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웅포면 > 상제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웅포면 > 상제마을
구술자 엄시상(1948)남자
구술자 엄병웅(1940)남자
구술자 엄기억(1937)남자
구술자 엄봉식(1947)남자
구술자 김순애(1943)여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25
비고 면담장소 : 웅포면 상제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5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상제 1구(上帝一)․나루세․양지편․잿배기 : 상제는 제석리의 윗 동리이므로 붙인 이름.‘나루세’는 나루터에 가는 길가로 ‘나룻에→나루세’다. ‘세’는 ‘ㅅ에’로 처격조사 ‘에’를 고정된 명칭으로 여겨 이루어진 것.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상제마을 : 500년 전통을 가지공 있는 마을.
- 장승백이 : 정승이 살던 곳.
- 덕절 : 과거에 절이 있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금강의 사고 : 금강에서 기선이 나올 때부터 사고가 많이 나서 넋을 많이 건짐.
- 콧등골 : 콧방귀를 잘 뀌는 사람이 있어서 콧등골이라고 함.
- 물로고개 : 물로고개라는 말이 과거부터 있었으나 아무도 뜻을 몰랐음. 현재 물로고개가 수로가 되었기 때문에 다들 수긍함.
- 용두마을의 양수장 : 용이 물을 잘 다루기 때문에 용두마을에 양수장이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
- 상제봉조의 명당 : 상제봉조의 명당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발견하지 못함.
- 안산 : 양산이라고도 불렀으나, 산이 마을을 안고 있는 형태가 안산이라고 함.
- 이무기 : 비가 많이 오면 금강에 물이 구르듯이 내려오곤 하였는데 이를 보고 이무기라고 함.
- 성당의 당산제 : 성당의 당산을 복원하다 나무에 손을 댔는데, 그 해 이름에 ‘영’이 들어가는 사람 다섯명이 죽었음.

3) 민속 :
- 샘 : 마을의 샘이 되었으며, 몇 개는 바다의 영향으로 짰음.
- 술멕이 : 칠월칠석날 술멕이 행사를 하였음.

구술채록

A1 : 엄시상(66)-1948년
A2 : 엄병웅(74)-1940년
A3 : 엄기억(77)-1937년
A4 : 엄봉식(67)-1947년
A5 : 김순애(71)-1943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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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상제마을의 상제는 무슨 뜻입니까?

A3 : 일단 여기가 웅포가 아니었고 곰개여 곰개. 곰 웅자하고 개 저 나루 이런거 포구를 의미허는 곰개 혀가지고서는 웅포. 어 그래서 웅포라고 이렇게 했었고 그 전에는 곰개라고 혀가지고 인자 익산으로 혀서 곰개가 돼 있었어. 그래서 곰개 원래 소재지는 1800년대에는 약 한 300호가 거기에서 거주를 했었다 그러드만. 그러믄 그 때로 잡으면 도시 형태로드만 도시 형태. 그러면 장수 진안 무주 이쪽으로 소금같은 것이 그 곰개나루를 거쳐가지고 그 쪽으로 다 소금을 져 날러 져가고 했던 것이 바로 곰개고. 요 근래에 와가지고 인자 웅포라고 개명을 혀가지고 인자 한 뜻으로 혀가지고 웅포. 그래가꼬 여기는 상제마을.

A4 : 옛날에는 제석. 제석.

A3 : 옛날에는 여기가 제석이 열 두동네라 그랬어요. 그래서 상제 하제 인자 우리가 여기 상제고 하제고 매곡 지종 이쪽으로 해 가지고서나 외부로 헐 때는 제석.

A2 : 옛날 이름은 제석이라 했다고.

A1 : 여기 여 폐교 밑으로가 하제.

A3 :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른들로 한테 들은걸로는 이 동네 형성은 약 한 500년 쪼끔 넘지 않았나 싶어요. 왜냐고 보면 여기 김씨네들이 있는디 한 17대조가 여기에서 거주를 했어요. 그리고 인자 우리 엄씨네들은 한 11대조가 여기서 거주를 했고. 여기 여 김씨네 이씨네 엄씨네가 주로 인자 저기를 혀가지고 했는데 그거 이상의 인자 동네가 형성되었다는 표시가 또 있는데 몇 해 전에 이 쪽에서 손댈 때 옹관묘가 나왔었다고. 옹관. 그것 나온걸로 봐서는 즉어도 한 1000여년 거진. 예 그 정도 됐다고 뵈야지 않아요? 그리고 저쪽에 칠성산 우리 동네 산인데 그 전에 어떤 사람이 거기서 인자 독을. 돌도 상당히 귀했다고. 그래서 돌을 팔라고 산을 팠는데 거기에 석실이 나왔었어. 석실. 이게 이렇게 돌을 쌓아가지고 묘를 만들어 놨드라고. 근디 인자 그 돌을 빼다가들 그 사람이 판 사람이 마당을 만들고 똘을 만들고 이렇게 했다고. 그런걸로 추정헐 때에는 굉장히 오래된. 동네 형성이 굉장히 오래되지 않았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이여. 그래가지고 해방 직후에는 1800년대에는 그렇게 많은 인구가 없었고.
동네 형성이 굉장히 오래 됬다 이렇게 허고 싶고. 근데 성씨들이 여기에서 정착한 걸로 봐서는 약 한 5,6백년 이런 정도 됐지 않냐 이렇게 추정을 헐 수가 있고. 인자 1800년대에 일제가 들어오면서 그 사람들이 이 땅을 정리를 많이 했어요. 담옥(다목?)이라는 사람이 이 앞에 있는 산이 담옥산(다목?)이라고 인자 그랬단 말여. 에 일본이 진출을 허면서 그 산이나 또 들. 이 뒤에 보면 들이 상당히 금강을 따라 있었는디 담옥(다목?)들이라고 혀가지고 거기에 인제 땅을 소유를 해가지고 지주를 많이 했단 말여. 인자 그 이전에는 여기도 지주들이 대충 있었으요. 그랬는데 일제가 들어오면서부터 그 사람들이 주로. 긍게 금마에 있던게 소병권이라고 그 사람이 농장을 또 가지고 있었고 이렇게 혀가지고 양분으로 혀가지고. 이 동네 들을 다 차지허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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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이 샘은 몇 개 정도 있었습니까?

A3 : 샘? 그 전에 우물. 그 전엔 우물이 많이 있었죠 동네에. 에- 지금 몇 개라고 하면은. (서로서로 샘이 몇 개 인지 세고 있음) 열 개도 넘었지. 열 개도 넘었어. 그런데 그렇게 동네가 형성이 되면서 교회를 세웠는데 인자 1906년도에. 107년 됐응게 1906년도에 교회가 열로 들왔는데 근데 교회 형성이 어떻게 됐었는고니 구암교회가 있었어요. 군산. 구암동 구암교회가 있었는데. 근데 그 때는 육상 교통보다도 해상 교통이 좋았었잖여. 그래서 금강 따라서 여기서 군산까지 말하자믄 교회를 다녔어. 그렇게 해가지고 교회문을 일찍 받아들였지.

A2 : 여객선이 세 개가 왔다갔다 했어.

A1 : 그 때는 기선이라 했지 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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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그리고 아까 인자 지명을 얘기했는데 그건 우리도 몰르는데 이 쪽에 장승백이가 있단 말여. 장승이 있었지 않냐. 장승백이라고 했을 때 장승이 있었지 않냐. 하는 추정이고. 덕절이 있어 덕절. 그러니까 거기에 절이 있지 않냐 하는. 그러니까 추정이지 우리는 못 보고.

A2 : 그 덕절 허는디는 얼마전까만 해도 벽돌 뭐 기와 깨진 것 나왔어요.

A4 : 그리고 나루터가 있어가지고 배를 타고 장을 보고.

A1 : 교통이 없을 때는 주로 나룻배를 해서 부여군 그 양화장이라고 각개장이라고 했거든요? 거기를 주로 우리가.

A3 : 뭐 각개장 댕긴 것은 최근 일이지만 그 전에 저짝에 가보면 아는데. 거가 인자 들이 있거든. 들이 있었는데 그 들이 전부다 강이었었대. 그 이씨네 집 뒤. 이씨네 집 뒤가 거기서부터 나루를 타고 그렇게 했었대. 그런데 인자 말하자믄 어른들이 헌 말이고 그러는데. 거기께는 그 전에는 조개 굴껍데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굴껍데기 같은 것이. 거가 다 강이라 그렇게 인자 강물이 상당히 높았었던가비여. 그래가꼬서는 거기까지 강인데 인제 몰려가지고는 퇴적이 되가지고 논으로 퇴적 되고는 들이 탄생이 된 것이고. 거기까지 강이 있었다고 그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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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물이 열 개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강물의 영향으로 물이 짜진 않았습니까?

A3 : 약간 물이 대부분은 짰고. 근디 우이로 싱건놈이 나올 때 싱겁고. 그 윗샘 물이 그 하교샴이.

A2 : 그리고 그 전에는 논 용수를 여기를 보를 막어가지고 여기다 물을 잡아서 보안이라고 했어. 보 안. 보를 막은 안이라고 해가지고 보안이라고 물이 엄청 많이 집수량이 많아가지고 그 물을 이용해서 이 들판을 농사를 지었어요. 그서 옛날에 여가 강인 줄 알아요. 사람들이. 외부 사람들은 그 제석 앞이라믄 제석 앞이서가 강이었지 그래요. 그런데 강이 아니고 물을 보를 막어가지고 농업 용수를 확보를 했지.

A3 : 겨울에만 저수를 했어요. 겨울에만 저수를 해서 봄에 이용을 했지.

A2 : 그리고 옛날엔 막 저 하직근방에 가서 이 물을 터면 여기가 고기가 버글버글 했어요. 고기가. 강에서 올라와가지고 기 게. 말하자면 게. 그러면서 뭐 민물고기가 버글버글 했어요.

A4 : 장어니 뭐니 소위.

A2 : 하여긴 요즘에 하구둑을 터서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근데 사실은 이 근방 사람들은 그 놈을 터서 물고기도 올라오고 강도 좀 청소가 짠물로 청소가 되고 이렇게 허는 것을 우리가 생각헐 적에는 일리가 있는 거시기여. 서천군에서나 부여군 쪽에서는 이 강 하구뚝을 트자고 했쌌는게비더만. 이 익산도 일부에서는 트는 것을 원허고 있는가보더구만.

A4 : 근디 그 농업용수 그런 것 땜이 좀.

A3 : 그 전에 물이 유통이 될 때에도. 그 바닷물 해수가 유통이 될 때에도 오디까지가 짰는고니 저 이 우에 대봉안. 거기까지만 짠 물이 갔었어요.

A2 : 우에서 민물이 내려오니까 이놈이 밑이만 올라오지 짠 물은.

A3 : 바닷물허고 민물허고는 혼용이 잘 안돼요. 그 놈이 밀고 댕기고 그런다고. 그래서 짠 물이 밀고 올라면 민물이 위로 솟아가지고 대봉암 있는디까지는 싱겄어.

B2 : 고기는 많이 잡히곤 했습니까?

A3 : 여기도 해수가 유통될 때에는 물이 짜게 올 때는 그것들을 뱅애라 하는데 빙어 빙어. 그것이 여까지도 올라오고.

A2 : 조개도 여가 노란 조개가 버글버글 했었어요.

A4 : 짠물 없어지면서 조개 없어졌지 갈대밭 없어졌지. 갈대밭이 좋았거든요.

A2 : 여가 갈밭이 있어가지고 갈밭에 기가 쌔카만 정도로 있었응게. 그리고 노란 조개도 갈밭 뻘 모래에만 가도 굴르기만 하면 버글버글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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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금강을 건너다 사람들이 죽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A3 : 나룻배로는 그런 사고는 없었고 아까 전에 얘기 헌 그 배가 그렇게 다닐 때 한 번 엎어졌었지. 그 때 사람 많이 죽었지.

B2 : 그럼 넋을 건진다거나 하진 않으셨습니까?

A3 : 여기서는 그런 것을 비교적 실천허지 않고 곰개에서는 그 굿을 허고 그런 저그가 했었어요. 거가 인자 곰개 포구가 우리 나라 몇 째 안된다 하드라구요. 웅포 포구가 그렇게 컸다 그러드라구요. 긍게 상당히 많은 그 배나 이런 것들이 많이 혀가지고 거기에서 그 배에 대한 그런 그 고사를 지내고 굿을 허고.

A2 : 여기는 교회가 들어온 지가 오래 돼서 넋건지고 이런 것은 잘 허지 않고. 그걸 않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넋 건지고. 뭐 안믿는 사람들 보니까 지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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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콧등골은 왜 콧등골입니까?

A2 : 그거는 콧등을 잘 뀌는 사람이 살았다 해서 콧등골. 킁 킁 콧등을 뀌는 사람 있잖여.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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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그런 것은 인자 사람이 살면서 그 사람 유래에 따라서 지명을 붙인 것이지만 그 전 지명을 붙인 것을 보면 정말로 신기허게 잘 붙여진 디가 많다고. 그 온양이란 데 온천이 있고 여기 저 왕궁도 그러잖어. 전부 그게 지명에 따라서 온천 개발을 혀고 그렇게 하니까.

A2 : 여기도 물로고개라는 데가 있는디. 물로고개. 우리가 생각할 적에 어떻게 생각해서 물로고갠가 했는디 근래에 와가지고 지반공사 해서 거기를 굴을 뚫어서 물을 넘기더라고.

A3 : 긍게 그런 지명의 유래.

A2 : 그 물 넘어 오는 골을 만들더라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물로고개는 당치도 않은 소린데 지금은 물이 넘어 오고 있다고. 긍게 여기 저 또 조금 성당 용안쪽으로 가면 병목이라는 병목이라는 동네가 있는디 병모가지서 물이 나오잖아요. 근데 거기서 물을 양수를 해요. 물을 품어. 그것을 지명을 따라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병목이라는디가 물 양수장이 있어. 여기를 냄겨주는 양수장. 지금 여기도 용머리 가면 용안면 가면 용머리라고. 용두리라고 용두라고 그러잖여. 용두가 우리가 생각할 적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애도 용 머리거든. 용두거든. 근디 거기서도 물을 양수를 했단 말여. 긍게 용두 옛날부터 용이 물을 준다고 혔잖아요. 근디 그 용두에 가서 양수장이 생겨가지고 그 물이 이 근방까지도 왔단말이여. 긍게 그 지명을 따라서 무엇을 다 역사가 다 이루어지는 것 보면은 옛날 그 명사들이 이름을 짓는 명사들이 수백년 앞을 내다 봐가면서 그걸 짓는거 같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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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칠성산은 어디에 있으며 왜 칠성산입니까?

A2 : 칠성산 바로 요 위에. 요 뒤에.

A3 : 근디 거기는 거시기는 아마 우리가 생각할 때는 돌이 바위가 일곱 개가 있다고 해서 칠성산이라 했는가 했더라고. 그 XX네 집 뒤 거기 가서 바위가. 우리가 생각할 적에는 석산도 아닌데 그런 바위가 있으니까 그게 무슨 별똥별이 떨어져서 생긴 운석인가 어쩐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고니 그냥 흙산인데 그런 돌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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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럼 우리 마을에 명당 같은 것은 있습니까?

A3 : 여그가 상제봉조가 있다고 명당 책에 지리 책에 나와 있지요. 상제봉조. 근데 그 상제봉조는 못찾는데요. 그걸 찾으면은 명당을 쓰는데 명당은 아무도 못 찾는다고. 상제봉조라는 것이 여 마을에 있다고 해서 상제봉조를 찾을라고 지관들이 여기를 무한히 이 근방 산을 뒤지고 다녀가지고 막 암장도 들어오고.

A4 : 긍게 여기 산값이 많이 비쌌다 그러잖아여.

A3 : 막 투장도 하고 자기 부모님을 갖다가. 이렇게 한 흔적이 많이 있어요. 여기 여 하제 저 김학근씨라고 하는 사람이 투장을 남의 산이다가 했는디 내가 파묘를 허는디 가봤는디 밤에 갖다 묻니라고 사람은 이렇게 묻었으면은 돌을 갖다 우에다가 석관을 쓰는디 그냥 한 마디로 머리는 이만큼 나오고 여기서부터 눌러놨드라고. 그래가지고 파내라 해가지고 팠어. 배옥이네가. 그래서 밤에 투장을 한거여. 저 하제 거시기네가.

A4 : 산 주인은?

A3 : 산 주인은 거시기네요. 동산동 종팔네. 그래서 그 상제봉조를 찾니라고 투장들을 허고. XXX이라고 남의 산이다 썼는디 못찾아버렸어. 파묘를 갖다 썼기 때문에. 상제봉조를 찾니라고. 명지라고. 근데 그것이 자기 조상들 자기 뼈를 잘 모시라고 해서 써 있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 상제봉조를 찾기 위해서 자기 부모를 잘 모셨다는 얘기지. 근데 그 명당 자리는 어디가 긴지는 모르니까 혹시 이 자린가 긴가 해서 잘 모시기도 해서 그런 얘기 아녀. 말하고 보면.

B2 : 혹시 반대로 지형을 바꾸거나 하여 곤혹을 당한 일은 있습니까?

A3 : 여기는 종교가 있어가지고 비교적 그런 것에 대해서는. 뭐 약간 있었다 허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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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웅포팔경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A3 : 그게 말하자면 대봉암에 있는 그 솔을 얘기하는데 이 쪽으로는 상제로는 없었고 대봉암쪽에 있고. 팔경에 들어간 것이.

A1 : 그리고 바위쪽에 가면 고란초라고 있죠 대봉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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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혹시 강에 대한 기억은 많이 있었습니까?

A3 : 이 쪽에가 금강허고는 여쪽에는 떨어졌고 대봉암에 가면 저 동네에서 바로 저그가 닿고 항게. 그리고 충청도에서는 양화가 바로 동네 앞에 저기가 있고 하니까 거기들이 강에 대한 저기가 많앴지 이 쪽에서는 강을 이용한 것이 비교적 적어요.

B2 : 그럼 시장은 각개장으로 가셨습니까?

A3 : 각개.

B2 : 웅포는 잘 안갔습니까?

A2 : 에. 웅포도 장이 컸고. 성당도 장이 있었고. 난포장이라고.

A3 : 긍게 웅포나 함열이나 이런 데는 육로로 예를 들어 시간을 다퉈서 걸어가야 하잖여. 강경이나. 근데 양화는 각개장은 불과 얼마 아니면 배타고 간단말여? 배타고 가니까 각개장을 주로 많이 이용을 했지.

A2 : 거가 생선 종류가 많이 들어왔어요. 새우젓이른가 조개. 이런 해물이.

A4 : 개새끼 돼지새끼 그런 것들은 다른데서는 지고 못오잖여. 여기는 가찬게 그런 것들 사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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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에 대한이야기 도중)

A1 : 긍게 여기 우리도 들은 소린디 이 안산이라는 디가 있거든요 안산. 그 동네를 안았다 해서 안산인디 길을 내니라고 끊어놔서 동네서 여기서 인물이 안나왔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디. 근디 앙산 그러는디 안산이래요. 안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길을 내니라고 그 줄기를 끊어놔서 인물이 안나왔다 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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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다른 마을에서 익산의 세금 삼분의 일이 여기에서 나왔단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A3 : 예전에는 아까 말하면서도 내가 얘기한 바와 같이 소금 같은 것도 전부다 장수로 그리로 다 육로로 해서 지고들 넘어갔다니까. 그래서 여그가 웅포가 굉장히 컸지. 포구가 우리 나라 몇 대 항구에 속했으니까 굉장히 컸지.

B2 : 그럼 거기에 거상이나 객주도 있었을까요.

A3 : 그렇지 다 있고 그랬지.

A2 : 여기도 하제 순빙이라고 순식이 동생인가가 배를 부려가지고 큰 배를 부려서 그 순식이 동생이 배를 부렸어.

A3 : 곰개장이 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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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조사를 해봤더니 이 근방에 황금산이라 하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A3 : 이름을 황금산이라고 부른 데는 없고.

A2 : 금방앗간 맹산가서 금방앗간 있단 소리는 있었지.

B2 : 그게 무슨말입니까?

A2 : 거기서 금을 아마 일정 때 채취했는가비여.

A3 : 금산이라는 것은 없어.

A2 : 지금도 굴같은 것이 있디야. 지금은 다 폐되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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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기싸움을 하였습니까?

A2 : 여기가 그 전에 얘기 소리로는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여기 보를 물을 봄에는 트고. 농사를 지니라고 트고. 또 가을에는 물을 잡을라고 막는디 그것을 인자 제석하고 여기 상제허고 누가 막냐. 씨름을 했대요. 씨름 대화를 해가지고 우리 엄씨 집안에 엄장군이라고 허는 분이 계셔가지고 그 분이 항상 이겨가지고 그 보를 하제 사람이 하는 그 밑이 사람들이 막았대요. 그 보를. 씨름을 해서 지는 쪽이 막기로 허자. 논에서 필요하니까. 그래서 하제 사람들이 주로 막았단 말이에요 그거를.

B3 : 그것을 언제까지 하였습니까?

A2 : 그것이 솔찬히 오래까지 했지 말하자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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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혹시 우리 마을엔 강과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까?

A2 : 그 전에 이런 얘기는 있었지 빗물이 우에서 많이 내려오면 인자 댐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물이 막 엄청 내려와요 비만 왔다 하먼은 물이 막 둥글다 싶이 혀. 우에는 물이 높고 수위가 높고 밑이는 얕찼고 물이 빠지니까. 그러면 막 이무기가 막 이무기가 뭐 용 될려다가 말았다는 그런 이무기라고 하는 것이 강을 가로막고 있다고 혀가지고 저기 XX산 밑이 가가지고.

A4 : 어렸을 때만 허더라도 가서 구경허고 혔다고.

A2 : 그게 사실은 이무기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할 적에는 물이 둥글으니까 물이 우이가 수위가 높고 그러니까 막 이무기가 가로막고 있다 그랬거든. 물이 엄청 수위가 높거든. 궁글어 내려오니까. 그렇게 허면은 강이 막 변해버려. 한 번 큰 물이 지면은 이 쪽에가 떨어졌다 저쪽에가 떨어졌다 강이. 강이가 섬도 생기고 막. 강이 그래서 강변. 강이 잘 변허니까 강변이라고 했다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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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어머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A5 : 어디서 시집왔냐고? 저 김제군 봉남면.

B2 : 그러면 김제와 여기의 음식이 차이가 있었습니까?

A5 : 김제에서는 저 김치전은 안부쳐서도 무수전은 무쳤어. 무로 쓸어서 인자 거기 인자 양념장해가지고 그거를 부쳐먹는디 여기를 옹게 김치전은 부쳐먹어도 무수전은 안부쳐 먹드라고. 현재에도 김치전은 부쳐먹어도 무수전은 안부쳐 먹는디 그 김제쪽은 무수전을 부쳐.

B2 : 김제는 무가 많이 납니까?

A5 : 무가 많이 있나 어쩌난도 제사를 지내면 무수전도 부쳐서 이렇게 크게 부쳐서 제사 지내고 그렇게 혀는디 여기는 시집옹게 제사도 안지내고 김치전만 부쳐서 그냥 음석을 혀서 그냥 먹어요. 제사 안지내고. 근디 김제 친정은 음석을 그냥 막 적반 넓적으레 해서 싸가지고 상 챙겨서나는 제사를 지내잖아.

B2 : 여기에는 금강이 있는데 혹시 생선과 관련되서는 좀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A5 : 그 때 시집옹게 뱅애라고 있지. 뱅애가 나서 저 쑥. 쑥 해서 쑥국을 끓여 먹드라고. 그러믄 진짜 맛있어. 그래서 한 동안 시집 와서 한 이년 삼 년인가는 뱅애를 먹었는디 그 날서부텀 차차차차 없어지더만. 여그가. 그래가꼬 그러자 강막고 혀서 그러고 일절이 강에서 기도 실어온 사람은 실어왔다는디 우리는 그런 거 잡아보도 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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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그리고 미신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이 동네는 적어. 백 년이 넘었으니까 교회 문화가. 그러니 미신에 대해선 우리가 잘 몰르지.

A5 : 시집 옹게 우리 집은 옛날부텀 지사 안지내더라고. 교회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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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에 우물이 열 개나 있으면 술먹이는 언제 하셨습니까?

A2 : 그 전에도 했지. 아 그 농사 때 두레라고 나가지고 두레 나가지고서는 공동 작업을 혔잖여. 공동 작업 하는 데 풍물 치고 고사도 지내고 북 꽹가리 치고.

A3 : 추로 칠월 칠석 때 그 무렵에.

B2 : 그럼 기우제 같은 것은 지내지 않았습니까?

A2 : 그 전에는 아마 지냈는가 몰르는디 우리는 인자 기독교 세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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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성당가면은 그 뭐 당산제인가 해서 지금도 아마 헐 꺼야 아마. 근데 그 옛날에 성당 사람들한테 얘기 소리를 들었는디 그것이 원대에서 했다고 허든가 전북대에서 했다고 혀든가 그 복원 사업을 혔는가 보드라고. 그래서 그 당산을 손을 대고서는 그 해 영자 들은 이름이 다섯 명이 죽었다고 그러데. 그 누구누구냐 했더니 영문이 영철이 영섭씨 영섭씨도 죽었어. 그리고 누구 둘 얘기 하는데 그 사람들 이름을 꾀들 못하겠드만. 그 당산을 건드리고. 당산을 복원을 헌 모양이야 아마. 내 그 성당 사람한테 영철이 각시한데 들었는디. 내가 그 당산제 지낼 적이 그 캠코더를 나보고. 옛날에는 캠코더가 귀했잖여. 그래서 내가 일찌감치 사서 캠코더 가지고 있었는디 그것을 촬영을 혀달라고 해서 풍물치고 내가 가서 혔어. 그랬더니 거기서 그런 얘기들 허드라니까. 직접 남편이 죽은 사람이 그런 얘기를 혀. 그게 뙤보. 뙤보 거시기여 사춘.

B2 : 옛날 말로 하면 급살 맞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A2 : 그렇지. 멀쩡한 사람들이 다 죽어버렸으니까. 교통사고로 죽고. 영문이는 혈압으로 죽고. 가가 지금 일흔 시살이여. 근디 느닷없이 죽고. 그 영철인가는 자살해서 죽었나. 그 영자 들어간 사램이 다섯이 죽었다는 것이여. 그래서 당골네한테 가서 자기가 물어 봤디야. 물어 봤더니 당산을 건드려서 그랬다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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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엄기억


오른쪽부터 엄시상 엄병웅 임기억


오른쪽부터 엄시상 엄병웅 엄기억 엄봉석


오른쪽여성분 김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