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대안문화 연구소 : 익산시 구술사 DB

TEL 063-850-5275
FAX 063-850-7311

> 익산시 구술사 디지털아카이브

마을명 : 황등면 > 신성마을

구술영상

동영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
확대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황등면 > 신성마을
구술자 최준용(1933)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19
비고 면담장소 : 황등 신성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19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신성(新城) : 신성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인데 마을 뒤에 언덕(재)가 있으니 ‘성(城)’은 그 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재(峙)’와 재(城)‘은 서로 통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군물산: 군사 물자가 있었다고 함.
- 깃대배기 : 기를 꽂아 두었다고 함.
- 말무덤 : 말의 무덤.
- 야막제 : 밤에 누가 침범하지 못하게 지키던 곳이라고 함.
- 화농마을 : 예전에는 ‘수렁고지’라고 불렀다고 함.
- 부마마을 : 예전에는 ‘삼밭골’이라고 불렀다고 함.
- 회룡마을 : 용이 움츠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함.
- 동련 : 연꽃이 피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
- 도촌마을 : 옛날에 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구자마을 : 거북 구자의 한자가 어려워 아들 구자로 바뀌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대성 마을 : 풍수지리학으로 ‘대장군좌’라고 불리었다고 함.
- 갈제: 풍수지리학으로 ‘갈마음수형’이라고 함.
- 유방수뜰 : ‘유뱅’이라는 부자 이야기.
- 무동마을 : 풍수지리학으로 ‘선인무수혈’이라고 함.
- 삼바레기 : 굶어죽지 않게 하는 혈자리라고 함.
- ‘비혈’ 혈자리 : 날짐승의 혈자리에 비석을 놓으면 안 좋다고 함.
- ‘게혈’ 혈자리 : 옆으로 기어가는 ‘게’혈자리에 비석을 놓으면 안 좋다고 함.

3) 민속 :
- 두레 : 마을 공동작업 이후 행사.

구술채록

A1 : 최준용(81)-1933년

B1 : 박태건
B2 : 이동혁
B3 : 이호형

● ● ●

A1 : 현재 우리가 앉아 여그를 ‘신성’이라고 하는 마을이에요. ‘신성’ 새로울 신자 제 성자 성이 있다고 해서 제 성자에요. 그리고 이 앞에 가서 약 1키로 지점에 가서 ‘신화’라는 동네가 있어요. 새로울 신자 될 화자 그리고 요 모탱이가서 여그 가서 ‘대성’이라는 동네가 있어요. ‘대성’이라는 동네가 있는 디 이 3개 마을을 ‘신성리’라고 부릅니다. 아마 이 ‘신성리’가 대한민국에서 리 단위로 봐서는 가장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불과 한 120호 될까 말까하고, 근디 인자 ‘대성’에서부터 설명하자며는 ‘대성’에 옛날에 어른들이 풍수 지리학상 뭐라고 불르는 고니 ‘대장군좌’라고 하는 것이 있어, ‘대장군좌’라는 데가 있었는데 여그 ‘대성’ 지금 교회가 서있는데 부근에서 처다보는 날맹이를 처다 보고 ‘대장군좌’라고 했어 그러면 어째서 ‘대장군좌’라고 말한 것이냐 ‘신화’를 건너가는 불과 한 500미터를 지점에가서 여그가서 산이 하나 있어 이 산이 있는 디 이 산을 어떤 산이냐 하며는 지금도 뭐라 부르는 고니 ‘야막제’라고 한다고 ‘야막산’이에요. ‘야막제’ 그리고 여 쪽 ‘대성’에서 남쪽으로 한 500미터 지점으로 가며는 여기 가서 산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군물산’이여 군사 군자 물건 물자 ‘군물산’이라는 산이 지금 있습니다. 그러면 ‘야막제’하고 ‘군물산’하고 중간에 가면 ‘북동골’이라는 데가 있어 여그서 뒤로 빠져서 이 당산 뒤로 넘어가면 ‘깃대배기’라는 데가 있어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얘기하는 고니 또 하나 여그 가서 조금 가면 ‘말무덤’이라는 무덤이 하나 있었는 디 ‘말무덤’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근데 지금 형태가 경지 정리를 하고 야산 개발을 하고 이렇게 형태 만들어 놓은 게 이것이 현재는 변화는 되었고, ‘군물산’하고 ‘야막제’하고 이 산들은 그냥 남아있어요. 남아있고 이 ‘깃대배기’라고 하는 데는 이 ‘신성마을’하고 ‘대성마을’하고 옛날 두레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두레 그 지신메고 풍장치고 동네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해서 돼지 잡아먹고-오 그 두레 날 때 여기다 기를 꽂고 ‘깃대배기’에 기를 꽂고 풍장치고 놀았다는 얘기입니다잉. 거그가 그리고 ‘말무덤’도 약 한 150평 정도 되는 디 그것이 차츰차츰 없어져서 경지 정리가 되가지고 논이 되어버렸어 형상이 없어져 버렸어 이걸 볼 때 ‘대장군좌’ 위로 쪼---옥 하니 올라가서 2키로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며는 ‘갈제’라는 방죽이 있어요. 목마를 갈자 제방 제자 ‘갈제’ 이것보고 일명 ‘가랑축방죽’이라고 부르죠, 또 ‘갈마음수’라는 말이 있죠? ‘갈마음수’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 그러면 이 근방이 이 장군대좌의 터전이 풍수지리학상 분명하지 안느냐? 그렇죠? 이런 명(名)을 남기 지형이 이 근방입니다.

B3 : 이런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습니까?

A1 : 주로 많이 듣기는 내 이웃집에 사시는 그전에 ‘장문좌’씨라는 어른이 계셨어 나하고 나이 차이를 치자며는 한 50-60년을 더 사신 분인디 네가 어려서 그 노인양반하고 같이 앉아서 많은 얘기를 들었어 그리고 중간에 또 어떤 노인들한테도 많이 들었고 그래서 그것을 머릿속에다 잊지 않고 담아서 지금 하는 얘기이고 형상이 그렇고 현재 이름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

● ● ●

B3 : 아- 그럼 이야기 말고 더 아시는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A1 : 이걸 좀 더 좋게 설명하자며는 이 ‘대성’이라는 ‘신성’이라는 이 동네 여기서 쪼-오옥 하니 올라가며는 저그 가서 ‘화농’이라는 동네가 있어 그 동네 비석을 보면 ‘화농’이라고 써 있고 또 ‘수렁고지’라고 써 놓았어 그게 왜그러냐 ‘화농’이라고 하는 이름은 늦게사 만든 이름이도 동네사람들이, ‘수렁고지’라고 하는 이름은 옛-날부터 ‘수렁고지’라는 동네이름을 불러왔기 때문에 혹자 ‘수렁고지’라는 동네를 찾으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줄려고 ‘수렁고지’라고 표시를 해놓았어 그런데 어째서 ‘수렁고지’라고 만들었냐며는 아까 이야기한 ‘군물산’ 여그 가서 수! 십 되는 논이 있어요. 이 논이 개답을 언제 하는 고니 1934년도 개답을 왜정사람들이 기묘년에 1934년도여 그때가 기묘년이여 기묘년, 기묘년에 대-흉년이 들었어 흉년이 들어서 비 한 방울 안와 근게 일본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굶어 죽게 생겼응게 구제 사업하기 위해서 경지정리 사업을 해서 똘을 파고 사방에 이렇게 해서 물을 빼어다가, 거그가 구농지여 한 마디로 해서 풀 만나고 있고 물만 잡혀있지 아무것도 못하고 시방 비 오면 물차고 그렇게 생긴 황무지처럼 생긴 땅이었어 그렇게 생긴 게 일본사람들이 경지정리 사업을 1934년도에 했습니다. 그런디 그 주변에는 비가 오면 농사지은 것도 못 먹고 농사도 잘 안되고 하니까 ‘황등장’에서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살긴 어디서 살어 ‘물고드래’ 살지” 여그 이름을 일명 ‘물고드래’라고 했어요. 그 들판 이름을 일명 ‘물고드래’라고 그랬습니다잉. 그래서 여그 사람들은 비가 와서 장마지면 “어디살어?” 그러면 “‘물고드래’인가 어딘가” 기운도 없이 죽어가는 소리로 그러고 지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농사를 짓고 잘 먹고 하는 곳은 쪼끔만 높은 지대는 먹을 것 아니냐 그 말이여 근디 높은 지대치고는 수랑이 있어 수렁 그래서 그 이름을 따서 ‘수렁고지’ ‘수렁고지’ 그랬다가 경지 정리가 딱 나서 인자 수랑도 없어지고 물도 빠지고 농사를 자유자제로 짓고 근게 벼화 화자 농사 농자 벼를 심어서 부자가 되는 마을이다 해서 ‘화농’이라고 이름을 개칭해서 만든 놈입니다.

● ● ●

B3 : 아- 그렇군요.

A1 : 그런데 내가 또 한 가지 속담을 얘기 할께 여그 이 들을 ‘물고드래’라고 불렀는가 하며는 ‘유방수뜰’이라고도 불러요. ‘유방수뜰’ 옛날에 ‘유방’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어디가 살았는 고니 이 들 가운데 가서 높은 섬처럼 생긴 디가 하나 있었어요. 지금은 경지정리를 해서 싹- 없어 졌지만 이 경지 헌지가 한 1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게 ‘유뱅’이가 살았던 터입니다. 근데 그 ‘유뱅’이가 살았던 터에서 저 ‘망월’이라고 하는 동네에서 쭈-욱 하니 산 날맹이가 있었어요. 그런디 그게 산이었는 디 여기는 물이 안 진단 그 말이여 그래서 ‘유뱅’이가 부자로 잘 살어 부자로 잘 사는 디 동양아치들이 날마다 와서 밥 달라고 성가시게 했사니까 ‘유뱅’이 부인이 하는 소리가 머라고 말했는 고니 “제-발 우리 집에 동양아치 안 오게 고롬 못 허것냐고 귀찮아서 못 살 것다고” 그런게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지관하나가 일러 줄꺼 냐고 물어본 게 일러주라고 “그러면 이 산 날맹이를 끊으시오 여그를 끊으면 동양아치들이 안 올 것입니다.” 해서 그 부자가 산 날을 끊었다는 것이여 그런데 산 날을 끊어버린 게 ‘유뱅’이 망해버렸어.

B3 : 왜 망해버렸나요?

A1 : 아- 망한 게 동양아치가 안 오지, 그래서 ‘유뱅이뜰’이라고 해서 ‘유방수뜰’이라고 불러왔고 여기는 ‘물고드래’라고 불러왔고 또 이 동네 앞으로 가면 ‘부마’라는 디가 있어요. 부마 부자 부자 삼 마자 ‘부마’라는 동네가 바로 ‘화농’하고 붙어 있는 디 이 사람들은 흉년이 들으면 지금 아실랑가 모르것네 그 삼베 짜는 그 나무 지금은 마약 나온다고 해서 잘 못 심게 하드만 정부에서 그것을 삼베를 많이 심었다고 해서 ‘삼밭골’이라고 불렀다고 삼 밭을 많이 경지해서 지금도 부르기를 사람들이 ‘삼밭골’이라고 하지 근디 행정당국에서는 ‘부마’라고 하지.

● ● ●

B3 : 또 주변에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 그리고 여그 이 동네 사람이 살고 있지만 저그에 ‘무동’이라는 동네가 있는 디 이 춤출 무자 마을 동자 ‘무동’이여, ‘무동’이라는 것은 에-- ‘선인무수혈’이라고 해가지고 서는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지관들이 동네의 형상을 보고서 이름을 지었어요. 근디 거기 보면 뭐라고 되었는 고니 선인이 신선이 이 소매를 입고 춤을 추는 동네 다 형상이 그렇다 해서 ‘무동’이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이야기가 되어있고, 그리고 오다가 철뚝 옆에 오면 큰- 비(碑) 하나 세워져 있죠? 그 비에 ‘삼바래기’라고 써 놓았습니다. ‘삼바래기’라고 가다보면 알 것이요. 그 모르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고니 거기 가서 세 갈래 길이 있어서 세 갈레 길인게 ‘삼바래기’라고 그러는 디 그게 아니라 중이 장삼을 입고 댕길 때 팔에다 기다란 걸 붙이고 다니죠? 그 속에다 시주를 받거나 무엇을 받으면 여 여그 속에다 넣어 여그다 넣은 게 이것보고 ‘삼바랑’ 이것 보고 ‘바랑’이라고 해 그래서 거그가 “‘삼바랑’ 선다.” ‘삼바랭’이 서라고 해서 행여나 그 ‘삼바랑’에 다가 굶지 않고 잘 살 깜니 묘가 거기에 수 십 개 수 백 개가 다다다 붙어 있어 묘 쓰면 부자 될 깜니서.

B3 : 왜 그런 지명이 붙었는지 아시는 지요?

A1 : 그 자체의 형상이 그 형상이 그렇게 생겼은 게 그리고 여기 ‘함라면 회룡’이라고 하는 디가 있었는 디 ‘회룡’은 용이 움츠리고 꾸부리고 뱜처럼 똬리 틀고 이튿기 하는 형상을 갖추었기 때문에 ‘회룡’이다 이렇게 되어 있고 그 옆에 가면 ‘연화동’이라는 디가 있어요. ‘연화동’이라는 것은 아까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유방수뜰’에 가서 물이 가득차며는 밭에 가서 동네 앞에 가서 연꽃이 피어 연꽃이 핀 게 ‘연화동’ 그러고 그 넘어 들판 넘으면 ‘동련’이라는 디가 있어요. 동쪽에 연꽃이 핀다고 해서 ‘동련’ 그때 이름을 그렇게 지었지.

● ● ●

B3 : ‘야막제’는 왜 ‘야막제’라고 불렀을까요?

A1 : ‘야막제’는 밤에 지킨다는 소리여 밤에 지켜 군사 적군이 못 오게 그놈을 지켜 그리고 ‘군물산’은 아까 군사의 물건을 가따 쌓아 놓았다는 디가 ‘군물산’이고.

B3 : 옛날에 이곳에서 전쟁이 있었나요?

A1 : 전쟁? 전쟁이 있었다고는 역사에 없고 단 지리 풍수지리학상 형상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어떤 동네든지 동네 이름이 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거여, 아까 말한 ‘섬말’ 지금도 ‘섬말’이라고 하는 디 ‘도촌’이거든? 행정당국에서는 ‘도촌’이라고 불러 근디 아까 여기서 말했지 거그가 물이 차면 ‘유방수뜰’이 하나 차며는 이 골짜기로 물이 올라가는 디 그 동네만 물이 안 찬다. 그 말이여 그 동네가 높아 지금 치다 봐도 근게 “우리 동네는 섬이다.” 그래서 ‘섬말’이지 거그가 무슨 섬이 되어서 ‘섬말’이 되었겄습니까? 거그 섬 되면 여그는 다 ‘함라면’은 다 잠겨버리게?

B3 : ‘말무덤’은 왜 ‘말무덤’이라고 불렀을까요?

A1 : 응 ‘말무덤’이 그게 말이 죽었은 게 말을 묻었을 적에 ‘말무덤’이라고 하는 디 그 우리가 어려서 까지는 동네 사람들이 인자 두레을 할 때 풍물치고 거기다가 깃대를 딱 꽂고서는 동네사람들이 와서 풍물치고 놀으면 부인들은 뭐 음식물 지고 와서 그 마당에서 일꾼들 대접도 하고 풍장치고 뛰어 놀고 하던 터였는 디 인자 경지정리 나서 싹- 없어져 버렸지 터가.

● ● ●

B3 : 아- 네.

A1 : 그리고 ‘구자’라고 하는 디는 여그서 ‘무동’ 옆에 가서 ‘구자’가 있는 디 아홉 구자 아들 자자 ‘구자’라고 쓰거든? 이 ‘구자’는 책에 어떻게 나와 있는 고니 이 ‘구자’라는 곳이 어째서 아들 아홉이 있는 집이 이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뭐 어떻게 해석하자면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런 얘기가 나오는 디 그것이 아니라 거북 구자 ‘구자’드만 쓸라면 획 수가 많어 그런 게 이 글자 쓰기가 어색한 게 거북 구자의 약자를 이어 버리고 아홉 구자로 바꾸었드만 그래서 ‘구자’가 되었드만.

B3 : 그런데 왜 마을 이름에서 거북 구자를 썼을까요?

A1 : 모르지 인자 그 지형의 형태가 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겼은 게 거북 구자를 썼는 가는 몰라도 원래 거북 구자를 쓸라먼 쓰기가 어려워 근게 어려운게 그냥 아홉 구자로 바꾸자 해서 아홉 구자를 썼어.

● ● ●

B3 : ‘신성’마을에 관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A1 : 얘기를 하자며는 제일 먼저 ‘신성리’가 아까 얘기 말했지? 3개 마을을 구성해서 ‘신성리’라고 행정구역상 이렇게 짓는 디 제일 먼저 생기기로는 ‘신성’이 먼저 생겼어 ‘신성’이 먼저 생겼는 디 ‘신성’하고 ‘대성’하고 어간에 ‘해주최씨’들이 와서 살았어, ‘해주최씨’들이 기와집 짓고 잘 살았든 가벼 그 근방을 뒤적거리면 기왓장이 나와 근디 그 사람들이 떠난 걸 봐서는 어찌 어떻게 떠났든가 망했어 망했는 디 우리 동네 뒷동산 옆에 가서 ‘대장군좌’ 밑에 가서 그 사람들 시제 지내는 오래된 묘가 있고 저 ‘신화’ 앞에 가서도 대여섯 개 묘 있고 저-그 ‘돼지막지기’라고 거그 가서도 묘가 있는디 이것이 풍수지리학에서는 ‘비혈’이라고 해서 날 비자 있지? 이 ‘비혈’에다가는 절-대! 돌 비석을 안 세워 그런데 왜 ‘비혈’에다가 풍수지리학상 비석을 안 세우는 고니 ‘황새혈’이라든가 ‘까그메혈’이라든가 날을 수 있는 그 지형의 형태에 비석을 세우면 날개를 눌르고 있응게 못 날른게 죽는다는 얘기여 그래서 여그다는 절대 비(碑)를 못 세운다는 얘기여 그래서 우리 ‘군물산’에도 거그도 비가 한 장이 없어 묘는 수 십장 있는 디 묘만 있지 비석을 안 세워, 그런디 이 해주최씨가 ‘들말’ 어른들한테 들어보면 저그-저 지금 뭐 어떤 사람이 돼지 키우고 있는 디가 있는 디 거그 가서 묘가 시제 지내는 묘가 있는 디 이게 ‘기혈’이라고 그러거든 ‘기혈’ 그 먹는 게 근데 거그다가 ‘장군석’을 세워 놓았어 2개 ‘장군석’, 기가 기어 댕겨야만이 살지 ‘장군석’으로 돌팍으로 딸팍 눌러놓으면 기가 살 것어? 죽지 그래서 망했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다른 마을로 다 떠나버리고 없고 그 다음에 ‘신성최씨’들이 와서 동네를 차지하게 되었고 ‘대성’은 역사상으로 봐서 무얼로 증명할 수 있느냐 하며는 묘를 보면 되 묘 그 사람들의 묘가 그전 옛날에는 생애로 시신을 실코 그때는 생애를 미야 많이 갔어 그런게 멀리 가덜 못 가고 근방에 다가 묘를 썼다고 그러면 그 사람들 묘가 몇 대조 묘냐? 따져 볼 때 그 사람이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는 근거가 나와 그걸 보고서는 얘기하는 디 먼저 온 사람이 본관이 ‘김해’인가 ‘경주’인가 몰라도 진씨인디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살았다고 그러드라고 ‘문좌’씨 어른 말이 그려 그 사람이 살고 그 다음에 ‘경최’살고 그 다음에 ‘전준이씨’가 오고 그 다음에 ‘흥성장씨’가 오고 그 다음에 다른 승바지 그래서 동네를 형성하고 지냈다고 그런 얘기가 있지.

B3 : 아- 네.

A1 : 그리고 ‘신화’는 다음해에 한 성씨 최씨들이 와서 한 동네를 이룬게 새로울 신자 될 화자 그러고 여그 ‘신성’이나 ‘대성’은 이 성공 한다는 이룰 성자를 안 써, 이룰 성자를 안 쓰고 흙토 변을 써 성 성자를 써.

● ● ●

B3 : 또 다른 전설이나 이야기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A1 : 전-설은 별로 없고 이 동네가 생긴 걸로 봐서는 350에서 400년 미만이 된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얘기가 되는 디.

B3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삼바래기


최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