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익산에서 제일 명승지라 이르는 경치 좋은 곳으로 익산 구지에도 “사시 풍경이 입과 붓으로 다 형용할 수 없어 시인 묵객이 끊이지 않는다” 하였다. 황각동은 중국에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학루(黃鶴樓, 黃閣)에서 취한 명칭이다.
황각동 계곡
신용리 황각동의 용화산 서쪽 기슭에 있는 이 계곡은
구술요지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지붕이 누런 초가집이 많아서 황각이라고 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빈대절터: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빈대가 많아서 망한 절터라고 지어진 이름이다.
- 퉁퉁바위: 밟으면 쿵쿵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전설 및 민담
- 등잔바위: 남자를 기다리다 돌 위에서 떨어져 죽은 이야기이다.
- 상원사: 상원사 절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시기해서 사람을 밀어넣어 죽였다고 한다.
- 수석바위: '유상곡수'라고 써있는 바위의 명칭이다.
- 일간정: 마을 정자 앞 논에 있었던 정자이다.
- 하서대: 농민들이 호미를 놓고 쉬었다는 장소이다.
- 수석바위 : 경주의 '포석정'처럼 마을에 물이 흐르는데 수석바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농민들이 일을 하고 쉬는 '하새대'가 있는데, 양반과 농민의 격차가 한눈에 보이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 항복골 : 적이 처들어와서 왕이 싸우다가 '독점', '황각', '동막골'를 거쳐 도망가다 '황동'가서 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항복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일본인이 명당자리를 폭파하니 도로에서 피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4) 민속
- 매봉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 무제봉: 금마면 전체에서 비가 안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 고름장터: 고려장을 했다는 곳이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기찻길이 숯고개를 지나가려고 했는데 소씨들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찻길이 다른 곳으로 놓였다고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이상제 (64) 1949년
A2 김종호 (72) 1941년
A3 박노철 (64) 1949년
B1 장윤준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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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거기 기왓장이 나오고 그랫자나요 나도 들은 이야기인디 거기 권씨네 집에 딸이 이쁜 딸이 있어가꼬 서울서 과거 시험을 봐가꼬 이 도로가 이 아리랑 고개에서 한양을 그리가서 한양길이지 저수지에서 그 사람이 성공을 해가꼬 암행어사 벼슬을 가꼬 길을 내면서 온게 이 여자 처녀가 시집을 안가고 있다가 저기서 여기서 떨어져서 자살해 죽었다는 그런 이야기여.
B1: 아 여기서요?
A2: 응 이 돌에서 이 위에 올라가서 저기 저기서.
B1: 옛 연인이 벼슬을 했는데...
A2: 응응 그렇지 옛 남자가 이 그래서 한양길 한양에서부터 길이 내려와가꼬 이 이게 옛날의 ‘한양길’이여 이게 역사가 있는 길이여.
B1: 그럼 이 바위에서 그 처녀가...
A2: 그 처자가 치다보다가 말하자면 신문에 내보 낸게 보고 여자가 치다 본거여 오는거 내려오나 안 내려오나 그 날혀서 자우간 자살혀 떨어진게 여기 순 바우인게 죽은 거여.
B2: 아 그럼 처녀가 떨어져서 죽었다는 그 바위가 어디 있나요?
A2: 아 그 위 바위 올라가서 저 길이 보이자나.
B2: 처녀가 뛰어내렸다는 바위 이름이 뭔가요?
A1: ‘등잔바위’라니까!
A2: ‘등잔바우’라고 해요 우리는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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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처녀가 어느...
A1: 그러니까는 이 형님이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하자나 긍게 들은 이야기가 차이가 있어 그런게 문자를 냄겨 놓으면 지금 그걸 헌다고하자나 그러니까 문자를 냄겨 놓으려면 우리 한 마을에 살아도 나이가 든게 말이 틀리자나 들은 이야기가 그러면 내가 듣기로는 여그가 쉽게 말하자면 노씨 집성촌이여 옛날에는 지금도 황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집성촌 마을이 많이 있어 지금도 옛 거시기가 그대로 살아가꼬 왜냐하면 전준 이씨면 전준이씨 김해 김씨면 김해 김씨 그 고적이 그냥 아주 그 성씨로만 그냥 짐정적으로 이루어져있어 그래서 여기가 노씨 집성촌이었는데 여그기 일반정이야 여기 정각자리가 있어 그러면 그 정각에서 저그를 지금 아리랑고개 가는길 아까 1번국도라고 했지? 거기를 보면 훤이 보야 그 정각에서 보이며는 저 도로가 보인다고 그러며는 거그서 쉽게 말하자면 그 노씨 처녀 한 분이 이 아래 금마인가 김제인가 어디 사는 사람 그 공부하는 사람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었데 근데 그분이 그 속안은 쌍놈이다 해가꼬 절대 집안에서 허락을 안 해줘 집성촌이라 그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 할아버지랑 대손들이 많을 거 아니여 그니까 허락을 안 해줘 그러니까는 그 사람이 벼슬하고 내려가면서 그 사람 보고서는 집안에서 반대 했다고 그 사람은 벼슬했는데... 그것 뿐이에요 그래서 여그가 처녀 귀신이 나오고.
B2: 처녀 귀신은 어디서 봤어요?
A1: 여그서 떨어 졌은 게 처녀귀인이 나온다 이거여.
B3: 벼슬하려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떨어졌다는 이야기 인가요?
A1: 아니 내려왔지 상을 줬어 근게 여그가 지금도 여기보고 일건정이라고 하고 저그가 상근론이 있고 지금 여기대로하면 그 사람이 뭐 소가(家) 내들 되 가꼬 뭐 여그와서 자그네들 소씨들 뭐 할아버지가 뭐했다 글씨를 써놓고 관광관리로 새겨 놓고 관리해놓고 뭐 조화 등을 해놓고 그런 걸 그 사람이 했다고 혀.
B3: 아 소씨가요?
A1: 아! 인제 저 글 씨랑을 자기들이 했겠지 그 사람들이.
B2: 그럼 벼슬을 하고 내려온 사람이 소씨겠네요?
A1: 그렇지.
A3: 소씨가 했다고?
A1: 소씨가 내려오면서 상을 줬다고.
A3: 누가 그려?
B2: 어르신은 다른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A1: 그러니까 각자 이야기가 다 틀리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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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이 주변에 ‘상원사’라고 절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시는지요?
A2: 여 여그 넘어고 이 앞산 넘어.
B3: 혹시 ‘상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A2: 거기 절이 절이 있었을 텐디.
A1: 저기도(다른 쪽을 가르키며) 절이 있었지.
B3: 다른 곳에도 있었나요?
A1: 거기는 ‘빈대절터’라고 했디야.
B3: 왜 ‘빈대절터’인가요?
A1: 빈대가 원채 많아 가꼬 사람이 살 수가 없었디야 그러니까 망했디야.
A2: 옛날에는 빈가 많았어 지금 젊은 층 들은 빈대 뭐 이 같은거 벼룩 몰르지 옛날에는 장판을 뜯으면 벼룩이 벌턱벌턱 해서 많았어.
A1: 그리고 거기다 누가 절을 지을려고 무속인들이 지사도 지내고 뭣허고 했었어 다시 복원을 하려고 근디 그게 허가가 나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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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상원사’에 대하신 것은 들어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A2: '상원사'는 우리가 잘 모르지.
A1: 근데 여기 거시기 한다면 우리가 글 공부 하러다니 던 곳이여.
B3: 아 ‘상원사’ 가는 길이요?
A1: 응 거기 말하자면 그러드라고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서당가면 공부를 많이 하자나? 지금 학생들 만코롬 근데 누가 질투하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쉽게 이야기 하자면 뭐야 똥통! 변기통 옛날에는 재래식이자나 거기다 그 사람을 죽여버렸데 그래서 그 절터가 망했다는 말이지.
B3: ‘상원사’ 절이요?
A1: 응 ‘상원사’ 절.
A2: 빈대 때문이라고 하든데?
A1: 이거 이거 여기 ‘용화산’ 그건 ‘빈대절터’ 이고.
B2: 그러면 누가 누구를 죽인지 아시는 지요?
A1: 그거는 누가 했는지 알어 공부하는 학생을 아이 지금 말하면 왕따고 뭐고 있자나 지금 말로 허자면 근데 그런 뭔가가 있었나봐 뭔가 시기를 하던 놈이 있가지고 그놈 한 사람을, 그런 설화가 많자나 아까 금방 이야기대로 떨어져서 처녀귀신 나왔다고.
B2: 그러면 ‘상원사’와 ‘빈대절터’는 어디 있었나요?
A1: ‘빈대절터’는 저그 저 옴팍 들어 갔자녀 저기 있자녀 그 바로 이 짝에 있어.
A2: ‘용화산’이라고 혀 ‘용화산’.
A1: 인자 거기를 ‘퉁퉁바우’ 밑이라고 혀.
B2: 어디 밑에요?
A2: 저그 자락을 ‘둥퉁바우’라고 혀.
A1: 거기 가서 절터 보면 나와.
B3: ‘등통바우’요?
A1: 아 ‘쿵쿵바우’ 돌 위에 서 있으면 쿵쿵 울려 거기가.
B3: 사람이 밟으면 그 쿵쿵 울리는 바위가 있다는 건가요?
A2: 아니여 인자 그렇게 부른다고.
A1: 아 서당 거시기하면 쿵쿵 울리자너 그런 식으로.
A2: 절도 거기 지을 적에 물이 없어서 그 ‘쿵쿵바우’라는 샴이 있어 어릴 때 그 물이 달아서 먹고 그랬는디 그 물 지금은 안 나올 걸.
B2: 그 절터는 아직 남아있나요?
A2: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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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매봉제’는 들어 보셨나요?
A1: ‘매봉제’는 저쪽.
A2: 이 바로 뒤에 있는 산이 ‘매봉제’요.
B2: 그럼 왜 ‘매봉제’라고 불렀나요?
A2: 아 이제 옛날에 그렇게 불렀어 산 이름을 요 ‘앞산’이고 다 그렇게 지어 놓았어 여 뒤에는 ‘뒷골’이라고 하고 이름을 다 그렇게 지어 놓았자녀 동네 이름도 다 지어져 있자녀 그런 식이랑 똑같혀 인제 그런 걸 다 알려면 지도 보는 사람이나 잘알지.
A3: ‘매봉제’라는 말은 그전에 비가 안 오면 이 동네에서는 이 산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어 기우제를 모셔가지고 그래서 ‘매봉제’라고.
B2: 기우제는 무제라고 하자나요.
A3: 그렇지.
B2: 그럼 왜 ‘무제봉’이라고 안 하고 ‘매봉제’라고 했나요?
A2: ‘무제봉’은 저기 있어 미륵 산에.
A3: 금마면 전체가 기우제를 모실 때는 거그가 모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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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어릴 때 자주 놀러가신 곳이 있나요?
A2: 우리 어릴 때는 놀러갈 때도 없고 저 용화산 넘어가면 ‘굴바우’라고 있고 저 가면 ‘신국사’있고 저 가면 ‘사자암’ 있고 그런디나 놀러 다녔지.
B2: ‘굴바우’가 어디에 있나요?
A2: ‘굴바우’가 저기여 샴골.
A1: 용화산에 딸려 있지 원수리 원수리.
A2: 지금 문화재 뭐 지어놓고 찍고 그러자녀 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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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황각동’이 중국의 명소지와 관련있다고 들었는데요?
A2: 나도 이제 그런 걸 몰러.
A3: 이 ‘황각동’ 이라는 말은 그 쉽게 말하면 중국에 가면 ‘황학루’라고 아주 경치 좋은 데가 있데 그래서 그 ‘황학루’라는 말을 따가지고 ‘황각동’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가 경치가 좋았어 지금 200년 전에 그 이조 말에 익산 원님이 저술한 ‘금마지’라는 책이 있어 진짜 지금도 있어 거기에 보면 금마에 경치 좋은 데가 여그가 나와 이 동네가 이 동네가 나오고 ‘사자암’이 나오고 ‘사자암’에 가보면 바위가 서 있는데 사람이 비껴서 들어 가야해 반듯이는 못가고 그 전에 거기가 노송 같은게 산림이 많이 우거저서 좋았고 여그도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 노송이 만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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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렇게 경치가 좋아서...
A3: 그래서 여기가 우리가 어릴 적에는 ‘수숙바우’라고 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수숙’이 아니라 ‘수석바위’라는 말이 맞지 않나, ‘수석바위’라는 바위라는 그 뜻이 우리 방언으로 ‘수숙바우’라고 보통 그렇게 한 것 같어 그 말을 허자면 저기에 가면(마을 정자 앞 냇물) 저 글씨에 ‘유상곡수’라고 써져있어 근데 글자 하나가 ‘유’자가 흐를 류자 인데 필기하면 ‘流’ 인데 저기에 가면 여기에 점이 없다는 거여 아예 안 팠어 옥편에도 찾아보면 점이 있는데 점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유상곡수’라고, 왜 여기가 이조 말에 익산 원님이 경치가 좋았다고 했냐면 이 논 위에 ‘일간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어 지금도 등기권에 나와 있다고 해 등기권에 ‘일간정’이라는 등기가 있다고 해 근데 이 논이 없었겠지 옛날에는 그래서 이 논이 없으면 이 경주에 ‘포석정’처럼 물이 굽어 흘렀다는 거여 그래서 양반들이 ‘일간정’에서 시를 읊는다 든지 인제 시조를 읊고 시를 쓰고 허다가 이 밑에 가서 술을 하시는데 물이 옛날에 나무가 많이 우거졌을 때 물이 안 마르고 이렇게 계속 흘렀을 것 아니여 그래서 이 술잔을 물에다 띄우면 밑에 있는 술을 받아먹었다는 이 말이여 이 냇가에서 그래서 ‘수석바위’다 포석정처럼 굽어 흘러가지고 이 논이 만들어져서 그것이 안 보이는 것 같어 근데 전해저 내려오는 말로는 그래 그래서 ‘유상곡수’라는 말이 거기에 어울리는 글씨여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쪽에는 양반들이 말하자면 양반들이 정자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하다가 술잔을 띄워서 풍류를 즐겼는데 여기에 보면 ‘하서대’라는 말이 써있어, 그게 뭔 말인 고니 이 가운데 있는 말이 호미 서자여 호미 괭이 이쪽에서는 양반들이 시조를 읊고 술을 마시면서 풍류를 즐겼는데 여기는 농부들이 일을 하다가 옛날에는 호미로 논 풀을 메었자나 농부들이 일하고 땀을 흘리고 와서 호미를 놓고 쉬는 자리가 ‘하서대’라는 것이야 그래서 여기는 양반과 농민의 격차가 한눈에 다 보여 글씨로.
B3: 그럼 이 마을은 양반도 많고 상당이 컸었나요?
A3: 크게 양반은 안 살고 그때 이조 말에 공주에 원님이 낙향해서 이 동네서 와 살았어 원 이름이 호가 별주부여 의령 남씨고 남씨라는 것만 우리 선조가 있어 의령 남씨라는 것만 알고 이름은 나도 몰라 근데 지금 여기에 보면 ‘황각동’이 나오는 이 글씨나 글씨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이분이 와서 낙향해서 여기 와서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분이 와서 이 ‘하서대’나 ‘유상곡수’나 머리가 아주 좋았데.
B2: 그러면 어르신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으셨나요?
A3: 우리 아버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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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아버님도 여기에서 계속 토박이셨나요?
A3: 그렇지 내가 여기 5대째 살어 한 번지에 금마면 신용리 111번지에 내가 5대째 살어 그리고 의령 남씨가 우리 바로 옆집 살았었는데 말하자면 우리하고 사돈지간이여 옛날 사돈지간 이었어 그래서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생각해봐도 이 글을 이 동네에 살면서 적을 만 한 분은 이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금마지’라는 지금 한 200년 지금도 내가 사본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보면 익산에 토박이 말하자면 권리 실세들이 이조 500년 마지막이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여기 전준 이씨가 많이 살어 이 금마에도 전준 이씨가 많이 사는데 그 전준 이씨 왕족보다도 소씨가 실세야 진주 소씨 진주 소씨라고 하면 당나라 소정방이 후손들이여 근데 지금 땅을 보면 전준 이씨 보담도 소씨들 땅이 훨씬 많아.
B2: 그럼 이 동네에도 소씨들이 많이 살고 있나요?
A3: 여기는 이 동네는 없어 없고 이 금마 전체 금마 왕궁 삼기까지에 익산의 주류 이조 말에 실세들은 익산에서 전준 이씨가 아니라 진주 소씨여 내말이 믿어지나 안 맞는가 찾아가서 한번 ‘금마지’라는 책을 보면 거희 다 소씨여 그것을 내가 왜 가지고 있노니 거기에 내가 순천 박씨인데 그 ‘금마지’에 보면 우리 17대손 할아버진 형제분이 무과에 급제 한 것이 있어 그래서 형제분이 무과에 급제를 하고 임금한테 하사 받은 땅이 있어 근데 소씨들이 얼마나 땅이 많은 고니 무지무지허게 많어 좀 좋은 자리 전준 이씨 보다도 소씨들 땅이 많아 아니 여기만 있는게 아니라 왕궁 미륵산 그쪽에도 많고 저쪽 미륵국민학교 있는데도 많고 엄청나게 많어 말하자면 명당자리 좋은 자리는 소씨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익산의 실세는 소씨여 지금도 현대 사회 들어와서는 이 소씨들이 많이 잘된 사람이 변호사가 있어 나머지는 별로 큰 사람은 없는디 전통 야당 출신들 이 사람들이 똘똘 잘 뭉친다고 전국적으로 보면 소씨 집성촌이 여기 익산이라고 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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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아까 여기 어르신이 말씀하신 ‘상원사’절 이야기는 아시는지요?
A3: 그것인 인자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지 않나 정확성은 없고 지금도 가면 그 ‘상원사’에 주춧돌 같은 것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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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금마 주변에 여우가 많이 살았던 것 같은데 여우에 관련해서 아는 이야기는 있으신지요?
A3: 그런 이야기는 없어, 여기가 경치가 좋았다는 말은 맞을 것 같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이쪽 산 넘어 여산에 내 외가가 있는데 거기를 걸어 다녔었거든 1∼2학년 때나 3학년 때나 그럴 떄 보며는 노송들이 꽉 차있었거든 그러면 산세가 좋고 물이 깨끗하고 우리가 어릴 때까지 이 냇물을 마시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금마지’에 나오는 경치가 아름다운 익산의 한 장소라는 말이 맞는 말이여 내 생각에는 머리에 생각해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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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항복골’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A3: 들어봤지 그 종합 공원 있는데 지금 서동공원이라고 하지 서동공원 안쪽에.
B3: 그럼 왜 ‘항복골’이라고 하는지 아시는지요?
A3: 그거는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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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릴 적에 아프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셨나요?
A3: 돈 있는 사람은 보약 같은 것을 먹고 평소에 잘 먹고 살지만 없는 사람은 아프고 보약도 못 먹고 굶주리며 살고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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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선잠바위’라고 들어보셨어요?
A3: ‘선잠’이라는 것은 들었어도 ‘선잠’이라는 것은 저 위에가 ‘선잠’인데 바위라는...
A2: ‘선잠’은 저 위에 바위는 없지 무진의 창제에 ‘찬샘물’라고는 있었어.
B2: 샘이요?
A2: 여름에 땀나고 거기서 목욕하고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B2: 샘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A2: ‘찬샘물’
B2: 혹시 ‘옻샘’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A3: ‘옻샘’은 많아 저기 용정가도 있고 ‘옻샘’이라는 말은 우리 생수가 많이 나오고 그러는데 그렇게 시원하더라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래서 ‘옻샘’이라고 혀 용정에가면 서동왕자가 태어났다고 해 그 생가있던 자리도 ‘옻샘’이라고 하자나.
B3: ‘올빼미골’은 들어보셨는지요?
A2: 여기 ‘올빼미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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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A3: 박노철 65세 49년생, 여기가 풍수지리로 본다면 저쪽 저수지 위에서 본다면 공수부대 저수지 뚝에서 봐두 되고 공수부대 후분 언덕 위에서 봐도 이 동네가 우리 어릴 때는 그때는 초가집이 많았지 누런 초가집이다 누를 황자 자나 옛날에는 누런 집이 많이 있었다 그런 뜻도 되 한문으로 그대로 푼다면 그것이 지금 맞고 중국에 ‘황학루’와 비슷하다 해서 그 말도 무시는 못하는데 아무튼 이 동네가 우리 어릴 때 35세대까지 그 때 살았던 걸로 기억을 해 그때는 한 집에 5∼8명 사니까 동네는 적어도 사람은 많이 살았겠지?
A1: 그치 그때는 많이 살았지.
A3: 이 동네 자랑거리는 여기 이야기 하면 우리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금마지’라는 그 책에 분명이 익산 원이 저술한 책에 기록에 되어있고 그래서 나무가 없으니까 나무만 있으면 괜찮지 그리고 저기 저위에 저수지 그 뚝하고 하면 이 동네 딱 풍수지리 학자들은 ‘좌청룡 우백호‘ 라는 말이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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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아까 말씀하셨던 귀신 이야기 조금 해주실 수 있나요?
A1: 긍게 아까 자도 그러자녀..‘공판제’
B3: ‘공판제’요?
A2: 그리고 아까 노철 그건 모르겄네 여기 ‘항복골’이라는 것은 내가 듣기로는 여기 미륵산 있자나 싸움을 했는디 왕이 이 짝 독쟁이 앞에서만 싸웠거든? 근게 저 짝에서 쳐들어온게 ‘독점’으로 도망가가꼬 ‘황각동’으로 도망가가꼬 ‘동막골’로 도망가서 ‘황동’가서 잡혀서 ‘항복골’이여 그래서 잡혀서 항복해서 ‘항복골’이여 그건 이야기 안 하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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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 길이 이 마을은 지나가지 않았나요?
A2: 여기는 안지나갔어 그래서 거기가서 잡혀서 ‘항복골’이랴 근데 그게 우리는 모르고 그 우리 조부 그분들이 있을 때 물어보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역사를 다 알 수 있지 아까 노철이라는 사람도 가도 이장 질을 헌 사람이고 고등학교 댕기고 그랬으니까 알지 그리고 여기서 이장 질하면서 크고 여기서 저 사돈 아니여 그게 아까 그리 안혀? 남씨라고 내가 이야기 안혀? 의령남씨 사돈 간이여 그게 근게 잘 알지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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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러면 어르신 방금 말씀하셨던 ‘공판제’가 무엇인지요?
A2: 그 역사를 우리가 알아야...
A1: 그러니까 익산이 아까 노철이도 그러자나 이백년 뭐 조선조 500년 그래서 말무렵에 말로 듣기로는 우리는 ‘이원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자나 그 ‘이원용’ 묘가 있어.
A2: 그건 ‘이완용’ 묘가 아니지.
A1: 그 사람이 인자 나라에 역적이 된 것이 관을 해놓고 진짜가 어떤 건지 모르게 그놈을 다 파헤칠까봐 진짜 놈이 어딘지 모르지 송장이 어디 들어가 있는 지는 그러면 그런 식으로 아까 그때만 해도 나무를 기름이 안 거시기 하니까 소나무 송진을 그놈을 쉽기 이야기하면 고무나무 진 빼듯이 그리고 그걸 전부 빼야 그리고 그것을 다 발매를 해가지고 그러면 아까 그 ‘공판제’ 거기서도 그렇게 뒤로 말꼬름 말아 생겼어 이 집 뒤로 이 산으로 그리고 거기서도 그렇고 그러면 막 집대로 옛날에는 명자리를 굉장히 거시기 했거든.
A2: 아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같혀.
A1: 원래 우리나라는 그것을 명당자리가 많다고 해가지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쇠로 말을 박았지 여그도 있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크레모아여 아 그게 뭐 떡이라고 하는거 그 다이나마이트 그걸 폭발해서 떠내버리는 거야 명당자리를 근디 지금 그것이 맥이 이어진다고 하자나.
A2: 학생들은 그걸 몰라? 일본 놈들이 역사에 지리 같은 걸 보면 머리 영리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생겨서 일본 놈들이 와서 좋은데는 다 떴어 화약으로 저 문화제 독쟁이 저그 가면 있어 산에 거기도 거기다 묘를 쓰면 못 쓰게하고 파내고 그랬어 거기도 푹 떠버렸거든? 여기도 산 넘어가면 길도 매끈한 놈을 일본놈들이 다 끊어버리고.
B2: 그것을 ‘공판제’라고 했다고요?
A2: 아니지 그건.
A1: 거그는 이 넘어가야하고 샴골 쪽으로.
A2: ‘공판제’는 여그가 있는 곳을 ‘공판제’라고 했는디 우리 뭐라고 했는지 뜻도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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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여기 앞에 옛날에 서울로 가는 길이 있었자나요 그러면 다른 지역 사람 왕래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1: 아 그럼 삼봉리 따라서 다 걸어 다녔지.
A2: 아 이 걸어서 가고 그랬지 시험 보러 과거 보러갈때도 걸어가고 그랬지 저 금마 저수지 가운데로 해서.
A1: 근데 여기 여기 앞에 나오는 길이 있지? 구부러진데 원래 거기서 일본 놈들이 헐 때 피가 흘렀데 그 산길을 끊을 때.
A2: 내가 TV를 본게 그 그런 이야기를 하더만 일본 사람들 살던 집을 전국에서 정부에서 보수를 다 해준다는 것이여 그게 뭐하는 짓인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게 왜그러는거여 이게.
B2: 어르신 도로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인지요?
A2: 아 그런게 있었어 여기 숯고개라고 있자너 숯고개라고 몰라? 그 맥을 끊을 때 피가 나왔다고 그려.
B2: 어디서 피가 나왔데요?
A2: 피가 나왔 것어 인자 그런 현상으로 이야기한거지.
A1: 사람이 상상해서 이야기 한거지.
A2: 그런 생명을 끊었다는 거지.
A1: 구랭이가 나왔니 뭐네 그런 별 이야기가.
B2: 그러면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나요?
A2: 다 그렇티야 이놈 저놈 그 사람들이 실제로 화약으로 치고 다닌 놈은 우리도 그걸 다 알어.
A1: 아 여기 미륵탑 봐봐 그 일본 놈들이 그 세면 발라 놓았다고 하자녀 그 증거물이 국민학교 댕길 때만 해도 그것이 있었어 근디 지금 완전 철거 시켰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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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기찻길이 생기면서 뭐 변하 된 것은 없었는지요?
A1: 그것을 예를 들면 기찻길을 뚫으면 막 뚫자나 빠르고 편리하자나 근데 그것을 원체 반대한 것이여 그 숯고개 거기 어디께 우리 소가(家) 내들이 거기가 다 그 사람들 땅이었어 근디 그 산맥 ‘좌청룡 우백호’도 나오지만 그런 거시기를 주령을 끊어 놓아버리면 거시기 한다 근게 군은 안 된다 해가지고 그 사람들이 우리 이장이 그랬디야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와가지고 도장 찍어주지 말라고.
A2: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려 지금은 끊은 것이 다 메워지니까 살아난다고 안혀 옛날에는 지리 같은 것도 많이 보고 하자녀 인제 그런 이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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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마을에서 도깨비나 귀신같은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세요?
A1: 인제 그런 것은 하도 거시기 했싸니까 호기심이 많고 학생 때 그러니까는 거기를 직접 가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직접 쫓아가 날이 어둑한 날이 있자나 나무도 그 썩은 것이 발광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는 뭐 처녀귀신이다 해가지고 가보자고 거시기 했더니 안 간다고 그래도 다른데 가봤으니까 가보자고 그래서 가만히 서있는 소나무들이 달에 빛나서 그래서 그걸 보고 벌벌 떨고 무슨 놈의 처녀귀신이여 그게 내가 직접 가서 호기심에 그런데를 직접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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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대 명당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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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아까 아리랑 고개에서 귀신 나오고 했다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아 그것은 최근 이야기고.
A1: 삼봉리 사람들이 금마장을 댕기면 거기가 집이 한 가구도 없어 근데 바람이 불어서 대가리로 흙이 떨어졌나 모르는디 모래가 대가리에 떨어진게 그래서 귀신 이야기가 나온 거지 귀신 본 사람이 어디 있어 지금 누가 귀신을 봤디야.
A1: 근게 지금은 나처럼 흙을 찌끄리고 하는 것은 여기 가재가 많다고 했지 이장이 금방 그 가재를 횃불을 들고 가재를 가지고 그놈 저수지가서 그전에는 뱀장어도 올라왔어 참게가 올라왔고.
A2: 뱀장어도 잡고 참게도 잡고 했어...
A1: 그러면 횃불을 들고 올라가다가 불을 껐어 근데 누가 그렇게 모래를 찌끄려 근데 그게 겁이 나지 지금은 라이터 있고 그러지만 달밤에 얼마나 무서 그런데 ‘게오레기’라는 것이 있어 고양이과에 속하는 ‘게오레기’는 뭐 ‘불호랭’이라고도 하고 그때 말로 그러고 했었지.
A2: 고양이보다는 커.
A1: 근데 그것이 그게 막 여수가 사람 홀려 먹을 때 정신을 빼먹고 거시기 한다고 했짜나 그러듯이 그것이 사람을 정신을 빼 버린게 모래를 찌끄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러는디 ‘게오레기’가 거시기 한다고 모래 찌끄린다고.
B3: 어디서 모래를 찌끄린다고요?
A1: 그게 막 개울 있자나 그걸 막 파.
A2: 아 인자 바람에 날라 댕기다 사람에 맞는 거지 인자.
B3: 아 그러니까 ‘게오라기’가 땅을 파는데 그것이 바람에 날려서 사람들이 맞는다고요? 그래서 그것 보고 귀신이라고 했었다고요?
A1: 그렇지.
A2: 그것이 어떻게 발로 주머니에 흙을 쥐어서 찌끄리겄어 발로 막 파헤친게 날라 와서 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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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A1: 그 늦게까지 저기에가 상여집이 있었어 저 ‘상원사’ 올라가는디 거기는 무서워서 빨리 걸어가고 그랬지.
A2: 무서워서 귀신 난다고 막 도망가고 그랬지.
A1: 애장 같은 거 얘기 어린 얘기 단지에다 넣어 갔고 돌로 눌러놓고 그런 거 고름장은 사람을 산체로 쉽게 이야기하면 뭐여 굴 파가지고 먹을 것 며칠 넣어 놓고 뭐여 그런 거 있자녀.
A2: 고름장이여 고름장 옛날에 달리 없어 진게 아니여 거 역사에 나오는 보면 아 지 아부지가 지 할머니가 솔찬히 손자가 컸는디 할머니를 지게에다 짊어지고 설설 가는데 따라가 본게 지 할머니를 산에 다가 굴을 파놓고 거기 따가 할머니를 넣어 놓고 터덜터덜 온게 오다가 지 아버지가 지게를 내버린게 손자가 “지게를 짊어지고 가야겠소” 왜 그러냐 그런게 나도 아부지 거시기 하면 해야겠다고 그러니까 당장에 그래서 그 고려장이 없어졌디야.
B2: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셨나요?
A2: 정부에서 이제 못하게 한 것이죠 고려장을 나이 먹으면 고려장을 했어 고름장을 인제 굴을 파놓고 먹을 것을 가따줘 고놈 먹으면 죽는 거여 거기서.
A1: 지금 그 고려장 터가 산성 밑에 골자기에 있었어 고름장터가 있었어.
B3: 마을에요?
A2: 아니 산에 산에 다가 근데 몰라 지금 나이를 많이 잡숴갔고 지금이서 치매 들렸다고 하자나 지금은 인자 돈 받고 치료해주는 사람들 많자녀 옛날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정부에서 아무 말도 없고 그러니까 고름장을 시켜 그니까 ‘산고름장’이여.
A1: ‘산송장’이여.
A2: 산사람을 짊어다가 거기다가 파서 먹을 것을 넣어준다고 그놈 먹고 돌아가시라고.
A1: 그 먹으라고 넣어 놓았던 그릇이 지금이 뭐 고려장터에서 나온 뭐 고려자기가 뭐니 다 그 이야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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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A1: 이상제 49년생.
A2: 김종호 72세.
B2: 감사합니다 어르신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구술사진
황각마을
황각마을 유상곡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