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낭산면 > 방교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낭산면 > 방교마을
구술자 오창섭(1919)남자
구술자 이정복(1944)여자
구술자 진금복(1930)여자
구술자 남채임(1928)여자
면담자 하정일,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3-07-14
비고 면담장소 : 낭산 방교마을 이정복씨 자택
면담시간 : 2013년 7월 14일 14시
내용 : 마을 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구방(舊坊)․구북(舊北, 北城)․방교(坊橋, 방아다리) : ‘구방’은 1972년 구북과 방교를 합친 분리명.‘북성’은 마을 북쪽에 낭산성지가 있어 본시 ‘북성’이라 했는데 마을이 둘로 나뉨으로써 구북, 신북의 구분명을 씀.방아다리는 지형이 디딜방아의 방앗다리처럼 Y자 형으로 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이곳은 근처 지형이 삼각형으로 생겨 일컫는 이름이지만 또 길이나 내가 두 갈래 진 곳에 거의 ‘방아다리’라는 이름이 붙는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유래담 :
- 방교마을 : 방아다리의 줄임말.
- 방교(倣敎) : 본을 받아서 나간다는 뜻.
- 성터봉 : 성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2) 전설 및 민담 :
- 종자뜰 : 심한 흉년에도 물이 많이 나와서 종자뜰이라고 불렸다는 민담.
- 옥금동 : 가야금을 친다는 혈(穴)자리 민담.
- 절 : 성태봉 성터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는 민담.
- 여우 민담 : 여우에 홀렸다는 민담.


3) 민속 :
- 샘 : 들 가운데 수질이 좋은 샘이 있었다.
- 방아샘 : 보리방아를 찧던 방아다리가 있던 샘.

구술채록

A1 : 이정복(70)-1944년
A2 : 진금복(84)-1930년
A3 : 오창섭(95)-1919년
A4 : 남채임(86)-1928년

B1 : 장윤준
B2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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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안녕하십니까.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우리 방교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낭산 방교마을인데요. 방교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A1 : 원래 우리마을은 방교라는 이름이 아니야. 원래 우리 마을은 방아다리라고 해서 방교마을이야. 그걸 줄여서 방교라고 부른거야.

A2 : 방아다리가 왜 방아다리냐면, 들 가운데 샘이 참 좋은 게 하나 있었어. 그래서 방아다리야. 처음에는 그 샘을 기계로 다 품어 먹었어. 거기가 물이 참 잘 나왔다고. 그런데 부대에서 모터를 거기다 놓고 물을 품어서 사용 했어. 그래서 방아샘이라고 해서 방아다리라고 불렀데.

B1 : 그럼 예전에도 방아다리라고 불렀나요?

A1 : 그렇지. 방아다리를 줄여서 방교라고 부른 거지. 원래 맨 처음에는 법정 마을이 안되어 있었어. 법정 행정구역이 아니었지. 원래는 구북이랑 방교를 합쳐서 구방이라고 불렀어. 그래서 법정 마을로 된 것은 6~7년 전에 법정마을이 된 거야. 그 전에는 자연마을로 되어 있었어. 자연마을로 방아다리라고 되어 있었어.

B1 : 행정마을이 되려면 마을이 좀 커야 하지 않나요?

A1 : 그렇지. 20호 이상 주민들이 살아야하지. 지금은 19호만 남았고, 한참 클 때는 35호 이상 되었지. 여기 부대가 확장이 되면서 마을을 삼켰어. 그래서 11채가 없어졌어.

A3 : 부대 때문에 마을이 확장이 되지 않아.

A1 : 여기가 왜 방아다리라고 하냐면, 예전에 여기에 방아샘이 있었데. 그런데 거기서 물이 많이 올라오는데, 물을 품어서 보리방아를 찐거야. 그래서 방아샘이 있어서 방아다리라고 불렀데.

B1 : 그러면 그 샘물은 어땠나요?

A1 : 그 샘물이 참 많았지. 그래서 그걸로 농사도 짓고 그랬어. 그래서 여기를 종자뜰이라고 불렀지. 다른 곳은 기미년 흉년 때 다 못 먹어도, 여기서는 종자를 확보했어. 방아샘에 물이 참 많이 나왔거든. 그래서 이 쌀을 3년만 먹으면 드는 송장도 무겁다라는 말이 있었어. 종자뜰 쌀을 먹으면 송장도 무겁다.

B1 : 그러면 종자뜰을 제외하고는 천수답이었나요?

A1 : 그렇지. 거기를 제외하면 다 천수답이었지.

A3 : 여기 부대가 샘에다 파이프를 하나 걸어놔서 30연대가 그 물을 먹고 남았어. 그렇게 그 물이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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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술멕이 할 때 참 크게 하셨겠네요.

A1 : 그렇죠. 예전에는 풍물도 많이 치고 그랬죠.

B1 : 또 샘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나요?

A1 : 예전에는 사람들이 빚을 얻으러 다니잖어? 그러면 그 돈을 얻으려면 농사를 짖냐 안짖냐 달려 있는거야. 농사를 지으면 빚을 얻을 수 있어. 그러면 다른 곳은 빚을 못 얻어도 종자뜰 거기는 빚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어. 이 줄기가 옥금동 줄기에서 내려온 줄기에요. 옥자는 구술 옥(玉), 거문고 금(琴)을 쓴다고. 그게 가야금을 친다는 거여. 그래서 예전에는 옥금동 그쪽에다 큰 명당이 있다니까.

B1 : 그러면 땅 보는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A1 : 암! 그렇지. 그 명당이 어디냐 하면 바로 하사관 학교. 명당을 찾다 찾다 못 찾았는데, 아~ 하사관 학교구나! 라고 했다고. 그리고 아가꼴이라고 했다고. 왜냐면 하사관 군인들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니까 아가들이 논다고 해서 아가꼴이여.

B1 : 하사관학교가 생긴 이후 아가꼴이라고 했나요?

A1 : 아니. 그게 참 신기해. 하사관 학교가 생기기 전부터 아가꼴이라고 했다고. 그런데 나중에 하사관 학교가 생기고 나서 아가꼴이 이해가 되는거야. 이름 따라 가는거야. 이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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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초입에 보니 출세하신 분들이 꽤 있나보군요.

A1 : 그렇지. 우리 마을에 출세하신 분들이 참 많아.

B1 : 그러면 혹시 혈자리가 참 좋은가요?

A1 : 그렇지. 그 지관들이 와서 말씀하시길 지금 XX네 집 도로가 있잖아? 그게 물 다리래요. 물 다리. 그래서 그쪽에 샘을 파면 참 물이 많이 나와. 물이 쫘~악 쏴! 그래서 지형적으로 땅 밑에도 다리가 있데요. 그래서 물이 많고, 맑고, 명당이고. 지금은 방교라고 하는데, 방교를 본받을 방(倣)에 배울 교(敎)를 써요. 그래서 본 받아서 나간다고 해서 방교에요. 사실 우리 동네가 맨 처음에는 빈촌이었다고. 다들 모여서 자연부락이라서. 그래서 처음 여기 마을에 자리 잡으신 양반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보니 물이 참 잘 나왔데요.

B1 : 혹시 마을에 자리를 잡으신 분들은 어째서 우리 마을에 자리를 잡으셨나요?

A1 : 기미년 흉년이라 있어. 그런데 기미년 흉년에도 여기는 농사를 지어 먹은거야. 그 만큼 물이 좋다 이거야.

B2 : 그러면 우리 마을은 집성촌은 아니겠네요.

A1 : 그렇죠. 우리 마을은 집성촌은 아니고, 우리 마을이 생긴건 60~70년 된거죠. 마을이 생긴건 얼마 안된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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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에 주산은 있나요?

A1 : 뒷산이 주산이지.

B1 : 우리 마을엔 물이 좋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그 물줄기가 어디에서 내려왔나요?

A1 : 선인암에서 내려왔지. 저 앞산 선인암 절에서 내려오는거야. 성터봉. 성터가 있어서 성터봉이라고 불렀지. 저기가 미륵산 줄기지. 이쪽 성은 북성이라고 했지. 전주에서 봤었을 때 북쪽에 성이 있다고 해서 북성. 그래서 이 쪽 도로가 북성로라고 부르지.

B1 : 혹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A1 : 이쪽 성태봉 성에서는 절이 있었는데, 빈대로 다 망했데. 절에 빈대가 많아서 빈대 때문에 절이 망했데.

B1 : 그 절이 컸나요?

A1 : 그 절이 꽤 컸다고 했지. 그 구수는 원대 박물관에 있다고 하고. 밥을 짓는 큰 냄비 같은거 있잖아. 그게 원대 박물관에 있다고 하고, 절에 탑도 있었다고 해. 그래서 절이 좀 컸었다고 해.

B1 : 그 절 터가 아직 남아 있나요?

A1 : 아직 그 절 터가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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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어머니들이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 할 때는 어디에 하셨나요?

A2 : 장독에 했지. 떡도 놓고, 쌀도 놓고. 자식들 다 잘되라고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판치니 다 없어졌어.

B1 : 우리 마을에 교회가 왜 이렇게 많이 있나요?

A3 : 여기 삼기에 목사들이 많이 나와서 10호만 있으면 바로 교회 만든다고.

A1 : 이 동네 다 교회 다녀.

B1 : 예전에는 미신들이 많았잖아요?

A1 : 그렇지. 예전에는 송장들이 주산도 못 넘게 하고, 마을 앞도 못 가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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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은 장례를 어떻게 지내셨나요?

A1 : 옛날에? 그냥 평범하게 했지. 그냥 매장 했어. 산에다가.

B1 : 애장은 어디에 하셨나요?

A1 : 애장도 그냥 평범하게 했어. 평장쳤지. 판판하게. 애장은 원래 봉을 안세우잖아. 원래 아주 오래전엔 소나무에 걸어놨데. 그래서 뼈만 추려서 묻었지. 요 근방에 예전에 소나무가 참 많았다고. 옥금동에 황새가 소나무 위에 하얗게 있었다고.

B1 : 황새가 많았나요?

A3 : 예전에 소나무가 많았을 때 황새가 많았어요. 예전에 황새가 많았을 때는 부자들이 많았다고. 그런데 황새가 떠나고 난 뒤에 부자들이 다 떠났지.

A1 : 석천리라고 하잖아? 석천이 원래 돌 석(石)에 샘 천(川)자를 쓴다고. 그래서 돌 밑에 샘이 있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 마을이 참 물이 좋고 그래. 그런데 도로가 나면서 그 물이 없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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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우리 마을 시장은 어디로 가셨나요?

A1 : 여기는 여산시장을 많이 갔지. 걸어서 가면 30~40분 정도 걸렸지. 그래서 우리 마을은 여산 시장을 많이 갔어.

B1 : 소 사실 때도 여산으로 가셨나요?

A1 : 그렇지. 여산 소시장이 얼마 전에 없어진거야. 그 전에는 다 소 살 때는 여산으로 갔지.

B1 : 여기는 낭산이 아니라 여산 문화권 같은데요.

A1 : 그렇지. 우리 마을이 원래 다 여산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분류가 되면서 낭산 자연마을로 분류가 된거지. 원래는 여산이었어. 그때는 초등학교도 여산으로 다니고 그랬어.

B1 : 혹시 우리 마을에 무서운 이야기는 없었나요?

A1 : 우리 마을에 그런 것도 있지. 예전에 여기 XX이네 집 쪽에 상여집이 있었지. 그리고 여기 소나무가 참 많아서 낮에도 무서워서 못 다녔어. 여우가 낮에도 막 울고 그랬다고. 거기에 도깨비도 막 돌아다니고 그랬지. 술 마시고 여우에 홀려서 다음날에 집에 오고 그랬지. 여우에 막 홀려서 여기 핑정골이라고 있어요. 풍뎅이 모가지처럼 생겼다고 핑정골이라고 했다고. 여우에 홀려서 핑정골을 헤맸다고 그러더라고.

구술사진






오른쪽부터 이환, 오창섭, 이정복.


왼쪽부터 남채임, 진금복.