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삼기면 > 검지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삼기면 > 검지마을
구술자 박중근(1952)남자
구술자 남궁전(1922)남자
구술자 박철귀(1938)남자
구술자 이승식(1940)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2-19
비고 면담장소 : 삼기 검지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2월 19일 15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검지(檢地―池, 知)․제내(堤內)․북간도․서당터 : ‘제내’는 ‘금음조제’의 안쪽 마을. ‘북간도’는 북향한 마을로 만주의 북간도처럼 춥다는 뜻에서 익살스럽게 일컫는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검지마을 : 서당터, 제내, 북한도로 되어 있음.
- 서당터 : 예전에 서당이 있었기에 서당터라는 이름이 붙음.
- 제내 : 큰 제가 있었다 하여 제내라 함.
- 북한도 : 특별히 추운 곳이라 해서 북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함.
- 금은조제 :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방죽으로 금은조제는 일본인의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푸다리 : 야산개발 전 그 부근에만 논이 있었는데, 풍요롭다는 의미임.
- 순천 박씨 :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명인 박팽연의 형제들 중 한 명이 낙향하였다고 함.
- 오룡쟁주 : 미륵산에서 나온 날이 다섯 개가 있는데, 용 다섯 마리와 같다 함.
- 도깨비불 : 상여집 근처의 바위에서 도깨비불이 자주 나옸다고 함.
- 돌마샘 : 마을의 좋은 샘으로 김장도 할 만큼 큰 샘이었다고 함.
- 옹기공장 : 구정이라는 곳에 옹기공장이 었었다고 함.
- 수로와 젊은이의 죽음 : 야산개발 당시 수로 구조물이 마을 위쪽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마을 젊은이들이 죽는 일이 발생했다고 함. 항의 끝에 수로를 땅 밑에 묻음.
- 혈자리가 좋은 마을 : 혈자리가 좋아 베트남전에 간 젊은이들 중 다친 이가 없음.
- 모스크바 : 사회주의자가 많아 모스크바라 불렸다 함.
- 양반마을 : 같은 오룡리 내에서도 검지가 양반마을이라 다른마을과 행사를 같이 하진 않았다고 함.

3) 민속 :
- 술매기 : 칠석이 되면 술매기를 하였음.
- 기우제 : 삼기산으로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염수제 : 공동 상여가 있었던 곳으로, 상여를 빌려가기도 하였음.
- 지게 목발 노래 :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1호라 하지만 현재는 후계자가 없다고 함.
- 송정회 : 마을을 나온 젊은이들이 만든 조직으로 마을에 좋은 일을 한다고 함.

구술채록

A1 : 박중근(62)-1952년
A2 : 남궁전(92)-1922년
A4 : 박철귀(76)-1938년
A4 : 이승식(74)-1940년

B1 : 하정일
B2 : 장윤준
B3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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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검지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A2 : 인제 고인 됐는데 고인 됐는데 그 분이 인자 맹글은 책이 있고 과거의 역사를 우리가 몰르는데 그 양반이 지은 책이 있어. 우리 집에 있는데 인자 우리 말할 줄 말고 우리 역사 책이 있어. 검지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긍게 내 책을 빌려줄텡게 우리 마을 저 누가 자세하게 아는 사람도 없고 이런 사람도 없고.

B2 : 그래도 아시는 만큼만이라도 얘기해주십시오.

A3 : 금은촌이라고 그랬어. 금은촌. 과거에 금은촌. 금은촌이라 그랬어.

B3 : 금과 은이 있어서 금은촌이었을까요?

A1 : 검지가 긍게 쉽게 말해서 여기서 보믄 에 세 곳으로 지금 나눠져 있어. 서당터. 제내. 서당이 있다고 해서 서당터. 제내는 저기 금은조제 앞에 거기가 있다 해서 제내. 큰 제가 있다 해서. 그리고 북한도. 북한도는 인자 거기가 북쪽이라고 해서 날이 추워. 그래서 저 총 삼동네가 검지라고 쉽게 얘기해서 허고 있어. 현재까지. 그 중에 금은조제가 일본 말인데 현재도 그 명칭이 금은조제로 나오고 있어.

B2 : 그 뜻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A1 : 금은조제. 긍게 쉽게 얘기해서 방죽이라고 물을 인자 모아놨어. 왜정시대 때 금은조제. 그래서 그 앞동네가 제내. 그리고 여기 북한도라고 해서 날씨가 춥다고 해서 북한도고 서당터는 그 전에 서당이 그 전에 으른들 얘기가 서당이 있다고 해서 서당터에서 삼 개 동네가 합친 마을이 검지마을.

B3 : 그럼 굉장히 큰 마을이겠습니다.

A1 : 지금도 한 68호정도 돼.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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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푸다리는 무엇입니까?

A1 : 푸다리는 저쪽에 산업단지로 없어졌지.

A3 : 거기가 옛날에 거기가 푸지다했어. 옛날에 거가 선술집이 하나 있었죠?

A1 : 푸다리가 원래가 세집인가 빽인가 없었잖여.

B3 : 푸다리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A3 : 거기가 다리가 있어.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면 푸지다고 해서. 푸지다고. 푸지다는 게 푸짐하다고.

A1 : 이전에는 이게 72년도에 그 때 박정희씨가 야산개발 했어. 그렇지만 그 앞에고 여기고 전부다 산만 있었어. 그래서 논은 별로가 없었어. 근데 푸다리 그 앞에가 쉽게 얘기해서 강경쪽으로 판판히 전부다 들녘이여. 그게 쉽게 얘기해서 풍요롭다. 그래서 푸다리지 인자 72년도에 야산개발 허니까 이런데도 인자 논이 생기고 그랬지 머 그전에는 전부다 밭있고 논은 그 앞에만 있었어.

B2 : 그럼 천수답이었습니까?

A3 : 천수답이여 다. 그 전에. 왜그냐면 72년도 전에는 전부 천수답이고 72년에는 금강물을 여까지 다 인자 들와서 해소가 돼서. 그 때사 인제 쪼매 살도 쪼매 구경좀 허고 생활이 윤택해지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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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샘은 몇 개가 있었습니까?

A1 : 서당터 하나 제내 하나. 웃말 하나 아랫말 하나. 근데 저 이놈을 젤 많이 썼잖여. 아랫말 밑에. 아랫말.

B2 : 그럼 술먹는 언제 하셨습니까?

A3 : 칠월 칠석날.

A1 : 칠월 칠석날. 호박같은거 따서 지져서.

A1 : 이틀했지.

A3 : 옛날엔 며칠씩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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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비가 안 올때는 그럼 기우제를 지내거나 하셨습니까?

A3 : 제 지내러 갔지. 삼기산. 삼기산으로 보릿대 짊어지고. 헤헤헤.

A1 : 72년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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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 앞에 저수지가 많이 보였는데 그 저수지들은 언제 만들어진 것입니까?

A3 : 왜정 때.

A1 : 전부다 일본이름이여. 여기도 금은조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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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염수제라는 제각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A1 : 공동으로 마을 공동으로 상여. 상여를 가서 저장해 놓는 곳이 금은조제 거기 앞에 있었거든.

B2 : 그럼 우리 마을은 상여를 공동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까?

A3 : 어 그렇지. 우리 동네 상여를 딴 동네에서 빌려가고도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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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은 집성촌입니까?

A1 : 여기가 양성 이씨허고 순천 박씨. 양성 이씨. 순천 박씨. 여가 들어오기는 순천 박씨가 일찍 들어왔는데 번식은 말허자면 양성씨가 많이 했대.

B2 : 그럼 그 분들이 처음 언제쯤 마을에 들어오신지는 알고 계십니까?

A1 : 오백년이 지금 넘었다고 허니까. 오백 한 육십년 된다고 그러던데.

A3 : 우리 순천 박씨는 그 저 이씨조선 때 수양이 단종 저기 단종을 폐위허고 그걸 우리는 우리 할아버지가 걍 사육신의 박 팽자 연자 이 할아버지 때문에 수양이 구족을 멸한다 그러니까 우리 낙향한거여 충청도 사람들이. 그래서 이리 온 것이여. 순천 박씨는.

B2 : 그럼 사육신이였단 말씀이시죠.

A3 : 그렇지. 박 팽자 연자 할아버지. 긍게 그 할아버지가 큰 할아버진데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충신으로 응? 수양이 단종을 폐위허고 그렁게 항거한거여. 그렁게 능지처참하고 구족을 멸한다 항게 우리가. 우리는 셋째집이여. 그 할아버지의 세 번째 집이여. 할아버지가 오형젠데 그 할아버지들이? 우리 셋째집인디 시방 낙향한거여. 피해서 인자 구족을 멸할라 하니까 수양이라는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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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삼불암이라는 암자는 무엇입니까?

A1 : 절. 현재도 있어.

A3 : 그 암자가 생긴지가 얼마가 안되야. 시방 젊은 주지가. 시방 젊다고 봐야지 젊은 주지가 살고 있어. 얼마 안되야. 가가 원래 동네서 이장도 하다가 자기 어머니가 신기가 쪼매 있었어. 그래가꼬 가가 에 이장 마을 이장도 허고 인자 쉽게 얘기해서 농사 짓다고 자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하드라고. 그래서 절을 하나 쪼만하니 세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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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우리 마을에 대해 풍수지리적인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A1 : 여기가 그 전 으른들 얘기로 여기가 녹두말랭이라고. 녹두밭에 윗머리라고.

A2 : 그 녹두라는 것이 뭣 땜에 녹두를 얘기허는 고니 젤로 투박하고 높다는거여.

B2 : 녹두가 그럼 어떤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A2 : 제일로 척박하고 메마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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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북한도가 특별히 추워서 북한도입니까? 왜 거기만 특별히 춥습니까?

A3 : 왜 북한도가니 요새 저 제일 높은 디 가면 높은 디 가면 제일로 춥디야. 춥고 추워서 북한도잖어. 북쪽에 있잖여. 그래서 북한도라고 그러는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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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그럼 우리 마을에 명당이 있습니까?

A2 : 명당? 명당 갈라면 이리 송정 있어. 이따 가봐.

A1 :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가꼬 거기가 그 옛날에 쉽게 얘기해서 조그만한 애들 놀이터. 놀이터였어. 뒷동산인디 그냥 송정이라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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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아까 마을 앞에 표지석을 보니 오룡쟁주의 혈 관련해서 들었습니다. 용이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까?

A2 : 용이 다섯 개가 있어 오룡이라 했디야. 어 다섯 마리가 아니라 날이 있잖여. 산. 산 날이 뻗은 것을 보고 용이라 그려. 근디 다섯 용이 있어야. 용같이 생긴 날이 있어. 그래서 오룡이라고 했디야.

B3 : 그럼 용과 관련되서 용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A2 : 그런 얘기는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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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내가 한 말씀 혀야겄는데 이 검지 부락을 우리 부락을 찾아와서 시방 책을 맹들려고 헌거 아녀. 그럼 우리 동네가 어떻게 해서 유래 인자 아까 잠깐 얘기 나오다 말았는데 이게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1호여. 지게 목발 노래.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1호여 거가. 그게 장관상을 탔어. 지게목발 노래 갖고. 그래가지고 수원가서 말하자면 총리상을 탄겨 이 부락이. 그래서 우리 회장님이 작고하싱게 후계자가 없어가꼬 인자 좌절돼 있지. 근디 시방도 시방이 비품이 지게허고 뭣이고 딱 창고에 보관이 돼 있고. 또 우리 저기 아까 저기 송정이라고 아까 얘기들 허셨는디. 그게 뒷동산인디 동네. 거기 송정을 위시해서 우리 동네에서 다 나간 젊은이들이. 여기는 다 시골 노인양반들빾이 없잖아. 그래서 나간 분들이 송정이라는 회를 조직했어. 그래가꼬 그 회장이 박정수씨라고. 송정. 그래가꼬 이 마을에 무슨 행사 경로를 위해서 노인들. 막 잔치도 벌려주고 일년에 한번썩 그런 좋은 것을 허고 있다고. 우리 젊은 친구들은 그렇게 나가있는 분들이 이 회관을 건립헐 때도 그 송정회에서 천만원을 여다 냈어. 그런 미담이 있다고 그렇게.

B2 : 아까 지게목발 노래라 하셨는데 그럼 그 노래를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을 분들이 서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부를 수 없다 실랑이를 벌여 잠시 생략)

A3 : 그럼 내가 말씀을 드려볼게. 이것이 인자 아까 말씀허잖여. 아까 박학근 회장님이라고. 그 분이 인자 타계를 허셔서 후계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못혀 왜. 앞소리를 허는 분들이 다 돌아가셨어. 이두식씨라는 사람하고 남궁헌씨라는 사람은서울 가 있고. 그리고 그 앞소리를 박학근 회장님이 하고 인자 그 분들이 몇이 앞소리를 허시는 분들이 타계하시고 타관에 나가계시고 혀. 그래가지고 인자 우리가 후계자가 없어가지고 목발노래를 운영을 못하니까 함라라는 디서 함라면. 함라면서 강여사라고 있어. 여기 회장님 계실 때 여기 와서 앞소리를 내렸어. 이 회장님 밑이서 대가꼬. 그래가지고 강여사라고 거기도 함라도 그 여자가 앞소리를 내고 매겨주고 후렴 즉 받는 거 콩꺽자 콩꺽자 두렁넘어 콩꺽자 그것은 혀. 뒤 받는 거 후렴 하는 것 빽이 못허지. 이것은 국악이거든 이게. 그런 식으로 인자 앞 뒤를 매겨줘야뎌. 그래야 받는 것이지 아까 저기 이장님처럼 일러주면 될까. 그 이상을 누가 리드해가꼬 앞에 불러줄 사람이 없어.

A1 : 여기 왔네 왔어. 승식이 콩꺽자 그거 한 번만.

A3 : 앞소리좀.

A1 : 콩꺽자. 아 앉어서 해봐. 허허. 콩꺽자 콩꺽자아- 자 여깄어. 책 보고.

A4 : 아 볼 것도 없어.

A1 : 아 한 번 해봐야 시방.

A4 : 괜찮어-. 혀도. 혀? 콩꺽자 콩꺽자 두렁넘어 콩꺽자아-

주민 일동 : 콩꺽자 콩꺽자 두렁넘어 콩꺽자아-

A4 : 오늘해도 다갔나봐 골골마다 경기롤세.

주민 일동 : 콩꺽자 콩꺽자 두렁넘어 콩꺽자아-

A4 : 됐어 인자 그놈만 해에. 허허. 아 더 허면 허는디 그서 해봤자 별 뽄때 없어.

A3 : 뽄때가 아니라 역사를 해놓는다고 그려.

A4 : 그러면은 인제 하나만 더 혀 그러면은. 오늘해도 다갔나봐 골골마다 경기롤세.

주민 일동 : 콩꺽자 콩꺽자 두렁넘어 콩꺽자아-

A4 : 됐어 인자 그만해.

무진 일동 : 하하하(박장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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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아까 상여집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 마을에 귀신이야기는 없었습니까?

A5 : 왜 그 전에 바위에 위에서 도깨비 불 놀았다 그랬잖아. 그 상여집이 바위 옆에 있었거든. 그런 소리도 있었어요.

A6 : 긍게 도깨비 불이라고 인자 상여집 옆에 있다고 옆이서. 그래서 우리는 무서서 못 갔지. 상애집. 그 옆에 있다고 그것 때문에 못 갔어요.

B2 : 그럼 우리 마을은 애장터는 어디 있었습니까?

A5 : 애장터는 저기 석불이 가는 데에 조그맣게 있었지.

B2 : 그러면 애장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A3 : 묻었지.

A1 : 긍게 그 때 우리 동네가 백한 백가호 정도가 됐어요. 쉽게 얘기해서 옥실리 정도까지가 포함이 됐어. 그래서 거기가 90년돈가 거기서 저쪽 우리 동네로 떨어져 나갔어요. 긍게 그 앞에까지 해가꼬 소작모리(?)라고 하던가? 거기다가 댔디야. 옥실마을도 우리 마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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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 술맥이도 술맥이도 이 옥실이서 몇 말내고 큰 동네에선 더 내고 제내에선 찌매 내고 인자 그렇게 해서 술맥이도 합동 술맥이 허고 그랬어. 여그가. 근디 인자 몇십 년 몇 년 전에 저기 검지에서 분리해서 떨어져 나갔지. 단위부락이라고 해서.

B2 : 옥실마을에는 돌마샘이라는 좋은 샘이 있다 들었습니다.

A2 : 돌마샘은 여가 있고.

A3 : 그래도 그 물은 참 좋은 물이지.

A1 : 현재도 있어. 물도 나와. 나오는데도 안먹지. 수돗물 먹으니까.

A3 : 그래서 여그서 김장이랑 하면은 동네사람 전부다 왔어.

A4 : 아 옥실이서도 물이 딸려가꼬 우리 동네 물을 막 먹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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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그럼 우리 마을에 옹기공장 같은 곳은 없었습니까?

A1 : 저쪽 구정에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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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 우리 마을에 그럼 오래된 나무나 바위는 있습니까?

A4 : 오래된 나무 있지. 거 시방 언젠가는 몰라. 여그여그 XX네 버들나무. 그거 참말로. 참말로 오래됐지.

A1 : 벼락맞았지.

A4 : 그게 너무 커가꼬 볘락을 때려가꼬 한조각이 떨어져 달아났어. 그게 지금 그 전 으른들또 언제부터 있는가도 몰랐디야.

B2 : 그럼 벼락 맞고 안좋은 일이 생겼다 하는 일은 뭐 없었습니까?

A4 : 그런 건 없었어.

A1 : 아니 긍게 그 전에는 그 72년도에 그 때 야산개발 박정희 헐 때가 인자 똘이 쉽게 얘기해서 그 구조물이 우에로 났었어 이렇게. 마을 그래가꼬. 현상금 그으면 짝허니 그은 것처럼 한 이십 몇 년동안이나 있었어.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인자 많이 죽는다고 어쨌나 해서 여기. 그래서 병진(?)이같은 경우에도 서울서 강도 만나 젊은 사람이 죽고 해서 그것이 있어서 마을을 가려서 그렇다. 그래서 그 때 인자 마을에 주민들허고 가서 얘기를 해서 지금 현재는 지하로 뿌셔 뿌셔버리고 지하로 매설해놨어. 긍게 인자 그 뒤로는 쪼매. 그렇게 괜찮드라고. 그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그런 설이 있어가꼬 지하로 현재는.

A3 : 아 동네를 막으면 안좋아 그게.

A2 : 그리고 우리 마을에는 월남을 많이 갔다왔거든. 아마. 젊은 분들이. 근데 손톱하나 저만치 떨어져 나가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들 않혀. 근데 도마마을이라는 디는 군대 가서 전사도 저 몇 분이 허고 군대 가서 병신이 돼서 나온 사람도 있는디 우리 동네는 그런 사람 한-분도 없어.

B2 : 그럼 풍수지리적으로 혈자리가 굉장히 좋아서일까요?

A3 : 암 그렇지.

A4 : 그것은 저 옛날에 으른덜 말씀이 저기 미륵산 있잖어. 거기 날줄기가 긍게 오룡이라는 것이 용이 다섯말이라. 그래서 오룡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러더라고. 긍게 그렇게 내려오는데 말하자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용이 다섯 마리가 있다. 그래서 오룡이라고 졌다 그러더라고.

A3 : 긍게 오룡이래도 네 개 부락인데 검지가 제일 커. 쉽게 보면.

A1 : 여기가 현재는 인자 공무원들도 뭐 교장이 네 분인가 나오고 사법고시도 허고 외무고시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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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러고 우리 동네가 그 전에 풍물같은거 치고 그러면 우리 마을이 최고 으른이라고 해서 저 구정리 사오래 이런데서 절을 허고 그랬다 했죠?

A2 : 술맥이를 같이 안했어. 왜인고니 저그 저 도마리허고 똑같은 오룡리래도 사오래허고 도마허고 검지는 술맥이 같이 안했어 왜냐. 옛날에는 반상이 있잖여. 말하자믄 양반 상놈. 그런 식으로 해서 구정은 말하자믄 반촌여. 우리 동네가 반촌여. 그래서 인자 따른 동네는 민촌이라 해가꼬 우리 동네가 양반이고 점잖은 그런 마을이여. 그래가꼬서 양반들끼리만 했지 옛날에 말하자믄 상놈들하고 상대를 안했어 말하자믄. 옛날 으른들이. 그래서 우리 동네가 우리 마을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점잖은 마을이여. 다 으른들이고 온순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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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내가 얘기 한 번 헐게. 우리 동네가 요새 소련이 공산당 아녀. 인제 우리 동네가 인공 때 우리 동네 보고 모스크바라 했어. 모스크바가 소련서 제일 크잖여. 그래서 여길 모스크바라 했는데 인공때 얼마나 시끄러웠어.

B2 : 모스크바라 불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A2 : 모스크바는 공산당이 많다는 소리여 그게. 우리 동네가 그런 사람이 많앴어. 거기 따라 댕기는 사람이 많이 있었어. 에. 특히나 우리 동네에서 많앴어. 그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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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진









왼쪽부터 박중근,남궁전,박철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