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함라면 > 천남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라면 > 천남마을
구술자 김무웅(1943)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18
비고 면담장소 : 함라 천남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18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천남(川南)․옥화리․잿말 : 천남은 내의 남쪽이므로 일컫던 이름.‘옥화리’는 함열현 때의 옥사(獄舍) 밑에 있던 마을이므로 ‘옥하(獄下)’라 했는데 ‘옥화’로 변했다.‘잿말’은 읍성(邑城) 옆의 마을이므로 일컫던 이름. 재=성(城).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서벽정 : 이집천 가옥이 있던 자리. 경치가 좋은 곳. 현재는 서벽정이라고 새겨진 비석만이 세워져 있을 뿐, 그때의 흔적은 없음.
- 양진당 : 목욕을 했던 폭포.
- 수동과 교동 : 옛날에는 수동을 식골, 교동을 생애골이라고 불렀음.
- 염주바위 : 평평바위라고도 함.
- 똥바위 : 함라와 웅포를 연결하는 길옆에 있었다는 바위. 일종의 쉼터로, 쉬어가는 사람들이 이 바위 위에서 대변 등을 보았기 때문에 똥바위라고 불렀음.
- 곰개제 : 웅포로 넘어가는 제. 울제 혹은 곰개제곡이라고도 부름.
- 박상골 : 함라중학교 자리.
- 육모정 폭포 : 육모정 옆에 있는 폭포.
- 물탕골 : 피부병에 좋은 우물이었다고 함.
- 금광 : 일제 강점기 때 함라산에 금광이 있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풍류를 즐긴 조해영 : 사랑채에 거주하는 기생들과 함께 장구 등을 치면서 놀았다고 함. 또한 매사냥을 즐겼다고 하며, 국악에도 관심이 높아 국창 임방울 선생님을 자택에 초청하기도 했다고 함.
- 함라 사부자 : 함라 삼부자로 지칭되는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 이외에 이배원과 형제간인 이집천을 포함하여 사부자라 부르기도 했다고 함.
- 우물 주위를 맴도는 귀신 : 서벽정과 교동마을 사이에 있던 우물에서 귀신이 나왔다고 함.
- 한밤중에 들리는 빨래방망이 소리 : 새벽 한시나 두시에 마을 냇가에서 방망이로 빨래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함.
-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귀신 : 서벽정 입구 옆에 조그만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다리 밑으로 뼈가 앙상한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함.
-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도깨비 : 도깨비가 우물 안에 사람을 빠뜨린다고 함. 또는 한밤중 술에 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길을 헤매게 함. 이렇게 헤매고 돌아오면 며칠 동안 앓아눕는다고 함.
- 김안균 가옥에서 들리는 원인불명의 소리 : 김안균 가옥 대문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림. 하지만 정작 대문 앞에 가보면 아무도 없음. 아기가 없는 집인데도 화장실에서 아기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함.
- 육모정과 우물 : 육모정은 육각의 모정을 가리킴. 육모정 옆의 우물에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음. 그래서 용시암이라고도 부름. 이 우물과 함라산 너머의 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함. 함라산 너머의 우물을 가리켜 용의 머리, 육모정 우물을 가리켜 용의 꼬리라 함.
- 귀신이 내는 소리 : 지금은 공터가 되었는데, 옛날 집이 세워져있던 시절에는 밤마다 아궁이를 긁어내는 소리가 났다고 함. 그런 소리는 귀신을 섬기는 제사를 그만두면서부터 나기 시작했다고 함.
- 한쪽만 잎이 노란 은행나무 : 행동마을 은행나무에 금새가 앉았다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음. 지금 은행나무 잎이 한쪽만 노란 이유는 그 자리에 금새가 앉았다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함.
- 공기바위 : 옛날에 어떤 장수가 이 바위를 가지고 공기를 했다고 함.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얹혀 있는 형태로, 장수가 이같이 포개어 놓았다고 함.
- 숭림사 호랑이 : 숭림사 골짜기에서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음.
- 사람을 돕는 도깨비 : 조천영이라는 분이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됐다고 함. 여자 도깨비였는데, 이 도깨비가 무언가를 계속 갖다 주어 부자가 됐다고 함.

3) 민속 :
- 기우제 : 함라산 정상에서 짚단을 태웠음. 여자들은 참여하지 못했다고 함.
- 품팔이 : 삼부자 집에서 품을 파는 일이 많았다고 함. 겨울에 볏단을 훑는데 한단 훑을 때마다 오원씩 받았다고 함.
- 기세배 : 네 개 마을이 풍장을 치며 마을 기를 들고 수동에 가 기로 세배를 함. 수동마을이 가장 어른 마을이었는데, 이유인즉 노소가 수동마을에 있었기 때문임. 50년대 말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함.
- 주당방아 : 액땜의 일종. 사람을 멍석에 말아놓고 쇠스랑으로 이리저리 당김. 이때 꽹과리를 든 사람은 꽹과리를 치며 주위를 돌고, 절구공이를 든 사람도 역시 주위를 돌며 절구공이를 바닥에 찧음.

구술채록

A : 김무웅(71)-1943년

B1 : 박태건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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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구술은 천남마을 주변을 돌며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이 점을 유의해서 읽어주기 바란다.)

A : (조해영 가옥을 둘러보며) 옛날 그 명물 기생들 있잖아요. 우리가 여그 와서 치다보면 이게 사랑채에요. 여기가 사랑채. 그래서 그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장구치고 여그 와서 놀고 막 굉장했었어요. 여기에는 인자 기생들 내려와서 장구치고 놀고. 그러면 이 조해영씨 그 친구분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옛날에 그 매 가지고 댕기먼서 매사냥도 했어요. 요래가지고 인자 없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인자 마당도 아침에 마당 쓸어주고 밥도 이렇게 많이 얻어먹고 그랬거든요. 이 집에서.

B2 : 조해영씨 친구분들 중에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까?

A : 친구분들은 잘 모르는데, 그 옛날 기생, 유명한 기생 그 이름이 누군가 모르겠네. 은방울(임방울) 먼가…. 하여튼 그 저 이 저기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 있잖아요. 그런 양반들이 다 여기에 왔었다고요. 그러면은 그때도 아편이 있잖아요. 그러면 기생들이 허면은요, 우리 이렇게 가다 치다보면은 그 아편기 떨어지면은 사람이 양 정신을 못 차리는 게비더만. 그 기생들이 오면은 그 아편기가 떨어지니까는 양 여기 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인가 뭐신가 막 머시고 상관없어요, 막. 사람이 지나가든지 말든지 그 아편기가 떨어지니까는 인자. 이런 데가 다 쪼그리고 앉아있고 막 그랬었다고.

B2 : 옛날에는 아편 같은 마약을 많이 했습니까?

A : 그 사람(조해영)은 아닌디, 그 기생들. 말허자먼 기생들이 그 아편을 많이 했죠.

(사랑채에서 큰 도로 쪽을 바라보면 방앗간 건물이 보인다. 과거에는 이 방앗간 자리에 정미소가 있었다고 한다.)

(조해영 가옥을 정읍집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조해영씨가 정읍에서 살다 함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B2 : 삼부자 집에 강도가 들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A : 그 강도라는 것은 저기 저 김안균씨 가옥 있잖아요? 그 강도라는 것은 그 김안균씨네 그 옛날 그 천기와라고 있어가지고 그 천기와를, 이 말허자먼 요기 우에 동마루 있잖아요. 그 우에가 하나를 올려놨는디 이 동네사람이 거그를 어떻게 올라갔는가 모르지 인자. 그래가지고 그걸 내려다가 팔았어요. 그게 강도라는 거여.

(조해영 가옥 입구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아쉽게도 유래는 알 수 없었다.)

(조해영 가옥을 나와 돌담길을 걸었다. 삼부자 집 담장은 외정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며 지금도 그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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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라에 유명한 것이 있다면 또 뭐가 있습니까?

A : 유명한 것은 이 삼부자 집. 원래는 사부자 집이에요, 사부자 집. 원래는 이집천씨라고 그 사람도 부자에요. 그 양반 아들이 이리상고 선생질 했어요. 그래가지고 그 교감까지는 했을 거야, 아마. 이우영이라고. 그리고 이집천씨 큰 아들이 이리시청 시장도 허고 완주군수도 허고 그맀어요.

(마침 담장 너머로 이배원 가옥의 사랑채가 보였다. 이배원 가옥은 현재 원불교에서 사랑채를 사들여 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A : 이집천씨 아들이 이집길이라고 영화배우여. 그전에 에덴 산맥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영화 에덴 산맥. 그 주인공이 이집길이에요. 옛날에는 잡지도 많이 나오고 그랬어요, 이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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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영 가옥의 사랑채 대문 앞을 지나 조그만 개울물이 흐르는 다리 앞에 도착했다. 개울은 흐르는 마을에 따라 수동천, 천남천이라 부른다고 한다. 또 다리 바로 옆에 서벽정이라는 옛 집터가 있었다.)

A : 여기가 서벽정이라고. 이게 서벽정인디 이집천씨 집이에요, 이게. 부자여, 이 집도. 근디 삼부자로 나오는디 사부자라고 할라니 이거….

B2 : 사부자라고 하면 그 성씨가 어떻게 됩니까?

A : 이배원씨하고 이집천씨하고 형제간이에요. 그러면 이 서벽정이 뭐냐믄은요 지금 이집천씨 막내아들이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여기 보면은 사람 몇 아람씩 되는 나무가 일곱 그루가 여그가 섰었어요. 지금 그건 국보로 들어갈 거예요. 그럼 그걸 옛날에는 그것을 비어다가, 괴목을 비어다가 농을 짜면은 좋다고 해가지고 팔어먹었어요. 그래가지고 저기 판판한 디 있잖아요, 저기에. 그게 이집천씨 가옥이에요. 저 우에 집 부서진 디가. 거기가 부서지고 그 우에가 서벽정이 또 있었어요(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서벽정이 있고 그 우에 가서 육모로 이렇게 지어가지고 또 거기가 또 있었고. 익산에서 들어오다 보면 여 용산초등학교 있잖아요. 여기로 소풍 왔어요. 소풍을 이리 하나 다 왔어요, 거기서는. 우리는 숭림사로 가고.

(서벽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처럼 돌기둥이 두 개 서있다. 돌기둥 안쪽에는 서벽정이라 적힌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웅포에 옛 서벽정 건물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집이 있다고 한다.)

(구술자의 권유에 서벽정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 들어가 보았다. 서벽정 비석이 있는 곳에서 함라산 쪽을 바라보면 봉화산과 바래봉이 한눈에 보인다. 현재 산 밑에 미술관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 건물 바로 뒤편이 바래봉이라고 한다.)

B2 : 바래봉이나 봉화산처럼 근처에 또 특이한 지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 이 우그로 또 올라가면 폭포가 있어요. 한 5매다(미터), 상당히 높아요. 그 양진당이라고 하지, 양진당. 양진당이라고 해가지고 그전에는 목욕헐 디가 없으니까는 거기 가서 다 목욕을 했어요.

B2 : 남자와 여자가 목욕하는 곳이 달랐습니까?

A : 예. 남자는 우에고 여자는 밑에고.

(과거 양진당에서 여자들이 몸을 씻을 때 남자가 지나가면 양산을 펼쳐 몸을 가렸다고 한다.)

A : 그래가지고 여기 집(서벽정)이 있어가지고 여기(교동 방향)로 내려오는 길이 있거든요. 여기 여 교동마을로 내려오는 이렇게 무제똥이 있었어요. 저기 언덕(향교 앞의 언덕) 보이잖아요. 그러먼은 현재 그 여기(서벽정 비석)서 매실나무 저짝 대밭 바로 매실나무 저기에, 거기에 우물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 우물이 있었는디 그전에 보면은 옛날에 그 미신이 있다고 그러잖아요. 사람 형상이 나타나는 거요. 그전에 뭐냐먼은 다리는 없고 몸뚱이 이만한 사람이 시암 우물을 막 도는 거. 이건 모르는 사람 없이 다 알아요. 그래가지고 이집천씨가 이 집에서 돌아가셨거든요. 이 마을 사람들은 고리(앞에서 말씀하신 교동마을로 내려가는 길) 내려가야 하잖아요. 그럼 새벽 한시나 두시나 이 양반들이 와가지고 내려가는디 그런 걸 목격허니까는 거기 가잔 말도 안 나오고, 무서우니까는. 긍게 이 몸뚱이 우에만 있는 사람이 거기를 뱅 우물을 돈다는 거여. 그리고 이 저기 다리(서벽정 옆의 다리) 있잖아요, 옛날에. 이 다리가 굉장히 무서운 다리여, 이게. 옛날에 보면은 그 저 냇가에 가서 방망이질하고 빨래허는 이 소리가 여그서 들렸다고 해요. 사람들이 다. 아무도 없는데 밤 한시나 두시나 그 정도 돼서는 이게 들리는 거예요. 긍게 무서우니까는 여그를 밤에는 잘 안 가지. 또 아침에 일찍 나오면요 내 그런 현상도 봤어요. 이게 뭐냐면은 여기서 그 병원에 가먼은 그 뼈만 앙상한 사람 있잖아요, 그려놓고. 머리에서부텀. 그런 사람이 요렇게 와가지고 고리(다리 밑으로) 쏙 들어가는 것도 내가 목격하고. 그래서 그전에 보면은 이 향교에서 학생들 데려다가 한문공부도 가르치고 그랬거든요. 그 향교 앞에 저 나무 서 있잖아요. 거기 가가지고 은행나무가 지금 몇 아람 돼요. 우리가 한 세 사람 이상 되는 나무가, 하여튼 높이가 그짓말(거짓말)이 아니라 한 40매다(미터) 이상 될 거예요. 그 나무도 비어버렸어요. 은행나무를. 비다가 그 사람 하나 떨어져서 죽었어요, 거기서. 그 나무를 비다가 사람이 떨어져서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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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벽정을 나와 김안균 가옥으로 이동하였다.)

A : 이 집이 부잣집이에요, 이게. 그래가지고 이 안에가 우물이 있었거든, 여그가. 여그가 우물이 있었는디 옛날에 바로 지금 이 집 거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요, 지금. 그먼은 그전에 보먼은 그 도깨비, 도깨비가 그 우물에다 사람을 빠뜨리는 그런 적도 있었다고 그래요. 김종배라고 허는 사람인디 그 사람이 당했어요, 여기서. 그 이 집(김안균 가옥) 있잖아요. 이 집은 우리가 놀러 저기 댕기다 밤에 이렇게 오거든요. 일로는 못 왔어요, 무서가지고. 내가 큰 길로 이렇게 댕겼었는데 이 집 보면은, 그 댓문 저짝에 보먼은 그 사람이 막 웃는 소리 내, 너털 웃음으로. 그 우리 오다가 타악 웃는 소리 들리먼은 가만히 섰으먼 아무것도 없는 거여. 그 댓문에서 웃는(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이 놀다 나오는가 보다 허고 기달리먼은 없어요. 또 이 집에서 여기 옛날에 그 사랑채 저짝에서는 사람이 살았어요. 그 사람들이 살았는디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여. 저기(김안균 가옥 안의 화장실)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B1 : 또 기억나시는 전설이나 민담은 없습니까?

A : 그 전설 같은 것도 저기 가면 그 육모정 같은 데 있거든요. 그 전설이. 육모정인디 이 산 넘어가먼요, 이 함라산 넘어가먼은 바로 너머에 우물이 동그랗게 있어요. 그리고 여기(육모정 옆)는 요렇게 나와 있어요, 우물이. 그러먼은 옛날 용이 살았다는 그런 전설이 있지요. 그건 저짝 너머(함라산 너머 우물)는 머리, 이건(육모정 옆의 우물) 꼬리. 그런 전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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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균 가옥 돌담을 따라 이동 중에 집터만 남아있는 공터에서 귀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A : 여기도 옛날에 집이 있었었고. 그전에 인자 지금은 그 양반이 이리로 이사갔는데 여기에 보먼은 옛날에 그 전설이 아니라 실질적인 얘기로 그 옛날에는 참 아궁이에 불을 뗐잖아요. 불을 떼먼은 그 재가 차면 긁어내야 할 거 아녀. 그면 여기서 옛날에 부자로 살아가지고 이렇게 다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귀신들을 섬기고 그랬잖아요, 옛날에는 있는 사람들이. 긍게 그런 것이 없어지니까는 여기 세 사는 사람이 막 밤에는 막 그런 재 긁어내는 막 드릉드릉 소리 나고 막 뭔 소리 나니까 무서워가지고 살지도 못허고 이사가 버렸어요. 여기가 그런 장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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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균 가옥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으나 아직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불가. 대신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는 댓문과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화장실의 위치는 밖에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A : 이 집을 보면은 이게 창고 그러는디, 우리가 이렇게 놀다가 가면은 이 댓문이 여기 있잖아요. 이 댓문에서 너털웃음이 나오는 거요. 그래서 인자 사람이 놀다 나오는가 보다 허고 기달리먼은 읎어요. 여기(댓문 왼쪽)에 보면은 여그가 화장실이 있었어요, 이렇게 여기가, 이 앞에가. 화장실이 있었는디 저쪽으가 사람이 살고 여그도 사람이 많이 살았어요, 이 안채 저기서도 인자 사람이 살고. 그먼 여기서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 화장실에서. 그러니까는 여기에 살던 사람이 저그서 애기가 울으니까는, 비는 부실부실 오는디 밤에 애기가 막 울리고 그러니까는 간 거여, 그 집을. 가가지고 왜 애기를 울리냔게로 애기는 안 울거든요. 이 화장실 여기서 애기가 우는 거예요.

(나무를 하러 함라산에 갔을 때 도깨비불을 많이 보셨다고 한다.)

(바래봉 아래 산제당이 있었다고 한다. 음력으로 섣달그믐날에 산신제를 지냈으며 제사는 함라노소에서 주관하였다고 한다. 제사에 드는 모든 비용은 함라노소에서 부담하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짚단을 짊어지고 함라산 정상에 올라 짚단을 태웠다고 한다. 남자들이 무제를 주관하며 여자들은 무제에 참여할 수 없었다.)

B1 : 수동마을을 왜 수동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 : 이게 원래는 식골이여, 식골. 아까 저짝 교동마을은 생애골. 그리고 이 너머 올라가먼은 이 바로 저짝에 가먼은 그 옛날에 말로 방아 찧었던 말방앗간이라고 또 저그가 있었고. 저 우에가. 지금 이게 행동에 가먼은 은행나무가 있는디 은행나무가 그 금새가 앉았다 널러갔다 혀가지고서나 한쪽만 이렇게 노래(노랗다)요. 저 이파리가. 이파리가 노래요. 거기만 노란헌 거여. 금새가 앉았다 널러갔다 그런 전설이 있어요.

B2 : 염주바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염주바위는 이게(함라산 중턱을 가리키며) 기어요. 저기. 그것보고 평평바위라고 그러지, 평평바위. 함라산 밑에 있잖아요. 지금은 안 보여요. 바위가 쪽 있어요.

(염주바위 밑에 6.25시절 파놓은 방공호가 있다고 한다.)

B2 : 똥바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똥바위는요 이 너머에 있어요. 저 너머. 똥바위는 왜 똥바위냐. 그전에 우리가 여기 사람들이 웅포가 배가 들어왔거든요. 이 하구둑 막기 전에. 그러먼은 거기에 인자 황새기, 말허자먼 황새기 배가 이렇게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먼은 인자 여기서 넘어가요. 옛날에는 뭐 여그 차가 있었어, 순전 걸어서 넘어가가지고 여자는 그놈을 이고 남자는 지게에다 그놈을 짊어지고 오다 거그가 쉼터여. 똥이 마려우면 거그다 쌌다고 혀가지고 똥바위라고 이름을 진 거예요. 그래서 거그서 인자 쉬고 소변 마려우면 소변 보고, 똥 마려우면 똥 싸고 혀서 그게 똥바위라고 이름을 진 거예요. 그리고 옛날에 그 장수가 공기를 혔다고 해가지고 공기바우가 또 여기 이렇게 올라가다 보먼 있어요. 그러먼 이 바위가 딱 올라와 있어요, 공기처럼. 바위 위에 큰 바위가 또 올려져 있어요. 그것을 보고 공기바위라고 그러지. 장수가, 그 전설을 들어보믄 장수가 공기를 혀서 올려놨다는 얘기는 전설이지요, 그게.

(앞에서 말씀하신 육모정 옆의 우물을 용시암이라 부른다고 한다. 용이 그 우물에서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하셔서 직접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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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시암으로 이동 중에 들은 말씀이다.)

A : 여기서 인자 이 선생분들이 있잖아요. 이 선생분들이 차가 없으니까는 이리(울제) 혀서 웅포로 넘어가거든요. 이 제를 넘어서 웅포로 넘어가요. 울제라고 그러지, 이거 보고. 이게 말허자먼 인자 울제라고도 허고 곰개제, 곰개제곡이라고도 허고. 곰개를 넘어간다고 혀서 곰개제곡.

(봄에 황새기를 사기 위해 곰개제를 많이 넘어 다니셨다고 한다.)

A : 여기에 그 옛날 역사에 보면은 만무덤이라고 있어요, 만무덤. 일만 만 할 때 만무덤. 여기에 와우에 가먼 인자 그 만무덤이 거그가 있어요. 그것이 그 유래는 잘 모르지만은 그 만무덤이라고 거그가 있어요. 무덤이 아니고 그냥 이런 밭이고 이런 게 있는디 그게 만무덤이라고.

(함라중학교 있는 데를 박상골이라 부른다. 박상골이라는 지명은 함라중학교 교가에도 나온다고 한다.)

B1 : 숭림사에 관련된 이야기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A : 그 숭림사 가면은 첨에 들어가는 저기 있잖아요. 일주문 막 바로 들어가는 디. 그 옛날에는, 그 전설 보면은 거기서 호랑이가 살았다라는 얘기가 전설이 있지.

B2 : 도깨비와 관련된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A :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옛날에는 황등장이고 이리장이고 순 걸어 댕깄잖아요. 걸어 댕기다가 인자 오다가 보먼 막걸리라도 한잔 이렇게 드시고 오시다 보면은 해가 저물으면은 이 도깨비한테 홀려서 죽은 사람도 있어요.

B1 : 어떻게 홀려서 죽었습니까?

A : 그게 오다가 보면은 캄캄한데 길이 훤헌 거여, 이게. 훤헌 데로 따라가먼은 저끼 들판 어디 맴돌고 맴돌고 허다가 여그 와서 며칠 이렇게 아프다가 죽은 사람도 있어요.

B1 : 그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습니까?

A : 우리 어려서 들었죠. 우리가 그런 양반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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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모정 앞에 당도하였다. 육모정은 용시암 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현재 보이는 육모정은 과거 육모정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육모정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용시암이 있었다. 또 용시암 옆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마을에서 부르길 육모정 폭포라고. 육모정에서 가깝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부른 듯하다. 과거에는 물이 굉장히 깊어 빠져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A : 이게(용시암) 지금 여기를 막어가지고 상수도로 아마 사용하는가 봐요. 이게 용꼬리고 저 너머가 용대가리라는 얘기요. 그런 전설이 있어요, 여기에.

B1 : 혹시 용시암에서 뭘 하면 안 된다하는, 금기시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A :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어도 이 선생들이 웅포로 갔을 적에 제는 많이 지냈죠, 여기다.

B1 : 어떤 선생들이 제를 지냅니까?

A : 그 가족들이 지내지. 무사히 넘어갔다가 넘어오겠크름. 무사히 그냥 뭐 갔다 오라는 그런 제를 지냈지.

B2 : 물탕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물탕골은 들어봤는디…, 물탕골이 저짝 어딘가?

B2 : 수동마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A : 물탕골이라는 건 수동마을에 없어요. 거그 논이 거그가 지금은 집 지어가지고 물이 없어졌는디 거기서 목욕 같은 거 허먼은 땀띠 같은 것이 다 읎어진다는 그런 전설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가서 씻고 다 그랬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집을 져가지고 그 우물을 메꿔서 사용을 허는 사람은 허고 안는(안 하는) 사람은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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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금하고 관련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이게(육모정 위의 산) 원래는 금광이었어요. 이 자리가 지금 금광자리거든요. 금을 캐먼은 돌 바수는(부수는).

B1 : 어렸을 때 보셨습니까?

A : 예, 봤어요.

B1 : 일제시대 때 금광계발을 했습니까?

A : 예. 누가 캤는고니 김택수라고 그 양반이 금광도 허고 탄도 캐고 그맀어요. 근디 그 양반이 돈 많이 집어내부리고(잃고) 나왔어요. 탄도 안 나오고. 탄광이 있고 금광이 있고 그래요. 그래서 금을 그 돌을 실어다 여서 이렇게 빠숴가지고 금을 어떻게 채취를 허는가 보더라고요. 우리는 잘 모르는디. 그래서 그 방아가 여기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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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포 숭림사 근처에 곡식말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A : 그리고 이 김안균 가옥 있잖아요. 그 옛날에는 그전에 보면은 그 집안에 사상이 좀 있으면은 취직이 안 됐잖아요.

B1 : 좌익사상.

A : 네. 그래가지고 이 양반이 취직을 못했어요, 김안균이가. 그래가지고 원광대학교 영어강사로 많이 댕겼어요. 김안균씨가 영어강사로. 취직은 못허니까. 배움은 많은디 못해요.

B2 : 일제시대 때 김안균씨를 포함해서 삼부자가 베풀기를 많이 했다는데, 그때 이야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A : 옛날에는 이게 얼음을 꺼먼서(깨면서) 나락을 낫으로 비었어요. 장화나 있었가디요. 없었지, 그때는. 얼마나 추워요. 그러먼 그놈을 비어다가 이렇게 줄가로를 딱 치거든요, 이게. 줄가로 쳐가지고 그놈 이렇게 뒤집어서 말렸다가 또 지게로, 지게로 졌다가 누를 쌓아가지고 겨울에 훑는 거예요, 그걸. 겨울에 훑는데 그 김안균씨 그런 가옥에서는 한단 훑는데 오원. 한단 훑는데 오원씩 해가지고 백단을 훑는 사람도 있고 뭐 오십단을 훑는 사람도 있고 해가지고 그때 그 돈을 받고 그랬거든요. 근디 그걸 어떻게 또 숫자로 세냐면은 인자 볏단 묶은 그, 저기 있잖아요, 몇 개라고 그러지, 그거 보고 인자. 묶은 거 보고 몇 개라고 허는 거여. 고걸 시는(세는) 거여, 인자. 그래가지고 벌어도 먹고 그 집에 가서 없는 사람들은 전부다 마당도 쓸어주고 그냥 뭣도 혀주고 혀주고 밥 거기서. 많이 베풀었죠, 삼부자 집에서. 조해영도 그러고 이배원도 그러고. 많이 베풀었어요, 없는 사람들. 그래서 거그서 많이 얻어먹었기 때문에 이 함라 사람들이 게울러가지고서나 이 참 성장을 못헌다는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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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도깨비가 불을 지르고 다녔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그것보담도 아까 그 저쪽에 그 기와집 내가 얘기 허잖아요. 그 집이 전설을 얘기 들으면은 도깨비 때문에 부자 됐다는 얘기가 들려요. 그 옛날에 그 조천영씨라고 살었거든요, 거기가. 그 양반 살 적에 도깨비가 도와줘 가지고서나 부자 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면은 그게 이 남자 도깨비를 만난 것이 아니라 여자 도깨비를 만나가지고, 그 전설이 그러는 거예요. 여자 도깨비를 만나가지고 계속 뭣을 갖다줬다는 얘기요, 그 집이가. 그리서 그 집이 부자가 됐다는 그런 전설이 있지. 도깨비가 도와줘서 부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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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전에 보면은 이 오개 마을에서 풍장이라고 그러지, 풍장. 이게 풍장친다고 그러지. 그러먼은 기를 만들어가지고 아까 그 다리 있잖아요, 내가 그 귀신 나오는 다리. 그 다리에서 만나요. 그러먼은 이 노소가 수동에 있잖아요. 노소가 수동이여. 그르먼 젤 으른(어른)이 거그가 살고 있다 이 말이여. 그러먼은 교동이나 안정에서 기로 전부다 이렇게 인사를 허는 거여. 수동한테, 으른이라 해가지고.

B1 : 기세배를 한 겁니까?

A : 예. 기세배를 혀가지고 기로 이렇게 세배를 허는 거여.

B1 : 기싸움은 안 했습니까?

A : 아, 그런 것도 했죠. 그런 것은 인자, 기싸움은 별로 허는 건 없는데 술 먹고 허다 보면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잖요. 지금은 그것이 없어졌잖아요.

B2 : 언제까지 기세배를 하셨습니까?

A : 그것이 아마 기세배가 오십 한 칠팔 년도까지 그것이 유행이 됐을 거야, 아마. 육십 년도 이상은 그런 것이 없었고. 육십 년대에 그런 것이 없었고 하여튼 오십 년대 그런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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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전에는 조용만인가, 그 양반이 살어 계셨거든요. 근디 그 양반 말소리 들어보면은 이 함라 이 저짝이 함열리 이짝으로가 강이 있었대요. 강이 있었는데 함열을 갈라면은 여기 사람들 함열 갈라먼은 저 용안으로 해서 이렇게 돌아갔다 이거여. 걸어서. 그 양반 말이 그래요. 그래서 웬만한 데 파먼은 옛날에 그 토탄 있잖아요. 그 새카만 거. 그 토탄 같은 것이 나온다는 얘기지.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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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혼불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A : 예. 난 두 번 봤어요. 그게 혼불이라는 게 이렇게 해가지고서나 이게 그 빗지락(빗자루) 있잖아요. 기드란헌 거. 고런 식으로 생긴 것이 있고 똥그란헌 것이 또 있어요. 나 그래서 똥그란 그 혼불도 보고 그 불을 보고. 그 지나갔어요, 훤해요. 나 두 번 봤어요. 그 불도 보고 빗지락처럼 생긴 그 혼불도 보고 이 똥그란 혼불도 보고 그랬어요. 그 소리가 쉐엑 소리 나먼서 훤해요.

B2 : 혼불 모양이 두 가지라고 하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A : 근디 그 불이 빗자루는, 이 빗자루는 뭐 남자라고 허던가, 그리고 이 똥그란 (혼불은) 여자로.

B1 : 그러면은 그 혼불이 나간 집에서 초상이 난다는 겁니까?

A : 그러지요. 그 얼마 안 있다가 누가 돌아가셨다먼 아, 그때 그 혼불이 나가서나 그걸 생각을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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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에 큰 우환이 생기기 전에 어떤 조짐 같은 것이 있습니까?

A : 그전에 우환이 있었으먼요 그 옛날에 꽹과리 치고 허는 거 있잖아요. 그러먼은 멍석 있잖아요, 옛날 멍석. 아시죠? 거그다 이렇게 말아가지고서나, 말아가지고 막 꽹과리 치면서 뺑뺑 돌고 이렇게 굴리고 막 그런 건 봤어요. 그것을 액운땜이라고 허든가….

B1 : 두당방아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아, 맞아요. 두당방아. 그것보고 두당방아. 그것을 우리는 다 보고 가서 혔거든요.

B1 : 잔밥 같은 것도 먹였습니까?

A : 예. 잔밥 같은 것은 인자 이 가정에서 인자 그 아픈 사람만 데려다가 인자 멕이는 사람이 멕이고. 아무나 못 멕이지 그것도. 멕이는 사람 따로 있지.

B1 : 당골래가 따로 있었습니까?

A : 예. 그때 우리 고모도 그 잔밥 멕인다 해가지고 아픈 사람들 이렇게 쌀 거그다 너(넣어)가지고, 이 보재기 같은 데다 싸가지고서나 이렇게 이렇게. 아픈 부위로 이렇게 이렇게 문질르는 분이 있는디. 아까도 얘기허잖아요. 그 멍석말이 해가지고 소시랑 있잖아요. 소시랑으로 그것 잡아댕기고. 긁어오고 그렇게 했어요.

B1 : 시늉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직접 하는 겁니까?

A : 직접 허는 거요. 사람을 막 말아놓고 직접 허는 거여. 꽹과리 치고 그 도굿대 있잖여요. 그놈 퉁퉁 뚜드리고 댕기먼서 뺑뺑 돌아가먼서 한사람은 소시랑으로 멍석말이 이렇게 잡어댕기고. 내가 그런 것은 다 봤지요.

구술사진









함라면 삼부자 김안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