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외사마을2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외사마을2
구술자 이창배(1955)남자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08
비고 면담장소 : 여산면 가람 이병기 생가
면담시간 : 오전 11시
내용 : 마을 유래, 지명유래 및 민담 등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외사(外沙, 삿골)․서당골․텃골․새터 : ‘외사’는 삿골의 구분된 이름이고, ‘삿골’은 유점, 호월, 신평의 사이에 있는 마을이기에 ‘사잇골→삿골’이거나 ‘사이’의 옛말은 ‘슷’이니 ‘슷골→삿골’이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 외사마을의 유래 : 예전에 바깥 외 절 사자를 써서 절에 들어가기 전 마을 외사마을이라고 했으며 그 전에는 삭골이라고 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사찰 : 외사마을에 사찰은 4개가 있다. 대표적으로 신라시절에 창건된 문수사가 있다.
- 바람굴 : 천호동굴에 신기한 바람굴이 있다고 한다.
- 중개장터 : 스님들이 물건을 사는 장터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타성바지 마을이 된 이유와 여산 송씨가 타지역으로 이주한 이유 : 여산송씨가 많이 없는데, 그 중 여산송씨가 마을에 있음 잘 안되고 반대로 마을로 나가면 잘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흥과 보성쪽으로 많이 이주했으며, 이주한 여산송씨 중에는 이순신 밑에서 일한 장군도 있다고 한다.

4) 민속 :
- 고목제 : 고목제까지 지내던 오래된 나무가 있었는데 고목제를 지내다가 촛불에 의해서 타버렸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 이창배1955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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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외사마을의 뜻은 무엇입니까?

A1 : 우리 마을 자원조사 한 거 있는디 전라북도 마을 조사단에서 와가지고 그 때 어른들하고 같이 조사했거든. 긍게 전체적인 거 마을 연혁은 우리 마을이 원래 외사가 아니라 삭골이여 삭골. 근데 인자 그걸 바까서 인자 과거의 그 천호산 밑에 절이 많앴어요. 사찰이 그래가지고 우리 마을을 거쳐서 들어갈라 보면은 바깥 외자 절사자를 써가지고 외사라고 불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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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절이 몇 개나 있습니까?

A1 :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한 네 개 정도 남아있고. 문수사 백운사 백연암 천일사. 현재 문수사는 약 한 천사백여년 된 저 사찰이거든. 에에. 글구 저 백운사도 998년도인가 여기 보면 그게 나오는데. 긍게 신라 현경왕때 우리 문수사가 창건된거여 881년도. 그러고서는 백운사는 1928년도에 창건이 되고 그 외에 인자 따로 백연암이라든지 천일사 같은 경우는 암자로 있다가 근래에 인자 거기 하고 있고. 거기에는 인자 우리 여산 송씨. 송씨 시조산이 거가 바로 있어. 에 시조 묘소 바로 끝자락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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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외사마을엔 여산송씨가 많겠습니다.

A1 : 아니지 인자 그 옛날에는 집성촌인데 지금은 타성이 더 많고 여산송씨들 인제 불과 한 너댓집 밖에 없어. 그 여산 송씨들이 나가면은 잘되고 여산에 살고 있으면 잘 안된다 해가지고 나가서 저 고흥이나 저런데나 살던 분들은 그지 저 이순신장군 수하에서 장수를 하던 분들이 많앴다 하드라고. 고흥쪽에는. 고흥이나 저 보성쪽에. 긍게 마을 형성은 천호산 산성 생기면서 그 때 우리 백제시대 추축되는데 그 때 산성이 생겼었거든. 그 때부터 우리 마을이 형성이 되었다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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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유적지 같은 것들이 그럼 많이 있겠습니다.

A1 : 에 백제 때 했던 그. 산성 무너진 것이 있어 지금도. 아까 인자 모양은 거의 인자 했는데 산성 쌓았던 돌같은 게 주위에 있어 지금도. 근데 인자 우리 마을은 자원은 앞으로 바로 앞에 호남 고속도로가 나면서 거기 또 유래된 마을 같은 것들이 많이 없어졌더라고 내가 볼적에. 긍게 고속도로 휴게소가 옆에 있으면서 그 옆에 주면 자원을 많이 훼손시키고 그랬지. 정자나무 같은 것들은 그냥 팔백년 지금 내가 볼 적에는 천년 된 정자나무보다 더 컸어. 우리 열두명이 안아도 반쪽이 짜개졌는데 열두명이 안아도 못 안았어. 그 때만 해도 XX 할 때가 70년대라 그런 자원 같은 것들을 중요시 못했지. 지금 같으면 고속도로도 그런 것도 못 놨지 그런 것도. 그게 하튼 그 나무 하나가 진짜 이런거라. 우리가 한 열 너뎃사람 정도 이렇게 손 잡고 열두명이 XX 자리를 둘러서 그러면 안쪽에 또 짜개져가지고 나중에 거시기 허면 XX되고 완전히 소멸되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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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나무에 고목제도 지내셨습니까?

A1 : 나무도 그 당시에 고목제로 이렇게 (전정희국회의원과 익산시장의 방문으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는 부분이 있음) 한 것이 불이 나가지고 불이 속으로 타서 그 소방차 옛날에는 지금 XX하니까 옛날에는 그 인력거이고 리어카 끌코 물을 위에다 붓고 밑에 해도 일주일 정도 탔어.

B1 : 그게 고목제를 지내다 그렇게 된 것입니까?

A1 : 에에. 그게 고목제를 지내고 촛불을 아마 들끄고 갔나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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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우리 마을이 보면은 하천이 있어. 하천이 옛날에는 호월천이라 했는데 근데 호자가 일자하고 비슷하거든. 그래가지고 어느 행정에서부터 호자를 일로 고쳐버렸어. 그래가지고 일월천으로 되어버렸어. 근래에 일월천이라고 써 놓은 지명이 주민들한테 XX된거여. 그래가지고 이게 원래 호월천인데 일월천이라고 행정에서. 그래서 후에 호월천으로 고쳐줘야지. 한문으로 분명히 호월천인데 한글로 일월천으로 통일이 되버려 그렁게. 어디를 가야되는지 알면 쫓아가것는데. 그러고 우리 마을에 중개장터라고 있었어. 옛날에 스님들이 가서 밖에 나와서 뭐 허는 거 중개장터라고 있었어. 근디 옛날에 그 중개장터를 그양 징개장터라고 그냥 어런덜이 발음이. 징개장터 징개장터 그랬거든. 그 지역에 하천도 흐르고 옆에 땅이 펑퍼짐 하고 그러거든. 거 평전이라고 허는 데는 거기에서 인자 쉽게 얘기해서 전을 봤단 얘기지. 평번이라는 데서. 그런 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런 게 조금 생소한 게 있더라고. 긍게 중개장터라면 스님들이 나와가지고 이 저 골짜기서 나와가지고 장을 봤다 가고 장이 형성을 이뤘다는 얘기지. 스님하고 일반 스님 아닌 거래자들하고 같이.

B1 : 그럼 스님들이 무언갈 사고 팔았겠습니다.

A1 : 스님들이 인자 필요한 물건이라든지 뭐 그런 물건을 나와가지고 거기서 했단 얘기지. 그 한 때는 호월이라는 마을이 우리 어려서는 지명이 중마을이었어. 중말. 그 여기 호월부락 있거든. 이 저 보면 호월있어. 이 호월이 옛날엔 그 우리 어려서는 중말사람 중말사람 그랬거든. 긍게 거기서 중이 많이 살았다 해서 중말이라고 했다 하드라고. 에. 거 우리 우엣마을에 유점이라는 데도 우리 마을 거쳐서 거의 올라갔거든요. 긍게 유점도 절 입구 절 입구였다 하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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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바람 굴 얘기는 무엇입니까?

A1 : 바람 굴은 천호동굴이라고 있는데 천호동굴이 호월 쪽에 천호동굴이 있으요 거가. 호월마을 위쪽에 천호동굴이 천호산 자락에 지금 이게 천호산 정상이 여기거든요. 여기가 정상이에요 이쪽에. 근데 우리 마을에 올라가다 보면은 여 위쪽에 호월마을이 있는데 호월마을이 여기가서 바람 굴이 있었거든요 옛날에. 바람굴이 그 전에는 돌 사이에 쪼그만씩 공간이 있어가지고 여름에 거기 가면은 그 쪽 가면은 어디서 일하다가 예를 들어 가서 풀베기 같은거 작업허다가 그 입구에 가면은 막 시원해서 땀이 다 말라버릴 정도였었지. 인제 그 온도를 재니까 영상 육도라고 하더라고. 영상 육돈가 된다고 그러던데 그 굴을 1965년돈가? 거기 남북교회 교회 전도사라는 분이 그 한 번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거 인부들 시켜서 공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시켜가지고 돌을 들춰내가지고 천호동굴을 쉽게 얘기해서 발굴을 한거지. 그 때 당시에. 그 때부터 천호동굴이 발굴 되가지고 177호 천연기념물고 지금 보호 되어있거든. 그래서 그 아래 석산하던데도 석산도 이게 동굴 때문에 석산을 폐광을 시켜버렸어. 천호동굴 보존허기 위해서. 근데 지금은 동굴을 예를 들어서 철갑 해가지고 꼭 필요한 조사 할 때만 시 관광과에서 조사를 허고 아무도 출입을 못허고 있어. 근디 그 굴이 입구는 여산면 토산리에 있는데 이 저 동굴 자체는 한 90%가 여산면 태성리에 있다고 해서 그 어떻게 행정에다 대고서는 여산면 태성리로 등록을 해 놨드라고. 근디 여기에 인자 이거 허믄서 봉게 태성리를 대성리라고 점을 빼고 해놨어. 지난번에 마을 조사단에서 해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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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구술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