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신부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신부마을
구술자 신동수(1933)남자
구술자 박성염(1933)남자
구술자 이계갑(1952)남자
구술자 송재석(1939)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15
비고 면담장소 : 여산 신부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오전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지명유래, 전설 및 민담 등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신부(新富)․신평(新坪)․즛절․부흥(富興, 부엉골, 사당모퉁이) : ‘신부’는 1972년 신평과 부흥을 합치면서 붙인 분리명. ‘신평’은 앞의 하방들을 새로 개척함으로써 붙인 이름.‘부흥’은 부엉골(부헝골)의 한문자 표기.‘사당모퉁이’는 전에 사당 성황사(城隍詞)가 있던 모퉁이, 동국여지승람에도 호산리, 성황사가 기록되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신부마을의 유래 : 신평하고 부흥이 합쳐진 말이다. 신평은 과거 즛절이었고 부흥은 부엉골이었다고 한다. 즛절은 절과 중이 있어 즛절이였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평은 즛절 이외에도 사당모퉁이라고 하는데, 사당모퉁이란 뜻은 기준점을 측량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망매 : 공동묘지 장소인데 예전에 고려장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유골이 종종 발견된다.
- 천호산 : 옛날엔 숯돌과 석회암으로 많이 그릇도 만들고 해서 팔았다고 한다. 실제로도 생양동쪽에 바위에 보면 뱀 비늘처럼 그런 자국이 있다고 한다.
- 성치 : 성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부촌 : 옛말에 '아이를 낳으면 신부에 보낸다'고 말이 있었는데, 신부마을 주민들이 근면성실하고 마을 사람들의 기질이 좋아서라고 했다.
- 천호산 : 오래전 도사가 지나가며 천호산을 가리키며 ‘저 산은 형상이 좋아 만명을 먹여살릴 산’이다 하여 만호산이라고 불렀다. 또한 여산에서 왕비를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왕비 일가가 천호산을 왕에게 하사 받았는데, 그 이후 송씨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장수굴과 용 이야기 : 천호산에 장수가 살았다던 굴이 있는데, 그 장수가 천호산의 용을 잡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장수가 용이 승천할 때 화살을 쐈는데, 용이 화살을 맞아 용화산 생양쪽의 굴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 신동수1933
A2 : 박성염1933
A3 : 이계갑1952
A4 : 송재석1939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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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뭐가 유명합니까?

A3 : 우리 마을 뭐 그렇게 특이허게 거시기는 없고 평범허게 산 마을중에 하나고. 그 뭐라할까 하우스를 우리 마을이 여산면에서 제일 먼저 했다는 거. 양파 거 제일 먼저 제배했고. 긍게 그분들이 다 돌아가셨지. 돌아가셔가지고 우리 마을에서 인자 양파 마늘을 많이 제배를 해서 익산시나 전주시 사람들 우리 마늘 많이 먹고 살았어. 그런 것 정도로 그렇게.

B2 : 신부라는 마을의 유래는 무엇입니까?

A4 : 신평허고 부흥하고 두 동네였었어요. 원래는. 근데 행정구역 통합 그 때 신자하고 부흥자. 그래서 신부마을.

B2 : 그 뜻은 무엇입니까?

A4 : 그거 아무 뜻도 없어요. 새로 생긴. 긍게 그런 말로 생겼나 원래는 즞절이여 즞절. 이짝 여산도 으ㅠ산(표기 불가능)이라 그래 으ㅠ산.

A3 : 우리가 살기 전에는 뭐 그 인자 우리는 젊으니까 모르지만은 절이 있었대. 절이 있었는데 절이 없어지면서 신평으로 바뀐거 같으드라고.

B2 : 즞절이라는 건 무슨뜻입니까?

A2 : 인자 그건 몰르지. 인자 어른들은 이살랑가 몰라도 중간에 인자 이렇게.

A3 : 다들 돌아가시고 인제 거시기 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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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 여기 한가지는 여기 망매라고 있어요. 긍게 공동묘지란데여.

A3 : 거기가 고름장이 굉장히 많앴어요. 고름장이라고 옛날에 고려장 고려장. 긍게 지금도 있고 그래요. 한 사오십게 될거여.

A4 : 거기 나온 토기를 보믄 거 줄무늬 토긴가 우리 동네가 하나 줏어왔는데 누가 껍데기 이렇게 줄을 냈드라고. 긍게 고려시대 아마 연도 되는 것 같애. 고려장 돌로 이렇게 쌓았어.

A3 : 사람 머릿 수가 보통 열두개. 그렇게 들어있더라고 해골수가. 그 전에는 파봤거든. 그걸.

A1 : 그게 장례했던 모양이지 그게 큰 이인이나 명인 묘소가 아녀. 일반 서민 묘손디 저기 망매라고 저 양달쪽으로 산 밑에 있는디 거기 나도 거기 파고서는 들어가까지 보고 그랬는디 이렇게 그냥 돌로 차곡차곡 쌓아도 가서 들어봉게 뼉따구가 그 뼉따구가 축허니 눌어있는 대로 있고 뭐 토기같은 거 그런 것이 있었고 그런 형편인데 그것이 유명헌 말하자믄 명인의 장례식장은 아니여. 장례는 아니여.

A3 : 고름장터가 있었고 기왓장 있죠? 깨진거. 그것이 거기서 많이 나오거든 그 밑에서. 거기서 줏어다가 저 놋 놋그릇 있죠 놋그릇. 놋그릇 닦고 그랬어 으른들이. 옛날 우리 어렸을 때. 땀구어가지고.

A1 : 긍게 이런거를 XXX 명당을 선호허는 그 시대에 거가 양당이고 따숩거든 저가 망매라고 하는디가. 저 산 밑에 있는디 남쪽은 남에허고 북쪽은 다 맥혀버리고 때수잉게 거기다가 장례를 지냈던거 같여.

A2 : 따순데가 좋응게.

A3 : 따순 데가 많이 만들은거지. 만들다 보니까 굉장히 많이 만들어진거지 그게. 그래가지고 지금도 그 자국도 있고 가 찾으면 돌 쌓는 것이 그대로 있어. 많이 있지. 더러 있지.

B2 : 그게 어디쯤입니까?

A3 : 여기에서 마을 여산리 2키로? 응. 그렇지 2키로. 바로 이렇게. 1키로? 1키로? 1키로. 1키로 안되겠다. 오백메타 되겄다 오백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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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위에 부흥과 아래 신평이 합쳐져서 마을이 형성된 것입니까?

A1 : 어떻게 된고니 부흥이 윗마을이고 여그가 아랫마을인디 여기가 신평이고 저기가 부흥이여. 그렁게 옛날 명으로 여기는 즞절이고 저기는 부엉골. 부엉골인디 부할 부자 흥할 흘자 부흥이거든. 여기는 신평이고 거기는 부흥. 그래서 부엉부엉허고 부앵이가 울어서 부허고 흥허고 해가지고 거기 가면 잘산다 해가지고 거기 동네가 좋다고 그랬었어. 한 때 그런 말이.

A3 : 그 여산면에서 평균학적으로 해서 잘살고 애새끼 낳으면 우리 마을 보내라 그랬어. 글케 사람들이 거시기 했어. 그래서 특이하게 잘난 사람은 없어도 비슷비슷허게 이렇게 쉽게 잘살고 그래.

A2 : 으응. 옛날엔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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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마을은 부촌마을입니까?

A3 : 그랬지. 옛날에는 부촌이었는디. 지금은 그냥 먹고 살고 똑같이 먹고 살만하단 얘기지.

A1 : 부촌 마을은 아니고 평인들 마을인디 이 부락이서 도박이나 주색이나 이런 것이 별로 읎고 이 동네 오면은 근검허게 살고 열심히 살 생활을 하고 있어서 말하자믄 이리 이 동네로 오면은 살기가 낫아지지. 아 노름않코 술안먹고 뭐 뭐 외박않고 그러니까 살기가 근검허게 헝게 나이지지. 그렇게 해서 자수성가하고 그런 마을이고. 그런 마을이고 내가 고대에서 그 전부터 유래에 대해서 전해져 온 얘기는 별로 말씀드릴 사항이 없고 단지 내가 경험헌 것으로 해서는 우리가 보통 여기 이장이 말씀 하셨고만은 여기가 원예 작업을 할 적이 이 원예농사를 송재빈(?)씨라는 젤 먼저 시작혀가지고 그 때 혔었어. 그 때 양파 하우스 뭐 가지 뭐 이런 것을 허고 그랬었는디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가 여산면 호산. 천호산이 있고 그러거든요. 천호산이 석회석. 석회암 지반이여. 그리고 호산리가 석회암에서 말하자믄 우러나온 지대라 그래가지고 여기서 제배한 작물은 시장에 갖다 팔아서도 그 때는 여기 사람들이 가져가면 다 인기가 좋았어요. 여산 호산리마을이라고 하면은. 천호산 호산리거든 병호자. 그래가지고 인기가 좋아가지고서는 한 때는 석회성분이 많애가지고 작물이 건강하고 맛있고 야물고 달고 해가지고서는 한 때 인기가 좋아가지고서는. 지금은 뭐 하도 물물교환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고 그렁게 근데 그 전에는 농사 져가지고 가지고 가서 팔고 그랬잖으. 시장에다. 그렁게 여기 여기 사람들은 가지고 가면은 인기 얻어가지고서는 인자 호산리 마을이라고 그 인기 좋아서. 그런 것 외에는 뭐 특별히 말하자믄 고고학적으로나 연구될 가치나 뭐 이런 것을 들은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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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르신께서 조금 전 천호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천호산에 대한 전설이 여러가지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A4 : 옛날에는 도사들이 있었잖여. 도사가 지나다가 저 산을 가르끼치며 묻드래요. 뭔 산이냐고. 긍게 인자 천호산이라고 대답하니까. 아이고 만호산이라고. 만호산. 천이 아니고 만. 이렇게 저기를 먹여 살린다는.

A3 : 그래 그래 그게 인제 그게 만 명을 먹고 살린다는 것이 밥을 맥여 살린다는 것이 아니라 저기서 석회가 많이 나왔어요. 우리나라 일대 싹썼어. 저놈을 다. 밭에다 석회 안뿌린 사란이 없고 한참 많이나왔고 굉장히 많이 나왔었고 제일 첫 번 공장이 여기 있었어. 우리 마을에. 우리 마을에 있다가 저 위로 이사갔지 저 호월로 이사갔거든요. 그래가지고 옛날 어른들 말은 그러지 만호산이라 그랬으면 더 좋았다고.

A4 : 여산 천호산이 여자 여산 여자가 숯돌 여 자거든요. 이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에요. 숯돌 여자가 왜 생겼냐면 천호산에 넘어가면 숯돌이 많이 났어. 긍게 칼갈고 창갈고 농기구 갈고 숯돌. 그리고 호자가 병호자거든요. 몰라요 일자같이 생겨가지고 XX때 여기 호월철을 일월천이라고.

A3 : 거시기가 공무원이 일월천으로 만들어놨어.

A4 : 호자가 어떻게 생겼냐면은 천호동굴생긴 산 있잖여. 긍게 그 한 사억년전이라고 하는데 빗물이 이렇게 석회암 지대로 샜던 모양이여. 긍게 위에는 분지가 생겼지. 들어가면 인자 병구녁처럼 구녁이 있어요. 거기로 물이 쏟았더니 물이 팍 들어가더래요. 내가 어렸을 때 산에가서 놀다가 친구하고 놀다가 막 소낙비 오고 그러길래 막 많이 뛰었죠. 뛰어서 뛰어가지고 거 동굴 가보니까 거기는 맑은 물이 나와요. 거기서 들어갈 때에는 황토물이 들어가는데. 그래가지고 그 안이 뭔가 큰 연못이란 거 있을거란 그런 생각은 했었죠. 근디 천호산 호자가 그래서 천호산이라 허고 인자 송산이라고 혀. 송씨 여산 송씨 종중이 거기에 천호산에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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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제가 여산송씨에 왕비가 여럿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A4 : 단종비랑 서너명 몇 돼여. 여산이 그래서 여산이 옛날엔 여산부 현 그렇게 불르더라고. 부사가 있었어요 여기. 숙종대왕의 인제 하사를 해줬응게 여기 시조할아버지 산이 조선 10대 명당 속에 하나 들어간다고 했었거든오. 좌청룡 우백호 싹 있고 그 안에 가서 쪼그마한 산이 있어요. 저 위로가서는. 저기다가 묘를 섰는데 10대 명당이 되가지고 왕이 사방 치 치를 하사했어요. 왕이 왕명으로. 그래서 송산이라고 일명 송산 송씨 산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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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숯돌에 대한 애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A4 : 이 여기 천호산이라는 게 그 전에 숯독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석회석이 나와서 석회석을 정이로 떼어가지고 다듬독도 맨들고 독동도 맨들고 갈아먹는 것도 맨들고 각종 도자기를 여기서 다 맨들었어요. 아니아니 석물 석물. 그래가지고 여기 도벅꾼들이 짊어지고 다듬독도 하나 해가지고 그 때는 차가 없응게 그 때 가지고 가서 갖다 팔고 이런 시대였었는데 그 때에 이런 천호산이라는 산을 명명허기를 천호가 먹고 살 수 있는 산이다. 그래서 천호산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어떤 뭐 누가 지나가다가 천호가 아니라 만호라 해야겠다고 더 먹어야 더 많이 먹고 살 수 있다고 그런 얘기를 혀서 천호산이란 유래가 거기서 발달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신부허고는 좀 관연이 한 300미터 되지만 관연이 없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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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리고 제가 이쪽으로 오다보니 절이 굉장히 많습니다.

A4 : 다섯개인가.

A3 : 그 전에는 산제당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인자 그 신을 모시고 허는 그런 장구신 그런거 쪼그만한 거 많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많이 없앴잖여. 정부에서 허가 없는 땅은 전부 다 인자 뿌셨어 전부 다. 이쪽이 이쪽이도 뿌시고 다 여러개 뿌셨어. 그리고 허가 낸디만 허고 있는 것이고. 지금은 천호산 산지는 안지내지.

A4 : 옛날에 그리고 바람구녁이라고 있었어요.

A3 : 천호 동굴이 바람구녁이라고 귀신 나온다고 거 가도 못허고 그랬어. 무서서. 용이 산다고 해가지고.

A4 : 그러고 막 들어보면은 안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나고 그래서 그게 용이 하늘로 올라가질 못허고 거기 갇혀 있다 그러고 그리고 그 앞에 무속인들이 산신이라고 해서 풍신. 귀신이라고 해서 거따 해놓고 그랬어. 거사도 지내고.

A1 : 천호동굴이 그 바람 구녁을 으이 어떤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교인이 목사던가? 목사가 들어가서 보니까 그 아구지를 넓히고 들어가서 보니까 큰 동굴이었는디 그것을 바로 말하자면은 관광지화 허든지 해가지고 시에서 관리했든 그 때만 해도 익산군에서 관리를 해서 바로 혀서 손을 못대게 했으면 괜찮은디 그걸 그렇게 방치 해놓고서는 그게 소문이 나가지고 막 사람들이 날마다 그냥 막 떼로 되야서 댕기면서 들어가서 좋은 것은 다 띠어서 기냥 가버리고 뭐 뭐 실례같은 것도 구석탱이 가서 실례도 혀버리고 이렇게 해놓고 낭게 그 배려버렸시요. 그 익산 지금도 말하자믄 그 때 그 굴을 들어가본 사람이 나도 들어가봤구먼 한 갈레는 들어가봤서도 옆 굴같은디는 즉은가 큰가는 모르것는디 들어가보덜 못허고 개발을 못허고서는 그 말하자면 위험하다 혀가지고 봉해버리고 막아버리고. 천호동굴이라는 것이 한참 발굴을 현다고 어쩐다고 혀다가 말아버렸지. 또 그것이 그런 것이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된다고 허믄 연구혀가지고 좋은 방향이로 했으면 그 저기허면 좋을거여.

A4 : 이걸 개발해가지고 애들 학생들 그런 것들도 관련시켜서 저기같은 것도 하면 좋을텐데 여긴 없시요. 저그 강원도쪽 그 무슨 석회암 동굴이 좋은 거 있는데 화산동굴이던가. 석회암.

A3 : 여하튼 그게 인자 더 많이 부서졌는고니 돌 가루를 갈아서 먹으면 허리가 낫는다 그랬어. 허리가 아픈 사람들. 그래가지고 더 많이 떼간거여 사람들. 더 많이 떼갔어. 더 오래된 그러니까 석회암 그걸 먹으면 허리사 낫은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와서 다 따간거여. 뭐 다 다 뿌서져간거여. 망치로 이리 패고 저리 패고 그렇게 가져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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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일번국도가 이쪽인데 왜 기차는 다른 곳으로 빠졌습니까?

A4 : 긍게 그게 옛날에 이리 낼려고 했었는디 일번국도 따라서 낼려고 했었는디 여기 양반님들이 뭐 구댕이같이 기어다닌다고.

A3: 뱀같으다 해서 못가게 하고 돌려가지고 글로 나갔다고 그런 말이 있어.

A4 : 산세를 끊는다고 절대 반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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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혈자리나 풍수에 관련된 그런 얘기는 없습니까?

A4 : 그런 얘기는 없어. 천호산이 항아리 호자 그것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니까. 그 위에 가면 또 성치라고 있어. 그게 옛날 저 모악산허고 천호산허고 봉화 있잖여. 그 봉화 봉화터가 저 꼭대기가 있어. 그리고 성치. 성을 쌓았대 쭉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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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전쟁얘기는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A3 : 군대는 없고 인자 그 옛날 성이 여산 고을이니까 여기가 일단. 고을 원이 여기 있었고 강경허고 옛날에는 강경이 최고 컷단말여 시장으로나 봐서잉. 그러니까 강경 옆에 여산이 인제 붙어 있어가지고 여산이 인자 고을 원님이 여기 와 계셨고 우리 마을 여기 산 쪼그마한 사산성이라고 사산성이라고 있어. 거기서 지금도 거기 올라가면 터는 있어. 거기서 인제 어떻게 했는가는 모르지. 전쟁허고 그런 건 몰르지 다 돌아가셨응게.

A4 : 그리고 성도 이양반 말 들응게 돌을 천호산 팔부능성 돌을 다 갖다 우에 성을 쌓아가지고 산에 큰 돌이 지금. 익산같으면 지금 돌 아녀? 그래서 큰 돌이 없어 저쪽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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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여기에 큰 우시장이 있다 들었습니다.

A4 : 우시장이 한 2000평 될라나?

A3 : 지금 규모에 대해서는 거시기는 아닌디 소가 한 200마리 300마리 묶여져 있었어. 고산서도 오고 비봉서도.

A1 : 저 아래 순창 남원 그런데서도.

A3 : 다 왔어. 일단 다 모였어. 1번국도 말고도 저 질러서 오는 길이 있어. 소 몰고 댕기는 길이 또 따로 있어. 이 비봉으로 넘어서 오고. 임실서까지 왔지 임실서. 그 때는 말도못허게 크지. 아부지를 찾으러 가면 못 찾어 사람이 많애가지고. 여기서 소 팔고는 서울로도 많이 갔지. 근데 여기 비봉 또 고산 또 여기 화산 이 저 낭산 왕궁 다 일로 왔어. 싹 다 모였어. 연무도 다 일로 왔어.

A1 : 연무대도 원래 익산이었거든. 김종필이가 다 그냥 금산도 뺐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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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사당모퉁이라고도 불렸다던데 그 말이 무엇 뜻입니까?

A2 : 어어 사당모퉁이.

A4 : 긍게 사당이 있시요.

A3 : 사당모퉁이라 그래야 빨리 알아들어요.

A4 : 옛날 측량 기준점도 거기에.

A2 : 거그 가면은 다 박아놓고 다 파서 딱 이렇게 해놨어.

A1 : 기초 측량할적에 기초가 사당모탱이 그 산 날맹이에 백혀있었어. 거기에 절터도 있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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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 주변에도 절이 많았습니까?

A1 : 우리 시대 세태까지는 절이 없었어. 그 전에는 있었는가 몰라도. 근디 절 터는 있어 사당에. 사당 날맹이 절터가 오목허니 파인 데가 있어.

A3 : 긍게 그 때도 이런 신경을 써서 그런거 혀놨으면 좋은데 아무것도 몰르고 돌아가셨으니까 다들. 오래 사신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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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 옛날에 인자 천호동굴이 용이 거기 산다고 그랬잖어. 긍게 거기 산 넘어가면 또 장수굴이라고 있어. 마을 부락 저기 있고. 긍게 어떤 그 때 뭔 무왕이라고 허나 어디서 들었나? 장군이 거기서 용을 잡을라고 천호산에서 나가는 용을 잡을라고 거기 가서 숨어서 기댈리고 있었다고 그려. 근데 그 용이 한번 날라가니까 장군이 나와서 활을 쐈디야. 근데 옛날 인제 설화지. 쏴가지고 그게 맞아가지고 하늘로 못올라가고 저기 용화산에 굴 하나 있어요. 샹골 거기 굴 하나 있어. 그리 들어갔다는 옛날부터 그런 얘기가 있어. 그니용이 거기 가서 숨어있다고.

A2 : 근데 여기서 그렇게 생겼는데 봄이 가물다가 비가 오면은 싹 씻기잖어. 근데 그 절있는디 가서 그 길가서 쳐다보면 비얌 그 비늘 그게 이렇게 이렇게 보여.

A3 : 바위가 그렇게 되있다고.

B2 : 아 바위에 용의 비늘처럼 긁혀있다는 것입니까?

A2 : 어. 굽이굽이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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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는 큰 나무나 돌 같은 게 있습니까?

A3 : 있었지. 있었는데 인제 다 없어졌지. 추자나무가 추자나무가 이렇게 이만한 추자나무가 있었어. 옛날 호두나무가. 이렇게 크던 놈이 있었는디. 다 없어졌지.

A2 : 나 어렸을 때만 해도 둥구나무가 이런 놈이 막 니 아람 되는 이렇게 되는 그것이 속이 썩어갖고서는. 거기다 불 넣고 으른들헌테 혼나고 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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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 근처에 신기한 지명이 붙은 골짜기 같은 게 있습니까?

A3 : 다 골짜기 다 이름 다 있지. 다 있어. 여기 저ᄍᆞᆨ 위로는 가능골이라고 있고. 인자 찌깐하니까 가능골. 그래서 가능골이라고 혔어.

A3 : 여기 그리고 여기 구렛뜰. 하방뜰. 그런게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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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마을에 귀신얘기 같은 것은 없습니까?

A3 : 천호동게 바람귀신 바람귀신. 거기 가믄 여름에 가믄 시원허던 말여 지금도. 근디 이렇게 옛날에는 싹 맥히고 구멍으로 돌만 막 남겨져 있어 몇 개씩 이렇게. 근디 그런 바람이 나와. 그럼 바람 귀신이 있다 그려. 옛날엔 달걀 귀신 바람 귀신있다 소리를 많이 했지. 그러고 허물고 들어가보니까 인제 그게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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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제가 보기엔 산자락이 많아 특별히 무서운 고개나 그런 얘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A3 : 그렇지 여기여기여기여기여기 부흥 넘어가면 선왕봉이라고 응. 선왕봉이라고 있었어. 거기도 나무도 큰놈 있어서 거기서 인자 지나가면서 돌도 떤지고. 이 골짝 사람들은 일로 대녔어. 다. 이 일로 우리 마을로. 이 골짝 사람들은. 시방 이제 차가 있어서 안댕기는디 없어졌어. 길도 없어졌는디 골짝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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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좋은 샘은 없습니까?

A4 : 우리도 옷섐이라고 있었시요.

A3 : 가는골 옆에.

A4 : 지금 고속도로 넘어.

A3 : 그게 땀띠기가 여름에 많이 하니까 거기 물이 막 차. 엄청 차 말도 못혀. 그래서 거기서 가서 등목허고 하면 땀띠기가 다 죽잖어. 그래서 한거지. 그러고 거기 물이 시원혀. 그래가지고 점심을 먹을래면은 누가 가서 떠왔어. 주전가 갖고와서 떠서 갔고오면 냉장고 속에 들은 물보다 더 시원했단 말여. 그리고 물도 좋았고. 그러니까 떠다먹고 그랬어. 인자 고속도로 생기고서부터는 물도 잘나오고 뭐 샴파서 물나오니까 거기 갈 일이 없지. 그리고 냉장고 생겨버리니까 그런거 생각할 일도 없고 거시기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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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A3 : 여하튼 나쁜 사람이 없고 도둑놈이 없는 마을이고 성실허게들 사는 분들이 많여. 그래가지고 그런 말 하고 주로 농사는 벼농사 많이 짓고 요근래 들어와서 양파농사 엄청 많이 짓고 대파 하우스 허는 사람이 두어분 되고. 그래가지고 그냥 넘의 마을보단 잘살지는 못해도 넘의 마을 가서 얻어먹을라고는 않고 성실하게 사는 거지.

구술사진

신부마을 표지석


신부마을 왼쪽부터 신동수1933,박성염1933,이계갑1952,송재석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