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여산면 > 금곡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여산면 > 금곡마을
구술자 유광석(1947)남자
구술자 조명운(1940)남자
구술자 박영순(1935)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22
비고 면담장소 : 여산 금곡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오후 2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등에 대한 조사
키워드  

문헌내용

금곡(金谷, 쇠목)․여단지․개정거리․갱변들․매봉 : ‘여단지’는 자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과 돌림병에 죽은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인 ‘여단(厲壇, 厲祭壇)이 있던 곳. ‘개정거리’는 도수장이 있고 개정(보신탕, 개장국)을 팔던 곳. ‘갱변들’은 강변(江邊) 들이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금곡 마을 유래 : 사금 채취장이 있어서 금곡이라고 했다. 그리고 근처에 개장거리, 갱변동, 쇠목, 매봉재, 상짓말, 여단지가 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개장거리 : 여산장이 커서 여산장을 가려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마을을 지나가야하는데 곳인데 주점이나 주막같은 게 좀 있었던 거리라고 한다. 개를 팔아서 그럴 것이라는 말도 있다.
- 매봉재 : 매의 형상을 닮은 산이 있어 매봉재라고 한다.
- 여단지 : 옛날 여산부사가 있을 무렵 군대가 주둔했는데 그 때 그 군인들이 마실 연못이 있었는데 그게 여단지이다.
- 갱변동 : 갱변동은 옛날에 그 쪽이 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갈이 많았다고 한다.
- 견훤의 전쟁터 : 진터라는 곳이 있고 갑옷터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갑옷터는 쇠로 갑옷을 만들어서 갑옷터라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쇠목(이건우 천석꾼 이야기) : 옛날에 이건우라는 아주 야박한 부자가 살았다. 그 때는 늘상 그렇듯 가난한 사람들이 쌀을 꾸러오고 그랬는데, 이건우라는 사람이 얼마나 야박한지 쌀을 함에 붓어놓고서는 손바닥처럼 얇고 평평한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놓고서는, 그 구멍에 손을 넣고 한 줌씩만 쥐어서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쌀을 쥐면 손이 빠지지 않고, 다시 손을 펴야만 손이 빠지는 구조라서 실제로 쌀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이 와서는 공양미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이건우는 예전처럼 손바닥만한 구멍에 손을 넣고 가져가라고 했다. 스님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스님이 저 쪽 또랑 쪽을 개간해서 논을 일구면 부자가 될 거라고 알려주는 척 안 좋은 것을 알려주었다. 과연 이건우는 논을 일구려고 논을 팠는데, 그만 그곳에 똘이 생기고 말았다. 근데 그 똘이 생기고 난 이후로는 비만 내리기 시작하면 시뻘건 황토물이 나왔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 논을 일구는 자리가 소의 목자리, 즉 쇠목혈이고 그 혈을 끊었기 때문에 피처럼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이건우의 아들 이수택은 거지가 되어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고 한다.
- 수은 : 물난리로 인해 마을을 다시 지어서, 물로 은혜를 지은 곳 즉 수은이 되었다고 한다.
4) 민속 :
- 상짓말 : 상짓말에는 고려장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영조때 65세 이상은 식량을 축내니 갖다 매장하라 하였기에 실제로 어르신들을 좁은 공간에 들어가게 하고는 위를 돌로 닫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밑에서 사람들이 부모님 무덤이 있고, 또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지냈기 때문에 거기를 상을 지내는 마을, 상짓말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 유광석1947
A2 ; 조명운1940
A3 : 박영순1935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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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금곡마을이 과거에는 뭐라고 불렸습니까?

A1 : 마을 이장인 유광석입니다. 당초에는 금곡 마을이 형성된 것은 그 과정이 왜정시대 한창 그 금광이 해서 돈을 벌 무렵에 이쪽 금곡 저쪽 똘 밑에서 사금 채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음 금곡이라고 했고 이 근처에 당채산이라고 있는데 당채산에 그 아연 그 아연 주석의 원석이 많이 나왔어요. 에 그것이 많이 나와가지고 당채산 일부서부터 금곡인데. 면적이 상당히 커요 그래서 금곡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전에는 여기가 큰 강이 있었고 그 강 옆으로 살던 사람들을 갱변뜰사람들이라고 했고 또 저 위에 금곡에서 큰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매봉 매봉이에요. 그래가지고 글로 넘아가는 길이 매봉재여. 그래가지고 거 근방에 사는 사람들 매봉재라고 했고. 또 이쪽에는 여산 시장을 가기 전에 길목이에요. 여산읍내로 들어가는 길목. 그래가지고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개장거리라고 했어요 개정거리. 개장거리라고 인자 그런 지명이 있다가 왜정에 금을 캐고 나서 그 뒤로 토지가 개인적으로 분할이 되면서 인자 금곡이 마을 전체 금곡마을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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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개장거리는 무슨 뜻입니까?

A2 : 이게 개장거리라는 뜻은 저 일제시대때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도로까시가 개정거리였어. 시방도 집이 두 가구가 있는데 거기가 개장거리여. 피촌이 그전에 피촌이었어. 개잡아서 팔았었어.

A1 : 옛날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여산을 시장을 봤어요. 여산읍에 부사가 있을 무렵부터 그 전부터 저 아래 망성이나 황하(?) 낭산 이 사람들이 전부 여산으로 시장을 보러 오는데 그 쪽 사람들이 가는 길목이 여기 이 동네고. 그리고 중학교 앞에서부터 왜정 때 길을 그 먼 길이 서울 한양까는 그 길이 저 아래에서 그 아랫역 사람들이 올라가는 길이 여산부를 지나서 그 남원사에서부터 그 길이 그 앞으로 해가지고 시장을 거쳐서 금곡 앞을 지나가. 그래서 아마 옛날에 음식점이 좀 있지 않았나. 그 뭐 그래서 개장을 팔았는가 어쩠는가 실지리 최근까지 얼마전까지 거가 좀 있었어. 긍게 주막식이지 주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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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전설은 있습니까?

A1 : 하나 그 전설적인 얘기가 있다면 아마 유교 중엽 쯤 됐을려나 한 200년 전에. 그 전주이씨 이수택이라는 분이 천석꾼 상당히 부자로 이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A2 : 수택이 아니라 건우. 수택이 아부지 이건우. 수택이 아부지가 건우씨여.

A1 : 인자 상당한 부를 누리고 살았는데 저 굉장히 야박해 사람이. 그 인자 부자니까 인자 옛날에 없는 사람들이 인자 이렇게 밥을 얻으러 오면은 그 일꾼들이 그 함을 이렇게 곡식을 붓어. 근데 붓어 놓고 한 번만 손으로 내가. 내가는데 얇어 이렇게. 그래가지고 손바닥으로 들어가서 주먹을 쥐면 안나와 이게. 긍게 짝 깔려서 몇 알때기만 나와. 그러고 한 번이면 끝나. 그것만 가져가는거야. 그리고 그 옆에서 마름이 지키고 있다가 거 한 번 하면 보내. 근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하는데 그런데 어느 날 중이 시주를 하러 왔다가 나도 인자 들은 얘긴데. 인자 좀 달라고. 어? 그 공양미 좀 해달라고 하니가 인자 거절을 한거여. 누구고 손을 내서 그것 만 가져가라. 그래서 인자 그 중이 한 번 해보니까 걍 기가 막히거든. 뭐 한 주먹 쥐면 빼지들 않여. 긍게 피야 쏙 빠져. 그럼 여가 몇 알 빽이 없어. 곡식은 가을에 XX한데. 긍게로 인자 그 중에 그 건우씬가 그 인자 주인양반을 만나가지고 그 거기다 밭을 지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어요? 허여튼 그 물을 저쪽이 또랑물이 XX에서 솔찬히 큰 하천이었는데 그 거기를 이렇게 파서 밭을 매서 농사를 져라 했던 모양이야. 긍게 호미 괭이로 일꾼들 시켜서 거그를 이렇게 팠는데 거가 그 근방 똘이 되버렸어. 근데 그 소가 누워있는 누워서 그 일케 아구를 내는 평화롭게 아구를 내는 형상인데 거기가 똘이 나버리니까 비만 오면 빨간한 황톳물이 막 나오는거여. 근데 나중에 보니까 누가 이랬냐. 당신 소 목아지를 끊었다. 그 앞에 그 산이 인자 소 대가리가 있는데 소 대가리가 있고 누워서 있고 지금 여기 쓰러졌으니까 태풍에. 큰 둥구나무고 있어 둥구나무가. 한 200년 넘은 버드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소 말뚝이고 그 여에 이수택이가 애지중지하는 그 네모난 논이 있어요 그 양반들이. 그것이 인자 구수여. 거기를 이렇게 파가지고 소가 거기서 아구를 내고 그 구수 옆에 소 말뚝. 근데 그 중이 와가지고 거기를 건들여가지고 거기다가 인자 그렇게 똘을 내면은 이쪽으로 농사를 많이 지을 수가 있다 해가니 농사지을 욕심으로 거기를 건드린 것이 거기가 똘이 생겨버렸어 장마져가지고. 긍게 옛날부터 그 동네는 그쪽은 비만 오면 황토물이 막 뻘건 물이 흘렀었어. 그것이 아마 몇 백년간 아마 그 황토물이 흘르는가봐야. 요 근래는 쫌 들허는디 얼마 전 우리 나이가 한 스물 몇 살 먹드라까지 비만 오면 뻘건 황톳물이. 인자 그런 헌 유래가 있고.

B2 : 이건우라는 분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A1 : 돌아가시고 그래가지고 그 아들이 망했지. 근데 그 분 생전에 전주이씨 무슨판지는 확실히 몰르겠는데 그 제실을 건우씨가 제실을 져 놓고 그러고 돌아가셨는데 그 이수택이라는 그 분 아들이 아마 왜정때나 들어오면서부터 거지가 되가지고 이렇게 참 얻어먹다가 죽었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것이 아마 현실인 것 같어.

A2 : 수택이가 아들 데리고 와서 밥 얻어먹었어.

A1 : 그 이건우씨 아들이 천석꾼 아들이 그렇게 해가지고 바로 망해가지고 그 아들 이수택씨가 자기 마누라도 잃어버리고 아들만 데리고 얻어먹고 다녔다. 자기 아부지가 큰 제실을 짓고 큰 부자였는디 순식간에 없어지고 망해버렸다는 거런 얘기가 있고. 이 동네는 뭐 특별한 뭐 그런건 제가 못들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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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 여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A1: 여단은 당채산 밑에 그 옛날에 여산부사가 부가 있을 때 여산부로 승격이 됐을 때 남원부하고 여산부가 있을 때 부사가 군대를 지위할 수가 있었는데 그 지금 현재 여 거기가 평평헌 넓은 데가 여단이 주둔하고 주둔할 수가 있고 거기서 그 때 여단이라는 병력 훈련 그 여산부의 군사들이 거기가 있었던 것 같으고 그 넘어가 긍게 그 넘어 여단에 이렇게 동네가 그게 영넘어여. 영넘어. 옛날에 영넘어. 거 넘어오면 여단이 있고 거기에 가면 여단지라고 있어 여단지. 못이 있는데 여단이 먹을 수 있는 못이 나와. 쪼그마한 인제 샘물같이 나오는데 샘물처럼. 그 지금도 그게 지금도 있어요.

B2 : 여단이 무엇입니까?

A1 : 여단이라고 하면 지금 군사로 말하면 한 일만. 일만명 정도의 지금의 그 옛날에는 일만까지는 안 됐지 부사가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병력이 우리가 알기로 한 사오천 정도는 거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거기가 여단지라고 부르거든 여단지. 거기가 못지짜야. 긍게 여단이 먹을 수 있는 그 여단들이 거기서 훈련허믄서 그 물을 먹었다는 얘기여. 거기서 인자 여단지라고 거기를 여단지라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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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지도를 보니 공설묘지도 있고 그런데 귀신얘기는 없었습니까?

A1 : 인자 근 거기가 공설묘지 부근이 옛날 어른들이 거기를 상짓말이라고 그랬어. 상짓말. 지명이. 상짓말이라고 하는 얘기는 고려때부터 어 고려장을 해놓고 그 잔디밭이 거가 평펀히 잔디밭이 많이 있었는데 그 고려장을 해놓고 움막을 짓고 상을 차려. 근디 고려때부터 이조시대까지 그 움막이 두 개 세 개가 항상 있어가지고 그 지명이 상짓마을이 돼부렸어. 상짓말. 긍게 에 거기에서 인자 한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허고 인자 다시 우호관계를 새로 가졌는데 그 도굴꾼들이 제일 먼저 와서 사는 데가 저기 여기여.

B2 : 고려장을 실제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A1 : 많이 해가고. 나도 중학교 때 실제로 했었고. 많이 캐가고. 그리고 고려장을 했었던 그 이유는 거기가 가면 샴이 우물이 있어. 그 잠생이(?)밭 가운데 우물이 있었다고. 항상 흘러는 우물이 생수야. 바닥에서 품퍼퍼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상짓마을 거기다 짓는 이유는 거기에 먹을 물이 있었다는 거여. 거기가 상짓말을 가도 XX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B3 : 제가 알기로는 고려장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힘드니까 데려가시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까?

A1 : 그 고려장이 어떻게 됐냐면 그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무원이나 인자 그런 힘이 좀 있는 사람들. 왕의 명령에 잘 따르는 분들 그리고 시행자들은 이 분들이 그 고려 때 고려장이 나이가 그 많이 먹으면 많이 차면은 앉아서 먹으니까 식량난이 굉장히 어렵고 이 양반들이 앉아서 먹으니까 그 때 영조 때인가 그 이 양반이 65세 이상은 전부 매장을 해라 거 왕이 명령을 내렸죠 신하들하고 상의를 해서. 그러니 나이 먹은 양반을 둔 자식들은 인자 일꾼들 시켜서 사람들 시켜서 산에다가 돌로 싸서 이렇게 인자 해놓고 술하고 먹을 것 당분간 내놓고 그 위를 돌로 요만한 돌로 막고 흙을 덮어 버리니까 캄캄하게. 덮으믄 그 안에서 사람이 서서 눕들 못헐 정도로 고만 하더라고. 내가 인자 다른 X는 안 재봤는데. 쪼그만한데. 앉아서 기댈정도의 그 거거 일어 서지도 못하고 그게 인자 거기서 인자 술 먹고 마지막에 거기서 그러다가 죽으면은 거기서 끝나고 자식들은 쉽게 얘기해서 거기가 무덤이여. 아버지 무덤 어머니 무덤. 그렁게 그 밑에다가 상짓말을 짓고 인자 돌보지만 꺼내올 수는 없는거지. 무덤에서. 근데 별 이야기가 다 있잖아 고려장 때 얘기가. 그것이 실제로 그 골짜기에 엄청 많이 있었어. 고려장. 지금은 인자 많이 공설묘지로 되면서 많이 훼손이 거의 훼손되다 싶이 했는데 그 뭐야 그 캐러 댕기는 사람들. 도굴꾼들이 하여튼 한 열댓명들이 거기서 주둔을 하고 있었어. 그 박정희 때 수고 정상화 시키고 나서 바로 이 사람들이 그걸 했어. 그 아마 도굴을 해서 일본으로 다 가져간 것 같았어.

B3 : 그럼 도굴은 일본인이 했습니까?

A1 : 일본인은 없었고 수교가 되믄서 일본놈들이 젤 먼저 헌 것이 고려장이야. 그 놈들이 수집을 헝게. 긍게 이제 왜정 때 그 소나무에 그 진을 그 송진을 인자 많이 갖다가 여기다가 공장을 지어 놓고 이 부락 입구에 거가 공장을 지 놓고 인자 고것을 인자 우리 나라 사람들이 했지 기술은 일본놈이 가지고 있고. 그 일을 XX를 해가지고 무슨 오일같은 걸로 허고. 인자 그런 거 실제로 아마 그런 일이 있었을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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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아까 이야길 들으면서 매봉재란 이름이 특이했는데 매봉재라는 이름이 무슨뜻입니까?

A1 : 그 산의 형국이 매에요. 매 형국을 허고 매가 이렇게 서서 쳐다보는 형국을 허고 있고 그 위로 넘어가면은 옛날에 이 질이 없을 때 그 밑에서 동네가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뒤로 길을 그 산을 이렇게 웃퉁이로는 무슨 산 뭐 거기는 매봉재 이렇게 성황당처럼 산이 있었는데 그 재가 매봉재여. 긍게 그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를 했지.

B2 : 아까전에 우리 마을의 소의 혈 얘기도 하셨습니다.

A1 : 긍게 매봉재도 있고 그렇지 소의 혈은 쇠목 부자가 그런 여기 있었고. 뭐 따른 것은 거시기는 없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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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아까전에 사금 이야길 하셨는데 사금으로 부자가 되었다거나 금맥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2 : 그건 없고 사금 채취를 앞에서 아마 그 왜정때 금을 가지면은 큰 부자를 거시기가 됐든 모양이여. 그래가지고 그 무렵에 그 겨울이 크게 매봉재 밑으로 개울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금 채취를 했다. 근데 아마 금이 나오진 않은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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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다른 마을에서 이 쪽 마을이 큰 전쟁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가 있습니까?

A1 : 거 그 인자 저쪽 두여리에 개울 건너 강경 가는 데에 가면은 거가 인자 진터라고 있고. 거기 위쪽에 보면 XX거리라는 데를 보면은 갑옷터라고 있어. 지금도 가면 그 터가 있을거에요. 옛날에 쇠를 만들어서 그 갑옷을 맨들은 제작한 대. 인자 그런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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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실제로 전쟁 얘기는 없었습니까?

A3 : 거시기 가재동서 좀 돌아가면 굴박모탱이라고 있어. 굴박모탱이 그 전에 거기서 굴을 땄디야. 그 바우에어. 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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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래가지고 뭐 이 동네는 아마 그 무렵에 거진 형성이 되지 않앴나 혀. 금 사금 때 그 전에는 아마 이 동네에 그 전주 이씨 또 몇 손들이 있었고 그 때부터 었어가지고 금곡 부락이 쉽게 얘기해 각성바지야. 뭐 집촌적인 거시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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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 혹시 넋건지기라던가 애기박기 처럼 미신같은 게 있습니까?

A1 : 글쎄 우리 마을에 우물이 많이 없어져가지고. 그 상짓말이라는 데가 그 항상 물이 지하수가 그렇게 솟아. 솟는데 암마야 가물을 때는 거기 물을 질어가지고 이 근방에 물이 없으니까 거기 물을 질어가지고 먹고 그랬을 꺼야. 뭐 딴 건 특별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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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뭐 또 다른 특별한 지명이 또 있습니까?

A1 : 음 여단지 상짓말 개장거리 쇠목. 그 쇠 소가 누워서 그 혈 그 밑에 사는 사람들 거기를 쇠목이라 그러고 저쪽은 매봉재라 있고.

A2 : 아 갱변동 갱변동. 바닷가 있어가지고 갱변동.

A1 : 여가 옛날에 큰 강이었어 강. 우리 어렸서도 자갈이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한참을 가야 자갈밭이었었어 순. 그런데 지금은 농토화 되가지고 뚝을 막고 해가지고.

B2 : 물 얘기가 나와서 수은마을이란 곳에 물난리가 났었다고 들었습니다.

A2 : 왜정 때 일인데 그 때는 홍수가 나면은 비가 나오면 어쩔 수가 없어. 그 평촌이라는 동네가 평할 평자에 마을 촌자거든 긍게 그 들 가운데에서 부락을 이루고 살았었는데 비가 오니깐 쓸어버렸어. 쉽게 얘기해서. 긍게 인자 왜정때래도 면장이 김수한씨라고 여산 아니 면장으로 있으면서 그것을 건의 해가지고 그 위에다가 지금 현재 사는 거기에다가 동네를 형성시켜줬어. 그래서 수은이야. 물로 인해서 은혜를 입은 곳이다 해가지고 수은 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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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왼쪽부터, 유광석, 조명운, 박영순


왼쪽부터, 유광석, 조명운, 박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