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제남(堤南, 외얏말=오얏말) : ‘제남’은 어량제의 남쪽에 있기에 붙은 이름. ‘외앗말’은 외따로 떨어져 있거나 어느 마을의 왼편의 마을일 때 붙는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제남마을 : ‘제네마을’에서 분리되었다고 함.
- 오얏말 : 옛날에 살던 일본사람들이 부르던 명칭.
- 소산 : ‘방죽안’ 뒤에 있는 소씨들 산.
- 손바레기: ‘제남마을’ 입구에 위치한 길.
- 으랭이 : ‘어량리’의 옛 명칭.
2) 전설 및 민담 :
- 죽기 직전에 보는 귀신 : 죽기 직전에는 3명의 귀신이 찾아와 데려간다고 함.
- 여우가 사람 홀린 이야기 : 고향집 사람이 여우에 홀려 찾아 온 이야기.
3) 민속 :
- 거리제 : ‘손바레기’에서 거리제를 지냈다고 함.
- 잔밥 : 배가 아프거나 아픈 곳에 ‘잔밥’을 먹였다고 함.
- 귀신 쫒는 방법 : 귀신을 쫒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고 함.
구술채록
A1 : 김상옥(66)-1948년
A2 : 김종인(75)-1939년
A3 : 제남마을 주민1
B1 : 이호형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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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원래 ‘제내마을’인데 인구가 한 50호 정도 되었어요. 쉽게 이야기해서 앞으로 한 34년 전에 ‘제내’하고 ‘제남’하고 분리가 되어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여기구 국기지가 많아요. 국가 땅이! 국가 땅이 왜 많냐면 그전에 일정시대 일본 사람들이 여기 와서 고구마 농사짓고 또 호밀 같은 거 심고, 이 근방이 한 6만 평정도 되는데. 일본사람들이 여기서 경작을 하다가 해방이 되니까 이 사람들이 다 물러가가 지고 그래서 국기지가 많은 거여.
B1 : 이름 ‘제남마을’인데 왜 그렇게 붙여졌나요?
A1 : 그건 인자 내가 알기로는 원래 ‘제내’인데. 저 쪽은 원래 ‘제내’에서 이쪽을 마을 동네를 볼 때 이 넘어 동네거든? 그래가지고 인자 남쪽에 있자녀? 쉽게 이야기해서 인자 ‘제내’인디. 남쪽에 있으니까 ‘제남’이라고 그렇게 지은 것이지.
A2 : 원래 이름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오얏말’이었어. 일본 말로 ‘오얏말’이었고 저 쪽에는 ‘제내’라는 데는 ‘방죽안’ 그 앞에가 방죽이 있었어요. 그래서 ‘방죽안’이라고 했었거든? 그래서 ‘오얏말’, ‘방죽안’ 그랬는 디 인자 좀- 거시기 하면서 ‘제내’로하고 여기는 ‘제남’이라고 그랬지. 그래서 지금도 알아듣기로는 ‘오얏말’, ‘방죽안’ 그래요. 여기가 ‘오얏말’이가 이 근방에가 다- 밭이었어요.
A1 : 쉽게 이야기해서 일본 말이지 ‘오얏말’이.
A2 : 저기는 인자 동네 앞에가 방죽이 있어서 ‘방죽안’ 그렇게 해서 ‘방죽안’이고 또 ‘오얏말’하고 ‘방죽안’하고 이렇게 4개 부락 저기 ‘어랭이’, ‘어남’, ‘어동’해가지고 여기 방죽을 논을 맨들었어요. 방죽이 있어가지고 그 물로 농사를 지어 먹었거든? 그런데 그것을 인자 저 방죽을 다- 4개 부락이 다 이렇게 측량을 해서 4개 부락이 나눠서 ‘제내’, ‘제남’, ‘어남’, ‘어동’이 그렇게 해서나 방죽을 논 맨들어서 지금 사용하고 있어요.
A1 : 근게 정부에서 물을 준 게. 그 방죽에 물이 필요 없거든? 그래서 인제 거기는 폐기해버리고 농사를 짓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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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주민 분들은 주로 장을 어디로 보러 가셨나요?
A1 : 여기는 80%∼90%가 ‘강경’하고 ‘논산’에서 장을 보고 있어요.
A2 : 말하자면 전북이라 ‘익산 함열’ 시장을 봐야하는데. 저기 교통이 안 좋아요. 그래가지고 시골사람들이 바쁘니까 그리 가지.
B1 : 옛날에 시장 보러 가실 때 고개를 많이 넘어가셨나요?
A2 : 다 넘고 댕겼지. 산을 다 고개 넘어 쪽길로 다- 양쪽에 솔나무 있고 다- 걸어서 다녔지.
B1 : 그 넘어 다니던 산 이름이 무엇이었나요?
A2 : ‘소산’이지 저기 ‘방죽안’ 뒤에.
A1 : 소씨들 산이라고 해서 ‘소산’이라고 했지.
A2 : 또 여기는 ‘손바레기’고.
B1 : 산 이름이 ‘손바레기’였나요?
A2 : 아니 길이지.
A1 : 여기가 ‘오얏말’ 저 쪽에 앞에 ‘제남’ 거기 입구 있자나 거그 보고 ‘손바레기’라고 그랬어.
A2 : 여기 차 들어오는 입구.
A1 : 근데 그 뜻은 모르것어. ‘손바레기’ 여기는 ‘오얏말’ 근데 왜 ‘오얏말’이라고 했어?
A2 : 야구, 야구땅.
B1 : 그 야구가 일본 사람을 뜻하는 말인가요?
A1 : 그렇지. 일본사람들이 여기서 정착해서 고구마 이런 거 키웠다고 해서.
A2 : 야구들이 인자 그냥 그 자기네 지역 마을을 그냥 ‘오얏말’이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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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 ‘손바레기’에서 거리제 같은 것도 지내고 그랬나요?
A2 : 거리제 지냈지. 거기가 왜 그냐면 좀 험했어요. 사고가 많이 났어. 교통사고가 그래서 거기서 빌고 무당 불러다 굿도 하고 그랬지.
B1 : 자동차가 다니기 전에도 거리제를 지냈나요?
A1 : 그렇죠. 여기가 소나무가 꽈-악 쩔어 가지고 진짜 호랭이 살다 싶을 정도로 그랬었어요. 근데 야산 개발하면서 다 없어졌지.
A3 : 더 많이 지냈죠.
A2 : 그때는 미신하느라고 나무 밑에 가서도 빌고 그랬는디. 지금은 안 그러지. 옛날에는 그렇게 했고 지금은 무슨 사고 나면 사고 난 집에서 더 이상 귀신들이 범치 말라고 제사는 지내지.
B1 : 거리제 지내는 것을 직접 보셨나요?
A2 : 봤지. 그 거리제를 지낼라면 나물을 이렇게 저기 별도로 따로 따로 세 가지를 해가지고 그릇에다 담아 놓고, 그러고 밥을 세 사발 이렇게 담아 놓고 귀신이 셋이 와서 먹는다고 또 떡도 이렇게 팥으로 버무려가지고 인제 팥이 귀신을 몰아낸다는 뜻이데요. 시루를 둘금둘금 해가지고 시루떡 해서 떠 놓고 그러고서 막 빌고 그러고 거기다 떡을 가지가는 사람을 가지가고 거기나 놓고.
B1 : 근데 왜 귀신이 세 명이나 온다고 그랬나요?
A2 : 저-기 믿는 사람들은 그러자녀 죽을 라면 귀신이 셋이 와서 데려간다고. 하나는 목 졸르고 하나는 망치로 막 뒤통수 때리고 또 하나는 막 몰고 가고 그런데 허허허허. 그래서 세 명이랴 하하하하.
A3 : 사람 죽어도 밥상에다 밥을 세 그릇 떠 놓았자나요. 지금은 점쟁이가 다 없어진 게 그러지 그전에 정월보름이면 저그 삼거리 거기 그런디 가서 이렇게 점쟁이들이 같다 놓고 빌고 그랬다고.
B1 : 이 동네에 점쟁이가 있었나요?
A2 : 아니 여기는 없었고 오서 불러다 오고 그랬지.
A3 : 옛날에는 배 아프면 잔밥 먹인다고 해서 쌀 갔다가 보재기로 폭 싸가지고 그걸로 배를 문질러 주고 옛날에는 그렇게 했지. 그러면 거기가 한 쪽인 팽긴다. 이거여 뭐시 어쩌고 그러면 그리고 그 점쟁이가 가져가지.
A2 : 인자 저- 나갔다가 와서 아프자나? 그러면 귀신이 붙어 왔다고 막 인자 거기다 된장을 뿌리고 또 저기 그런 걸 거기다 해가지고 바가지다 담아서 인자 그놈 막 칼로 막- 아픈 사람 머리를 집어 뜯으면, 이 놈 먹고 썩 물러가라고 막- 안 물러가면 칼로 찌른다고 그러고 짚에다가 팍 버리고 거기다 칼을 꽂아 놓으면 또 그것이 낫는다고.
A3 : 그리고 뭐냐면 칼을 점쟁이 막 던지거든? 칼 끄트리가 저 짝으로 가면 귀신이 갔다 그러고 칼 끄트리가 이 쪽으로 오면 안 도망갔다고 그런단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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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 시장보고 오시다가 도깨비 돌렸다는 소리 들어 보셨나요?
A2 : 그게 맞아요. 그전에 저그 저 우리 ‘여산’ 동네 우리 앞 집 남자여. 그 머여 처갓집이 저 거시기지 ‘용동’ 갈려면 이 쪽에 큰 동네 있자녀. ‘간징게’(?) 거기가 처갓집인 디. 거기를 갔다가 밤에 오는디 저기 ‘소산’이 험져. 그 사람이 산을 계-속 도는 거여 산을, 길이 나오도 않고 이렇게 반듯한 길 인디 가면 가시밭이고 그러디야. 그래서 어-떻게서 어떻게 해서 자기가 막 입술을 물어뜯었데요. 그게 인자 귀신을 피를 무서워하자나, 그런 게 입술을 막 물어뜯은 게 정신을 어떻게 차려가지고 그런 게 그런 것이 쪼매 사라지드랴. 그래 가지고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우리 친정 동네 남자인디. 자기네 동네에서 시집온 사람인 게. 아 그래가지고 밤중에 막 찾드라고 그래서 나가 봤드니. “여기가 ‘여산’서 시집 온 집 아니냐?” 그래서 그렇다고 그러니까 처다 본 게 우리 앞집 남자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드라고요. 근데 거기가 옛날 어른들 말로는 여수가 살았데. ‘소산’에 거기에 여수가 살아 가꼬 그 여수가 이렇게 좀 술 먹고 그런 사람을 그런다고 하드만? 그 사람을 홀려가지고 여수 꼬리를 팔딱 자처서 이-렇게 끌고 간데요. 인자 옛날 어른들 속담이, 이렇게 끌고 가면 사람 눈에 그게 길로 보인디야. 그렇게 해서 끌고 다닌다고 하드라고. 그러고 그전에 저 우리 ‘이집사’님 한 번 ‘상발’ 그 가는디 지금 작업장 지어 놓은디 있자나. 거기서 어떻게 해서 갔는디. 저-기 아자씨네 딸 사는 동네.
A3 : 응 ‘신풍’
A2 : 응 ‘신풍’에서 저녁 동안 돌아다녔다고. 다 죽어 가꼬 와서 그러드라고.
A3 : 여수한테 돌린거네?
A2 : 예. 옛날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A1 : 나도 ‘금마’ 살았지만 ‘금마’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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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머님 ‘여산’ 어디서 사셨나요?
A2 : ‘여산’ 거시기 ‘동촌마을’서 살았어.
B1 : 혹시 주변에 형상을 닮은 지형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A3 : 지금 저 ‘제내’ 거기는 그 집안들 이야기 들어보면, 거기가 소 밥그릇 이랴.
A1 : 나도 ‘금마’ 살았지만, 그 중학교 뒤에가 ‘금마산’이 말 형태거든? 그러기 때문에 그 앞에 마을이 ‘구정마을’이여. 쉽게 이야기해서 밥구수 라고 해가지고 내가 거기서 ‘구정마을’에서 태어났거든. 그리고 ‘오금산’이라는 데는 쉽게 이야기해서 금이 뭐 다섯 개가 묻혀서 ‘오금산’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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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량리’는 왜 ‘어량리’라고 붙여지신지 아세요?
A2 : ‘어량리’ 인디, 거그가 ‘으랭이’ 동네 이댜. ‘어남’, ‘어동’으로 이렇게 ‘어량리’는 저- ‘하림’까지 다- ‘어량리’여. 동네 저-기 거시기가 똘이 있어요. 그 똘 따라서 그렇게 불렀어요.
B1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구술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