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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황등면 > 대동마을

구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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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황등면 > 대동마을
구술자 박순정(1941)여자
구술자 권정님(1938)여자
구술자 최정호(1946)여자
구술자 유청자(1942)여자
구술자 홍재덕(1934)여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19
비고 면담장소 : 황등 대동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19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대동(大洞․큰골) : 전에 용산성 안에서 제일 큰 마을이었으므로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대동마을 : 옛 지명은 ‘큰골.’ 용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기 때문에 ‘대동’이라 불렀다고 함.
- 성내마을 : 옛 지명은 ‘성안’으로, 마을이 성 안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
- 소산마을 : 옛 지명은 ‘우렁샘골.’
- 황교마을 : 옛 지명은 ‘황새다리.’ 마을이 황새다리처럼 내려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바위배기 : 능선 위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
- 각시골 : 지형이 ‘각시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 고대산 : 마을 뒷산을 이르는 지명. 소산마을과 왕래할 시 자주 이 산을 넘어 다녔는데, 산이 높고 올라 다니기가 힘들어 ‘고대산’이라 불렀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도깨비 비석 : 마을에 오래전부터 있던 비석으로 쓰러지면 사람이 죽는다하여 건드리지 않았다고 함. 또 이 비석이 ‘도깨비’로 둔갑하여 술에 취한 사람과 씨름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함. 이때 씨름에서 지게 되면 그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고 함.
- 용산 대동교회 : 역사가 백년이 넘었다는 오래된 교회.
- 고대산 성터 : ‘고대산’이란 대동마을 뒷산을 이르는 지명으로 옛날에는 그곳에 돌로 쌓은 성이 있었다고 함. ‘용산 대동교회’를 지을 당시 그 성터의 돌을 주어다 주춧돌로 삼았다고 함.
- 용산엿 : 옛날부터 대동마을 엿이 유명했음. 대동마을이 엿으로 유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을에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 본래는 ‘함열용산 찹쌀엿’이라 불렀는데, 이는 과거에 용산리가 함열에 속해 있었기 때문.
- 각시골과 비석 : ‘각시골’에 비석을 세우면 집안이 번창하지 못한다고 함. 돌이 각시의 머리를 짓누르기 때문.
- 혼불 : ‘혼불’이 빠져나간 집에선 곧 사람이 죽는다고 함. 모양도 성별에 따라 다른데, 남자의 것은 길고, 여자의 것은 둥글다고 함. 이 ‘혼불’이 가까운데 떨어지면 빨리 죽고, 멀리 떨어지면 조금 더 산다고 함.
- 도깨비 이야기 : 옛날에는 ‘간지평’이란 곳이 매우 질퍽하여 발을 버리지 않고서는 다닐 수 없는 곳이었는데, 유독 한분만 아무 어려움 없이 그곳을 지나다녔다고 함. 모두가 발을 버릴 때에도 그분만은 ‘도깨비’의 도움을 받아 편히 왕래하였다고 함.

3) 민속 :
- 새신랑 우물에 절시키기 : 토박이가 아닌 남자가 마을에 장가를 오게 되면 밤에 데려다 우물에 절을 시켰다고 함.

구술채록

A1 : 박순정(71)-1941년
A2 : 권정님(74)-1938년
A3 : 최정호(66)-1946년
A4 : 유청자(70)-1942년
A5 : 홍재덕(78)-1934년

B1 : 박태건
B2 : 이동혁
B3 :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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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에 신기한 비석이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이야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A1 : 그냥 그전부텀 나 여기서부텀 자랐는디 비석이 이렇게 똥그란허게 있어요. 있어갔고는 기냥 운돌이 이렇게 푹 자빠뜨리면 그냥 그것이 동네 거시기헌다고 막 못허게 허드라고요. 어렸을 때 보먼 가만 놔두라고, 그래서 인자 그런디 어떤 양반이 술을 잡수고서는양 거기 가서양 밤새드락 실갱이질 했더니, 술 잡순 양반이 밤낮 닥치락 뒤치락 닥치락허드니 거시기한테 졌대요. 도깨비한티.

B2 : 그 비석이 도깨비였습니까?

A1 : 예. 도깨비라고 그전부텀 허드라고요. 그래가지고서는 시달려갔고 그냥 죽었어요, 거그서. 그 양반 바로 집에 와서 죽었어. 긍게 지먼은 죽는다고 허드랑게요. 그서 그 비석을 동네 사람들이 잘 그냥 놔둬요. 자빠지면 젊은 사람이 죽는다고.

B2 : 그 이야기는 언제 들으셨습니까?

A1 : 아, 여그서 자랐응게 그전에 우리 클 때 보먼 그러드라고.

B2 : 그 비석을 뭐라고 부릅니까?

A1 : 그게 도깨비라고 그랬어요, 그전부텀. 도깨비 비석.

● ● ●

B2 :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 치성드리는 풍습은 없었습니까?

A2 : 아니, 그런 건 없었어요. 여기는 다 교회 다니잖아. 교회가 동네(에)가 있잖아요.

B2 : 교회 역사가 오래됐습니까?

A2 : 백년. 백이 년인가, 백삼 년인가 됐어.

B2 : 교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A2 : 용산교회. 백삼 년 됐을 거여, 시방.

A4 : 용산 대동교회라고 허야 쉽게 알아들으지. 교회가 여럿이 있응게.

B2 : 교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들어보셨습니까?

A2 : 긍게 우리 시집와서, 이 교회를 이틀이먼(이를테면) 아래가 교회가 있었는데, 인자 넘의 집을 얻어갔고 예배도 드리고 처음에는 그랬잖아요. 그렇게 드렸는디 교회를 질 때 여기, 여그 오먼서 보먼 산이 있잖아요. 뒷산. 거기가 이틀이먼 성이 있었다고 허대. 옛날에.

A4 : 있었어도 별로 표도 없었어. 야찬(얕은) 게.

A2 : 표는 없었어도 성이 있어서 그 성을 다 인자 무너뜨리갔고 밭도 혀먹고 그랬는디, 그 돌을 우리가 이고 이렇게 양 들으다가 그 교회를 천발 주춧돌을 다 교회로 헌 거요.

B2 : 그 성이 있던 마을 뒷산을 뭐라고 부릅니까?

A4 : 고대산이라고 글대. 고대산.

B2 : 산이 높습니까?

A2 : 높으지요, 고개가. 그 너머 동네 갈라먼 겁나게 이렇게 올라갔어요.

B2 : 왜 고대산이라고 불렀습니까?

A4 : 높아갔고 고개를 올라갈랑게 힘들잖어. 그릉게 고대산이라고 그랬어. 여그서, 시방도 여그서 거기 올라갈라믄 힘들어.

B2 : 고대산에 오래된 바위나 나무는 없었습니까?

A4 : 나무들이랑 있었는디 다 비고, 거그다 교회 지었다고 교회도 다 헐어져 버리고.

A2 : 여기서 분립해서 나가서 그 고대 말랭이에다 교회를 지었는디 저짝 밑이 동네로 이사 갔어요.

B2 : 고개 너머 동네는 이름이 뭡니까?

A2 : 소산, 성내. 여그가 오개 부락이거든요. 오개 부락인디 우리 동네가 젤로 크다고 대동이라고 그려요. 큰 대자. 여그가 젤로 홋수가 많고.

● ● ●

B2 : 옛날에는 무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셨습니까?

A2 : 농사 짓고. 농사만 많이 지었지요. 그런디 인자 옛날에는 집집마다 나 시집온 게 엿을 허드만. 엿을 혔는디 지금은 인자 한간디(한군데)로 그냥 몰쳐(몰아)갔고 엿공장, 이장양반네 집에서 엿공장 허잖아요.

A4 : 용산엿이 유명혀, 하여튼.

B1 : 옛날에 엿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A2 : 엿을, 쌀을 담궜다가 인자 엿지름(기름)을 또 쫌 담궈놨다가, 엿지름을 담궈놨다가 인자 쌀 담군 놈을 이렇게 솥단지다 시루를 얹어갔고 불을 떼서 인자 그놈을 인자 쪄지잖어, 밥 같이. 밥 같이 쪄지먼 그 엿지름 담궈논 놈을 거기다가 푹허니 늫(넣)고서는 인자 이십사 시간인가, 이십사 시간을 막 이불이다가 덥어놓드만, 막 이렇게. 수투마리에다가 막 안쳐서, 큰 수투마리에다. 방 뜨건 디다가. 안쳐놓으먼 인자 그놈이 인자 팍 삭어서 이렇게 이렇게, 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문질러보먼 밥티키가 없고 싹 삭은 다음에 여기는 그 틀도 집집마다 있었어요. 엿 헐 때면은. 엿 짜는 거. 나무로 이렇게, 요렇게 혀갔고서는 여그다가 비나 찔러갔고서는 저짝에 앉어서 인자 그 나무를 눌러가지고 그렇게, 밑이다 다라이 놓고 막 짜갔고 그놈을 한나절도 더 대려요, 솥이다가. 그릉게 으른들이 나무는 저기 함라산, 저런 디 가서 인자 솔가지 혀다가 인자 갖다가 막 떼고 그렇게 혀갔고 엿을 혀서, 엿 쓰는 것도 얼마나 그게 힘드는지 알아요? 엿을 혀서 퍼노먼(퍼놓으면) 엿이 이렇게 이렇게 뽈코롬허니 이렇게 생기거든요. 인자 이렇게 둘이 앉어서 요만치썩 엿 인자, 엿을 풀 때 요 옴박지에다 이렇게 푸더만, 엿을. 그릇이다 퍼서 인자 솔으먼 안 된 게, 쪼꼼씩 인자 한번 헐 만치, 이만치씩 띠어(떼어)가지고 둘이 저짝이서 앉고 이짝이서 앉이고. 이 주고받고 주고받고 허먼 그놈 뽀얘져요, 이렇게. 그러먼은 그놈을 인자 이, 이렇게 인자 가드락을 인자 따숩게 혀갔고 족족 빼갔고 그놈을 이렇게 세모로 쓸으먼 밤엿이고, 옛날에 우리 시집와서 으른들이 엿을 허실 때는 이렇게 그냥 가래로 이렇게 혀서 시장가서 팔었어. 그렇게해서 팔었는디 지금은 그것이 없고 밤엿이라고 시방 저그 엿공장으 허는 것은 밤엿이라고 이 가드락을 빼서 이짝 쓸고 이짝 쓸고 쓸어가지고, 세모로 쓸어갔고 인자 키로(kg)로 봉지다 혀서나 파는디 그릏게 쓰먼 뽀얗다니까 엿이. 그르고 또 가락엿도 맨들고. 시방 허는 것은 또 인자 한솥 혀갔고서는 푸면은 색깔이 저런 놈은 이만헌 병이다가 느서 조청, 우리가 인자 흰떡을 방앗간에서 빼잖아요? 그놈을 이만씩은 사다가 그놈 찍어서 먹으먼 얼마나 맛있다고. 그러고 다 무공해잖아. 엿지름도 내가 기루고. 쌀도 농사진 것이고. 거기 들어가는 것이 생강허고 일틀이믄 저 깨허고 두 가지 들어가는디 다 농사진 걸 느(넣어).

B1 : 엿 만들 때 집집마다 솥을 때면 연기 올라가는 모습도 장관이었겠습니다.

A4 : 굉장히 나와요.

A2 : 아침마다 막 연기…, 집집마다 슷달 대목이먼 다 혀서 인자 친척들 이렇게 선사도 허고 혔는디 지금은 그 집이 가서 참 선물세트도 있고 다 그렇게 혀갔고 다 그 집이 가서 사서. 겁나게 선물세트 많이 나가요, 저 집이.

B2 : 세모로 썰은 엿을 왜 밤엿이라고 불렀습니까?

A2 : 긍게 밤엿을 이만썩허게 밤 같이 쓸었다고 밤엿이여. 옛날에는 이릏게 가드락엿이로 팔고. 가닥엿. 그르고 우리 형부 여그서 엿 사오는 거 보먼 또 학꼬짝이다가 개엿이라고 또 사다가 붓고. 개엿은 그냥 퍼서 그놈이 솔린 놈이 개엿이여. 그대로 솔린 놈. 그리갔고 그놈을 막 부산이고 어디고 갖다 팔고. 근디 옛날에는 그놈을 그냥 안 쓰고 그냥 먹었는게벼, 개엿으로. 근디 그놈은 달라붙어서 못 먹어. 여기서 개엿 쪼매씩 입으다 느(넣어)보먼 달라붙어서 못 먹는디 이 뽀얀허게 쓰서 밤엿이로 맨그르먼 달라붙도 않고 그렇게 맛있어.

B1 : 엿하고 관련된 이야기는 없습니까?

A2 : 엿 이야기는 일틀이먼 그, 그것을 짰잖아요? 짜면 인자 그것이 인자 쌀이잖아. 쌀이고 인자 엿지름만 들으가서 이만치 건디기가 되믄 그것을 할머니들이 까불러갔고 그것을 인자 삭가루나 인자 다 진기는 빠졌응게 별라 안 달잖아요. 그러먼 삭가루 같은 거 늫고 인자 끓이갔고서는 노인양반들, 동네 노인양반들 다 모여서 잡수고, 옛날에는 끄니를, 점심때를 그걸로 많이 잡쉈어. 내가 시집와서 보믄 그냥 모여갔고 할머니들이 그걸로 끄니를 많이 잡쉈어, 점심을.

B1 : 언제부터 용산이 엿으로 유명해졌습니까?

A4 : 우리가 어려서부텀 혔응게 몇해 된지 알어.

A2 : 시방 지가 시집온 지가 근 오십년 거즘 되는디 지가 여그, 이리 시집올라고 인자 혼인날짜 받었는디 슷달 그믐날이 된 게 우리 집 신랑되는 양반이 선물을, 엿을 바구리다 혀서 느갔고 왔대요. 그릉게 저 시집오기 전부터 혔지요.

A4 : 옛날부텀 내려오는 그 저기여.

A2 : 제국시대, 일본정치 때부텀 혔대요. 제국시대.

B1 : 그냥 엿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유독 용산에서만 엿을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A2 : 긍게 여그가 바로 이 논이 있잖아요. 거그가 시암이 크게 있었어, 시집온 게. 근디 우리 시집와서 전반다 빨래를 여그 와서 허고, 짐장(김장)거리도 여그서 시쳐서(씻어서) 다 이 마을이 큰 마을인디 다 먹었거든요. 그런디 여기 농사지면서 그것을 시방 옶(없)인 지가 한 사오년 빼끼 안 됐어요. 그냥 있었어요. 참 시암물이 좋응게 딴 동네서 엿을 헐라믄 이 물을 질어다가 헌다고 그전이 그맀는디.

B1 : 엿을 만드는데 물이 중요합니까?

A2 : 물로 허는 거라.

B1 : 다른 마을에도 샘이 있지 않습니까.

A2 : 아니, 물이 짜거나 그러먼 안 되지. 물맛이 짜먼 안 된디야.

B1 : 그 샘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A4 : 큰 시암이라고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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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물과 관련된 이야기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2 : 결혼식을 허먼 새신랑들 다리 묶고 막 옛날에 그랬잖아요. 그럼 막 시암에다 절허라고 막 밤이 데려다놓고 그런 것은 봤어요.

B1 : 다른 동네 신랑에게 절을 시킵니까?

A2 : 아니, 이 동네. 인자 결혼해서 일틀이면 아가씨들 결혼허면 새신랑 오믄 시암이다 절 시킨다고 막 데리다가 절 시키고 그러대. 우리 적이는 그렇게 혔지.

B2 : 새신랑에게 절을 시킨 이유가 있습니까?

A2 : 아니, 인자 새사람 왔응게 시암물이다가 인자 시암물 잘 괴라고 헌 것인가 어쩐 것인가는 모르지.

A4 : 좋으라고 그러지.

A2 : 으른들이 그렇게 시켰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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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옛날에는 여기가 큰골이라고, 이게 내나 인자 전라도 사투리겠지만, 옛날 노인양반들이 여기 보고 큰골, 큰골 그맀거든. 대동이라고 헌 것은 인자 그냥 큰 대자해서 마을 동자해가지고 대동이라고 불린 것이고, 옛날 유래는 나도 잘 몰라요. 하여튼 여기가, 이 너머가 성이 있었어, 성. 성 밖에 마을이라는 것만 알고 있지. 이 너머가 성이에요. (그리고) 이 너머가 성안이라고 그래가지고 성내지, 지금은 성내라고 불르고 있는, 그전에는 성안이라고 불렀죠, 성안. 긍게 이놈은 그 성, 이 우에가 성이에요, 지금 저 우에가. 여기 들어오는 저 말랭이가. 그게 성터예요. 지금도 거그 파면 돌이 나와요, 성 쌓은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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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소산은 어째서 소산입니까?

A3 : 긍게 소산은 또, 소산 지명은 뭐라고 허는고니, 그거 보고 우렁샘골, 우렁샘골이라고 그러지, 옛날에는.

B2 : 어디를 황새다리라고 부릅니까?

A3 : 황새다리는 바로 이 너머, 성안 저쪽 건너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 보고는 뭐 황새다리라고 그러지. 지금은 황교라고 하는데 우렁샘골도 지금은 소산이야, 소산.

B2 : 황새다리를 어째서 황새다리라고 부릅니까?

A3 : 그 지명이 말허자면은 역학자들이 볼 때 황새다리처럼 이렇게 이렇게 내려와 가지고 있다고 그래가지고 황새다리. 그렇게 유래가 된 거지.

B2 : 바우배기는 뭡니까?

A3 : 바위가 있다고 그래가지고 바위배기지, 바위. 바위 능선이라는 얘긴데 그 바위가, 크게 바위가 있어가지고.

B2 : 각시골이란 지명이 있던데, 어디를 각시골이라고 부릅니까?

A3 : 저 앞에 산이 있거든, 여그서 보먼은 소나무랑 있고. 그쪽 골짜기 보고는 또 각시골이라고.

B1 : 행정지명으로 거기(각시골)를 뭐라고 부릅니까?

A3 : 각시골은 읎어졌죠. 그전에는 인자 그 집도 듬성듬성 있었고 그랬는데 인자 그 집도 다 없어지고 그래가지고 인자 다….

B2 : 각시골은 왜 각시골입니까?

A3 : 각시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가지고 각시골이라고 그래요. 우리 선산인데 거기다가는 또, 그래서 돌도 갖다 붙이면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돌을 갖다 비석 하나 세우면 안 된다네. 그리가지고 거기는, 우리 선산에도 돌 하나 붙이지를 못해요. 옛날부터 미신인데.

B2 : 왜 돌을 붙이면 안 될까요?

A3 : 각시 낭자에다는 돌을 얻지면은 저 가족에, 인자 가족이 번창을 못헌다는 얘긴가, 인자 그런 게 있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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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혼불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A2 : 별똥 떨어지는 것 보고 혼불이라고. 인자 며칠만이 나가고, 혼불이라고 나가먼, 남자 것은 이렇게 지드랗게(기다랗게) 나가고 여자 것은 둥글둥글 나가고. 마당에서 놀다가 인자 자러들어갈라고 토방에 올라슨 게 이렇게 이렇게, 첨에는 이렇게 굵어갔고 착허니 나가드라고, 그 혼이. 그르드니 그 생여(상여) 나가는, 그후로 나가드라고. 한사나흘 있다가 그이 죽었어. 그 혼 나가는 거 보고.

B2 : 혼불 모양이 어땠습니까?

A2 : 기드란 허게. 그게 남자 불이라고 그러지. 활 쏘드끼 죽허고 나가드라고.

A4 : 가찹게 떨어지믄 쉽게 죽고 멀리 떨어지먼 더 살다 죽고 그런다고 그맀어. 그것이 혼불 나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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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용산 찹쌀엿이라고 그러는데 원래는 함열용산 찹쌀엿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황등은 존재가 쪼그만 했고 함열은 함열고을이에요. 여기도 함열로 들어갔었던, 딸렸었던 디고 함라면이 함열이에요. 함열 와리. 거기서 지금 이쪽 함열 철길이 저쪽 함열로 나면서 함라가 함열이었는데 그 함열이 그리 따라간 거여. 그리갔고 그 함열역으로 따라가먼서 그쪽을 함열이라고 하고 함라면은 지금 함열리로 분리돼갔고 함라면 함열리는 전부 소재지가 다 함열리에요.

B3 : 언제부터 엿을 만들었습니까?

A3 : 그건 모르죠. 저 선대서부터 내려왔던 거고 내가 알기로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만들었던 것은 기억허니까. 옛날에는 그거 만들어가지고 노인양반들이 이고지고 팔러다니고 그랬대요. 그래가지고 얘들 가르키고 뭐 그랬다고.

B3 : 어디로 많이 팔러 다녔습니까?

A3 :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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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도깨비 이야기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4 : 간지평을 그 양반이 의사였잖아요, 의원. 간지평을 그전에는 막 안 빠지고는 못 댕겼잖아요, 지금인 게 글지. 근디 그 양반을 도깨비 씌어갔고서는 그 도깨비들이 이렇게 갔다준디야. 불 비쳐갔고. 그러먼 발도 하나 안 비리고(버리고) 그렇게 간다고. 하여튼 비가 많이 오믄은 발 안 벗고는 저 간다리라는 디를, 함열을 못 갔어. 아랫도리 다 벗고 이래야 가지. 긍게 도깨비 씌어서 그 양반을 그렇게 도깨비가 데려다줬다, 그 소리여.

A3 : 불이 그 양반 가먼 앞이서 불이 빤히 인도하고 간디야. 긍게 안 빠지지. 안 버리지.

● ● ●

B1 : 용산이 엿으로 유명한데, 엿노래 같은 것은 없습니까?

A2 : 엿노래, 여그 이 양반.

A5 : 나의 이름은 엿이라 합니다. 집안도 많으며 형제도 많고 나의 고향은 용산이올시다. 참 재미 좋지요. 과자 중에 제일가는 금빛 돋는 나의 엿은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담엿이 한 사발.

구술사진





대동마을 권정님


대동마을 박순자


대동마을 좌측 박오금


대동마을 좌측부터 권정님 유청자


대동마을 최정호


대동마을 홍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