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본 이름은 ‘들말’이고 ‘수은’은 일정 때 홍수로 들말 전체가 유실되어 당시의 면장 김수한(金秀漢)씨가 갖은 노력을 기울여 마을을 그 위의 높은 지대로 옮겨주니 동민들이 본 마을 이름을 버리고 면장 이름에서 ‘수(秀)’자를 따고 그 은혜를 입었다 하여 ‘은혜 은(恩)’자를 붙여 마을 이름을 삼았다.
『익산 시사』
구술요지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담: 마을에 큰 홍수가 왔을 때 김수환 면장의 도움으로 마을 사람들이 현재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수환 면장의 이름을 빌려 마을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들말: 수은 마을이전 지명으로 들에 있어서 들말이라고 붙여진 명칭이다.
- 아랫말: 들말 바로 아래 있던 마을이다.
- 오얏골: 더울 때 가면 굉장히 시원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굽말동, 구마동: 말 아홉마리에 관련된 명당자리이다.
- 가재골: 옛날에는 배가 들어와서 가재골이라고 불렀다 한다.
- 조기배미: 조기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굴바우 모탱이: 굴을 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진터 마산: 옛날 견훤 장군이 진을 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도깨비불: 예전에 들판에서 불이 번쩍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 도깨비: 도깨비랑 씨름을 하고 묶어 놓으면 빗자루로 변해 있다고 한다.
- 여우: 여우에게 홀려서 밤새 돌아 다녔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4) 민속
- 여산 소시장: 옛날 소시장이 커서 머리국밥이나 술을 많이 팔았다고 함 국밥지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정인환 (62) 1951년
A2: 송하정 (78) 1935년
A3: 이철용 (80) 1933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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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이름이 왜 ‘수은’마을이 되었나요?
A2: 그러지 원래가 저 들판에가 마을이 있었는 디 들판에 있었거든 근디 하천이 그 들 가운데가 있었어 그래가지고 그것이 막 둑이 터져가지고 동네가 막 물이 막 차서 들어왔거든 집들도 막 쓰러지고 그랬거든 그래가지고 그 마을을 그때 요 위가 있고 요 아래가 있고 두 동네가 있었어 쪼그만씩 하게 두 개 마을을 연결해버렸어 그때 왜정 때 연결했는 디 그때 면장이 ‘김수환’이라고 있었어 그래서 인제 그때는 동네이름이 근데 ‘수음동’이라고 했지 근데 지금은 ‘수은’이라고 하지 지금 ‘수은’ 그 면장 이름을 따가지고 그 동네 이름을 따서 동네 이름은 지은거여 이게.
A2: 길.. ‘김수환’씨가 여산 면장을 했는디 여기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저 동네를 이리 욂겼거든? 욂기고 해방 됬어 그랬는디 인제 그 양반을 이름을 따서 ‘수은동’라고 했어.
B2: ‘수은’마을에 수는 ‘김수환’면장님 이름을 따서 수 이면 은자는 왜...
A2: 아 인자 은혜 은자 은혜를 입었다고.
A1: 뚝이 터져가지고 이주를 시켰어요 우리 마을 들어 가보면요 그때 왜정 말기에 정리가 잘 되었어요 딱딱 각이 졌어요 시네보다 더 좋아요.
A2: 돌시마이로 이렇게 딱딱 열 집씩 한 줄에 열 집씩 이렇게 지었어 그러고 사각형으로 이렇게 딱딱 줄도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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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때는 몇 호 정도 살았었나요?
A2: 한 50호 되요.
B2: 그러면 ‘수은’마을 이전에 마을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A3: ‘들말’ ‘아랫말’ 우리는 인제 들에 있어서 ‘들말’ 저그는 ‘아랫마을’ 인제 위 아래 있었거든.
B2: 서로 동네끼리 왕래가 잦았나요?
A3: 한 동네 했었어 떨어져 있기만 했지.
B2: 마을에 우물이 몇 개나 있었나요?
A1: 여그와서 2개.
A2: 2개 그전에는 3개 저 위에가 있고 저 짝에가 하나 있고 여그 와서 하나있고 그래서 여그서는 바가지를 퍼서 쓸 수 있도록 그렇게 물이 많이 났어 그래서 윗동네에서 막 이리 식전이면 다 물통 지고서나 와서 퍼갔지.
B2: 마을에서 우물에 제사도 지내고 그랬나요?
A3: 그런 건 안했고 풍물 칠 때 그런 날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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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 분들은 주로 장을 어디 가서 보셨나요?
A2: ‘여산’ ‘여산장’이 굉-장히 컸어.
A3: 굉장히 컸었어 그전에는 저 짝 저 ‘황하’ ‘춘천’ 저 짝 일부까지 다 그리 왔었지 다- 인자 ‘완주군’서 까징 다 왔지.
A2: 또 소전 소전이 있어가지고.
A3: 우시장.
A2: 우시장이 있어가지고 각- 처에서 사람들이 다 모이지.
B2: 우시장이 발달하면 소에 관련한 음식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A2: 그렇지 그전에는 막 돼지 같은 것 잡아서 머리 국밥도 팔고 막 술도 많이 팔고.
B2: 옛날에 ‘여산장’에 국밥집이 많이 있었나요?
A2: 그렇지 지금도 식당이 한 60여개 되.
A1: 다 국밥집은 아니고 식당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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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이야기)
B1: 마을이 생기기 전에 이 모종에 있는 지역을 뭐라고 불렀었나요?
A3: ‘굽말동’이라고 했지.
A2: ‘구마동’이여.
A3: 뭔 뭐 어쩌고 찾았어.
A1: ‘굽말동’이에요 말이 아홉 마리가.
A2: ‘구마동’이여.
B1: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1: 근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는데 그 속 내용은 모르겠고.
A2: 거기가 명당자리였다고.
A3: 명당자리가 아니고 뭔 말이 어쩌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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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가재골’이라고 있던 데 왜 그런 지명이 붙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아니 말은 요 여기가 ‘굴바우 모탱이’ ‘가재골’ 그러거든요? 배가 옛날에 여그에 들어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배다리’가 ‘여산’에 있죠? ‘여산 배다리’라고 있죠? 거기에 배가 들어 갔데요 그 굴 땄다고 해서 ‘굴바우 모퉁’이여.
A3: 옛날에 ‘조기배미’라고 있었어 논 이름이 저기서 조기를 잡았다나 그래서 ‘조기배미’라고 옛날에 그랬다는 얘기지 아 그리고 이걸 파는데 하천을 파는데 이런 아람드리 저 참나무가 막 촥- 박힌 거여 땅속에가 냇갈 바닥에가 근게 저기가 강인게 우리가 생각 한 거지 저 강 인게 이런 산에서 막 넘어다 쳐서 그렇게 됬다고.
A1: 파며는 추자나무 참나무.
A3: 그 말만 들었는디 그걸 본 게 그렇게 했다는 게 우리가 확인 된다 이 말이여
A1: 이 하천 새로 파기 전에도 이맘때 되면 지금도 구경할 수 있었지 않아요? 근디 하천 다시 싹 정리 해버린 게 안보이자나 나무가 이 아래 엄-청 몇 아름씩 있었어.
B2: 예전에 여기에 바다가 들어 온 것 같네요?
A1: 그런지도 모르지.
A2: 저기 아까 ‘굴바우 모탱이’라고 했자나? 저기 저 산 있자나 거그가 바위가 이만한 놈이 있어 그 옆에가 근게 거기서 굴을 땄다는 이야기여 그래서 ‘굴바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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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주변에 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3: 저기 저 ‘마산’이있지 ‘마산’은 왜 ‘마산’인 고니 여기저 ‘진터 마산’이 있고 역내에도 ‘마산’이 있어 그리고 ‘견훤’장군 있죠 그 장군이 예를 들어 그때 진지 ‘진터’ 거기가 ‘진등’에 있어.
A1: ‘마산’이라고 가서 저기.
A2: ‘연무대 마산’
A3: 그때만 해도 ‘익산’이었어 저그가.
B1: 그 ‘마산’이라는 곳이 옛날에 ‘견훤’장군이 진을 쳤던 그 진터라고요?
A3: 예-
A1: 그런 관계여 그래서 ‘굽말동’ 그 그렇게 해서 나온 말 같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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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도깨비 이야기나 귀신이야기 들어 보신 것 있으신지요?
A3: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이 들판에다가 우리 어려서도 보면 불이 번쩍번쩍 하고 댕겼어.
B2: 혹시 도꺠비랑 씨름 했다는 소리...
A3: 암만 빗지락을 나중에 거기따 가면 빗지락 몽댕이라고 하고 그런 이야기 소리만 들었지.
B2: 그러면 여우에 홀린 이야기는 들어보셨는 지요?
A3: 암만 여우에 홀렸지 그전에 거시기 ‘창대’ ‘창대’가 저기 어디 ‘용기’에서 오다가 어떻게 해서 ‘이덕굴’해서 어디로 막 해매고 다녔디야 밤새도록 해매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B2: ‘이덕굴’이요?
A3: 이름이 산이름 ‘이덕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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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그 옛날에 ‘오얏골’도 있고 뭐 그런 말도 있고 하는데 우리가 알아야지 뭐.
B2: ‘오얏골’이요?
A1: 저-기 옛날에 어른들 땀띠기 나며는 그때는 에어콘 가스가 없으니까 나오는 물이 아마 굉장히 시원 했나봐요 그래서 거기가서 물도 맞고 그러면 땀띠가 났고 그런다고 하던디 근디 거기가 ‘오얏골’이요.
A3: 거기가 ‘오얏골’이 아니고 ‘갑옷터’ 인디 거기서 물이 나왔지.
B1: 아- 그럼 입는 갑옷이요?
A1: 하하하 인제 모르지.
A3: 몰르지 이름이 그냥 ‘갑옷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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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옛날에 ‘여산’에서 어느 마을이 컸었나요?
A1: ‘여산’에서?
A2: ‘연정’ ‘여산’ 시내 ‘연정’
A1: 소재지 이니까 굉장히 컸겄네요.
A2: ‘서촌’도 커가지고 ‘1서촌’ ‘2서촌’ 했지 그밖에 다른 마을은 다 50∼60호 다 똑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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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서 ‘여산장’에 주로 뭘 많이 팔았나요?
A3: 그때는 뭐 집에서 농사지은 것도 가따 팔고 쌀도 가따 팔고 지금은 안 그러지만 깨도 가따 팔고 고추도 가따 팔고 아무튼 다 팔았어.
B2: ‘여산장’ 열릴 때면 볼만 했겠네요.
A1: 근게 지금은 몰라도 옛날에는 그 좀 되었을 것이에요 지금와서 보면요 우리 마을이 아주 정리가 잘 되어있어요 딱딱 사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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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그래 가지고 그 여기 마을 예전 면장이 6.25때 학살 당했어 함열에서 학살 당했는디 우리 동민들이 그 양반 찾아다가 ‘여산중학교’ 뒤에다가 묘지를 써 주었지 은혜를 입었다고 해가지고 그 양반 묘를 학살 당한 디 가서 찾아다가 ‘여산중학교’ 뒤에 다가 묘를 써 주었어.
B2: ‘김수환’면장님 이요?
A2: 응 묘지 써주고 그 사람 아들들 찾아다가 우리 동네에서 잔치도 해주고 그 양반 비석도 세웠었고 다 했었어 근데 지금은 비석도 다 없애버렸어.
B2: 그럼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 면장님 제사도 지내주고 그랬나요?
A2: 안 했어 한 번 그 사람들 가족들 찾아다가 한 번 인자 한 번 했어.
A3: 저위에 저위에서 한번 했자녀?
A2: 응 저 위에서 한번 했어.
A3: 예전에 비석이랑 잘 해놓았었어 근데 그걸 허고 나니까 지금 말로하자면 동네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그렇다 해가지고 그걸 다시 비석을 없앤거야 그럴 리가 있겄어 그 작년 때 그랬슈 언제 그랬슈?
A2: ‘성식이’때.
A1: 그 그거하고 그 양반 돌아 가셨자나유? 그래서 그때 이장님이 그거하고 돌아가셨어 그래 가꼬 우리 부락에서 이상하게 생각해서.
A2: 샴물도 뒤집히고.
A1: 그래 가꼬 그 비석을 내가 다시 어디 공사할 적에 XXX씨가 나한테 그걸 자꾸 나한테 살려 놓으랴 내놓으랴 근디 그걸 뭐 내놓아 근디 지금 제방 뚝에 들어 갔어 근디 자꾸 내놓으라고 하는 거야 나보고 나도 사실 그거 별로 기분이 안 좋자녀 그거 그런 일이 있다고 하니까 지금은 안 그러지만.
B2: 아까 샘물이 뒤집혔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가요?
A2: 그런 게 동네가 위치가 이렇게 경사 지었자녀 근디 이 뒤에 가서 이 모종이 있었어 근디 이 모종 옆에다가 비석도 세우고 다했거든 근게 그전으로 말하자면 당산에다가 비석을 세웠다 해가지고 물이 뒤집혔어.
A1: 그때 당시 이장님이 그것을 하고 바로 돌아 가셨어 물론 지병 때문에 돌아가시긴 했지만.
B2: 마을 당산이 뒤에 있었나요?
A1: 당산이 뒤가 당산이지.
A2: 그 뒤에 가서 우리 동네 뒤에 가서 성왕당이 있었어 성왕당이 있는디 인자 장에 가는 사람들이 돌 하나 씩 주어다가 거그다 던지기도 하고 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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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을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1: 정인환 51년생.
A2: 송하정 35년생.
A3: 이철용 33년생.
구술사진
수은마을 구술 전경
수은마을,정인환,송하정,이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