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오산면 > 용곤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오산면 > 용곤마을
구술자 양명식(1938)남자
구술자 서종열(1938)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민속
철도
구술일시 2013-07-10
비고 면담장소 : 오산 용곤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7월 10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용곤리(龍崑․龍串里) : 들 가운데로 등성이가 길게 뻗어 그 형상이 용과 같아서 생긴 이름. ‘관(串)’자를 우리 나라에서는 ‘곶(串)’으로도 읽었다.
도교(島橋)․섬다리 : ‘섬다리’의 ‘다리’는 고대에 ‘들’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섬들’이라는 말인데 그 지형이 낮은 들 가운데의 좀 높은 곳으로 섬과 같고 또 일정 때 간척하기 이전에는 비가 많이 오면 배를 타고 들어갔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용곤마을 : 용의 머리.
- 섬다리 : 바다였다고 함.
- 송날산 : 애장을 하던 산.

2) 민속 :
- 초분 : 시신을 묻지 않고, 임시무덤에 방치시킨다. 그 뒤 뼈만 추려 장례를 지낸다.

3) 철도 :
- 이리역 폭발 사고 : 익산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구술채록

A1 : 양명식(76)-1938년
A2 : 서종열(76)-1938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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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우리 용곤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오산 용곤마을인데요. 용곤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A1 : 용곤마을. 여기가 장신리 용곤마을이에요. 용의 머리라는 뜻이에요. 자세한건 잘 몰라요.

B1 : 그러면 혹시 섬다리라는 곳은…

A1 : 거기가 원래 섬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섬. 그리고 바다였다고 하더라고.

B1 : 우리 마을이 예전에 바다라는 흔적이 있나요?

A1 : 섬다리 근방에서 토탄을 많이 캤었지. 그게 바다라는 증거거든.

B1 : 그리고 샘이 건건하거나 그러진 않았나요?

A1 : 그렇죠. 물이 건건했어요. 뻘도 나왔고요. 그래도 우리 마을은 좀 높아서 덜 나왔는데, 다른 마을은 그런 것 때문에 말도 못했죠.

B1 : 그럼 우리 마을에 샘이 몇 개나 있었나요?

A1 : 샘이요? 전부다 예전엔 우물로만 살았으니까. 그래서 물이 더러워서 몸에 종기가 좀 많이 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나는 말고기를 좀 먹고 그랬지. 송학동 가면 말고기를 좀 팔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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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곤이 용의 묘라고요?

A1 : 네. 용곤이 용의 묘라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죽은 용이죠.

B2 : 그럼 용이면 명당자리가 좀 있을까요?

A1 : 없어. 그냥 죽은 용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B1 : 그럼 도로를 내거나 길을 낼 때 용의 혈맥을….

A1 : 죽은 용이라서 혈맥을 끊는 게 의미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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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다른 이야기를 들으신 적 없으신가요?

A1 : 꼭 묫자리를 쓰려고 하면 땅에서 물이 나와. 그래서 곤란 했다고.

B1 : 마을이 깊은 곳에 있네요.

A1 : 이 마을이 형성 된 것을 가만히 보면, 저쪽 변전소 사거리 그쪽에서 이 동네를 쭉 들어 와야 한다고. 이 동네가 오래전부터 낙후된 마을이야. 이 동네가 새 도로가 나고, 땅 값이 비싸지면서 조금 발전 된 거지. 사실 낙후된 마을이였어.

B1 : 우리 마을은 집성촌인가요?

A1 : 각성받이 마을이죠. 그리고 일본인이 이 마을에 살았어요. 일본인 집이 아직 남아 있어요.

B1 : 일본인 이야기를 못 들으셨나요?

A1 : 부자로만 살았데요. 여기 근방에 그 일본인 농장이 있었으니까. 원래가 여기가 국유지에요. 그 일본인 사람 땅이라고. 그 국유지가 폭발사고 난 뒤에 개인땅으로 바뀐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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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당산나무는 없었나요?

A1 : 당산나무는 없고, 이쪽에 산 능선이거든. 그 끝에 초분이 있었던 건 들어봤어.

B1 : 초분이요?

A1 : 사람이 죽으면 거기다 사람을 냅두고, 나중에 시체가 썩으면 뼈만 추려서 묻었다고.

B1 : 그 곳에 귀신이 좀 나왔나요?

A1 : 그런 이야기는 좀 있지. 술 마시고 한숨 자는데, 귀신소리가 난다고. 그래서 귀신이랑 막 싸웠데. 그러다가 또 자고. 그렇게 아침에 눈뜨면 묘에서 자고 있더래.

B1 : 애장은 어디로 하셨나요?

A1 : 애장은 송날에 많이 했지. 송날산이라고 있어. 거기에 많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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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익산의 모습이 기억나십니까?

A1 : 폭발 사고 난 뒤에 조금씩 발전이 된 거지. 원래는 다 초가집이었어. 송학동이나 모현동이나 다 가난했어. 억대 재산가가 없었다고. 그런데 폭발사고 이후 발전이 되더라고.

B1 : 신동은 어땠나요?

A1 : 대학로는 원래 신기부락이라고 그랬어. 논이랑 밭이었다고. 그런데 그렇게 발전이 되더라고. 예전엔 거기서 철길도 보이고 그랬어. 여기는 택시도 안 들어오려고 했어. 손님이 없으니까. 오산면이 다 그랬어. 그렇게 낙후되던 곳이 오산면이야.

B2 : 또 다른 이야기가 없으신가요?

A1 : 여자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고 그랬지. 여기가 참 질척질척 한 땅이었어. 여기가 원래 빈촌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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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시장을 어디로 다니셨나요?

A1 : 이리장을 많이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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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이 예전엔 몇 호나 살았나요?

A1 : 한 50호는 살았지. 그 뒤에 70호까지 늘어났지.

B2 : 우리 마을이 언제부터 생겼나요?

A1 : 이조 때부터 있었으니까 오래되었지. 초분이 있잖아. 이조가 아니면 초분이 있을 리가 없지.

B2 : 특이한 미신 같은 건 없나요?

A1 : 그런 건 없어.

B2 : 우리 마을이 예전엔 컸나요?

A1 : 그렇지. 옆에 도교 마을 있잖아. 거기가 원래 용곤마을이야. 그런데 나눠 진거지. 원래는 한 마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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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용곤리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주세요.

A1 : 여기는 용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야. 그래서 용곤이야. 그리고 물이 많은데, 전부 짠물이다라는거야. 여기가 바다였다는 증거이지.

구술사진





양명석


왼쪽 양명석, 오른쪽 서종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