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용동면 > 용성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용동면 > 용성마을
구술자 이재갑(1942)남자
구술자 이종록(1940)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7-01
비고 면담장소 : 용동 용성마을 모정
면담시간 : 2013년 7월 1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용성(龍城)․당뒤 : 전에는 용성(龍星)으로도 썼다. 마을 동북편에 칠성바위라는 7개의 바위가 있었고 동리 앞들에서 용마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어 그에서 이루어진 이름.‘당뒤’는 선비들이 학문을 익히던 흥학당(興學堂)의 뒷편이었으므로 일컫던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용성마을 : 본래는 ‘당뒤’라 불렀음. ‘용성’은 용두에서 달려온 말의 무덤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
- 말무덤 : 논 잔 가운데 있던 무덤. 자세한 이야기는 ‘용두마을 장수 이야기’ 참조.
- 당하마을 : ‘당후’라고도 함. 성황당 뒤에 있다 해서 당후라고 부름.
- 당재 : 당하마을에 있는 산. 성황당이 있었음.
- 비석매 : 용성마을에서 삼정마을로 가는 길목에 있던 언덕. 언덕 위에 비석이 많이 있다 해서 ‘비석매’라 부름.
- 칠성바위 : 용성마을에 있던 일곱 개의 바위. 현재는 일곱 개 중 네 개만이 남아있음. 일곱 개를 통틀어 칠성바위라고 하지만 개중에는 ‘금바위’나 ‘은바위’처럼 독립된 이름을 지닌 것도 있음. 또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지만 고인돌로 여겨지는 칠성바위도 있다고 함.
- 향교터 : 현재 용안면 교동마을에 있는 향교가 원래는 당하마을에 있었다고 함. 그 터를 이르는 지명. 지금은 그 자리에 닭장이 있다고 함.
- 용안 : ‘용두코쟁이’에서 용 아홉 마리가 달려간다 해서 용안이라 지었다고 함.
- 구산마을 : 산이 섬처럼 군데군데 아홉 개가 있어 ‘구산’이라고 함.
- 대조마을 : 마을 모양이 큰 새의 형상이라 ‘대조’라고 지었다고 함.
- 사기점 : 현재 지명으로는 ‘신화’라고 부름. 옛날에 사기를 구웠다고 함.
- 구렁목 : 사결리 아래를 ‘구렁목’이라고 부름.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음.
- 객명산 : 신화마을에 있는 산. 신화마을로 이사 오는 ‘객’은 모두 잘 된다 해서 ‘객명산’이라고 부름.
- 봉화산 : 봉화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
- 무학산 : 산에 학이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용두마을 장수 이야기 : 용두마을에서 장수의 기질을 지닌 아이가 태어남. 신통력이 있어 콩나물을 병사처럼 부림. 이를 부모가 알고 삼대가 멸족당하겠다 싶어 아이를 다듬돌로 눌러 죽임. 아이가 죽고 난 뒤에 아이의 말이 용성마을까지 달려와 논 잔 가운데서 죽음. 그 말의 무덤을 ‘말무덤’이라 부름.
- 칠성바위에 얽힌 이야기 : 칠성바위 중 하나를 땅에 묻자 갑자기 그 땅주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다시 바위를 파내자 우환이 사라짐.
- 금바위 이야기 : 바위 속에 금이 들었다는 말이 있었음. 일제강점기 때 그 말을 들은 일본사람들이 바위를 쪼개감. 그때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음.
- 강경장 이야기 : 용성마을은 생활권이 주로 강경이었다고 함. 옛날에는 강경장에 고깃배가 많이 들어왔다고 함. 장날이면 십만 명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고 함.
- 이완용의 묘 : 낭산면 내산동이라는 곳에 이완용의 묘가 있었다고 함. 팔대 명당 중 하나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음.
- 용을 닮은 지형 : 용성마을을 보고 용의 꼬리라고 함. 용의 머리는 ‘용두’에 있다고 함.
- 도깨비 이야기 : 술을 마시고 돌아가던 중에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함. 이긴 뒤에 나무에 묶어놓고 다음날 다시 찾아가보면 빗자루가 묶여있더라는 이야기.
- 구렁목 이야기 : 이곳에서 장수가 날 터였는데 일본사람들이 산혈을 끊었다고 함.
- 꾀꼬리봉 이야기 : 용동면 화배리에 있다는 명당. 여기에 묘를 쓰면 꾀꼬리처럼 예쁜 자식들을 낳는다고 함. 그러다 망해갈 무렵이 되면 벙어리나 대장장이를 낳게 된다고 함. 처음에는 인동 장씨들이 이 묘를 썼는데 후에 문중근씨라는 분이 그 묫자리를 사셨다고 함. 문중근씨가 묫자리를 사고서 거기에 망부석을 세웠는데 그 망부석이 꾀꼬리의 날개를 누른 형국이 되어 문중근씨가 망하게 됐다고 함.

3) 민속 :
- 성황당 : 지나다닐 때마다 꼭 돌을 던졌다고 함.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빌러 가기도 했다고 함.

구술채록

A1 : 이재갑(70)-1942년
A2 : 이종록(72)-1940년

B1 : 박태건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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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를 왜 용성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2 : 여그가 원래는 용성마을이 아니고 당뒤라고 했다고, 당뒤. 당하, 당뒤, 여그가. 그래갔고 인자 이 칠성바위가 이렇게 생겨갔고 유래가 될 무렵이 돼서 용 용 자 뭐 용성이라고 이렇게 맨들었다고. 이름을 갈었다 그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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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코쟁이, 현재 용두라 불리는 곳에서 장수가 태어났다고 함.)

A1 : 어린애를 낳는디 인자 장수가 난지를 몰랐지. 본인 부모들은. 근디 어린애를 눕혀 놓고서나 일 나갔다 오먼 방이 이렇게 몸지(먼지)가 많이 나드랴. 어린애만 눕혀 놨는디. 그래서 인자 하루는 가서 인자 문틈으로 이렇게 기다본 게 콩나물 질구는디(기르는데) 콩나물을 군사로 이용을 해가지고 말이여 막 호령을 해가면서 그놈이 장수가 막 그러드라네. 그런게론 아이구 저것 그냥 뒀다는 삼족들 멸허겄고 클 나겄다 허고서나 즈 부모가 그 다듬독으로 (아이를 눌러서 죽였다) 어린앤 게. 그런 게 이놈이 지가 용쓰고 뭐 할 때는 기술을 피고 헐 때는 어린애가 아니지. 인자 장수가 될 놈인 게. 그런 게 인자 그 사람, 그 어린애, 죽은 어린애 말, 장수를 태우고 댕기던 말이 용두에서 인자 그놈이 기달리고 있었던 게벼. 그러자마자 애기가 죽은 게 부모가 인제 죽였다는 거지. 죽인 게 거기서부텀 뛰어와갔고 요기 논 잔 가운데 와서 죽었는디 거기 옛날에 말무덤이라고, 그냥 거기 묏똥은 묏똥대로 있고 농사는 안 지어 먹었었어요. 지금은 인자 없애버렸지. 경기정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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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성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지어진 겁니까?

A1 : 그리서 저그 저 인자 용 용 자 용두에서 왔다고 해서 용 용 자 따서 그맀다고 그잖아요.

A2 : 용의 무덤이 있다 혀가지고 용성이라고 그랬다고. 용 용 자, 재 성 자.

A1 : 여그가 원래는 당뒤라고 하는 디여, 당뒤.

(용두에서 달려온 말의 무덤이 있다 해서 용성이란 이름이 붙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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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당뒤라는 말은 주변에 어떤 당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A1 : 성황당이라고 있었지.

A2 : 여기 당제. 당하 여기가 당제거든. 당하 그 산.

A1 : 그게 우리 어려서도 있었어. 여그서 오자먼 당제가 어딘고니 그 고가도로 있지? 거기가 당제여. 그 밑이께. 그전이 지나갈라믄 우리도 돌 하나씩 거그다 던져놓고 가고 그랬었어.

A2 : 그리서 그 뒤에 있다고 혀갔고 당후, 여그는 당뒤, 그맀었어.

(당하와 당후는 같은 말. 용성은 당뒤라 불렸음.)

B2 : 성황당과 관련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A2 : 우리가 알기로는 그것(성황당)을 지어놓고 댕긴 것이 아니라 우리도 했어 사실은. 거기 지날 때마다 돌맹이 하나씩을 어디서 주워갔고 와서 거그 가서 버리고 가고. 그게 성황당으로 알어 나는. 여기도 있었어. 여기 비석매. 비석매 삼정리 가는 그 길. 주구네(?) 밭 있는 디끼. 거그가 성황당이 있었어.

B1 : 비석매라고 합니까?

A2 : 그러죠. 비석매. 비석이 거그가 많았었어요.

B1 : 비석이 있는 어떤 언덕이 있었습니까?

A2 : 예. 있었어요. 철도 건너가는 디. 가기 위해서 가는 길이 거그가 성황당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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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바위가 인자 네 개밖에 없어.

A2 : 다 여기저기 묻혀가지고. 원래는 이거 칠성바위라고 혔었거든. 저게(모정 옆 길가에 있는) 바위 아니오? 요것도 저 동네서 가져간 놈 뺏어다 놨어, 우리가. 저 동네서 자기네들이 어디다 이용해 먹을라고, 그전엔 요 밑이가 있었거든. 경기정리하는 바람에 저기다 갖다 놨는디 저 동네 사람들이 와서 몰래 가져갔어. 나중이 본 게 없어진 게 거기서 가져갔다 해서 어저께여 그저께여. 그저께지? 그저께 갖다 놨지.

B1 : 바위를 가져가면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까?

A2 : 예. 그래서 우리가 도로 뺏어왔지.

A1 : 이 바위를요 저그가 있었는디 경기정리 논 밀을 때 저쪽 구탱이로 갖다놔 버렸어. 그서 팍 묻어놔 버렸었어. 거그다 팍 묻어논 게 이 주인이 농사짓는 양반이 집이 우환이 많여. 느닷없이 그냥. 그래가지고 바위를 또 막 일꾼을 얻어가지고 막 흙을 파내고 뵈게 이렇게 올려놨단 말이여. 그러다가 난중에는 두고 둔 게 쪼매 괜찮은 게 그놈을 파서 그냥 우기다 올려놔 버렸어. 결국이는 돌아가셨는디 근디 이런 바위를 저 동네서 가지가 버맀잖어.

A2 : 네 개여, 지금. 네 개 나왔어, 지금. 세 개는 몰라. 오다가야(?) 하나 묻혔고 저짝에가 지금 두 개가 있었다는디.

A1 : 교회 거그께 어디께가 우리 어렸을 때 거기 있었었어.

A2 : 거기도 묻혀버렸당게.

B1 : 그 바위 이름이 따로 있습니까?

A1 : 칠성바위라고도 허고 은바위라고도 허고 그랬는디.

A2 : 이건(모정 옆 길가에 있는) 금바위.

A1 : 바위가 일곱 개라고 해서 칠성바위라고 그랬지.

B1 : 지금은 일곱 개가 안 됩니까?

A2 : 예. 시방 네 개밖에 없어요. 세 개가 묻혀버리고 어디로 행방불명되야 버리고.

A1 : 아, 이것도 가지간 놈 찾아왔당게 엊그저께.

A2 : 그른디 저게 누구 말 들은 게 또 일정시대 외놈들이 저거 금 들었다고 한쪽을 띠어갔다고 허는 거 같여.

B1 : 금바위 속에 금이 들어있다 해서 일정시대 외놈들이 금바위를 잘라 갔다―.

A1 : 예.

A2 : 저그가 지금 떨어졌어 어녕. 딱 짤라져 버렸어, 뒤가.

A1 : 근디 이건(모정 옆 둔덕에 있는) 신원이 이거 봤다며. 우리는 못 봤는디 저 밑이는 고인돌이라고 그랬어.

B1 : 고인돌이라는 말도 있습니까?

A1 : 예.

A2 : 아, 그 밑이 있어. 우리 어려서, 어렸을 적이 보먼 있어.

A1 : 지금은 흙이 돋아서 묻혀서 그러거든.

A2 : 묘주가 이렇게 말허자먼 월현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덮은 거여. 쏙 나왔었어, 원래.

A1 : 저 밑이 가서 받침대가 있고 혓바닥이 이렇게 나와 있다고.

A2 : 그게 고인돌이라고 허는 사람도 있드라고.

B1 : 바위 이름은 따로 없습니까?

A2 : 없어요. 원래 칠성바위라고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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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성황당 말고 다른 당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A2 : 그런 것은 못 들어봤어.

A1 : 긍게 거그 가서 시루 같은 거 쪄놓고들 절도 허고 그랬어.

A2 : 촛불 켜놓고 그맀다고 그맀어.

A1 : 그런 디서는 가만히 보먼 애기 못 낳는 사람들도, 여자들도 막 가서 막 뭐 혀놓고 빌고 막 그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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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지금 교동에 있는 향교가 원래는 이 마을 근처에 있었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당하, 당하 거그 당뒤라고 그게 향교터라고 허대.

(지금은 그 향교터에 닭장이 있다고 함.)

B2 : 향교를 옮긴 이유가 있습니까?

A1 : 아니 인자 큰 게.

A2 : 용안이 큰 집이고 여기는 작은 집이라고. 거그가 소재지거든.

A1 : 옛날에는 (면 소재지가) 여그가 있었디야. 용안면이 다.

A2 : 다 여기는 용안면이었었응게 그때는.

A1 : 같은 면이었응게. 지금은 용동면으로 인자 분리가 돼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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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용안은 왜 용안입니까?

A1 : 말은 용두에서 저 거시기가, 용이 아홉 마리가 달려간답디다. 용두코쟁이에서 용이.

A2 : 저그(용두산)가 용두코쟁이여.

A1 : 그래가지고 용안면이로 했답디다.

B2 : 용이 어디로 달려간다고 합니까?

A1 : 저그 미륵산.

B1 : 구산마을도 용과 관련돼 있습니까? 용 아홉 마리?

A1 : 아니요, 거그는.

B1 : 산도 없는데 왜 구산이라고 합니까?

A2 : 여기가 산이 있었지. 요기까지 다 산이었었어요. 원래 산이여, 구산도. 섬마냥 산이었었어.

B2 : 지금은 다 깎아내서 없어진 겁니까?

A2 : 그러지. 여기도 원래가 이게 다 산이었었어. 여그 바위(은바위) 있는디 여그가 지금 공동묘지터라는 디여. 허치면 지금도 유골이 나오잖여.

B2 : 구산은 산이 섬처럼 아홉 개가 있어서 구산입니까?

A2 : 인자 그것은 모르지.

(산이 아홉 개라서 구산이라는 분도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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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대조는 왜 대조입니까?

A2 : 큰 대 자, 새 조 자. 거그가 그 형이 큰 새라고 혀가지고 그 대조라고 그 이름 지었다고 그랬어.

B2 : 마을 지형이 새를 닮으면 뭐가 좋다고 합니까?

A2 : 모르지 인자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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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사기점이라고 있잖어, 거기에. 그런 디가 사기점이라고 해갔고 사기점 이름을 어떻게 했는고니 거기서 사기를 구워가지고 신화라고 지금 그 마을은 신화로 인자 이름을 갈었거든. 거그서 원래 인자 옛날 으른들이 사기를 굽다 옹기까지 구웠어. 그래서 그 부락 이름이 원래 사기점이라고 헌 게 에이 쌍놈의 동네라고 헌 게 신화로 이름을 바꿨어. 아, 우리 어렸을 때 이 사기점놈, 사기점놈 했싼 게 사기점 갈라먼 어디로 가 그러먼 몰라 저쪽으로 가, 안 일러줬어. 신화라고 허면 일러주고. 근디 사기 굽는 거 우리도 몰라. 팔십대 얼추 가까이 됐어도 사기 구운 건 우리도 몰라. 옹기 굽고 노깡 군 건 기억이 가물가물허게 나는디 어려서 몰라. 거기 굴까지 있고. 굽는 굴.

B2 : 그릇들을 내다파는 곳이 있었습니까?

A1 : 시장에다 내다팔았지. 그전 밥그릇하고 술그릇하고 순전히 인자 강경 같은 디다가.

A2 : 동네 동네 다 돌아댕겼어. 동네 동네 우마차에다 싣고, 옹기 싣고 다 돌아댕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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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기는 시장을 보러갈 때 어디로 많이 갑니까?

A2 : 강경, 함열. 생활권이 여그가 강경이라고 그러지. 그전에는 날마다 걸어다녔어, 어른들은. 쌀 두어 말씩 짊어지고서나 걸어가서 시장 봐오고. 요즘인 게 함열로 많이 가지 원래 생활권은 강경이여.

B2 : 옛날에는 강경장 풍경이 어땠습니까?

A2 : 원래는 거그가 배가, 막 고깃배가 들어와갔고 막 조기니 뭐 홍어니 뭐 생선이라는 건 안 들어온 것이 없었어, 옛날에는.

B2 : 주로 어디서 물고기들을 많이 잡았습니까?

A1 : 그런 게 어디서 잡아왔냐는 모르지. 인제 바다에서 잡아갔고 온 게.

A2 : 뱃길이 여그 금강 줄기거든. 여기 타고 들어와, 배가.

A1 : 지금은 안 들어와. 옛날 얘기지.

B2 : 강경장은 뭘로 유명합니까?

A2 : 강경에서 유명허다면 젓갈. 뭐 오젓, 육젓, 뭐 새우젓이지. 젓갈 종류는 다 있는디 주로 새우젓을 많이 하지.

A1 : 강경이 삼대 시장인디 십만 명이 왔다갔다 혔다네. 그런 게 엄청나게 컸지.

B2 : 장날이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왔다―.

A1 :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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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는 나무하러 어디로들 많이 다니셨습니까?

A1 : 미륵산.

B1 : 미륵산 어느 쪽에서 많이 하셨습니까?

A1 : 그 익산 내산동이라고 허는 디.

A2 : 미륵산 건너서 송산까지 갔어요.

A1 : 내산동이여 그게. 내산동이 그게 이완용이 묘 있다는 디가 그게 내산동이여.

B1 : 내산동에 이완용 묘가 있습니까?

A1 : 거기 있죠.

B1 : 거기가 무슨 명당자리입니까?

A1 : 팔대 명당이랴. 거그가 있는디 지금은 다 없애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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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성마을 지형이 뭘 닮았다,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용꼬리가 있다고 그랬지.

B1 : 용꼬리 형태가 이 용성마을이다―.

A1 : 예.

B2 : 그럼 용머리는 어디라고 합니까?

A1 : 용머리는 저기였을 테지, 용두에. 그런 게 머리 두 자지. 용머리가 용두여.

A2 : 산이 용처럼 생겼다고 해서 저기가 머리라고 용두여.

A1 : 어, 용머리. 여그는 용꼬리.

A2 : 쉽게 얘기해서 산이 가다가 저기서 끄쳐버렸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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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도깨비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말 듣기는 뭐 도깨비하고 술 잔뜩 먹고서나 도깨비하고 씨름하먼은 오약다리 감어야 넘긴다고 혔는디, 실컨 저 전범이 아버지가 그랬어. 꼭꼭 지장풀이다가 꼭꼭 묶어놓고 와서 그 기튿날 가본 게 빗지락 몽댕이드리야.

B1 : 어디다 묶어놨다고 합니까?

A1 : 지장풀이라고 질긴 풀 있어. 이렇게 이렇게 묶어놓으먼 사람도 가다 그놈 걸리먼 자빠지고 그전에 그 짓들 안했어? 거그다 저녁에 꼭꼭 거기다 묶어놓고 와서 그 기튿날 아침에 가서 본 게 그냥 빗지락을 꼭꼭 묶어 놨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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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구렁목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1 : 구렁목이라는 디는 저기 사결리 밑이가 구렁목이여. 여기 행정 거기가 구렁목이여. 그게 일본놈들이 그게 혈통을 끊어가지고서나.

B2 : 뭘 끊었다고 합니까?

A1 : 산을 끊었당게.

A2 : 산 혈을.

A1 : 장수 나게 생겼응게 끊었다는 말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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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객왕산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1 : 객왕산은 없어도 객명산은 있어, 객명산.

A2 : 저기 사기점이라고 아까 얘기했잖어. 그 동네 그 우기가 산이 있어.

A1 : 객명산이라고 있어. 용안 임씨네들 산.

B2 : 왜 이름이 객명산입니까?

A1 : 그게 산을 뭐 어디서 막 흙을 장수들이 밀어다 붙여갔고 산을 맨들었다고 허드라고 쌓아서. 하얀 백토만 나와 파보먼.

A2 : 객명산이 그 신화 동네가 객은 들어오먼 잘 된디야. 다른 동네 사람이 그 동네로 이사 오먼은 그 이사 온 사람들은 다 잘 된디야. 이사 온 사람치고는 다 못 된 사람이 있들 않여. 그래서 객명산이라고 헌다고 그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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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봉화산은 안 나온 게비?

A2 : 봉화산? 봉화산은 옛날에 봉홧불 올려서 봉화산이지. 저기서부텀, 저리서부텀 저 공중으로 이렇게 막 봉홧불 올려갔고 그전에는 저기 연락을 취했다고 안 했어.

(옛날에는 봉화산에서 무제도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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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무학산은 왜 무학산입니까?

A2 : 거기 학이 많잖여. 산나무에.

B2 : 학이 많아서 무학산이다―.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으신 이야기입니까?

A2 : 그렇지. 그런 이야기는 들었지. 그래서 무학산이다―. 거기 학이 많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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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망했단 말여, 다. 망헌 게 인자 그렇게는 못 하고 산을 팔어먹어 버렸어. 저 옥구 문씨네들한티. 그래갔고 문씨네들이 거그 파묘하고서나 그 자리에다가 묘를 썼어. 묘를 썼는디 인자 돈은 많고 문중근씨가 인자 돈은 많고 헌 게 어떻게 됐는고니 비석을, 좋은 비석을 막 자기 자손들 이름 새겨갔고 거기다가 썼는디 꾀꼬리 날개다 갖다 눌러놨응게 꾀꼬리가 힘을 쓰겄어? 그래갔고 문중근이네 씨가 말러버렸어, 문중근씨네가. 꾀꼬리봉에 그런 전설은 있어.

B2 : 그 꾀꼬리봉이 어디 있습니까?

A1 : 화배. 잔 배 자. 꽃 화 자. 용동면이여, 용동면 화배리.

B2 : 용동면 화배리에 꾀꼬리봉이라는 묫자리가 있다―.

B1 : 근데 장씨가 무슨 장씨입니까?

A1 : 그 사람들이 인동 장씨여. 장씨네들 인자 노인이 돌아가셨는디 스님이 와가지고 묫자리를 잡어줬다는 거여. 잡어줬는디 그 묫자리가 꾀꼬리봉이라고 혀서 꾀꼬리가…, 그런 게 인자 자손들도 꾀꼬리처럼 이쁘고 인자 잘 낳을 것이다 그래갔고 망할 무렵 가먼 벙어리하고 대장 난다고 허드리야. 이렇게 투닥거려서 뭐 만드는 (사람보고) 대장이라고 그러잖어. 그랬더니 벙어리 나고 대장 나고 망했단 말여, 화배 장씨네들이. 그래갔고 인자 그놈을 욕심을 낸 게 옥구 사는 문중근씨라고 내 이름은 안 잊어버리는디 그 양반이 거기서 뭐 백 원짜린가 뭐 얼매짜리를 옥구서부텀 깔다시피 허고 왔디야. 그래갔고 인자 그 묘를 파묘하고서나 어떻게 됐는고니 자기네 잘 될라고 자기네 조상을 갖다 거기다 모셨던 게벼. 모시고서나 인자 낯 낼라고 막 양쪽이 망부석을 잘 써놨어. 지금도 거그 그냥 있는디. 근디 인자 거기다가 비석을, 날짐승혈은 비석을 쓰먼 안 된다대. 용혈 같은 디는 비석을 써야한다고. 그런다고 안 쓰는 사람들이 많은디 가만히 생각헌 게 그래갔고 멸족해버렸어. 꾀꼬리 날개에다가 비석을 갖다 눌러놔가지고. 꾀꼬리가 움직이들 못헌 게. 문중근씨네가 멸족해버렸당게. 그래갔고 결국은 함열 장씨네들이 그거 다시 팔어먹었어. 멸족허고 없응게. 지금은 다 개답됐거든. 거그 묘지는 그냥 있어, 지금도.

구술사진





좌측부터 이종록


좌측부터 이종록


좌측부터 이종록


좌측에서 3번째 이재갑 4번째 김종록2


좌측에서 3번째 이재갑 4번째 김종록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