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외사마을1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외사마을1
구술자 이창배(1955)남자
구술자 이병창(1951)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08
비고 면담장소 : 여산면 호산리 외사마을 모종
면담시간 : 2012년 9월 8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외사(外沙, 삿골)․서당골․텃골․새터 : ‘외사’는 삿골의 구분된 이름이고, ‘삿골’은 유점, 호월, 신평의 사이에 있는 마을이기에 ‘사잇골→삿골’이거나 ‘사이’의 옛말은 ‘슷’이니 ‘슷골→삿골’이다.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새로채록된 내용 :
- 외사 : 예전 이름은 삭골이다. 중이 천호산 절에 들어갈 때 이 마을에서 머리를 삭발했다고 한다. 외사라는 이름은 절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천호산 : 天瓠 즉 산 내부가 항아리처럼 비어있다는 의미이다. 천 호를 먹여 살릴 수 있어 천호산이라는 말도 있다.
- 징계장 : 중계장. 중들이 장을 보던 곳이다.
- 호월 : 예전 이름은 중말이라고 불렀다. 중들이 많이 사는 중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 대호산 : 당대산이라고도 불렀다.
- 범덕골 : 범이 잠자는 혈을 뜻한다.
- 서당골 : 이곳에서 한문을 많이 가르쳤다.
- 학봉 : 학동에 있는 봉우리의 명칭이다.. 학의 날개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세이며, 갈매봉이라고도 불렀다.
- 솔개날 : 여산휴게소 자리이다. 솔개가 먹이를 채가는 형세이다.


3) 전설 및 민담 :
- 천호산에 절을 백 채나 지으려 했던 이유 : 예전부터 천호산을 호남의 8대 명당이라고 불렀다. 좌청룡(용화산) 우백호(대호산)의 좋은 형세이기 때문에 절을 백 채나 지으려 했다. 천호산의 기가 세서 그 기를 누르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범덕골에 얽힌 이야기 : 범덕골은 범이 잠자는 혈을 뜻한다. 범이 자기 위해서는 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어야 한다. 나무를 전부 베어낸 뒤로 범이 잠을 잘 수가 없어 호월마을 남자들의 수명이 줄었다고 한다.
- 천호동굴의 이무기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이무기가 살았다고 한다.


4) 민속 :
- 고목제 : 마을의 오래된 고목을 수호신으로 여긴다. 정월 열흘이나 열사흘 사이에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구술채록

A1 이창배. 1955년.
A2 설주환. 1951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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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해발 그 500고지 거그가 지금은 헬기장도 거기 옆이 있는데, 그 산성 생기기 전부터 여그 마을이 생겼다고 봐야거든요.

B1 : 저 산성 이름을 뭐라고 부릅니까?

A1 : 천호산성이죠. 원래 그 천호산 정상에 있어가지고, 근데 지금은 산성이 거의 다 무너졌어요. 돌만 남아있어요, 옆으로 흥그러진 돌만. 보존은 하나도 보존이 안 돼 있고 옆으로 그냥 무너진 것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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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긍게 내가 알기로 저 우에 절 보이는 디, 그 절은 근래에 절로 승격시켜서 헌 것이고 그 밑에 문수사허고 백운사가 좀 천년이 넘는 절들이죠. 문수사 같은 경우는 886년돈가 2년도에 그 창건했드라고요. 백운사도 928년인가에 창건허고.

B2 : 그 절들 말고 또 다른 절들이 있습니까?

A1 : 거기에 큰 절 두 개 있고, 또 백년암이라고 암자절도 있고, 저기 천일사도 저게 그 화엄종에서 인자 개인 절 그것도 절이 있고 네 개가 절이 있어요, 여기에. 그리고 여산 송 씨 시조산 산소가 지금 여기 전봇대 있는데 딱 그 마루에 시조 산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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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를 왜 외사라고 부릅니까?

A1 : 내가 듣는 거로는 지금 현재 외사마을이라도 삭골이었어요, 삭골. 긍게 여기는 이 안에도 절이 옛날에 뭐 한 백 개를 질라고 허다가 백 개를 다 못 짓고 한 네 개 정도만 절이 남어있는 걸로 알고 있고요. 그전에는 쪼그만허게 산 중턱에도 이렇게 펀펀허게 집터처럼 다듬어놨던 그런 자리가 많이 있어요, 가보면은. 긍게 좀 요만허게 한 백 평 정도, 이백 평쯤 되는디 그런 데가 절터라고 허드라고요. 그런 자리가 많이 있었어요, 거기 산 중턱에도.

B2 : 천호산에 절이 백 개가 있어서 여기가 삭골입니까?

A1 : 예. 거그를 들으갈라먼 여그서 삭발을 허고 갔다고 삭골이라고 했다고 그랬어요. 그래가지고 지금 저 산성 산에 가먼은 여그가 뭐 옛날에는, 우리가 인자 어렸을 때는 그냥 징계장, 징계장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그전 어른들이 중계장이라고 중들이 장 같은 걸 보러 나올 때 그 장이 섰다고 허드라고요. 그 산 중턱에 펀펀헌 자리가 있어요, 지금도요. 옆에는 한쪽에는 이렇게 개울처럼 흘르고 지역이 좀 펀펀허게 넓은 자리가 있는데 그게 장터였다는 얘기예요. 긍게 옆에가 징계장, 징계장 혔는디, 그 원래 중계장이라 중들 가는 장이라고 혀서 중계장이라고 혔다고 그러더라고요.

B1 : 외사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겁니까?

A1 : 바깥 외 자, 절 사 자를 쓰네 어쩌네 그런 얘기가 나왔었어요. 저희들도 그전에는 삭골 사람들이라고 했었거든요. 옛날에 우리 어려서도 삭골, 삭골 그랬거든요. 근디 우리 학교 다님서부터 외사로 어떻게 행정지명이 나와서 나도 정확헌 내력은 모르는데, 그 절 바깥에 있다고 혀서 외사라고 알고 있어요.

B2 : 또 특이한 지명에는 뭐가 있습니까?

A1 : 또 이쪽 마을에 가먼은 옛날에 호월인디 호월마을 이름이 우리 그전이 우리 어려서는 중말, 중말 그랬거든요. 중마을이라는 얘기지. 긍게 중마을을 좁혀서 중말, 중말 그랬거든요. 중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그런 거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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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째서 천호산에 절을 백 개나 지으려 했을까요?

A1 : 산이 꼭 깊어서만 산세가 좋은 건 아니잖아요. 산 형태가 조화를 잘 이루는 산이 있거든요, 야차(얕다)도요. 긍게 이거 보면 여산 송 씨 산이 뭐 호남의 8대 명산인가 들어간다는 얘기요. 긍게 왜 그러는고니 좌청룡 우백호를 그 산 형세에 뚜렷허게 그려졌다 이거예요. 긍게 좌측으로는 용화산이 있는데 용화산이 싹 감어주고, 여산 소재지 뒷산이 대호산이라는디 그 백호산이라 이거죠. 그래가지고 그 산세가 정확히 안어졌다는 얘기예요. 대호산이 있고 저쪽은 그 용이 있고 그 사이에 딱 안어졌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산세는 아주 크게 거시기는 안 돼도 그 좌청룡 우백호를 뚜렷허게 그릴 수 있는 산이라는 얘기죠.

B1 : 대호산이라는 데가 있습니까?

A1 : 여산 소재지 중에 당대산이라고 그러거든요? 인제 소재지 사람들이 당대산이라고 허는디 그게 행정지명에는 대호산으로 돼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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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지형이 무슨 혈을 닮았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A1 : 여기가 범혈이라고 그러는데 그 송 씨들 산 뒤에가 넘어가서 그 범혈 잠자고 있다고 해서 범덕골도 있어요. 그 범덕골이 나무가 우거져야는디 큰 나무를 많이 비고 나서는 그 범덕골 옆에 그 호월마을 사람들이 별로 오래 살지를 못했어요. 범덕골에 범이 잠을 잘 수 있어야 하는디, 그 잠을 잘라고 허면은 숲이 있어야 허는디 숲이 없다는 얘기지. 그래서 이쪽 동네(호월)가 있는디 이 범덕골에서 범이 잠 잘 수 없응게 남자들 수명이 짧다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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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오래된 고목이 있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마을의 평안을 위해 고목제를 지냈다. 고목제는 주로 정월보름 전에, 열흘에서 열사흘 사이에 치렀다. 제사에 필요한 비용은 건립으로 마련하였다. 과거 고속도로 공사 중에 베어내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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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근처에 또 다른 지명이 있습니까?

A1 : 옛날에 서당골이라고 있었는데 그 서당골은 옛날에 거기서 그 한문공부를 많이 가르쳤다고 해서 서당골이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B2 : 문필봉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1 : 문필봉은 못 들어봤는데 그 학동의 학봉이라는 건 내가 들어봤어요. 학동에 젤로 그 똑똑허게 서있는 산이 학봉인데 학이 나는 형세를 허고 있다고 해가지고 날다가 거기를 딱 안아가지고, 그 내가 알기로는 그 학동 동네 안을 이게 학이 딱 감싸주고 아닌 말로 큰 복을 내려준다고 해서 학봉이라고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B1 :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A1 : 어른들한티 전해 들었죠. 그래서 그게 갈매봉이라고도 허고 학봉이라고도 허고.

B2 : 여산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겁니까?

A1 : 그 여산이라는 이름은 인자 내가 알기로는 그 백제, 신라 때는 여랑으로 불렀을 거예요, 여랑. 여랑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여산, 낭산, 망성 이쪽 일부의 황아 일부가 이게 같이 여랑현으로 돼있었거든요. 근데 고려시대 와가지고 여산을 숯돌 여 자를 써가지고 여산 이렇게 산이 있다고 해서 여산으로 유래가 바뀐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산에서 숯돌이 많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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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천호동굴과 관련된 옛날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2 : 전에 거가 바람굴이라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시원헌 바람이 나왔어요. 그래가지고 돌을 둥글리면 돌 둥그러가는 소리가 데굴데굴 나다가 첨벙 소리가 나잖여, 물 있는 디 떨어지니까. 그래가지고 거기 뭐 용 올라갈라다가 못 올라간 이무기가 산다고 그랬죠. 그래가지고 거기다 산지당 세워가지고 거기서 공덕 드리던 할머니가 한분 계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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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 이야기 또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2 : 뭐 그거 밖에는 몰르고, 이 동네 지명이 삭골이라고 그랬었는디 그냥 우리가 부를 때는 삭골이라고 했는디 전격으로 얘기허먼 인자 사곡이라 그 말이겄지. 여그가 절이 아흔아홉 채 있었다고 그러니까.

B1 : 절이 지어진 유래가 있습니까?

A2 : 절 유래는 여기 산이 기가 세가지고 기를 좀 눌러놔야지 이 근방에, 천호산 앞에가 잘 된다고 그래가지고 그 절이 많이 지어졌대요. 그런데 아흔아홉 채를 짓고 나니까 자리가 없어서 못 지었다고. 그런 게 여기가 산 이름이 천호산 아녀. 하늘 천 자, 항아리 호 자잖여. 그러니까 동굴이, 그 산 이름이 산이 비어있다는 것을 옛날 지명에는 알었다는 얘기지. 그 산 이름이 동굴 속에서 나왔다고 봐야혀.

(천 호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이라 해서 천호산. 김길동.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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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의 혈자리가 어떻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A2 : 뭐 특이헌 것은 없고 고속도로 나먼서 저쪽 능선으로 이렇게 타고 가먼 여산으로 길이 있잖여. 거그가 저 솔개날이라고 그랬거든, 솔개날. 그래가지고 병아리 같은 옛날 큰 새 솔개 있어가지고 채갔고 날라 다녔잖여. 근디 인자 거그가 고속도로 나먼서 끊어지고 나서 휴게소가 생겨버리니까 지명이 뭐, 거그서 잠깐 있다가 차타고 가버리니까 지명이 맞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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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가 심했다.)

A2 : 이 근방 천주교 신자들 다 잡아다 여기 와서 그 뭉쳐서 죽인 디가 숙정이고, 그러고 거기, 지금 공원이잖여, 여산 공원자리. 그 밑에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도 거그가 사택이었거든, 공원 사택. 그런디 거그가 지금 백지사지터로 천주교서 보호허고 있지. 바로 옆에다가는 뭐 한 장씩, 한 장씩 백지 발러감서 숨 못 쉬게 질식사 시켰잖여.

(천호성지. 천호산에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이 많았다.)

구술사진

외사마을


외사마을-좌측-설주환, 우측-이창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