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금마면 > 서계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금마면 > 서계마을
구술자 박규복(1952)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유적 터 및 기타지명
전설 및 민담
민속
기타
구술일시 2012-09-23
비고 면담장소 : 박규복 구술자 자택
면담시간 : 2012년 9월 23일 오후 2시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 등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서계(西溪)․하제(下堤)․도토성이 : ‘서계’는 옥룡천의 서쪽에 있으므로 일컫던 이름. ‘하제’는 ‘상제’와 상하로 구분된 이름. ‘도토성이’는 옛 문헌에 ‘猪土城’으로 (猪의 새김은 ‘돝’) 기록되었는데 향정 마을 뒷산에 지금도 토성의 자취가 있으니 ‘도토성(都土城)’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또 ‘도’는 우리 지명에 있어 터(基)라는 말로 많이 쓰였으니 ‘터의 토성’, 즉 행정지에 있는 토성이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뚜껑샘 :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 오금산 뚜껑샘은 오금산 동쪽 기슭의 미륵사로 가는 길가에 있는 옹달샘이다. 우물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우물터가 매우 좁아서 우물물을 마시려는 사람이 갓을 벗어 놓으면 우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뚜껑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줄지 않고 많은 물이 솟아나는 우물인데, 약효가 있어 이 물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여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옛 지명은 서편말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오금산 : 산에 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 혼불 이야기 : 도깨비 불을 본 이후로 소문이 소문을 불러와서는 급기야 혼불이 빠져나가는 걸 봤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다음날 실제로 초상이 났다고 한다.
- 구렁이 이야기 : 구렁이에게 밥을 주는 할머니께서 무병장수 하셨다.

구술채록

A1 : 박규복 (1952)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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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이 옛날엔 어땠습니까?

A1 ; 우리가 옛날에 여기서 보믄 원래가 이 동네가 서편말이라 했어요 서편말. 응 나도 어렸을 때 서편말이라 했어 서편말. 서편말이라고 했는데 그 것은 아마 옛날 이조때부터 인자 그 그게 원 동네 이름이것지. 그러다가 서계부락으로 바뀐 것은 아마 내가 어떤 어른한테 물어봤지. 그랬더니 아마 뭐라 허시냐믄 아마 일정 때 서계로 바뀌었자 않느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인제 내가 나이가 예순 두살인데 내가 이장은 인자 본지는 얼마 안됐는데 내가 나고 자랐고 했기 때문에 어린 기억을 더듬어 보면은 인자 쉽게 말해거 60년대 기억을 더듬어 보면은 인자 다리에서 아까 그 그쪽으로 해서 옥룡천으로 해서 그 동네가 지금 서계 부락인데 60년대 쯤만 하드라도 여기엔 가게가 지금 하나도 없었지. 그 당시에는 솜틀간도 있었어요. 솜 튼거 솜틀간도. 솜틀간이라고 아마 기억하실라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이불 저기 겨울에 한 번 덮고 자다가 뭉쳐지잖아요. 새로 사는 거여. 새로 사는 것인디 그것이 그 이맘때쯤이면 거가 막 문전성시가 되여. 이 한 겨울 덥고 잘라면은. 거기서 그런 가게도 있었지 그 앞엔 양복점도 있었지. 그 다음에 연탄가게 있지 구멍가게 있고 선술집도 있고 한 근 열가구 정도가 상가가 형성이 됐었어요. 60년대는. 그런디 지금은 상가가 하나도 없어 상가가. 우리 동네만 허드라도 공식적 사업자등록증 내고 사업하는 데는 딱 두 군데여 식당. 그 외에는 가게가 없어. 인자 지리적 여건이 생활이 변하다 보니까 자꾸 시내로 나가가지고 대형마트가 들어오니까 농촌이 그마만큼 저 그러더라고. 농장이 쉽게 말해서 사라지는거여. 하다못해 선술집같은 데서 만나서 얘기도 해감서 김치에다가 꼬추에다가 된장 먹으면서 얘기를 해야 정담이 왔다 갔다 하는데 지금은 다방도 없는 편이잖아요 인자. 그런 것이 좀 아쉽기도 하고. 옛날에는 여그를 옥룡천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것이 있었시요. 이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그 나무다리였었어 나무. 옛날에 진짜 완전히. 그래도 국도가 저거잖아요. 그래도 나무 다리로 했는데 잉어랑 저거랑 물고기를 잡는다 했었어요 이 바로 거기서. 자라도 나오고 거 한 1메타 정도 됐어요. 그래가지고 고기가 많앴었어요. 많앴는데 내가 그 어렸을 적에 물놀이 허면서 그 때는 놀만한 거의 놀 거리가 없어요 어려울 때니까. 인제 이런 데 가 수영 허고 옷 다 벗고 어렸을 때니까. 막 거기서 놀고 저 오금산이라고 하면은 오금산에 가보면 이 하천은 그건 인자 산천이라고 하는가 물이 내리면 모래가 흘러 나오면서 산이 깎여져버리잖아요. 산이 깍이잖아 그러면 내가 볼 땐 한 4,5미터 정도 낭떨어지가 생기는 거야 산에 뒷 산에. 그럼 놀 거리가 없응게 우리가 거른데 가가꼬 거기서 뛰어내려요. 위험헌 장난이지 담력 시험이지. 그러면 밑에는 모래니까 상관이 없어. 상관이 없는 데 물놀이 허다가 한 번은 우리 7남매요. 7남매인데 차남인데 동생 여동생 하나 그 다음에 막내 남동생을 그담 나하고 걔네들이 너덧살 씩 됐을꺼여. 물놀이 허고 실컷 놀고 그러는디 그 여동생이 막 소리를 질러요. 거기 왜그냐고 그랬더니 동생 하나가 없어진거여. 긍게 풀허고 있응게 미끄러진거여. 진흙같은 걸로 쑥 들어간거여. 그래서 찾아봉게로 그저 사람이 한 번 물에 빠지면 세번 뜬다 그래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뜨데요. 그래서 안아가꼬 나와가꼬 인자 그 동생한테서 인자 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미안한 감정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지금도. 그리고 오금산 같은 경우는 금이 다섯 개 있다고 묵혀있는 산이다. 그래서 오금산이라고 하는거여요. 오금산. 오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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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봉우리에 이름은 있습니까?

A1 : 봉우리 그 옛날에 돌아다니면서 보기는 봤는데 이름은 거그가 서동 생가가 그 쪽으 있잖아요. 그래가지고 거기를 사방공사 나무가 없어가지고 그래가꼬 주민들이 사방공사 허고 밀가루 타오고 그랬었죠. 그 다음에는 인자 그런 얘기는 없는 것 같애요 오금산 그렇게만 알고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저쪽서 아까 시골닭집에서 오셨다 그랬지. 거기께가 전부 하천이었어요. 에 긍게 그런데서 옥룡강이라고 그랬는가봐. 그러면은 거기서 우리가 지금은 없어졌는데 옛날에는 오십년대 육십년대 금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문화행사가 기세배 놀이가 있어 기세배. 기세배를 거기서 세배를 받는 장소가 우리 동네였어요. 광장이 거기 있었으니까. 그러면은 거기가 뭐냐면은 그 상대 부락이 제일 큰 형이었어요. 그래가고 상대마을이 기세배 하면은 제일 큰 깃발이여 그러면 그 기가 세배를 밧는거여. 그러면 언제 하느냐면 팔월 아니 정월 열 나흣날 거가 오는거여. 다 기들이. 그러면은 하룻 밤 새고 정월 보름날 상대 부락에 기 큰 형님한테 기가 세배하는 것 그 장소가 거기 있었어.

B2 : 그 기가 무겁지 않습니까?

A1 : 굉장히 무겁지. 대나무를 막 크게 해가꼬 깃발도. 들 수 있는 사람도 없지 지금은. 그래서 기세배가 지금 보니까 내가 보니까 면민의 날 10월 3일날 하는데 기세배를 동원헐려고 했는데 기세배가 아까 말씀하신대로 모든 그 문화재의 가치 그런 것이 발굴이 안되고 사장되고 쉽게 말해서 쇠퇴해가는거여. 긍게 여기 사람들 금마 사람들 기세배를 전통적으로 했는디 기세배가 익산으로 갔다 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가지고 우리가 면민의 날 그걸 하는데 그걸 못허고 다른 사물놀이로 교체를 할 정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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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엔 도토성이라는 것도 있던데 도토성이 무슨 의미입니까?

A1 : 토성이 흔적이 있어 흔적이. 그것은 상제마을인데 우리 동네 웃동네. 그건 있어 흔적이. 긍게로 문제는 그것이 아주 문화적인 가치가 굉장히 깊은데 여기 있는 일반 주민들은 거기에 관심이 없어. 또 전문적인 그러니까 모르니까 몰라도 아예 관심이 없어. 근데 그 부분도 내가 볼 때는 금방 말씀하시는 그 석사 과정 있는 분들이 거그다가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드라고.

B1 : 저희가 그런 애로사항에 대한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도토성에 관련된 이야길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A1 : 도토성 부분은 내가 그 얘기 들은 것이 별로 없어요. 그 흔적도 저 그렁게. 다만 도토성을 보존을 해야 한다. 복원을 해야 한다 하는 얘기는 지금 고도육성. 금마가 그것이 허기 때문에 부합되기 시작하구만. 도토성 반경 500미터 이내에. 근데 뭐 이런것도 나오고 근데 이것도 참고로 한 번 알으셔야 돼요. 밀접헌 그 연관성이 있을 거에요. 보존사업도 고도허고도. 근데 금마 지역에서 지금 여가 경주 문화 뭐 경주허고 부여허고 저쪽 네 군대인가 하잖아요 고도 육성도시로. 지역 주민들이 이거 가지고 지금 반말이 많아요 지금.

B1 : 예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 듣고 얘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A1 : 예 고마운 말씀인데 한 가지 얘기를 하자면 10년에 걸쳐서 3600억원을 아마 투자 한다고 언론에도 보도가 됐고 또 실무자들한테도 나도 얘기를 들었어요. 공청회 이런데서. 그런데 그 내용을 봤더니 여기는 별 그거지만 나중에라도 참고 하시라고 말씀 드리는 거에요. 그 내용 중에 한 가지 잘못된 것이 저 쪽 금마 터미널 그 뒤에다 호텔 짓고 펜션을 짓는다 하시더라고. 그걸 자그만치 민자로 1400억원을 투자 한단 얘기에요 민자로. 그러면 내가 볼 땐 민자 할 것 같으면 수지를 감안 해야될 것 아니여. 근데 1400억원을 투자해가지고 과연 그것이 나오냐 그럼 안된다 이거여 도저히. 그럼 지원을 한다던데 국가에서 한다 뭐 지방비에서 어떻게 해준다는 건가는 몰라도 그래도 그것을 이반을 하는 사람들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 아니면 예산을 다루는 사람들끼리 이해관계가 얽혀가지고 금마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준다고 그러면 금마 지역에 쉽게 시의원이 3명인 거 같으면 나머지 시의원들은 뭣허러 저기다 투자할려 하느냐 별 별 얘기가 다 나와요. 나오는데 주민이 여기에 참여를 할 수 있는 그거를 기회가 별로 없었어. 7월 11날인가 12날인가 공표 저 그걸 뭐라 그려 조례. 잉? 조례 확정 발표 해서 하는데 열람 허고 이의신청 기간을 하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 3일 전에 알았어요. 3일 전에. 그래서 시끄러웠었어요. 면사무소에서 이장단에서 회의나오고 번영회에서도 나오고. 근데 내가 번영회에서 사무국장을 보고 있어요. 사무국장을 보는디 주민들이 뭐라 그러냐면은 고도 육성을 허면 좋지만은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와 닿게 보상이 됐든 지원이 됐든 나와야 된다. 그러니까 번영회에서 주관을 해가지고 일종의 그걸 해 줘라 그런디 또 한 쪽에서는 찬성을 허고 반대를 허고 그래서 지금 현재 이러고 있는데 내가 오늘 또 어뜨케 하다가 보니까 지난 번에 에 긍게 작년 12월달이죠잉. 작년 12월 달에 금년 예산으로 5억 5천만원을 옥룡천 개발하는 데서 예산이 썼다고 나와 있드라고요. 조선일본에 일간지에. 그러면은 금년에는 다 가고 있는데 5억 5천만원이 들어갔는가는 모르겠어요. 물론 설계비가 들어갔는가 용역비가 들어갔는가 그런 돈이 만일 지금까지 덮여나온 상태라면 그 돈이 어디로 새버린다던가 혈세지 그래서는 안되지. 지금 내가 금년 하반기서부터 이 근방에서 한다고 원래는 여가 이사 간다고 해서 이전지여. 그래가지고 한옥지 한옥집으로 이전을 시킨다 그러는데 답이 안나오는 거여 지금. 믿들 안혀 주민들이 행정기관 얘기를. 긍게 그럴라믄 이런 분들이 와가지고 민간단체서 와가지고 투명하게 얘기 해줘버리고 해줘버리면 차라면 거 따 얘기혀. 원래 옥룡천은 가을 하반기서부터 한다 그러면 장마 지나고 나야지 언제 헐라 하는가 모르겠다고 인자 어떻게 되는가 모르겠다고 속으로 걱정했는디 인자 얼마 안남았잖어 끝났잖아요. 그래서 그걸 XX하기 위해서 조선일보에서.

B1 : 그럼 칼럼용으로 한번 조사하고 해보겠습니다.

A1 : 근디 그것을 조사 우리 같은 경우는 쉽게 말해서 제가 시청에 한 번 가봤어. 그 옥룡천에 대해서. 가봤더니 그 뭐 계획은 여러가지로 지금 진행 중에 있고 주민을 위해서 열심히 중앙 부처허고 충돌을 허다 싶이 한다고 참 말만 듣고 왔는디 지금. 참고로 알으셔요. 내가 여그 여 젊은 사람들허고도 얘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불안한거에요. 자 이주를 허라고 하면은 어디로 가야하냐. 그러믄 재산이 재력이 있는 사람은 이사도 갈 수가 있지요. 자 그러면은 여그 하천부지 걸린 땅이 저그가 지금으로는 땅값이 안나오것죠잉. 그럼 건물값이 우리집이 이게 지금 40여년 전 젤로 잘 지은 집이라고 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근데 그 근방 집값이 안나와요. 우리 집도 얼마 안나와요. 40년 넘어서면 XX연수가 넘어서가지고. 그러면 이주비가 뭐 얼마 주고 한다는데 그 놈 가꼬는 어딜 가들 못하는거 아니냐. 긍게 궁금한거여. 이게 투명하게 얘길 해주고 어떻게 해줘야되는데. 그래서 저는 내년 3월 달에 와서 내용을 봤으면 좋겠드라구요.

B1 : 예 그러면 제가 다시 한번 알아봐야 겠습니다.

A1 : 아마 소재거리가 있을 거에요. 옥룡천이 부분은. 시에서도 내가 담당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그 분은 골치아퍼 죽겄다고 그러고 옥룡천을 홍보하는 사람은 몇 십억이 확보 되어있다고 그러고 투명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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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뭐 민담은 없습니까?

A1 : 옛날에는 이 화장실이 재래식이었었어요. 재래식. 재래식이라가꼬 쉽게 얘기해서 가마니 이렇게 천막 치듯이 그렇잖아요. 들어가서 보면 밤에 에 우리 옆집 그 분이 그랬는데 막 튀어 나오는거에요 귀신 봤다고. 긍게 그 당시에 내가 보기에는 못 먹고 허약해지고 좀 빈약하니까 담대하지를 못허고 그 당시에는 그냥 귀신 나온다고. 공동묘지 옆에 묫동 이런데도 못 지나갔잖아요 옛날에는. 그래가꼬 지금 저 쪽 어디여 인도 이일우 선생 거가 공동묘지 자리잖아요. 공동묘지. 거기 공동묘지를 가보면 옛날에는 그 상여를 거기다가 보관허는 데가 있어요. 상여를. 상여를 공동으로. 그러면은 거그를 못들어가니까 젊은 사람들 인자 우리 담력시험한다. 거 까지 가보자 누가 들어갔다 나오냐. 그럼 암도 못 들어가지.

B2 : 거기가 어디라고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A1 : 저기 인도 이일우 선생. 저가 인자 싹 없어져버렸어. 저기 인도 이일우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그 양반이 뭐라 헐까 인간 문화재. 예. 옛날에 산이여. 지금은 삼성 물류 센타로 저기 이어놔버렸지. 약간 고개가 약간 올라배기잖어. 약간 올라배긴디 옛날로 상상을 해보면 굉장히 으시시하게 생겼것지 지금은 뭐 XX이 해놨응게. 그런 상여집이 인자 싹 없어져버리고 공동묘지가 파묘되고 해버리니까.

B2 : 우리 마을이 도깨비 얘기는 없었습니까?

A1 : 응 도깨비 같은 얘기는 이 오금산에서 누구 어떤 사람이 여자가 그 집이 이쁜 집인데 집 이쁜 집 하나 있었어요. 근디 가다가 도깨비불이 휘청휘청 놀러다니더니야. 그래가꼬 한 동안은 동네 사람들이 못나갔었어요. 이 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가들 못했어. 그러다보니 소문이 소문을 부르다 봉게 저쪽에서도 봤다 그러고 저그에서도 봤다 그러고. 어떤 사람들은 혼불이 나갔다 그러면 나왔다 얘기혀 그러면 이상하게 진짜 그걸 봐서 그런가 몰라도 거가 초상이 나는 거여 그 집이. 그 얘기는 몇 번 들었어. 아 어디 집이 봉게로 캄캄항게 불이 하나가 널러가더라 이거여. 긍게 뭔가 하고 봤는디 낮에 봉게 초상나니까 그게 혼불이라 이거여. 긍게 혼불을 봤단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혼불이라고 해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거.

B2 : 초가집이 많으면 구렁이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A1 : 구렁이 얘기는 저쪽 어디 구렁이 내가 구렁이 밥을 준다는 얘기는 들었어. 할머니 할머니가 구렁이를 꼭 밥을 준다고. 구렁이 그것은 집에 그 집큼이라 해가꼬 보신이라 해가꼬. 응 인제 집을 보호 지켜주는 보호신이라는 그것의 일종의 귀신 비스듬허게 이런 식으로 응? 우상 비슷허게 해가꼬. 근데 실질적으로 밥을 주었는가는 모르지만 밥 준다는 얘기는 몇 번 들었어요. 그래도 그런 양반이 오래사시고 또 집안이 잘된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 근데 잘됬는가 어쨌는가는 하나의 그런 것이지만은.

B2 : 또 다른 얘기가 있습니까?

A1 : 이 마을에 또 미신같은 내려오는 얘기는 없어 이쪽은 원래가.

A1 : 내가 인제 그 얘기를 해야 하네. 내가 원래 이 집을 짓기 전에 아까 솜틀간 얘기했잖여 솜틀간. 그럼 손을 터가지고 한 쪽에다가 놔 둬. 놔 두면 한가 할 때 이불 기울라고. 와서 봉게 캄캄혀 어머니 안계시고 그래가꼬 솜 틀은 것이 부엌이 떠 있거든. 한쪽에 놔 뒀거든. 그래가꼬 불 킨다는 것이 그 솜에 붙어버렸어. 금방 붙어버리지. 그래가고 솜 그 전체를 여기 그 문이 여닫이 문으로 돼 있어. 그놈 열고 그걸 냇가로 던져버렸어. 그래가지고 불을 껐지. 막았지. 그 당시에는 집 없는 사람도 많잖아. 셋방살이 하는 사람. 지금은 서고면 서고 뭐 이렇게 정리가 됐지만 그 때는 헛간 비슷한 것이 다 잡다한거 뭉쳐놓고 그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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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구술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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