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채산(彩山)․작은뜸․큰뜸 : 풍수설에 금채낙지(金釵落地)라 하여 ‘釵山→彩山’이라고 전함.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새끼뜸 : 마을 중심부에서 떨어진 동네 이름.
- 숯구데기 : 숯을 구운 곳.
2) 전설 및 민담 :
- 금비녀 혈(穴) : 왕비의 비녀를 닮았다고 함.
- 호랑이 민담 : 호랑이 새끼를 동네 아이들이 괴롭혔다는 민담.
3) 민속 :
- 함열장 : 함열장을 이용했다고 함.
- 집성촌 : 함열 남궁씨 집성촌.
- 샘청소 : 아들을 못 낳은 주민이 샘청소를 담당함.
구술채록
A1 : 남궁한수(58)-1956년
A2 : 남궁수홍(74)-1940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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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삼기 채산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올해 삼기면을 조사하는데, 채산마을에 대한 이력을 알고 계신가요.
A1 : 채산마을의 유래를 정확히 잘은 몰라요. 그런데 이번에 새 주소를 부여 받으며, 익산시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우리 동네가 임금님 중전마마가 꼽던 비녀를 닮았다고 해요.
B2 : 그럼 우리 마을이 왕비 비녀 혈자리인가요?
A1 : 그렇죠. 풍수지리적으로 우리마을이 금비녀를 닮았다고 해요. 마을의 혈이 비녀를 닮았다고 해요.
B1 : 그리고 혹시 우리마을을 예전에 불렀던 이름이 있습니까?
A1 : 그런 기억은 없네요. 우리 동네가 채산으로 지명이 지어져서, 달리 다른 이름으로 불리진 않았어요.
B2 : 혹시 주민분들만 부르는 이름은 없었나요?
A1 : 네.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마을의 전체적 위치를 부를때는 큰뜸, 작은뜸, 새끼뜸이라고 불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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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 뜻을 알려주세요.
A1 : 그냥 저쪽으로 마을 주민들이 가서 집 짓고 살아서 새끼뜸이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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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동네에 또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A1 : 우리 마을이 6.25 동난때 징용을 간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때 우리 동네 마을 주민들은 무사히 다 돌아 왔다고 해요.
B2 : 혹시 우리 마을에 혈자리를 들은 적은 없으신가요?
A1 : 그런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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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옆 마을 석불마을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A1 : 우리 동네에는 그 석불마을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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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서 제일 가까운 산은 어딘가요?
A1 : 금마 미륵산이지.
B2 : 주로 가시던 시장은요?
A1 : 우린 함열을 많이 다녔지. 다른 마을엔 황등을 많이 다녔다고 해. 그게 걸어다녔잖아. 그런데 함열이 우리마을에서는 가까웠다고. 그래서 함열을 많이 다녔어.
B2 : 미륵산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A2 : 그런건 못 들었어요.
A1 : 미륵산에 예전에는 나무하러 많이 다녔지.
A2 : 예전에 6.25 동란 직후 피난민들이 이 근방에 좀 있었어요.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미륵산에서 뭐 캐먹고, 불떼고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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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이 연동리잖아요. 그럼 연이 많았나요?
A2 : 글쎄? 잘 모르겠네요. 그건 연동 가서 물어보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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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삼기는 예전에 어땠나요?
A1 : 우리 동네는 지금이니까 그렇지. 나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 보이는 야산들이 전부 산이었어. 산이나 밭이였어. 그래서 봄이면 밀이나 보리가 울창하게 우거졌다고. 그래서 밀 향기 보리향기가 가득한 마을이었다고. 그러다 보니 들짐승, 산새들이 진짜 많이 있었다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마을이 사실 좀 뒤지는 마을이었어. 그런데 야산 개발이 되니까 요즘에서는 우리 마을이 삼기면에서는 경제 규모로 일등되는 마을이 되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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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집송촌인가요?
A1 : 남궁씨. 함열남궁.
B2 : 혹시 우리마을에 함열남궁씨가 정착하게 된 유례를 알고 있으신가요?
A2 :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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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혹시 고개 같은거 없었나요?
A1 : 숯구데기. 숯은 구운 곳이야.
A2 : 우리 어릴적에 저 앞에 도깨비 불같은게 번쩍 거렸어. 하림 공장 있지? 거기까지 막 번쩍 번쩍 했다고.
A1 : 어릴적에 우리 동네에 호랑이가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자세한건 잘 모르고.
A2 :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예전에는 여우 돌렸다고 했다고. 길이 훤히 신작로마냥 밝았데. 술 마신 사람이 그랬데. 그런데 밤새 돌아다녔는데, 그게 둠벙이었데. 우리 외할머니가 그렇게 돌리고 그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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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여우나 구렁이 이야기를 못 들으셨나요?
A1 : 저 앞산이 야산이었어. 그런데 예전에 아이들이 죽으면 그 야산에 묻었어. 그런데 여수가 그 냄새를 맡고 거길 파 먹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항아리에 시체를 넣어서 뭍었다고 해. 안그러면 다 파먹으니까. 그리고 내산동으로 시집간 사람이 그러는데 예전에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데. 그런데 동네 애들이 얼마나 새끼를 패버렸나 호랑이가 그 다음날에 새끼를 다 데리고 나갔다고 하더라고. 미륵산 뒤쪽에 예전엔 호랑이가 많았나봐. 그 굴뚝 있지? 예전에 그 굴뚝에 새끼를 낳았데. 그런데 호랑이는 자기 영역에는 사람을 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 하여간 호랑이가 있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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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어떻게 살았나요?
A1 : 우리 동네엔 예전에 밀이 참 많았어. 그래서 밀가루를 만들어서 국수 만들어 먹고 그랬다고. 그리고 밀밭이 얼마나 넓고 그랬는지, 처녀총각들이 밀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했다고. 하여간 밀밭이 그렇게 참 좋았어. 밀향내도 그렇게 좋았고. 그게 아직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거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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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밀 밭을 부르던 이름이나 마을에 지명 이름이 있나요?
A1 : 저쪽이 공작골. 왜 공작골인지는 몰라. 공작을 하던 뜻이었나? 하여간 그 공작골이 산업단지로 바뀌었어. 쥬얼리 유턴 기업을 거기다 유치한다고 했다더라고.
A2 : 흑작골도 있었지. 검은 흙이 나와서 흑작골이라고도 불렀지.
A1 : 거기를 네 개로 불렀어. 조릿돌, 공작골, 흑작골, 검은바우. 실제로 검은 바위가 있었어. 바위가 좀 검었어. 좀 신기했지. 검은바우에 대한 전설은 모르고.
B2 : 혹시 바위에 촛불 켜서 빌거나 기도 같은건 안했나요?
A2 : 그런건 없었어. 그냥 사람들 놀고 그랬지.
A1 : 태봉사가 문화재로 있잖아? 그래서 반경 500미터인가 돌려서 문화재로 묶였는데, 태봉사가 우리 동네보다 늦게 생긴겨. 태봉사 창건 하신 분 있지? 그분이 우리 마을 사람이였데.
B2 : 혹시 우리 마을에 공동묘지는 있었나요?
A1 : 공동묘지는 석불리에 있었어. 석불리 방교 있죠? 거기 위에 공동묘지가 있어. 위령탑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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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우리 마을에 무당이 있었나요?
A1 : 무당? 있었지. 그런데 전문적인 무당은 아니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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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샘은 몇 개나 있었나요?
A1 : 샘이 한 여섯 개 있었지?
B2 : 그럼 샘 청소는 언제 하셨나요?
A2 : 샘청소는 칠석날에 술멕이 했지. 안에 사람이 줄 타고 들어가서 싹 청소 깨끗이 하고 그랬지.
A1 : 우리 마을 저 아줌마가 딸만 많이 낳다가, 샘에 들어가서 청소하면 아들 낳는다고 해서 샘 청소 많이 하고 아들 많이 낳았지. 그것도 용기가 있어야 들어가지, 아무나 못 들어가. 여름엔 냉장고가 없었잖아? 그럼 거기다 줄 달아서 김치 같은것도 달아서 넣어 놓고 그랬지. 그런 줄이 몇 개나 있었어.
B1 : 두례는?
A2 : 두례? 두례는 많이 했지. 돼지 하나 잡고 술멕이도 하고 농사도 도와주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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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삼기는 어떻 고을인가요?
A1 : 삼기? 원래 삼기는 삼기라고 안불렀다고 그려. 원래 석삼자를 쓰는게 세군대가 통합해서 석삼자를 붙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삼기래.
B1 : 풍수지리 이야기는 없고요?
A1 : 풍수지리? 그런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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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해방전후 기억 나시나요?
A1 : 해방? 일제 시대때 참 고되었어. 1930년대에 우리 아버지도 강제 동원으로 끌려가서 해방 이후에 풀려 났어. 우리 마을에 일제 강제동원에 많이 끌려갔어.
A2 : 나도 강제 동원 끌려 갔지. 나도 탄광으로 끌려가서 죽을 고생 했어.
A1 : 우리 아버지는 일본놈들이 잡아가서 노무자로 쓰는겨. 그때는 미일전쟁이거든? 지들 병력이 부족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잡아가서 폭탄 나르고 그랬데. 우리 아버지는 미군 포로로 잡혔어. 잘된거지. 남양군도. 그 섬에서 우리 아버지는 죽은 시체 불태워서 시체 재를 조금씩 모아서 집으로 보냈데. 그리고 일본이 항복하니까 그때 귀국선 타고 부산항으로 오신거지.
B1 : 우리 마을은 강제 동원 당하신 분이 많이 계셨나봐요.
A1 : 암~ 많지. 운좋게 끌려 가자마자 바로 돌아온 운 좋은 사람도 있고 그래. 몰라. 강제동원인지 아니면 지원한건지. 그런데 하여간 강제동원 많이 갔어.
A2 : 다 고인되서 그래. 사람들이 그래서 몰라. 자식들이라도 모르는거야.
A1 :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 모아놓고 얘기라도 들려 줬으면 잘 알겠지. 그런데 얘기 같은거 안들려 줬다고. 대신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가져온게 하나 있어. 거기에 “이 사람은 나라를 옹호함”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어. 이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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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농사는 어떻게 지으셨나요?
A1 : 천수답.
B1 : 여긴 방죽 같은거 없었고요?
A1 : 없었어. 그냥 자기 논에 둠벙 하나 만들어놓고 농사 짓고 그랬지. 당시엔 둠벙에 가물치, 장어 같은게 얼마나 많았나 몰라. 거짓말 안하고 물고기를 다라로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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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산업단지 형성되고 우리 마을엔 어떻게 바겼나요?
A1 : 산업단지? 저쪽 마을엔 산업단지 생기고 참 지하수가 안 좋아졌어. 사실 산업단지 때문에 마을이 힘들었지. 산업단지에 우리 마을 논이 많았다고. 그때는 직불금으로 사천만원 넘게 받았어. 그런데 부지로 들어가고 직불금이 반토막 났다고. 그때 당시 산업단지 보상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고. 그런데 장기적으로 생각해봐. 일년에 사천만원인데, 십년이면 얼마여. 대신 환경적으로는 좀 좋아졌지. 운동시설 같은거 생겨서 말여. 우리 동네로 보면 좀 좋아진게 사실이야. 그런데 앞으로 이 공장들이 들어올 때 친 환경적 공장들만 들어올지는 모르는거지. 악취나 화공 같은 물질들이 우리 동네에 해를 안주면 모를까. 그렇다면 우리 동네는 참 좋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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