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망성면 > 선리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망성면 > 선리마을
구술자 이인철(1939)남자
구술자 선리마을주민()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구술일시 2013-07-11
비고 면담장소 : 망성 선리마을 모정
면담시간 : 2013년 7월 11일 11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선리마을 주민 1은 성명과 생년을 밝히지 않았음.
키워드  

문헌내용

선리(船里) : 옛날에는 배가 닿던 옆이니 그래서 생긴 이름으로 보아야겠지만 일설에는 부락 지형이 배와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선리마을 : 지금 마을이 있는 자리는 후에 옮겨진 자리라고 함. 전에는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마을이 있었음. 예전부터 마을에 ‘배가 드나들어야 좋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배 선 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선리’라고 지었다고 함.
- 미내다리 : 강경천에 놓여진 다리. 옛날에는 한양을 다니는 큰 길이었다고 함.
- 토다리 : 신용마을에 있다는 다리로 콘크리트 위에 흙이 얹어져 있음. 왜정시대 만들어진 다리.
- 여수구렁 : 여우가 둔갑하는 혈. 경우에 따라 사람에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함. 지금은 무연고 묘들이 모인 공동묘지.
- 불무골 : 야동마을의 옛 이름. 마을에 ‘불무혈’이라 불리는 혈자리가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좋다는 말이 있음. 불무는 대장간의 불무를 말함.

2) 전설 및 민담 :
- 미내다리 이야기 :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들이 하천을 팔 때 ‘미내다리’를 없애자 하늘에서 벼락이 쳤다고 함. 이를 보고 범상치 않은 일이다 여겨 없앴던 다리를 다시 세워놨다고 함. 지금은 논산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음.
- 은진 미륵불 이야기 : 임진왜란 때 ‘은진 미륵’이 어린아이로 둔갑해 일본병사들을 속임. 이에 화가 난 일본 장수가 미륵불에 창을 던져 미륵불의 갓이 깨짐.
- 벼락바위 이야기 : 어떤 도둑이 ‘은진 미륵불’ 이마에 박혀있던 금을 떼어내 달아나다 ‘벼락바위’에 가서 벼락을 맞아 죽음. 벼락바위는 현재 강경읍에 속해 있음.
- 작산마을 다리 이야기 : 까치 작 자를 써서 ‘작산’이라고 하는데, 왜정시대 마을 옆에 다리를 놓으면서부터 마을이 기울기 시작했다고 함. 까치가 버드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어놓고 사는데, 거기에 다리(사다리)를 놓았으니 까치가 쉽게 잡히지 않았겠는가 하심.
- 말무덤 이야기 : 포변 주변에 ‘견훤’이 타고 다니던 말의 무덤이 있다고 함. 견훤이 죽고 주인을 잃은 말이 4키로 밖에서 달려와 울며 뛰며 요란스레 난리를 치다 지금 말무덤 자리에서 죽었다고 함.
- 신용마을 이야기 : 용이 승천한 마을이라고 함. 왜정시대 하천을 파면서 ‘용의 허리’를 잘랐는데, 그 이후부터 신용마을 청년들이 죽거나 공사 중에 사고가 잇따름.
- 무평마을 명당 이야기 : 무평마을 뒷산을 보고 명당이라고 하는데, 지금 장씨 집안의 묘가 거기에 있음. 본래는 송씨 집안에서 그 명당을 쓰려 했는데, 장씨 집안에 시집간 송씨 며느리가 꾀를 내어 친정의 명당을 시댁으로 가져옴.

구술채록

A1 : 이인철(73)-1939년
A2 : 선리마을 주민1

B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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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어렸을 때 이 마을에 대해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A1 : 이 안이 지금 움멍헌 디 여기 가서 그전이 전씨들이 집성촌이 있었디야.

B :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A1 : 이 앞에 논(모정에서 바로 보이는 논).

B : 이 논 한가운데요?

A1 : 응. 거그가 마을이 크게 있었는디 지금도 거기 인자 논 같은 거 이루고 뭐 쟁기질허고 허먼 기와 같은 거 더러 나오고 어찌고 했었어. 옹기 같은 거. 우물도 있었고. 근디 인자 그 양반들도 들은 풍월이여. 알든 못혀. 지금은 인자 돌아가셨지만. 그 사람들이 이뤄가지고 거기서 말허자먼 부락이 번창을 했어야 하는디 번창을 못허고서는 폭삭 망했다는 식이여. 그러니까 그 이짝으로, 이 지금 이 자리로 옮겼다는 식이여, 부락을. 우리가 듣기로는. 그래서 인자 여기로 옮겨서 인자 상당히 융성해졌다고 그러더라고. 여기 한참 70년대만 해도 한 90가호 이상 됐었어요.

B : 논 한가운데 마을이 있었을 때는 거기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그 소리는 못 듣고 전씨들이 많이 살았다는 소리만 들었는디, 여기 그 저 여기가 지금 선리라는 디가 배 선 자, 마을 리 자여. 아무 때고 여기 배가 들어오게 돼야 살기가 괜찮다, 그런 풍설이 있었디야. 그러자 인자 한 이 강판제가 한 백 년 가까이 팔, 구십 년 됐다대요.

B : 어떤 걸 강판제라고 부릅니까?

A2 : 강을 만들은 데가.

A1 : 하천을 인자 허고 다리를 놓고 그럴 때가 한 팔, 구십 년 됐디야.

B : 수로 공사를 했던 겁니까?

A1 : 예. 그른 게 인자 제방을 쌓고 인자 수침지역이니까 못 들어오게 헌 거여, 물을. 그러고 농사짓기가 편리허게 인자 제방을 일본사람들이 쌓은 거지. 그러고서는 이 동네가 상당히 융성해졌다고 그러대요. 살기가 나았디야.

B : 단순히 농사짓기가 좋아져서 마을이 융성해진 겁니까?

A1 : 그른 게 그 지명 따라서 인자 대개 지명에 그 동네가 좌지우지허는 데가 있어요. 여기는 배 선 자, 배가 들어와야 이 동네가 괜찮다. 그래갔고 배 선 자, 마을 리 자, 선리라고 그렇게 지명이 됐다고 그런 말은 있어.

B : 일본사람들이 수로 공사를 하기 전에는 여기에 하천이 없었습니까?

A1 : 인자 굿돌, 말허자먼 꼬불꼬불허니 이렇게 그 소하천 같이 인자 있었지.

A2 : 몇 백 년 전에는 그 미내다리, 강경 미내다리로 혀서 이쪽 선들로 혀가지고 배가 다녔다는 그런 얘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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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여기서 똑바로 가먼은 저기 철로길 못 가서 이렇게 다리를 둑으로 쌓은 것이 있어, 미내다리라고. 그게 인자 서울 가는 도로라지. 그놈이 저짝 그 왜 채운 가는 디 원목다리라고 그 다리허고 연결했어.

A2 : 그 뭐 과거 보러 다닐 때 그리 다니고 혔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

A1 : 긍게 그 하천 팔 때 일본사람들이 그 돌다리(미내다리)를 없앨라고, 걸리적거린 게. 그것을 싹 파다가 옮겼다가 막 하늘에서 뭐 천둥이 오고 막 벼락을 치고 허는 바람이. 그 돌이 좋아. 빤뜻빤뜻허니 이렇게 네모져갔고 요렇게 지금도 그런 다리가 있잖아요, 맞춰서. 그렇게 했는데 그 다리를 뜯어다가 그것을 딴 디로 사용헐래다가 인자 말허자먼 못했다는 그런 말이 있어. 그래갔고 도로 갖다 맞춰서 지금 문화재로 만들어 놨시요, 거기. 하천 강 속이 강가시다가 이렇게 철조망 치고 정부에서 그 논산시 문화재로 만들었을 거야, 아마 그게.

B : 그게 충남에 속하는 다리입니까?

A1 : 여기(미내다리)가 경계선이에요. 이 제방 저짝께는 충남이고 이짝께는 전북이고 그래요. 그 다리로 해서 서울사람들이 한양을 갔디야. 한양 댕기는 도로여. 큰 도로여, 지금으로 말허먼.

A2 : 얼마 안 돼요. 한 4키로 떨어졌나, 여기서?

B : 미내다리를 허물려다가 벼락이 쳤다는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시겠습니까?

A1 : 그게 허물으니까, 인자 돌이 좋고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그놈을 딴 디다 사용헐라고 허물어가지고 가져갔는디 막 벼락을 치고 뭐 천둥을 허고 허드리야. 긍게 전설이지. 그러니께 겁난 게 그 사람들도 안하무인 아녀, 일본사람들이. 그른 게 인자 이것도 한국에 무슨 거시기가 있다. 그래서 도로 갖다가 맞춰 놨디야. 그래서 그 다리 비슷헌 것이 거기서 한 4키로 가먼 원목다리라고 또 논산 고은 가서 있어요. 그 다리허고 맞춘 거여. 말허자먼 다리가 형이 똑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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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 그래가지고 벼락을 때리고 뭐 비가 오고 헌 디서 그 옆 동네는 또 동네 이름이 벼락바위여. 바위가 또 있어요, 벼락바위라고.

A1 : 벼락바위는…, 학생들도 알다시피 여기 은진 미륵이 있잖아요. 동양에서 그 불상이 제일 크다는 은진 미륵. 미륵불이 17미터여, 관촉사. 근디 인자 그건 옛날 몇 백 년 전 일이지. 그 임진왜란 땐가 뭐 언젠가 인자 그 일본사람들이 인자 그 강을 건너야 허는디 수심을 몰르겄디야. 몰른 게 인자 그 초립동이 말허자먼 쪼그만한 학생, 지금으로 말허먼. 그 전에는 학생이 없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종곰종곰(?) 이렇게 허고 건너더라 이거요. 일본 군인들이 본 게. 그른 게 인자 그 사람들도 하찮게 보고 건너다가 다 빠져 죽은 거여. 그른 게 인자 그 뒤 대장이지. 말허자먼 소대장이나 중대장 이 사람이 보고서는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말허자먼 한국의 신이 유인을 했다 해갔고 인자 거시기를 했디야. 그른 게 인자 그게 은진 미륵이 그 신이로 변해갔고 일본사람을 유인해서 죽였다는 식이여. 그래서 거기서 인자 한 1킬로쯤 오먼은 관촉사가 있어요. 그 미륵불이 동양에서는 제일 커. 17미터여, 높이가. 그래갔고 인자 갓을 크게 쓰고 이렇게 가운데다 여기다 금을 박았어. 우리 지금도 가먼 있어, 이렇게 똥그랗게. 근디 인자 도둑놈이 인자 금을 그걸 도둑질을 혔든 게벼. 그래갔고 말허자먼 여그 벼락바위 가서 벼락 맞어 죽었다는 말이 있어.

B : 도둑이 미륵불 이마에 박혀있던 금을 훔쳤는데 벼락바위에 가서 벼락을 맞아 죽었다―.

A1 : 어. 근디 인자 일본사람들은 그 괘씸허다 해갔고, 초립동이가 인자 그 미륵불이 둔갑을 해갔고 인자 한국 수호신이 된 게 창으로 장수가 던져버렸어. (미륵불의) 대가리에. 말허자먼 죽으라고. 그른 게 이 미륵불이 그 갓이, 갓을 썼는디 갓이 한쪽이가 뚝 떨어져 나갔어. 그래서 지금도 가먼요 갓이 귀퉁이가 한 1미터 이상 되게 떨어져서 딱 혀갔고 그 고리로 해서 이렇게 잇은 자리가 있어. 쇠로 이렇게 해서 얼궈맸드라고. 그게 인자 전설로는 그려.

B : 그게 임진왜란 때 일입니까?

A1 : 그렇다고 보야지.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침입했을 땐 게. 긍게 그 미륵불이 사, 오백 년 됐다고 그러드만.

B : 벼락바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A1 : 그 벼락바위라는 디가 여그서 저기, 지금 잘 안 뵈는구만, 창고 때미. 여그서 한 3킬로, 4킬로 가까이 되는디, 거기는요 부락이 한 이, 삼십 가구가 사는디 그 뒤 가서 이 돌이 절개가 빤뜻이 딱 끊어졌어. 황등 왜 돌산 이렇게 깎아지드끼. 긍게 인자 벼락을 때려서 그랬다는 말이 있어.

A2 : 새까만 돌이여.

B :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어디에 속합니까?

A1 : 강경읍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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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지금 이 앞이 다리, 지금 저기 있는 다리가 좌우간 한 구십 년 이상 됐다고 그러대.

B : 그 다리 이름이 뭡니까?

A1 : 작산다리. 지금도 이 기계로 깨틀래도 부시도(부수지도) 못해요. 사람 다니고 차 다니고 다 해요. 우리 어머니가 지금 살었으먼 아흔일곱 살 됐는디, 우리 어머니 열댓 살 먹어서 그 다리 놓는디 돌을 깨트렀디야. 일본사람들이 인자 하꼬다 이렇게 돌을 깨트러서 요만썩허게 망치로 깨트르먼 하꼬다 해서 한 하꼬에 돈 몇 원씩 돈을 줬디야. 돈벌이가 없응게 인자 아가씨들이 학교도 없고 그런 게 인자 그거 깨트러서 일본사람들한티 팔고 그랬는디.

B : 그 다리가 작산마을 옆에 있습니까?

A1 : 예. 그 글자가 이 저 까치 작 자, 뫼 산 자여.

A2 : 까치산이라고 그러지. 옛날 말로는 까치산. 지금 새로 인자 지명된 게 작산.

A1 : 그른 게 작산다리는 까치 작 자 작산인디, 작산은 다리를 놓고 망허고. 말허자먼 까치가 버드나무 꼭대기다 집을 지었는디 새다리를 놓으먼 망허잖요. 잽히(잡히)잖요. 다리를 놓으니까 이 새다리를 놓은 게.

B : 그게 무슨 말입니까?

A1 : 지금 까치가 버드나무 꼭대기다 집을 짓잖요. 새다리를 맨들으먼 그 까치가 잽혀요, 안 잽혀요? 집을 옮기야 허잖여, 사람이 올라간 게. 그른 게 거그다 새다리, 다리를 놓은 게 그 동네가 망해버렸어. 그러고 우리 동네는 배 선 자, 마을 리 잔 게 배가 들어와야 한다. 강을 파서 우리 동네는 흥허고 그 동네는 망했어.

B :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A1 : 들었죠, 나도. 어렸을 때 들었는디 한문이로 해석허먼 그게 맞어요. 근디 으른들 얘기 들으먼 작산다리를 선리다 놓을라고 했었디야. 선리다 놓을라고 일본사람들이 설계를 해서 송판이니 뭐니 이 나무를 잔뜩 갖다 놓으니까 말허자먼 선리는 배 들어오는 디다가 다리를 놓으먼은 방해가 된다, 놓지 말자. 그른 게 작산다 놓아라. 여그다 놨으먼 들이 다니는 교통이 좋았잖어. 여기 솔직히 애로 많았어요. 옛날 노인네들이 잘못해갔고. 여자들이 밥광우리 이고 뺄개벗고 댕긴 지가, 우리 어렸을 때는 다 밥광우리 이고 여자들 홑치매 입고 강 건너고 그랬어요. 들이 가서 일꾼들 밥 줄라고 가다가 자빠지고 밥광우리 막 물속에다 빠치고. 그래갔고 깡통다리를 만들어서 동네 사람이 어떻게 허다가 인자 정부에서 쪼금씩 지원해주고 어쩌고 해서 쪼그만한 다리 놨다가 그 다리가 못쓰게 생겼응게 지금은 인자 대형다리가 크게 놓아졌지.

(속이 빈 드럼통을 길게 연결하여 강 위에 띄워놓은 것을 깡통다리라고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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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포변 저짝께 가서 견훤이 말모이(무덤)가 있어. 견훤이 모이가 저기 연무대 훈련소 들어가는 여 입구가 있어요. 견훤 모이가 있는디 견훤이가 인자 그 거시기한티 인자 왕건이한티 몰려가지고 죽게 생겼으니까 견훤이가 인자 첫 번이는 승승장구허다가 나중이 그 모사들이 잘못혀갔고 망했잖여. 저 거시기한티 왕건이한티. 그른 게 인자 내 운이 다 됐다. 그래서 자기 그 묘지를 잡어서 거기다 인자 쓰게 됐는디, 그 말이 말허자먼 아주 충견이었던 게벼. 개로 말허먼. 말이 4킬로 배깥이 와서 막 울고 뛰고 허더니 신풍이라고 포변 저짝께 와서 죽었어. 그래갔고 거기 말모이가 크게 있는디 지금 흔적만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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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토다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1 : 토다리 저기.

B : 그게 어디 마을에 있는 다리입니까?

A1 : 마을은 신용마을이여. 저기 저 마을에서 집이 댓 가구 있어. 근디 일본시대 그 유래를 따져서 일본사람들이 공그리(콘크리트) 다리를 이렇게 놨는디 토다리다 해갔고 밑이다 철근 넣어서 공그리를 허고 흙을 반절을 썼어. 흙을. 그게 토다리여. 말허자먼 공그리 다리 위에다 흙을 쪄서 요렇게 도톰허게 자갈허고 펴서 글로 차가 다니게 했다고. 공그리로 다니먼 더 좋은디 그것을 안 걷어내고 끝까장 그 흙으로 유지를 허드라고.

B : 왜 그랬을까요?

A1 : 그 지명을 따라서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했대. 그건 뿌신지 얼마 안 되야.

B : 외정 때 일본사람들이 흙을 얹은 다리를 만들어서 거기를 토다리라고 부른 게 아닙니까?

A1 : 아니요. 그전에 토다리를 지명을 따져서 일본사람들이, 일본사람들도 솔찬히 그 지명 무시 못해요. 그 사람들도 그 지역을 역행을 못허니까. 공그리로 다리 놨으먼 댕기기 좋고 더 좋잖요. 근디 거기다 흙을 반절 쪄서 다니게 혀갔고 차 다니는디, 오도바이 타고 다니는디 울턱불턱허니 나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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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신용마을은 왜 신용마을입니까?

A1 : 그게 말허자먼 새 신 자, 용 용 자여. 근디 그게 용이 말허자먼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마을이여. 그른디 이 강을 이렇게 하천을 일본사람들이 파먼서 동맥을 끊어버린 거여. 말허자먼 용 허리를 끊어버린 거여. 그러고서는 그걸 끊은 게 그 동네 청년들이 그냥 막 계속 죽는 거여. 아무 이유 없이. 그래갔고 그 동네가 망허다시피 했었데요. 그 저 이짝 그 왜 영철네 집허고 저짝 성배네 집허고 그 날을 끊는 통이 공사허다가 일본사람들이 중판맸었디야. 그때는 뭐 포크레인이니 탱크가 아니고 도로꼬라고 이렇게 저 철 놓고서는 사람들이 밀고 댕기는 그걸로 허는디, 그것이 막 엎어져서 죽고, 사람들이 죽고 막 난리가 났었어.

B : 용 허리를 끊는 바람에 청년들이 죽고, 공사 중에도 사고가 많았다―.

A1 : 어. 일본사람들이 겁나다고 했었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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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무평마을은 왜 무평마을입니까?

A1 : 무평도 큰 유래는 없는디 거기가 잘난 사람이 많여. 무동, 무서가 한 동네여. 근디 무평이라는 디가 송장이여, 송장. 송씨들, 장씨들이 흥허는 마을이여. 그래갔고 송씨들이 망헌 게 장씨들이 흥헌다고 그랬었어. 그랬는디 인자 그 송씨들이 그 산소를 쓰는디 거기 장소가 좋아요. 모이도 잘해놨어.

B : 거기가 명당입니까?

A1 : 어. 명당자리를 딱허니 쓸라고 딱 그런 저 거시기를 했는디. 낼 출상을 헐라고 구딩이를 딱 갖다 관을 놓고 파놨는디 며느리가 말허자먼 자기 시아버지를 쓸라고 그 친정 그 묘지다 물을 갖다 저녁에 똥을 갖다 부어버렸어. 똥을 갖다 부은 게 물이, 물허고 똥허고 섞어서 잔뜩 내일 송장을 갖다 늘 디다 헌 게, 자고 일어나 본 게 물이 철렁허네. 명당자리가. 긍게 아, 이것이 아니구나. 송씨들이 옮겨버린 거여.

B : 물이 차면 좋은 자리가 아니니까―.

A1 : 어. 그러고서는 자기 시아버지를 몰래 인자 죽은 사람을 갖다 밀장을 헌 거여, 몰래. 거그다 쓴 거여, 며느리가. 그른 게 친정은 망해도 좋다는 식이여. 그래가지고 그때서부터 송씨들이 기울기 시작허고 장씨들이 흥했다는 말이 있어.

(무평 뒷산에 그 장씨 묘가 있다고 함. 여기서는 그 산을 무평산이라고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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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혈자리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1 : 여기 여수구렁이라는 유래는 내가 쪼꼼 들어서 알어.

B : 어딜 보고 여수구렁이라고 합니까?

A1 : 여기 냇가 저짝 그 공동묘지가 여수구렁이여. 익산군수가 저거 비석 크게 핸…, 이화영 군수가 했던가. 그 야산 개발헐 때 수백 그루를, 무연고 묘를 갖다가 한꺼번이 해서 비석을 해놨어. 세대가 세대인 만큼 영혼들이 제 집을 못 찾어서 저도 미안타, 그런 식이로 익산군수가 비석을 크게 해서 저그 세워놨시요.

(이인철 어르신의 고모부 되시는 분이 지관처럼 터를 볼 줄 아셨다고 함.)

A1 : 미륵산 꼭대기 가서 인자 그 양반이 말허자먼 지관질을 잘혀. 우리 고모부라는 양반이. 딱허니 우리 인자 아버지가 처남인 게, 처남허고 자기 아들들허고 죽 올라가서 이 혈을 딱 보드리야. 저기 낭산서부터 이게 이렇게 뻗어 나왔거든.

B : 어떤 혈을 보신 겁니까?

A1 : 이 여수구렁을. 그른 게 인자 우리 아버지는 여수구렁이라는 것만 알었지. 우리 고모부가 딱 보더니 여기 저 낭산서 이 강경으로 뻗은 그 혈은 여수 둔갑허는 혈이다, 딱 그러드리야. 여수 둔갑허는 혈이라고 옛날 노인네가 딱 그러는디, 확실히 우리 매형 아는 거 많구나―. 그 사람들은 한국의 그 지리책을 딱 놓고서는 경상도 어디 가서 무슨 명당, 전라도 어디 가서 무슨 명당을 다 알어요.

B : 여수구렁은 어떤 특징이 있는 혈입니까?

A1 : 그른 게 지금 인자 거시기로는 여수가 둔갑을 허는 것이 재주를 많이 부린다는 거지. 좋게 헐 수도 있고 나쁘게 헐 수도 있고. 사람을 홀리기도 허고 그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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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야동마을의 옛 이름이 불무골이던데, 왜 불무골인지 들어보셨습니까?

A1 : 혈이 불무혈이여. 대장간이서 이렇게 그 석탄을 넣고, 숯을 넣고 부는 게 불무여. 그래갔고 한창은 거기가 그 불무혈 따라서 모이 쓴 사람은 잘 된다는 그런 말이 있었어요.

B : 어째서 그렇죠?

A1 : 아, 불무가 불으먼 막 쇠가 녹아서 대장간이 잘 되잖요.

B : 불무혈에 대장간도 있었습니까?

A1 : 대장간은 없고.

구술사진





우측 이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