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상양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상양마을
구술자 생양마을이장님(9999)남자
구술자 강금옥(1926)여자
구술자 박금덕(1920)여자
구술자 한화금(1932년)여자
구술자 임용희(1925년)여자
면담자 하정일,장윤준,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09
비고 면담장소 : 생양마을 마을회관과 생양마을 인근의 논 옆의 그늘
면담시간 : 오후 2시와 오후 4시
내용 : 3차에 걸쳐 생양마을과 인근 지명 유래담, 전설과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2012-09-09
2012-09-15
키워드  

문헌내용

상양(上陽)․도순날․신양(新陽, 윗샴골) : ‘상양’은 분지로 된 안쪽에 있는 남향한 마을이니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도순날’은 도순사(都巡寺)가 있던 묏날이다.‘신양’은 근세에 새로 생긴 마을로 ‘상양’의 ‘양(陽)’에 ‘신(新)’을 붙인 것.

독양(獨陽)․독적(獨笛, 독적골)․하양(下陽, 아랫샴골)․샴골 : ‘독양’은 1972년 독적과 하양을 합쳐 지은 분리명.‘독적골’은 근처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으니 독을 짓는다 하여 ‘독짓골’이라 하던 것이 ‘독적골’이 되었다. ‘하양’은 상양의 아랫편이므로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생양의 유래 : 옜날에는 웃생골 아랫생골이라고 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도승절터 : 도승이 살았던 절터가 있었다. 그 절터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쌀 씻는 뿌연 물이 마을까지도 내려왔다고 한다.
- 초변골 : 아기들이 죽으면 장례를 치룬 곳이라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생양동바위 : 생동바위라고 하는데 글씨가 써져있다. 전라감사 이서구라는 사람이 만 명이 살 수 있는곳이라고 써놨다고 한다.
- 터1 : 아름 되는 버드나무와 소나무가 있어서 밖에서 보면 마을 안이 안보였다고 한다. 소나무는 해방 후 베어졌다고 한다.
- 터2 : 조광조네 선산의 묘가 있다고 한다.
- 터3 : 조광조 이외에도 익산대 3대가 꽂힌다는 말이 있는데, 즉 익산에서 벼슬을 3번 받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 터4 : 용화산은 용이 사리고 있는 산이라 하여 명산이라고 한다.

4) 민속 :
- 산제 : 산제는 지금도 지내고 8월 14일이 되면 음식 장만을 한다. 그리고 7일간은 사람들이 산에 못 올라오게 한다.

구술채록

1차

A1 : 상양마을 이장님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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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이 마을은 뭐 특징이 별로 없는 마을이고요. 다른 동네처럼 백중 날에 인제 백중잔치를 하고요. 다른 마을하고 다른게 이 마을은 산제를 지내요. 산제. 예. 음력 정월 보름날. 이 마을은 기독교인이 삼분의 이정도 되요. 그런데도 산제를 지내는 마을 돈으로 산제를 지내는데도 기독교인들이 반대를 안해요. 그런 특징들이 있는 마을이고. 음력 정월 보름날. 그리고 기타 다른 그런 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옛날에 인제 도승이 살았다고 지명이 도승절터라고. 지금은 도신도신 하는데 도승절터라고 하는 그런 곳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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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산제와 도승도 있었습니까?

A1 : 옛날에 도승이 살았다고 그래서 도승이 살았다던 절터가 있어서 도승절터라 그랬어요. 근디 지금 인자 아무것도 없고 인자 돌로 뭐라그러지 석축인가? 옛날 식으로 엄청난. 지금 보면 사람의 힘으로 쌓을 수 없는 그 엄청난 석출을 헌 것들이 있어요. 그거 있고 그런 정도에요.

B2 : 그것만 하더라도 굉장한 것 같습니다.
`
A1 : (도승은) 옛날에도 구전으로만 내려온건데. 시대도 어느 땐지 모르겠고. 여기 돌아오다 보면 저수지 끼고 커브 있잖아요. 거기 생양동이라는 그런 얘기는 들어봤어요? 여긴 상양이고 이 저수지 윗마을이 상양하고 하양하고 두 마을로 분류가 돼 있어요. 상양은 독립 마을이 되니까 한 마을로 두고 하양은 마을이 작다 보니까 어뜨케 할 수가 없으니까 독자라고 합쳐서 독양이 됐어요. 독양이 됐는데 이렇게 들어오는 길 자체가 빙그르르 꼭 커브가 되잖아요. 거그가 생동바위 생동바위 그러거든요. 근데 그 생동바위가 아니라 생양동이라고 새겨졌던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일제시대 때 그건 인제 파서 거따가 저수지 막는데 써서 그 돌 뿌리만 비가 만수 되면 안보이고 만수가 안되면 돌 뿌리만 보여요. 그게 그런 곳인데 옛날 구한 말 전라 감사 나가던 이서구씨라던 양반이. 어어 도술 많이 하셨다던. 그분이 여기다 좋다고 하셔서 만인활터. 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면서 거기다가 생양동이라고 새겨서 일단 생양동이라고 새겼었대요. 근디 그래가지고 지금도 생동바위 생동바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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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다른 이야기들은 없을까요?

A1 : 굳이 따지면 작은 것들도 있어요.초변골. 초변골. 지금은 최변골 최변골 그러는데 사람이 나면 사람이 죽으면 그 내가 자세힌 모르는데 부모가 있음 앞에서 돌아가시면 묻지를 않는다메요 땅에다. 그걸 했던 그 골짜기로 해서 초변골. 최변골이라고도 허고 초변골이라고. 초막이었다고 해서 초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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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A1 : 강금옥1926,
A2 : 박금덕1920
A3 : 한화금1932


B1 : 하정일
B2 : 박태건
B3 : 장윤준
B4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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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에 이 마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A3 : 옛날부터 시양골 시양골. 새양골. 새양골. 응 그냥 불르는 말은 동네서 부르는 말은 시양골이라고 하고 인자 누가 보면 익산시 여산군 온수리 상양. 그리고 이건 상양. 이 아래는 하향. 하양은 여기 바로 아래. 둠벙에서 올라오는 다리 있잖여. 그게 하양이여.

A1 : 그 너머는 독양이고. 저수지 밑으로 이렇게 들어가면.

B3 : 독이 많이 독양입니까.

A3 : 허허 아이. 독이 많애서 독양이 아니라 그냥 독양이라고 그러드라구. 상양은 뭔 뜻인지는 모르지. 여긴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상양이야. 찾아올라면 그렇게 찾아와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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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도승이 살았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A3 : 어어. 점쟁이 말이여? 점쟁이 말하는거지? 도 믿는 사람? XX네 할머니 굴바우 말하는고만? 저기 굴바우라고 저기 용화산이가 큰 굴이 있어 들어가면. 이렇게 들어가면. 거기서 살았어. 이장네 할머니가. 이장네 할머니가. 응. 이장네 할머니가 거기서 살았는디 직금 거기 떨어져서 다 헐려서 없셔. 철거당했어. 점쟁이도 직금도 있어 거기 하나 거기. 말 허고 안댕겼는디 쪼꼼 그러고 댕기고 점쟁이도 직금 이쪽에 살어.

B4 : 우리 마을에 굿도 했습니까?

A3 : 굿도 했지. 굿 하는 이유는 모르지. 안믿는 사람들은. 꽹가리치고 장구 치고 그러지.

B4 : 할머님들은 기독교이십니까?

A3 : 에. 우리는 기독교에요. 예수믿어요. 미신은 하 그런 거 없어. 난 애초에 장판에다 부뚜막에따 물 한번 떠놓을지를 모르는 사람이여. 교회 안댕길때도 그러다가 교회댕겨. 교회 댕겨도 암것도 몰라. 여기 교회 믿는 사람이 많지 안믿는 사람이 얼매 안되야.

A1 : 두어 집.

A3 : 다섯집은 되야. 이 마을이 사십가구 되는데 다 교회 댕겨. 이장님네는 교회 안댕겨. 교회가 이장네가 그 기도 댕겼는디 XX네 할머니 안댕기잖여 인자. XX네가지 여섯집이네 교회 안대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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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 산제에 대해서 들어보신 게 있으십니까?

A3 : 산제당이 지금 있어 그 양반.

A1 : 옛날에 옛날에 그 으른들 지금 다 돌아가셨어 남자 양반들. 정월 열나흣날 되면 산에 가서 그랬거든.

A3 : 가서 막 법당에다 물 떠다놓고 기도허고 안믿는 사람들 그러잖여 점 허고 그러잖여. 동네 잘 지내라고 그러지.

A1 : 거기 법당이 있지. 법당에 하는데 두 군데 있었어. 근디 저긴 없어지고 여긴 하나 있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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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 우리 마을은 원래 물이 많았습니까?

A3 : 여기서 산에서 깨-끗헌 물이 내려와요. 저쪽에서도 내려오고.

A1 :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겁나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B4 : 저수지는 언제 세워졌습니까?

A3 : 저수지? 저수지는 오래되야. 저수지 지금 내가 팔십 하난디 나 오기 전이전에 쌓았어. 아녀 오기전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와서 봤어. 한 팔십 년 되는가비. 인자 거기 막아서 아래 농사짓고 물 가뒀다 하니라고 지었었지. 강경까지도 내려가 그 물이. 거기에 낚시하는 사람도 많여. 고기가 맛있디야. 많이 잡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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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 저수지가 있으면 귀신얘기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A1 : 거기 저수지 올라오다 거 산밑에가 집 한가구 졌지? 새로. 그 새로 익산 사람이 와서 지었는디 국악하는 사람이리야.

A3 : 거기서 사람도 더럿 빠져죽어. 죽고 싶어서 와서 빠져 죽는데 어떡하것어. 많이는 아니고 어쩌다 한번. 그래도 몇 번 죽었을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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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 저수지 쪽에 생양동이라는 바위가 있다 하던데 들어보신 게 있으십니까?

A3 : 몰라. 그건 몰르고 여기서 쪼끔 들어가면 저만치 들어가믄 바우 하나 있슈. 고바위 그렇게 돌아오는 바위.

B3 : 굴바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A3 : 굴바우? 내가 아까 얘기 했잖여 굴바우. 근디 띧겼어. 이장네 할머니가 굴바우 살았어.

A1 : 굴이 이렇게 있었어.

A3 : 직금도 그 굴이 이렇게 있을 꺼여. 이렇게 들어가면 마당같이 이 정도는 되야. 산 속으로 이렇게 있었어. 둥구나무도 있었고 집도 있었는디 다 띧겼어. 둥구나무. 큰 둥구나무도 있고 그런디 다 뜯기고 없어.

A1 : 남구 남구가 수년 묵은 남구가 동구나무라 그려.

A3 : 근데 뜯기고 거기 가본 지 오래되야서 그 굴을 며지든 안앴을 꺼 아녀. 그 굴속에가 X도 나오고 그랬어. 치매바우도 있고. 그 밑에 있잖여.

B4 : 또 특이한 바위 같은 게 있었습니까?

A3 : 많지. 맨 독무더기지 산이.

B3 : 어르신 뒤에 도승이 있단 얘기는 못들어보셨습니까?

A3 : 그건 없어. 그런건 없어. 탑 쌓듯기 쌓은 것만 있어.

B3 : 그럼 그런 얘기는 교회 안다니시는 분들만 알고 계시겠습니다.

A3 : 지금은 아까 말했듯이 저 산꼭대기 산지당. 이름이 산지당이여. 이쪽이 굴바우는 있고 용화산은 아누만. 거기는 미워버리고 없고 여기는 산지당 있는디 아줌마하고 아자씨 둘이 사는디 동네서 옛쩍부터 점을 안댕겨. 뭐 이렇단 말 안해.

B3 : 굴바위는 어디 있습니까?

A1 : 굴바우 요짝으로 요짝으로.

A3 : 그게 이장네 할머니여. 아 이장네 할머니가 거기서 살았어. 근데 집 싹 헐어서 없어.

A1 : 돌아가신지가 그 양반 돌아가신지가 한 십오년 한 이십년 됐네.

B4 : 초막골, 최변골. 초막골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A3 : 처막골. 처막골은 저 안이여.

A1: 요렇게 가면 나무가 큰 나무가 있지 그 안으로 들어가면 거가 처막골.

A3 : 뜻은 우리도 몰르지. 우리도 몰라. 그 처막골 아무도 사. 사네?

A1 : 처막골이라고 하는디가 거기 집한가구가 산지집이 있었어. 산지집. 그 저묘에 제사 지내는 산지집.

A3 : 근데 헐어졌어.

A1 : 거기 한가구가 있었고. 그짝으로가 저짝으로가 최변골이가. 최변골은 왜 최변골이냐믄 그 전에는 애기를 낳으면은 인자 그 전에는 병원도 없고 저기헌디 죽으면은 거기다가 최변해놨어. 애장 해놨어.

B4 : 처막골은 왜 처막골이라고 불렀습니까?

A1 : 처막골 거 여렇게 돌아가서 집 한가구 지어놓고 저 묘지 제사 지내니라고.

A3 : 산에 쳐막아 들어갔다고 처막골인가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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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 산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얘기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A3 : 정월달에는 꼭 지내.

A1 : 정월 열나흣날이면은 돈 걷어서 보내. 그 보살님에다 보내. 보내면은 장배기 혀다가 제사 지내.

A3 : 장배기. 장만 해서 지낸다. 정월 열나흣날이면 꼭 일주일간 거기 가도 못해. 정성스릴라고. 깨깟하게 해서 정성들일라고 다른 사람은 거기 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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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옛날에 이 근처에서 전쟁 있었다는 그런 얘기 못들어보셨습니까?

A1 : 그런 것은 없이여.

A3 : 그런 얘기는 못들어봤는디. 전쟁이 쌈했다는 거잖여. 못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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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옛날에 그럼 뭐 도깨비 얘기나 그런거 알고 계신 거 있십니까?

A1 : 그런거 몰라. 도깨비 같은거.

B2 : 우리 마을 뒷산 용화산에 여우나 도깨비 귀신 얘기가 있습니까?

A3 : 에휴 많앴지. 호랑이가 여까지 내려왔어. 저기 성철네 집 있는디 그 때 거까지 호랑이가 막 와 있었대야. 여우도 막 돌아댕기고 그랬어.

B2 : 그럼 여우에 홀리신 분도 있지 않습니까?

A3 : 홀려서 나간 사람은 몰라. 근데 여우가 막 돌아댕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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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엔 구렁이 얘기는 없습니까?

A3 : 여기는 그러들 않앴어. 그러들 않앴는데 내가 충청도 서면서 시집왔거든. 서면. 근데 그런 구랭이한테 해꼬지하면 안돼. 우리 친척 아자씨빨 되는디 방에 구렁이 이런놈 막 집임자가 들왔어. 긍게 대가리부텀 꽁대기부텀 치고 대가리부텀 쳤는디 딱딱 하다 죽었어. 근디 유가라고 총각 있어. XX보다 나이 안먹고. 그도 광이가 막 들어강게 그렇게 있더리여. 이런놈이 있응게 떡을 해다가 시루를 해다가 거기다 암말도 않도 놨디야. 근디 칼로 싹- 쓸어 먹은것같이 먹고 갔더랑게. 그거 와서 보라항게 우리 이웃집 사람이 칼로 싹 쓸어먹은 것 같이 먹고 갔어. 근데 해꼬지 한 사람은 후에 앓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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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어머님은 충청도에서 왔다 그러셨는데 우리 마을만의 특이한 게 뭐가 있었습니까?

A3 : 뭣이 틀리냐믄 말이 틀려. 충청도 말하고 나도 전라도 말이 많이 배었지만 말이 틀려. 음식 같은건 몰라. 같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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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머니 옛날 얘기 알고 계신거 있으면 좀 들러주십시오..

A2 : 밤낮 들어도 잃어버링게 몰라요. 나이가 더 들어버린게 암것도 기억이 안나. 그 저 행길네 행길 한참 낼 적으 저 목천교 행길을 내는디 뽀끄렝이가 일을 하는디 저녁에 뽀끄렝이 일을 허고 잠을 자는디 그 날 아침을 아침 먹고 다리를 헐어야. 다리를 헐어야 새로 놔. 그런디 꿈이 자기 꿈이 내일은 하루만 빠지고 하루만 허지 말고 서라고. 그렇게 꿈이 서몽을 했어. 근디 암만 일을 하는 사람이 몰려와서 일을 안할라냐고 안할라면 딴 사람을 불러댄다고 막 야단을 하고 난리가 낭게 어떻게 혀. 거기서 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그 날 안나가면 일 떨어지는디. 그래서 나갔어 그 남자가 나가서 일허는디. 다리를 가서난 하는디. 그 뽀끄렝이로 한번 파서 구랭이 하나가 이만한 놈이 모가지가 팍 찍히더리야. 그래서 그 남자 그 남자가 그 날 저녁에 바로 죽었잖여. 목천포 다리. 그래가꼬서나는 그 남자 죽고 그 다리를 후딱 못했었잖여. 그 꿈에 서몽을 해줬어도 사람들이 와서는 안나온다고 야단을 항게로 헐 쑤없이 일거리 떨어질깜마 나갔어. 나가서 한 번 찍자 구렁이가 죽었잖여. 꿈에서 서몽까지 해줬는디 그 날 안오야 하는디 혀가꼬 자가 죽었어. 그 돈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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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저수지에 사람도 죽었다고 하던데 그럼 저기에 음기가 강한가봅니다.

A3 :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인자 어쩌다가 거시기 하다 죽은 사람도 있고. 귀신 얘기는 없고 그게 XX 사람이던가 좀 빚을 많이 졌는디 빚을 많이 져서 빚을 쪼끔 몇해만 가면 갚는디 어찌 받을 사람이 재촉을 하는가 니 식구가 와서 함께 빠져 죽었어요. 그래서 식구 애기들 둘. 그냥 몽땅 다 빠져버렸어. 그래서난 사람 살리라고 어떻게 소리가 낭게 가봉게 벌써 차는 빠져서 거시기 불러다가 건지자 어찌자 했는디 시간이 지나 다 죽어버렸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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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A1 : 임용희 1925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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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옛지명을 뭐라 했습니까?

A1 : 그 전에는 인자 그냥 생골이지. 생골이라고만 혔으니까 그건 무슨 뜻으로는 했는지는 모르지. 그냥 생골이라고 했어. 으른들 말씀이. 근디 그렇게 허는디 생골이라고 허는디 인자 웃생골이냐. 아랫생골이냐 그렇게 했지.

B2 : 물이 많아 샘골이라 했을까요?

A1 : 샴은 여기는 그렇게 많지 않은디 여 산 둘래로 해서 많지. 지금 도로가 나서 시방 거시기 해서 그러지 도로 저짝에도 저 논이 전부 저 수렁이여 여여여 수리조합 막은디 저 이 산 못 저짝으로. 모퉁이 있자네. 그 건내로가 수렁이 논이고 그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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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앞의 저수지가 인상적인데 좀 이야기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A1 : 긍게 이 저수지가 원수리 저수지라고 허는데 이것이 저 막 막기로 언제 막았는고니 에. 무자년이여 무자년 무자년이면 육습오년 되얐어. 해방후에 막았지. 그렁게 일정 때 이 심은 봤지. 심은 봤어. 이 자네들은 알랑가 몰라도 이 둥그렇게 이렇게 파가지고 심을 봤어 심. 몇 메타가 들어가서 돌이 나오냐. 그 그 그거 심을 봤지. 일정 때. 일정 말년에. 그러게 심 보자마자 해방이 된 거여 이게. 그래가지고 이제 나서 해방 된 뒤에 그렁개로 해방되야서 한해 지냈던가 한해 지내가지고서는 막기 시작했을 꺼여. 그렁게 내가 스물한살먹을 적에 해방이 되얐는디 이 그 해방되야가지고서는 바로 막기 시작했든가 하여튼 이게 저 무자년이 준공을 했어. 무자년이 아니라 무자년 쪼끔 돼서 준공이 됐나. 이제 무자년 어떻게 됬는고니 대보를 거의 쌓었거든. 거의 막았었는디 칠월에 갑자기 기냥 막 비가 퍼붓었어. 그래서 홍수가 홍수가 졌지. 그래가지고서나는 이 대보가 터질 정도여. 그렇게 되니까 그 청부업자. 청부업자가 요짝 요짝 산 밑이 산 밑이 가서 XXX가 있거든. 그쪽을 터놨어. 그래가지고서나는 그쪽에 대보가 다 안나갔어. 그래서 산쪽으로만 터논대로만 나가고 있지. 그래가지고서나는 농사지내는 사람들이여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뱨락을 맞아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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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르신 저기에 신기한 돌이 묻혀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A1 : 어 어 그건 여기 저기 아까 얘기하던 이 도로를 타고 가면은 저 산 날줄기 거기 톡 내밀은 디 거기 가서 있거든. 근디 도로가 원래는 저기 저기 집 앞이 도로가 뵈잖여? 고로케 해서 이 논 위로 해서 요로코 해서 에 냇가 저 이렇게 타고 나가다가서는 적게가서는 이렇게 건너갔거든. 그러면은 이게 논이여 전부. 이게 논이여. 시방 이게 냇갈만 이렇게 이렇게 거시기 했지 이게 논이여 전부가. 그래가지고서는 고 새로 도로가 인자 말하자믄 부락 도로가 났지. 그래가지고서는 거기 가서 그 돌이 도로가 시방 이렇게 생겼다면은 이렇게 났다고 한다믄 한 산쪽으로 들어가서나는 큰 바우가 있었어. 근디 그 앞이 전면쪽으로는 좀 판판했지. 그래가지고서는 거기서다 나도 인제 어른들한테 들은 소리지. 이서구씨가 전라감사 와가지고 에 거기다가 생양동이라고서나는 글자를 새겨줬다는 거여. 근디 그것을 왜 새겼냐. 여산. 여산이 여기를 기준으로 해서 십리여. 그렁게로 여산 남십리여. 이쪽이 남쪽잉게. 여산 남십리 서쪽동요소(?) 긍게 여그가 물이 서쪽에서 흐르거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잖여? 그래서 여산 남십리 서쪽동요소 만인광활인(?)이라고 해서난 이서구가 했다는거지. 만인이 여기서 피난을 헌단 얘기여. 그래가지고서나는 말하자믄 일정 말년에 산을두고서나는 집을 지은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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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터가 좋은 곳이겠습니다.

A1 : 근디 그렇게 생겼는디 시방 여기 저수지가 맥혀서 그렇지 저 여산서 오면서 응? 도로가 저리 수리조합으로 났어. 수리조합으로. 그렁게로 수리조합으로 나고 여기 내밀은 산 있지. 저 저짝깨로 쪼금 나온 데 있잖여? 거기가 그 말하자믄 냇깔이 이렇게 났으믄 요짝이지? 거기가서나는 버드나무가 저런 것은 저다 대도 못혀. 막 몇 아람썩 되는 놈이 거가서나는 아마 칠팔키로 있었을끼여. 그리고 아마 소나무도 한아람 이상되는 나무가 있었고. 그렇게 있어가지고서나는 에 나무가 있으니까 저 도로에서 여기를 동네가 뵈들 않여. 사람이 이 동네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 그렇게 여가 동네가 좋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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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도승이 살았단 얘길 들었습니다.

A1 : 아 도승은 이짝 이짝인디. 나도 어른들한테 들은 얘긴디 얼매 그 도승 도승이 얼매 그 절이 없어진지가 얼매나 된지도 나도 모르겠는디 거기가 절이 얼매나 컸었능가는 몰라도 상양 그 그 회관. 고 그 거기서 쪼끔 올라가면은 물방아골이라는 데가 있어. 거기가 물방아를 놨던디여. 놨다는 디여. 말하자믄 그 절에서 방아를 찧어다가 먹니라고. 근디 그 절에서 그 절에서 쌀 씻는 뿌연 물이 여까지 내려왔다니까 큰 절 아녀? 그랬다는거여. 지금도 절 터는 남아 있지. 이름은 몰르지. 도승절이라고먼 허믄 도승절이라고먼 들었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몰르지 그건. 아 그리고 그저 저 용화산이 솔이 그냥 꽉 쩔었었어. 소나무가 말하자면 조선솔 육송. 육송이 꽉 쩔었었는디 그 때에 거시기로써 이런이런 놈이 많이 있었어. 근디 그 솔이 이 저 거 봤는가는 몰라도 그 저 산 축불(?)이 와서 집한채 있잖여 거까지 산이거든? 거까지 솔이 꽉 쩔었었어. 그랬는디 이 솔이 언제 없어졌냐 해방 후에 없어진거여. 이 솔 없어지는디 익산군이 이 십팔면인가? 십팔면일껴 아마. 십팔면중에서 안가젼간 디가 어디냐 웅포 성당 저 거시기 오산. 오산까지도 갔다는 것 같으지. 하여간 몇몇만 안가고는 다 갔다는거여. 이 솔이. 그냥 와서 비어 가. 아 그냥 비갔어. 그냥 서서. 그리고 그 솔이 안 없어졌으면 아주 좋은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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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그럼 풍수적으로 명당이 아니겠습니까.

A1 : 모르것어 난 산은 모르는디. 근데 몇 해 전에 여그와서 촬영해갔던 적이 있어. 케이비에스인가 어디였던가 문화거시긴가 해서 촬영해가 적이 있었어. 그거 말고는 못들어 봤응게로. 그리고 저기 저 용화산. 거기가서 나는 조광조. 조광조네 묘가 있었어. 그런디 파갔다 하드만. 그니까 조광조가 아니라 조광조네 묘. 말하자면 선영묘지.

B2 : 이완용 묘도 여기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아녀 이완용 묘는 여산이 아니고. 말하자믄은 시방 거가 여산 내산종(?) 이라는 데가 있어. 거가 시방 낭산땅이지 거가. 거가 있었어. 이완용이 묘가.

B2 : 그럼 조광조 묘가 어디쯤 있었다. 아니면 흔적이나 무슨 이야기가 있습니까?

A1 : 조광조 거시기는 말하자믄 익산대가 이리 용화산인디 익산대가 세 번을 꽂혔다는 얘길 들었지. 말하자믄 익산대라는게 말하자믄 볘슬 하는 거를 말하자믄 익산대라고 하는 그 그 그거를 얘기하는 것 같애. 세 번을 꽂혔다는. 아 어서 백혀있어 꽂아 있었다는 얘기지. 그렁게 거가 거 조광조네가 아니라 윤이산(?)네 묘가 도 있었어. 저기 저 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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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러면은 우리 용화산이 정말로 명산이었겠습니다.

A1 : 명 아 저게 명산이여. 저게 에, 저게 용산 용화산이라고 해서 용이 사리고 있다는거여. 그 형국 그 설이 있다는 건디 그 묘를 못썼다는 거여 지금. 후손 후손이 쓰지. 우리는 못쓴다는 거여 후손들이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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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다른 하양마을이나 생골에 대한 얘기를 뭐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A1 : 그리고 저 부평이씬디 어. 부평이씬디 말하자믄 에 임금님 저 음식 같은 거 맛보고 그 다 검사하고서난 그 그 벼슬이 뭣이지? 그 묘가 저가 있거든. 여기 있으면 시방 여기 올라가다 보면 이짝으로 골짝지고 이짝으로 골짝진 데 있잖여. 거기 쪼금 나무 내밀은 데 바로 거기서 쪼금 올라가서 있어. 그렁게로 그전 어른들 말씀이 지금잉게 그러지 그전에는 참 반상이 두렸했거든. 양반 상놈이. 근디 그렇게 양반상놈이 뚜렷한 데다 대고 그 영상(?) 그 저 가는 볘슬을 허면은 말할 것도 없잖여? 그런 그런데 그 때 그 윤이산(?)네가 들어왔을 때 그랬다고 하든가. 조광조네가 그랬다고 하든가. 윤이산(?)내가 내려올적엔 그랬다는 게비여 아마. 지금이 인자 이렇게 도로가 나고 했응게로 그러지 그 전에는 촌 길이 아녀. 그런디 인자 서울서 인자 선영묘 인자 선산에 오니까 인자 산보는 사람 보고는 연락 안했것어? 긍게 인자 굉장 했것지. 나는 인자 몰르는 일이지만. 근데 인자 저 웃동네라는 데서는 참 길을 깨깟이 청소도 허고 참 나와서 인자 참 등불을 써들어서. 응? 등불을 밝혔다는지 어쨌다는지가 있는디 이 동네는 냉랭해버려서. 그렁게로 말하자믄 산보는 사람보고서나는 아랫동네에 가서 내가 왔다고 허고서는 잡아오러고 그랬어. 긍게 인제 여기 사랑방이라고 지금 있어. 있었어 지금 물속에 헐려서 그렇지. 거기 있을 적에 그랬는가비여. 그래서 그 얘기를 허니까 노인양반들이 윤이산(?)만 양반이 아니라 이 동네도 양반이 산다고 혀라. 그래가지고 해서 무슨집 무슨집 있다고 얘기 가서 혀라 이렇게 얘길 해줬어. 그래서 인자 산보는 사람이 왔어. 그 소리 듣고 가서는 그 얘기를 헝거여. 그렁게로 아이 이 골짜기에도 그런 양반들이 사냐고. 그랬다는 거여. 여기 이 아랫 동네 여기는 음. 좀 빳빳하게 사는 동네라.

구술사진

상양마을 표지석


왼쪽부터,강금옥,박금덕,한화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