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금마면 > 종평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금마면 > 종평마을
구술자 박영자(1948)여자
구술자 정수영(1947)남자
구술자 정종길(1933)남자
구술자 박근수(1943)남자
면담자 하정일,장윤준,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구술일시 2012-08-07
비고 면담장소 - 종평마을 모종
면담시간 - 오전 11시
내용 - 지명 유래 및 마을에 전해내려오는 민담이나 전설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종평(宗坪, 마릿들) : 종평은 마릿들(머릿들의 옛말)의 한문자 표기다. 머리들은 윗들의 뜻
.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마룻뜰 : 마루 종, 들 평, 해서 마룻뜰인데 그 유래는 뜰이 마지막 뜰이라고 해서 마룻뜰이라는 말과 뜰이 넓어서 마룻뜰이라고도 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예수빗재 : 여우고개의 사투리이다. 말 그대로 여우가 많이 나오는 무서운 고개였다고 한다. 또한 여우 이외에도 그 마을에 주거하던 면직원은 어렸을 적 호랑이도 봤다고도 하며 금마장에서 오는 사람들이 돈을 빼앗길 정도로 강도도 살았다고 한다.
- 가잿골 : 가재가 있어서 가잿골이엇다고 한다. 산지당(산제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거기에 웅덩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서 물을 먹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오금산 : 오금산은 옛날에 민둥산이었으며 금이 다섯개가 있어서 오금산이라고 한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서동이 마를 캐어 그것을 팔아서 살았기 때문에 마가 돈이 되므로 마를 금이라고 추측 하였다.
- 백일홍 : 마을에 백일홍 나무가 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신 군인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군인분께서 그 백일홍 나무가 너무 인상적 이여서 아직도 있냐고 전화를 하였다고 했다.
- 구룡마을의 산삼밭 서 마지기 : 그것이 산삼밭이냐 대밭이냐 하는 얘기로 주민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한데 그 이유는 좋은 대나무는 하나에 쌀 한가마니 값을 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 배 : 종평까지 배가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그게 언제까지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또한 이장님의 말에 의하면 이장님의 시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시기로 터질목에서 터지는 그 강이 여기까지 있어서 배가 들어왔다도 했다.
- 미륵사지의 기억1 : 소풍을 미륵산으로 가는데 당시 국민학교 소풍을 가는데 미륵사지 석탑 기둥에 귀를 대고 있으면 금봅짓기(금밥뚜껑)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 미륵사지의 기억2 : 비가 많이 오고 그럴 때는 자주 놀러가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먹고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약수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걸 물담골이라고 했었다고 한다.

4) 민속 :
- 기우제 : 리 단위로 기우제를 지내는데 미륵산 장군봉에 가서 하기도 했다고 한다.

5) 철도 :
- 철도 : 철도를 개설할 당시 금마의 양반들이 반대해서 현재 위치에 철도가 개설되었다고 한다.


구술채록

A1 정수영(66)-1947년
A2 박영자(65)-1948년
A3 정종길(80)-1933년
A4 박근수(70)-1943년

B1 하정일
B2 장윤준
B3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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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철도가 어떻게 익산으로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A1 : 철길이 일로 낸다 그랬는데 요사이로 이르케 낸다 했는데 무슨 옛날에 그 여기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씨나 소씨나 그 사람들이 여기 어떻게 익산을 지네가 지나가느냐-. 어? 옛날에 지네 거 저 열차를 표현 했뜨라고요. 일로 못 지나간다 해가지고 그쵸 익산으로 다 그 돌린 거에요 그게. 옛날 왜정시대 때 그랬대. 그 근거로는 저도 몰러요.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떠도는 소문이 옛날부터 여기 여그 여가 서민층은 일로 오라고 허고 긍게 그 양반층은 양반인지는 쉽게해서는 긍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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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종평마을이 예전엔 어땠습니까?

A1 : 겨울이져 겨울여 겨울서 내려오는 디고 여기서 이미 칠 칠백이십이번도로 지방도로 글로면 밑으로는 뜰이라고 하는거에여 인제 우로는 신용리 쪽으로는 구룡쪽으론 구룡마을이죠? 이제 구룡마을 독찡이라 했어요. 옛날에. 독이 많고 독을 쪄가지고? 뭐냐믄 그 확독같은거 그런거 만들어가지고? 팔았기 때문에 독징이라 했어요. 그 독징이라하고 구룡은- 신이름이죠 하이튼 신이름이고. 그 구룡이란 말은 많잖아요. 어디 뭐 구룡사든지 많은데 독징이라는 것은 드물꺼에요 거의. 이제 우리는 종팽이구요. 종팽인데 종평에는 원래는 그 사람이 두 세가구가 살았어요. 저희 아버님 때부터 인자 저희 할무니 때부터 할무니도 옛날엔 여기 안살고 전주 살으시다 왔으니까 오래됐쬬. 우리가 인자 한 칠십 팔십년도 백년도 됐 넘었겠죠. 제가 인제 육십육세니까. 저 뭐 그렇죠? 그래서 여가 세집 있었는데 여가 뭣 때문에 일케 번창했냐면 옛날에 27연대 그 있었잖아요? 잘 모르시죠? 공수부대 오기전에 27연대가 있었어요. 그분들이 이제 그 훈련병들이 오잖아요. 오면 면회가있었어요 그때는요. 4주지나면 면회가 있어가지고 면회 손님들이 엄청 왔어요 여기에. 그이까 잘 수가 없었잖아 어디가. 그니까 잘 수가 없으니까 그니까 일본말로 하꼬방이죠. 판자촌 비슥게 그냥 돌담 흙담집이. 지금 여기 지금 없네요 흙담이. 몇 년전까지 있었는데 흙담집으로 해서 여기다 방 한칸 방한칸이죠 딱 여덟자 여덟자니까 한칸이죠. 거기서 인자 그 손님들 모시고 인자 한사람 당 얼마씩 이렇게 해 해가지고 하고. 그래서 그러다보니까 점점 늘어나는 거죠 가옥이. 원래는 세집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자리는 있는데 한집짜리는 있고 우리집 두집짜리 밖에 없어 지금. 요즘 뭐하믄 정확히 허면 네집까지는 찾을 수 있는데 더 이상은 못 찾아요.

B2 : 하꼬방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A1 : 이 길가로요. 722번 도로 이게. 지방도로 그 722번 도로에서 쫙 지금 여기에도 있었고 이 밭자리도 있었고 여기도 있었고 여이 집도 이쪽 그 그거고 쫙가면 칠십 팔십? 그 가구 있었어요. 여가요. 상대이 큰 마을이죠. 굉장히 큰 마을이죠. 후문까지 전부다 양쪽으로 저쪽으론 않고 이쪽으론 있었고 지금 여기도 여기도 보다시피 여기 이집도 기예요. 여기서보시면 지금 여기 이집도. 여기가 후문이예요. 후문이 여깄었어요. 그래가지고 이게 그 간이후문. 그래서 일루 나와서 그래서 전부다 이집들이 옛날에 그 여기서 그 저기도 보고. 뭐냐믄 그 구멍가게. 그것도 보고 식당도 허고. 그래서 식당이 여기 많이 있었어요. 여기가. 이집도 이집도 저기 치르고. 원래 일루 일루있었고 우리 마을에 지금 형성된 곳이 그 아 있는가 모르겠네. 저도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땐데 그러니까 한 60년쯤 됐겠죠잉? 지금 내가 66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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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선생님 이 종평마을이 아랫뜰이라고 하던 걸 들었습니다.

A1 : 마릿뜰.

B2 : 마룻 마룻뜰!

A1 : 마룻뜰이에요! 마룻들. 왜그러냐면 마루종자 들평자해서 끝에 있는 마지막 끝 인자 들이라는 뜰이라는 거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B2 : 마지막 뜰말입니까?

A1 : 예 그렇지요. 마루종자 들평자니까 마지막이지요. 예. 그래서 여이가 마지막 뜰이에요 여기가. 그니까 저-기서 올라오믄 이게 저 은기리 은기동 저 원광-저 고등학교에서 쫙 이리 이어져있잖아요 뜰이. 뜰이 이어져있는데 여기서 마지막이에요. 이 저 뭐나면? 여기도 도로가 칠백이십이도로가 생기니까 끝나는 지점이지 여기가. 그래서 마릿뜰이에요. 옛날부터 마룻뜰이었어요. 그이까 보통 마릿뜰 마릿뜰이었어요. 이자 그 억양으로는 우리가 마루뜰 하면 잘 안나오자나요. 그이까 마릿뜰. 근데 따지고 보니까 마룻뜰이라구 그걸 잊어버릴까 무서워서 이정표를 하나 만들었죠. 에 일로가면 여기서 황등 전부다 금마로 여기 칠백이십이번도로 이거시 뭐냐믄? 저 기양리 탑시 탑리 있잖아여? 탑? 저기 미륵탑있는데 거이 동네. 마전. 각동. 신기. 동편. 뭐든 것이 그 이 통로로 됐어요 여기 상당히 큰 도로에요. 도로도. 그래가지고 지 금마시장도 보러 댕겼어요. 우리 어렸을때도.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하튼 어렸을 때 여기가 그 그렇게 상당히 컸었어요. 상점도 컸었고 금마면에서 젤로 큰 상점도 있었어. 옛날에. 서울상회라고. 저이 큰길에서 있었는데 상당히 큰 금마면에서 거의 컸어요. 만물상이라고. 그정도로 글케 그정도로 군인들이 와가지고 번창되는 마을이에요. 군인회와서 군인 그 면회와서 번창된 마을이지 원래 그 집성촌은 아니에요. 인제 금마 가면 금마는 집성촌이죠. 여산도 집성촌이고. 근데 여기 마을은 그- 군인 면회 그것 때문에 상당히 발전이 됐다 생각하면 그래가지고 그 뒤로 여그 농토가 전부다 해봤자 불과 밭 한 짓 짓는 것이 한 만평? 그 정도 안되고 논도 한 삼만평? 그니까 상당히 쩍은 규모가 적은 마을이죠. 그것도 각자 갖고 있는 마을이 아니라 저그 짓는게 아니라 남의 임차 해서 짓는 것. 그래요. 특별한 여기 저기 그런 건 없어요. 무슨 머 옛날부터 뭐 옷샘이 나오고 뭐 그런 건 없어요.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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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의 옛날 전설이나 풍문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A1 : 우리 옛날에 어르신들은 여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건 그것은 저희들이 확인을 매 확인을 못했는데 저희가 농사지으면서 그 가물 때 땅을 파보믄 땅을 한 길 정도 파보믄 가운데 파서 그 둠벙이라 하잖아요. 그쵸. 그 때 보면은 거기에는 토탄 같은거 소나무 짤라진거시 그 나왔었어요. 저도 그건 확인해요. 나오긴 했어요. 어렸을 때 그 어디 모굑할 때가 없어가지고 가서 둠벙 가서 모욕하고 고기 잡고 그러믄 인제 그 풍월 때 보면 꺼먼 질흙이 나왔었으. 그래서 여까지 배가 들왔다는? 그건? 그 그걸로 입증할 수가 있겠죠. 뭐. 춘포도 그랬잖아요? 춘포도. 포구니까.

B3 : 그게 어느 시대라고 생각하십니까?

A1 : 옛날이 그러니까 그때는 실 그때는 여그 저 신라시대나 됐겠지요. 여기 배가 들어올때는. 이자 그 내려온 아버님이나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그 얘기밖에 못 들었응게. 집접 보기는 못했어요. 저는요. 예 들어가서 인자 웅뎅이 같은데서 놀 때는 뻘흙이 나왔다는 것은 알아요. 지금 관정을 뚫을 때 한 열 두자 정도 들어가면 나와요 그 뻘이 나와요. 토탄같이.

B3 : 배가 들어와가지고 뭐 여기서 누가 뭐 어떻게 했다는 있었습니까?

A1 : 그런건 그런건 없었어. 그니까 아마 춘포식으로 이렇게 물이 찰랑찰랑 뭐 약간 쩔뚝 옛날에 들어왔겠죠. 뭐 저기 기억이 저희한테는 보지도 못허고 기록도 없으니까. 그니까 전설이게 인자 흘러 실 벌써 신라시대때부터 천년은 됐잖아요. 그니까 그때쯤은 됐으리라 예상하는거에요 조상들이. 그전에도 황등에도 토탄을 캐서 저 땔깜으로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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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있던 특이한 지명같은 건 있었습니까?

A3 : 옛날얘기 여거 그건 들었어. 여그가 예수빗재여. 여가 정문 앞에 여가. 그전에는 다 솔밭이여 여가. 부대도 전부다 솔밭이고 여 이 앞도 솔밭이였디야. 넘한테 들어서 알어 그런디 옛날에는 여그 막 강도도 있었고 그랬단 소리들.

A4 : 호랭이 호랭이도 있었고

A3 : 살인도 그랬단 소리를 들었어.

B3 : 호랑이도 있었답니까?

A4 : 여그 여 부대 생기기 전에 동꼬 사는 이자감(?)씨라고 면직원 면직원대녔어요. 그때는 자전거 타고 댕기 걸어댕겼을 때. 자전거 돈있는 새렘이야 자전거 타고 댕겼지만 몇 주간 신입생활헐 때 꼭 이리로 걸어댕겼대요 쩌기 저 앞으로 걸어댕겼는데 앞쪽에 출근하니까. 솔 소나무 밑에서 호랭이가 나타나더래요. 근데 그 양반이 면장까장 면장 이자까장이셨나 삼장까장이었나. 면장 이잰가 삼재까지 허다가 인자 그라마 돌아가셨지. 그 양반이 옛날엔 동팬에 모종이 쪼그만 모종이 있셨는데 거가 앉아서 가끔가다 앉아서 그런 말씀 해주셨지.

A3 : 호랭이 호랭이 봤다고?

A4 : 호랭이 봤다고 자기가 쪼그마한 면칙원 그 땐 면칙원이지. 이렇게 선선히 가는데 호랭이가 와가지고 그냥 가만히 서섰대요 그냥 가만히 서섰대니 호랭이가 쳐다보고 그냥 듀로 돌아가 가더래요.

A2 : 난 여기 여우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여기가 왜 강도가 나타났냐면 인제 여 금마장있짢아요. 그러면 저 동편이나 저기 저기 기양리쪽에서 인제 뭐 팔러가꼬 팔 금마장에다 팔고 가시다보면 돈이 있잖아. 그 때 돈을 잊어버렸어요. 그런 소리가 있고 하여튼 여기 고개가 무서웠대요. 여가 지금 저희집에서 여기서 볼 때 별로 안높지만 부대 정문에서 집 진 집은 이렇게 앞에는 멀쩡하지 뒤에가면요 낭떠러지기에요. 뒤에 뒤 이 베란다에 가서 보면 이렇게 낭떠러지기가 막 삼층 건물쯤. 지금 앞에가 삼층 건물 쯤 있는 그런 저 밑에는 낭떠러지기야. 그만큼 여기가 고개개 고개가 높았다고 해요. 그래가꼬.

A3 : 예술제 예술제 옛날부터 유명

A2 : 여우고개 여우고개라고 그런 얘기를.

A3 : 예술제라는게 진성이 많이 나타나고 뭐시 고개가 높았다. 고개가 높았따 해가지고 노인양반들이 고개를 글케.

B1 : 무슨 고개인지 다시 한번 얘기해주십시오.

A4 : 예수 예술제라고

A2 : 여우 여우를 갖다가.

A4 : 여우를 갖다가 예술제.

B1 : 예술제!

A2 : 여우를 갖다 여수라고 긍게 있잖아 여수.

A4 : 거기에 따가지고 인쟈 노인양반들이 그렇게 이름을 졌는가비여.

A2 : 여우고개를 갖다 여 여수 옛날 여우를 여수라 그랬잖아요.

A4 : 옛날에 이 고개가 이렇게 경사가 많이 심했어요.

A3 : 말하자믄 여우제에요 여우제.

A4 : 그래 여우제라고 여술제라고 예술제라고 인자 고개가 굉장히 경사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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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이 근방에 미륵탑이 가까운데 미륵산에 관해서 들으신 이야기는 있으십니까?

A1 : 그 미륵사지 박물관 있잖아요. 거기 입구 약간 문외쪽에 절이 있었어요. 그 절이 옛날부터 있었는데 저는 그 절에 갔었고 연못도 갔었고 그랬어요. 이 집을 거시기 이것을 보살님 신터여. 신터가 접주8칸이여 접주팔집. 접주 팔칸까지 보살님들 싣다가 탑이라서 좀 한 십메타 정도 떨어져가지고 접주 8칸이 여 다 기와집으로 되어있었어요. 그때 그래가지고 그 전에 그 전에 우리어려서도 그절에 보고 한칸 접지고도 이렇게 쫙하니있었어요. 우리가 왜 거기를 자주가는거니? 그때 느티나무 그 우리 우리 아름드리가 막 우리 어렸을 때 자주있었어요. 그라믄 육층 육층까지 올라가가지고 뒤에 요렇게 아침이나 올라가는데 뒤에보믄 요론 식으로 되가지고 뒤에 올라갔었거든 우리 어려서. 올라가가지고 육층까지 올라가가지고 거기서 놀구 인자 근데 밑에서 우에 보면 좁아요. 근데 우리가 육층 올라가서 보믄 경계 넓어요 아마 씨름도 할 정도로 넓어요. 넓고 판판해요 우에가. 그러다가 거기서 자다가 떨어져가지고 삼층에서 육충에서 삼층까정 떨어졌는디 안죽고 살은사람 있어요. 지금 거기여 그나저나 얘기는우리 같이 있었는디 뭣이 퍽 쓰러져가지고 ‘사람없다. 육일이 하나 없다.’ 하더니 육층에 떨어져가지고 삼층에 가 떨어져가지고. 그 사람이 저 할아버지고. 낮잠자다가 벼락되었는디 저 할아버지는 벼락칼에 맞아죽고 그사람은 벼락칼에 인자 그 창문밖에 넘어 저 낮어가지고 살았다 이거여. 근데 그 사람 몸뚱이가 전부다 인자 이렇게 있어 이것이 벼락맞아가지고. 가가 육층에서 삼층까지 떨어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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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미륵산과 관련된 추억은 있습니까?

A1 : 우리 어렸을 적에 소풍을 가요 금마 그 어렸을 적에 제가 그 사십오회거든 아니 사십팔회.

A2 : 사십칠회.

A1 : 사십칠회거든요? 근데 우리 그 어렸을 때 1학년때 그때는 국민학교라 그랬잖아요. 그 가믄 미륵사지 석탑에 십자로 사람 들어가게 되있었어요 십자로 그때 기둥에 귀를 대고 있으믄 그짓말이겠지 전부 다. 여기서 소리가 난다고 뭐 금봅짓기가 뭐 왔다 갔다 한다고 뭐 물이 흘러가지고 왔다갔다 한다고 그소리가.

B2 :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십시오.

A1 : 복집게 있잖아요 그죠 그 저기 있잖아요. 밥을 하면 덮는 그.

A2 : 밥뚜껑

A1 : 밥뚜껑을 봅짓개라 그래요. 그거를. 그거시 물에 띄워놔가지고 옆에 물이 지나가면 딸랑딸랑 소리난다 그래서 우리 계속 들어도 안나더라고요. 그게 바로 그 장엄사리 사리에서 그….

A2 : 사리에서 소리나요?

A1 : 그게 아닌가 지금 그게? 그냥 쉽게 해보는 거예요. 그냥 그래도 재밌잖아요. 그 우리가 거기 들어가서요. 그 들어가서 쳐다보고 막 귀에 들어보면 소리가 안나와 근데 소리 난다그러면 나는거같아요.

B2 : 또 있습니까?

A1 : 비가 비가 많이오고 그럴때는 우리도 자주 놀러가요. 그런데 뭐 여기 여름철에 많이 가잖아요. 거기가 시원하잖아요 속에 들어가면. 그 옛날에 그 개방해가지고…

A2 : 그렇게 그 네 개 구멍이 뚫어져 있데.

A1 : 제가 거기 또 올라가면 물담 구멍 있잖아요. 여그 여기 사람들은 갈데가 없으니 거기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천엽(?)을 했어요. 거기서 물담골에…

A2 : 지금 말하면 약수터.

A1 : 그래 물담골이라 했어요.

A2 : 약수터를 물담골이라 했어요.

A1 : 물담골. 그냥 그정도로 여기가 뭐 역사적인 그런게. 물탕고 인자 가서 피부병에 좋데 그러고서 거서 비룡든다해서 무속신앙들이 많이 있싯잖아여. 산제당 비슷허게. 지금은 없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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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근처엔 오금산도 있는데 오금산 얘기도 좀 해주십시오

A1 : 제가 어렸을 때는 오금산 전설은 별라 뭐 금이 다섯개 있어서 오금산이었다는 소리만 들었지 그 옛날에는 저희들이 그 성이 있었어요. 그기도.

B2 : 그러면 이름을 그냐 오금산성이라고 불렀습니까?

A1 : 예예. 그야 오금산성이라고 허고 오금산 그랬어 여기서. 오금산성 토성이 우리 옛날에는요. 저기가 완전히 민둥산이었어요. 민둥산. 나무 하나 없었어요.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한 초등학교 육헉년때 까지는요 암것두 나무 소나무 몇개 걍 빨둥산 빨둥산에 한.

A3 : 오금산은 말허자믄 으른들 얘깃소리가 여가 금이 다섯개가 묶여 금덩서리가. 다섯개가 있다고 해서 오금산이리야.

A2 : 아 서동이가 오금산에서 금캐가꼬 저기 뭐야.

A1 : 그런거에요. 오금산에선 뭐나면. 저기 뭐. 오금산에 그- 금도 있었지만은 오금산에 마가 있어요. 마 오금. 저 오금산에서 마를 캐가지고 그놈을 가지고 선화공주를 꼬시러 갔잖아여.

A2 : 아니 근데 그 마가 돈이 되니까 한땐 그 엄마가 그 저기 뭐야 연방죽. 그 서동 서동 어머니가 연방죽 옆에서 계셨잖아. 그래가꼬 그 마를 캐서 엄마를 봉양을 했대요. 봉양을 했는데 그니까 오금산에 마가 글케 많 많이 있었다고 그런 얘기가. 그래가지고 마를 가지고-

A1 : 실지는 오금산에 마 있는게 아니고 이짝 용화산 쪽에 많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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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가잿골은 무엇입니까?

A3 : 쪼그매한 꼬랭이여.

A1 : 가재가 마이 이써. 긍게 옛날에는 가재 많이 나면 가잿골 거 저 뭐 옻 나면 옻골 뭐 그랬어요. 옛날에는.

A4 : 그게 아니라 지금두 산지당 터 터가 지금.

A1 : 거기 선지당 없어 그 우에가 있어.

A4 : 거가 이 선지당이 이렇게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마-한 웅뎅이가 하나 있어. 옛날에는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거기 올라가가지고 거기 그 물을 먹고 나물 뜯어댕기면서 그 물을 먹고 그랬거든. 근디 지금은 숲이 어거져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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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리고 이 근방 기우제라는 게 있었어요.

B2 : 기우제를 지냈습니까?

A1 : 비 안올때 올라가서 미륵산도 저 미륵산 장군봉가서 이렇게 기우제도 허고.

A3 : 우제봉이여 우제봉.

A1 : 어. 우제봉 거기서도 허고 오금산 정상에서 솔까루같은거 놓고 불질러서 저 불도 지르고 꽹 그 기우제를 지냈어요. 이전에. 나 어렸을 때 그 기억이 나요 저도 갔었어요. 그러면 잘 아시는 분이 드물꺼여 지금은. 저는 직접갔으니까. 어렸을때.

B3 : 그것은 마을에서 주관했습니까?

A1 : 아녜요. 마을에서 주관한 게 아니라 우리는 기우제 지낸다믄 우리는 이동네 저동네서. 마을 단위가 아니구요. 이게 리단위일꺼에요. 용순리허믄 용순리 용순리에서 그 주관했을 꺼예요. 용순뿌락에서 주관을 했는데 우리는 없어부려 이제.

B1 : 리단위로 기우제를 지내신 겁니까?

A1 : 예. 비안올때 솔가지를 꺾어서 불 넣고 거서 이렇게 해서 저녁에 지낸 것은 좀 기억이 나요. 제가 한 초등학교 삼학년 쯤 되니까. 삼학년이면 열살 쫌 열두살이나 열살이나 됐겠죠 아홉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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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들으신 얘기는 뭐 없으십니까?

A2 : 그 저기 뭐야 그 여기 뜰이라는 것을 제가 또 왜 글케 저 그러냐면은 아버님이 저한테 그려셔요. 그 저기 뭐야 배가 이 저희 막 저희 해서 다리뚝으로 해서 우리 집쪽으로 해서 보면 저 아래까지 쭉 터졌잖아요. 터질목이라는 동네 또 아시죠? 팔봉. 터질목. 그 터질목이라는 데가 물이 그 그쪽으로 터져서 글로 나갔다고 해서 터질목인데 그래가꼬 그 강이여서 거서 무슨 뭐 배가 와가지고 저한테 그래요 그쯕에 배가 우리 마릿뜰 끝에까지 배가 들어왔었다고.

B2 : 아버지로부터 그게 언제쩍 얘기인지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A1 : 몇년 전 전에 돌아가셔가지고. 근데 그게 말씀은 안하시더라고.

A3 : 그양반도 들은 얘기지.

A2 : 들은얘기지!

A1 : 전설로 들은 얘기야. 그니까 내가 신라 초기잖아. 내가.

A2 : 근데 그게 여기가 이 땅을 파 보면요 땅에서 뻘이 나와요. 이 이이 저기 마릿뜰 이 땅 밑 밑을 파면은 뻘이 나와. 우리가 이제 저 지하수 파느라고 파다보면요 그 층층가다보면 나중에 가다보면 뻘같은게 나와가지고 안좋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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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까?

A2 : 지금 공식부대가 아니고 옛날에 이십칠연대였어요. 군대가. 그럴 때 여그 여가 장사 양쪽으로 장사하느라고 모여서 마을이 이루어 졌어요. 근데 제가 엊그저께 전화를 받았는데 저기 공수 저기뭐야 종평마을 이장님이시냐고 그러셔서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여기서 사십년 전에 사십년 전에 부대서 근무를 했대요. 부대서 근무를 했는데 지금 보니까 여기 백일홍 나무가 있어요. 지금 여기 우리 여기서 보면 저기 백일홍 나무. 근데 이분이 그 때 여기가 무슨 훈련소였대. 훈련소. 근데 그분이 근데 지금 그분이 정년퇴직을 했는데 이 백일홍을 못잊어가꼬 전화를 했다고 인제 금마면에다 전화를 해가꼬 훈련을 받으러 부대에서 일케 나가다보면 이 지금 저 백일홍이 한 지금 한 지금 한 그거는 오래됬는거같애. 저기 지금 한 제가 얼핏 얼핏듣기로 백년 됐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거든요. 저걸 어디서 캐다가 또 여기다 갔다 옮겨 심으셨나봐. 근데 그 그분이 훈련받으러 가면 이 백일홍 꽃이 그땐 여 담도 없었어요. 이 옛날에는. 여기 담은 인제 여 근래 쳤는데 담도 없고 그랬는데 그 꽃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고. 그래가꼬 저 꽃을 한번 보고싶어가꼬. 세상에 그 군인으로 제대하셔가꼬 한 육십이 넘으셨는데 저걸 보러 오시고 싶다고 그래요. 그래서 절 보고 그 백일홍 꽃이 잘 있냐고 그래. 그래서 내가 있긴 있는데 옛날같이 꽃을 많이 안피고 아직은 있다. 제가 인제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것을 다 기억하시는 분이 었더라구요. 훈련받으면서 지나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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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옆에 구룡마을엔 전설이 많다던데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A1 : 지금 거기가믄 무슨 교가 거기 뜬바우 밑에 거기 있어요. 교같은건 신경안써갖고. 그 구룡이 뜬바위도 있고 미륵사에 미륵산에는 저기 지금.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그런말이 아녀. 뭐 산삼밭이 서마지기가 있다는데 못찾았대요. 지금까지도.

A4 : 대밭땜이 그랬따야 대밭. 형제(?)씨네 대밭보고 인삼밭 서마지기가 있다.

A1 : 산삼밭! 긋또 산삼밭이!

A2 : 대밭이 대밭이 그만큼.

A1 : 대밭은 아 세마지기가 넘지.

A4 : 서로 형 형 성씨네가 대밭을 옛날엔 대나무 이런것 하나에 몇만원씩 했어.

A3 : 대나무 하나가 하나에 쌀 한가마니했어.

A1 : 대나무 이만한 것 요만한 것 있잖아요 요만한 것? 요만한것이 보리쌀 한대래요. 요만한 것이. 지금도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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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을 위해서 남기시고픈 얘기가 있으십니까?

A2 : 제가 이 그 저기 표지석을 세울때도 제가 아버님한테 들은 소리가 종평이라고 인제 따른 때 보면 종평마을만 했잖아요. 저기 이쪽 표지석은 한번 세우면 백년도 가고 이백년도 가잖아요. 그서 거기다 인제 마룻뜰이라고 이제 새기시는 분한테 써달라고 그래가꼬 세 세웠어요. 그러믄 인제 제 애들이 인제 나중에 왜 종평이면 종평이지 마룻뜰이 뭐냐고 인제 어디가서라도 물어볼 꺼 아니에요. 그러면 이제 자료같은게 나오면 마룻뜰이 왜 마룻뜰인가 하는 것을 알거같애서 저기 하나 넣었군요. 인제 제가 진짜 우리 마을에 저도 이제 예순 다섯이나 됐는데 이제 이장을 보고 있는데 저 밑에 이렇게 마을을 위해서 관심을 갖고 인제 우리 지금 어르신들이 여자래두 한번 해보라고 이래서 시켜주시니까 하는데 마을에 누구도 관심이 없어. 그냥 저 하는 일만. 먹고 사는 일만 관심이 있지 동네에 뭐 청소하라 그래도 뭐 어르신들이 나오지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안나와요. 이 이게 인자 점쩜 가면서 제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제가 인제 저도 인제 나이가 먹다 보니까 마을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데 제가 밤새도록 한번 생각해봤어. 누가 이렇게 마을을 이장을 봐가꼬 이렇게 열심히 해주실 분이 또 있을라나 생각을 한번 혀보는데 진짜 그것이 조금 안타까워. 그게 지금 일케 우리 동네 제일 열심히 하시는 분들 이제. 저걸 해주시는데 게 지금 내일 모래 이십사일날 이제 마을 풀배기도 하는데 인제 그때도 오는 사람만 오지 젊은 사람은 안와서.

구술사진

종평마을 표지석


좌 정종길, 우 박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