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낭산면 > 호천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낭산면 > 호천마을
구술자 김원배(1940)남자
구술자 김재일(1952)남자
구술자 박노천(1957)남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3-17
비고 면담장소 : 낭산 호천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3년 3월 17일 2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호천(狐川, 여수내) : 옆 내의 이름에서 취해진 것.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여수네 : 옛 지명. 큰 비가 오면 냇둑이 터져서 물줄기가 둔갑을 한다.
- 돌독막 : 길이 돌고 돌아 만난다는 뜻.
- 새터 : 새로운 마을이 형성된 곳.
- 잿백이 : 당산제를 지내던 곳.

2) 전설 및 민담 :
- 양정골 : 양 정승이 나온다는 곳.
- 개씨바우 : 바위를 흙으로 덮으면 호천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나고, 흙을 걷어내면 옆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
- 색해배미 : 가난한 주민이 식해를 좋아하는 부자에게 식해를 대접하고 얻은 논.
- 용문논 : 용이 승천했다는 논.

3) 민속 :
- 집성촌 : 밀양박씨, 김해김씨, 경주김씨 집성촌.
- 술멕이 : 백중날 샘 청소와 마을 청소를 했다고 함.
- 기우제 : 잿백이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강경장 : 솔밭에서 장작을 패서 강경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함.
- 당샘, 웃샘 : 피부병에 걸리면 당샘과 웃샘에서 목욕을 했다고 함.

구술채록

A1 : 김원배(74)-1940년
A2 : 김재일(62)-1952년
A3 : 박노천(57)-1957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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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낭산면 호천마을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낭산면 호천마을인데, 호천마을에 대한 많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A1 : 반갑습니다. 제가 교직생활을 43년을 했습니다. 그런데 초 발령이 낭산초등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만 43년 동안 교직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마을의 뿌리찾기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사를 해보니, 우리 마을은 1690년경에 이 마을에 밀양박씨와 김해김씨, 경주김씨가 이룬 마을입니다. 처음 우리 마을은 60호가 넘었는데, 공업화 이후 도시로 나가며 마을이 좀 줄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원래 여서면 이었습니다. 여산에 속해 있었죠. 그런데 1914년도에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낭산면 석천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70년대에 야산 개발을 했습니다. 원래 우리 마을 근방은 다 솔밭이었습니다. 농토는 사실 얼마 없었죠. 그때는 주로 생업이 솔가지를 치고, 장작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여우가 닭도 물어가고, 토끼나 꿩처럼 산짐승도 많았었죠. 그런데 70년대 이후 야산 개발이 되고 경지 정리가 되면서 논과 밭으로 다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밭작물을 농사지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B1 : 오래된 마을이군요. 그럼 우리 마을 지명 유래담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A1 : 우리 마을을 여수네라고 했거든? 여우 호(狐)에 내 천(川)자를 썼거든? 우리 어릴적만 해도 큰 비가 오면 냇뚝이 터졌어. 그래서 물이 터지는 곳으로 물이 흐른담 말이야? 그런데 여러곳이 터져서 물줄기가 많았어요. 그리고 정비가 되면서 지금은 반듯해 진거지. 그래서 여수네라는 이름이 여수가 둔갑을 한다고 하잖아? 그렇듯 물줄기가 여기저기 둔갑을 해서 이리저리 물줄기가 많다고 해서 지명이 된 거지. 돈돌막이라고 하는 것은 이 밑에 길들이 합쳐지는 곳이야. 말하자면 길이 돌고 돌아서 거기서 다 만난다는 거지. 뒷재는 뒤 야산을 말하는거고. 새터는 마을 넘어가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 되었담 말이야? 산심말은 산 이름이야. 산 골자기. 양정골은 양 정승이 나온다는 골자기야. 삽다리는 저 뒤에 있는 논을 말하고. 잿백이는 당산에 가까운 곳인데 당산제를 지내는 곳을 잿백이라고 했어. 왕송밭은 큰 나무가 꽉 차 있던 곳을 왕솔밭이라고 했고. 맷동제는 앞산인데 동쪽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맷동제야. 비석매는 큰 비석에 있는 곳이고. 고무농장은 일본 고무라는 사람이 만든 농장이야. 아랫뜸은 뒤에 있는 몇 가구가 모여 있던 마을이고. 옹기논은 옹기 모양 같이 생겨서 옹기논이야. 용문논은 용이 승천 했다는 논이야. 식혜배미은 여기 백씨가 잘 살았어.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식혜를 참 좋아 했다고. 그런데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식혜를 한 동이를 집에서 만들어 주고 그 논을 얻었다고 해서 식혜배미야. 새둠벙은 방죽이야. 여기에 방죽이 있었거든. 개씨바우는 어떤 유례가 있냐면 공동묘지 옆에 바위가 있어. 그것이 개의 심볼처럼 생겼어. 그런데 방죽안 제남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 마을을 오얏말이라고 하는데, 바위를 덮어놓으면 우리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나거든. 그리고 그 바위를 열어놓으면 오얏말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 야학당은 일정시대 때 글을 모르는 사람들 글 가르쳐 준 곳이야. 이것들이 우리 마을 지명이지.

B1 : 지금 옛 지명에 관한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용이 승천 했다는 논이 있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A1 : 용이 올라갔다는 논이 있어요. 경지정리가 돼서 그 근방이라는 느낌만 알지,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지.

B1 : 그럼 그 지명 중 재밌는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A1 : 그 할아버지가 식혜를 참 좋아하셨다고. 그런데 어떤 가난한 집이 그걸 알고서 식혜를 한 동이를 정성껏 만들어 가져다주었더니, 고맙다고 어디 논을 지어라~ 하셨다고 전해지거든.

B1 : 그러면 백씨 할아버지는 천석꾼이셨나요?

A1 : 아니. 천석꾼은 아닌데, 우리마을에서 잘 살았지.

B1 :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1 : 그렇죠. 밀양박씨, 김해김씨, 경주김씨 집성촌이었어요. 그래서 나 어릴때만 해도 술멕이 하다가 싸움이 붙어. 육이오 전에. 그럼 박씨와 김씨가 골목에서 싸움을 하는데, 막 청년들이 선발대로 가서 소나무 가지를 끊어서 막 싸우고 했담 말야. 그걸로 막 서로 때리고 막 그랬어.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싸움을 그냥 하지, 또 금방 풀어지고 애경사에 서로 협조하고 그랬다고. 술 마시고 그냥 싸운거지. 그리고 섣달 그뭄날 냇꼬라고 있어. 귀신을 몰아내려고 풍장을 치는거라고. 그런데 가난한 집이나 부자 집이나 싹 돌아. 그럼 술상을 있는데로 다 내와서 보답하고 그랬어. 그럼 애들은 빗자루를 태워서 냇꼬하는 길을 밝혀주고 그랬어.

B1 : 또 술멕이는 어떻게 하셨나요?

A1 : 백중날. 그 날 샘 청소를 하는거지. 고사 지내고. 그걸 술멕이라고 했지. 아들 낳고 싶은 사람이 그 우물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고 그랬지.

B1 : 우리 마을은 아까 산제를 지낸 곳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A1 : 산제가 아니라 당산제를 지낸거지.

A2 : 기우제를 지냈어.

B1 : 기우제를 지냈으면 천수답이었나요?

A1 : 그렇지 천수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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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물줄기가 여러번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A2 : 그렇지. 물줄기가 밤새 바뀌었어. 그래서 호천마을이라고 했지. 매일 물 줄기가 바뀐다고 해서.

A1 : 예전에는 다 민둥산이었다고. 원래 나무가 다 저수지 효과가 있잖아. 그래서 민둥산 시절에는 물이 막 내려왔지. 산에서. 그런데 그 물이 비오면 다 내려와서 둑이 터져. 그래서 물줄기가 매일 바뀐 거지.

B1 : 우리 마을이 처음 형성 된 것은 언제인가요?

A1 : 우리 할아버지가 1690년경에 이 마을에 정착 했는데, 박씨들은 그것보다 조금 더 먼저 들어 왔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크게 차이는 안 나고.

A2 : 한 300년 되었다고 이야기 들었어. 내가 어르신들에게.

B2 : 그리고 양정승이라고 하셨는데요.

A1 : 두 명의 정승이 나온다는 골짜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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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개씨바우라는 바위는 지금 남아 있나요?

A1 : 아니. 지금은 없어졌어.

A2 : 그게 야산 개발을 하면서 밭을 만들었거든. 그래서 없어져버렸어. 대신 터는 아직 남아 있고.

B2 : 혹시 우리 마을에 혈자리 이야기는 없나요?

A1 : 뱀밭이라고 있어. 뱀처럼 길쭉하거든. 거기가 뱀밭이지.

B2 : 혈자리는 또 없나요?

A1 : 그런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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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고목농장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A3 : 실은 일본인 지주는 아니고요. 일본으로 창씨개명 하면서 이름이 바뀐거죠.

A1 : 거기가 구씨 땅인데, 일본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거든요.

A3 : 그래서 국가에서 일본땅이라고 환수를 했어. 일부는 국가에서 인수를 하고, 일부는 자손들이 환수를 했고. 그래서 일부는 국유지로 잡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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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솔밭이 있었다고요.

A1 : 여기 뒤에 있는 밭이 원래 솔밭이었어. 그러니까 나무가 많으니까 마을 분들이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장작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한거야. 예전에 강경이 조선 3대 시장이었잖아? 그러니까 강경에 내다 팔았던 거야. 그래서 이 마을이 아주 윤택했다고 하더라고. 그걸 팔아서 잘 살았다고 들었어.

B1 : 그러면 우리 마을은 강경장을 많이 다녔나요?

A3 : 여기가 딱 중앙이에요. 강경 8키로, 함열 7키로, 여산은 6키로. 그래서 장을 모두 다 이용 했어요. 여산은 여산장, 함열은 해밀장이라고 헸고, 강경은 갱갱이장이라고 했는데, 강경이 크다 보니까 주로 강경장을 많이 이용 했어요.

A1 : 70년대 중반까지는 강경장을 주로 이용 했지. 여기 뒷길 있잖아? 거기가 1번 국도야. 그런데 강경장날이면 도로에 사람들이 빡빡해.

A3 : 원래 여기 국도가 1호 국도잖아요. 전주에서 삼례, 금마, 여산, 강경, 연무대로 길이 있어요. 그런데 연무대가 원래 전라도 꺼에요. 그런데 여기가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없어요. 충청도 사투리가 많이 있죠. 그런데 원체 강경이 시장이 크다 보니까 그쪽으로 많이 다녔죠. 강경이 최고로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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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민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A3 : 당샘이라고 있어요. 그 당샘이 있고, 위에 웃샘이 있어요. 거기 가면 시원한 물이 나와요. 그래서 거기가 약초물이라서 땀띠가 나면 거기 가서 시원한 약숫물로 씻고 오면 피부병이 싹 다 나았다고 해요.

A2 : 그 샘이 논에 똘물처럼 있었지. 옹달샘이에요. 아무리 가물어도 그 물이 참 잘 나오고 물이 참 차가웠어요.

A1 : 지금은 거기에 잡초나 흙바닥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은모래가 쫙 깔려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물놀이도 했죠.

A3 : 그리고 늦가을이 되면 참개들이 있었어요. 그 참개들이 강으로 내려가거든요. 그러면 대나무 발을 쳐서 그 참개들을 다 잡았죠.

구술사진

김원배






개씨바위 관련마을


개씨바위가 있던 곳


김재일


오른쪽부터 김원배,박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