

B3: 왜 ‘탄곡’이라고 했을까요?

A2: 그 어른들 역사에 말씀 드리자면 숯 탄자 써요 그리고 옛날 숯을 굽는 고을이라고 했다는디 곡자는 마을 곡자 자나요 근디 우리 지금까지 찾아봐서 숯 굽던 자리는 없어요 근데 어른들은 분명히 숯 탄자에 ‘탄곡’이라고 했는디 그걸 어떤 유래로 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B3: 어르신 주로 어렸을 때 어디서 많이 노셨나요?

A1: 아 이 근동이지 다.

B3: 이 동네 앞산 이름을 뭐라고 했나요?

A2: 그냥 그런 건 없고 뒤에는 용화산이죠 저..저.. 용화산을 끼고 ‘탄곡’하고 ‘신사’하고 두 개 분리 했어요 ‘신사’는 인제 ‘사자골’이라고 하는데.

A1: 원래는 인자 ‘탄곡’ ‘신사’ 그랬는디 지금은 그냥 ‘신탄’이라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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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행정구역이 통합해가지고 근데 본래 ‘신사’도 ‘사자골’이라고 해요 거기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사자 머리 모양이라 ‘사자골’이여 동네가 사자 머리에요 지적도를 놓고 보면 그런 걸 느껴져요 사자 머리 같아요 그러고 그 ‘사자골’ 뒤로 쭉-욱 따라 올라가면 용화산의 ‘노적바위’가 있죠 노적은 옛날 우리가 나락을 베면 노적을 하나하나 쌓아놓은 모양이 있어요 그 바위 모양이 그렇게 생겼다고 해서 ‘노적바위’고 그리구 우리는 옛날 어른들 나락 손으로 베어가지고 묶어서 다 노적노적 쌓아 놓거든요 그 모양인데 바위가 그 모양이라고 해서 ‘노적바위’고 또 그 바로 앞에는 ‘병풍바위’이 있어요 이런 건 우리 전설에 고향에 ‘노적바위’가 두 번이나 나왔어요 역사적으로 주 내용은 다 잃어 버렸어요 나왔던 사실만 알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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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주변에 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저 쪽이 인자 ‘괴골’ 어디 사냐 할 때 그냥 ‘괴골’살아요.

B3: 어느 마을이요?

A1: 저 마을이 근게 부락이 저 ‘괴골’도 부락이고 여그 ‘텃골’도 부락이고 여그 저 ‘수실’도 부락이고 저 쪽은 ‘사자골’ 거그도 부락이고 다 합쳐서 용하리 옛날 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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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어렸을 어디로 학교를 다니셨나요?

A1: 여 여기는 왕궁으로 다녔지.

B3: 왕궁까지 걸어 다니시면서 넘던 고개 이름 생각나시는 것 있으신지요?

A1: 그 거시기가 학교가 ‘능지울’에 있어,

A2: 여그 앞에 보이는 것이 ‘장고개’라고 하죠?

A1: 아 이리 넘어가는 데는 ‘장고개’고.

B3: ‘능지울’은 어디 인가요?

A1: 저 쪽 왕궁면 그 용남 저수지 넘어 가는 곳에 있어요 거기에 용남 저 정각이 있고 또 거기가면 거시기가 되.

A2: 동네 지명이 ‘능지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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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숯고개’이야기 좀 해주세요.

A2: 우리가 아는 걸로는 ‘숯고개’가 아마 백제 마지막 보류지라고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숯고개’ 여그가 저 옛날 백제권이었자나요 근게 예를 들어서 여그 ‘숯고개’가 뚫리면서 백제가 완전히 무너졌죠 우리는 그렇게 알았어요 저-그 저 터널있지요? 저기가 지금 새로 공사해서 터널 생겼는데 본래는 고개이었어요 여그서 볼 때는 거리가 짧아도 상당히 고개 였었거든 저것 보고 인자 ‘숯고개’라고 하는데.

A1: 전주서 또 나오는 길이 또 있어.

A2: 근게 백제 아들 백제 견훤이 아들이 마지막 여그서 저기 머야 백제를 고소한 거죠 그랬다가 견훤이 셋째 아들인가? 그래서 여그가 물러나면서 백제가 무너졌다고 인자 말로는 그렇게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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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숯고개’가 많이 험했다고 하던데요?

A1: 아 인자 거그가 그랬죠 교통사고도 많이나고.

A2: 그리고 그 거기가 명 길다고 일본인들이 끊으려고 많이 했었나봐요 옛날 우리나라 맥을 일본인 들이 다 끊었자나 거기를 그렇게 끊으려고 했었는 가봐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고 또 내가 언 듯 가다가 풍수하는 사람하는 사람을 한번 만났는데.

A1: 여그 몇 군데 끊었어.

A2: 그런 사람이 그러드라고 그러면서 여그도 이 용화산 맥이 대한민국의 5대 맥으로 들어가는디 저걸 끊어서 그만큼 안 된데 그만큼 풍수하는 사람들은 잘 알더라고 그러면서 그러는디 저 ‘숯고개’ 일본놈들이 끊어서 5대 맥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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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마을 중간에 보이는 묘가 무슨 묘인가요?

A2: 진주 소씨 묘에요 저게 ‘소세양’의 선친도 있고 후손도 있지요.

B1: ‘소세양’어르신에 대해서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2: 그냥 어르신들한테 듣기로는 같은 일가니까 그냥 그저 효자 중에 효자 이었고 정말 뛰어난 문인이었는디 지금으로 말하자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일생을 문인으로써 충분히 즐겼다고 그런 이야기만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역사책에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쉽게 말하자면 관직에 욕심에 냈으면 관직을 많이 줬는디 본인이 그런 것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때 당시 정치가 자기하고 안 맞으니까 그걸 거절하고 고향 낙향해가지고 자기 나름 데로 그냥 자기 글만 황진이랑 같이 글만 문인으로써 자기, 그러다보니까 역사책에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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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병목’다리라고 있던데요?

A1: 거그가 병처럼 생겨서 ‘병목’다리라고 그렇게 들었어요.

B1: 어렸을 때도 그렇게 불렀나요?

A1: 아 어렸을 때도 거기 병목, 여그 보고 ‘병목안’이라고 그러고 거기 저 뭐냐 거시기 왜정 때 다리를 놓았단 말이여? 지금도 그 다리가 있지 그 다리를 ‘병목’다리라고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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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도깨비 이야기나 귀신이야기 같은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A1: 나도 어렸을 때는 많이 들었어요 근디 다 잊어 버렸어요 어르신 좀 이야기 해주세요.

A2: 나도 뭐 거기서 강도 나고 그냥 저 도둑때들 생기고 그랬다는 디 거기 굉장히 무서운 디여 거기 지나가려면 솔이 그냥 꽉- 차가지고는 밤에는 약한 사람들이 댕기 덜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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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옛날에 마을에서 풍물도 많이 치고 그랬나요?

A1: 그전에 인구가 많을 때는 했지 근디 지금은 헐 사람이 없어.

A2: 그전에 해 마다 했어 풍물 치며는 각 가정 부엌에 돌아다니면서 일 년 액운 쫒아주고 집에서는 보답으로 쌀 쪼매 주고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돈보다는 농사지으니까 먹을 꺼 쌀 쪼금 한 주먹이라도 내주고 장독대 부엌 가서 그냥 옛날 어른들은 근디 왜 무엇 때문에 장독대에 가서 액운을 쫒았어요?

A1: 허허허 그건 잘 모르지 근디 풍물은 심-하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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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서 금기시 하던 것도 있나요?

A1: 말하자면 우물에 샴에 그런데는 동네에서 나서서 묘를 쓰지 말자고 해가지고 묘를 못 쓰게 한다고 그렇게 있다고 그려.

B1: 그 우물이 무엇인가요?

A1: 아 그냥 ‘텃골’ 샴이라고 그러지 그냥 허허 근디 그 위에 인자 산소 자리가 좋았었다고 그러거든? 근디 거그는 동네서 말려서 산소를 못 썼었어 옛날에는.

A2: 저 이유 없이 마을에서 내려오는 신이 있자나요 미신이 지키는 어떤 그런 신 같아요 근게 쉽게 묘를 쓰면 동네가 망한다 든가 동네가 액운이 따라 온다고 못 쓰게 하는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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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예전에 마을에서 무제도 지내고 그랬습니까?

A1: 그때는 그전에는 했으면 ‘용화산’에서 했지 삼 부락이 전부 합해가지고 합동으로 했었지 지금은 ‘신탄’ 이렇게 되어있는디 옛날에는 저 ‘괴골’, ‘탄곡’, ‘사자골’부락이 아주 옛날에는 그랬다는 전설이 있지 아마.

A2: 옛날 저 내가 말한 ‘노적바위’있는 거그 가서 아니 거기 올라가다 보면 무슨 바위이지? ‘사자골’에서 용화산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하나 바로 있자나요 ‘거북바위’ 인가?

A1: 응.

A2: 어 ‘거북바위’에서 옛날에 제를 많이 지냈데요 지형이 오목한데 바위가 하나 있어요 약간 거북이 모양으로 그게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옛날에 제사를 다 거기서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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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마을에서 장터를 가려면 주로 어디로 가셨나요?

A1: 지금 생활권이 여그는 왕궁에 있지 주로 왕궁으로 많이 가고 때로는 여산으로 가고 그랬지.

B1: 예전에 마을에서 소송이나 관청 갈일이 있으면 주로 어디로 갔나요?

A1: 여그? 여그는 저 왕궁으로 갔지 아 그 왕궁이지 왕궁 주제소지.

A2: 그때는 면사무소가 아니라 주제소요?

A1: 아니 저 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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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아까 ‘숯고개’가 굉장히 험했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그것에 관련해서 들으신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A1: 아 강도를 당했다고 들은 이야기는 더러 있지 거기 가서 참견하고 그런 일은 없고 아 어떤 사람이 가다가 도둑들한테 돈을 좀 털렸다든가 뭐 그런 거시기가 있고 근게 여자들은 밤이고 낮이고 해지면 댕기 덜 안 혀.

B3: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성함과 연세를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2: 소기정 52살.

A1: 이재연 85살.

B1: 아 정말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신탄마을 소기정 이재연 구술채록 모습


신탄마을 이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