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낭산면 > 우금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낭산면 > 우금마을
구술자 진형섭()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구술일시 2013-02-26
비고 면담장소 : 낭산 우금마을 진형섭씨 개인 비닐하우스
면담시간 : 2013년 2월 26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구술자가 생년을 밝히지 않았음
키워드  

문헌내용

우금(牛今, 소곤리)․주막뜸 : 소곤리는 전에 소쿠리(옛 방언은 ‘소고리’)를 많이 만들던 곳으로 그에서 생긴 이름일 것이라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낭산면 : 옛날 백제시대 ‘알야산현’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함.
- 소금리 : ‘우금마을’의 옛 명칭.
- 장맥산 : ‘낭산산’의 옛 명칭.
- 대뫼 : ‘죽산마을’의 옛 명칭.
- 뫼밑 : 산 밑에 있는 동네를 ‘뫼밑’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고 묘 밑에 있는 동네라고 해서 ‘묘밑’이라고 해서 ‘오밋’이라고 부르다가 한자 표기로 바뀌어 ‘오미마을’이라고 불게 되었다고 함.

2) 전설 및 민담 :
- 범바위산 : ‘범바위산’에 있는 망부석이 바라보는 방향의 마을에 과부가 생긴다고 함.
- 미륵산 : ‘미륵산’에 인삼밭 3마지기, 삼산밭 3마지기가 있었다고 함.
- 고인돌 : ‘낭산면’에 고인돌이 많이 있었다고 함.

구술채록

A1 : 진형섭

B1 : 이호형
B2 : 이동혁
B3 : 박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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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낭산면’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고 하며는 ‘낭산’은 옛날 백제시대에 ‘알야산현’이라는 ‘낭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알야산’에서 나온 거여, ‘알야산현’이 나중에 ‘야산현’으로 바뀌어 가지고 ‘야산현’이 조선시대 와가지고 ‘여산현’하고 통합이 돼서 ‘여낭현’으로 바뀌어 가지고 ‘낭산’여기가 ‘서일면’, ‘서이면’, ‘서삼면’, ‘서사면’으로 각각 갈라져 이것이 역사적인 ‘낭산’의 행정 구역의 변천사여.

B1 : 그러면 ‘낭산면’이름은 왜 ‘낭산’이라고 붙여졌나요?

A1 : 어- ‘야산현’이라고 하는 그 옛날 얘기가 ‘알야한’하면 어떻게 보면 이두어로 되어가지고 ‘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설적인 얘기로 뭐 박혁거세가 뭐 알에서 나왔다. 뭐 했다 그래서 ‘알야산현’이라는 것을 우리가 보통 보면 알의 형태에서 나온 산이다. 그러기 때문에 ‘낭산’이라는 데는 밝은 산이다. 그런 얘기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낭산’에 또 조선시대로 오기 전에 흔히들 역사적으로 잘 못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낭산’ 산성이 있어. ‘낭산 산성’이 지방문화재 13호 인가? 이렇게 되어있을 것이여. 근데 저게 현재 토성이라고 그러거든? 토성인데 토성이라고 하는 그 자체는 석성과 토성은 석성은 돌로만 쌓은 것이 지금의 석성이라고 하고 돌로 쌓았는데 흙은 가운데에다가 커-다란 뚝을 쌓듯이 쌓아가지고 돌로 위에 피복을 시키는 거여 그것이 석성이라고 했어. 근데 우리가 어려서 저 산을 보면 토성과 석성을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돌로 전-부 덮여 있었어 그 성이 덮여 있었는데 그게 세월 흘러가면서 다- 비 오고 바람 불고 하니까 씻겨서 내려가 버려가지고 흙으로만 되있는 형태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그래서 저 ‘낭산 산성’은 동문, 서문 남문, 북문 4개문이 있고 우물이 두 개가 있다. 이렇게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와 있어. 둘레가 삼천 척이오 우물이 두 군데가 있다. 지금도 그 우물은 가보면 물이 지금도 흘러 그 산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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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셔서 자라셨는지요?

A1 : 아- 아는 ‘우금’마을에서 태어났지. 근데 이걸 알면 재미있어. ‘우금’이라는 것이 소 우자 이제 금자야. 그러면 ‘소금’이 되겠지? 그래서 옛날에 우리 마을에 이름은 ‘소금리’였던 것을 ‘소곤이’, ‘소곤이’ 그랬어. ‘소금리’라는 것이 소 우자에 소하고 이제 금자에 금을 따서 ‘소금리’였었다고. 근데 그것은 한자로 표기 할 적에 소 우자를 쓰고 이제 금자를 쓴 거겠지.

A1 : 그러면 저 산 이름이 ‘낭산산’이라고도 하고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장맥산’이라고 하데. 그건 우리가 여기서 우리가 흔히 나오는 얘기로 우리 전라도 사투리로 ‘쟁멱산’ 그러지 장자를 쟁자로 발음을 많이 했거든? 근디 그것이 ‘장맥산’이야. 한문이 나오면서 그것을 ‘장맥산’ 조선시대에 ‘장맥산’으로 바뀐 거야 그 유래를 보면는? 조선시대에 왜 ‘장맥산’이라는 이름이 있었느냐? 원래는 ‘낭산산’인데. ‘알야산’, ‘야산’, ‘여낭’, ‘낭산’으로 바뀌면서 있던 것인데 그게 ‘장맥산’이름으로 왜 되었느냐?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근방에서 조세로 보리를 걷어 보리를 관에서 걷어가지고 보관을 해놓으니까 도둑이 그냥,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조세 걷어놓은 보리를 다 도둑질 해 가버려. 그래서 그것을 갔다가 쌓아 놓은 데가 저 산에 다가 갔다가 성안에 다가 쌓아 놓았어. 그래서 보리를 저장 해놓았다 해서 ‘장맥’ 보리 맥자 저장 자라고 하지? 그래서 ‘장맥산’이라는 이름이 나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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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리고 인자 ‘낭산’이라는 어휘는 그런데 마을마다에 전설은 상-당히 많아 인자 우리 여기가 44개 마을이 있는데 ‘낭산’에? 44개 마을마다의 전통도 있고 역사도 있어요. 내가 역사 수집도 쭈-욱하니 다 해보고 그랬는데. 에- 여기 ‘석천대’라고 하는데는 상당히 유명한데야. 거기는 그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뭐라고 되어있는 고니 ‘유상처’다 그랬어. ‘유상처’라는 것은 무엇이냐? 요즘으로 말하며는 놀이터 즐기고 이렇게 관광하고 하는데는 ‘유상처’라고 해. 그런데 제일로 재미있는 거는 ‘미륵산성’을 ‘기준성’이라고 하지? 그러면 ‘기자가 남지한지해이하야 도착한 곳이 금마다.’ 그랬거든? 그렇지?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내려와서 기자 조선시대에 거그서 퇴각을 해서 쫓겨서 내려온 것이 ‘금마’다. 그래서 ‘미륵산성’을 쌓아 놓고 해놓은 것이 ‘기준성’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기자’가 쌓았다 그런 이야기거든? ‘기준성’이라는 게 그 ‘기자’가 유달리 ‘석천대’에 와서 뱃놀이를 하고 즐겼다. ‘기준왕’이 거기 와서 즐기고 놀았다. 그런 것들도 나오고 있어.

B1 : 또 주변에 특이한 지명 중에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A1 : 그러면 봐 또 한 가지 그러면 우리 순수한 말은 어휘나 지명이나 이 말은, 산이 아니야 대게는 산이라고 하지? ‘장맥산’ 무슨 산 무슨 산이야 근데 우리말은 산이 아니야 뫼야 뫼. 그래서 항시 이 옛날 우리의 순수한 말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뫼에 가서 나무를 한다. 이렇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보며는 여기 보면 ‘대메’라고 하는 마을이 있어. 응? 그 ‘대뫼’라는 얘기 인데. 한문으로는 뭔 고니 왜 ‘대뫼’인가? 한번 생각을 해봐 재미있어 그런 것을 보면.

B1 : ‘대뫼’ 큰 산 아닌가요?

A1 : ‘대뫼’는 큰 산이 아니라 대 죽자 대나무 죽자 ‘죽산’이야. 지금 이름이 ‘죽산’이자나 옛날에는 ‘대뫼’라고 그런 것이 대나무 산이었다. 뫼는 산을 뜻하자나 죽은 한문으로써 우리 순수말은 대(竹)란 말이야. 그 ‘대뫼’라는 지명이 지금도 있어. 그 ‘죽산’이라는 마을이 지금도 있는데. 그 ‘대뫼’라는 것이 그런 것이여. 그리고 그 밑에 가며는 ‘오미’이라고 있는데. 원래의 그 저 어휘는 내가 아는 걸로는 ‘묘밑’이 아니라 ‘뫼밑’이야 ‘뫼밑’ 그니까 묘가 있는 밑이 아니라 산 밑에 동네다 해서 ‘뫼밑’이여. 근디 그것은 ‘오밋’으로 ‘오미’로 바뀌 었어 다섯 오자 아름다울 미자를 써서 바뀌었드라고 근디 사실을 ‘뫼밑’ 바로 뒤에가 산이 있어가지고 ‘뫼밑’ 동네라 하는 뜻인데 그걸 ‘오미’로 바뀌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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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그리고 내가 더 이야기를 하자면 역사적인 것이라고 하는 거면 금강의 물이 여그 까지 들어왔었어. 옛날에 금강물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저-쪽에 가면 ‘성남리’하면 성에 남쪽이라고 해서 ‘성남리’고 여기 지명 이름이 또 ‘북성’이 있어. ‘북성’이라고 하는 것은 ‘낭산 산성’에 북쪽 성이라는 얘기야 북쪽 성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 살았다고 해서 ‘북성’인데, 에- 어디 책을 보면 ‘북성’이라고 하는 자체가 ‘낭산 토성’ 자체를 북성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어있어. ‘미륵 산성’을 기준으로 해서 북쪽에 있는 성이기 때문에 ‘북성’이라고 했다고 그랬어. 근게 한참 뒤에 얘기 것지? ‘북성’이고 그리고 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성남리’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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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렇다면 어르신 전설이나 민담을 들어보신 것이 있으신가요?

A1 : 전설은 이 재미있는 전설이 있어, 여그에 가며는 ‘범바우’라고 있어. ‘범바위’인데 그러면 ‘범바위’하면 ‘호암’이지? 범 호자 바위 암자 그래서 그 산이 있는 여기 이 학교가 있는 이쪽을 ‘호암리’라고 혀. 거기에 가면 ‘범바위산’이 있어 ‘범산’이라고 그러지 지금도 있어 존재하고 있어. 어- 거기를 가보며는 바위에다가 글씨를 막- 무수하니 새겨놓았어. 옛날 글씨도 있고 근대에 생긴 글씨도 있고 그래. 옛날 글씨를 무엇인가는 몰르는데 우리가 조사한 경우에는 산목 문자이다. 계산한다고 해서 산목 문자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A1 : 여기에 또 ‘강변’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상당히 내륙에 들어있는데. ‘강변’이야 강이 있는 가에 마을이라고 해서 ‘강변’이야 지금도 ‘강변’이야. 그러면 그 ‘범바위산’에 그 아까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그것도 이 많은 역사적인 것이 있어요. 거기 가보면 전설이 있는데 옛날에, 거기에 커-다란 돌로 되어있는 망부석처럼 생긴 돌이 있었는데. 그것을 지금 내가 생각할 적에는 아- 솟대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거기를 경지정리를 하면서 그놈을 뽑아 가꼬 땅에다 묻어버려서 없애버렸어. 왜 그랬냐? 그 망부석이 이쪽 마을을 쳐다보게 세워 놓으면 그쪽마을에 과부가 많이 생긴데. 또 이쪽에 가다 세워 놓으면 이쪽마을에 또 그런데 그런다고 그러니까 몰-래 이쪽 마을 동네 청년들이 몰래 와서 이짝으로 틀어 놓고 또 어떤 때는 이쪽 청년들이 와 가꼬 저쪽 동네를 쳐다보게 틀어 놓고, 그런다라고 하는 얘기가 있어서 그것을 경지 정리 할 적에 뽑아서 그냥 땅속에다 묻어버렸어. 내가 볼 적에는 일종에 솟대인데. 그렇게 취급을 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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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이런 ‘범바위산’같은 전설이 또 있을까요?

A1 : 어- 옛날부터 '미륵산'에 말하자면 무슨 뭐 인삼밭이 3마지기가 있고 삼산 밭이 한 3마지기가 있고 또 거기에 무슨 뭐 금을 담은 뭐가 얼마가 들어 있고 이런 얘기들도 많이 있어. ‘금마’라고 하는 것이 금도 많이 나왔는가봐 황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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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또 옛날에 이 지역에 고인돌이 솔찬히 있었어요. 있었는데 도로 부역을 한다라고 할 적에 자갈을 깔자나? 근데 마을마다 구역을 할당을 해줘. 자갈 부역을 하라고 그러면 자유당시절에 함마 가꼬 와서 그놈을 전-부 뚜드려 까서 리어카로 싣고 지게로 저 날라서 다- 그냥 싹-없어진 거여 그냥. 지금 내가 생각하니까 뭐 ‘고창’에 있는 뭐 어디 그 고인돌이니 뭐니 가서 보면 딱 그런 것을 다 때려 부셨어 우리 ‘낭산’에서.

B1 :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진형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