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웅포면 > 대맹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웅포면 > 대맹마을
구술자 배남규(1931)남자
구술자 양용오(1933)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25
비고 면담장소 : 웅포 대맹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25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대맹(大孟, 큰맹꼴)
400년전 부여서씨인 서태원(徐泰元)이 처음 들어왔다 함. 지금 그 15대 손이 많다.
농가 46호, 상업 3호, 기타 8호, 총 57호.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대맹마을 : 민촌이었으며 서민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됨.
- 계량산 : 닭의 벼슬을 닮았다는 산.


2) 전설 및 민담 :
- 금방앗간 : 윤치와라는 사람이 금방앗간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음.
- 암소바위 : 계량산 밑으로 내려오면 암소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다고 함.
- 정월대보름의 좋은 일 : 좋은 일을 한다고 하여 정월대보름에 헝클어진 논길을 정리하였다고 함.
- 공동묘지 : 일본인들이 임의로 만들어 놓았으나 자갈밭이라 사용하지는 않았음.
- 여우이야기 1 : 마을 주민 한 분이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예쁜 색시가 유혹을 하여 밤새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하다 얼마 못 가 돌아가심.
- 여우이야기 2 : 조씨라는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고 오다가 여우에 홀려서 집 대문에 쪼그린 상채로 죽어 있었다고 함.
- 광북 이전의 큰 바람 : 광복 이전에 큰 바람이 불이 지붕이 많이 날아갔었음.
- 장아재 : 장어의 혈자리.
- 금강의 이무기 : 금강에서 2,3년 주기로 홍수가 나는데 그 때마다 물이 솟구치고 소리를 내는 것이 이무기의 모습과 소리였다고 함.

3) 민속 :
- 집성촌 : 달성서씨와 부여 서씨, 남원 양씨들이 많이 살았었음.
- 우물 : 3개가 있었지만 맛이 짜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물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함.
- 시장 : 강경장도 군산장도 다녔지만 주로 함열장을 이용함

구술채록

A1 : 배남규(83)-1931년
A2 : 양용오(81)-1933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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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대맹마을은 예전에 뭐라고 불렸습니까?

A1 : 어 먼젓번에도 그 저 그런 이런 취재를 할 기회가 있었었는데 대맹 이 마을이라는 것이 맹산리 허면은 네 개 마을이 있어요. 맹산여기가 리인데. 원래 인자 맹골이라고 허믄 옛날에는 맹동. 이 맹자라는 맹자하고 마을동자 해서 맹동이라고 마을 이름이 되 있드라고. 그래서 그것을 우리 말로 새기면 맹 골이여. 그래서 그 뒷동산에 묘 앞에 있는 상석이다가 그렇게 새겨놨드라고. 그래서 우리 마을은 인자 역사적인 뭐 으런덜이 다 세상 떠나시고 인자 내가 80대 늙은인데 음 내가 이 마을에서 남자 늙은이로는 제일 나이 먹은 늙은이여. 그런데 음 이 마을은 역사적으로 보면은 어 마을이 생긴지는 몇 백년이 됐는가는 모르지만 약 한 200년 전후한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 이게가 옛날에는 민촌이라 했습니다. 양반이 안 사는. 그래서 소시민 서민들이 여기서 집단이로 많이 와서 살고. 그랬는디 여기에 초로 최초로 정착한 씨족은 달성 서씨 그 후에 양씨가 들어왔다 그랬나? 그 후에 저 남원 양씨들이 들어와서 이 마을을 이루고 살었어요. 그루고 기타 성들이 많앴는데 중간에 와서 정착해서 살아서.

B2 : 양씨가 어디 양씨라고 하셨습니까?

A1 : 남원 양씨. 남원 양씨고 본관은. 서씨는 두 성이 여기서 살았어요. 달성이 맨 처음에 토착민이고 그 다음에 부여 서씨들이 와서 많이.

A2 : 허가. 허가도. 허씨. 소맹.

A2 : 아 여기는 대맹을 얘기허는 것잉게 인자.

B3 : 서씨분들은 어떻게 이 마을에 들어오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A1 : 어 그것은 그 당시는 뭐 어떻게 유명헌 사람이 와서 여기서 허는 그런 저기가 아니고 옛날에 돈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살다 살다 보니까 여기 와서 이렇게 정착이 되가꼬 사는 것이지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와서 여가 정착한 마을은 아니고 그 주종을 인자 집성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저 달성 서씨들 허고 부여 서씨, 부여 서씨도 나중에 저기가 됐드라고. 그리고 소대맹 양쪽 저쪽 건넛 동네는 양천 허씨들이 집성천이라고 보죠. 여러집들이 사니까.

B2 : 예전에는 대맹과 소맹이 한 마을이었습니까?

A2 : 옛날에는 여기가 함열리라고 나왔어. 함열리. 긍게 여기 첫 번이 우리 시조산이 있어서 함열리로 나와가꼬 시조산이 글케 나와있어.

A1 : 아 긍게 원래 함라가 함열이여 함열. 저 함열 와리는 함열이라는 디는 그 저 저 함열장이라는디는 본명은 와리여. 와리고 함열이라는 것은 함라 이름을 따서 그렇게 됐어.

B3 : 맹골의 맹이라는 게 무슨 맹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A1 : 긍게 맹골 허면은 맹동을 맹동. 저 맏 맹자. 맹자라는 저 맏 맹자여 그게. 그러고 고을 동자. 마을 동자인데 그것이 한자 표어로 하면 맹동이고 우리 말로 허면은 맹골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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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A1 : 아 여그는 토굴은 없고. 금강 저기 저기 저 산에 왜정 때 금광을 했어요. 금 캐는. 지금은 흔적도 없어요. 굴만 남았어요. 긍게 그 금방앗간도 있었고. 금방앗간이라고 해서 금이 들은 돌을 깨서 금 금방앗간이 흔적도 없어. 그 터만 남았지.

B3 : 금방앗간이 뭐 하던 곳인가요?

A1 : 금방앗간이라는 게 금. 금을 캤다고. 금을 이렇게 찡긴 붙어있는 돌을 모아다가 막 쇠로 갖다가 이렇게 떼어가지고 인자. 사금캐는 식으로.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있었어요.

B3 :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금광을 알았습니까?

A1 : 아니 일본 사람들이 여기는 내적으로 저기가 됐는가는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우리 눈으로는 몰라요. 그리고 윤씨. 윤치와라는 분이 금광을 했어. 근디 다 망했다고 하드라고.

A2 : 여그 우리 시조산. 시조산을 시방 파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고발당해서 못혔어. 그걸 파다가 중단하고 다 허물어 버렸어. 남 시조산을 그 금이 들었거든? 긍게 거기다가 금방앗간을 짓고서나 금을 캐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고발당하고서 다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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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의 주산은 어디입니까?

A1 : 우리 저 주거가 형성되는 것은 뭐 산을 등지고 대개 돼 있잖여. 우리 뒷동산이 인자 얕츤 얕아막은 산이지만은 거기 인자 주산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는 여기서는 여기 저 계량산하에 일층정이라는 말인데 저기 가면 여기서 이 근방에서는 제일 높은 산여. 저기가 계량산이여. 에 닭. 닭을 뭐 계량이라고 했으니까 그 깊은 그건 모르지만 그 밑이가 XX양자거든요. 이렇게 딱 벌어졌다는 산인데 여기다 일층정이라는 이 집을 경로당을 지었다는 얘기고.

B2 : 산이 그럼 형상이 닭이라는 말씀이십니까?

A1 : 닭 벼슬. 닭 벼슬처럼 이렇게 생겼다고 해서 계량산이라는 말이 붙은 것 같고. 여기는 인자 금강수원 옥야촌. 금강의 수원을 입어서 거름진 마을이 있다 그런 뜻이에요 이게.

B2 : 그럼 예전엔 금강 때문에 농사짓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까?

A1 : 지금은 에 인자 경제력이 생겨서 제방도 막고 저 제방 막은 데가 60년대? 60년 대 아마 60년 초인가 저 금강농조가 금강농조가 생기기 전에는 에 저 강가시로 강가시로 쪼끄마한 뚝을 쌓았어요. 쪼끄마한 뚝을 쌓아서 농사를 지었어. 말하자믄 보호막이여 그게. 그랬는디 여름일라등가 홍수라든지 홍수가 난다든지 해일이 나면 이 들판이 전부다 강으로 묻혀버려. 물바다가 돼 버려. 그래서 옛날에 60년 대 그 장XX씨가 국무총리 할 때 국무 총리가 현지 답사까지 왔어. 강XX씨가 이 저기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는데. 그래서 그 때 금강농조의 기원이야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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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강에 관한 미신이 우리 마을엔 있습니까?

A1 : 옛날엔 그 어촌에서는 고기잡는 사람들이 풍어제를 지낸다든지 그런 거는 있었지만. 그 옛날엔 우리 농촌에 어릴 때만 해도 밥이라도 편히 먹고 사는 사람네들은 정월 대보름날 굉장한 행사를 하는거여. 뭣 도 막 맹글고 인자 망태기라고 해서 지푸라기를 엮어가꼬 거기다 흙을 담아가꼬 사람들이 인제 지금잉게 기계 포장도 되고 길이 넓어졌지만 옛날에는 다 논두렁 쪼끄만쓱 혀. 그러면 일케 똘이 물이 흘러 내려가고 양쪽으다 가서 질퍽즉. 신발이 지금은 장화도 신고 허지만 그 때는 주거 생활이라는게 짚신. 그렇지 않으면 겨울에 추우면 비오는 날엔 나막신. 그래가지고 헝게 정초같은 때는 마음씨 좋은 분들이 좋은 일을 헌다고 해서 망태기를 엮어서 흙을 담아가지고 사람 건너 다니는 데다 다 놔줬어. 그게 옛날에 우리 토속적인 문화여.

A2 : 정월 대보름 날이면 그렇게 혔어. 다리를. 좋은 일 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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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풍어제는 무엇입니까?

A1 : 여기는 뭐 저그 웅포 소재지 가면은 그 때는 이 곰개포구라는 게 우리 나라 5대 포구인가 그렇다 하는 포구여. 그래서 그 때는 막 객주들이. 객주들이라는 사람이 객주 알죠? 객주 무슨 뜻인지는. 객주들이 혀가지고 우리 어릴 때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일본놈 말이 고이노보리라고 고기를 천으로 맨들어가지고 짚은 장대로 높이 올려가지고서 이 저 경기를 혀는 것인디 이게 일본놈 풍습이여. 근데 우리 풍어제는 오색수기 막 이렇게 대나무다 혀가지고서는 요새 풍어제 지내는 모습이 그런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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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공동묘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A1 : 계량산 밑이 가서 공동묘지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거기가 왜 공동묘지가 생겼냐면은 그 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초본이라고 허죠. 그른 식으로 허고 그 암데나 무질서하게 다 인자 매장을 해버리고 하니까 그것이 인자 뭐 주변 환경이 나빠진다던가 그런 것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와가지고 공동묘지를 구획해가지고서는 맨들어 놨었어요. 근데 거기다가는 묘지가 될 만한 데가 아녀요. 자갈밭이라. 그래서 안 쓰고 다들 나름대로 가까운 산에다 이용해서 저기를 했죠. 그래서 공동묘지라는 개념이 별로 의미가 없어.

B3 : 그럼 밤에 무서운 고개같은 건 없었습니까?

A1 : 인자 그 이 근방 사람들이 함열을 생활권이 함열 와리장이라 그래요 여기서는. 생활 문화가 저 함열이에요.

B2 : 왜 다른 곳은 안가고 함열장을 가셨습니까?

A1 : 인자 황등장이라는 장도 가고 강경장도 가고 그랬죠. 근디 인자 이것이 여 웅포면에는 갈대기. 갈밭 있죠. 갈대기를 이렇게 짬매가꼬 자리를 엮어요. 자리라고. 사자리라고 혀고 근데 이거를 그것이 에 뭔 것을 했냐면은 우리 생활 필수품으로 채반이라고 해가꼬는 뭐 음식 같은 것을 맹글어서 놓는 역할도 하긴 했지만은 주로 옛날에는 저 멍석을 깔고 짚을 져도 거리를 맨들어가지고 거기다가 지푸라기나 멍석을 깎어가지고서 이렇게 깔고 살았어. 근디 인자 사자리는 그 보다도 훨씬 깨끗허거든요. 그래서 사 자리는 방바닥에다가 까는 장판. 그래서 엄청나게 많이 생산해서 이 근방의 생계 수단이었어요.

B3 : 어제 다른 마을을 다녔더니 시장을 강변이나 강을 건너서 간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왜 함열장을 갔습니까?

A1 : 그니까는 여기서도 이 동네 이 근방 사람들은 강경장을 대녔어요. 근디 거리가 여기서 강경이 50리. 옛날로 50리 군산도 좀 가까운. 옛날에 이 근방 사람들은 군산을 많이 댕겼어요. 왜그냐면 여기 연락선이 있었거든 강경까지 댕기는. 긍게 배타고 댕겼어요.

B3 : 그럼 가장 많이 간 시간이 함열이었습니까?

A1 : 예. 주로 인자 우리 생활환경이 그렇게 조성이 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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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산길을 가거나 할려면 굉장히 무섭겠습니다.

A1 : 거가 갈라믄 선왕당이 세 군데나 있었어. 막 돌무대기가 엄청 크게 있었지.

A2 : 그리고 꼭대기다가 일본 놈들이 신사 하나 지었었잖여.

A1 : 뭐 있어. 그건 금 파는 사람들이 헌거여.

B3 : 그럼 귀신이야기나 여우얘기는 없습니까?

A2 : 아 그랬지. 그 저 여수돌려가꼬 죽었어. 이 저 저 저쪽 동네서 술먹고서 오는디 저 지중이라는 동네서. 거기서 이 동네 사람이 술 잔뜩 먹고 오는디 그 저 수멍서 이쁜 샥시가 올라오더래. 저 자고가라구. 아 그래서 봉게 이쁜 샥시가 오라고 항게 술쳐먹고 술먹고 기어들어강게 수멍이잖아. 그래서 둥시렁둥시렁허고 거기서 인자 간 뒤로 이상한 소리가 낭게 와봉게 수멍 속에 가서 배겼드래. 아 긍게 수멍속에서 여수가 오라고 항게.

B3 : 수멍이 뭔가요?

A2 : 물 나가는 수멍. 거그가 배겨서 거기서 나와가꼬 며칠 안살다가 죽었어.

A1 : 그거는 얼마 후에지. 815 해방 될 때 인자 왜정 때 우리 어릴 땐데 지금은 한 70여년 전 역산데 조씨가 조씨라는 분이 인자 부장을 했어. 이 동네 우리 마을. 근데 그 맹산리 거기서 제사문. 문상가가지고 술을 많이 자시고서 자시고서는 왔어. 오는 도중에 인자 떨어져 잤어. 떨어져 술취해서 못오게 생겼응게 자니까 어이 참말로 여우가 홀렸는가는 모르지만은 인자 여우란 놈이 자는 사람은 어떻게 깨운다더라고. 그래가지고 깨워가지고 이렇게 온디야. 와서 근데 그 노인이. 그 때는 우리라 헐 때는 노인같앴어. 안경도 끼고. 근데 이 어른이 와가지고 다 동네 와가지고 지금도 지금도 그 집이 있어. 그 집 문 앞이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죽어버린거야. 그래서 여우 돌려서 그랬다고 본 사람은 없으니까. 확실하게 본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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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혹시 해방 직전이나 625 직전에 큰 바람이 불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까?

A1 : 어 815 해방 그 전에가 태풍이 불어가지고 뭐 이 근방에 동네 마을 시원찮은. 그 때는 전부다 와가집은 이 동네에 없었으니까. 초가집이었는데 다 날라가고 난리가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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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샘이 몇 개나 있었습니까?

A1 : 우리 동네에는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우물은 세 군대. 이 동네 가운데가 지금도 흔적이 있고 작은샘이라는 데는 흔적이 없어져버렸고. 또 저기 황두샴이라고 산 가서 조그만 샴 있었어. 근데 그거는 흔적이 없어지고.

B2 : 다른 마을은 금강 때문에 샘이 짰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도 그랬습니까?

A1 : 이 동네 가운데가 큰샘이라 그랬어요. 큰샘이라 그랬는데 그 밑이 갯벌이여. 속으로 들어가면. 여기 지금 동네 복판에서 짚이 파면 갯벌이 나와.

B2 : 그럼 식수로 활용하기 곤란하겠습니다.

A1 : 근디 인자 여건이 이 마을 여건이 딴디다가 우물을 파야 수원이 없, 많이 안 나와.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인자 사람의 심으로만 다 파서나 기계가 장비가 나와서 파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깊이 팔 수도 없고. 왜그냐면 쪼매 깊이 들어가면 무너지니까 못파. 그래서 바닥이다 가서 샴을 어느정도 파서 물이 좀 주변. 긍게 표층수가 스며들어서 저 거시기 뭐 뭐야. 저기 허는 거 아녀? 인자 저 그것이. 그래서 우물을 짚이 파들 못혀. 그래서 어느 정도 파서 바닥에다 큰 돌을 깔고서 돌로 인자 짜서 올려가지고서 두 서너 질 말하자믄 5,6메타 이렇게 해서 물을 먹고 사는디. 물이 저 개흙에서 나오는 물이라 찝찝해. 긍게 이 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게 배가지고 모르지만 타지 사람들이 와서 먹으면 물이 겅건해서 안맞는다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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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아까 계양산이 닭을 닮았다 하셨습니다. 다른 풍수지리에 관련된 얘기는 없습니까?

A1 : 그 계양산 밑에 그 쪽 그 골짜기 지나서 암소바우라는 큰 바우가 있었어요. 이게 막 평펀허니 넓어가지고. 뭐 소발자국 같은 것도 있고. 지금 같은 보믄 공룡발자국 그런 여건은 아닌 것 같고. 지금은 다 흔적이 없어졌드라고.

B3 : 또 더 없습니까?

A1 : 여기는 방금 여기서 황무샴이라 했는데 그게 장아재라 했었거든. 그 쪼그만 날등이 하나를. 장어. 장어혈이라고 혀가지고서 장어 입에서 물이 나온다고 해서 장아재라고 우리 어렸을 적에는. 지금은 그렇게 안부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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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러면 미신같은 거나 전설은 없습니까?

A1 : 그게 옛날 뭐 옛날에는 전부다 하나하나가 선왕재를 지낸다던가 고목재를 지낸다던가. 그게 그 인자 지역 나름대로 토속신앙이지 그 당시는. 우리 동네는 고목나무가 우리 어릴 때는 큰 저 두엄나무라고 아람드리 큰 나무가 있었는디 너무 수령이 오래되가지고서 흔적도 없어졌어. 썩어서. 불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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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혹시 마을의 혈자를 끊었다거나 그런 얘기는 없습니까?

A1 : 긍게 여기는 보통 우리가 여기를 요 쪽으로 가믄 용미촐이라고 있어요. 용 꼬리라고. 용 꼬리라는 얘기여. 근데 거기서 날등이가 나와서 흘러 나와서 우리 마을을 안고 있는 거여. 그래서 금강농조에서 산을 굴을 뚫어가지고 저그 연동에서나 물을 품어 양수해서 넘어 오잖아요? 그럼 그 물이 용 꼬리를 스쳐서 우리 마을을 감싸고 절로 가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자 좀 아쉽게 붙인다면 용의 꼬리를 보완해서 우리 동네 그 전에는 가난했는데 가난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어느동네고 부자고 잘살지만. 옛날에 비해서는 부자가 잘 사는 편이죠.

B3 : 용과 관련된 이야기, 이무기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까?

A1 : 대개 3년 2년 주기로 홍수가 나거든요. 그러믄 어떤 현상이 오냐면 이무기라는 게 그 당시 옛날에는 급류가 흐르니까 무지무지허게 급류가 흐르니까 바닥이 모래가 많이 밀려 쌓이면 급류가 흘러서 거기를 때리는거야. 그러니까 물이 막 곤두 서가지고 막 요란한 소리를 내고 그랬지. 그래서 그거를 이무기가 나타났다고 그랬는데 그거는 부항한 소리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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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왼쪽부터 배남규 양용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