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금마면 > 누동마을2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금마면 > 누동마을2
구술자 김영헌(1932)남자
구술자 이종호(1943)남자
면담자 하정일,장윤주,이순영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철도
구술일시 2012-08-08
비고 면담장소 : 루동마을 근처 컨테이너 건물
면담시간 : 오후 4시
내용 : 지명 유래 및 마을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누동(樓洞)․한정리(寒井里) : 누동에는 전에 청심루(淸心樓)가 있었고, 누각 훈지당(塤篪堂)도 누동에 있었다.
‘한정’은 익산 구지(舊誌)에 “한정은 군 아사(衙舍)의 동편 백보(百步)에 있는데 그 샘물이 겨울에는 다숩고 여름에는 차며 수토(水土)로 생긴 병이 잘 낫는다” 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누동 : 누동은 옛날엔 한정리라고 했다. 그리고 한정리는 한샘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가구수가 많아져 구아 누동 금동 이 셋으로 나눠졌다고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한샘 : 차가운 샘이 있었는데 물이 그렇게 좋아서 빨래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땀띠나면 그 물로 샤워했다고도 한다.
- 사정터 : 사형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 금마저수지 밑 도로 : 도로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계셨지만 별 다른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 궁평과 창평 : 궁과 창고가 있어서 궁평 창고라고 왕궁의 지명유래를 말하였다.
- 오금산 : 금이 다섯개가 들어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3) 전설 및 민담 :
- 오금산 : 금이 다섯개가 들어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 배 : 솜리까지 배가 들어왔다. 그런데 금마 사정아래까지도 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5) 철도 :
- 일번국도와 철도 : 일번국도는 이 앞에 있지만, 철도는 양반들이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김영헌(81)
A2 이종호(68)

B1 하정일
B2 장윤준
B3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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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누동마을은 옛날엔 어땠습니까?

A2 : 그 크게는 다 인자 알들 못허지만 제가 인자 여기서 나가꼬 금년에 내가 팔씁인데 여기서 나서 여기서 자라서 여기서 근 일평생을 살었기 때문에 쪼끔 인자 마 지나간 일 같은 것은 알고 인자 있지만은 그래도 인자 나이가 먹어가꼬 기억력이 다 사라지고 인자 인제 이짝으로 여기가서 인자 누동 금동 또 저짝 구아 삼개마을이 인제 옛날에는 누동이라고 이제 합해서 근디 이 누동이라는 말은 아까도 얘기 했지만은 우리 이장님하고 얘길 허고 있었지만은 일찍이 누동은 해방 후에 누동이라고 했지 해방 전에 일정시대에? 일정시대에는 한정리라고 그랬으. 찰한짜. 시암정짜. 한정뿌락. 그래가꼬 저기 지금 한샘이라고 있는디? 한샘. 시얌이 있지.

B3 : 지금도 그 샘이 있습니까?

A1 : 예예 지금도 샘이 있어. 그래가꼬 그 샘에 한샘에 즈 거 가보면은 알것지만은 한정 한천이라고 일케 .

A2 : 찰 한짜 새암천짜 해서 한천.

A1 : 한천이라고 써있어. 거기서 물이 밑에서 지하수를 엄청나게 나와가꼬 나와서 그아 그아 그 옆으로 똘이 조금 있어가지고 사정아래라고해서 우리가 지금 전주가는 길 그 근방 일대를 갖다가 농사를 지었다고 그 물로.

B3 : 물이 그렇게 많이 나왔습니까?

A1 : 많이 나왔어요. 예. 엄청 나왔어요. 그래서 거기서 빨래터로 만드는 빨래도 거거다. 모욕도 거거다. 또 그 물이 나오는 걸로 농사를. 지금도 우리 나오기는 나오는디 그전거처럼 많이 나오덜 않지 왜그니 인자 각 지역마다 그 관정을 파가지고 나는 그 지하수를 갖다가 빨어뻐리니까 그쪽물이 얼마 안나오지 지금. 지금도 그 물이 엄청나게 차고 그래갖고서 나는 그 그 지금 시장터 앞에 그가가 앞에 관아터거든? 그래가꼬 관아터라는 것은 말하지만 옛날에 원님이 살던 그 군청 소재지지? 말하지만은. 그래서 여가 금마가 거시기 익산이라 그래야지? 금마가 아니여. 익산이 익산이 원 거시기지. 익산 시라는 것도 여가 중심지여. 그래가꼬 거가 익산시 소재지가 거기가서 있었지. 그래가꼬 그 우리가 해방 내가 해방되던 해가. 이 또 초등학교 오학년때 해방이 되갔는데 그때만해도 그 앞에 가서 그 시장터 있는데 가서 그 그 관아 그 정문이 거기가서 그게 그게 있었어. 정문이. 그 정문이? 어떤식으로 돼있는거니? 그 절에 가면 거다 간청허고 해서 그 아랑디리 나무를 갖다 도로로다가 싸놓고 그렇게 했잖앴어요? 그런식으로? 거기다가 정문이 있었는디. 주춧돌도 이게 똥그람하게 해가꼬싸는 아람을 우리 우리 아람으로 한 한아름도 더되는 그런 주춧돌로 키도 높이도 우리 한길되게 주춧돌이 있어가지고 그 우에다가 그 그 기둥이 인자 이렇게 나뭇기둥이 세워져가꼬서나는 절 절이가서 보다 진것처럼 그런 거시기가 있었어요. 그래가꼬 해방 후에 그걸 부시고 그 앞에 가서 몇백년된 햇수로는 모르것는디 암튼 큰 맻아람 되는 느티나무가 몇주가 있었어요. 그래가꼬 원래 여그 지역이 인자 여기는 그렇게 한정뿌락이라고 그냥 부락은 그렇게 돼있있어도 그전에는 인자 어떻게 됐는가는 확실히 모르지먼은 인자 그 지금 전주가는 길. 고건방 그게말여 사정 사정아래라 그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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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사정이 무슨 뜻입니까?

A1 : 사정 사정아래. 죽을사짜 마당장짜 해서.

A2 : 죽을사짜허고 마당당짜 마당장짜.

A1 : 그게 거기서 말하지만은 옛날에 사람 죄짓고하믄 죽이잖여? 칼갖고서는 뭘 그려. 그래가꼬 거가 사정 사정터여. 에 그래가꼬 그 미티 논을 갖다가 이름을 거기 갖다가 우리가 부르기를 기냥 논이 어디에가 있냐 사정아래 있다 그러거든. 그래서 사정아래여 그래서 사정 사정터가 그 근방가 있기 때문에.

B3 : 사정터가 사람을 죽이는 곳이었다는 것은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A1 : 그전 전설에 의해서 인자 나도 어려서 들은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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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누동이었습니까?

A1 : 긍게 인자 우리가 알기로는 인자 그 그것만 어뜨케 실지로 인자 내가 체험을 헌것인게 한저 한정리라는 것은 한정리뿌락이라고 하는 것은 한정리. 여가 동고도리 한정리 그렇게 됐거든 그런디 인자 이렇게 집단으로 살다보니께 호촌수가 늘고 인구수가 늘다 보니까 구아 누동 금동 세 마을로 나눠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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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한샘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A2 : 그리고 그 한샘은 한샘은 그 유래는 내가 들은 저긴디 한샘 물이 원천 좋고 원천 차니까 거기서 섣달 그믐날 애들 모굑을 시기며는 피부병이 안 생긴다고 해가지고.

A1 : 땀띠가 다.

A2 : 예 거 모욕 시겨가고 허는 사람도 더러 내가 보고 그랬어요. 지금은 없어도 얼마 전까지는 내가 그소리 듣고 애들 어린애들 모굑시겨가지고 포대기다가 싸가지고 그러고 가는 것두 내가 보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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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르신 이 앞의 길이 일번국도입니까?

A2 : 그러지. 일번국도가 이리였다가 저리 사차로 나 나오면서 일번국도가 저리 그쪽으로 바꼇지.

A1 : 이게이게이게 잉게

A2 : 요길이기여. 그래가지구요 여서 한 이키로 가면은 역터라는데가 있거든?

A1 : 옆터가 왕궁면 도순리에 그저가 역터라고. 지낼역자 어 역마역자.

B2 : 일번국도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것입니까?

A2 : 그게 모르겄네 언제 났는가. 그러나 하여튼 여기서 과거를 보러갈 적에 1번국도로 올라가는디 역터 여기서 쉬었다 가고 겄다고 어른들한테 그런 말씀은 들었어. 그 외에는 내가 별로 아는 바가 없고.

B3 : 과거를 볼 때 이 길로 간 것입니까?

A2 :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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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러면 아까 얘기했던 옥이나 관아같은 것들의 터는 기억하고 계십니까?

A2 : 그니까 이런 말씀 들응게 저 관아라고 하는 디가 저 시장 주변있지 거그가 있었다고 그런말씀 허시고 또 초등학교가 우리 댕길때 초등학교가 그 여깄어요. 그러자 인자 거기사 협소했던가 하여튼 초등학교가 이리 올라오면서 시장이 되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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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금마 저수지 밑에 도로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A1 : 그거 저수지가 생기기전에는 도천도랑에 여 금마까지 나오는 도로가 있었지. 그래가지고 저수지로 거기다 막았지 그 저수지 막은데서 사실은 오래안된거여 그게.

A2 : 그 물이 빠지면은 도로형태가 있어. 응. 도로형태가 있더라고. 그렁게 저수지 되기 전에 도천에서 내려오는 길이 저수지 안에 있어. 지금도 있더라고.

A1 : 도로 그 도천에서 부터 저수지 막기전에 그 똘이 있어가지고 똘이 말하자면 옥룡천이여. 그래가지고 똘 옆으로 인자 길이 나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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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르신 그러면 왜 철도는 다른 곳을 간 것입니까?

A1 : 양반들이 그 원래 여 익산을. 익산을 갖다가

A2 : 익산은 으른들만 살응게

A1 : 양반들이

A2 : 양반들만 살응게 그것이 지나가면 시끄럽다믄서 반대를 했댜. 반대를.

A1 : 그래가지고 철도가 이짝으로 지나갔지 익산시 익산시가 이리 솜리라는게 이리라는게 솜리거든. 원래는 거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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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솜리인디 인자 그게 이리로 되었는디 솜리까지도 그어 까지도 물이 들어왔으니까. 요아 밑에까지도 들어왔으니까 사정아래 밑에까지도.

B3 : 실제로 어렸을때 들어오는걸 보셨습니까?

A1 : 아니 보던 못혔는디 하여튼 그래가꼬서는. 저 거시기 그 뭐야 춘포면 있는디 춘포면 창평이라고 여가 좀 이름이 그래가지고 서는 관아터라서 창평 궁평 왕궁 그래그 창평은 창고가 있던자리여 옛날. 창고가 있던자리라서 창평이고 또 궁평은 임금 터가 있어가고 궁평이라고 허고 왕궁은 또 왕궁이 임금이 그 저 궁궐이 있던자리여서 왕궁이라고허고 그런식으로 다 시방 거시기 혀가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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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금마는 어디까지 물이 들어왔다 이런 것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A1 : 여그까지는 물이 안들어왔고 인자 여그서 그 사정아래 쪼금 내려가믄은 얼마 안대지 잉게 거까지는 물이 들어왔다고는 허고.

B2 : 아 거기까지는 물이 들어왔구요? 그 사정거리가 사람을 베어죽여가지구 사정거리라고?

A1 : 그 내가 듣기는 그렇게 들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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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이 지역의 재미있는 전설이나 뭐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A1 : 여그가 인자 마한의 고도였거든요? 마한. 게 삼한시대가 있찌 않았어요? 역사 보면은? 마한 진한 변한 그러등가. 삼한시대에 있어서 마한의 소재지여. 여그가서 인자 지역이름이 대게 저짝 보며는 오금산이라고 하는디는. 그게 뭐 금이 다섯개가 들어있었다고 어쨌다고 그런 얘기도 더러 있고 그랬었지.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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