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함라면 > 금곡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라면 > 금곡마을
구술자 오명룡(1950)남자
구술자 이진만(1947)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구술일시 2013-02-18
비고 면담장소 : 함라 금곡마을 오명룡씨 자택
면담시간 : 2013년 2월 18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금곡(金谷)․새터 : 금곡의 본 이름은 ‘쇠실’이었는데 그것을 한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금곡마을 : 마을 뒷산에 금맥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새터 : 타지역 사람들이 이사 와서 붙여진 이름.
- 물탕골 : 옛날부터 물이 잘 나와서 마을사람들이 목욕탕으로 많이 이용했다고 함.
- 섬골 : 예전에 근방이 바다였을 때 섬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수동마을 :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
- 곰개제 : ‘웅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
- 육모정 : 마을에 오래된 정자.
- 말빼기 : 옛날에 말을 묶어 놓았다는 자리.
- 노소 : 마을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곳.
- 박상골 : 박씨 정승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새우젖뜸 : 옛날에 새우가 많이 잡혔다고 함.
- 똥바위 : ‘웅포’로 넘어가는 길에 있었다는 바위.

2) 전설 및 민담 :
- 행동마을 은행나무 : ‘함라산’에 금이 있어서 한쪽의 나뭇잎만 금빛을 낸다고 함.
- 용샴 : ‘수동마을’에 있는 샘으로 ‘웅포’의 어느 한 마을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곳에 용이 살았다고 함.
- ‘수동마을’과 허균 : 허균의 유배지이었다고 함.
- 함라 삼부자 이야기 : 함라 삼부자가 부자가 된 사연.

3) 민속 :
- 기우제 : ‘봉화봉’이라는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음식 : ‘함라’ 미나리가 유명했다고 함.

4) 철도 :
- 삼부자와 철도 : 삼부자의 반대로 ‘함라’에 놓여야 하는 기찻길이 ‘함열’에 놓아지게 됨.

구술채록

A1 : 오명룡(64)-1950년
A2 : 이진만(67)-1947년

B1 : 박태건
B2 : 이호형
B3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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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이름이 왜 ‘금곡’마을이 되었습니까?

A2 : 글자 그대로는 쇠 금자 골 곡자거든요? ‘금곡’마을이라고 했는데 저도 모르고 구전으로만 들었어요. 저 뒷산으로 가면 금맥이 있어가지고 ‘금곡’이라고 했다는 그런 구전만 전해 들었지요.

B1 : 그 금을 캐던 동굴이 있었나요?

A1 : 그 굴이라는 곳은 없고 그전에 그... ‘김택수’라는 양반이 금광을 하고 그랬어요. 그래 가꼬 거기서 채취도 좀 해왔는데 근데 조금 빛을 못 보고 그런 금광, 그 자리도 있어요. 저-쪽 ‘수동’쪽으로 가야 되요.

B2 : 금광과 관련 된 전설이 있나요?

A1 : 아- ‘행동’이라는 마을이 또 있어요. 여기는 ‘금곡’마을이고 거그 가면 지금도 은행나무가 큰- 은행나무가 있고 그런 옛날 거시기가 있지.

B2 : 그 전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A1 : 그것은 잘 모르고... 아- 아셔요?

A2 : 그 은행나무가 뭐 ‘함라산’ 금이 있어가지고 그 금빛이 빛난다고 그런 구전만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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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라산’ 위에 봉화대(烽火)가 있다고 하던데요?

A2 : 그 봉화대가 50년전 까지만 해도 그 봉화대라고 있었는데요. 근데 지금은 없어 졌어요.

A1 : 여기 ‘금-곡’이라는 데가 또 뭐가 있냐면, 옛 이름이 ‘새터’라는 이름이 있어요. 근데... ‘새터’가 어떻게 ‘새터’가 되었는 가는 좀 알려주세요.

A2 : 아 인제 그전에는 인구가 희박할 때는 사람이 안 살았었는데, 인제 인구가 좀 늘어나다 보니까 새로 들어와 살아서 ‘새터’ 그러니까 ‘신기’ 어- ‘신기’라는 마을이 전국에 많자나요. 그와 비슷해요.

A1 : 그리고 여기가 또 뭣이 주로 이렇게 골자 들어가는 끝자리가 골자 들어가는 것이 많아요. ‘박상골’ ‘숨골’ ‘물탕골’ 뭐뭐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시면 좋지.

A2 : 아 ‘물탕골’이라는 데는 저기 인제 물이 엄청 많이, 50년대 까지만 해도 물이 많이 내려왔었어요. 그래가지고 이 근방 주민이 많-이 와서 여자들이 낮에도 그냥 수 백 명씩 목욕하고 그랬었어요, 그런 ‘물탕골’ 그런데 50년대 지나면서부터 산성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로부터 물이 안 내려요.

A1 : 왜 또 ‘숨골’이라는 데는 또...

A2 : 아 ‘섬골’이라는 것은 인제 그전 옛날에는 그 간빙기 때가 있었는가 봐요 그때는 인제 이 낮은 지역은 전부다 바다였었고 인제 높은 대만 섬으로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섬골’이라고 그게 구전으로만 전해 들었죠 근데 사람들은 ‘슴골’ ‘슴골’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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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주변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A2 : 그 ‘수동’이라는 마을이 있거든요? 여기? ‘함열리’ ‘수동’ 거기는 인제 목숨 수자 골 동자거든요? 왜 그러냐면 인자 그 마을 사람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장-수를 했어요. 오래 살았어요. 그래서 ‘수동’이라고 했죠.

B2 : 무슨 비결이라고 있었나요?

A2 : 비결은 인제 그전에는 그 물이 엄청 내렸었어요. 산에서 그 우물이 없이 그 물만 떠나 먹었어요. 그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수 그 물이 그렇게 좋아서 오래 살았다고 그랬었죠.

B2 : 이 근방 일대가 전반적으로 물이 잘 나와서 살기가 참 좋았을 것 같네요.

A2 : 예예 저 그 조금 가면 ‘물탕골’ 이-쪽은 이제 ‘수동’이라고 해가지고 그 ‘양진당’이라는 골짜기에서 그-렇게 물이 많이 내렸었어요. 그리고 저-쪽에 ‘육모정’이라는 골짜기도 물이 많이 내렸었고 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엄청 목욕도 많이 하고 역시 그 ‘육모정’이라는 그 골짜기에서는 남자들이 많이 목욕을 많이 했고 낮에 ‘양진당’이라는 골짜기에서는 밤이면 처녀 아줌마 할머니들이 수 백 명씩 나와서 목욕을 하고 그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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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 있으신지요?

A2 : 아 ‘용샴’이라고 그 ‘수동’에 있거든요? ‘용샴’ 용 우물 그러니까 저 쪽 ‘웅포’ 하고 그 굴이 마창 나가지고 그 용이 살았다고 그렇게 그런 구전으로 들었죠.

B1 : 용이 마창 났다는 말이 무슨 말씀이시죠?

A2 : 그런 게 ‘용샴’하고 저 쪽 그 ‘웅포’쪽에 또 우물이 마창 나있었다고 그런 구전만 전해 들었었죠.

B1 : 우물이 통해 있었다는 말씀이시죠?

A2 : 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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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주변에 ‘곰개제’라고 있던데요?

A2 : 옛날에 장터가 열리면 ‘곰개제’ 거길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넘나들었어요. 왜냐면 그전에는 이 ‘군사’ 바-로 그 바닷가에도 그물을 치면 고기가 어마어마하게 잡혔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너무너무 고기가 많이 잡히니까 그 싣고 이 ‘웅포’ 그 ‘곰개제’에다 푸고 ‘강경’에다 푸고 그랬었어요.

B2 : ‘군산’에서 잡아서요?

A2 : 예예- ‘군산’ 바로 앞에서 그러니까 그 생선 배가 들어오면 엄청나게 그냥 막 고기를 푸고 그러니까 이 쪽에서 계-속 그 이고 지고 고기를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엄청 많았었어요. ‘곰개제’ 고개라고.

B2 : 옛날에 장보러 다니는 사람들한테 마을 어린 애들이 장난도 치고 그랬나요?

A2 : 별로 그러진 않았어요.

A1 : 아- 여기가 ‘함라 중학교’가 여기 있어가지고 옛날에는 그 ‘웅포’사람들 ‘성당’사람들이 이리 다 학교를 다녔었어요, 그리고 ‘이진만’씨가 얘기하기로는 그 올레길 둘레길이가 지금 생겼는데 그 길이 ‘수동천’에서 그 ‘육모정’이라는 데가 또 있어요 ‘육모정’이 그전에 있었는데 다 부셔져가지고.

A2 : ‘육모정’이라고 여섯 육자 저저저 기둥 여섯 개라고 해서 ‘육모정’이라고 했었어요.

A1 : 그리고 어째서 저기를 ‘말때기’라고 했는가? 그 ‘말때기’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옛날에는 거기서 말들을 묶어 놓았다가 무엇을 실어가고 ‘곰개제’로 이렇게 오면 그 뭐야 소금 같은 것 젓갈 같은 것 받고서 실어가고 실어오는 그런 ‘말빼기’라는 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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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 ‘말빼기’라는 곳이 어디에 있나요?

A1 : 그 ‘교동’이 아니 ‘행동’이라 데가 있어요. 아까 은행나무가 있었죠? 그 사연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고 그리고 ‘허균’이라는 분이 ‘홍길동전’도 썼던 그 터가 있었고 그 했었던 사람도 유배를 와 가꼬 유배를 와서 살았던 거시기가 있어요.

B1 : 거기가 장소가 있습니까?

A1 : 장소가 인제 무너지고 없지 근데 ‘수동’마을에 있었데요. 그리고 ‘노소’라는 디가 옛날에 인자 지금은 쉽게 경로당이라는 말이 있죠? 경로당 보다는 옛날에 지금 ‘노소’라는 디가 있고 또 향교가 있고.

B2 : 옛날에 ‘금곡’마을에 향교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A1 : 옛-날에는 있었어요.

A2 : 아니에요 ‘교동’마을.

A1 : 아니라니까 옛-날에 지금 영태네 소막자리 있자나여? 거기 기왓장이 무지무지 나왔자너 거기가 옛날에 있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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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라’에 유명한 삼부자 이야기가 있던데요?

A1 : 그것이 ‘이배원’씨는 원래 저기 거시기에서 살았더만 그려 ‘군산’ ‘임피’?에서 어 ‘임피’에서 가는 도중에 여그 ‘함라’라는 디가 인심이 좋고 고을이 좋으니까 그냥 참 지나가는 사람도 그냥 밥 한 그릇씩 얻어먹고 자고 가도 그냥 주고 하여튼 인심 좋고 거시기 한데는 ‘함열’읍내라고 그랬었자나요? 옛날부터는 ‘함열’읍내 인심 좋기로는 그러다 가다가 어떻게 누룩장사를 해 가꼬 ‘이배원’씨는 부자가 되었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누룩으로 술을 빚어가지고 팔아서 그 사람은 만석꾼이 되었고 또 저 거시기는 어느 스님 이이야기를 해가 지고 어디 따가 조상 묘를 쓰라고 한 게, 섬을 하나 만들라고 해 가꼬 집을 지어 놓고 한 게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는 디 그게 증거가 다 있었는데 집이 다 푸셔 졌네, 여그 저 ‘황등’으로 쭉-나가다 보면 첫 방죽이 있어요. 그러면 가운데가 옛날에 섬이 있었어요. 이렇게 동그란 섬이, 섬이 있어 가꼬 거그따 버드나무를 심었고 그 바로 앞에가 제실이 집이 한옥집이 그 다 부셔지고 인자 지금은 이맨한 거 하나 남았네 그 다 부셨더라고 거기가 있었어요. 그래 가꼬 그 집을 짓고서 어느 스님이 해 가지고서는 그래서 그 저 뭐야 그 사람이 만석꾼이 되었고.

A2 : 그 저 ‘김병순’씨네 아부지가.

A1 : 에 아부지가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만석꾼이 되었고 거시기는 조씨는 저기 ‘조해영’씨는 내가 그 듣는 말로는 그 뭐야 ‘조해영’씨 할머니가 ‘정읍’ 그 거기도 겁나게 부자드만 그려 만석꾼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군수자리를 해 먹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 시집을 와 가꼬 어떻게 혀서 부자가 되었다고 인자 그런 말도 있고 그러드만.

A2 : ‘김병순’씨라고 만석꾼 제일로 부자집이 있었거든요? 저 ‘수동’에? 그분이 ‘김해균’씨라고 그분 아들이 ‘김해균’씨 인데 일제시대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좌익사상이었어요. 그래가지고 북으로 넘어가서 높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말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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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옛날에 마을에 비가 안 오면 기우제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 아 기우제는 지냈어요. 그게 지금 ‘봉화봉’이라고 있거든요?

A2 : 거기서 기우제는 많이 지냈죠. 50년 대 까지만 해도.

A1 : 비가 안 올 때 ‘함열면’ 전체에서 ‘노소’에서 어른들이 모시고 가서 불을 놓고 기우제를 지내죠.

B2 : 혹시 주변에 또 다른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 여기 저 ‘박상골’ 여기 중학교는 왜 ‘박상골’이라고 했는가?

A2 : ‘박상골’ 그 옛날에 ‘박정승’이라고 하시는 분이 살았다고 해서 ‘박상골’이라고.

A1 : 정승이 거기서 살기 힘들 텐데.

A2 : 그 옛날에, 여기 가면 ‘새우젖뜸’이라는 데가 있거든요? 그게 새우젓을 아마 새우가 엄청 잡혔던가 봐요.

B1 : 위치가 어디 인가요?

A2 : 여기 바로 ‘금성리 간성’ 거기가 예전에는 ‘새우젖뜸’이라고 했었어요.

A1 : 근데 저기는 어째서 ‘탑고지’라고 하는거여?

A2 : 탑이 있었다고 그런 말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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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 기찻길이 놓일 때 ‘함라’에 양반이 많아서 반대도 심했을 것 같은데요.

A1 : 그때 일정시대 ‘함열읍’을 지나서 ‘강경’으로 해서 이렇게 ‘나바우’ 이렇게 해서 가야할 기차역이 있었데요. 그랬었는데 삼부자 집들이 얼마나 돈이 많고 거시기 했는가 일본 놈들한테 싸 질머지고 가 가꼬 주면서 땅 울리니까 양반들은 땅 울리고 시커먼 연기를 내고 가는 것은 상놈들이 타고 댕기 것이지 우리는 말을 타고 댕기고 댕기는 데 놓지 말라고 아부를 해 가꼬 기차역을 저 ‘함열리’에 놓게 되었데요.

A2 : 원래 그 일본사람들이 ‘함라’로 해가지고 ‘군산’으로 철로를 놓으려고 했었는데 삼부자들이 조상님들 뼈골 울린다고 철저히 반대해가지고 인제 다른 데로 밀어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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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명당자리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A1 : 이것이 명당자리가 ‘묵주형’이라고 하드라고요 아니 뭐야 ‘염주’ 스님 그거 근디 여기를 보며는 산등성이 이 짝으로 보며는 ‘똥바위’라는 디가 있고 ‘염주바위’라는 디가 있고 그거 알아요?

A2 : 그게 저쪽 ‘웅포’넘어 갈려며는 그저 꼭대기에 바위가 많이 있었는데 거기를 보고 ‘똥바위’라고 그전부터 불렀어요.

A1 : 아 근게 ‘염주바위’라고하는 것이 염주 큰놈이 있고 어쩌고 근게 그런 것을 물으려면 ‘조상호’씨한테 물어 봐야해.

B2 : ‘함열면’에서 오래된 것이 무엇이 있을 까요?

A1 : 그전에 향교 옆에 있던 은행나무가 무지무지하게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바람에 거기서 나무베다 사람이 떨어져 죽기도 하고 그랬어요.

A2 : 한 40년쯤 될 걸 그리고 ‘함라’에 고목나무가 많이 있었어요. 그 ‘수동’에 그 아주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그게 6.25 직전에 그게 울었다고 그리고 바로 6.25가 났다고.

B1 : 그 나무가 어디쯤에 있었나요?

A2 : ‘수동마을’에요 그 ‘육모정’ 가기 직전에 있었어요.

B1 : 지금도 있습니까?

A2 : 아니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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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기 마을 주변에 ‘숭림사’라는 절이 있던데요.

A1 : ‘숭림사’라는 그 이름은 ‘소림사’에서 이름을 따가지고 이름을 그런 식으로 지어가지고 ‘숭림사’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말이 있지 뭐.

A2 : 그전에 어려울 때도 그 이고 지고 쌀을 많이 가따 줬어 중한테 그러니까 중이 어떻게 했냐면 그 쌀을 이 주민들한테 곱장리로 이 거시기 해가지고 많이 거두어들이고 그랬어.

B1 : 옛날에 스님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있었나요?

A2 : 예 ‘숭림사’에서 좀 있었다고 그런 일이 어렸을 때 전해만 들었죠.

B1 : 그 ‘석산’하고 ‘홀산’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신지요?

A2 : ‘흘산’이라고는 저 쪽 ‘함열읍’인가 지금? 그 쪽이 ‘흘산’인데.

A1 : 그 ‘벼락산’이라는 디가 있자녀, 그리고 저기 ‘화산’이 있고.

A2 : ‘화산’은 저기 ‘웅포’.......

A1 : ‘벼락산’이라고 있어요. 무슨 벼락을 때려서 ‘벼락산’이라고 했는가? 그리고 그 앞에 ‘화산’이 있고 지금 ‘화산’이라고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또 뒤에 산을 보고는 뭐라고 했지?

A2 : ‘곡식말’이라고 했지.

A1 : ‘곡송골’ ‘곡송골’이라고.

A2 : ‘곡식말’이라고 했지.

A1 : 아 거기하고 또 저기 제를 무슨 제라고 하지?

A2 : ‘울제’라고.

A1 : ‘울제’! 지금 ‘울제’가 ‘백제도로’가 생겨버렸어요.

A2 : 근데 그것도 왜 ‘울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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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들어보신 전설이 있는지요?

A1 : 하여튼 그- ‘김병순’씨 그 뭐야 저 ‘김안균’씨는 무엇을 잘 했던 가 봐요 그 할아버지 때 그런 게 스님이 가면서 어느 곳에다 집을 짓고 어느 거시기에다가 이렇게 해서 섬을 만들으라고 해가지고서 그렇게 해서 만석꾼이 되었다는 소리가 있어요. 그건 들었어요.

A2 : 그 ‘김병순’씨 아버지인가 누군가가 재산을 이룬 양반이 인제 말을 인제 말 꾸마를 끌고 가는데 어떤 스님이 다리가 아프다고 태워 달라고 해가지고 태워줬는데 그 스님이 고맙다고 여기다가 묘를 쓰며는 아주 엄청난 큰 부자가 되는데 이 “그 옆으로 인제 기차가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며는 망할 것이다.” 그렇게 하더래요. 정-확히 맞았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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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함라’에 특산물이 무엇입니까?

A1 : ‘함라’에서 나오는 특산물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한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함라’에서는 미나리가 있었다고 그래요 ‘함라’ 미나리가 특산물이 있었는데 그 임금님한테 받쳤던 미나리 인데 근데 그것은 속이 꽉 찼어요 지금 미나리는 속이 비었자나요? 근데 그것은 속이 비지 않고 꽉-찬 미나리 그랬었다고 해요.

A2 : 그리고 파를 많이 했었지 그래서 파적은 이 ‘함라’가 원조거든요? 파적이 원조에요 ‘함라’가.

B1 : ‘함라’사람들이 주로 해먹던 요리가 무엇이 있는지요?

A1 : 신선로를 먹었었죠.

A2 : 그리고 파전이 다른 곳에서 하는 파전이 아니고 파적이 원조죠 ‘함라’가, 고기하고 파 반절을 대 꼬쟁이로 꽂아서 지지고 굽고 맛이 기가막히게 만드는 걸 원조가 ‘함라’에요 삼부자 집에서도 해먹었고.

B1 : 좋은 정말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오명룡


이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