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함라면 > 소룡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라면 > 소룡마을
구술자 장운선(1942)남자
구술자 임규택(1937)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28
비고 면담장소 : 함라 소룡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8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소룡(巢龍․소롱골)․칠목(七牧․칠목재) : 1972년 위의 두 마을을 합쳐 한 분리가 됨. 소룡은 남병산에 쌓여 있어 마치 용이 서리고 있는 것과 같다 하여 풍수설에서 취해진 이름이라 함. 옛 기록에는 ‘소농(巢農)’으로 되어 있다.‘칠목’은 전에 웅포로 가는 고갯길의 옆이므로 ‘길목’의 사투리 ‘질목’이라 하던 것이 칠목이 되었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소룡마을 : 옛 지명은 가랑촌. 마을 옆 산(칠목제)의 형세가 용을 닮아 붙여진 이름. 용의 집이라는 설도 있음.
- 어래산성 : 본래는 어래산성이 아니라 남병산성이라고 함.
- 궁골 : 왕의 궁이 있었기 때문에 궁골이라고 부름.
- 소룡마을 둘러싼 일곱 개의 골짜기 : 칠성골이라고 함. 붓당골, 갱골, 토랑골, 오루골, 가막골, 연방죽골, 셋터골 등의 일곱 골짜기에 마을이 싸여 있음.
- 좌청룡 우백호 :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좌청룡 우백호의 혈자리.
- 우백호 산의 세부 지명 : 서리탕, 어리제, 압메, 갱골, 토랑골 등 여러 지명이 있음.
- 연방죽골 : 연꽃이 피는 방죽이 있어 붙여진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칠목제 : 산의 형세가 용을 닮았다고 함. 일제시대 도로를 낼 때, 용의 머리 부분을 잘라 피가 흘렀다고 함. 또 목사가 일곱 나올 자리라는 의미에서 칠목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함.
- 도깨비 이야기 : 수레에 짐을 싣고 칠목제를 지나는데, 도깨비가 수레를 들었다 놔버렸다는 민담.
- 저수지로 사람을 유인하는 귀신 : 칠목제 옆에 조그만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귀신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유인한다는 민담
- 학성국 : 학의 형국을 띠고 있다는 명당. 지관에 따라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학의 형국, 다른 하나는 까마귀 형국이라는 해석.
- 송장날 : 앞의 학성국에서 학이 먹이를 먹는 장소라고 함.

3) 민속 :
- 수보막이 : 운을 가둬두기 위해 나무 등을 심는 미신. 용머리가 잘린 뒤에 빠져나가는 운을 잡아두고자 마을 앞에 왕버들나무를 심었다고 함.
- 길 한가운데의 무덤 : 처녀나 총각이 죽으면 서로 짝을 지어 길 한가운데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함. 실제로 시신을 묻은 것은 아니라고 함.

구술채록

A1 : 장운선(72)-1942년
A2 : 임규택(77)-1937년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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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여기를 왜 소룡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1 : 내가 그 책을 한번 봤는데 여그가 인자 가랑촌이라고 내가 그걸 들었거든. 가랑촌인데 지금 우리가 그 소룡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언제 (그렇게 됐는지) 우리는 몰라. 그런디 그전에 우리가 어려서 초등핵교 댕길 적으 노인양반들 말 들어봐도 그 언제 소룡골이라고 부른지를 그 양반도 모른다고 허드라고. 긍게 200년이 됐는가 300년이 됐는가 몰라, 그건 인자.

(어르신 중 한분이 소룡마을의 유래에 대해 용이 집을 짓고 살 수 있어서 소룡이다, 라고 말씀해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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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원래 이게 어래성이 아니라 이게 지금 남병성이라고, 남병산성이라고 이게 지금 전해 내려온 것인디 어떻게 여그서는 그냥 어래성이라고 말여.

B : 저도 어래산성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닙니까?

A2 : 아니여. 이게 남녘 남자란 말여 이게. (그리고) 군사 병자란 말여 이게. 남병산성이란 말여 이게 지금. 남쪽의, 남쪽 산의 말허자먼 이게 남쪽 산에 말여 병사들이 이 성을 쌓다 혀서 말여 남병성이라고 이게. 근디 여그서는 지금 말여 옛날 내려온 전설이었는디 이게 지금 어래 이렇게 썼드만 지금. 어래산성이라고 적혀 있드만. 이게(어래산성) 아니란 말여. 이게 우리 조상조부터 내려온 산인디 말이여, 이게 지금 어래산성이란 것은 이것은 누가 이걸 이렇게 맨들었나 몰라도 이게 어래산성이 아니라고 이게. 우리 저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말여 옛날부터 남병성이라고 지었응게 남병성이 돼야지. 이거는 중간에 누가 지었는가 중간에 나온 얘기란 말이요. 내 이거 지금 고치돌라는 얘기고.

B : 남쪽 산에 병사들이 성을 쌓았다고 하셨는데, 남쪽이 되는 기준이 어디입니까?

A2 : 여그(소룡마을)로 봐서는 인자 북쪽인디, 여그 사람이 진 것이 아니라 저짝 웅포 쪽에서 인자 그 금강 쪽에서 인자 그 옛날 말이여 장수들이 지었는가 옛날 그 학자들이 지었는가는 모르지만 그짝으서 진 거여. 그짝으서 보먼 남쪽이거든 이게.

A1 : 우리는 그전부터 인자 남병산이라고 불렀는데 도중에 그 산이 문화제로 발탁되면서 미륵사지허고 이렇게 마주 본다고 혀서 어래산이라고 그렇게 진 것 같여요. 근디 그게 우리 마을은 어래산을 몰라. 우리 마을은 어래산이라는 게 어디가 있는가 몰라. 그리서 지금 홈페이지나 저기 들어있는 건 순전 어래산이로 들어있어. 근디 우리가 볼 때는 여기에 성터가 있는데, 그리고 인자 성터는 뭐냐면 옛날에는 이렇게 돌로 싸야 성터만 긴지 아는데 그게 아니었고 웅포 입점리고분 아시죠? 거기에 궁골이라는 디가 있어, 궁골. 거기에서 왕이 살았다가 인제 그 멸망허니까 묘지는 거그다 얄푹허니 썼더라고요. 거기에서 금동관이 나오고 금 만들어 신, 신이 나왔거든요. 그러면서 인자 그 행정적으로 아니 이건 어래산이다 이렇게 해갔고 거시기로 다 들어있어, 어래산이로. 그리서 인자 그 산은, 우리 산하고 이렇게 마주 봤고, 여기만 막으면, 인자 군사들이 여기만 막으면 그 왕정을 들어갈 수가 없잖여. 웅포 저쪽으로는 강이 뻗쳐 있고 충청도로 강이 뻗쳐 있고 이쪽만, 남쪽을 막어버리먼 군사들이 접근을 못허지. 갈 통로가 없잖아. 그래서 거그다 성터를 쌓은 거 같고.

A2 : 근디 저 옛날에 저 왕이 살던 디가 궁전이라고 그러는디 궁골이라는 것은 그 왕이 살던 골짜기를 얘기허는 것 같은디 왕은 여그 안 살았는디.

A1 : 거기에 오신 분은 왕이 아니고 왕 형제간인가 무슨 저 한 가닥을 끌코 내려왔어요, 살을라고. 왕의 그 후손들이. 후손인가 형젠가는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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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여그를 소룡골이라고 허는디 이게 마을이 일곱 골이요. 칠성골. 우리 마을이 소룡골이요. 그러먼 소자를 어떻게 쓰냐먼은 소자를 이 우리 이게 뒷산이 이게 인제 말이여 여기에 지금 꼬부랭이가 세 개가 있어요, 골짜기가 이 뒷산이. 설탕골, 붓담골, 칠목골, 이 세 개가 있습니다. 세 개 밑에다가 이 우리가 밭 전자거든요. 여그다가 지금 이게 말허자면 그 주민들이 밭을, 밭이라는 것은 이게 열 사람이 산다는 거로 해서 입 구자를 써가지고서나 열십자를 넣지 않았습니까? 여그서 주민들이 이 밭이서 살면서 나무 목자란 말여, 이게 나무를 심었단 말여. 긍게 이게 틀림없이 여기 이건 잘 지은 것이 뭐냐먼은 우리 마을이 뒷산이 말이여 골짜기, 큰 골짜기 세 개가 있어요. 세 개다가 이 밭을 이루고 여그다 사람이 여그다 살었단 말이여. 이렇게 살면서 소룡마을이 옛날에 쉽게 얘기혀서 그 양반들이 아무리 소룡마을이 좋기는 좋은디 이 재물이 부자가 안 나왔어요, 부자가. 안 나온 게 재물이 흐른다고 혀가지고서나 이 저수지 밑에다가 버드나무를 그 몇 주를 심었는가…, 몇 주를 심었는가 확실히 모르겄네요. 모르겠습니다만 버드나무를 심어가지고 이 재물이 말허자먼 흐르지 않게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말이여 버드나무 그 정말 좋았습니다, 옛날에 좋았는디 너무 오래 돼가지고 지금 고목 돼가지고 인자 없어졌는디. 심어가지고서나 소룡마을을, 근디 소 자가 이게 인자 쉽게 얘기혀서, 집 소자에 용 용자라고 그러는디 이것은 내가 파악을 안했습니다. 나도 객지 생활을 오래하다 온 사람이어 갔고 파악을 안 했습니다만 소룡골이 뭐 용의 성죽을 뭐시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우리 이장님이 말씀을 허셔서.

B : 용의 어떤 걸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A2 : 용의 어떤 머린가 꼬린가가 지금 용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혀서 지금 용을 넣었다는 것 같여요, 이게 지금. 이 산세로 봐서.

B : 어디 산입니까?

A1 : 저 앞에 산인데, 저 앞에 산 이렇게 아까 사진 찍은 디(마을 입구) 그 옆에 산이 전체 기거든요. 근디 그 옆으서 보면은 용날 같이 생겼어. 거기에 인자 그 산이 칠목제까지 뻗쳐 있어. 그게 인자 보면 칠목제 부분에 동산이 있어. 그 동산이 용머리라고 지금 부르고 있거든요. 거기에서 인자 이렇게 쭉 뻗어갔고 와서 동산으로 약간 대구빡을 이렇게 숙였어. 숙였는데 일본놈들이 도로를 낼 때 거기를 비껴서 낼 수도 있었대. 저기 지금 이 도로, 아까 타고 오신 그 도로. 근디 그놈들이 그 동산도 그렇게 마주 붙었는디 용머리를 쳤어, 모가지를 끊어버렸어. 그러니까 길 내느니라고. 길 돌려서 또 낼 수가 있었디야. 근디 인자 일본놈들이 뭐 쇠말뚝 박고 뭐 어찌고 그리죠. 근디 그 의미 같어. 용머리를 쳤다 이거여. 그래갔고 용머리를 끊어놓으니까 거기에 인제 그 피가 흘렀다고. 그리서 용머리를 쳐버리니까 마을에 부자도 안 나고 인재도 안 나온다 이거여. 그리서 가난헌, 또 아까 그 형님이 애기헌대로 가난을 어떻게 극복허냐 그래서 용머리를 쳤고 그리서 앞이다가 왕버들을 심었다 이거여. 돈을, 재물을 막기 위해서. 그 나무를 심었기 때미 재물은 쪼금 있다고 그러대.

B : 그런 식으로 재물을 막는 것을 뭐라고 부릅니까?

A1 : 수보막이라고 내가 들은 거 같은디.

A2 : 우리 인제 마을이 좌청룡 우백호거든, 지금. 완전히 기냥 저 막었어, 쉽게 애기혀서. 좌청룡 우백호로 말이여 막어가지고 소쿠리 태 안에서 말이여 이렇게 마을이 형성이 되얐어, 지금.

B : 그 좌청룡 우백호 자리가 어떻게 됩니까?

A2 : 좌청룡 우백호인 게 이장이 얘기헌대로 맞지. 웅포에서 제로 해서 이렇게 내려갔다는 얘기(칠목제 용머리 이야기)가 좌청룡이 되지. 소룡마을을 형성헌 걸로 봐서는 좌측이 청룡이여.

B : 그럼 우백호는 어디입니까?

A2 : 우백호는 이짝, 말허자먼 쉽게 얘기해서 우측으로 말이여 우측 산을 감은 디.

A1 : 남병산을 기준으로 혀서 양쪽으 이렇게 저쪽은 우백호 이쪽은 좌청룡해서 그 밑에 우리 소룡부락이 형성이 되얐어. 앞이 터졌으니까 그럼 재물 흘러나간다고 혀가지고 저거 버드나무를 심어가지고 지금 우리 부락이 오랫동안 이렇게 유지해 온다 헌 것 같여요.

B : 우백호 산을 뭐라고 부릅니까?

A1 : 그게 우백호 산은 서리탕이라고 지금 부르거든. 내가 온천개발을 헐라고 혔더니 돈이 없어서 못혀, 지금. 서리탕이라는 디서, 그런 게 이유가 있잖어, 서리탕이라는 디서. 그 다음에 거기가 어리제가 있어. 근디 그 어리제를 놓고 어래산이라고 지었나. 우리 어래산이 따로 있어.

B : 서리탕에서 온수가 나옵니까?

A1 : 개발은 않고 그냥 이름이 서리탕이라고 그리서 뭐 온수가 나올래 뭐 이런 거 정도 우리가 생각한 거지.

A2 : 서리탕으로 혀서 어리제로 혀서 이렇게 이것이 내려와서 압메가 있고 또 내려와서 갱골이 있고 우리 논, 토랑골이 있고 그렇습니다. 흘러가는 것이.

A1 : 우리 마을 골이 있고 여기에서 일곱 골이 있어, 일곱 골이. 일곱 골인데 이 일곱 골을 유래를 우리가 이렇게 못 찾고 있거든. 어떻게 해서 골이 되얐냐. 골은 골이여. 그 여기 연방죽골은 찾어낸 것이 지리학적으로 찾어낸 건 뭐냐먼 그 산이 뚱그스름헌데 바로 옆에가 저수지가 있고 뚱그스름헌데 거기에다가 어떤 분들이 묘를 썼어, 이가들이 썼는데 연방죽골에 연이 피었었디야. 그거뿐이 유래를 찾을 수가 없었어.

(지도를 놓고 봤을 때 일곱 골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마을 좌측에 ①붓당골 ②갱골 ③토랑골이 있고, 마을 우측에 ④오루골 ⑤가막골 ⑥연방죽골 ⑦셋터골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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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칠목제는 어째서 칠목제입니까?

A1 : 칠목제도 그 부락이 하나, 용머리 위에 부락 하나가 생성이 됐었어요. 일곱 칠자 쓰고 그 나무 목자를 썼잖어. 근디 칠목은 목사가 일곱이 나오야 하냐, 저 목수가 일곱이 나오야 하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목수만 일곱이 나왔어, 그 마을에서.

B : 그 칠목제에서 목사나 목수가 나온다고 했는데, 결국 나온 사람이 목수 일곱이었다―.

A1 : 아까 그 동산 얘기허셨죠? 용머리. 용머리를 안 잘랐으면 목사가 나온디야. 용머리를 잘라서 목수가 나왔다, 일곱이 나왔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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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칠목제에서 도깨비가 나왔다,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그게 저 장기천 씨라고 그분이 장론데, 그분이 그때 당시엔 장로가 아니었고 교회를 다니는 분이여. 근디 그분이 구루마를 끄셨디야, 구루마. 웅포가 배 들어오니까 짐을 싣고 나가서 배달해 주는 거야. 그런데 칠목제에 오니까 그분 구루마를 들었다 놔버리드라는 거여.

B : 누가 구루마를 들었다 놨습니까?

A1 : 도깨비나 귀신들이 든 거지. 그리서 거기서 귀신들이 그렇게 또 많이 현 거고, 한두 번 당헌 사람이 아녀, 거기에서. 말이 또 가다가 우뚝 스드라는 거여. 말이 가다가 우뚝 서서 그리고 귀신이 나타날 때는 귀가, 그 짐승 귀가 쫙 막 솟구친다는 거지. 안 갈라고 허고. 그 귀신이 나타나면 안 갈라고 헌디야.

A2 : 나도 인자 들은 얘긴디 칠목제에서 웅포 쪽으로 쪼끔 내려가먼은, 백매타 정도 내려가먼은 방죽이 하나 있어, 거그가. 저수지, 쉽게 얘기혀서 쪼끄만 헌 거. 그 저수지가 상당히 무서운 저수지다 그런 말을 들었어. 왜냐먼은 지금 저 우리가 지금 현재 지금은 개발이 많이 되야가지고 길이 넓지. 옛날에는 길이 그렇게 넓지 않었어. 않여가지고 그 저수지만 지내갈라먼은 분명히 길 한가운데서 말이여 그 귀신이 말이여 참 뭐여 좀 심장 약허거나 인자 좀 이렇게 노인들 쉽게 얘기혀서 말이여 이런 사람들은 많이 유인을 헌다는 것이여, 귀신이. 그 유인해가지고 들으가서 죽은 사람이 몇 사람 있다 소리도 들었어. 길로 이 사람을, 저수진디 길로 안내해가지고 가먼은 길이 아니라 저수지란 말여. 확실헌 근거는 아닌디 내려오는 전설로 내가 들은 전설로 봐서는 인자 그렇게 거그서 저수지가 무섭다 소리를 들었어요.

B : 옛날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A2 : 그러지요. 그리서 거그서 인자 처녀가 시집 못가고 죽으먼은 그 도로 가운데다가 묻었단 말도 있어. 쉽게 얘기혀서 처녀귀신 아녀. 그리가지고 그 한가운디다 묻었어요, 도로 한가운데다 묻었단 말이 있어.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허는고니 이런 얘기를 안 헐라도, 인자 이건 개인적인 얘기여. 우리 저 형님이 6.25때 군에 가셔가지고 전사를 했어. 인자 총각 아녀. 20살, 21살 먹은 사람인디 그래가지고 총각인디 처녀허고 짝을 지어줘야 하는디 처녀가 누가 있어. 없어가지고서나 그것도 죽어서 한이 된다고 해가지고 어떤 처녀허고 같이 결혼혀가지고서나 길 한가운데다 시체를 묻은 것이 아니라 거그다가 자기 영혼을 묻었단 말도 있어. 우리 형님을 거그다가. 저수지가 이렇게 웅포 가니라먼 저 좌측에 있어. 웅포 여기 칠목고개에서 쫌 내려가먼은 바로 밑이가 저수지가 있어. 그리서 거그가 그렇게 해서 거그가 무섭다, 그 올라먼은 머리가 쭈뼛허다 허는 사람들이 거그가 많이 있다고.

A1 : 옛날에는 그렇게 병으로서 처녀들도 아마 죽은 거 같어. 근디 처녀나 총각이나 이런 죽은 사람은 보통 이제 거기에다가 짝 맺혀서 묻어가지고, 한두 개가 묻은 게 아니고 솔찬히 많이 묻혀있는 걸로 알어.

B : 다른 마을에서도 그런 걸 했습니까?

A1 : 다른 지역도 그려. 그때 시절은.

B : 그런데 왜 그런 무덤을 길 한가운데다 만들었을까요?

A1 : 그게 도로 한가운데다 묻어야만 되야.

A2 : 한을 풀어주는 의미여, 그게.

A1 : 그런 게 그런 귀신이 나타난다 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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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근처에 명당자리는 없습니까?

A1 : 압메 있는 그 산이 묘가 있어. 거그 묘를 쓸 적에 여그 앞에 있는 그 산이 이렇게 길쭉허니 산이 있어. 그거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 좋게 그게 송장이라 이거여. 사람이 죽은 송장. 그러고 여기는 학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학성국이다 이 말이여. 여그 압메가. 학의 형국을 띠고 있다 이거여. 그리서 저그서 묘를 썼는디 그 학이 여기 있는 그 자기 밥을 먹기 위해서 여기를 송장날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듣기는 그렇게 들었어. 그래서 여그다(송장날) 묘를 쓴다거나 집을 짓고 산다거나 허먼은 그 집은 좋지를 못허다. 이런 전설을 내가 들었어. 그 저 압메라는 디 가서 그 묘를 쓰는디 거기가 형국이 학성국이다, 긍게 그것도 뭣을 먹어야 살 것 아니냐 이 말이여. 그래서 그 학성국이로 그 유래가 나왔는디 거그서 먹이를 먹을랑게 거기다(학성국) 묘를 써가지고 송장날 같이 인자 말을 채운 것이여.

B : 그런데 학이 송장을 먹는다는 얘기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A1 : 이게 지리학적으로 인자 두 가지가 해명이 나와. 양반 지관은 학성국을 보고, 쪼매 거만헌 사람들은 까마귀 형국이라고 그려. 그먼 학은 송장을 안 처먹잖어. 근디 까마귀는 여그 송장날을 처먹잖어. 양반헌 사람은 학성국이라고 불러주고, 우리가 듣기 좋게. 그리고 까부는 사람들은 이게 까마귀 형국이다. 그서 이 묘를 쓰기 위해서 송장날이 생겼다. 옛날부터 까마귀는 송장을 파먹는다고 혔잖여. 그리서 이 혈이 생겼응게 지금 이게 학성국이고 송장날이고 그려.

A2 : 여그다가(학성국) 지금 묘를 2구를 썼어요, 2구를. 써가지고 이게 소룡마을에서는 젤로 명당자리라는 디여. 혀가지고 함라 이씨들이 참 부자로 잘 살었어요. 이집천이 네, 이집태 네, 그분들 묘를 여그다 써가지고, 조상들 묘를 써가지고 이집천 씨는 내가 생각해도 어렸을 때 말타고서나 그 산이까지 직접 올라온 사람이여.

구술사진





임규덕


좌측부터 임규덕 장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