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웅포면 > 구룡목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웅포면 > 구룡목마을
구술자 임순호(1929)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3-23
비고 면담장소 : 웅포 구룡목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3월 23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구룡목(九龍牧)․서방동(西方洞․서방골) : 1972년 서방동과 합쳐 한 분리가 됨. ‘구룡목’은 좌우에서 내려온 두 능선 끝이 거의 마주친 낮은 곳이기에 ‘구렁목’이 변한 말.‘서방골’은 전에 행정 중심지의 서편 마을이기에 생긴 명칭이라고도 하고, 또 문장가(文章家)가 끊기지 않던 곳이었으니 서방(書房)에서 이루어진 말이라고도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고령목 : 구룡목마을의 본 지명. 마을에 오래된 큰 소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 왕소나무마을 : 마을을 부르던 옛 지명.
- 서방골 : 쥐의 혈(穴) 명당. 본 지명은 서항(鼠項)동.

2) 전설 및 민담 :
- 국사봉 : 이완용 부친의 가묘가 있던 자리.
- 장군대좌혈 : 장군이 높은 곳에서 앉아 있는 혈(穴)자리.
- 웅포바위 : 곰이 물을 먹는 혀에 해당되는 바위를 훼손하고, 웅포 포구가 없어졌다는 민담.

3) 민속 :
- 차나무 : 차나무 최북단 차나무 자생단지.
- 임해사 : 절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음.

구술채록

A1 : 임순호(85)-1929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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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웅포면 구룡목마을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웅포면 구룡목마을인데, 구룡목마을에 대한 많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A1 : 구룡목이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름이 아니야. 원래는 여기가 서방동이었어. 그래서 부락이 아래가 2개 부락으로 나눠져 있었어. 여기는 3구, 저기는 4구. 그리고 중간에 합쳐졌는데, 구룡목이라는 이름은 아홉 구(九), 용 용(龍)에 눈 목(目)을 쓰거든. 그 내력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어. 그런데 노인네들에게 물어봐도 유례가 없어. 그런데 한 가지 전해지는 것은 고령목 높을 고(考), 나이 령(齡)을 써서 고령목이라고 하거나 고령부락이라고 하거나 그러거든. 그런데 고령이라는 명칭을 시청에서나 썼지, 서민들은 잘 쓰지도 않았어. 특히 령자가 쓰기가 어렵거든. 그런데 마을 가운데에 큰 소나무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소나무를 마을에서는 왕소나무라고 불렀어. 고령목이라는 이름은 식층에서나 쓰는 말이었어. 그래서 고령목부락이라고 전해졌는데, 그것이 어떻게 전해지다 보니까 일한 합병시에 부락명을 적으면서 구룡목이라고 바뀐거야. 원래 구룡목이라는 말은 아무데도 없었어. 그냥 왕 소나무 부락이라고 불렀지. 그 소나무가 한 60년쯤 되었을까? 그걸 산주가 욕심을 내서 사갔는가. 부락 사람들이 그걸 간수를 못 해서 없어졌지. 여튼 그걸 왕소나무 왕소나무라고 불렀고, 그게 식자층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고령목 고령목 불렀다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아. 아직도 주변 노인네들에게 물어봐도 구룡목이라는 말은 다 모른다고.

B1 : 또 다른 지명 이름은 없나요?

A1 : 서방골이라고 있어. 그게 어떻게 된거냐 하면, 여기가 명당자리가 있었어. 여기가 쥐혈이라는 명당이 있었어. 쥐가 내려오다가 멈춘 자리야. 그런데 쥐 목 부분에 명당이 있다는 거여. 그리고 또 저쪽에도 쥐 혈이 있는데, 거기는 늙은 쥐가 들 밭에 내려오는 혈이 있어. 그런데 거기도 목 부분이 명당이야. 그래서 쥐 혈이 부락에 2개가 있는데, 목 부분이 명당이라고 해서 쥐 서(鼠)에 목 항(項)을 써서 서항, 서항동이다 했거든. 그런데 중간에 또 바뀌어서 소리대로 바뀐 것이 서방이여. 그런데 사람들이 그게 서쪽을 향하는 마을이다 해서 서방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여. 그게 원래는 서항동이야. 서항동.

B2 : 그러면 서쪽에 있어서 서방동이라는 말은 잘 못 된건가요?

A1 : 그렇지. 원래는 서항동이야.

B1 : 그러면 쥐 목 명당에 묘를 쓰신 분들도 계신가요?

A1 : 그렇지. 거기에 묘가 있는데, 우리 선조들 묘거든. 그런데 다 잘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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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또 다른 혈자리가 마을에 없나요?

A1 : 이 산 이름이 국사봉이라고 하거든. 그런데 어떻게 국사봉이 되었는지 그 근거는 없어. 그런데 국사봉 아래에 명당이 있다고. 그래서 지관들이 여기를 조사도 하고 그랬거든. 그런데 이완용 아버지 알지? 이완용 아버지가 전라감사를 하고 이완용이 중앙에 있을 때 여기에 이완용 아버지 가묘가 있어. 이완용이가 권력이 얼마나 당당했는지, 그 가묘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거기를 건드리지도 못 했어. 그래서 이완용이 지 아비를 모실려고 가묘를 한건가, 지가 묻힐려고 가묘를 한건가. 그래서 이완용 아버지 비가. 웅포에 있는데, 비석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본 받을 수 있을 때 비석을 세우는 거잖아. 그런데 역적 이완용 아비를 비를 세워준게 말이 안 되는거지. 그래서 그것을 없애려고 하니까 주민들의 호응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 양로당에 고령자 노인네가 수십명 있는데 내가 주창했어. 그걸 없애자고 했다고. 그래서 한 사람 반대를 했긴 했는데, 그 비석을 없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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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리고 왕 소나무가 없어진 사연을 알려주세요.

A1 : 그 없어진 내력을 모르겠어.

B1 : 그 소나무가 없어지고 혹시 흉사가 생기진 않았나요?

A1 : 그런건 없었어.

B1 : 그리고 또 다른 나무는 없나요?

A1 : 여기에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어. 오랫동안 우리 마을 주민들이 공을 들여서 그 나무를 보호수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어. 사실 예전에 그걸 신청까지 해서 등록까지 했다고. 이장이랑 면장이 다 그걸 확인 했다고. 그런데 그 서류가 없어졌다고 모른다는거여. 참 답답하는거야. 군이 시로 편입이 되었잖아.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하고, 모른다고 하는데 얼마나 답답해. 그리고 나중에 시에서 찾아 왔는데, 그 사람이 나무가 쓸모없이 컸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내가 꾹 참았다고. 수 백년 된 나무가 분명하잖어. 그래도 내가 참았다고. 수 백년 그 나무에 부락에서 공을 지어서 아들 낳지 못한 사람이 거기에 공을 들여서 아들도 낳았다고. 그래서 섣달 그뭄에 거기에 떡도 하고 당제도 지냈다고. 그런데 서류 보관을 못 해서 보호수가 못 만들었어. 그리고 작년 여름에 그 나무를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하자고 해서, 지금 그런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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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또 마을에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A1 : 그리고 우리 마을 뒤에 시에서 길을 내놓고 차나무 단지를 만들어 나무를 심었는데. 자연산으로는 여기가 최북단이여. 36도3분. 그리고 ○○○라는 사람이 거기에 36도 3분이라고 푯말을 만들었다고. 자연산으로 되어 있는 차나무는 그곳이 최북단이라고. 그것이 공민왕 말엽에 그 차나무가 우리나라에 왔다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그 차나무에 절이 있었다고. 어떤 사람은 망해사라고 하는데, 내가 기억하기엔 임해사(臨海寺)야. 그 절이 있었고. 그 석축을 쌓은 곳이 남아 있어. 그리고 그 기왓장이 나오곤 했는데, 그 기왓장을 빻아서 가루를 내서 그릇을 닦고 그랬어. 그리고 대나무가 많아서 죽로차로 만들어 먹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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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민담이나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나요?

A1 : 아까 이야기 한 이완용 이야기가 있지. 그 자리는 내가 분명히 알고 있어.

B2 : 우리 마을은 집성촌인가요?

A1 : 우리 마을 넘어가면 임씨들 집성촌이 있어. 여기는 여러 성씨가 모여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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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리고 나는 믿질 않지만, 뒤에 가면 장군대좌라는 뜰이 있어. 장군대좌는 산 뒤에 숨어 있지 산 위에 있질 않어. 그런데 거기는 앞에 나와 있거든. 그 장군대좌라는 것을 합리화 시키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명을 다 바꿨어. 옆 산에는 검바우라고 장군대좌의 칼을 뜻혀. 그 앞의 뜰을 말이 달린다고 마룻뜰이라고 했다고. 그리고 앞의 산을 투구봉이라고 했어. 그렇게 장군대좌를 합리화 시킨거지. 그렇게 지명을 다 바꿔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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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리고 또 다른 지명은 없나요?

A1 : 저기 남병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이 어래산(御來山)이라고 한담 말여. 임금이 왔다는 뜻이지. 그래서 그 밑에는 고분이 있어서 고분에 박물관도 지어놨다고. 입장리 고분 알지? 그런데 거기에 어래산지라고 내가 써놨어.

A1 : 거기에 성터도 있다고 하던데요.

B1 : 거기에 올라가보니 펑펑한 곳이 나와. 소정방이가 거기에 진터를 삼았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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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시장은 어디로 다녔나요?

A1 : 웅포에 시장이 굉장히 크게 있었어. 그러다가 자연히 포구가 없어지면서 시장도 없어졌지. 그리고 황등이나 함열로 다니다가, 교통이 편리해지며 익산시와 군산시로 다니고 있지. 그러니까 포구가 없어진 이유는 웅포 포구쪽에 있는 교회 뒤를 가면 자연히 돌이 쭉 나와 있어서 방파제가 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아래로 와서 배가 많이 들어 왔다고. 그런데 주민들이 모여서 방파제로 삼는 바위를 뜯어내고, 어선들 선박을 정박하는 돌을 쌓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사실 반대를 했다고. 자연 방파제를 왜 뜯냐고 반대 했다고. 그래서 결국 그걸 다 뜯고 선착장으로 만들어 놨는데, 여기가 왜 웅포라고 하냐면. 곰 웅(熊) 개 포(浦)자 써서 웅포란 말여. 곰을 물을 먹는 혀가 그 바위라는 거여. 그런데 그 바위를 끊어버렸으니 그 후로 해를 봤다는 전설이 있어.

구술사진






임영규


임순호


이원복


왼쪽부터 이원복, 임순호, 임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