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오산면 > 신중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오산면 > 신중마을
구술자 박윤승(1939)남자
구술자 김옥동(1950)남자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구술일시 2013-07-06
비고 면담장소 : 오산 신중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7월 6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신중(新仲)․섬안상․고라․새터 : ‘섬안상’은 ‘상애’에서 갈려 나온 마을이기에 상애와 구분된 명칭으로 ‘섬안 상애’라 했는데 그것이 줄어 ‘섬안상’이 되었고 ‘섬안’은 1912년 전까지도 조수와 홍수때 농작물의 피해가 많아 새로 둑을 쌓은 후 섬과 같이 되었다.‘고라’는 팔등산 골짜기의 밑이므로 ‘골안→고란→고라’가 됨.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샛터, 고라, 네가구뜸 : 신중마을의 옛 지명.

2) 전설 및 민담 :
- 팡등사 스님 민담 :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의 장례를 치러줌. 그리고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는데, 마늘을 많이 먹어서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는 민담.

3) 민속 :
- 우물 : 마을에 산이 있어서, 좋은 식수를 얻을 수 있었음. 타 마을에서도 신중마을로 식수를 구하러 왔음.
- 고라산 : 마을 공동묘지.
- 갈대밭 : 오산은 본디 갈대밭이었으며, 아직도 땅에서 토탄이 나옴.

4) 철도 :
- 철도 : 미곡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개설함.
- 오산역 : 학생들이 통학을 목적으로 많이 이용함.

구술채록

A1 : 박윤승(75)-1939년
A2 : 김옥동(64)-1950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

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오산면 신중마을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오산면 신중마을인데, 신중마을에 대한 많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A1 : 신중마을은 예전에 3개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샛터, 고라, 네가구뜸 이렇게 불렀습니다.

B1 : 샛터와 고라 그리고 네가구뜸은 어떤 이유인가요?

A1 :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B1 : 우리 마을은 큰 마을인가요?

A1 : 실제 호수로는 51호가 되죠. 빈집이 7가구가 있고요. 인구가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내가 젊은 층에 들어갈 정도이니까요.

B1 : 마을에 팔등사 절이 있네요.

A1 : 그 절이 100년 가까이 되었어요. 전통이 있는 절이죠.

B1 : 우리 마을은 오산면에 있는데도 산이 있네요.

A1 : 오산은 원래 다 들인데, 오산면에서 산이랑 밭이 있는 마을은 우리 마을이 유일해요.

B1 : 산이 있으면 물 걱정은 안 하셨겠어요.

A1 : 그렇죠. 다른 마을은 전부 짰죠. 그런데 여기는 물 걱정은 없어요. 지하수가 참 좋아요. 지금은 수도가 들어왔는데, 그 전에는 지하수를 먹었죠. 그래서 타 동네 사람들도 우리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고 그랬죠.

B2 : 팔등사가 어디에 있나요?

A1 : 바로 마을 앞에 있죠. 산에 있어요.

B2 : 그 산 이름이 뭔가요?

A1 : 고라산이라고 했죠. 고라 뒤가 공동묘지에요. 거기가 공동묘지가 있는데, 주인 없는 묘가 참 많아요. 따닥따닥 붙어서 잘 몰라.

●●●

B1 : 우리 마을은 신중마을인데요…

A2 : 원래 우리 마을이 새터여. 새터라고 불렀어.

B1 : 그럼 예전에 새터라는 이름 말고 우리 마을을 부르던 이름은 없나요?

A2 : 우리 마을에 이쪽이 고라라고 불렀지. 옛고(古)에 빛날 라(羅)자를 써서 고라라고 불렀지. 여기는 새터고.

B1 : 또 다른 이름은 없나요?

A2 : 여기가 원래 새터가 생겼고, 고라가 있었고, 저쪽에 네가구뜸이라고 있었어. 네집이 살거든. 그 세 동네가 신중이라고 한 마을로 묶인 거야.

B2 : 고라는 빛이 나서 고라인가요?

A2 : 그런 것은 없고. 우리가 살면서 보면 그 동네가 후진 동네거든. 길도 안나있고. 그 저 뒤로 넘어 들어가는데, 그 동네를 들어 가보면 서쪽으로 아주 좋아. 아주 확 터져 있어. 그래서 고라라고 했나 싶어. 서쪽으로 향한 마을이었지. 지금은 폐촌이야.

B2 : 우리 마을에 팔등사라는 절이 있는데요.

A2 : 절이 생긴 게 처음엔 조그마하게 만들었다고. 원래 초가였어. 유례는 오래 되서 잘 모르겠고,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 절 스님이. 그 스님이. 우리 어릴 적에 고라에 호열자가 유행했다고. 그래서 한 사람이 죽었어. 사망을 했는데, 왕래를 못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그때 거기 있던 스님이 장사를 모셔 줬다고. 그 스님이 돌아가셔야 하거든? 하여튼 중인데 집에 가둬놨다고. 그리고 얼마 뒤에 호열자 다 나갔다고 해서 절에 가보니 살아 있더라고. 동네 사람들이 당신 참 이상하다 했어. 호열자 죽은 사람 장사 치러주고 당신은 왜 안 죽었냐고. 그랬더니 스님이 그러더라고. 마늘을 막 먹었데. 생마늘을 막 먹고 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안 죽었데.

B2 : 절터는 참 좋은 터 아닌가요?

A2 : 우리가 듣기로는 여기가 참 아주 부자가 살았데. 임피에서 솜리로 장을 보러 갈 때 그 집을 들렸다 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어릴 적에 보면 땅에서 막 기와조각이 나왔어. 그리고 서당골이라고 있어. 나무가 참 꽉 차 있던 곳이여. 그랬데. 그러니까 그렇게 잘 살고 그러니까 절도 있고 그런 거지. 팔등사도 있고 조금 더 넘어가면 또 절이 하나 있고 그래.

●●●

B2 : 우리 마을은 논물을 어디서 끌어 오셨나요?

A2 : 저 대아리. 대아리에서 물을 끌어오면 오산천이 있다고. 그 물을 끌어 와서 썼다고. 그런데 그 물이 사실 삼례에서 다 막혀버려. 그래서 모심을 땐 참 난리가 나고 그랬어. 물이 안 내려와서. 그래서 동네 양반들이 저녁 일찍 먹고 배산쪽으로 간다고. 그래서 막으면 막 터버렸어. 그러면 그 마을은 아침에 막고 말야. 원래는 헐다리라고 있어. 삼기 가는 곳에 있거든? 거기 막을 때는 참 잘살고 그랬다고.

B2 : 임피에서 솜리로 장을 봤다고요.

A2 : 그렇지. 대아장은 생긴지 얼마 안 된 시장이야. 그래서 다 솜리로 다녔어.

●●●

B1 : 우리 마을엔 샘이 몇 개나 있었나요?

A2 : 하나 있었지. 그리고 메꿔버렸어.

A1 : 예전엔 아줌마들이 다 샘에 모여서 놀고 그랬어.

●●●

B1 : 술멕이는 하셨나요?

A2 : 샘에는 그냥 여자들이 했지, 남자들은 갈 일이 없었어. 그리고 술멕이. 칠석날 백중날 우물을 청소 하는 거여.

B1 : 또 재밌는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A2 : 예전에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가 누군가가 신세를 망치면 ‘학원이 신세 되었다’라고 했다고.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김학원이라는 애국지사가 있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참 형무소를 많이 댕긴 거여. 나왔다가 또 들어가고. 그런데 그 양반이 말하자면 돈 있는 사람 집 가서 강도 도둑질을 해서 독립자금을 대고 그랬데. 그 학원이가 그랬데. 상해 임시정부에 돈을 보내주려고 그렇게 도둑질을 한 거여. 그래서 매일 형무소를 간 거여.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어어~ 아무개 학원이 신세졌네~ 라고 하고 그랬다고.

●●●

B1 : 우리 마을에 가운데 철도가 지나가네요.

A2 : 그게 군산가는 철도인데, 말하자면 쌀 실어가는 철도라고. 일본놈들이 일본으로 쌀을 가져가려고 호남평야 쌀 있잖여. 그 쌀 다 수탈하려고 철도 놓고 그런 거여.

B1 : 일본인들이 악독했네요.

A2 : 말도 못 했어.

B1 : 일본인 조선인 사엄에 대한 기억은 있으신가요?

A2 : 오산 면사무소 그쪽에 왜놈들 신사가 있었어. 그 신사 밑으로 가보면 지금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농장장 집이 있다고. 원래 오산은 갈밭이었어. 그런데 왜놈들이 그걸 싹 다 개간을 했다고.

B1 : 갈밭이면 바다라는 뜻인가요?

A2 : 그렇지. 갈밭이었어. 여기 전부가. 농지가 아니 였어. 아직도 이 근방에 토탄이 막 나온다고. 그게 바다였다는 뜻이여.

B1 : 사엄은….

A2 : 그 농장 주인이 있는데, 국유지를 싹 다 농토로 만든 걸 관리해주는 사람들이 사엄이거든. 그 사람들이 결국엔 친일파라고. 그 사람들이 박정희 혁명난 후에도 잘 살았다고.

B1 : 반민특위….

A2 : 우리나라는 친일파들이 이승만때 그냥 다 경찰 하고 그랬어. 관직도 하고.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에도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왜놈시절에 친일파들은 그 뒤에까지 다 떵떵거리고 그 지랄들 했다니까. 그리고 주민들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굽신굽신 해야혀. 그럴 수 밖에 없던 시절이여.

●●●

B1 : 철도 때문에 재밌는 이야기 없으신가요?

A2 : 철도 근처 집들이 애들이 많지.

A1 : 오산 역전에 학생들이 참 많이 있었어.

A2 : 오산역은 그냥 간이역이여. 호남평야에서 쌀이 수집 되는건 정읍, 신태인, 김제에서 모아논거고, 오산역으로 쌀을 수동하고 그러진 않았어.

●●●

B2 : 여기 공동묘지가 있었다고요.

A2 : 그렇지. 거기가 참 많았어. 그래서 무섭고. 그런데 사람들이 공동묘지 가운데로 가면 지름길이 있어. 거기로 질러서 넘어가다보면 참 깜짝깜짝 놀랐지. 왜냐면 예전엔 다들 일찍 죽고 그랬잖아. 애들도 죽고 그랬고. 그런데 그냥 시체를 짊어지고 나무에 묶고 그랬다고. 해 넘어갈 때 가족들이 와서 지게에 시체 들고 나무에 묶으면 가족들이 울고 그러다가 지쳐서 12시 1시까지 그냥 있는 거여. 그러면 술 마시고 넘어가다 얼마나 놀랐겠어. 참 무서워. 그게 귀신 홀린 거야. 아 말도 말어~

B1 : 그렇게 무서웠나요?

A2 : 그렇지. 여기는 호미를 참 많이 심었는데, 호미가 얼마나 높아. 그런데 어디서 안 보이는 곳에서 울음소리가 나고 그랬다고. 참 징그러웠어.

구술사진









왼쪽부터 박윤승, 김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