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부평(富坪)․섯밧재 : 부평은 전에 부들(蒲, 붇)이 많이 나서 ‘붇들→富坪’.‘섣밧재’는 ‘서쪽 밭재’거나 ‘서쪽 밖재→섯밭재’의 가능성이 크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부평마을 : ‘금지마을’에 포함된 마을이었다가 분리 되었다고 함.
- 금지마을 : ‘건못’이라고 불렸다고함.
- 섯밧재 : ‘금지마을’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곳을 부르는 명칭.
- 비야마을 : 물이 나오는 구덩이가 많아서 농사짓기 좋아 붙여진 이름.
- 소펄&용소 사람들 : 피난 온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물이 많이 넘쳐 ‘부평마을’로 이사 온 사람이 많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용안현 원님 : ‘용안현’ 원이 ‘금지마을’을 지나갈 때 꼭 들려 하룻밤을 자고 나서 갔다고 함.
- 이동우 선생 : 돈이 없는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했다고 함.
- 도깨비불 : 도깨비불을 직접 보았다고 함.
- 칠목리 중거리 방죽 : 도깨비가 나왔다고 하는 방죽.
- 바우코쟁이 : 큰 바위의 모서리가 나온 것을 부르는 명칭.
- 망성 양수 조합장 : 마을 사람들에게 쑥을 심게 하여 가난하다는 것을 공무원에게 보여 주어 ‘금강 양수장’을 짓게 해주었다고 함.
3) 민속 :
- 풍장(風葬) : ‘섯밧재’에서 풍장을 했을 것 이라고 추측함.
- 강경 : ‘강경’에서는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서해에서 잡아온 고기를 ‘강경’에서 판 것이라고 함.
구술채록
A1 : 백상기(77)-1937년
B1 : 이호형
B2 : 이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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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부평마을’의 이름이 왜 ‘부평마을’이 되었을까요?
A1 : ‘부평’ 이라고 한 거는 에- 내가 한 20살 되었을까? 그때 에- 면에서 한문으로 되어있는 마을이름으로 다- 지었어. 그전에는 ‘금지’에 한 마을이 되어가지고 그 불과 한 3∼4집정도, 이렇게 없었거든 그래서 그때 당시 그러고 나서 여기에 그때 몇 년도 인가는 나 잘 모르는데. 그 물이 옛날에는 많이 있었지. 응? 수해가 많이 왔었어. 이 밑에가 저- 도로 밑에가 그 밑으로 해가지고 이 앞까지 물이 하-얗게 물이 있었어. 그런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물 지면서, 저 아래 사람들이 여기로 이주를 오고 그런게 동네가 좀 커졌지. 옛날에는 소나기 오면 막- 금방 물이 졌거든. 물이 전부 저그 멀-리서부터 요 안으로 쏟아지는 바람에, 지금은 제방을 다 막고 수로를 맨들어가지고 딴 데로 빠지지만 옛날에는 그랬어.
B1 : 그게 몇 년 정도 전에 이야기 인가요?
A1 : 내가 지금 일흔여덟 살인데 나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저- 물 진다고 비 많이 온다고 그랬었어. 피난오고 하하하.
B1 : 그러면 옛날에는 배도 들어오고 그랬었나요?
A1 : 배까지는 못 들어왔고 이게 지금 일본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저기 제방을 이렇게 만들어가지고 물이 못 넘어오게 만들었거든. 그전에는 그 물이 못 넘어오니까 물은 많이는 안 졌어도. 저- 내려오는 물은 원채 이 근방에서는 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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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금지마을’은 왜 이름이 ‘금지’되었을까요?
A1 : ‘금지’도 그때 당시 그전에는 ‘건못’이라고 그랬어. ‘건못’인데 그때 저- 한문으로 전부 행정에서 그 지시가 됬어. 그래서 인자 거기 있는 사람들이 상의를 해가지고 에- ‘건못’인디 ‘금못’이 아니였겠냐? 옛날에, 그래서 ‘금지’로 그렇게 지은 것 같아.
B1 : ‘건못’은 무슨 뜻인가요?
A1 : 원래 그- 옛날 노인네들 들어 보며는 저-기 저 ‘두무’라고 그 못이 있었는데. 거기가 맨나 말라요. 그래서 말하자면 쉽게 얘기해서 ‘건방죽’이지 ‘건방죽’ 응?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모양인데. 그건 우리가 노인네들 얘기 하는 소리만 조금씩 들었지. 그 양반들도 확실하게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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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이런 ‘건못’과 같은 옛 지명들이 또 있을까요?
A1 : 그 동네가 저- 동네가 음- 옛날에는 한 때. 한-참 번창 할 때는 한 110호정도 큰 부락이었어. 농촌이 자꾸만 피폐해 가고 어디로 이사 가고 한게 작아졌지. 우리 한참 젊을 때만 해도 100호가 넘었어. 그런데 인자 이 동네하고 분리가 안 되었을 때도 100호가 넘었는데. 저-쪽이 저- 산 밑에 그 동네가 3호, 4호 있었고 이 동네가 몇 호 있었고 그런 것 까지 다- ‘파운(?)다리’를 되어가지고 그렇게 ‘건못’이라고 했지.
B1 : 아- 또 기억나시는 지명 있으신가요?
A1 : 여그는 인자‘섯밧재’여. 그런게 저 동네(금지마을)를 생각해서 서쪽이라고 해서, 서쪽 밭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지. 그건 잘 모르죠.
B1 : ‘금지마을’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섯밧재’라고 불린 것이군요.
A1 : 그렇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또 그것을 자세히 했다면 옛-날에는 여그가 그 소나무 밭이 꽉- 차있는 그런 동네라고. 그래서 인제 여그가 그전에 풍장(風葬) 있자녀? 여기가 소나무 밭이 있으니까 그 넒게 있으니까. 그 풍장터여 풍장을 주로 많이 하던 그런 지역이라고. 그래서 ‘섯밧재’, 섶으로 만들자녀? 풍장 할라면? 그래서 그랬는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B1 : 여기서는 풍장(風葬)은 어떻게 하나요?
A1 : 소나무가 이렇게 있으면 이렇게 걸대에 매고 그 위에 대가 그- 섶으로 싸가지고 그 위에다 올려놓으면 육탄이 다 될 때 까지 놓아두는 거여. 사람 죽었을 때 그렇게 했지.
B1 : 이 마을에서 그렇게 했다는 건가요?
A1 : 인자 그것도 모르고 그냥 내 생각이여. 그런게 아닌가 싶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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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또 특이한 지명 생각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A1 : 에- 어떻게 생긴 이름인지는 그걸 모르는데. 저 동네 가서 보면 ‘용안’에 원이 살았거든? ‘용안현’이 원이 살았는데. 반드시 이 동네를 거쳐서, ‘금지’를 거쳐서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빤-히 이렇게 보이니까(용안이) 직선거리로, 여기서 한 3km 되나? 4km되나? 그것 밖에 안 되니까 그렇게 해서 하룻밤 자고 갔다고 그런 얘기도 들리드라고.
B1 : 원님이 찾아올 정도면 마을이 컸다는 얘기 같은데. 무슨 혈 자리가 좋아서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던 것일까요?
A1 : 그런 것은 모르고요. 저- 마을에는 그 서당인가? 서당도 아니고 에- 여기 바로 앞에 철로가보면 ‘이동우’선생 기념비라고 있는데. 그분이 거기 학원을 만들었어. 사설학원을 만들어서 돈 없어서 중학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을, 그런 정도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학원을 했어. 지금도 비(碑)가 크-게 아들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만들어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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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는 도깨비랑 씨름 했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나요?
A1 : 안 들었어요. 근데 옛날에 도깨비불은 나도 봤는디. 인자 여담이지만 그저 저녁에 여기서 한 3km 되는 데를 내가 53년에 여기 이사를 왔는데. 내가 한참 어릴 때인디. 그 동네가 여기서 한 3km 되요. 근게 여기는 친구들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거기를 저-녁 마다 하루도 안 빼놓고 놀러를 갔었다고. 그래 갔고 지금 시간으로 말하면 한- 10시 훨씬 뒤에 오지. 그러면 허허허 그게 딱 하니 고개를 이렇게 넘으니까. 저- 위에서 그 불이 쭈-욱 내려가는 것이 보여. 그래서 인자 한참 서있었지. 그랬더니 이-이렇게 헛것이 보이는 거여 그렇게. 그런 것이 도깨비불이지 무슨 어디 도깨비불이 어디 있겄어.
B1 : 그럼 도깨비불이 해코지 한다는 소리는 못 들으셨나요?
A1 : 아- 요 근방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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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아까 이사 오셨다고 하셨는데 어느 곳에서 이사 오신 건가요?
A1 : 저- ‘용동면 대조리’라고 ‘대조리 비야동’에서 왔지.
B1 : ‘비야마을’이요?
A1 : 에. ‘비야마을’에서 이사 왔어.
B1 : 그럼 ‘비야마을’이름은 왜 ‘비야’라고 지었는지 아시나요?
A1 : ‘비야’는 인자 거기에 그- 골차구니가 이렇게 있는데. 사방에 그 주변에 그 수랑, 물이 샘솟는? 그런 논이 굉장히 많았어. 거의 다 그랬어. 그러니까 옛날에 ‘비야동’ 그러면 거그가 농사가 짓기가 좋으니까 ‘비야’라고 한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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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어디로 시장을 많이 보러가셨나요?
A1 : ‘강경’이지 뭐.
B2 : ‘강경’가실 때 사람들이 좀 꺼리는 곳이 있었나요?
A1 : 아- 여기는 없었어. 여기서 가까우니까 한 3km? 그 정도 되니까.
B2 : 옛날 ‘강경장’에는 무엇이 많이 팔렸나요?
A1 : 옛날에는 ‘강경’이 그- ‘금강’이 이렇게 있어가지고 그 위로는 밑이 얕아서 안 올라갔는가봐. 그러니까 ‘강경’으로 전-부 배가 다 와가지고 그때는 시끌시끌 했지.
B2 : 그게 고기잡이 배인가요?
A1 : 아니 거기서 잡는 것이 아니라. 저- 서해에서 잡아가지고 이리 오는 거여. 집산지여 근게 생선은 ‘강경장’에서 먹고 옛날에는 좀 냄새도 나도 그랬지. 그 배에도 냉동시설이 없고 그러니까 여기까지 올라면 ‘군산’ 거쳐서 여기까지 올라면 시간 걸리자녀.
B2 : 그럼 주변 지역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네요?
A1 : 그렇지. 지금도 ‘강경’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젓갈 시장이 왜 있었는고니. 에- 그 배에서 생선을 내려주면 어떻게 헐수가 없어 썩기는 하고. 그래서 소금에다 염장을 전부 시켰다고 그래서 젓갈이 유명해졌지.
B1 : ‘강경’에는 어떤 고기가 많이 나왔나요?
A1 : 강에서 잡는 거는 뭐 좀 그렇고. 주로 조기, 새우, 뭐 자우간 모든 서해에서 잡히는 건 다 이리 가져왔어. 긍게 인제 거기서 잘 안 팔리는 것이 있는 가봐. 홍어,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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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아까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했던 방죽 이름이 무엇인가요?
A1 : 아- 거기가 ‘칠목리 중거리방죽’ 그래 갔고 거기 사람들 맨-나 거기서 도깨비 나온다고 그랬지. ‘칠목리’ 갈라면 바로 밑에 방죽이 보이는디. 지금은 쓰레기장 만들었지.
B1 : ‘화산리’에 ‘금지마을’말고 또 큰 마을 어느 마을이 있을까요?
A1 : 여그 ‘나바우’, ‘나바우’라고 해서 비단 라자를 써서 바위가 넓은 저- 바위가 하나 있어요. 그래서 비단 라자 바위 암자 해 갔고 ‘나암’이라고 그래.
B1 : 그럼 그 주변에 ‘바우꼬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A1 : ‘바우코쟁이’? ‘바우코쟁이’는 바우 있으면 그거지. 그- 저기도 아마 그런 얘기를 더러하지? 지금도 거기다가 정자, 이렇게 조그마하게 이렇게 햇빛 가리는 거 해 놓았는디. 거기를 ‘바우코쟁이’라고 하지 아마? 저기 ‘나바우’ 천주교 위에 있어. 그 바위가 돌아가는 게 있어. 거기보고 하는 것 같은데 나 잘 모르것어. 그게 저- “놀러 시원한데로 가면 저- ‘바우코쟁이’로 가자” 그렇게 얘기를 하드라고. ‘강경’가는 길에 길옆에 ‘바우코쟁이’라고 있어.
B1 : 바위가 코처럼 생겨서 그 이름이 붙여진 건가요?
A1 : 그런 게 바위가 있으면 저 모서리가 나왔다고 그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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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소라말’이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A1 : ‘소라말’이 그 저 ‘바우코쟁이’ 있는 동네여. ‘소랏말’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불러. 그게 저 ‘김대건’ 신부가 처음에 와가지고 거기 정착해서 천주교 지어 놓았자나.
B1 : 왜 그렇게 불렀는지 아세요?
A1 : 몰라. ‘소랏말’이라고 하면 다 알지.
B1 : ‘금지마을’하고 ‘부평마을’을 경계하는 철도가 언제 생긴 것인가요?
A1 : 철도는 나 생기기 전에 생겼나 본데. 몇 년도에 생겼는지 그건 보면 알 것지. 근데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와가지고 바로 만들었지.
B1 : 철도에 관한 이야기 들어보신 것은 있으신가요?
A1 : 그런 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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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에 흉년들지 말라고 하는 제사 같은 게 있었나요?
A1 : 이 동네는 역사가 원채 짧아서 몇 사람이 저- 3사람인가 여기 와서, 어디 살디가 없은 게. 여그 와서 살았어. 그렇게 차차 늘어났지. 인자 저기서 물쩌서 집이 쓰러진 게 그런게 이리오고. 저 강가에 둑 막기 전에는 큰 비가 오면 물이 채니까 저짝 사람들이 이쪽으로 이주했지. 그래서 그렇게 해서 커졌지.
B1 : 그럼 옛날에 여기에서는 그쪽에 있는 사람들을 뭐라고 불렀나요?
A1 : ‘용소말’이고 ‘소펄’이라고 하고 근디 ‘소펄’이라고 하는 것이 원칙인디. 지금 ‘소펄’이라고 부르지.
B1 : ‘용소마을’하고 ‘소펄마을’ 주민이 이쪽으로 이사 와서 살았던 것이네요?
A1 : 저- 여기 지금 23번 국도에서 저 밑에는 굉장히 얕아요. 그러고 이짝은 높으고. 그래서 옛날에 ‘소펄’은 맨나 배 대고 그렇게 살았지.
B1 : 그런데 그렇게 물이 잘 넘치고 하는데 왜 거기서 사람들이 살았나요?
A1 : 거기는 원래 저- 피난 온 사람들이 뭐니.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뭐만 심으면 잘 되야. 그냥 뭐 채소 같은 것도 잘-되야. 그러니까 거기서 사는 거야. 그리고 또 땅이 흔하고 사람이 많이 안 살으니까.
B1 : 그럼 언제 피난을 오신 분들이 정착을 했나요?
A1 : 누구? 그 사람들? 허- 옛날에 해방직후에 온 사람들, 경상도 사람들도 지금도 있나?
B1 : 거기 마을 생긴 것은 얼마 안 되네요?
A1 : 거기 마을 생긴 지는 얼마 안 되지. ‘소펄’이라고 해가지고 지금 이름으로는 저- ‘나바우’ 저쪽으로 ‘강경’ 쪽으로 있는 것이 ‘상포’, 가운데 있는 게 ‘중포’, 저기 밑에가 ‘하포’인디. 그 포라는 것은 포구라고 해서 포(浦)거든? 그런디 원래는 그게 ‘소펄’이지 않냐? 근게 ‘바깥펄’이 있고 ‘소펄’, 저 ‘용안’쪽에 있는 게 ‘바깥펄’ 여기는 ‘소펄’, 안에 있다고 해서 ‘소펄’ 그렇게 해서 된 것이 제일 타당하드라고.
B1 : 비가 많이 오고 그러면 제사도 지내고 그럴 것 같은데요?
A1 : 그런 건 없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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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망성’에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요?
A1 : 저기 ‘망성’가면 지금 저- 지금 뭐라고 하지? 그저 ‘농촌공사’? 지금은 ‘농촌공사’ 소관이지만 그런 것도 저런 것도 아-무것도 없을 적에, 에- ‘금강물’을 인자 수문을 열어 놓으면 거기 까지 들어오니까. 저- 그 ‘농소’까지는 물이 들어와. 그러면 거기서 물을 퍼가지고 농사를 다지었어. 근디 그- 원채 여기 흉년이 들어 쌓고 그러니까 그분이 그 여기 집집마다 쑥을 심으라고, 그때는 말도 잘 들었어 다들. 아무튼 쑥을 전-부 심게 만들었어. “몇평 이상 이렇게 심어라” 그래서 심었는디. 심고서 쑥이 이렇게 컸을 때 도(道)에 인제 그저 수리관계 그 공무원이 있을 거 아니여? 그 사람들 데려다가 여기 뵈야 집집마다. 아-무 집이라도 들어가도 쑥 밭이 있단 말이여? 긍게 “이렇게 배가 고프고 쑥만 캐서 산다.” 그래가지고 ‘금강 양수장’을 만들었어. 그래서 이 근방이 그 뒤로는 물품어서 살았지. 그 ‘금강 양수장’이 ‘농촌공사’ 되어버렸지.
B2 : 그 쑥을 심게 했던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A1 : ‘전봉철’씨. 저-기가면 있어 이 철로 ‘전봉철’, ‘망성 양수 조합장 전봉철’ 그렇게 써 있어. 교회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
B1 : 쑥 심은 마을은 이 마을만 있나요?
A1 : 이 마을하고 ‘금지마을’하고.
B1 : 이게 언제 이야기 인가요?
A1 : 해방 되고 어수선할 때지. 6.25 후 일 거야. 그 양반이 머리가 비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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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화산리’는 왜 이름이 ‘화산리’인가요?
A1 : 저 산이 천주교 그 성당 산이, 이름이 ‘화산’이여.
B2 : 그럼 불화 자를 써서 화산인가요?
A1 : 아니 곱다고 해서 화산이여.
B1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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