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농소(農所․용수말)․문안이 : 농소는 들 가운데 있는 마을로 예전에 농사철에만 이용하는 농소(農所, 農幕)가 있었다 ‘용수말’은 ‘농소마을’의 변한 말.‘문안이’는 예전 이문(里門)안에 있는 마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농소마을 : 옛 지명은 농막. 금강과 가까워서 붙여진 이름.
- 용솟말 : 농수의 사투리.
- 문안이 : 문 안쪽에 마을이 있다는 뜻.
- 솟펄 : 해방 이후 경상도 사람들이 농토를 찾아 이사 온 지역.
2) 전설 및 민담 :
- 원님 민담 : 원님이 두 번 울었다는 민담. 외지라서 발령 받고 난 뒤 울고, 주민들의 인심이 좋아서 떠날 때 울었다는 민담.
- 용안과 용동 : 용안면은 용이 편안해서 비가 자주 내리고, 용동은 비가 잘 안 내린다는 민담.
3) 민속 :
- 갈대밭 개간 : 갈대밭을 농지로 개간하였음.
- 낭청 : 일제 강점기 도정공장.
- 다목농장 : 종자를 제외한 모든 미곡을 수탈하였음.
- 마을 금기 : 상여가 마을을 통과하지 못하게 했음.
- 거리제 : 교통사고가 많이 나서 지냈다고 함.
- 넋 건지기 : 익사 사망자가 발생 했을 때 지냈다고 함.
구술채록
A1 : 전영석(80)-1934년
A2 : 전정웅(70)-1944년
A3 : 이해천(72)-1942년
A4 : 백영기(71)-1943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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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우리 농소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용동 농소마을인데요. 농소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A1 : 우리 농소마을은 지역적으로나 좀 말할 것이 없어.
B1 :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좋은 말씀 해주시면 됩니다. 우리 농소 마을은 언제부터 농소라고 불렸나요?
A1 : 원래 농소라는 말이 언제 생겼는지는 유례가 없어요. 언제부터 농소라고 불렸는지는 못 찾았어요. 다만 예전에 농막이라고 불렀데요. 여기가 금강 유역이거든.
B1 : 그럼 우리 마을에 갈대밭이 있었나요?
A1 : 그렇지. 우리 마을이 원래는 갈밭이 참 많았어. 그런데 일본인들이 여기에 제방을 쌓은 거지.
B1 : 제방을 쌓은 이유가 뭔가요?
A2 : 제방을 쌓은 이유는 일본인들이 갈대밭을 전부 개간을 해서 농토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농토를 만들기 전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모두 노동을 시켰어요. 그때는 기계가 없어서 지게로 농토를 만든거죠. 여기서 창리, 용두까지 제방을 쌓았어요. 그래서 600평씩 경지정리를 해서 농지를 만든거죠. 여기는 다목이라는 일본인이 그 곡물을 다 가져간거죠. 낭청이라는 도정공장이 있었어요. 그 곡물을 전부 가져가서 도정을 해서, 군산항으로 가져가서 군산에서 일본으로 가져갔데요.
A1 : 한국 사람들은 그 식민지 때는 노예나 다름 없었잖아.
B1 : 그럼 조선인들이 소작인이네요?
A2 : 그렇죠. 우리가 듣기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깻묵을 배급제로 줬다고 하더라고요.
A1 : 그 당시 쌀은 먹지 못했으니까.
B1 : 수탈이 대단했네요?
A1 : 그렇지. 나락까지 다 가져갔지. 예를 들어서 600평에서 15가마니 나오면, 14가마니 반은 가져갔어. 그리고 반은 왜 남겨놨냐면, 종자 하라고. 그리고 나머지는 싹 다 가져갔어. 그럼 뭘 먹고 살겠어? 도정 하고 남은 싸래기랑 찌꺼기가 있잖어? 그걸 배급제로 한거야. 그걸 타 먹으면서 일하고서 뚝을 쌓은거지. 그걸 주관한 사람이 다목이라는 일본인이야. 그래서 여기를 다 다목 농장이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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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러면 논 물은 어디서 끌어 왔나요?
A1 : 금강물을 끌어 쓴거지. 날이 가물면 짠물이 들어오거든? 그럼 짠물이 들어오면 농사를 짓기 어렵지.
B1 : 그럼 우리 마을에 짠물이 들어올 때 샘이 좀 건건 했나요?
A1 : 그때는 상수도가 없었으니까 똘물을 많이 먹었지. 똘물을 많이 먹었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샘을 팠지.
B1 : 마을 공동샘은 몇 개나 있었나요?
A1 : 여기가 네 개가 있었지.
B1 : 술멕이는 언제 하셨어요?
A1 : 술멕이? 백중날, 칠석날에 했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그때 많이 했지. 우물 청소도 할 겸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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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혈자리는 있었나요?
A1 : 여기는 평지니까 혈자리는 없었지.
A2 : 여긴 평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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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제가 용동면을 조사 하다 보니, 원님 이야기가 있더군요.
A2 : 그렇지. 올 때도 울면서 왔지만, 갈 때도 울면서 갔다고. 그리고 내가 면사무소에서 조사를 해봤는데, 호남 양반들이 한양가서 과거를 보러 갔잖아요. 그런데 문안으로 해서 낭청으로 해서 강경 신사포라고 있어요. 강경 신사포를 가면 미낫다리라는 곳이 역사적으로 있어요. 거기를 거쳐서 과거를 보러 갔다는 전설이 있고. 또 하나는 말이 죽어서 그런지 말 무덤이 하나 있어요.
B1 : 우리 마을 앞에 말 무덤이 있나요?
A1 : 그렇지. 우리 마을 앞에 말 무덤이 하나 있어요. 아직도 있지.
A2 : 말 무덤이 딱 있어. 그런데 아무런 곳에 말 무덤 이야기는 없어. 내가 책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말 무덤에 관한 것은 아무 곳에도 기록이 안 되어 있더라고. 원래 거기가 좀 높게 있었어. 그런데 약간씩 좁아져서 지금은 좀 낮아졌어. 그런데 아직도 형태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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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기미년 흉년 때 혹시 기억이 있으신가요?
A1 : 기미년 흉년? 그 때는 수리시설이 없었다고. 그래서 여기를 물텀붕이라고 했다고. 여기가 완전히 갯벌이여. 옛날에 장화 없이는 못 살았어요. 예전에 여자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고.
B2 : 혹시 우리 마을을 부르던 예전 이름이 있나요?
A2 : 용솟말. 그 뜻이 뭐냐면 농수라는 말에서 생긴거야. 농수가 사투리로 바뀌면서 용솟말이 된거지.
B2 : 또 다른 이름은 없나요?
A2 : 문안이. 그건 문 안쪽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문안이야.
B2 : 여기는 집성촌인가요?
A2 : 여기는 각성촌이야. 씨족으로 뭉쳐서 사는 곳이 아니고 각성촌으로 해서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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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묘지를 어디로 쓰셨나요?
A2 : 여기 산으로 갔지? 대게 용동 삼정리 부락에 공동묘지가 있었지. 가까워. 여기서 3키로 정도?
A1 : 그래서 지금도 거기엔 주인 없는 무덤이 아직도 많이 있어.
B2 : 그러면 묘지에서 귀신 홀린 이야기는 없나요?
A2 : 옛날엔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
B2 : 혹시 마을에 금기시 시킨 것은 없나요?
A1 : 산이 있는 상여를 돌아서 나갔다고. 그런데 여기는 산이 없고 평야지대니까 그런게 없었지. 그냥 다 다니고 그랬어.
B2 : 애장은 어디로 하셨나요?
A1 : 삼정리에 그냥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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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평야가 넓으니까 들짐승이 있었나요?
A1 : 그런건 귀했지.
B1 : 우리 마을이 예전엔 뻘밭이었다고 하셨잖아요? 아직도 토탄이나 뻘흙이 나오나요?
A1 : 아니. 여기는 이젠 안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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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장을 보실 때 어디로 장을 보셨나요?
A1 : 강경. 함열은 안갔어. 강경이 예전부터 큰 장이 있었잖아. 그래서 강경을 많이 갔지. 그리고 강경이 가까웠어.
B1 : 함열장은 안 보셨고요?
A1 : 함열은 여기서 멀었어. 그래서 강경을 많이 갔어.
B2 : 예전에 함열에 군청이 있었을 때는 용안이랑 용동도 발전이 되고 그랬나요?
A1 : 군청이 원래는 익산에 있었는데, 함열로 온거야.
A2 : 오래 안 있었어. 원래 익산 군청은 익산시에 있다가 함열로 왔었는데, 몇 년 있다가 통합 되어서 다시 가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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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안이랑 용동은 용 때문에 용인가요?
A1 : 그렇지. 원래 그게 용(龍)자를 쓰잖어.
B2 : 그럼 주산은 어떤 산인가요?
A2 : 저쪽에 용두리라고 있어. 그 두가 머리 두(頭)를 쓰고 있어. 금강 쪽으로. 그래서 용안은 용이 편안히 앉아 있다고 해서 용안이야. 그래서 비가 잘 와.
B1 : 비가 잘 온다고요?
A1 : 그렇지. 용이 비를 좋아해서 그렇지. 그래서 용동은 무슨 행사만 하면 비가 그쳐버려. 그런데 용안은 비가 오거든. 좋은 날짜 받아놓고도 용안은 비가 온다고. 그런데 용동은 비가 막 오다가도 행사를 하려고 하면 딱 비가 그쳐. 신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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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 근처에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A2 : 경상도가 예전에 여기보다 살기가 어려웠나봐. 그래서 솟펄이라는 곳에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어.
A1 : 내가 생각 할 때에는 경상도는 농토가 없고, 여기는 평야거든. 예전엔 농사가 최고잖아. 그래서 일만 하면 먹고 살만 하니까, 농토가 없는 그 쪽에서 이사 와서 살았다고.
A2 : 솟펄이라는 곳에는 원래 농가가 없었어요. 그런데 고기가 물 따라 이동 하듯이 그 사람들도 이쪽으로 이주한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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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오래된 나무가 있나요?
A1 : 여기는 평야라서 오래된 나무가 없어요.
B1 : 그럼 발복 제사 있잖아요. 어머니들이 자식들 잘 되라고 빌고 그런거요.
A1 : 장독에 했지. 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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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산이나 금마나 함열 사람들이 강경장 보러 갈 때 우리 마을 앞으로 지나가거나 했을 것 같은데요. 혹시 기억나는 추억 있으신가요?
A2 : 충남 강경 그쪽이 학교가 컸었어요. 그래서 이쪽 학생들이 다 그쪽으로 통학을 했다고. 강경상고 알잖아요? 그래서 당시 아침에 학교 가는 학생들이 보였다고. 사실 많지는 않았고.
A1 : 강상. 강경상고가 참 유명했지. 우리나라 금융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다 강상출신이거든.
B1 : 또 우리 마을 특징이 있나요?
A1 : 여기가 평야 지대라서 그런지. 물이 좋아서 그런지. 장수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 그래서 자식들이 효도해서 외부에서 상도 받고 그랬어. 우리 동네는 연세 많으신 분들이 참 많어.
B2 : 장수 이유가 뭘까요?
A1 : 첫째는 평야잖아. 마음이 평안하지. 한 만큼 먹고 덜 하면 안 먹으면 되잖아. 공기도 좋고.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운동도 좀 되고. 그래서 장수하는 마을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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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혹시 소는 어디서 사오셨나요?
A2 : 논산. 여기는 군산 임피, 익산 여산, 충남 여산. 이렇게 있었는데, 논산이 컸다고. 여기서 한 40리 정도 된다고.
A1 : 예전에는 가축을 댈고 다니려면 밤에 다닌다고. 그럼 여러명이 같이 모여서 밤에 다녔지. 도둑 만나면 안되잖어. 그래서 같이 다닌거지. 소가 큰 재산이라서 항상 같이 뭉쳐서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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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귀신에 홀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없으신가요?
A1 : 예전에 어느 사람이. 여기 사람은 아니고. 이웃 사람이거든. 저기 삼정리에 문상을 갔다 왔데. 그런데 길이 훤한거여.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런 행사가 있어야 술도 한 잔 얻어 먹고 그랬잖아? 그런데 어두운 길에 오는데 밝은 길로 온거야. 그런데 그게 뭔지 알아? 그게 수로야 수로. 그런데 그게 길인 줄 알고 갔는데, 해가 뜰 때쯤 보니까 그게 수로였다는거야. 그게 여우에 홀린거지. 그래서 그 사람은 늘 여우가 사람 홀린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더라고.
B1 : 혹시 우리 마을은 구렁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집큼이 이야기요.
A2 : 난 들은 적이 없어요.
B2 : 그럼 용동면에 전설이나 신기한 민담 같은건 없나요?
A1 :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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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자라 마을을 갔더니 거리제를 지낸다고 하던데요.
A2 : 우리 마을도 옛날에는 지냈죠. 예전엔 여기에 교통사고가 많이 났다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 잘 되라고 정월달에 지냈죠.
A1 : 그러니까 여기 가정에서 지낸거에요. 연초에 새해 안녕을 기원하면서 지낸거지. 그리고 동네 단위로 추렴을 해서 길에서 제사를 지낸 것도 있잖어? 그건 길이나 내에서 사고를 나거나 그러면 이제 제를 지내는 거지.
B1 : 넋 건지기도 하셨겠나요?
A1 : 암~ 그럼! 예전엔 곡식을 그릇 같은 곳에 담아서 굿을 한다고. 그리고 굿이 끝날 쯤에 딱 그 그릇을 건져내. 냇가에서. 그럼 머리카락이 그 그릇에 있으면 넋을 건졌다고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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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엔 강이나 수로에서 고기를 많이 잡으셨나요?
A2 : 여기에 강이 있었는데, 고기가 참 많았어. 그 물을 품으면 고기를 가마니로 잡았지. 붕어, 메기 이런거 막 잡았지. 그렇게 고기가 흔했어.
A1 : 지금은 물이 있어도 고기가 없다니까. 지금은 농약을 많이 쓰니까 고기가 없는겨. 뱀도 홍수지면 나무에 걸려 있었어. 꽉 차 있었다고. 그런데 그것도 다 환경오염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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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어떤 농사를 많이 지으시나요?
A1 : 우리 마을은 수박 특용을 많이 하지. 하우스 수박. 쌀 나와야 할 곳인데 다 하우스야. 수박을 하면 소득엔 도움이 되거든. 농사 열 마지기 짓는 거랑 원예 한 동이랑 똑같다고 봐야대.
B1 : 우리 마을은 보양식으로 뭘 많이 드셨나요?
A1 : 개고기 같은 거 먹고 그랬지 뭐. 어릴 때는 닭, 개. 이런거 먹었지.
B1 : 붕어가 많았다고 하던데 붕어즙 같은건 안드셨나요?
A1 : 우리 아버지 세대때는 붕어를 많이 잡아서 말린다고. 여름에 햇빛에 말린다고. 붕어를 찐다고. 그리고 볕에 말려. 그러면 북어포처럼 되는거야. 그리고 1년 내내 잡수시는 거지. 그게 우리 마을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그렇게 먹은거야. 그게 단백질 보충이지. 옛날에는 구수하고 달았다고. 지금은 못 먹지.
구술사진
왼쪽 백영기, 오른쪽 전정웅
왼쪽 이해천, 오른쪽 백영기
왼쪽 전정웅, 오른쪽 전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