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교동(校洞․향교골) : 전 용안군청의 소재지다. 향교는 본시 풍제현(豊堤縣)의 치소(治所)인 현재의 용성리 ‘당하’에 있었는데 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교동마을 :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 용안면 :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무학산 : 학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원님이 두 번 운다고 하는 ‘용안면’ : ‘용안면’에 부임한 원이 부임 받을 때 한 번, 임기가 끝날 때 한 번 울었다고 함.
- 도깨비 : 도깨비는 빗자루와 절구대에 피가 묻으면 생긴다고 함.
- 순풍고개 귀신 : ‘순풍고개’를 넘을 때 귀신을 본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함.
- 남궁도령 : 중국의 천재가 ‘남궁도령’을 견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음모 민담.
- 중이 장삼을 입고 춤추는 혈 : ‘남궁도령’을 견제하기 위해 망부석을 세워 놓았다는 혈 자리.
- 성당포구 은행나무와 용안 은행나무 : ‘성당포구’와 ‘용안’의 은행나무는 서로 바라보아야 열매를 맺는다고 함.
- 창리 곡식 창고 : ‘창리’에 일제 강점기 때 전라북도의 곡식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함.
3) 민속 :
- 기우제 : ‘무학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총각의 금기 : 총각은 우물청소와 상여 매는 것을 못하게 했다고 함.
- 당산과 무학산 : ‘무학산’이 ‘용안면’의 당산과 같아서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함.
4) 철도 :
- 용안역 : 지금의 ‘용동역’이 예전 ‘용안역’이라고 함.
구술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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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장종철(64)-1936년
A2 : 전종선(67)-1937년
A3 : 차인태(77)-1937년
A4 : 주민
B1 : 박태건
B2 : 이동혁
B3 :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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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마을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1 : 이 ‘교동’이라는 것은 뭐 다 알듯이 여기 향교 있는 디는 대한민국에 다 ‘교동’이여. 근게 ‘교동’이라는 디가 많어.
B3 : ‘교동리’가 현재 몇 개 부락으로 형성 되어 있나요?
A1 : 여그가 3개 부락, ‘교동부락’, ‘성동부락’, 인자 옛날에 성이 있어가지고 서는 이짝으로 인자 동쪽에 있어 ‘성동’, 저짝 남쪽에는 인자 그전에는 ‘성재’라고 했어. 이 제(堤)가 있어가지고서 ‘성치’, 그래서 ‘교동리’에 ‘교동부락’, ‘성동부락’, ‘성치부락’ 그렇게 3개 부락이 현재 ‘교동리’에 있어.
B3 : 아- 그럼 성이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A1 : 그렇지. 옛날에 성이 있었지. 여기가 다 성이 있었어. 원님이 있었거든 저기 보면 ‘궁원’(?)이라는 디가 원님이여. 옛날에 원님이 있어 가꼬 성이 있었고, 지금 저 가보면 저짝에 군장터 뭐 그 곡식 탄 거 나온다고 어찐다고 하드만. 긍게 옛날에 여기에 성이 있었고 원이 있었어.
B3 : 그 성이 언제쯤에 지어진 성인가요?
A1 : 그 고려시대일 테지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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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안면’은 왜 ‘용안’이라고 불렀나요?
A1 : 그른게 그런 유래는 있는디. 옛날에- 긍게 이전에 고대 거시기야. 여기 뭐야 ‘안평’이라는 디가 있었고 저-짝에 가서 ‘용성’이라는 디가 이게 2개가 있었는데. 그것을 합쳤다고 하데? 저-기 있는 ‘용성’있는 고을하고 여기 ‘안평’하고 합쳐서 그래서 여그가 고을을 하나 맨들었디야.
A4 : 그리고 ‘용안’이라는 것은 용이 편하게 있다고 해서 ‘용안’이여. 용 용자 편안할 안자 해서.
B1 : 지형이 용을 닮았나요?
A1 : 근게 어떻게 되었는 고니요. 지금 저-리가면 ‘용두리’가 있어요. ‘용두리’ 이 산에 이게 뱀 혈인가 벼? 여 거시기 용혈 그래서 거기가 용머리여 그게 ‘용두’ 머리 두자 해서 ‘용두’가 있고 지금 ‘용두’라는 지명이 있어요. ‘용두리’ 근게 산이 거시기인가 벼.
B3 : 용의 혈 자리면 유명한 인사가 나올 법하기도 한데요?
A1 : 그런 건 못 들어 봤고, 인자 어른들 말씀에 뭐 일본 놈들이 와가지고 서는 이게 거시기를 다 끊었다고 하드만. 저-리 가는 거 끊고 이런 거시기를 혈을 일본 사람들이 끊었다.
A3 : ‘용두’도 그게 ‘충남’하고 연결된 산인디 그 근방이랑 끊어가지고 서나.
A1 : 아니 그것은 그게 용머리라고 해갔고 ‘용두’이고.
B1 : 어디를 끊었다고 말씀하시던 가요?
A1 : 아니 여그 산이 ‘북면’에 가는 도로. ‘북면도로’ 이게 산이 다 연결되었는데. 거기 도로를 다.
B1 : 도로를 끊을 때 무슨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나요?
A1 : 그런 것은 모르지. 어릴 때라 뭐 라고 하든디. 뭐 어쨋다고 하는디 그런 것은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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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 산 이름이 무엇인가요?
A1 : ‘무학산’이지.
A3 : 여기 ‘무학’ 옛날에 여기 학이 많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A1 : 근디 지금도 학이 와서 살어.
B3 : 또 다른 지명이 있나요?
A4 : 여기는 ‘무학산’을 비롯해서 ‘금강’까지 아까 ‘용두리’까지 12봉이에요. 12봉 봉우리가.
A1 : 근데 이상하게 이 12봉에 봉마다 다- 그 물론 씨족은 달리 하는디. 시제가 다 모셔진다고 그러데? 근게 이게 시제가 모실정도면 묘가 그래도 괜찮단 이야기여. 근게 봉우리 마다 12봉이 다 시제 모신다는 소리를 내가 들었어.
B3 : 12봉우리 마다 이름이 따로 있나요?
A1 : 그렇지 이름은 있는디.
A4 : 산 이름은 특이하게 나온게 없지. ‘무학산’의 12봉이라고 불렀지.
A1 : 그렇지.
B1 : ‘순풍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A1 : ‘순풍산’이 있지. 거기가 ‘오충렬사’ 그 ‘오충신’이 거기서 그 사람들 인가 빈게요.
A4 : 거그가 ‘해주오씨’들이 많이 살았었어.
B3 : 마을 앞에 하천이 하나 있던데요? 따로 부르는 명칭이 있나요?
A1 : 그런게로 저기 그 우리는 ‘하천강’인디. 이번에 그 거시기를 본 게로 저 뭔천?
A3 : 우-리 어릴 때도 ‘굴다리’라고 했어. 그랬자녀?
A1 : 인자 그 다리가 ‘굴다리’고 이것은 ‘하천강’이라고 했는디. 근데 지금 이 지명으로 저그다 해서 보면 뭐 ‘북천’이라?
A3 : ‘하천강’이라고 안 혀?
A1 : 어 안 혀.
A2 : 그게 저- ‘연동다리’라고 그전에는 그냥 그렇게 불렀는디? 지금은 ‘천북천’이라고 하드만.
B3 : 그 ‘연동다리’가 그 ‘연동마을’ 이름을 따서 만든 건가요?
A1 : 그렇지.
A2 : 그렇지. ‘연동부락’ 이름을 따가지고.
A4 : 거그가 그전에는 연 밭이었다고 그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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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용안면’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있나요?
A1 : 근게 ‘용안’이라는 디가 그렇게 유-명한 디는 아니고, 인자 우리 어려서 들은 걸로 보면 고을은 ‘용안고을’이 제일 적어디야. 다른 고을은 막 몇 개면 씩 있는 디 ‘용안’에 고을이 적었는데. 근게 원님이 들어올 적에 제일 처음에 부임할 때 적은 걸로 한게로 울고 왔다. 나갈 적에는 여기 사람들이 살기 좋고 인심 좋고 뭐 더고 한게, 근게 들어올 적에는 적어서 울고 나갈 적에 인자 참- 좋은데 나간다고 울고 두 번 울었다고 그런 말을 들었지.
A1 : 근게 아까 내가 얘기 한데로 ‘당하’하고 ‘용성’ 고을하고 이 ‘안평’고을을 두 개가 합쳐서.
A4 : ‘안평’이라고 하면 지금 어딘가?
A1 : ‘안평’이면 여그 저 ‘부곡’ 앞에, 우리 어려서도 ‘안평’ 동네가 있었어. 근디 인자 없어졌어.
A3 : 거기 몇 가구 있었어. 한 7∼8가구 있었어.
A1 : 그 고을에 ‘안평’하고 ‘용성’하고 두 고을을 합쳤어. 합쳐서 ‘용안’ 고을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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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용성’은 현재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A4 : ‘용성’은 ‘용동면’이고 ‘안평’은 ‘성당면’이고 그려.
A1 : 에- ‘용성’도 ‘용안면’인데. 인자 ‘용동면’으로 행정이 갈라졌어. 워낙 ‘용안면’이 컸어.
B2 : 그럼 ‘용동면’의 이름이 ‘용안’에 동쪽이라서 ‘용동’인가요?
A1 : 그렇지 그렇지. 동쪽이라고 해서 ‘용동’이라고 했지.
A4 : 행정 구역 뽀개진지 몇 년 안 되었어.
B3 : 면이 그렇게 크면 토지도 넓어서 부자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1 : 그것은 없었고 ‘용안’에는 부자가 없었디야. ‘용안’ 부자 열이 ‘함라’ 부자 하나 당하고, ‘함라’ 부자 열이 저- 그 ‘옥구’ 부자 하나라고 그랬지. 여기에서는 천석꾼도 아니고 한 500석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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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 조선시대에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A1 : 예- 창고가 저 다 부셔 졌고만, ‘용두’ 저짝에 창고가 거기가 있었어. 배로 거시기 한게로 그것을 ‘군산’으로 빼기 위해서 했는 가벼.
A3 : ‘창리 송정 부락’이라고 있어.
A1 : 긍게로 여 ‘성당포구’가서 해갔고 서는 여기 다- ‘남원’서 까장 ‘남원’ 세비를 ‘성당’으로 와. 그 세금을 바치러 근게 전라북도가 이 ‘성당포구’로 다 오는 가벼. 그먼 거기서 혀 가지고 서는 배를 갔고 ‘군산’으로 해서 ‘일본’으로 빼는 가벼.
B1 : 일제 강점기 때요?
A1 : 그렇지 일제 강점기 때.
B1 : 조선 시대는요?
A3 : 그 전에는 모르지 ‘창리’에 있는 창고자리는 일본 사람들이 한 거지.
A1 : 조선 시대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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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예전에는 ‘거리제’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 그 ‘거리제’ 같은 것, 우리 어렸을 때 보면 ‘거리제’ 같은 거 지내고 그랬어.
A4 : 그전에는 ‘거리제’ 뿐만 아니라 미신 같은 거 많이 했지.
A1 : 그러구 옛날에 우리 어려서만 해도 고을에 ‘당골’이라는 것이 있었어. 지금 ‘당골’이먼 그 후손들이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 뭐 시기 하지만 그 소리하는 사람들, 그게 다- 그 사람들이여 옛날에는 그 사람들이 하대를 많이 받았어. 왜냐면 소리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어도 상 중에도 여기 와서 소리 하라면 가서 소리하고 그랬다고.
B1 : 옛날에 기생들이 주로 소리를 하지 않았나요?
A1 : 아니여 인자 기생들은 거시기 하고 이 ‘진양조’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지.
B1 : 여기서는 소리 하는 것은 ‘진양조’라고 합니까?
A3 : ‘판소리’라고 하죠.
A1 : 그 ‘판소리’하는 사람들은 우리 어렸을 때 ‘잿놈’들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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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옛날에 도깨비 보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셨나요?
A1 : 허허허 그런 소리는 많이 들었지. 어른들한테 우리가 볼 적에도 거짓말 같은 디.
A3 : 그 빗자루에가 피 묻고 이 절구통에 그거 있자녀? 거기가 피 묻으면 뭐 밤에 돌아 댕긴다고 했다고 그런 소리를 어른들한테 들었지 인자.
A2 : 아니 지금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근데 그게 사람이 예를 들어서 어디 중환자가 있어가지고 죽을 때 되면 도깨비불이 나갔다고 그러거든? 나도 그걸 한 번도 목격을 못 해봤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디야.
A4 : 근데 그것은 몸이 허해서 그런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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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그 저 네가 한 가지 얘기해야 것는 디. 우리 지금 현재 ‘순풍고개’가 있어요. 그 일화가 노인이 산소를 저- 모셨어. 거기가 좀 험 혀. 너무 그냥 외져 외진 게. 사람들이 그 고개를 넘어 올라면, 인자 막 긴장되고 무섭고 그럴 것 아니여? 그러면 나는 그런 것을 목격을 못 했는 디. 어떤 사람들은 거기 넘어 올 때, 하얀 하니 뭐가 뵌다고 그려. 그러면 그 산소 해놓은 그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다고 그려. 그게 인자 쉽게 이야기 하면 몸이 허약하다는 거여.
A4 : 옛날에 무서웠어 거기가.
A3 : 거기가 대 밭이 있자녀.
A2 : 근데 인자 안정이 되었지. 그 길을 확 뚫어 놓은 후로는 그런 일이 일절 없어. 전에는 몇 사람이 그랬어, 거기 올라면 귀신 나온다고.
B3 : 그 귀신이 어떤 귀신이라고 하던가요?
A2 : 아 하하하하. 아니 그런 게 거기 묘를 쓴 게. 그 여자분이여 여자 분을 썼는 디. 어머니 귀신이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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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무슨 혈 자리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A2 : 이 저 우리 17대조 할아버지가 ‘법성부락’ 앞에 있어요. 거기가 있는데 옛날부터 돈이 있었건 없었건 그 혈이 나르는 혈이라, 해가지고 돌은 얹히면 못 날른 게. 비석을 못 세우게 한 거여. 근데 그것도 일종에 전설이겠지.
A1 : 여 여기 ‘남궁씨네’가 뭐 저기 중이 장삼입고 춤추는 혈이랴.
A2 : ‘수산’?
A1 : 여기 저 ‘남궁씨네’ 거 있자녀.
A2 : ‘갈산’이지?
A4 : ‘갈산’이지.
A1 : 아니 그건 저 중국 천재가 그 망부석 해가지고 서는 망부석이 지금 있자녀. 거기가 아마 ‘남궁씨네’ 시조가 될 것이여.
B3 : 그게 정확히 무슨 이야기 인가요?
A1 : 그래 갔고 서는 우리가 들은 소리 있는 디. 중이 장삼을 입고 춤추는 혈이다. 근데 거기다 묘를 썼어. 근게 중국서 본 게로 묘가 잘 써가지고 자기를 능가할 인물이 나. 근게 거기서 누가 나왔는 고니 ‘남궁도령’이 나왔는 디. 그 사람 키가 석자 세치랴. 근게 인자 중국 천재가 불렀어. 불러가지고 서는 딱- 하니 본 게로, 근디 ‘남궁도령’은 내가 가면 죽는 다는 것 까장 또 알고. 천재가 불렀는 디 안 갈수는 없고, 그래 가지고서는 가. 그런디 이 사람이 더 뜨지, “인자 천재가 나를 죽일 것이다.” 버선을 신었는디. 한치 솜을 더 해갔고 갔어.
A2 : 더 크게?
A1 : 어 더 크게. 그래 갔고 천재가 “키가 몇이냐”고 “나 석자 네치”라고, 하- 석자 세치면 어떻게 해보겠는디. 석자 네치라고 그래 갔고 “하- 그러냐고” 근게 인제 안 죽이고 당신네 선영에 묘를 잘 썼다는데. 내가 천재로써 그냥 놔둘 수 없다. 근게 망부석이라고 해서, 이렇게 묘 앞에다 세우는 큰- 돌이 있어. 이것을 내가 시사할테니 가지고 가서 혀라. 근게 그것을 가지고 오는디. 서해 바다 풍랑이 일어 갔고 서는 그것이 뒤집어 갔고 서해바라 가라앉았다는 거여. 그랬는디 얼마 후에 ‘웅포’, ‘곰개’에 그것이 떠밀려 왔다. 찾아가라, 갔다 세웠디야. 그래 갔고 그 망부석이 지금도 있어.
B3 : 그게 어디 있는 건가요?
A1 : 그게 ‘갈산리’ 거기 저 ‘남궁씨네’ 그 산에 가면 있어. 우리도 가서 구경 했어. 큰- 그 저 거시기를 세워 놓았어. 근데 우리도 들은 소리여. 근게 그게 있을 수 있냐 이 말이여. 독이 그렇게 밀렸다는 것이. 근게로 그 사람이 크-게는 못 했는 게벼. 왜 그런고니 이것을 눌러 놓아서, 안 눌렀으면 그게 ‘남궁도령’이 중국 천재를 칠 정도로 이렇게 큰- 거물이 났다는 거여.
B1 : 아 중국 천재가 돌로 기를 눌러 놓은 거네요?
A1 : 그렇지. 이것이 중이 춤추는 혈이랴. 근디 가보면, 우리도 가 봤는디. 이게 날이 소시랑 날이라고 혀. 날이 3개 인디. 여기다 썼는디. 날도 좋고 참- 묘 자리도 좋아. 내가 볼 적에는.
A3 : 근게 그 사람 뭐 못하게 눌러 놓은 것이지.
B3 : 그 이야기는 언제 쯤 들으셨나요?
A1 : 아- 인자 우리 어려서 들은 것인 게. 그리고 이 근방사람들은 다 들어서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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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또 이와 비슷한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A1 : 그전에는 샴 속에, 우리도 몇 번 들어 갔는디. 아들 낳는 다고 하고, 긍게 젊은 사람 들어가라고 해서 거기 들어가면 아들낳는다 뭐 한다 해서 자꾸 젊은 사람 들어가게 한 거지. 나도 샴 속에 몇 번 들어 갔는디. 그런 거시기가 없어.
A3 : 아 그리고 옛날에는 저 사람 죽으면 상여를 매자나? 근데 장가 안 간 사람은 상여 못 매게 했어. 저- 장가 늦게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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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주변에 기차역이 어디에 있나요?
A1 : 기차역은 나중에 ‘용동’에 나중에 생겼지. 그게 애초에 ‘용안’에 역을 하나 한다고 했는데. 용케 ‘용동’이 빠개진게. ‘용동’으로 되었지. 그게 ‘용안역’이여.
B3 : 주로 누가 많이 이용했나요?
A1 : 주로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지. 그 다음은 이제 장사하는 사람들.
A2 : 이 지역은 ‘용안역’을 사용 잘 안했어. ‘함열역’으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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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비가 안 오고 그러면 산제도 지내고 그랬나요?
A1 : 그전에는 지내고 그랬어. ‘무학산’ 꼭대기에서 지냈지. 그 거시기 산 말랭이에다 이렇게 차려놓고, 절하고 빌고 그랬지.
A3 : 나무로 해서 불 지르고 했어.
A1 : 아니여 기우제 지내는디 그렇게 안했어. 산에서 지낸게로 그렇게 차려 놓고 나도 가서 구경 했는디. 음식 차려놓고 절하고 비 좀 와달라는 그런 축 읽고 그렇게 했지.
B1 : 기우제를 지내던 곳을 뭐라고 불렀나요?
A1 : 아 그것 보고 뭐라고 하던데? ‘당산터’? 그렇게 하드만. ‘용안’에 편안하게 해달라고 비는 장소 인가 벼. 근게 거기가 옛날에 ‘당터’라고 그러데 ‘무학산’에.
A4 : 거그가 산꼭대기가 아니고 산 중턱이여.
A1 : 근게 거기가 ‘당터’라고 혀. ‘용안면 당터’라 거기서 기우제 것 뭐 같은 것 지내고 할 적에 거그 와서 그렇게, 인자 고을 원이 와서 하나 높은 사람이 하나 몰라도 기우제 지내는 장소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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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주변에 오래된 나무나 돌 같은 것이 있나요?
A4 : 그 저 ‘용안’ 은행나무는 암놈 은행나무, ‘성당포구’에 있는 것은 수놈 그래 가지고 서로 얼굴을 봐야 열매를 맺는다는 소리는 하드만.
B2 : 마을에서 금기시 하는 것이 있었나요?
A3 : 아- 그런 건 있지. 여기 앞에 거기 보고 ‘아죽가터’라고 했거든? 지금은 대 밭 되었고만, 근디 거기다 묘를 쓰면 ‘용안’ 사람들이 ‘용안 교동’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해가지고 거기는 묘를 못 써. 그런 거시기는 있지. 그래서 이 ‘무학산’ 앞으로는 묘가 없어 인자. 묘지 쓰면 안 좋다고 해서 못 쓰게 했지.
A1 : 아- 옛날에는 당산 뒤라고 해서 묘를 쓰면, 어느 마을이고 마찬가지여 당산 뒤, 아 근게 ‘용안’의 뒤가 ‘무학산’이니까 묘 쓰게 못하지.
B3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구술사진
성터에서 나왔다는 바위
용안면 고지도
용안면 교동마을 향교 입구
장종철
차인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