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성당면 > 두동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성당면 > 두동마을
구술자 박정호(1925)남자
구술자 박내성(1938)남자
구술자 박병석(1973)남자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3-09
비고 면담장소 : 성당 두동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5월 5일 16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두동(杜洞․원두동)․상두(上杜, 윗뜸)․망골 : ‘두동’의 본 이름은 ‘막골’인데 그 지형이 삼면이 막히고 한 면만 터져 있어 막힌 골의 뜻이다. ‘막골’이 ‘망골’이 된 것.‘상두’는 윗편의 두동이라는 뜻.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두동마을 : 원주 원씨가 본디 살았으나 그 혼인가문에 있던 박씨들이 일종의 난을 피해 들어오면서 마을이 박씨 집성촌으로 변화되었음.
- 두동마을 : 박씨들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두문불출하고 은거하면서 두동이라고 하였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하나님의 계시 1 : 소나무가 성당포구에 떠 내려와 그 소나무로 교회를 지었는데 알고보니 안면도 소나무로 아주 좋은 나무였다고 함.
- 하나님의 계시 2 :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물이 한 컵 정도가 나무에서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지며, 그걸 보며 강사 목사님께서는 교회가 지어질 모습을 예언하셨다고 함.
- 12골짜기 : 욍골, 사랑작골, 도덕절, 절터, 승적골, 막은작골, 가능골, 외얏골, 뒤줏골, 한재골, 곡심골, 평정골로 불리는 골짜기가 있었음.
- 은행나무와 감나무 : 교회가 들어서기 전의 이야기로 각시귀신과 신랑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함.


3) 민속 :
- 샘 : 두 개의 샘이 있었는데 기미년 흉년에도 가물지 않았다고 함.

구술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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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박정호(89)-1925년
A2 : 박내성(76)-1938년
A3 : 박병석(41)-1973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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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왜 두동입니까?

A1 : 우리 족보에는 여기가 원래에는 원주 원씨촌이었어. 원주 원씨가 처갓집이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18대조인가 할아버지가 집현전에 계셨을 때. 긍게 집현전에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들이 모두 모셔서 집현전 집무를 모게 했잖아. 그런데 그 집현전에 계시는데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 저 세조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걸 반란이라고 해야할까 세조의 난이 있어가지고 단종이 폐위되고 그 때에 단종 복위파로. 성산문 동생이 성산민씨라고 있어. 그 성산민씨하고 연루가 되어서 같이 단종 복위운동을 할아버지가 했어. 성산민씨와 함께 고향인가 어디로 낙향하게 됐단 말여. 그러다가 나중에 그게 안되게 생겼으니까 여기가 처갓동네여. 원주 원씨가 처갓동네여. 그래서 이리 피신을 왔어. 여기는 인자 외진 데 아녀? 그래서 이리 피신을 와서 그 할아버지가 여기서 뿌리박고 생활을 했단 말여. 그렇지만 유능한 우리 할아버지는 어쨌든 충신은 불사일군 아니야.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그리고 벼슬길을 마다하고 여기서 그냥 은거생활을 하는데 유능한 인재가 아니여. 그러니까 나라에서 사신을 세 번이나 보내서 와라. 와라 해도 영 안올라가고 여기서 두문불출하고 거주해서 여기서 사셨기 때문에 우리 족보에는 그렇게 돼 있어. 그렇기 때문에 여기를 두동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도 굉장히 지조가 있는 할아버지여. 그 위에 할아버지도 그랬고 상당히 지조가 있는 그 권력에 세상에 아부허지 아니하고 상당히 꿋꿋하게 모셨을 그런 여사가 죽- 있는데 그런 피가 흘르는 그런 할아버지였어. 그래서 여가 인자 박씨 집성촌이 됐는데. 지금은 세상이 자꾸 변하니까 연척관계로 처갓집 사람에서 온 자손도 있고 어디서 온 성들도 있고 해서 상당히 지금은 박씨가 반절? 정도. 자꾸 박씨는 줄어들고 타성이 오고해서 그렇게 해서 집성촌이 없어져버리고. 같이 잘 사는 마을로 그렇게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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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두동교회에 대해서 얘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A1 : 지금 두동마을에는 두동 교회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79호로 지정이 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가는데 오늘도 서울에서 와서 두 시간 정도. 그리고 또 이리 중앙교회에서 와서 한 차례 얘기 했고 전주에서 왔다고 해서 얘기를 하다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요. 그런데 얘기를 할라면은 길죠. 두동교회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그리고 저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가로 얘기할 수 있는데.

B1 : 두동교회를 처음 세우신 목사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A1 : 애초에 여기에 박재신씨라고 하는 부자가 살고 계셨어요. 한 3천석 받는 부자였는데 그 분 상당히 덕인이었어요. 돈이 많으면서도 베풀고 하는 좋은 양반이여. 그런데 그 분이 외아들이여. 그래서 그 전에는 자손이 많이 번창한 것이 복 아니여. 그러니께 자손 번창을 위해서 예수를 믿으면은 자손이 번창하고 잘 된단다 하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부인을 부곡교회라고 여기서 한 5리 떨어진 그 교회를 갔다 오게 했단말여. 근데 부잣집 마나님이 교회에 나가니까 동네에서 다른 부인들도 같이 따라갈 거 아녀. 그래서 같이 믿기로 혀서 믿는 사람들이 여자들이 중심으로 믿었단 말여. 그런디 부잣집 마나님 부인이 그 아주머니가 임신을 해서 만삭이 되니까 그 멀리까지 댕길 필요가 뭐 있는가. 여기서 하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 일이여.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헙시다. 그렇게 해서 자기 행랑에서 예배를 드리고 했지. 그런데 어쨌든 교회를 지었으니까 신도들이 많으면 좋을 게 아니겠어. 그래서 예수 믿어라.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 나와라 하니까 모여들었는데 한 80명? 그 정도 모였디야. 그래서 상당히 전도가 좋았지. 그러다가 진짜 예수를 믿게 되면서 예배당을 제대로 짓고 신앙생활을 하자. 그래서 이XX씨네 채전밭. 그 밭에 예배당을 짓자. 그래서 이XX씨네 채전밭에서 예배당을 짓는데 특별한 역사가 하나 생겨 나타났단 말이여. 그 가보면 알겠지만 성전 보가 굉장히 나무가 좋아. 그 나무가 어떤 나무냐면 안면도 소나무여. 충남 태안의 안면도. 안면도 소나무라고 그랬더니 서울에서 오신 건축에 조예 있는 분인디 안면도 소나무! 그거 궁궐짓는 나문데! 귀하게 쓰는 나무. 우리가 그 예배당 짓기 위해서 안면도 가서 사온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어. 풍랑으로. 이 나무가 사해바다를 떠돌다가 조류를 따라서 금강을 타고 성당포구로 떠밀렸어. 금강 타고 올라오면 군산에 큰 포구도 있고 이쪽의 서포 남포 웅포 있고 각개보 있고 성당포구 앞에는 뻘 있어가지고 아니 이 샛길 따라서 성당포구에 떠내려 왔단 말여. 그러니까 목재상이 가지가믄서도 비린내도 나고 그렁게 싸게 팔아야 겠다. 그래서 싸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싸게가 목적이 아니라 오늘의 이 건물이 문화재로 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 하는 마음에서 예정하시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환을 두고 행하시나니. 성경 빌립보에 2장에 있는 말씀인데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서 역사 하고 계신다. 그것을 오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얘기를 허면은 우연히 그랬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우연으로 돌리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우연 속에서도 자연 속에서도 존재하지만은 우연이라고 얘기헐 수 있는 사람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특별한 일을 저 교회에서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뭐냐면은 새로운 예배당 지은 사실이에요. 새로운 예배당 저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어주신 예배당이에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저 새로운 예배당 짓기 전에 우리 교인이 그 때 한 240명 돼요. 그런데 보통 예배 200명이 넘겨 모이죠. 그럼 그 자리에 200명이 앉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거짓말같어. 근데 기록 보면 그게 200명이 나오거든. 그런데 부흥집회가 있었어요. 부흥집회 허는데 은사집회 있었거든. 인사집회를 허면 병자들도 일어나고 어 예언도 허고 방언도 허고 환생도 허고 그런 놀라운 신비한 역사가 나타난 그런 집회였어요. 그런데 그런 특별한 역사가 나타난 집회였으니까 그런 역사가 나타나니까 이 근동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은혜받는데 그러니까 자리 차지하기가 곤란하잖아요. 앞자리는 금자리라고 해서 밥까지 내다 먹어가면서 은혜를 사먹는 그런 집회였어요. 오전 공부를 10시부터 12시까지 하는데 11시경입니다.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에요. 그런데 강단에 앉은 사람이 머리 위에서 물이 떨어지니까. 물 물 물 허고 일어나는거여. 친구 쳐다보고. 그래서 가서 보면 알지만은 첫 째 둘 째 그 보 위에서 둘이 뚝 떨어진거에요. 한 방울 두 방울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쭉 컵으로 붓는 것처럼 똑 떨어졌어요. 뭐 오래 떨어진 것도 아니고 붓고 뚝 그쳐버렸어. 걸레갖고 닦았어요.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강사목사님이 묵상 기도허시더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 새로운 성전을 지어주신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된 것이 보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어주신다 하더라도 그 땅이 부잣집 땅이니까 다른 땅도 생각해봤어. 그런데 그 것을 팔겠다는 것이야. 그래서 땅을 샀지.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참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구나 땅 살 때부터. 그 땅 사고 힘이 없어서 못져. 그 때의 나보고 예배당 지으라 했으면 못져 그랬을 거야. 하나님의 계시로 지으라 했어도 안 돼요. 형편없어 안 돼요. 어려운 때니까. 그 땐 교인들의 믿음이 약했어. 그래서 좀 이따 지어요 아마 그랬을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 알고 그 필요성을 미리 알고. 아니 그것 보다도 문화재로 돼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하나님 역사 했다고 하는 사실을 증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특별히 이 교회 역사를 나타내셨지. 그래서 하나님 역사하시어서 예배당을 지었는데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헌금을 해주고. 신불신간에 마을 사람들이 총 동원해가지고 그래서 마을 안길이 없으니까 저 도로에다가 모래자락을 퍼 놓으면은 다섯 살 먹은 애들도 세숫대야 해서 날르는디 순식간에 되버린거여. 그렇게 역사를 해서 저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64년도에. 그런데 교회를 한 참 짓는데 친구가 와서 이래. 예배당 안어울린데. 저렇게 잘 짓는데 안어울리네 그러니까. 뭔 소리여? 그랬더니 초가집만 있는 동네에 빨간 벽돌 집이 안어울린대. 그래서 어응. 그러면 초가집들을 기와집으로 바꿔주면 될 거 아닌가. 그래서 얼마 안 지나서 새마을 운동으로 바꿔줬잖여. 그 당시만 해도 그렇게 격차나게 잘 지은 예배당이여. 예배당 짓는데 한 번은 경찰이 와서 못 짓게 중지를 시켜. 왜. 허가를 맡으리야. 아 시골에 무슨 건축허가가 있냐고 서울에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후에 건축법이 강화돼서 시골에도 허가 받게 된다. 어디가서 받냐 하니 군청에서 받으래. 군청에 갔지. 그랬더니 서류가 굉장히 복잡하잖여. 설계도도 없이 나허고 목수허고 그림 그리고 짓는거여. 그래서 그림 그리고 냈지. 괜히 설계도 돈 들일 필요 없고. 근데 그런거 냈더니 허가 해주겠어요? 담당 직원이 빠꾸시키면 그만 아녀. 그런데 그 분이 허가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나니까 군수보고 아니 경찰서에서 못짓게 하니까 전화 한번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뭐더러 아수운 소리혀. 자기가 도장 한 번 찍어주면 되는데. 아 결재권이 군수에게 있잖여. 그러니께 서류답지 않은 서류에 도장 딱 찍어서 지어라. 그래서 지었는데. 그게 건축허가 익산군 제 1호로 돼 있는가. 아니면 임시방편으로 돼 있는가 그건 몰라. 그래도 그렇게 잘 짓는다는 예배당이었어. 예배당 지은 후에는 저기서 예배 드리고 이 아래 문화재 자리는 묵혀놨어. 그러다가 6년 전 7년 전 교인도 적고 그러니까 창립 예배를 여기서 드립시다. 그러면서 창립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그 때 일이 생각이 나서 앞에 나와서 물었어. 그 때 물소리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보시고 기억허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나이 많으신 분들은 손 들대. 한 번은 이리 남중교회에서 집사님들 장로님들 왔어. 그러자 그 얘기를 했더니 그 때 곽XX 장로라고 있어. 예 거기 그 때에 그 집회에 나도 참석을 했습니다. 그 분은 젊었을 때 부곡교회 다니던 분이여. 이웃 교회 집회허니까 왔다가 저쪽 모탱이 가리키면서 나 저기 저 자리에 앉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역사적인 사건도 있던 거야.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혹시 기독교 진리가 왜곡될까봐서. 유대인들은 성격을 보면서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어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찾는다. 그런 말씀이 있거든. 그런데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이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오늘도 얼마든지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적보다도 우리의 구원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는 그 공을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을 꾀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기독교 진리라 그 말이여. 그런데 여기서 이적 중심으로 말하면은 교회 바탕이 흐려지잖어. 그러나 하나님이 얼마든지 이적행하심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이적행하심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여? 하나님 분명히 이적을 행하셔도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오늘도 살아 계세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믿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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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엔 우리 마을에 샘이 몇 개나 있었습니까?

A1 : 옛날에 샘 물을 먹잖아요. 여기서는 특별히 샘이 두 개가 있는데 참 물이 잘 나오고 좋은 샘이었어요. 그래서 우에 하나 아래에 하나 있었습니다. 그 물 샘의 깊이가 우리 길로 한 두 길? 이상 되지? 깊은데 물이 위까지 차 올라서 저 뭐 두레박질 않고 물 길러 와서 물동이 길러 와서 이렇게 해서 퍼가지고 간거여. 그렇게 물이 많은 우물.

B1 : 그럼 기미년 흉년에도 마을의 물은 마르지 않았습니까?

A1 : 기미년 흉년 때에 이 마을 물을 더 깊이 팠어요. 그래서 어 그 전보다 더 파가지고 그래서 물을 쓰는 데 뭐 충분히. 물 때문에 걱정을 허진 않았어요.

B1 : 그럼 샘 청소는 언제 하셨습니까?

A1 : 술먹이 때에 두 군대 술을 품고 이 저 물동이로 파내면 힘이 드니까 양수기를 대고서는 품고. 그렇게 해서 칠월칠석날. 그렇게 안해도 품는 때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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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우리 마을을 두동 이외에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우리 할머니 얘기로는 망골이라고 그랬어. 망이라는 것은 맥혀있다고 해서 망골. 맥혀있는 동네라. 그러니까 두동이라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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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럼 우리 마을은 굉장히 좋은 마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A1 : 어쨌든 마을에 교회도 있고 부잣집도 있고. 그런데 부잣집이 서울에 부잣집이 또 있었어요. 그래서 왕래가 그 집과. 심부름 허든 뭣이든 왕래가 잦다 그말이여. 그러니께 서울과 연락이 잦고. 그러니께 모든 면에 있어서 앞장서가는 그런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새마을 운동도 여기가 앞장서서 가장 잘 되는 마을이었고 그랬고. 지금도 이렇게 잘 봐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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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마을의 전설적인 얘기는 무엇이 있습니까?

A1 : 어느 마을이고 다들 사는 골짜기 골짜기 이름이 있죠. 저기서부터 욍골. 사랑작골. 도덕골. 절터. 승적골. 막은작골. 가능골. 외얏골. 뒤줏골. 한재골. 곡심골. 평정골.

B2 : 예전에 교회가 들오기 전의 신화적 얘기는 우리 마을에 있었습니까?

A1 : 그런 신화얘기? 그게 무엇이냐면 저 쪽에 은행나무 큰 나무가 있어. 지금은 없어. 그리고 이쪽 아래 감나무가 있었어. 옛날에는 뭐시면 귀신 나온다 그러잖여. 저녁에 나갈라면 귀신 나온다고. 그런 귀신 얘기들이 있었지. 저쪽에는 각시귀신이 있고 이쪽에는 신랑귀신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한다는 그런 얘기도 있었고. 어렸을 때 듣던 얘기여.

A2 : 어렸을 땐 거기 지나가도 안했어. 무서워서. 허허.

구술사진







박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