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금마면 > 신기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금마면 > 신기마을
구술자 김상용(1942)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유래
전설 민담
철도이야기
구술일시 2012-08-09
비고 면담장소 : 금마 신기마을 화산서원 앞
면담시간 : 2012년 8월 9일 11시
내용 : 지명유래 및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신기(新基, 오목새터)․신서원(新書院)․온탕거리
‘신정’이 ‘새터’이므로 그와 구분된 이름으로 우묵한 곳이라 하여 ‘오목새터’라고 했다. ‘신서원’은 노상리의 구서원(舊書院)과 구분한 명칭으로 김장생(金長生)을 모신 화산서원(華山書院)을 일컫는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개비석 : 마전부락 앞의 도로가에 개비석이 있다.
- 괭이무덤 : 미륵사 자리가 쥐혈인데 이 혈을 누르기 위해 고양이를 묻었다고 한다.
- 생금밭 : 구룡에 있는 대밭. 옛날에는 대나무가 무척 비쌌기 때문에 대나무를 금에 빗대어 생금밭이라 불렀다.

2) 전설 및 민담 :
- 주인을 구한 충견 : 주인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불이 났는데 그 불을 주인의 개가 자기 몸을 희생해 껐다고 한다. 개가 죽은 후에 주인은 개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주었는데 그 비석이 개비석이다.
- 철도 놓인 배경 : 본래는 금마를 거쳐 갈 철도길이 원의 반대로 노선이 바뀌어 함열로 놓여졌다고 한다.

구술채록

A : 김상용. 1942년.

B1 : 이동혁.
B2 : 박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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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여그 서원 유래고, 저그가 느티나무 저건 그 밑에서 없어지고, 저 밑이 지금 있어요. 지금 (×××) 살아있고. 그래갔고….

B1 : 근데 아까 말씀하셨던 옴팡새터가 어디 있어요?

A : 이 주변이 다 기어. 이, 저 여그가 55혼디 현재, 그전이는 일곱 가구 밖이 없었는디 연수원을 오는 바람에 가게랑 겁나게 늘어나 버렀어.

B1 : 그럼 지금 이 연수원 자리를 옴팡새터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A : 아니여. 저 밑이가 있었어. 길이 옛날 구길로 있어갔고, 이렇게 있어갔고 쪼그만허니 있었어, 몇 집. 그 옴팡허니 들어갔다서 옴팡새터였다가 인자 새로 나온 터전이라서 새 신자 터 기자 혀서 신기로 변혔거든, 명이.

B1 : 그러면은 이 마을이 생긴 지가 얼마 안 된 거 같네요?

A : 유래는 얼매 안 되지.

B1 : 언제 생긴 마을이죠?

A : 긍게 나도 그 연혁은 확실히 모르겄어. 내가 여그 출생지가 여그고, 내가 일흔한 살 먹었는디 여그서 났었거든. 이쪽으 초가집 있을 적으. 그래서 혔고 여그 서원은 이게 이 밑이 있다가 교욱연수원이 생기는 바람에 팔고 여그로, 이 땅 지금 화산서원 땅이거든, 요렇게 이렇게 산 전부다. 신일정 일단 칠보가. 그래서 거시기 혀갔고 다시 이렇게 전은 다 매입 들어가 버렸거든, 도교육청서. 아니 참, 음, 도교육청에서 사갔고.

B1 : 아까 옴팡새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은 오목새터라는 말은 혹시 못 들어보셨어요?

A : 오목새터는 없어. 옴팡거리라고 했었어. 그냥. 저 가게만, 그전이 주막처럼 가게만 몇 집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술 먹고 뭐더고 했지 별로, 그 그전이는 별로 없었어.

● ● ●

B1 : 여기 큰 도로 앞에 인제 마을이 있으니까 주막도 좀 있고 그랬어요?

A : 응. 큰 도로 그게, 그전이 그 도로 생긴지도 얼매 안 돼. 자잘허니 있었는디.

B1 : 그러면은 노상마을이랑 비슷하네요―. 그 노상마을도 인제 길 위에 있는 마을이라서 막 주막집도 많고 했잖아요.

A : 거그는 주막집이 많었지. 노상리는 본래 큰 마을이고. 컸었어, 여그 보담, 크기를. 거그는 그러고 구룡 노상은 컸었는디 중간에 여그 있었고. 여그는 본래는 여그도 저 구룡으로 요렇게 속해있었어. 그러다가 자연부락 되믄서 용순리 경계가 이렇게 저 산으로 혀서 경계거든? 용순리 땅으로 되믄서 일로 편입이 되았지. 그전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랑은 다 구룡 행세를 혔어. 여그 집 몇 가구 있을 적으는.

B1 : 어머님 아버님 세대는 그러면은 인제 이 마을까지 구룡이었나요?

A : 그렇지. 요―리는 구룡이었었지. 서원 요 앞에까지.

B1 : 전부 서원까지 해서―.

A : 어. 그렀는디 서원은 철폐혔었응게 서원이 없어졌었어. 그러다가 대원군 시절에 헐었대 여그를. 헐어갔고 거시기 허고 지금은 저 인자 중년에 와서나 익산시 회장님허고 노인회 회장님이랑 여그 유렴 측에서, 여그가 사핵서원이여. 전라북도에서 사핵서원이 두 간디 뿐이여. 정읍 칠본가 어디허고 여그허고. 그래갔고 여그 젤 모시던 양반은 우암 송시열허고 사계 김장생 씨 두 분 있었는디 소 씨 두분허고 황 씨 한분허고, 팔봉 황 씨들. 거그 할아버지를 우리도 모십시다 그래갔고는 황 씨에서는 일억 내놓고 소 씨에서 일억 내놓고, 두 간디서 일억씩 내노야 하는디 한집이는 안 내놓고 한집이는 내놓고 해갔고 그기는 저 내린다고 혔쌌는디 지금 현재까지는 안 내리고 그냥 있거든요.

B1 :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A : 아, 그건 내가 여그 관리허는 통으, 여그 질 적으도 거시기 허고 연수원도 나때매 왔다가 유재심 교육감이 이장님 허먼은 이름 있당교, 도교육청어서랑. 여그 근무 17년 6개월 혔는디 기능직으로 있다가 그만 정년혔는디 그리서 이 땅에 대해서 내가 38년인디 내가 다 댕김서 혼자 댕김서 다 받어서 땅 사고 뭐더는디 그래갔고 유재심 교육감이 그때 나 이장을 제가 75년도부터 혔거든요. 그리서 내가 서른다섯 먹음서 혀갔고 연수원 들어가먼서 내가 마흔세 살까지 허다가 연수원 들어가믄서 그만뒀어요. 못혔어요. 그맀다가 연수원 땅 사고 뭐더는디 지금 유재심 교육감 홍태표 전 교장일 때 여그 원 이장이 홍태표었었시요. 홍태표 교육감 여그 일 년 반만이 교육감 갔잖요.

B2 : 연수원 유래를 다― 내력을 다 아시네요―.

B2 : 그러면 이 연수원 자리 전에 이 서원이 있던 자리도 기억하세요?

A : 이쪽 여그 그때는 철폐되갔고.

B2 : 어떤 쪽이었나요? 서원이 있던 데는.

A : 이 자리 있었쇼. 이 자리.

B1 : 이 바로 앞에 자리요?

A : 예. 이렇게 있었쇼.

B2 : 이 주차장 자리도 서원 자리였나요?

A : 예.

B2 : 아 근데 쪼끔 뒤로 이동했네요.

A : 예. 땅을 전답에 대해서 다 연수원서 매입헌게 여그를 300미터짜리 이렇게 했고 요리 집이 있었는디 그 놈이 팔려버렸어.

B2 : 이 쪼끔이면 그 연수원을 쪼끔만 앞으로 하고 할 수 있었을텐데 왜….

A : 아니요. 그거는 전답을 헐은 것이 아니당게. 그때 철폐되갔고 유명무실허게, 여그 제사도 못 모셨쇼. 내가 이장허면서 새마을사업 혀갔고 이백만 원씩 갔다가 세멘트랑 지어서 이렇게 혀서 혔었고 그전이는 저 지금인게 정부에서 시청어서 이렇게 나오거든. 여그 답도 이초답(?)도 일본놈 사람들이 다 팔아먹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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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러면 이 뒤에 지명은 예전에 뭐라고 부르셨나요?

A : 미륵산. 여그가.

B2 : 미륵산 그니까 미륵산 앞에….

A : 아니, 이 지명은 몰라요. 지명은 없는디 이게 미륵산에 속혀겄고 화산서원 산이라는 것도 중년에 연수원 팔으면서 경계가 이렇게 허면 되는 줄 알았더니 경계가 어디로 되는가를 몰랐었거든?

B2 : 이 서원이 있던 자리에 있었을 때 그때 뭐 이 근처에 뭐 효자가 났다든지 옛날 뭐 그런 이야기도 혹시 들은 적 없으세요?

A : 그건 몰르고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B2 : 이장님 옛날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A : 옛날엔 그리갔고 이 동네가 거시기로는 빈촌이었었쇼. 그때는 27가구밖에 내가 이장 맡아갔고는 스물일곱 가구밖에 없었는디…, 저 빈촌이었었고 내가 새마을사업이나 뭣 이런 것 혀갔고 이백만 원씩 하사금 받아다가 부락 일을 허고 다 지금 안 해. 다 들어가 있어요, 지금. 그리서 일을 허는 건 내가 누구 못지 않게 부락일에 대해서는 다 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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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바로 미륵산 옆인데, 그러면은 개비석 이야기는 혹시 못 들어보셨어요?

A : 개비석은 저쪽으여. 개비석은 거시기 너머여. 미륵 노상 넘어서 저 마전 앞은가 거그가 있어.

B2 : 마전이라는 게 어딘가요?

A : 저쪽으 마전부락 있어.

B2 : 마전부락이 있는데 마전부락 앞에 개비석이 있다고요?

A : 거그, 거그 도로가에가 개비석이 있쇼.

B2 : 왜 개비석이라고 부르나요?

A : 아, 그것은 저 말 들었더니 그 개를 데리고 술을 잔뜩 먹고 봄에 가서 잠을 자는디 도로가에서 잠을 자는디 개가 그 목욕혀갔고 그 꽁지에 물 묻을 거 아뇨. 그놈으로 내둘러서 이 사람을 살렸디야.

B2 : 주인이 남자였어요, 여자였어요?

A : 남자였는디 그리갔고 개가 그놈이 그렇게 혀갔고 그 봄에는 불나면은 잔디밭 같은 거 불나면은 꼼짝 못허잖요. 그랬는디 개가 그 거그가 듬벙도 있었는디 이렇게 이렇게 내둘러갔고 물 빠졌다가 내둘러갔고 뺑뺑 둘러서 꺼버려서 그 사람이 살아갔고 나중에 개는 죽어갔고 그래서 묻어주고 돌을 하나 이만헌 놈….

B2 : 불을 끄다가 죽은 거야, 나중에 그냥 같이 살아서 하다가 늙어서 죽은 거예요?

A : 아녀. 불 끄다가 아마 그맀다는 것도 같으고. 긍게로.

B2 :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비석을 세워줬다고―.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A : 아 그전이 전설로 그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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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러면 또 혹시 그 괭이무덤이라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어요?

A : 저그는 왜 그러는고니 그쪽이 미륵사 절이 있었는디 그 절이 쥐혈이랴.

B2 : 쥐혈이라는 게 뭔가요?

A : 아니 이런 디 보믄은 뱀혈 있고 쥐혈 있고….

B2 : 아 쥐모양의 혈―.

A : 거그가 그래갔고 쥐가 곡식을 그 절로 물어 갔싼게 못 살게 생겼응게로 고양이를 길이다 묻어놨다고 그러더라고.

B2 : 고양이를 키우면 되는데 왜 묻어놨을까요?

A : 아니 이리 못 통과허게, 쥐가 못 통과허게 길을 옆으가. 그런 얘기도 들었고 그건 우리 부락이 아니고 거그가 서편 뒤가 있을 거여.

B2 : 서편 뒤라는 건, 산이 있어요? 그 산 이름은 뭐라고 하나요?

A : 몰라요.

B2 : 지금은 거기에 그 괭이무덤이라고 하는 데 그 옆에 뭐 어떤 건물이나 그런 게 있나요?

A : 있을거여, 있기는. 건물은 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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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혹시, 그 인제 익산시가 철도 생기면서부터 발전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면은 철도 생기기 전이랑 생긴 뒤랑 비교했을 때 뭔가 막 바뀐 점이 있나요? 여기 신기마을에서?

A : 아 바뀌기야 연수원 오먼서 그러고 철도에서는 거시기허고 본래 금마가 원이 익산 고을이 금마여. 원이 금마 원촌부락가먼 저 원이 살었다서 원촌부락이여.

B2 :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A : 아니 금마 다 그건 떠들고 있는디. 그리갔고 옛날에 일본놈들이 혀갈 적으 저 우리 아부지한티도 들었지만은 이렇게 일로 낼라고 혔었대. 역터주유소라고 왕궁 가믄 있어요. 그랬는디 그리 혀서 이렇게 낼라고 헌 게.

B1 : 역터주유소면 여산 쪽이죠?

A : 아녀. 저 왕궁. 왕궁서 여산 쪽으로 이렇게 가는 디여. 여 금마서 여산 쪽으로 가는 디. 가다 보면 역터주유소라고 있어. 그랬는디 그그가 왜 역터였는고니 그렇게 일본놈들이 낼라고 헌 게 원이 안 들어줬어. 상놈들 저리 돌아댕기라고. 그리서 그렇게 돌려냈다고 그러더라고.

B1 : 왜 반대했대요?

A : 그놈들은 왜 그런고니 이리 허면은 시끄럽고 그렇잖여. 옛날에는 기차가 댕기먼. 그러고 공출을 뺏어가잖여. 그렇게 돌려서 이렇게 함열로 이렇게 냈다고 그러더라고. 그리는 함열로 그리는 옛날에는 허황지판이 있었잖여.

B1 : 허황지판?

A : 그 들판이 많이 있지 동네가 별로 없어. 긍게로 그놈들은 공출 뺏어갈라고 긍게 그것 운행헐라고 그러는거셔, 일본놈들이. 철도 왜정시대 때 냈지 그게 그 한국사람, 조선시대는 없었잖여. 그른게 그렇게 된 것이더라고. 그리서 그렇게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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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미륵탑 있는 데가 예전에 어렸을 때는 거긴 그냥 돌 쌓아논 곳이었을 거 아녜요? 그때 이야기 좀 해주십쇼.

A : 거그 노상으 들어갔잖여.

B2 : 예전에는 여기 미륵사지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사람들이?

A : 미륵탑이라고 혔죠.

B2 : 그냥 미륵탑―. 미륵탑이 왜 세워졌다고 들으셨어요, 어렸을 때?

A : 그 그전이 지금와서다 뭐 선화공주 어찌고 찾는디 저 백제시대 때 세웠다고만 허지. 그른게 그런 얘기만 나도 들었지.

B2 : 어렸을 때는 그냥 백제시대 때 세운 탑이다― 그렇게만 들으셨고. 거기에서는, 탑에서 그냥 놀고 그러셨어요, 어리셨을 때?

A : 그렇지, 그전이는. 그 미륵탑 지금 헐린 놈. 그 밑이 가믄 돌문이 동서남북으로 이렇게 있었거든? 그리 댕기면 그 본게로 이렇게 철도로, 저 철뚝 있지? 철뚝 내로(?) 그걸로 이렇게 두 간딘가 내가 어려서 지나댕김서 보면은 그것이 받쳐져 있드라고.

B2 : 그때가 몇 살 때셨어요?

A : 아니 그때 우리는 어려서 이렇게 미륵탑 올라댕기고 막 허고 댕길 적으.

B2 : 그게 받쳐져 있었어요?

A : 아니. 받쳐진 긋이 아니라 이놈을 이렇게 보로 이렇게 걸러져 있더라고. 그러고 저쪽으는 일본 왜정시대 때 배락 맞아갔고 세멘트로 발러져 있고. 그 탑 우리는 없어도 그 탑 모형은 지금 많잖여.

B2 : 그 미륵탑은 그냥 백제시대 탑이라고 들으셨잖아요? 그럼 미륵산은 왜 미륵산이었다고 들으셨어요?

A : 그건 나도 미륵산이 있었고 저쪽으 미륵 사자암도 있고 저쪽으는 신곡사도 있잖여. 낭산 거그도 있고.

B2 : 미륵산에 관련된 이야기나 그런 거 못 들으셨어요? 옛날에 뭐 여기에 범이 나왔다든지 무슨 바위가 있다든지 그런 이야기.

A : 아 바위야 많여, 미륵산 올라가보면은. 황새바위도 있고 뜬바위도 있고 여그 가면 저 고인돌 뜬바위도 있잖여, 구룡 뒤에 가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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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 여기서 농사 많이 지셨잖아요? 농사가 인제 본업이셨죠, 전부다?

A : 아 지금도 농사가 본업이지.

B1 : 그러면은 두레 같은 것도 있고 명절날 뭐 하는 행사 같은 것도 있고 할 거 같은데.

A : 두레는 이 동네는 없었고 옛날에 쪼꼼 허다가 두레라는 건 여 구룡 저 유명허게 있었고 구룡이 금마면서 최고 컸던 부락이여.

B1 : 구룡이 여기서 가깝나요?

A : 이쪽 너머 바로 이 산 너머여. 이리 가면은 뭐 한 이삼백 매타밖에 안 되고. 직선으로 갈라먼은 그랬는디 저리 혀서 돌아서 가야지.

B1 : 어르신 어렸을 때도 그렇게 구룡 대밭이 컸어요?

A : 그렇지. 지금보담 더 컸어. 그전이는 대나무가 저 생금밭이라고 혔었어. 거그가 전라북도서는 이 대밭이 좋았어.

B2 : 대나무 숲하고 관련된 그런 이야기들 혹시 못 들으셨어요?

A : 생금밭이라고 혀갔고 지금은 저거 아무 필요 없고 나도 막 아무나 비어가라고 허는디 지금은 애물건지여. 그 생금밭이라고 그랬어. 일 년에 몇 십만 원씩 그전이도 쌀 몇 가마니씩 나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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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기도 구룡마을이었었다고요?

A : 아니 여그 일부 쪼꼼. 그러다가 인자는 용순리로 분리가 되아갔고는 이렇게 그쪽으는 신용리 저 산 저쪽으는 신용리 이쪽으는 용순리.

B2 : 그럼 구룡마을이 가장 컸고 이 일대가 다 구룡마을 쪽으로 많이 거래도 하고….

A : 그러고 저 노상리는 두레 그 나고 풍물도 거그는 그전이는 컸었거든.

B2 : 노상리는 풍물이 유명했고….

A : 아니, 구룡이 풍물 저 기세배 허면 여 옥동 노상 저 구룡 근디 구룡이 젤 큰 기가 있어. 거그는 지금도 그 농기 큰 놈 세워놓는.

B2 : 형님기구만, 거기가.

A : 칠개 마을이 거그 가서 두레 날라면은 기세배가 그래서 기새배여.

B1 : 아, 기를 이렇게 새배 인사했다―.

B1 : 옛날에 명절날에 뭘 했어요, 마을에서? 무슨 놀이를 하고.

A : 아, 풍물놀이 허는디 그쪽으로는 신파도 잘 허고 구룡은. 이쪽으는 부락이 별로 적어서 별로 않고 그맀지. 거그는 숫자가 많응게. 이 신파 같은 것 긍게 지금으로 말허먼 촌극 아녀. 촌극 같은 거 거그는 저 추석으 물어보나 명절 물어보고 꼭 혔어. 구룡마을서.

B2 : 거기 소리꾼도 있고 그랬어요, 옛날에?

A : 그렇지. 인간문화제 그 이인도 씨 먼여 죽은 양반 그 양반도 거그 출신 아녀. 이인도 선생.

B2 : 구룡마을 말고 미륵산 지역을 보자면은 가장 또 큰 마을이 예전에는 어디였어요?

A : 큰 마을은 이쪽으는 별라 없고 저 용순리가 괜찮었었어. 우리 부락이 최고 빈촌이었었어, 금마면에서.

구술사진

신기마을 구술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