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법성(法聖․法成)․순풍(順豊) : 남쪽 을산에 있는 자명사(自明寺)에서 이 마을을 불교적으로 법성리라고 부름으로써 생긴 명칭이라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나 동국여지승람에도 자명암 이야기가 나온다. ‘순풍’은 순풍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인 명칭. 해주 오씨가 오래 살던 곳으로 이른바 삼세오충(三世五忠)의 탄생지다. 삼세 오충렬은 오응정(吳應鼎, 1548-1597)과 그 아들 욱(稶), 직(稷), 동량(東亮), 그 손자(稷의 아들) 방언(邦彦)을 이른 것이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북면 : 북면의 중심은 법성이라고 함.
- 동면 : 현재의 용동면.
2) 전설 및 민담 :
- 원님이 두 번 운다고 하는 ‘용안면’ : ‘용안면’에 부임한 원이 부임 받을 때 한 번, 임기가 끝날 때 한 번 울었다고 함.
- 삼송정 : 천안 전씨의 제실. 추사 김정희가 현판을 썼다고 전해짐.
- 기러기 혈 : 북면이 기러기 혈이라 하여 비석을 쓰지 않음.
- 삼세오충렬사 : 해주 오씨들은 순풍마을에 살고 있으며, 충성스런 신하였다고 함.
- 각골제 : 귀신이 출몰하던 곳.
3) 민속 :
- 시장 : 강경장을 이용함.
- 갈게 : 과거에 갈게가 아주 많이 살았으나, 금강하구둑이 생기고 난 뒤 없어졌음.
- 상여 : 마을 밖에서 돌아가시는 경우 마을 안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었음.
- 샘 : 4개의 샘이 있으며 술멕이는 정월 보름날에 하였음.
구술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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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전종서(50)-1964년
A2 : 구경순(66)-1948년
A3 : 김추자(68)-1946년
A4 : 신일례(82)-1932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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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머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A2 : 완주 고산에서 왔어요. 그 전에는 여기가 버스를 안다녔어요. 지금 버스 다닌 지가 그렇게 오래 안됐거든요. 그래서 버스 다니기 전에는 여기서 아침 먹고 읍내까지 걸어 나가야 되고 애기 들쳐 업고 걸어 나가고. 그렇게 허고 고산까지 가면은 저녁때나 인자 해 떨어질 때나 도착하고 그렇게 했죠.
B1 : 그럼 마을에는 얼마나 사신것입니까?
A2 : 45년 째.
B1 : 그럼 45년 동안 사시면서 법성마을에 대한 인상깊은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A2 : 여기는 인제 용안은 커가지고 용안 면이 아니고 옛날에는 용안군이었다 그러드라구요. 에 근디 용안이 들이 넓고 살기가 좋아서 저 제가 인자 친정에서 열로 이쪽으로 결혼을 정해놓고서 친정 아버지한테 그랬는디. 이 옛날에 원님이 울고 왔다 울고 갔다 그러드라구요. 그래서 그 인자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여기 올 때는 지금 용안면이 용안군이었으니까 와가지고 너무 적어서 여기 올 때는 울고 오고. 들이 넓고 인심이 좋고 살기가 좋아서 갈 때 울고 갔대요. 그래서 울고 왔다 울고 갔다고. 고을 원님이 울고 왔다 울고 가는 데라고.
B1 : 그런 뜻이 있군요!
A2 : 인자 여기가 적어서 오지라서 오기 싫어서 안 좋은 줄 알고 와서 여기가 살기가 좋으니까 갈 때 울고 간다고. 그래서 여기가 이 마을이 바로 한 집 앞 두 집 건너 그 뒤에가 이 용안면이 동면 남면 북면 그렇게 나눠서 있어가지고 북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에요. 여가 있었던 마을이에요. 여기 이쪽에 있는 집 두 개가 그 터라고.
B2 : 북면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북면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A2 : 신은에서 저 거시기 용두까지.
B2 : 그럼 동면은 어디입니까?
A2 : 동면은 지금은 용동면. 그리고 남면은 저 숭산. 숭산 웅동 그쪽으로. 입산. 그리고 산 이짝에가 바로 삼송정이라고. 삼송성. 문헌에 올라 있다고 사학 교수님이라고 한 번 오셨드라구. 몇 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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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그리고 산 이짝에가 바로 삼송정이라고. 삼송성. 문헌에 올라 있다고 사학 교수님이라고 한 번 오셨드라구 몇 년 전에. 우리가 마침 거기에 갔었는디 내가 갔었는디. 그 분에 우에서 얘기하는디 거기가 헐어져가지고 아주 포크레인으로 헐어낸 지 딱 1년 정도 됐는데 오셨더라고.
B1 : 그 뜻이 무슨 뜻입니까?
A2 : 왜 삼송정이라고 했는지 그 뜻은 내가 안물어봐서 모르것어요. 근디 거기 삼송정이라는 거시기 글을 옛날에 저 추사 김정희? 그 분한테 받았었다고 그런 말씀을 허시더라구요. 그래가지고 거기에 그 유래나 거기를 써 있는 것이 현판이 우리 집에 있어요. 지금 보관하고 있어요. 거기를 복원허게 되면 다시 내 건다고 보관하고 있어요. 내가 삼송정 뜻은 옛날에 안 물어봐서 몰르고 삼송정 거 현판은 그렇게 혔다고 혀가지고서는 그거 잘 보관하라고 혀서 그 때 헐을 때 우리 집이다가 그걸 갖다 놔가지고. 그리고 인자 거 앞에 한문 같은 거 가르치고 허시던 분이 희룡씨? 희룡씨? 그 분이 잔 글씨는 판이 허셨더라고. 그래서 그 분 글씨가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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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법성마을은 예전에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그런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A2 : 다른 것은 못 들어보고 인자 여기가 북면에서도 제일 노른자 위라고 하더라구요. 제일 좋아가지고 여기서 잘 사는 사람들도 많앴고 옛날에 그 도구질 허고 헐 때도 인자 여기에 정미소가 이 동네 사람이 혀서 이 밑에 정미소 들어오는디 거 법성 포도원이라는 디 있었고. 그리고 이진수 박사 생가가 여기 있어요. 이진수 박사 대학교 댕길 때까지 어머니허고 할머니허고 살아 계셨고 지금 그 생가 터를 쪼끔 뭐라도 질려고 해놓고 있어요.
A1 : 그리고 여기가 전기가 제일 먼저 들어왔잖아요.
A2 : 아 그랬다고 허드라구요. 여기가 북면 면사무소가 있어가지고 여기까지만 들어오고 저기 안에까지는 안들어갔고.
B1 : 북면 면사무소가 정확히 어디입니까?
A2 : 아 바로 여기 100미터도 안 돼요. 여기 두 집 건너서 바로 그 뒤에 그 집 터가 있어요. 면사무소 터가.
B1 : 그럼 예전에는 용안면이 아니라 북면이라 불렀던 것이군요?
A2 : 용안면에서도 그냥 북면 북면. 이 쪽을 털어서 북면. 신은에서 용두까지
A1 : 요 산맥을 해가지고 용안면서 관통하는 산맥이 있거든. 그래서 이쪽을 북면. 이쪽을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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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전화중) 아 삼송정이 제실이었다? 뭐라구요? 시인 서거정?
A2 : 서거정이라는 시인이 삼송정에 있었다고.
A1 : (전화중) 그러면은 그 시인이 삼송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거구만요?
B2 : 그럼 제실이라는 것은 어디의 제실입니까?
A2 : 천안 전씨 삼자공파 제실. 여기사 천안 전씨 집성촌이여.
A1 : 삼자공파? 삼대공파. 삼대공파일텐데? 삼대공파가 맞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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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아까 우리 마을에 인심이 좋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례같은 게 있을까요?
A2 : 긍게 나이 드신 분들은 어쩐가 모르겠는데. 우리는 그것까지는 모르고. 여기가 곡창지대고 옛날에 양반들이 살아서. 긍게 이 기차 역을 옛날에 기차가 이 쪽으로 용안면으로 관통을 헐라고 원래 예정했었대요. 근디 여기 양반이 많이 살아가지고 시끄럽게 그런다고 용동으로 함열로 돌렸다 하드라구요.
A1 : 맥이 끊긴다고. 그 전에는 여기가 말빨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가봐요 여기가.
B2 : 그렇게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럼 우리 마을에 혈자리나 명당 같은 것이 있습니까?
A2 : 이 쪽에는 거시기라 하드라구요. 이 북면 전체를 기러기에 비유를 하드라구요. 기러기. 날라다니는 기러기를 의미해가지고 지금은 인제 말하자믄 돌을 쓰는디 나 시집와서 10년 20년 그 정도 될 때까지 석물을 안 세웠었어요. 상석 같은 거 안 세웠어. 기러기 날개를 누른다 해가지고. 근디 지금 허기 시작한지가 한 15년 20년 정도 되나? 그렇게 해서 돌을 놓고 돌을 썼어요.
B2 : 그럼 우리 마을에 산 같은 것이 있습니까?
A2 : 긍게 여기를 통틀어서 북면을 남면을 이쪽허고 갈르는 산이 여기 있잖여.
B2 : 그럼 이름이 있습니까?
A1 : 특별한 건 없고 앞산 뒷산.
A2 : 그 인자 마을 따라서 순풍산 뭐 용두산 그런 식으로 이렇게.
B2 : 순풍산은 왜 순풍산입니까?
A1 : 순풍은 이름 동네. 동네 뒤라고.
B1 : 우리 마을에 해주오씨는 많이 사셨습니까?
A2 : 해주 오씨는 순풍마을. 에 바로 같은 법성인데 마을이 산 하나로 가려져 있는. 거기가 해주 오씨들 상석같은거랑 싹 다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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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기서 금강이 멉니까?
A1 : 바로 저기에요.
B1 : 그럼 옛날에 시장을 볼 때 금강을 넘어서 충청도로 가셨습니까? 아니면 강경을 가셨습니까?
A1 : 강경은 강을 안 건너요. 인접해있기 때문에. 그래서 도는 틀린데 생활권이 강경으로 갔어요. 가까우니까.
A2 : 용안면허고 강경면허고 접경이 말하자면 전북하고 충남하고 거기 경계에요.
B2 : 그러면 옛날에 강경장이 제가 듣기로 굉장히 컸다고 들었습니다. 강경장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A2 : 마을 사람들이 이 뒤에 거시기로 산을 걸어서 다녔지.
A1 : 한 7,8키로니까 두 시간이면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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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절이 있습니까?
A1 : 마을에 자명사라고 하여튼 법성리 내에 있거든. 법성리 을산 부락.
A2 : 자명사도 적어도 그게 오래된 절이라고 허드라고.
B2 : 절이 있으면 그 유래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A2 : 절을 안다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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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삼세 오충렬사 그 분들이 여기서 태어났다는 말을 들어봤습니다.
A2 : 그 분들이 해주 오씨지. 거기가 순풍마을이 그러고. 삼세 오충렬사는 바로 저 중신리 바로 삼거리 큰 도로. 바로 그 앞에 있어요. 삼세 오충렬사. 삼대가 거기 충신이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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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금강이 가까우면 금강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까?
A1 : 내 기억에는 그 전에 모래가 있었거든. 강을 막기 전에는. 어릴 때 거기 가서 조개를 잡아먹는 데도 있고. 지나가는 배들이 우어라고 던져 주면은 회로 해서 먹고 그랬거든. 우어회는 금강에서 잡은 우어회는 유멍허다고.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이 던져달라믄 던져주고 그래서 찢어먹고 그랬다고.
A2 : 옛날에는 갈기 그게 그렇게 많았잖여. 근디 금강 하구둑. 하구둑을 막으니까 조개허고 갈기같은 것들 그게 없어져버렸어. 우어도 없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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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마을 논물은 어떻게 했습니까? 천수답이었습니까?
A1 : 그렇죠. 천수답이었다고 봐야죠.
B1 : 그럼 기우제를 지내거나 하진 않으셨습니까?
A2 : 그것은 아니고요 내가 알기로는 나는 그거 거시기 하천강이 생긴 후에 와서 얘길 들었는디 일제시대 때 말하자믄 금강 물을 끌어들여서는 여기 양수장을 혀가지고 다른 데보다. 여기 인제 안쪽으로는 제방이 세 개가 있어요. 세 개지? 거시기까지. 세 개가 있고 천수답은 말하자믄 인자 바짝 위로 붙은 논이 쪼금씩 있고는 시설이 다른 데보다 들했던 것 같애요.
B1 : 그러면 일제 강점기때 수장을 만들 정도면.
A2 : 아니 양수장은 인자 저 용두리. 에 용머리라고 해서 용두리라고. 용안을 거시기 해서 이 북면을 용 머리라고 하잖아. 근데 그 때 용두에서 혀서 내려가꼬 하천강 양수시설을.
A1 : 아까 산이 용안면을 가로지르고 있다고 했잖아. 양수장이 생긴 데가 용 머리쪽이고 이 용이 보면 가슴 있는 쪽 있잖아. 이 쪽이 비옥하다고 했어 인재가 많이 나오고. 근데 산 넘어가면 등 쪽이라 해가지고 인재가 안나.
A2 : 저 쪽은 창리. 창리마을에 송정리 자라.
A1 : 그게 희안한거지? 근데 그게 맞아. 그 쪽에 보면 인물이 거의 없거든? 그렇게 이 쪽이 비옥하다고 해서.
B2 : 그럼 양수장이 생기면 용머리에 좋지 않은 게 아닙니까?
A1 : 아. 용 머리 끝나서. 그리고 그것도 안쪽에서 만든 게 아니고 반대가 심하니까. 맥을 옛날엔 중요시 생각한 거 같애.
A2 : 긍게 산이 이렇게 있으면 양수장이 여기가 붙어 있는게 아니고 여기가 붙어 있어.
B2 : 그럼 옛날 모습을 그림으로 좀 그려 주십시오.
(그림 그리는 중)
A2 : 긍게 여기 용 머린디 좁게 봤을 때. 크게 보면 기러기 형상이라고 혀서 날개를 눌리면 안 된다고 돌을 안 놨다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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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우리 마을은 굉장히 혈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군요. 그럼 다른 이야기는 또 없습니까?
A1 : 그게 나의 한계야.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건데. 하하하
A2 : 여기는 저기를 주산이라고 해가지고 넘어 가면은 마을에 사람이 죽는다고. 그래서 상여가 이 앞이로는 안갔어.
A1 : 그게 참 신기한거야. 살다가 돌아가셨잖아. 요즘은 여기서 안돌아가시고 병원에서 돌아가시잖아? 그럼 못 들어와.
A2 : 여기서 나가는 건 나가도 들어오는 건 못혀고 딴 마을로 해서 들어오고. 안으로 들어오진 못허고. 여기서 돌아가신 분들이 나가긴 나갔지만 여기서 건너간다든가 산을 넘어간다든가 그걸 못했어요.
A1 : 인자 우리는 그런 개념이 없는데. 우리는 들어와라 할 수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러질 안혀.
A2 : 아녀. 근디 그게 내가 살면서 저기헌디. 그 전에 거시기 XX동생. XX이가 저 논에서 쓰러져가꼬 죽었잖어. 그래가꼬서는 업고서는 산을 넘어가는디 막 여기서 보고서는 못 넘어오게 했디야. 그래서 저쪽으로 가서 저쪽으로 나갔는디. 그렇게 혀고 얼마 안돼서 XX가 죽은거여. XX이가 사고로 예비군 훈련받으러 가서 죽었잖여. 그래서 그렇게 죽었다고 했었거든. 근디 말하자면 이 아버지가 돌아가셔가지고 차로 그리 넘어갔잖여. 근디 XX네 어머니가 그걸 봤디야. 그랬더니 XX 그 딸이 죽었잖아.
A1 : 긍게 이상하게 그 사건이 미신인데 연관이 되게 돌아가시고 그래.
A2 : 그래서 우리가 눈으로 봤을 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런 얘기도 있지만 용케 그렇게 맞어 떨어지니깐 우리가 못허게 지키는거지.
B2 : 그게 유래가 있습니까?
A2 : 아 옛날에 어른들부터 전래적으로 내려져 왔다 그러드라고. 해가 있다고 해가지고. 마을에 해가 있고 인명피해가 있다고 해가지고 못 들어오게 했다고. 건너가지도 못허고 들어오지도 못 허고.
A1 : 근데 살다가 돌아가시잖아. 병원 갔다가 돌아가시면 집에 왔다 가야되잖아. 근데 못 들어가게 한다니까 그것까지도. 그래서 죽기 직전에 모시고 집에 와야대. 나도 여기 살지만 이해가 안 돼 허허허.
A2 : 근데 그게 우리가 볼 때 그게 맞아 떨어졌어.
A1 : 그래서 쌈도 나고 했었거든? 그래서 못이겨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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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혹시 오래된 고목나무같은 것은 있습니까?
A1 : 있어 그. 은행나무가 오래 된 거죠?
A3 : 몇 백년 됐다 그려?
A2 : 이진수 박사 생가터에. 근데 아무도 심은 걸 못 봤는가 보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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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마을 샘은 몇 개가 됩니까?
A2 : 세 개. 옛날엔 두 개 아녀? 아 세 개였는데.
A3 : 아 여그것까지 네 개네. 여 우에도 하나 있었으니까.
B1 : 그럼 마을 샘 청소를 언제 하셨습니까?
A3 : 칠성께 가서 많이 했죠.
A2 : 술맥이는 정월 보름날.
B1 : 마을 샘을 청소할 땐 미신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들어가서 청소를 한다던지.
A3 : 그 전에는 그렇게 청소하시더라구요.
A2 : 아들 낳은 사람이 들어가지. 말하자믄 맥이 좋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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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여우나 산짐승은 많이 있었습니까?
A1 : 그런 건 없고 토끼.
B1 : 그럼 여우에 홀렸다거나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까?
A1 : 여기 각골재라고. 여기 길 생기기 전에 무섭고 그랬었거든. 여기 이쪽 사람이 직선도로라 그쪽으로 많이 다녔어. 근데 우리 어릴 적 기억에 무서워서 못넘어 갔거든. 그래서 사람들 기다려서 같이 넘어오기도 허고 그랬거든. 근데 들은 얘기가 어떤 양반이 밤 새 귀신허고 씨름해가지고 못 이겨가지고 날 새고 왔다고. 그 이름이 각골재.
B2 : 그럼 묘지는 어디에 많이 있었습니까?
A1 : 뒷산에 많이 있었지. 그 쪽에는 전씨들 종산이니까. 전씨들 종산.
B1 : 그럼 애장은 어디에 하였습니까?
A3 : 옛 날엔 애장은 저기. 떡방앗간 뒤에 거기 산소 있는 데 있잖아. 그 전에 거기다가 갖다 놨지.
B1 : 그럼 나무에 매달았습니까 묻었습니까?
A2 : 묻었지. 이 근방은 다 묻었지.
A1 : 거시기도 있었는데. 옛날에 고려장한 터. 저 뒤쪽으로. 저 길 깎아진 곳으로 본 것 같은데.
B2 : 고려장이면 늙으신 부모님을.
A1 : 그렇지.
A2 :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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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리고 강경장을 이용하실 적에는 걸어가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 마을 주민들은 전부 강경장을 이용하셨습니까?
A3 : 옛날에는 다 다녔죠. 이 산 넘어로 다녔죠. 지금도 가려면 가고. 내 차 있는 사람들은 내 차로 가지.
A1 : 생활권은 시장이 더 가까워. 그래서 그 쪽으로 많이 가지.
A3 : 근데 차 타기가 교통편이 안 좋아서 지금은 좀 들허지.
A2 : 옛날에 강경이 저기 한 것은 배가 강경까지 드나들어서. 강경포구가 있잖여이. 그래서 옛날에 강경 상고를 그렇게 알아줬잖여. 전국에서. 그래서 나 고산서 시집왔는데 우리 저 거시기 제종도 여기 강경 상고를 와서 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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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머님은 완주에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금강같은 강이 있습니까?
A2 : 거기는 강이 아니고 저수지. 경천 저수지. 대아 저수지. 거기 상수도가 지금 웅당댐 상수도가 대아 저수지 냇물 거기 께로 흘러가가지고 고산께로 흘러가서 다 먹고 있잖여.
B1 : 그럼 음식문화가 이쪽과 크게 다른 것이 있습니까?
A2 : 다른 건 몰르는디 인자 여기 오니까 갈기가 있으니까. 그 쪼그마한 갈대 밭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기가 있었는디 그게 금강 하구둑 막으면서 짠물이 안들어오니까 그게 없어졌거든. 여기 오니까 그거를 젓 담아가지고 그거로 김치 담고. 그걸로 젓담아서 먹고. 고산서는 그걸 못봤어. 거기는 냇물이라 거기는 붕어같은 거. 다슬기 같은거 잡아서 먹고 그랬는디.
A4 : 사리 때는 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갈기가 막 바글바글 했어.
A1 : 금강변으로 옛날에 갈대도 많고 그랬잖아. 그러면 밤에 후레쉬 갖고 가가꼬 구뎅이를 파 이만하게 삽으로. 그러면 기가 거기로 몰려 들어와. 그래서 가마니에 담아오고 그랬었거든. 그래서 대부분이 갈기 젓을 담았다고 봐야대.
B1 : 저기 춘포는 만경강이 있어서 민물 들어오면 마을 주민들이 모래찜질을 했다거나 물을 가둬놓고서 고기를 잡았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다.
A2 : 여기는 양수장이 가물을 때 양수장 물이 물이 짠 물이 들어오니까 여기까지 들어 온거여. 그래서 짠 물이 들어올 때는 양수장을 안 푸니까 거기를 막아놓고. 인제 옛날에는 수통 갖다가 품어가지고서는 잡고.
A1 : 근데 또 뚝 넘어가 옛날에는 침수시설이 대비한 게 약했잖아. 그래서 자연식 침수가 되가지고 범람하고 할 때. 거기서 땅콩농사도 많이 짓고 벼농사도 많이 짓고 그랬는데. 물이 쑥 졌다가 빠지면은 물이 자연스럽게 가둬지잖아. 그러면 거기 가면서 이만한 거 줍고.
A2 : 저기 잉어. 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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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들어보니까 옛날은 지금 모습과 많이 달랐던 것 같은데 혹시 재밌는 지명이 있습니까?
A2 : 그런건 몰르고 여기는 들판이 널러서 XX성이 시집와서 그랬다대. 이렇게 논이 많은디 여기서 내 논을 어떻게 찾냐 그랬냐대. 하하하. 저기 화산에서 시집오신 분이 있었어요. 근디 그 분은 이 화산 같은 데 이 좁은 데 논 다랭이로 조금씩 농사지은 게. 여기 와서 봐서 여기서 내 논을 어떻게 찾냐고 .하하하하.
구술사진
왼쪽부터 전종서 신일례 김추자 구경순
신일례
김추자
구경순
전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